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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정권 1996 그리고 전망

현장에서 미래를  제16호
이해영

김영삼 정권의
‘문민 개혁’을 평가한다


김영삼 정권 1996 그리고 전망
이해영(연구위원,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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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제’ 평가
황기돈(편집위원, 한신대 강사/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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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매카시즘에 걸린
세계화통일론
김명섭(서울대학교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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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권의 ‘신노사관계구상’과 노동법개정
이광일(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정치학)

지연과 정체를 반복하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노동법 개정 논의는 주요 쟁점사안에 대한 합의도출에 실패한 채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정부에서는 연내 노동법 개정 의사를 밝히고 있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대규모투쟁을 선언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문민정부 개혁’의 핵심과제라는 노동법 개정문제는 마지막 힘겨루기를 남겨 놓은 상태이다.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이에 의한 노자관계의 재편, 그것은 자본축적위기의 부담을 노동대중에게 전가하려는 독점자본의 반동적 공세이다. 신자유주의에서 주장하는 자유와 효율성이 사실은 ‘자본축적의 자유’이고 동시에 ‘실업의 자유’임은 이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신노사관계 구상’의 경과와 귀결점은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이에 대한 노동 측의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 특집 ꡔ김영삼 정권의 ‘문민개혁’을 평가한다ꡕ는 ‘신노사관계 구상’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예각화되고 정권의 보수적 공세가 강화되는 이 시기를 김영삼 정권의 개혁에 대한 총체적 평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진단하고자 기획하였다. 네 편의 글은 화려하게 등장했던 개혁플랜이 어떻게 왜소화하고 자기 모순에 봉착하는지를 우리에게 차분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 글들을 통해 이른바 ‘문민개혁’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정치, 경제, 남북관계, 노동, 교육 등으로 나누어 접근하려 했으나 필자의 사정으로 교육분야에 대한 원고는 이번 호 특집에 싣지 못하였다.
‘세계화’, ‘국가경쟁력’ 등으로 집약되는 이른바 ‘문민개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자본의 주도성이 관철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노동 측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문민 개혁의 귀결, 그것은 ‘자본의 구상’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의 구상’에 달려 있다. 차분하고 종합적인 진단, 그것은 힘찬 전진을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김영삼정권 1996 그리고 전망

이해영(연구위원,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1. 들어가는 말

한국 정치사에서 2번째로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영삼 정권이 이제 말기로 접어들고 있다. 노태우의 6공화국과 YS의 6공화국을 구분하기 위해 현 정권의 파워 엘리트들은 스스로를 문민정부라고 불렀고 또 자신의 역사적 임무가 ‘개혁’에 있다고 말해 왔다. 이제 저물어 가는 권력의 황혼기에서 우리, 곧 이들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과 견해를 달리 했던 사람들은 한편으로 이들의 직업이 군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에는 십분 아니 십이분 공감하면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스스로 설정한 역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과 견해를 달리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 정권의 담당자들은 정권의 안정과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한해 놀랍게 비타협적이었고 또 분명 ‘개혁적’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권 안정을 위한 인물교체나 단순한 형태및 절차의 변화만을 개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개혁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개혁이 개혁이기 위해서는 충분조건, 곧 그 변화가 국민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충족시킬 것이 요구된다. 달리 표현해 이 사회의 이른바 ‘일반이해’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이해’란 곧 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이해를 말하는 것이다. 공화국의 정체(政體)를 취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이러한 이해는 곧 실질적이며 내용적인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주권자인 민중의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부단히 신장시키고 이를 위한 제도와 절차를 마련해 가는 일이다. 이런 한에 있어 민주적 권력이란 그 어떤 세습의 대상도 특정 계파나 계보끼리 나눠 먹을 대상도 아닌 원래의 주인인 민중의 자기 실현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부르주아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민주주의는―이미 권위로 따지자면 이 분야의 원조의 원조격인 루소 역시 갈파한 것처럼―그 누구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가난해서는 안 되며, 그 누구도 남의 노동력을 살 정도로 부유해서는 안 된다는, 곧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평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조건은 단지 당위적 요청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자기유지를 위한 사회적 대전제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사회적 노동의 결과인 부의 편재를 조절하고 또 이를 위해 부단히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평등은 민주주의의 외부에 있는 문제, 즉 하다가 힘이 남으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 안에 포함되어 있는, 그러므로 이에 관건을 이루는 문제이다. 특집:김영삼 정권의 ‘문민개혁’을 평가한다

김영삼 정권 1996 그리고 전망



어찌 보면 케케묵은 이야기로 들리는 따분한 원론을 이 자리에서 되새김하는 이유는 진정한 민주적 개혁이란 결코 권력 유지의 기술, 곧 정치공학의 문제도 또 역사적, 정치적으로 용도 폐기된 인물의 거세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개혁이란 ‘합리적 지배’의 기술을 혁신하는 것도, 지배엘리트간의 권력순환 절차를 매끄럽게 하는 것도, 정치의 전문화 혹은 전문가 정치도 아니며, 나아가 특정집단, 재벌에게 사회적 노동의 결과물인 부를 몰아주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2. 김영삼정권 3년

그렇다면 집권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YS정권의 궤적을 간략하게 나마 훑어 보자. 다양한 시기구분법이 있겠지만 크게 보아 그것은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첫째, 전기는 집권후 1년까지, 즉 정치관계법이 개정된 94년 3월까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 93년 8월의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 대한 개혁과 사정의 칼날이 살아 있었던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개혁’ 기간이었다. 특히 지배블록 내 이른바 TK분파에 대한 사정은 심지어 고교생 인기투표에까지 반영될 정도로 대중의 시선을 정치스타 일인에게 붙박아 두었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파워 엘리트와 그 주변에 포진한 ‘하사관’들의 기획력도 돋보였다. 그리고 금융실명제는 한편으로 국가의 재정기반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당시까지의 권력과 독점자본의 유착을 위태롭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울러 정권 내 ‘약간 진보적’ 인물, 곧 온건­리버럴에 의해 주도된 새로운 대북 시선 역시 어느 정도의 선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의 전개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민중민주세력의 경우 반성문과 전향문 러시 속에서 그 일각이 와해되는 해체의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은 이미 그 내부에 모순의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먼저 정치적으로 사실상 지역간 연정, 즉 TK+PK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탓에 정권 핵심의 의회기반이 불안정했고, 독자적인 정책적, 이념적 기초의 부족분을 기존의 민민운동세력의 일부를 통해 수혈 받고 있었던 까닭에 이들 신진과 구엘리트 사이의 정서 및 지향상의 이질성을 봉합해야 할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신보수­신자유주의적 재벌정책은 재벌구조가 아니라 재벌오너에 약간의 위신상의 생채기만을 내었을 뿐 그것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 아니라 실재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결국 정권안정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TK를 하위동맹자로 재포섭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파워블록의 무너진 부위를 땜질하는 단기적 이득을 가져다 주었을지 몰라도, 중기적으로는 인물교체라는 개혁의 한 성과를 훼손하여 오히려 정권의 대중적 기반을 스스로 잠식하는 손실을 입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구세력의 숨통을 열어 준다는 것은 동시에 그나마 개혁적이었던 자기 진영 내 일부 개혁적 인물을 방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허약한 YS정권의 인물풀(pool)로 봐서 이는 적지 않은 손실이었다. 수구보수세력의 재포섭과 대북정책의 방향상실이 괘를 같이하는 것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경제개혁의 내용과 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어미 먹는 살모사처럼 국가권력과의 유착에 의해 성장한 재벌이 권력을 잡을 만큼 비대해진 상황에서, 금융실명제에 대한 재벌의 불만과 비판에 대해 이른바 개혁정권은 ‘독대’를 통해 달래기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의 ‘본심’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YS정권 경제개혁의 내용은 친자본이고 그 방향은 신보수임이 재확인된다. 이는 YS가 노동자후보가 아니었던 한에 있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즉 YS는 혹 노동자라는 직업을 가진 ‘시민’에 의해 당선되었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투표에 의해 당선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시기, 곧 YS정권의 후기는 94년 3월 이후 지금에 이르는 탈개혁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사건사적으로 개혁의 퇴조와 함께 찾아 든 94년 하반기부터의 아현동­성수대교­삼풍의 대형사고와 95년 6.27 지자체 선거, 10월 ‘비자금­5.18정국’의 전개, 11월 노태우 구속, 12월의 전두환 구속, 96년 4.11 총선, 5.9. 노개위, 8월 한총련사태와 그 뒤를 이은 잠수함정국과 일련의 독직사건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기이다.
먼저 정치적으로 YS정권의 후기는 95년의 6.27 지자체 선거가 집권여당의 참패로 귀결된 이후 뚜렷한 탈개혁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지자체 선거 이후 JP를 수장으로 한 수구보수세력은 무엇보다 ‘자력으로’ 정계복귀에 성공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DJ 역시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당시까지의 수렴청정을 청산하고 정계에 재진입한다. 이로써 한국정치에는 다시금 지역분할구도가 오히려 3당합당 이전보다 더욱 공고하게 안착된다. 이러한 3김에 의한 정치기반의 분점구조는 YS정권에게 전국적 헤게모니의 사실상의 상실을 가져다 주었고, 따라서 지역 근거지의 방어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이는 달리 표현해 지배블록 전체의 입장에서 일종의 ‘Three Nations’구도가 관철되었음을 의미한다. ‘Two Nations’전략이 신보수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영국 새처정권의 의도적 선택이었다면, 한국의 ‘Three Nations’전략은 현 정권주체에 의해 의도되지 않은, 곧 정치적 역관계에 의해 강제된 신보수주의 관철의 한국정치적 기반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정세에서 전국적 헤게모니를 재탈환하기 위해서는 민중부문과 전략적 혹은 전술적 제휴를 도모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지역기반이라도 공고히 하면서 다른 지역의 정치엘리트간의 정치게임을 통해 정국을 관리하는 대안이 가능하다. 물론 YS의 경우 후자를 선택한다. 따라서 민중부문에 대해서는 배제전략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화된다. 그리고 붕괴된 전국적 헤게모니를 ‘세계화’라는 추상적인 정치수사를 통해 보전하고자 시도한다.
분명 세계경제의 현 단계에서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의 일반적 운동경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구호만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이미 초국적 거대자본으로 성장한 한국의 독점재벌의 이해가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관철되는 정치적 명분 이상은 아니었다. 즉 이로써 한편으로 정치영역에서의 YS 단일 헤게모니의 와해와, 다른 한편으로 독점자본의 입지강화가 동시에 진행되게 된다. 이미 생산영역에서의 유연화 등 신경영전략을 통해 작업장 지배를 강화해 온 자본측은 ‘세계화’, ‘국제화’를 통해 자신들의 탈규제, 규제완화 그리고 민영화(즉 사유화) 요구를 용이하게 관철할 정치적 기초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자본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즉, ‘One Nation' 개념 하에 통합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사회의 ‘정치사상적 통일(?)’을 위한 동의의 확보를 위해 자본의 ‘긴 팔’로서 기능해 온 한국내 시민사회 내 이른바 ‘헤게모니 기구’, 특히 언론이 이 때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됨을 우리 모두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 헤게모니 하 전 사회의 ‘실질적 포섭’이 완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운동 내 장애세력을 정지 혹은 배제하고 노자관계의 새로운 틀거리를 마련할 것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95년 11월 새로이 출범한 민주노총을, 그 정치화된 민주노조운동 내 일각을 법적으로 거세한 바탕에서 체제 내에 통합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3. 정세전망

이러한 흐름 속에서 96년 하반기 정세는 한편으로 ‘경제위기론’이 시민사회영역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한총련­잠수함 정국으로 이어지는 부문별 파쇼화 징후 속에서 지배엘리트 내 수구보수의 활성화가 더욱 두드러지는 국면이었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면’ 일단 이러한 경향은 관성 운동을 지속해 갈 것이다. 특히 향후 97년 정세와 관련해 이러한 전망을 강화시키는 경향으로는 다른 무엇보다 첫째, 계속되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격화로 인한 자본의 이윤률의 불안정을 들 수 있다. 이로써 자본의 대노동, 대국가 공세는 지속될 것이다. 아울러 II기를 맞이한 클린턴정권으로부터의 통상압력은 가중될 것이고, 이로부터의 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 측의 노조무력화 시도는 이윤률 안정화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경기전망 속에서 자본으로서도 나눠줄 몫 자체가 세계경제에 의해 구조적으로 제약되어 있는 한, 대노동 협상의 물적 기초는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 둘째 북한변수를 들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의 일정한 불안정과 동요가 지속되는 한 이는 한국 내 보수강경파의 입지를 계속적으로 강화시켜 줄 전망이다. 그리고 이는 YS정권의 초기 ‘위로부터의 개혁’ 국면에서 자신의 존재적 위기를 경험한 이들로서는 분명 남북한간의 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긴장관계 유지 여부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미 사회의 민주적 통제로부터 자립화하여 자신들만의 구조와 논리를 갖고 있는 이들로서 사실 ‘국가안보’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이미 반 세기 가량의 분단체제의 지속은 남북한 모두에 통일보다는 현상의 유지에 더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완고한 구조와 집단을 양산해 낸 것이다. 이들은 각각 ‘적화통일’과 ‘흡수통일’을 명분으로 부단히 자기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안보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이해관계에 있어 언제나 일치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안보상황이 자본전체의 이해를 명백히 위협하지 않는 한, 그리고 이미 ‘지구적 자본’으로 움직이고 있는 한국의 자본으로서는 안보논리에 의한 남북한 경제협력의 불안정은 반갑지만은 않은 오히려 피곤한 일임에 분명하다. 물론 남북한 교역량의 현 수준으로 보아 ‘무시할 수 있는 양’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안보 내지 정치논리에 의해 자신들의 경제논리가 침해 당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런 각도에서만 볼 때 역설적이게도 남한 자본의 대북 진출이 일정한 양, 곧 자신의 이윤율의 증감에 유의미할 정도에 도달할 경우 이는 남북한 긴장격화에 억지적인 기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치논리로 볼 때 아직까지는 남북한간의 적정수준의 긴장유지와 또 그것의 관리는 여전히 효과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지배유지의 조건임에 분명하고, 또 그런 한에 있어 북한변수는 한국정치의 상수적 조건이라 하겠다.
셋째, 이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한국정치의 보수적 구조를 들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YS정권 후기의 정치구조는 보수적 지역분할구도의 부활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다. YS의 ‘승부이데올로기’. DJ의 집권노욕 그리고 JP의 동물적 기회주의는 상호경쟁의 상승효과를 통해 건전한(?) 자본주의 정치시장의 형성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신념이나 당증보다는 호적이, 정책보다는 각종의 ‘김심’이 우선하는 한국정치의 기형화를 가져다 주었다. 실로 ‘김심’은 이념에 선행한다. 이러한 놀라운 한국정치의 전근대적, 아니 근대망각적, 호적정치적 자연주의는 보수 양김 대 나머지 한 김의 ‘상대적 진보’의 단계를 이미 오래전에 졸업하고 최근에 와서는 일제히 우측깜빡이만 켜고 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구도에서 볼 때 이미 구조화된 3김정치는 향후에도 마치 사람이 두 눈으로 보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부르주아정치의 좌우균형마저 위태롭게 하면서 신보수화 경쟁에 몰입하게 될 전망이다. 이들의 권력정치적 기회주의 감각을 작동시킬 만큼 위력적인 민중부문의 활성화가 없는 한, 이 경쟁은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면에 이러한 경향에 길항적으로 작용하는 반경향 역시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다. 한국정치사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역행하면서 현실정치에서 살아 남은 인물이나 집단은 존재한 적이 없는 만큼 이 요인은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단 미국의 기본구도가 북미접촉을 확대시켜 북한을 이른바 ‘국제사회’로 유인․편입시켜, 이 과정에서 북한이 혹 자발적으로 붕괴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현상을 유지해 가는 데에 있다고 할 때, 좌든 우든 현상변경을 요구하거나 특히 필요이상으로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긴장격화는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경우 남북한 공히 강경파의 입김을 일정수준에서 견제하고 억제할 필요가 생긴다. 물론 이 말이 한국 내 강경보수파의 국내용 안보논리에마저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둘째, 북한의 돌출행동이 부재하고, 미국이 남북한간 현 수준에서의 긴장유지와 혹은 긴장완화에 관심이 있고, 자본 측의 무리수가 계속되는 조건에서 역시 결정적인 것은 한국 내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세력의 실력이다. 특히 노개위문제가 정부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노동운동의 단일대오 형성이 가능해졌고 또 결의수준 역시 현재로서는 상승곡선을 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분명한 것은 이 국면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의 민주적 노동운동 그리고 사회운동의 미래의 상당 부분이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4. 맺는 말

1996년 한국정치는 한편으로 정치영역에서의 신보수적 다극화, 다른 한편으로 자본의 권력강화 경향의 지속과 가속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속에서 특히 정치화된 민중부문에 대한 국가의 억압은 현저히 가중되어 왔고, 그렇지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좌우간의 지그재그를 그리면서도 완만하게나마 성장해 왔다. 그리고 현재 운동은 불리한 객관정세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가르게 될 큰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서 YS가 노동자후보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야당 다수파 역시 ‘경제의 편’에 서 있다. 다시 말해 일견 노동편도 자본편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쪽이 권력장악에 좀더 유리한가를 판단하기 위해 그렇게 고뇌할 것까지는 없어 보인다. 노선상 신보수 경쟁에 이미 진입해 있고, 야당 다수파 자신이 바로 실제 자본가이거나 ‘관념적’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사회 영역 역시 자본의 언론이 유포한 ‘경제위기 담론’에 발목이 잡혀 있고, 또 노동자까지를 포함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중산층에 이러한 담론은 상당히 위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할 때 상황의 돌파는 결국 노동력, 곧 노동의 힘의 강도에 달려 있다.
1997년 정세의 핵심이 대선에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노자 양측 모두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점이며, 나아가 현 정권으로서는 가히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여기서 갈등적일 수밖에 없는 노자관계에서 노동이 자본의 논리에 대한 구조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정치의 논리뿐이다. 장기전에서는 시간을 자기 편으로 하는 자가 언제나 유리하다면, 현재의 노자대립 국면 다음에 대선국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언제나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의 정치력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노/정/연

1996-1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