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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을 가동시키는 이런 사람이 되자
 너부리의 다른 눈으로 보는 세상

현장에서 미래를  제119호
너부리


명명의 정치학: “피곤한 여자”?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또박또한 말한다는 것은 “피곤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 때 “피곤한 여자”란 주로 남성들이 “하사”해주는 명칭이다. 여성 자신이 “피곤하다”라고 말할 때의 의미와, “쟤는 참 피곤한 여자”하고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의미는 전혀 다른 뜻이다.
자신의 요구와 상황을 또박또박 표현하는 여자에게 사회는 “피곤한 여자”라고 낙인찍는다. 이 사회는 또박또박 말하는 여성들을, 즉 고분고분하지 않은(즉 억압을 억압으로 인지하는) 여성들을 원하지 않으며, 가능한 한 확실하게 주변화하려 한다. “피곤한 여자”라는 딱지는 여성들을 주변화하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한 방식들 중 하나다. 이것은 또한 여성(노동)착취의 방식이자 매우 효과적인 여성 순치기제이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다. 아버지에서 남편, 아들로 이어지는 남성들의 품을 전전하며, “요구하기보다는 간청”(하라는 지배자들이, 남성들이 피지배자들에게 여성들에게 써온 수법이었다)하면서, 여성억압을 ‘팔자'로 받아들이면서(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와 남성지배가 여성들에게 원하는 인식) 안온하게 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여성으로서 인간됨을, 여성으로서 삶을 온전하게 살겠다는 의지와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할 노력의 표현이자 결단이기 때문에 피곤하다.
결국 여성은, 자신을 착취하면서도 여성들의 요구와 비판으로 “피곤”하게 되길 원치 않는 남성지배 사회에 “피곤”을 몰고 오는 골치거리troube-maker의 삶을 살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 살기 어렵다. 온전하게 살기는live wholly 더 어렵다. 가부장적 남성지배가 여성들 자신 안에도 내장시키는 여성혐오증과 싸우면서 여성으로서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따로 또 함께 치유해야 한다. 물질적인 자원들, 환경들뿐만 아니라 정서적affective, 정신적spiritual 안녕을 개별적으로 동시에 집단적으로 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남성중심적인 진보단체들, 노동운동 단체들에서 여성활동가들이 여성문제(즉 남성문제)를 제기했다가 (사실 제기하려고 사전준비하다가) 이내 “젠더피로감”에 빠지는 현상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여성활동가들이 보이는 “젠더 피로감”은 자칭 진보단체들, 노동운동의 주체가 오로지 남성일 뿐이라는 점을 다시 분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남성문제(여성/젠더문제라고들 불리는)를 거론하면 다들 피곤해 한다.
여성으로서 말하는 여성활동가들을 “피곤한 여자”로 맹글어 침묵하도록 강요하고 그리하여 여성으로서 문제제기하는 것에 여성 스스로가 피로를 느끼도록 적극적으로 조작하면서 무슨 진보, 운동, 변혁을 한단 말인가? 또한, ‘조직보위’의 논리와 당위를 앞세워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사전 차단하거나 제기 후에는 ‘짜증’ 혹은 일관된 무시로만 반응[알고 보면 배설]하는 행위는 심히 문제적이며, 이런 작태에 여성혐오증을 내면화한 여성활동가들 역시 적극적으로 공모한다. 내부에서 억압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묵인, 공모, 공고화하면서 세상 해방을 외치는 자들은 결코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진보진영, 노동운동 내에서도 여성의 주체되기는 여성들 자신뿐 아니라 진보/변혁진영의 생존의 문제이며, 사소한 것에 민감해지는 것이야말로 정치이다. “피곤한 여자가 되지 말라”는 것은 남성지배의 유혹이자 협박이며 순치기제라는 점에서, “피곤한 여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페미니즘적 변혁 정치의 출발점이다.

진보진영의 정치적 무의식: 여성혐오증

남성문제를 여성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피곤한 여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생산하는 가장 우려할만한 효과는 바로 여성들 안에도 내장되는 여성혐오증이다. 여성혐오증을 여성들에게도 내장시키는 지배구조는 이러한 사회적 억압과 착취(“피곤한 여자”라고 낙인찍기)를 개인-여성(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 탓으로 돌린다. 다른 한편, 우리 안에 내장된 여성혐오증은 우리 자신이 “피곤한 여자”가 될까봐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단속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자면, 가부장제와 남성지배는 여성혐오증을 여남 모두에게 내장시켜야만 유지될 수 있다.
여성 총리 1호 한명숙 총리를 둘러싸고 보이는 일부 노동지상주의적 진보진영 여성들의 양가적 반응은 정확하게 노동/계급 우위성이라는 교조(노동/계급 개념은 근본적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에 대한 맹신과 여성들 안에 내장된 여성혐오증이 묘하고도 강력하게 합병증세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운동 출신이, 민주화 운동 출신이 노동부 장관이나 철도공사 사장, 국무총리가 된다고 자본주의 현실이 쉽사리 바뀌던가. 한명숙 총리에게 들이대는 질문을 바꾸어 보라. 좌파 운동에 투신했던 어떤 남성이 지배계급에 픽업되어 국무총리가 된다고 신자유주의 현실이 달라질까?
왜 유독 한명숙 총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신자유주의 자본의 공세와만 연결하여 일이 진전되기도 전에 비관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폄훼하려 하는가? 한명숙 총리임명 ‘사건’(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사건’이다)에 대해서 왜 여성(활동가)들의 반응이 더 폄훼적이고 양가적인가? (이것이야말로 여성들 사이를 이간질하며, 노동/계급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가부장제, 남성지배의 문제들을 가리는 지배의 영악한 수법/효과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성 총리 1호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라면, 몇 백 년이 채 안되는 자본주의적 억압의 역사와, 몇 천 년이나 묵은 가부장제의 역사를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또한 한명숙 총리가 20세기 후반 한국 여성운동을 혼자서 다 대변하는 그런 인물은 아닌 것이다. 여성으로서 한명숙 총리와 여성운동 전체를 동일시하지 말라. 자본주의의 질곡 속에서 남성들과 함께 싸워오면서, 다른 한편 젠더당파성을 표방하고 나온 여성운동은 젠더 문제에서 노동운동과 갈라지는 지점들이 있으며, 한명숙 총리가 여성운동을 싸잡아 대변할 만큼 여성운동 진영이 단일한(monolithic) 것도 아니다.
여성해방을 향한 투쟁은 노동해방을 향한 투쟁보다 훨씬 더 장구했으며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젠더, 성별 권력관계란 가장 방대하면서도 가장 조밀한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사회 운동들과 (좌파) 정치적 기획(들의 연이은 실패)에서 우리가 반복해서 배운 점은 여성해방 없이는 인간해방도, 노동해방도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20세기 진보 운동들과 정치적 기획들에 팽배했던 남성우월주의와 남성중심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한 성차별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우월의식은 남성의 정치의식, 계급의식을 약화시킨다. 여성들 안에도 내장된 여성혐오증은 계급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은폐하고, 주체로서 여성들을 무력화시키는데 봉사한다. 그리고 지배세력은 이 모든 것을 영악하게 이용한다.
온통 남성노동자들의 결연한 표정들로만 가득 채워진 이번 2006년 노동절 포스터가 노동운동 진영의 무의식적 남성중심성을 여과 없이 또 드러내고 있듯이, 노동운동 내 너무나 만연해서 지각되지도 않는 정치적 무의식은 남성만을 노동자로 본다. 여성, 이주노동자 등은 노동자/노동운동-주체가 아니라는 암묵적인 그러나 너무나 강력한 배제. 작년부터 계속되는 비정규직 관련 투쟁이 보여주듯, 정규직 남성노동자가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여남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주류로서 남성지배(계급)의 욕망에 동일시할 때, 그런 노동운동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세기 후반의 역사가 보여준 바, 여성주의 시각이 없는 사회변화는 불완전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진보진영에서 무의식적 수준에서까지 강요되는 여성혐오증을 벗어나,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동료 여성들을 ‘여자’가 아니라 정치적 공동주체로 인식하고 정치적 공동주체로서 대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변혁 정치의 출발점이다.


멋진 변혁주의자가 되는 법

다음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덧붙인 것이다. 헬렌 그리에코의 <멋진 페미니스트가 되는 법>은 딱히 여성에게만 적용된다기보다는 ‘일상에서부터 변혁을 일구는 멋진 사람이 되는 법’으로 읽히고 활용될 수 있으리라.

* 성차별주의와 싸워라(Fight Sexism)
* 지금 행동하라(Do It Now)
* 여성과 정의와 자유를 향해 가라 (Say Yes To Female, To Justice, To Freedom)

* 나 자신을 사랑하자(Love Yourself)
* 다른 여성들을 사랑하라 (Love Other Wimmin)
* “아니오!”라고 말하라(Say No!)
* 화를 내라 (Get Angry)
* 적극적으로 행동하라(Get Active)
* 괴로워하지 말고 조직화하라(Don't Agonize, Organize)
* 인종차별, 계급차별, 연공서열주의, 동성애혐오, 외모지상주의, 장애인차별에 반대하는 투쟁하라(Fight Racism, Classism, Ageism, Homophobia, Sizism And Ableism)
* 고통과 고립을 줄여라(Lower Pain And Isolation)
* 의식을 고양시켜라(Raise Consciousness)
* 자기 존중감을 높혀라 (Raise Self Esteem)
* 전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하라(Avoid Burnout)
*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져라(Be Womyn-Identified)
* 안전한 공간들을 창출하라(Create Safety)
* 위험부담을 무릅쓰라(Take Risks)
* 우리의 힘으로 되찾자(Take Your Power Back)
* 지금 행동하라(Do It Now)

* 평등하게 살라(Live Equality)
*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라(Thank Yourself)
* 여성생존자들을 축복하라(Celebrate Wemen Survivors)
* 새로운 여성의 역사를 발명하라(Invent New Herstory)
* 신화를 산산이 부수어라(Shatter Myths)
* 개척자가 되라(Pioneer)
* 불꽃이 되라(Trail-blaze)
* 여성-여성의-우리-나-여성들을 발견하라(Discover She - Her - We - I - Women)

* 레즈비언들을 존중하라(Honor Lesbians)
* 힘과 권력을 갖는 것에 주저하지 말라(Say Yes To Power)
* 나의 몸을 사랑하자(Love Your Body)
*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꾸며라(Decorate Yourself Any Way You Like)
* 행복한 성교를 하라(Have Happy Sex)
* 완벽한 임신조절을 하라(Visualize Perfect Birth Control)
* 유산을 안전하고 법적이고 접근하기 쉽게 해라(Keep Abortion Safe, Legal And Accessible)
* 지금 당장 엄마를 도와라(Help A Mother Today)
* 모든 아이들이 혜택받는 환경을 만들어라(Make Every Child A Funded Child)
* 세상을 반역하는 비혼여성을 칭찬하라(Praise Rebel Spinsters)

* 지금 행동하라(Do It Now)
* 여성운동을 하라(Be A Women's Movement)
* 투표하라(Vote)
* 행진하라(March)
* 부당한 일에 여성으로서 저항하라(Girlcott)
* 로비하라(Lobby)

* 항의편지를 쓰라(Write Letters)
* 진보적인 여성을 찍어라(Elect Progressive Women)
* 평등권을 수호하라(Win the ERA)
*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멈추라(Stop Violence Against Women)
* 모두를 위한 경제적 정의를 요구하라(Demand Economic Justice For All)
* 보다 많은 자금을 확보하려고 애쓰라(Say Yes To More Money)
* 재미를 증가시켜라(Fun-raise)
* 지옥을 증가시켜라(Raise Hell)
* 지금 그것을 해라(Do It Now)

* 우리의 어머니 지구를 소중히 해라(Cherish Your Mother Earth)
* 반전주의자가 되라(Be Anti-War)
* 억압을 해방시켜라(Liberate Oppression)
* 인간적인 조직질서를 생각하라(Think Humanarchy)
* 남성과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라(Make Peace With Men)
* 세상을 움직이고 뒤흔드는 사람이 되라(Be A Mover And A Shaker)
* 고분고분하지 않은 소녀들을 지지하라(Support Bad Girls)
* 여성주의 정치조직에 결합하라(Join A Feminist Political Organization)
* 자원활동가가 되라(Volunteer)
* 사랑을 나누라(Give Love)
* 자금을 나누라(Give Money)
* 강력해져라(Get Powerful)
* 존경을 주고 받으라(Get Respect)
* 나 자신을 치유하자(Heal Yourself)
* 세상을 치유하라(Heal The World)
* 멋진 기억들을 모아라(Collect Fabulous Memories)
* 이기기 위해 하라(Do It To Win!!)

2006-05-10 00:04:58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2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