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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저항을 예고한 미국의 ’96 대선

현장에서 미래를  제16호
채만수

평온했지만 음산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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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연구소 부소장)

지난 11월 5일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 및 상⋅하 의원 선거의 결과가 드러난 다음날, 영국에 본부를 둔 한 인터넷 신문(Electronic Telegraph, 7 Nov., '96)은 “똑같은 옛 시절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 하에 아래와 같은 구절로 시작되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인들은 어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아무것도 실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들은 안도하는 듯했다.”

부연 설명의 필요 없이, 전전날의 선거가 ‘백악관은 클린턴(민주당) 지배, 의회는 공화당 지배’라는 선거 전의 정치 구도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도 초래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즉 미국인들은 정말 안도했을까?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일까? 혹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인가?
드러난 결과를 겉으로만 본다면, 확실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또 당장 무언가가 달라지리라는 징후를 읽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엔비시 뉴스(NBC News)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60%가 (클린턴과 돌 중에서) 누가 당선되든 어떤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Challenge, Nov.13, '96)는 보도에서 보는 것처럼, 선거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났더라도 우리는 똑같은 얘기를 했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누가 당선되든 어떤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결코 안도의 표현도, 변화가 없으리란 보증도 아니다. 그것은 ‘공화­민주당’이라는 차별 없는 부르주아 양당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과 염증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민중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으나 아직은 명확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말하자면 극히 소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저항 의식의 표현이다.정세초점

평온했지만 음산한 승리



클린턴은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으로서는 루즈벨트(FranklinD.Roosevelt;1882~1945) 이후 처음으로 재선을 기록했지만,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49%로서 1924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대통령 선거 운동에 공식적으로만도 8억 달러(약 6,640억 원)를 썼고, 이번 선거에 실제로는 거의 20억 달러(약 1조 6,600억 원, People's Weekly World, Nov.9, '96)라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돈을 썼지만, 1억 8천여 만 명의 유권자 가운데 9천만 명 이상이 “선거라는 속임수에 ‘No’라고 외친 것”(“90 million say ‘No' to election scam”, Challenge, Nov.13, '96)이다.
부르주아 정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묵수(黙隨)하는 소수를 제외한다면, 이번 선거에 대한 노동자들의 대응은 크게 세 개의 경향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는, (적극적이고 대항적인 전술로서의 목적의식적⋅조직적 ‘보이콧’이 아닌) 극히 개별적이고 소극적인 ‘보이콧’으로서의 기권으로서, 유권자 중 기권자로 기록되는 51%의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차별 없는 부르주아 양당 정치에 대한 깊은 실망과 염증의 표현이면서도, 적극화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는 저항의 표현이다. 따라서 이들의 실망과 염증을 적극적인 노동자 계급 의식으로 전환시키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미국의 노동자 계급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정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별성을 전제한 위에서 “극우(extreme right) 파시즘(fascism) 공화당의 집권을 저지하자”며 직간접적으로 민주당(클린턴) 지지를 공언하고 권유하는 입장이다. 이는 지난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민주당 루즈벨트에 대한 지지 이래로 미국 노동자 계급 주류의 일종의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으로서, 이번 선거에서는 AFL-CIO(미국노동총동맹 산업별회의, 의장:John Sweeney) 및 미국공산당(CommunistPartyofAmerica)의 입장이 이에 속한다. 이번 선거에서 AFL-CIO는 극우 공화당의 집권 저지를 위한 “노동 '96”(Labor '96)이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신문, 라디오, TV 광고 등에 약 3천5백만 달러(약 290억 5천만 원)의 자금을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People's Weekly World, Nov.9, '96).
세 번째는, 공화당과 민주당을 모두 자본가 계급당의 두 파벌로 규정․비판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입장인데, 노동자세상당(Workers World Party)이나 새로운 미국을 위한 혁명가 동맹(League of Revolutionaries for New America) 등 몇몇 정치단체들과 유명한 환경운동가인 랠프 네이더(Ralph Nader)를 지지한 환경론자들의 입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들의 입장은 기권한 유권자들의 소극적 저항의식을 적극화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위 두 번째의 입장은 ‘차악(次惡;the lesser of the evils)을 선택하자’는 것에 불과하고 ‘결국 미국의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자본가 계급에 예속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노동자 혹은 민중은 자기 자신의 당(their own party)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민주 양당 지배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아직은 소극적이거나 소수자에 의한 저항에 불과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일종의 ‘비판적 지지’(?)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민중 진영 내부에서 어느 때보다도 설득력을 상실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심화되고 있는 빈부 격차나 계속 악화되고 있는 고용 및 소득 조건에 대한 미국의 노동자 계급의 저항이자 지난 4년간의 클린턴 정권의 통치에 대한 일종의 평가인 셈이다.
실제로 클린턴 정권은 지난 4년 동안 과거 공화당의 레이건­부시 정권 때의 그것과 사실상 다름 없는 ‘보수주의적 정책’과 노동자 계급과 빈민 및 소수 민족에 대한 공격으로 일관하였다. 미국의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는 공화­민주 양당간에 ‘광범한 전략상의 연합’(People's Tribune, November '96)이 이루어져 왔음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아이티(Haiti), 이라크, 리비아, 쿠바 등에 대한 제국주의적인 침략과 봉쇄를 강화했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및 WTO(세계무역기구) 등 ‘자유 무역’ 체제의 정비, 국방 예산의 증액에도 불구한 ‘예산 적자 해소’라는 명분 하의 사회 보장 제도에 대한 공격 및 파괴의 강화, 노동자 임금 및 수당의 억제⋅삭감, 기계에 의한 노동력의 대체, 사회적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조치로서의 경찰 및 감옥의 증원⋅증설과 정치적 자유의 제한 등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클린턴과 민주당 측은, 94년의 중간 선거 이후에 공화당의 의회 지배로 ‘보수주의적 정책’을 강요 받았다고 변명하지만, 최저 임금의 인상이 이루어진 것은 오히려 공화당의 의회 지배 이후이다. 또 지난 해 말에는 96년도 예산 규모를 둘러싸고 공화당 지배 의회와 백악관 간에 대립이 발생함으로써 연방 정부 기능의 일부―군대⋅경찰⋅감옥 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지배 기능은 유지된 채 관리⋅행정적인 성격을 띠는 기능―가 두 차례에 걸쳐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지만, 이 때도 그 대립은 사소한 전술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었고 또 금년의 선거를 의식한 과장된 대립이었을 뿐, “사회 복지 지출의 삭감을 통한 예산 균형의 달성”이라는 근본적 방침에 두 당이 의견을 달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복지개혁법이라는 반사회복지법의 입법이나 이민 억제를 위한 반이민법 등의 입법이 모두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의 공화­민주 양당 협조의 ‘실적’이다.
양당 협조에 의한 보수주의의 강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데, 이는 선거 후의 첫 번째 기자 회견에서 클린턴이 ‘공화­민주’ 양당의 단합(unity)을 호소하고(ET, 7 Nov. '96), 이를 받아 공화당이 “클린턴과 함께 일할 용의”(willing to work with Clinton)가 있음을 표명한 데에서도 드러난다(GNN-Reuter, Nov. 9, '96). 97 회계 연도의 연방 예산을 확정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고소득에 대한 세금 감면의 확대, 국방예산 및 경찰과 감옥 등을 증원⋅증설하기 위한 예산의 증액, 사회 보장⋅복지 예산의 삭감이라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양당간에 암묵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다.
공화­민주 양당으로 대표되는 미 지배 계급의 이러한 전략적인 연합은 그들에게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성의 문제’(necessity, not an option;PT, Nov. '96)이다. NAFTA나 WTO로 상징되는 ‘세계화 시대’, 즉 자본 과잉과 자본간 경쟁의 격화의 시대에 미국의 대자본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전략으로서, 사회 보장 등에 대한 공격과 실업의 증대를 통해서 미국민의 생활 수준을 낮춤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미국 자본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자본의 이러한 전략은 물론 자본주의의 거의 전체 시기를 통해서 추구되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두 가지의 사정으로 그것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세계적인 규모에서의 자본의 절대적 과잉이다. 이는 한편에서는 국제 시장에서 하루 1조 달러 이상이라는 규모로의 자본의 투기적 활동의 강화를 통해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간의 경쟁의 격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자본간의 이러한 경쟁의 격화는 물론 국가간 혹은 국적을 달리하는 자본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국가 내에서도, 같은 국적의 자본간에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정치에도 자본간 분파의 대립으로 반영된다. 그리고 이는 클린턴 행정부와 공화당 지배의 의회간의 전략적 협조에도 불구하고 이들간에는 끊임없는 대립⋅항쟁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하여 밥 돌에 대한 클린턴의 압도적인 승리가 클린턴 2기 4년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님을 의미하고, 이른바 ‘클린턴의 불법적 정치 자금에 대한 청문회’ 개최 다짐 등 공화당은 벌써부터 그러한 투쟁의 불씨를 놓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그러나 그 위력에서 극히 중대한 힘으로 들어야 하는 것은 과학 기술 혁명의 진행과 그 성과의 자본주의적 이용이다. 즉, 과학 기술 혁명의 성과의 자본주의적 이용은 한편에서는 자본간의 경쟁을 격화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갈수록 더욱더 커다란 규모로 노동자 계급의 일부를 항상적인 실업으로 몰아가는 생산력의 기초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기업이나 행정부와 의회 등 국가 기구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간의 이러한 모순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는, 즉 새로운 생산력을 체득한 자본의 요구를 집행하는 도구인 것이다.
따라서, 그 역시 독점 대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클린턴 민주당을 통해서 공화당의 극우 파시즘을 제어하겠다는 방침은 주관적인 것일 뿐이다. 미국 유권자의 60%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처럼, ‘누가 당선되든’ 국가와 자본의 보수주의적 드라이브,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공격은 생산력과 생산 관계간의 모순이 극에 달해서 그 통일이 파열될 때까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과 세계)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과학 기술 혁명이 더욱 가속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그 모순도 가속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것이고, 이에 따라 자본에 의한 노동력의 축출과 국가에 의한 사회 보장에 대한 공격도 가속적으로 격화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저항도 가속적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더구나, 클린턴의 돌에 대한 압도적 승리의 배경에는 현 시기 미국 자본주의의 호황이 놓여 있어서 클린턴은 스스로를 ‘경제를 일으킨 대통령’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 주가의 유례 없는 폭등 등을 볼 때호황 국면이 상당 기간 진행된 후에 나타나는 주식 가격의 폭등은 호황 국면이 막바지에 이르러 생산의 격중과 그에 따른 상품 및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의 격화로 이윤율이 극히 낮아져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공황 즉 생산의 전반적인 축소가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한 징조이다.
지금의 미국의 호황은 그 막바지 국면에 있는 것이어서 조만간 공황이 엄습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21세기로의 문지방에 걸려 있는 클린턴 정권 2기는 자본가 계급 내부의 경쟁⋅대립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대인 것이다.
미국의 대선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문, 라디오, TV 등의 대중 매체를 동원한 부르주아 금권 선거의 의미와 위력, 그리고 한계이다.
부르주아 정당들이 이번 선거에 쓴 선거 자금의 규모는 8억 달러에서 20억 달러까지의 넓은 폭 중에서 어느 지점인데, 그 곳이 어디이든 그 돈은 어마어마한 규모이고, 그 돈은 (물론 곧바로 그들의 금고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거의 전액이 독점 대부르주아지의 금고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의 위력으로 미국의 독점 자본은 여전히 공화­민주 양당 체제를 굳건하게 유지한 것인데, 말하자면 미국의 독점 부르주아지는 선거 자금의 공급을 통해서 미국의 정치가들을, 아니 정치 기구 자체를 매수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의 요구대로 선거의 결과를 매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양당 중 어느 한쪽이 노동자 계급을 위시한 민중의 이익을 추구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주관적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 부르주아 후보들의 대중매체 장악으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회 보장의 강화라든가 고용 안정, 임금 인상, 제국주의적 침략 및 봉쇄 정책의 폐기 등, 민중적 요구는 쟁점으로도 되지 못하거나, 반이민 선전처럼 파시즘을 선동하는 데에 역이용되었다.
신문, 라디오, TV 등이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는 것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부르주아적 선거의 본질 혹은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대중 매체의 위력도 한계를 드러내서, 비록 소극적이고 비조직적인 것이지만, 대중 속에서 갈수록 늘어나는 저항을 제어할 수는 없었다. 대대적인 자금의 동원과 선전 공세에도 불구하고 49%라는 극히 낮은 투표율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투표를 거부한 51%의 10%가 노동자 계급의 적극적인 정치 의식으로 무장되고 조직될 때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분명 새로운 역사를 열어 갈 것이다. 한/노/정/연

1996-1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2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