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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철 게이트' 그 이후

현장에서 미래를  제20호
손호철

‘현철 게이트’, 그 이후

손호철(부소장)

그저 허탈하기만 하다. 온 나라가 한보사태와 ‘현철 게이트’로 떠들썩한 가운데 국회는 여,야 합의의 격식을 갖춘 상태에서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날치기 안과 복수노조의 허용이외에는 그리 다르지 않은 노동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안기부법 개악안은 재개정보다 못한 채 지나가고 말았다. 원래 보수야당이라는 것이 기대할 것이 없는 뻔한 존재였기에 그것은 그렇다치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뜨겁던 함성은 다 어디로 가고 무거운 침묵과 외면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했고’ 지난 1월의 파업유보 결정은 80년 5월 학생지도부의 서울역 회군 결정만큼이나 안타까운 엄청난 역사적 패착으로 기록될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을 연상케 했던 총파업의 열기가 식어버린 가운데 정국은 시네마스코프의 파노라마처럼 격변을 겪고 있다. 총파업으로 그로기상태에 빠진 김영삼 정권이 전술적 후퇴를 통해 시간을 벌었지만 채 숨을 가다듬기도 전에 터져나온 한보사태는 김 정권을 다시 한 번 회생불능의 위기로 몰고가는가 싶었다. 결국 이는 6․29 항복선언을 연상케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라는 형태의 항복선언으로 이어졌고, 이어 청와대 비서진과 안기부 개각 등 ‘인사개혁’에 따라 일단 현정권은 위기를 넘기고 국면전환에 성공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시 터져나온 ‘김현철 테이프’와 ‘현철 게이트’의 제 2막은 이 같은 국면전환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어 버렸고, 김 정권은 더 깊은 늪에 빠지고 말았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몰린 김영삼 대통령은 ‘현철 게이트’라는 위기를 정면돌파할 것을 결심하고 예상을 뒤엎고 이회창 신한국당 고문을 당 대표로 지명함으로써 정국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국을 움직일 두 가지 변수

단기적으로 향후 정국은 크게 보아 두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하나는 이회창 체제가 ‘현철 게이트’를 과연 성공적으로 잠재울 수 있느냐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회창 체제의 출범에 따른 신한국당 내 다른 주자들의 반발의 향방문제이다. 이 밖에 정치권 밖에서의 변수로 올 임투와 연계해 제기하기로 한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노동법개정투쟁 등 민중운동의 역량과 전략을 들 수 있다.

지난 4년 간 문어발식으로 펼쳐온 그 간의 행각을 생각할 때 ‘현철 게이트’는 사방에 깔려 있는 지뢰밭과 같다는 점에서 향방을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대중적 인기와 대쪽 총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새벽 날치기 통과에 가담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허명에 가깝고 또다른 ‘독일병정’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회창 체제의 등장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진정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그 간의 태도를 바꾸어 김현철 씨의 창문회 참석, 청문회 생중계 등 이회창 체제 출범 후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을 고려할 때 이는 결국 진상규명이라는 ‘의식행위’를 통한 ‘국민적 카타르시스’ 과정을 거쳐 김현철 씨의 사법처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야권의 주장처럼 한보사태의 뿌리가 지난 14대 대선자금에 있다면 이 문제는 김현철 씨에 그치지 않고 김 대통령 자신에게까지 비회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한보사태와 ‘현철 게이트’는 김현철의 사법처리선에서 마무리 되고 야권을 비롯한 일부의 계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일단 현 정권은 문제의 봉합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만에 하나, 이회창 체제가 문제의 해결에 실패할 경우 김 대통령으로서는 별로 잃을 것이 없다. 이 경우 만신창이가 된 이 대표를 용도폐기하고 새로운 대권주자를 내세우거나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특단의 선택을 하면 된다. 결국 현 국면에서 김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회창 대표가 ‘현철 게이트’와 이에 대한 현 정권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탈당하여, 법과 부정부패 철폐를 내걸고 독자노선을 가는 것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은 이회창 대표의 ‘법대로’ 이미지를 이용해 사태 수습을 위임하고 이 대표가 이를 수습할 경우 대권주자로 키워나가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용도폐기하면 되는 ‘질 수 없는 게임’이다. 결국 이럴 경우 이 대표는 탈당을 해봐야 파괴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회창 카드는 오랜만에 정치 9단의 진수가 엿보이는 절묘한 수이다.

문제는 이 대표가 ‘현철 게이트’의 수습에 실패할 경우이다. 물론 이 경우 위에서 지적했듯이 9룡 중 아직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후보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우려되는 것은 특단의 조치이다. 결국 이 대표까지도 ‘현철 게이트’의 수습에 실패할 경우 사후보장 문제는 김 대통령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며, 이 경우 김 대통령은 그 간의 고집을 버리고 양 김에게 ‘투항’하여 3김 합의하에 전격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즉 설사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더라도 이 경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가 자신과 측근의 사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김 대통령으로서는 내각제로 판을 바꾸어 일정지분을 갖는 권력분점 형태로라도 권력의 정상에 남아 있는 것이 그나마 최상의 사후보장책이라는 판단을 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걸림돌은 여론과 9룡으로 표현되는 대권주자들과, 야권의 차세대 지도자들의 반발이다. 그러나 대권주자들의 경우도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1, 2 명을 제외하곤 내각제주의자들이 많고 어차피 자신이 대권을 못 쥘 바엔 오히려 내각제가 낮다는 판단에서 이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렇게 될 경우 그 결과는 ‘3김 사당청치’의 영속화, 3김에 의한 지역분할체제의 영속화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 같은 ‘현철 게이트’와는 별도로 주목할 만한 변수는 신한국당 내의 권력투쟁이다. 지난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진행된 이회창, 박찬종 씨 등 대중적 인기 정치인 영입작업의 부메랑 효과로 이미 예견된 이 같은 권력투쟁은 자칫 신한국당의 공중분해 내지 일부 주자들의 탈당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오히려 위기가 신한국당에게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즉 김 정권의 위기가 전혀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회창 카드라는 경쟁력을 가진 정공법을 채택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경선과정의 민주화라는 ‘개혁’을 통해 대선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부 보도되고 있듯이 신한국당은 이번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김심’ 이나 ‘돈심’(자금력), ‘당심’(조직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대의원제도를 개선하여 미국식의 예비선거는 아니더라도 대의원 수를 5만~10만 정도로 대폭 늘려 밑으로부터의 민심이 반영되는 식으로 후보선출과정을 고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중적 인기가 높은 이회창 대표의 경우 이 같은 방식으로의 후보선출과정 개혁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점에서 이회창 체제의 출범은 그 개연성을 더욱 높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결국 당 대표라는 공직이나 ‘김심’을 이용한 불공정 경선이라는 반발은 적어지게 되고 따라서 그 결과에 승복하여 탈당 등의 이탈행동을 할 명분은 그만큼 약해지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된 또다른 변수는 황장엽 변수이다. 당초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대선 이전에 국내에 들어올 경우 국내의 공안파의 입지가 지나치게 강화되고 대선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으로 미국 등 제 3국을 거쳐 대선 후 귀국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돈 바 있다. 그러나 현재 필리핀에 머물고 있는 황비서는 예상외로 빠른 시간내에 한국으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한국행이 ‘현철 게이트’에 대한 청문회 등과 시기적으로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국면전환과 위기돌파를 위해 정략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즉 사실상 김현철 씨의 사법처리를 의미하는 이회창 카드를 선택했을 때의 절박함과 ‘마음을 비운 초연함’을 망각하고 다시 정국 주도권을 쥐고 나갈 수 있다는 욕심이 생겨날 수 있다. 이 경우 김 대통령의 마음이 변해 차남 김현철 씨를 사법처리하지 않거나 설사 김현철씨를 사법처리하더라도 이회창 체제를 흔들어 이 대표를 ‘낙마’시키고 정국 장악력을 회복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북한의 사정과 비디오 등을 통해 전해지는, 예상을 뛰어 넘는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위기로 인해 그것이 무엇이 되든 북한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경우 북한 변수는 신공안정국으로 이어지면서 국내정치에 엄청난 파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 경우 야를 포함한 거국내각의 형태를 띤 ‘이원집정부제’ 식의 비상정국으로의 헌정질서의 변화까지도 상정해 볼 수 있다.

한편 야권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회의 비주류의 경우 국민적 경선제라는 대안을 제시하여 ‘보수․수구연합’이자 역지역연합인 DJ와 JP의 연합, 즉 DJP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존이 걸린 김대중 총재와 김종필 총재는 얼마전에 있었던 수원, 인천 보궐선거의 승리가 DJP의 정당성을 입증해 준 것이라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통해 DJP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자신들의 ‘김심’에 의해 그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현재의 방식에 따라 대선후보 지명전을 주도해 가며, 신한국당의 민정계 등 대권 레이스는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내각제에 매력을 갖고 있는 세력들을 견인하기 위한 작업을 펴나갈 것이다. 다만 김종필 총재의 경우 앞에서 지적한 이회창 체제의 ‘현철 게이트’ 실패 가능성, 이에 따른 김 대통령의 내각제로의 투항 가능성과 관련, 한편으로 DJP를 강화해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 대통령과의 채널 유지라는 이중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점에서 ‘현철 게이트’와 보궐선거에서의 신한국당 참패 등 현재의 위기는 신한국당에게 어느 정도 자기개혁의 계기로 작동함으로써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는 반면 야권에는 오히려 ‘전복위화’의 계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마치 95년 지자체선거 결과와 같은 기능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지자체선거에서 참패한 김 대통령은 과거 청산으로 재개혁화를 시도한 반면 김대중 총재는 분당을 통한 정계복귀로 대응하였는 바 그 결과는 총선에서의 신한국당의 승리였다. 결국 87년 6월 항쟁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통해 얻어준 전리품을 김 대통령과 김대중 총재가 분열하여 노태우에게 상납해 버린 것(“죽 쒀서 개준 것”)과 마찬가지로 야권 양김의 노욕이 국민이 심판해 준 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의 정권재창출을 또한번 도와주는 ‘이적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정세 앞에서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은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올 춘투와 연계하기로 한 노동법개정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또 한보사태, ‘현철 게이트’로 상징되는 부패공화국의 발본적인 개혁을 위해 단순한 관련자의 사법처리를 넘어서 부패방지법, 검찰 중립화 등 제도적 개선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나아가 위에서 지적한 정치권의 야합에 의한 내각제 개헌 가능성과 신공안정국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대선문제와 관련해서도 민중운동이 과연 이번 대선에 독자후보를 낼 수 있을지, 어떠한 전술을 채택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와는 별도로 설사 독자후보를 내더라도 당선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제도 정치권의 대권후보 선출과정에도 개입, 제도 정당들의 후보선출 과정이 민주적 경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일상적인 투쟁에 매몰되어 있다가 대선이 임박해 대선전술을 놓고 허둥지둥하는 과거의 오류를 벗어나 대선에 체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민중운동단체들이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가칭)21세기 한국사회 개혁안’과 같은 총체적인 대안과 전략을 제시하여 수구화 경쟁으로 점철된 대선에 개입하는 체계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같은 작업은 다양한 민중운동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이 연대의 틀을 조직해 나가는 계기를 확보하게 함으로써 이들 사회세력이 대선, 나아가 향후 정국에 하나의 힘으로서 개입할 수 있는 주춧돌을 닦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 시작할 때이다.

1997-04-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