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
현장에서 미래를 제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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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동향분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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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이재성(‘노동과 정치’ 연구팀\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첫 만남. 그 역사적인
「전국노동자대회」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왠지
허전했다. 그리고 한달이 휠씬 지난 이 시점에서 그 대회를
떠올리며 참관기를 쓰고있는 지금의 마음 또한 그리 밝지 않다.
우선 간단히 그 이유를 밝혀 놓고자 한다.
지난 1월 26일 여의도에서 양 노총의 공동 주최로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무효화와 민주적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외형상으로 이 대회는
총파업 투쟁의 정점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보여진다. 전면적
3단계 총파업의 열기(15일), 유연한 전술로의 전환(17일),
영수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일보후퇴(21일), 정치적 승리를
거둔 민주노총 지도부의 명동성당 철수(24일), 그리고 역사적인
「전국노동자대회」. 하지만 실질적으로 투쟁은
15일을 정점으로하여 급격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히
영수회담 이후는 노동법 재개정 가능성에 대해 노동계가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안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매우 답답해 하던 시기였다. 이것이 당시 대회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허전함의 이유이다.
그리고 지금은 온 나라가 한보사태와 황장엽 망명과 이한영
피격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휩싸여 있다. 한편
「전국노동자대회」 이후로 양 노총의 한차원
발전된 연대투쟁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고, 정치권은 노동법과
안기부법에 대한 무효화는커녕 반동적 우경화의 우려마져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2월 24일에서 28일 사이로 연기된 민주노총의 4단계 총파업
계획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현 정세가 그리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갑갑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여타
사회세력들을 이끌어가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시민권’을
획득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한국노총까지도 견인하여 양
노총 공동의 「전국노동자대회」를 이끌어 냈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회 자체의
‘역사성’이 힘찬 투쟁과 승리의 ‘현실성’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는 한배의 운명이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의도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식전행사가 진행중이었다. 양희은의 노래가
부드럽게 흘러나오면서 집회 분위기를 차분하면서도 흥겹게
만들고 있었다. 대회 준비 때부터 양 노총의 이질적인
집회문화를 조율하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대략
6만여명이 모였는데, 노동자들은 공동 집회에 어울리게 양
노총의 노동자들이 각 연맹 단위로 사이좋게 섞여서 앉아있었다.
무대를 마주하고 자리를 잡았다. “전면 무효화! 즉각
재개정!”이라는 커다란 구호가 쓰여진 중앙 무대는 이 대회의
요구와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대회 팜플렛 앞표지에
적혀있던 “천만노동자 총단결로 노동악법 분쇄하자”라는
구호와 양 노총 위원장의 손잡은 사진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민주노총의 이상현 조직국장과 한국노총의 정영숙 여성국장이
공동사회를 보면서 진행된 「전국노동자대회」는
개회선언과 깃발 입장, 노동의례, 내빈과 양 노총 지도부 및
참가조직 소개, 양 노총의 투쟁경과 보고, 양 노총 위원장의
대회사, 범대위와 국제단체의 연대사, 문화상징의식,
공동투쟁결의문 채택, 폐회선언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시작에
앞서 이상현 국장은 “동지여러분! 87년 7,8,9 투쟁이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다면, 97년 총파업 투쟁은
노동자들의 ‘정치선언’입니다.!”라고 크게 외쳐 지난
10여년간 싸워 온 투쟁의 역사를 새삼 떠올리게했다.
■ 투쟁경과 보고 : 민주노총에서는 김영대 부위원장이,
한국노총에서는 김성태 부위원장이 각 노총의 투쟁경과 보고를
하였다. 민주노총의 김영대 부위원장은 작년 총파업 시점부터
가열차게 진행된 투쟁을 소개한 뒤, “이번 총파업 투쟁은
민주노총의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 투쟁이었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에 성공한 투쟁이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앞으로 4단계 투쟁을 힘있게 벌여낼 것이지만 국민경제를
고려하면서 투쟁을 벌여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일단
정치적 승리를 얻었으나 법개정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면서
적극적인 투쟁을 위해 명동성당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 대회사 : 먼저 연단에 오른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번 투쟁을 통해 오만불손한 정권의 양보를 받아낸 양 노총
조합윈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이번 투쟁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자신감”이라고 역설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총파업
투쟁을 통해 우리는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투쟁할 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날치기
노동악법이 백지화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선에서 신한국당을
심판할 때까지 공동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이번 투쟁의 의미는 생존권 사수와 노동기본권 보호 및
민주주의 수호 투쟁임은 물론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
산별체제로의 전환, 대동단결과 통합, 국민적 지지를 받는
노동운동의 전개를 요구하는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면서 이제
투쟁의 성과물을 확실하게 제도적으로 쟁취하는 일이 남았으며,
투쟁의 성과물을 보수적인 여야 정치권의 당리당략과 자본에게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두번째로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사회를 맡은 한국노총 정영숙 국장이 ‘총파업 투쟁의
구심’이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권 위원장을 소개하자, 양
노총의 노동자들은 열렬히 환호성을 질렀다. 민주노총 이상현
국장이 “동지 여러분, 이 자리는 양 노총의
연대집회입니다.”라면서 자제를 부탁할 만큼 그 열기는
대단했다. 한국노총 노동자들도 총파업 투쟁을 중심적으로
이끌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 그리고 권영길위원장에
대한 지지와 격려, 연대감의 표시에 전혀 인색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 흐믓한 장면을 연출했다.
권 위원장은 ‘민주주의와, 노동자와, 통일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하겠다면서 “민주노총은 합법화에
연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과
고소고발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4단계 총파업을 앞당길 의사도 있”다고 밝히고 ‘교사,
공무원의 단결권과 제3자개입 금지의 철폐’를 강조했다. 또한
권 위원장은 대회사의 많은 부분을 재벌과 정권이 경제위기의
주범임을 비판하는 데에 할애 하였다. 권 위원장은 “여러분! 이
땅에 진정한 경제위기의 주범이 누구입니까!”라는 역설적인
질문에 “바로 재벌과 정권이 아닙니까!”라고 자답한 뒤,
“한보가 가져간 5조원이라는 돈은 우리 경제를 살리고
쓰러져가는 중소기업들을 살릴 수 있다”며 “1천만 노동자와
국민을 살리는 경제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더불어 우리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총력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대사 : 먼저 국제자유노련과 국제산별노련을 대표하여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의 빅투르 쏘웁 사무총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왜 국제연대인가’를 매우 호소력 있게 주장하여
노동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는데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국경이
없으며, 국제노동단체로서 한국정부가 국제 사회에 약속한 바를
지키는지 확인하려 한다.”면서 다국적 기업과 재벌이 노동법
개악의 주범인 만큼, 전세계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하자고
주장했다. 두번째 연대사에서 범대위 김상곤 교수는 매우
투쟁적인 어조로 연설해 노동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
교수는 이번 「전국노동자대회」가 한국노동운동사
100년만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임을 강조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을 역설했다.
간단한 문화상징의식이 양 노총의 단결과 투쟁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면서, 양 노총 노동자들은 공동투쟁결의문을
채택하고 대회를 마쳤다. 공동투쟁결의문의 중요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을 3월1일 이전에
민주적으로 개정할 것.
1. 법안의 민주적 개정에 노동계의 참여를 보장할 것.
1. 날치기에 대한 책임자를 문책할 것.
1. 국민저항권의 정당한 행사에 대한 징계위 회부, 무단결근
처리 등 탄압을 중단할 것.
‘연대’가 승리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회를 마치고 나니, 당분간 중요한 투쟁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공이 국회로 넘어간 걸까? 아니면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갖는 느낌일까?
거리에서의 투쟁이 없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전혀 싸우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이렇게 양노총 노동자들이
하루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정부에 얼마나 압력을 줄 수
있을까? 노동법을 ‘국제기준’에 맞추라는 요구는 올바른
것일까? ‘민주적’ 재개정이라는 것은 어떤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숙제로 남기면서 이번 대회의
의의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양 노총 최초의 연대투쟁이었다는 점이 이번 대회의
가장 커다란 의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민주노총의 ‘전면적인 총파업투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1월22일자 한국노총 ‘투쟁속보’에 ‘노동자가 하나임을
확인합시다.’라든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로
뭉칩시다.’, ‘우리는 한배의 운명이다.’라는 문구가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노총의 조직의 생존을 위한 일시적인
몸짓인지, 새롭게 태어나는 노력인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시기를 3년 동안 유보하는 등
한국노총의 조직보존 논리를 이용하면서 날치기 노동법안에 대한
투쟁을 최소화하려던 정부의 ‘노동계분할 통치전략’을
치명적으로 마비시키는데에 한국노총이 한 축을 형성해 간 것은
사실이다. 이런 연대투쟁의 범위와 깊이는 더욱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양 노총이 함께 공통의 투쟁 목표를 설정했다는
점이다. 양 노총은, 이번 대회의 공동투쟁결의문과 1월22일
발표된 양 노총의 ‘공동발표문’에 제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날치기 법안 전면 무효화와 3월1일 이전 개정, 개정과정에
노동계 참여, 구속자의 즉각 석방과 사법처리 철회, 기업차원의
탄압 금지, 노동계 단일안 (핵심:정리해고제 전면 백지화와
공무원, 교사를 포함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제한없는 결사의 자유
전면 보장) 만들기 등에 합의하고 함께 투쟁하기로 결의했다. 양
노총의 공동투쟁 목표는 그 내용에 있어 당리당략에 매인
기회주의적 야당에 의존하거나 그들에게 투쟁 성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이는 앞으로의
투쟁에서 두 노총 간에 다양한 이견들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합의된 원칙에 의거하여 그리고 노동자 투쟁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함께 싸워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이러한 공동투쟁이 양 노총 노동자들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가져온 의식의 변화이다.
이는 전체 총파업 투쟁이 가져다 줄 영향과 특별히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천만노동자 하나되어’가 구호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현실속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통해 확인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번 대회가 아니면 얻기 힘들었던 성과였다. 또한 그동안
‘불법’으로만 매도되었던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한국노총까지도 힘있게 견인해낸 것은, 노동운동에 관심이
없거나 부정적이던 노동자, 국민들에게 커다란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로서 민주노조운동은 노동법 개정투쟁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 많은 과제들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기반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대’를 바탕으로 힘찬 ‘투쟁’을.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각계 각층의 광범위한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발전하던 노동자 총파업 투쟁과 역사적인 양
노총의 공동투쟁은 그로부터 약 두달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신문지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 첫째 이유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전후로 소위 ‘대화국면’이
진행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양 노총의
공동투쟁은 치열한 총파업 투쟁 속에서 잉태되어, 투쟁국면의
전환이라는 시기에 배치되었고, 따라서
「전국노동자대회」이후의 강력한 연대투쟁이
전개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면 국면의 전환과 동시에 불거져
나온 한보사태의 파장과 황장엽의 귀순이라는 외부적 요인 또한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면서 2월 12일 민주노총은 2월 18일로
예정되었던 4단계 총파업을 24일-28일 사이로 재조정하게
되었다. 각 단위사업장에 대한 기업차원의 탄압이 계속되어가는
가운데 전국을 강타한 돌발변수들(특히 황장엽 사건)는 사회를
더욱 우경화 시키면서 노동악법은 물론이고 안기부법 개악에
대한 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총파업 투쟁이 끝나버렸다고 속단을 내릴
수는 없다.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양 노총이 확인한 바 대로,
날치기 노동법과 안기부법이 전혀 철회되지 않았을 뿐더러
단위사업장 차원의 집요한 탄압이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양 노총의 투쟁은 날치기 이후 각 노총의 독자적 총파업
국면에서, 양 노총의 연대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전 사회적
세력이 결합한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국면을 거쳐, 불리한 정세
속에서 연대를 기반으로한 자본과 정권의 심각한 반격에 대한
투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한겨레21」 145호 기사를 보면 “만약
노동자의 권익 수호를 위해서라면 내일이라도 당장 전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노동자의
힘’입니다.”라는 프랑스 노조지도자 블롱델의 말이 실려있다.
그의 자신에 찬 선언과는 달리 우리의 총파업 투쟁은 사회를
마비시키지 못한 채 ‘대화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회상하면, 그
대회가 가졌던 ‘역사적 의미’ 만큼의 ‘현실적 힘’이
부재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이 나를 블롱델의
기사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황장엽의 일련의 발언 - 5만의 간첩설, 안기부
강화론, 여당 강화론 등 - 을 접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투쟁의
국면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생각해 볼 때, 다시한번
「전국노동자대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모든 투쟁의 승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4단계 총파업이 강력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제2차, 3차의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고,
필요하다면 「전국노동자총파업」으로 사회를
마비시키면서, 마침내 이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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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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