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노동에 대한 편견을 걷자 |
현장에서 미래를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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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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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하 은희
96년도 통계에 의하면 한국여성의 수는 약 2,240만명이다. 이
2,240만명의 오늘의 삶은 과연 어떤 색깔을 띄고 있을까? 많은
남성들이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이야기하듯이 한국에는 이미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하여 오히려 남성운동이 필요한 단계인가?
사회운동에서나 지식인 남성들을 만났을 때나 전문가 집단과
토론을 할 때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은 한국 남성들은 한국
여성들의 현실과 문제에 대해 정말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극히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다져 일하고 있는 분들조차 여성문제에 관한 한 진정으로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고민한 흔적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문제가 여성문제에 이르면 그 순간 분위기는 갑자기
가벼워지고 주관적인 경험수준의 이야기로 격하되고 때로는 ‘또
여성권익의 문제인가? 지겹지도 않은가?’ 하는 눈초리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 논의를 조금만 진전시켜 보면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이 곧 들어나고 만다.
여기서는 여성노동 현실과 대안에 관한 논의를 예로 들어
보겠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 회의 중에 한 남성위원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여성노동자는 과보호 되어
왔고 이제는 세계적 경향에 따라 여성에 대한 과보호는 없애고
모성보호는 강화해야만 여성의 고용확대가 이루어지고
여성권익이 향상될 것이다” 말한 사람은 한 명이었으나 당시의
분위기로는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위원들이 이 발언에 대해
무언의 동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남성이
동의하는 바일 것 같다.
문제는 이 발언은 전혀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도 않고
수십년동안 세계여성운동이 쌓아왔던 논의들과 운동의 성과와
바람직한 여성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내용 등을
전부 무시한채 한국여성노동자를 비정규노동자로 활용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말들만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을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세계여성노동 이론과
운동의 결과를 알면서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이에 무지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모른다는 사실을
학자로서 전문가로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여성문제를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선 이 발언의 사실인식 문제를 몇가지로 나누어 보자.
첫째, 한국여성노동자는 과연 과보호되고 있는가?
둘째, 세계적 경향이 여성보호를 없애고 모성보호 만을
강화하는 것으로 여성노동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셋째, 여성보호 조항의 삭제와 모성보호 강화가 여성고용
확대를 가져오고 이것이 여성권익 향상에 기여하는가?
첫째 문제에 대해 한마디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여성노동자는 한 번도 과보호 된 적이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는 최소한도의 법적 보호 바깥에 있었다.
현재에도 노동자의 최소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은 5인이상 사업체에 한정되고 있다. 5인미만 사업장의
근기법 적용은 이번 노동법 개정 과정과 시행령 제정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의 62.7%가 5인 미만 사업체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고 있지 못하다.
시간외 근로시간의 제한, 야간근로의 제한 등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더구나 여성노동자는 임금과 승진 등에서 명백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95년 현재 48.3%이고, 이 여성들의 평균임금은
96년 통계에 의하면 남성평균임금의 60.3%에 불과하다. 이것이
과보호인가?
여성보호를 없애고 모성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의 시간외 근로제한을 없애고 유급 생리휴가를 없애고
산전산후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연장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여성보호조항이 없어지는 경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점은 두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이다. 첫째는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 이하로 되는 것과
둘째는 남녀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확대되어 특별히 여성노동자만
보호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이 향상된
경우이다. 요컨데 여성보호가 없어지는 것이라기 보다
남녀보호로 확대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유급생리휴가’ 문제는 여러 가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왜 유독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몇몇
나라에서만 있는 생리휴가를 요구하는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동양여성들의 신체조건과 서구여성들의
신체조건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한국여성의 25%가
생리시 실제로 일을 하기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급 생리휴가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 서서 일해야
하는 노동환경, 저임금, 그리고 기계를 쉬게 할 수 없는
생산라인에서 여성노동자로 하여금 생리시에도 쉴 수 없도록
유인하기 위하여 기업측의 필요에 의한 50% 가산임금의
지급이라는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들의 산물이다. 그런데 여성의
장시간 노동, 저임금, 노동환경의 변화 등이 별로 없는
현시점에서는 이를 변경시킬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아마도
주당 실제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어 주 2일의 휴일을 갖게
된다면, 그리고 남녀 임금 비율이 100 : 80 수준 정도로
향상되는 단계에 이르고 건강휴가 등이 남녀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시점에 이르면 유급 생리휴가는 무급 생리휴가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생리휴가는 여성보호의 의미보다는 모성보호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산전산후휴가를 60일에서 90일로
늘리는 것은 ILO 조약 제103호 모성보호에 관한 협약(1952년
채택)에서는 최소기준이 12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90일로
산전산후휴가를 늘리는 것은 뒤쳐져 있던 모성보호를 제자리에
놓는 수준이다. 그러나 다른나라의 경우 출산시 남편의
부성휴가(나라마다 다르지만 3일에서 일주일 정도)가 실시되고
있고 생후 1년까지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의 임금이 우리나라처럼
무급이 아니라 60%에서 90%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산전산후휴가를 90일로 늘리는 것만으로는
모성보호가 강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임신시의 정기검진 비용이 의료보호 혜택에서 제외되어 있고
검진일이 유급휴가로 처리되지 않는 것 등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출산을 사회적 기능으로 보기 보다는 개인적인 일 혹은 가족의
대 잇기 수준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문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자. 먼저 여성보호조항
삭제와 모성보호 강화는 여성고용 확대를 가져올 것인가?
여성보호조항 삭제는 여성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불완전고용 형태의 직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약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불법에서 적법으로 상황이 바뀌면 약간의 변화는
일어나겠지만 이미 불법적인 취업이 일반화된 현실에서 대폭적인
고용확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성보호 강화는
모성보호 비용의 사회부담화와 모성기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그리고 여성에 대한 법적 보호가
강화되지 않는 한 고용확대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형태의 고용확대가 여성노동자의
권익향상에 기여할 것인가에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북경세계여성회의 행동강령 등에서 합의된 여성노동자의 지위
향상을 위한 정책방향은 고용평등, 고용확대, 직업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삼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지 않으면 일하는 여성의
삶은 괴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고용평등이 무시된 고용확대
정책은 여성들을 2차 노동시장에 묶어두고 시간제, 파견직,
용역직, 임시직 노동자로 활용하면서 또다시 여성노동력을
저임노동력으로 이용하겠다는 정책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여성들을 분노케 하는 점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이 주장이
얼마나 여성들을 위한 것인가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수렴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여성노동에 대한 편견을 예로 들어 봤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문제를 논의하는 모든 현장에서
보여지는 일반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부터라도
우리나라 여성들의 절박한 현실과 문제제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과학적 접근을 통해 여성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 그럴 때 만이 우리들의 원하는
평등한 민주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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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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