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4)-이탈리아 올리브의 생명력과 꿋꿋함으로 |
현장에서 미래를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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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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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연재하며
한국에도 대학생과 젊은 회사원들을 중심으로 배낭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낭 여행의 양적인
성장에 비해, 건강한 여행 문화는 아직도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세계명승고적(?)을 ‘수박 겉핥는 식’으로
여행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젊은 배낭객을 중심으로 ‘세계 건축 기행’, ‘세계미술기행’,
‘세계음악기행’ 등 테마 여행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배낭여행객들은 ‘왔노라! 보았노라!’는 식의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96년 여름 약 40일간의 일정으로 유럽에 다녀왔다. 이
글은 유럽 사회의 여러 풍속들과 문화, 그리고 특징적인
현상들을 접하면서, 필자가 느꼈던 느낌들을 적어본 것이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세계관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다른
단상들이 들기 마련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보다는 루이
왕조의 방탕과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찔렀고,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동유럽에서는 ‘자본주의적 논리의 비인간성’만을
느꼈을 뿐이다.
유홍준 선생에 따르면 여행자는 3단계로 나눠진다고 한다.
초심자는 유명한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며 안내책자 혹은 안내
푯말을 자세히 읽는 사람들이라고 하며, 중급자는 같은 장소를
들리면서도 부분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조망과
시야를 중시한다고 한다. 그러면 고참급의 여행은 어떠할까.
그들은 ‘사람들’을 중시한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의 풍습,
습관, 그리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들을 직접 느끼려고 노력하며,
그들과의 직접적인 접촉들을 시도한다고 한다.
필자가 느끼기에도 여행이란 모름지기 ‘그곳의 사람과 삶을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배낭
여행자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테마를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무리한 여행일정을 잡기보다는 역사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서 삶과 역사를 느껴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글은 필자가 유럽의 여러 문화, 풍속, 풍물, 역사적 명소
등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시각에서 서술해본 것이다. 유럽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이자, 건전한 배낭 여행
문화의 성숙에 일조하면 좋겠다.
유럽여행기(4) -이탈리아
‘올리브’의 생명력과 꿋꿋함으로
이 산 하(서울대 법과대학 재학)
10개월은 바캉스 얘기로, 나머지 2개월은 바캉스로
이탈리아 로마(Roma)로 들어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나의 일정(日程)도 1/3 정도 경과했다. 여행 초기의 어색함과
긴장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법도 하건만, 그 악명높은(?)
이탈리아로 들어가는 여정이어서였는지, 나의 모든 신경은
꼿꼿하게 살아 편안한 수면을 방해했다. 열차 안에는 많은
배낭여행객과 유럽인들로 북적댔다. 특히, 친구단위 혹은
가족단위로 콤파트먼트(조그만 방의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는
좌석)에 앉아서 즐겁게 놀고 있는 유럽인의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휴가철을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나 지중해
연안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유럽 대륙 전체가 8월이
되면 완전히 바캉스 시즌이 돼 버린다. 남부유럽(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그 시즌이 7월 중순경으로 앞당겨지기도 한다.
바캉스(Vacances)가 제도화된 것은, 1936년 프랑스의 블렘
사회당 내각 때 2주간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고용주에게
의무화시킨 것이 그 첫걸음이었다. 그 이후 프랑스에서는 법적
유급휴가 기간이 점차 늘어나 지금은 5주간이다. 그러나 한번에
모아서 계속 쉴 수 있는 것은 4주간으로 정해져 있다. 바캉스
시즌에는 프랑스의 국내총생산이 약 40%까지 저하되기도 한다.
이러한 바캉스 제도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도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 7~8월이 되면 유럽은 말
그대로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진다. 특히 추운 북부유럽의
사람들이 따뜻한 남부유럽, 특히 지중해연안으로 몰려오기
때문이다.
유럽인은 바캉스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긴 길목에서, 내년
바캉스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일년
동안 비록 싫어하거나 괴로운 일이 있어도 다음 바캉스에 대한
즐거운 기대로 마음을 달래고 활력을 얻는다. 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동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 바캉스
제도 역시 노동하는 시간을 줄여서, 노동자들의 건강과
문화생활을 위해 유급으로 주어지는 휴가기간이다. 한 몫에
쓰던, 나누어서 쓰던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휴식기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양복입은 신사는 오토바이를 즐겨 탄다 ?
연일 40도를 오르내리는 로마의 날씨이지만, 우리나라의 여름
삼복더위와는 느낌이 다르다. 우리의 삼복더위가 고온다습인
반면에,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는 로마는 비록 기온은 높지만
아주 건조하다. 그래서 해가 비추지 않는 그늘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숙소에서 샤워만 하더라도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맞이하며, 나는 로마의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 숙소를 잡기로 하고, 값이 싼 숙소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로마의 시가지를 돌아다니던 나는,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도로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정연하게 일렬로
정렬해있는 부대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오토바이 부대들이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 가벼운 점퍼차림인 사람, 가정주부인
듯한 사람, 갖가지 사람들이 저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양복 입고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는 모습이 우리네에겐 그리 흔한 일이 아니어서인지,
나의 얼굴은 이내 가벼운 웃음기가 가득찼다. 오토바이의 규모
또한 대개 50~80cc 정도의 경오토바이급이어서, 그 크기나
모양도 여간 앙증맞을 수 없으며, 체중이 꽤 나갈 것 같은
사람들이 조그만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기도
했다.
로마에서 오토바이가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정착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로마의 도로 는 옛 로마제국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폭이 그리 넓지 않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어김없이 교통체증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출퇴근시간의 정체현상을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러다보니 성질 급한 민족으로 유명한 라틴계열 민족들이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을리 만무하다. 자전거를 타자니 너무
느리고, 그래서 막히더라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고 속력
또한 무시못하는 오토바이가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모든 도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설치해 놓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며,
자전거를 권장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나는
남부 유럽 특유의 빠르고 거친 호흡을 느꼈다.
로마와 예루살렘 - 예루살렘에 평화를 !
로마는 사실상 두 나라의 수도이다. 이탈리아의 수도이면서,
바티칸 시국의 수도인 것이다. 바티칸 시국이 이탈리아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왕국을 선포하고, 1870년 모든
교황령을 병합한다. 그러나 교황 피우스 9세는 이탈리아
통일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버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가,
1929년 베니토 무솔리니와 교황 피우스 11세와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바티칸은 공식적인 국가로 탄생하게 된다.
무솔리니는 정치적 지반의 강화를 위해 교황의 종교적 권위가
필요했고, 교황청은 이탈리아의 여러 간섭들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새삼 이러한 ‘로마식 해법’이 중동에서 대두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중동 화약고의 뇌관인 ‘예루살렘’이
그곳이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이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에 ‘평화’가 깃든 적은 거의 없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갈등은 1, 2, 3차
중동전쟁으로 나타났고, 현재에도 동예루살렘 유태인 정착촌
건설 문제를 둘러싸고 팔레스타인들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측의 해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몇
해전 암살당한 라빈의 노동당 정권에 의해 추진된 ‘땅을 주고
평화를 얻는(Land for Peace)’ 평화정책이 하나이고,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네탄야후 총리, 즉 리쿠르당의 ‘강경정책’이
그것이다.
노동당은 땀흘려 일하는 ‘근로자’의 모습 속에서 유대인의
건강한 모습을 찾으며, 아랍인에 대한 도발을 최소화하려 한다.
반면, 리쿠르당은 ‘전사(戰士)’의 모습 속에서 유대인
민족성의 대안을 찾으며, ‘유럽인이 아랍인을 정복하러 가는
길’이라는 인식 아래 아랍인에 대한 도발적 행위를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종교의 성지이다. 유대교의 ‘통곡의 벽’,
기독교의 ‘골고다 언덕’, 그리고 이슬람교의 황금 사원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는 예루살렘에 대해 ‘로마식 해법’을 제기하고
있다. ‘1도시 2국가’라는 해법이 그것이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모두 만족시키고, 예루살렘이 특정종교나 민족의
독점물이라기 보다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아라파트의 제안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스페인 광장에서 느끼는 젊음 !
나는 로마에 가면 꼭 ‘스페인 광장’에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바로 그 현장이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전세계 배낭여행객들의 중간집결지로서
세계 젊은이들의 다양하고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에서 체류하는 둘째 날, 나는 스페인 광장에 들렸다. 조금
유치하지만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스페인 광장에
들어섰다. 계단 곳곳에는 배낭여행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서로 얘기를 나누고,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혹은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기도 했다. 나도 그들 틈에서
친구에게 엽서 한 장 적어 보냈다.
“나는 여기서 로마라는 역사적인 도시가 주는 경외감이나
숭고함과는 다른 어떤 정열과 힘을 느낀다. 세계 젊은이들의
가쁘지만 힘있고 평안한 호흡이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 젊다는
것의 특권이리라. 그러나 그러한 열정을 제대로 받아 줄 수
있고, 그 힘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국가가
얼마나 될까? 젊은이들의 창조성과 비판적 지성만이 기성세대의
권위와 사회제도의 부조리에 의해 힘없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안타깝게 보고 있다. 그럼에도 보다 이성적인 사회를 위한 힘은
그들로부터 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본다.”
로마시대의 수도 - 트레비 샘과 난파선의 샘
TV를 보면 ‘로마시대의 보일러가 아직까지 건재한 것은
구리[銅]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어느 보일러 회사의
광고카피가 있다. 실제로 로마에는 약 2천년 전의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 아직도 그대로 쓰여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샘(수도)이다.
기원전 19년, 아우구스투스의 사위 아그리파는 로마시내에서
장장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수도를 건설하여 물을 끌어
들였다. 수원(水源)의 이름을 따서 이 수도는 ‘처녀의
수도’라고 이름지어졌다. 이탈리아어로 ‘Acqua
Virgine’이므로 직역하면 ‘처녀의 물’이다. 이 ‘처녀의
수도’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며, ‘트레비 샘’을
비롯하여 스페인 광장의 ‘난파선 샘’, 나보나 광장의
‘사대하의 샘’ 등에 쉴 새없이 물을 공급하고 있다.
스페인 광장에 있는 난파선 샘은 17세기 초 법왕 우르반 8세의
명령을 받은 피에트로 베르니니에 의해 만들어졌다. ‘처녀의
수도’와 ‘난파선 샘’ 사이에는 거의 낙차가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분출시키는 화려한 구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되었다. 피에트로가 구상에 골몰할 무렵
테베르강에 대홍수가 일어났는데, 배가 로마 시내까지 표류해
들어왔다. 피에트로는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난파선’
구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선 그는 지면을 깊이 파내려가서
‘처녀의 수도’와 조금이라도 많은 낙차를 주어, 물이 가득
잠긴 난파선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평평하고 낮은
수반으로 낙차가 작은 탓에 분수의 물줄기가 그렇게
시원스럽지는 않지만, ‘마실 물’을 공짜로 공급해주어서, 마치
마음씨 좋은 아줌마의 품성으로 다가온다.
트레비 분수의 허(虛)와 실(實)
스페인 광장에서 나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우리 눈에 낯설지
않은 분수가 있다. 그 분수 위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로마에
다시 온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트레비 분수가 바로 그것이다.
법왕 클레멘트 12세가 자신의 궁전을 퀴리날레 언덕에
신축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한 분수이다. 이를테면 자기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멋진 분수 하나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트레비 분수는 무엇보다 배경을 이루고 있는 조각군(群)이
감상의 핵심인 것 같다. 조각군의 중심에는 포세이돈의 마차를
이끈다는 해마가 포진되어 있다. 해마의 전반신은 말이고
후반신은 돌고래와 비슷하다. 바다의 신이 해마가 끄는 조개껍질
전차를 타고 나오며, 두명의 트리톤이 해마의 자갈을 잡고
조개껍질로 된 나팔을 불고 있다. 그리고 좌우에 배치된
바위에서 물이 솟아난다. 바로크 양식의 격렬함과 생동감을
멋지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각이라고 한다. 멋진 조개 나팔
소리가 들리고, 해마의 요동침이 느껴진다.
그러나 트레비 분수는 그 장식효과가 만점인데 비해서,
생활용수로 이용하는 근처 주민들에게는 대단히 평이 안좋다.
내려오는 물을 제대로 받아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
광장의 난파선 샘은 주민들이 물을 길을 때 나무 물통이나
가죽부대 같은 것으로도 ‘먹을 물’을 흘리지 않고 채워 넣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아직까지도
스페인 광장의 난파선 샘에서는 여행객들이 물통마다 ‘먹을
물’을 가득 가득 담아갈 수 있는 반면에, 트레비 분수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트레비 분수가 이렇게 된 데에는 그것이 만들어지면서부터 갖게
된 운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퀴리날레 궁전을 신축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된 분수이기에, 실용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장식의 화려함에 보다 치중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나 거기나 높은 사람들 집 앞에 무엇 하나 만들 때,
기능이고 뭐고 간에 일단 보기 좋아야 한다는 원칙은 똑같은 것
같다.
올리브의 생명력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물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최소한 음식
걱정은 전혀 없었다. 고추와 마늘을 양념으로 씀으로 해서, 우리
음식의 특징인 조금은 맵고, 짠, 자극적인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묵은 숙소 바로 옆에는 조그마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나는 거기서 밀가루 반죽으로 겉표피를 하고 그
안에 닭고기 다진 것과 각종 양념들을 첨가한 이탈리아식 빵을
즐겨 먹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탈리아식 ‘대형 만두’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맛은 속된 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정도’이다. 이탈리아 음식이 우리네 입맛에 맞는 걸 보면,
이탈리아 민족과 우리 민족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셋째 날 로마의 어느 대학 교수인 ‘도미니코
제르보치니’라는 사람을 우연한 기회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진보적인 교수였으며, 현재 존재하는 이탈리아 정당 중에서
‘재건공산당(Communist Party Refoundation)’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는 북부동맹, 국민전선 그리고 94년 수상인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포르자 이탈리아’ 등의 우파
정당에서부터 좌익민주당, 재건공산당 등의 좌파 정당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탈리아가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에 비해 ‘진보적 정치세력’의 지지 기반이 광범위하고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96년 총선거에서는 중도좌파 연합인
‘올리브 동맹’이 승리하여, 현재 정부를 구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올리브 동맹’에서의 최대 다수 세력은
‘좌익민주당(PDS)’인데, 이 당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구(舊)이탈리아 공산당(PCI)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
91년 2월 구(舊)이탈리아 공산당(PCI)은 주류 세력인
좌익민주당(PDS)과 비주류세력인 재건공산당(PRC)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좌익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적
운동세력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했다는 사실에서, 그 대중적
기반이 얼마나 튼튼하고 넓은 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당시
소수세력이었던 재건공산당(PRC) 역시 96년 봄 지방선거에서
전체적으로 약 8.4%의 득표를 얻었으며, 플로렌스 지방 같은
경우에는 24.7%를 얻어 제1당이 되었을 정도이다.
현재 재건공산당(PRC)은 ‘올리브 동맹’의 정부 구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독립을 주장하는 ‘북부동맹’ 등의 극우세력의 준동을 견제하기
위해, 중도좌파 정부인 ‘올리브 동맹’의 정책들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지지해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유럽연합의
건설을 위해 여러 기준들을 설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관련한
경제․재정 강령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유럽 연합을 위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각국의 재정적자를
일정한 수준으로까지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영역이 사회복지의 영역이라는 점에
있다. 그동안 실행되어 온 사회적 약자들, 즉 노동자, 소수민족,
여성들과 관련한 여러 복지정책들이 축소되거나 없어지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집권세력인 ‘올리브 동맹’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재건공산당이 ‘올리브 동맹’의 경제․재정 정책에
관해서는 명백히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미니코 교수는 이 부분에서 특히 힘을 주었다. 현재
유럽연합이 ‘신보수주의’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노동
대중의 이해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결국 유럽의 진보운동세력들은
대다수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해 제동을 걸고, 그 방향을 올바르게 바꾸기
위한 투쟁이 긴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전유럽적 차원에서의
연대운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는 한국의 경우,
‘타국의 진보적 운동세력과의 연대’가 아직까지도 ‘좋은
글귀’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적어도
유럽대륙에서는 그것이 ‘대단히 현실적인 문제’이며 필수적인
문제로 사고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조금은 치기어린 질문에 대해 ‘도미니코’는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핵심적으로 지배집단의 관료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자들의
동료’에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관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이탈리아 재건공산당(PRC)이 당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당에서는 다양한 분파들의 존재가 인정된다. 그들 사이의
자유로운 입장의 개진과 선전물의 배포가 허용된다. 또한
입신출신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선출된 공공대표, 하원의원,
상원의원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들은 당에 자신의 임금 중 일부를
기부해야만 한다. 어떤 경우 봉급의 반정도를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올리브 나무는 지중해 연안 지역 어디를 가나 많이 볼 수 있다.
이곳의 여름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몇 달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모든 식물은 말라죽은 것처럼 사그라 든다.
그러나 올리브만큼은 원기 왕성하게 은녹색 잎을 바람에
펄럭이고 가을이 되면 가지가 휘도록 열매가 열린다. 그렇기
때문에 올리브는 먼 옛날부터 생명의 양식으로서 풍요의 상징,
활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이탈리아 진보운동이 ‘올리브의 생명력과 꿋꿋함’으로
전세계의 진보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던져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베드로의 피와 미켈란젤로의 혼
바티칸에 가기 위해서는 테르미니역에서 16번 버스를 타면 된다.
괜스레 안절부절할 필요는 없다. 중간에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지긋이 가면 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는 5개 국어 -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 로 ‘소매치기를
조심하시오’라고 씌여 있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로마에는
집시와 소매치기들이 와글와글거렸고,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테르미니역(로마 중앙역)에서 바티칸에 이르는 구간이 그들의
가장 좋은 사업(?) 구간이었다. 지금은 집시도 거의 스페인
등지로 쫓겨났고, 소매치기도 여느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특별히 많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16번 버스에 새겨진
5개 국어로 된 경고문은 그대로 존재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시내를 걸으면 또 다른 손이 주머니
속에서 만져진다.”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들어가는 야간열차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이다.”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대충 이런 얘기들이 여행객들 사이에서
오간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은 오히려 ‘소문이 소문을 만들어
낸’ 과장된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도둑놈의
소굴’이라는 로마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탈리아에 특별히 소매치기가 많은 것은 결코
아니다. 소매치기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도 있으며, 배낭여행
중에는 항상 그에 대한 경계를 풀어서는 안된다. 평상시의
경계심으로 로마를 방문하면 충분하다. 쓸데없는 소문 때문에
‘역사의 도시’ 로마를 놓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성베드로 대성당
성베드로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오벨리스크’와
‘열주랑’이다. 오벨리스크는 서기 37년경 이집트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열주랑 위에는 140명의 성인들 석상이 있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이며, 그는 예수의 첫 제자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객지로 나갈 때마다, 베드로는 언제나
앞장섰다. 그가 베드로가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예언때문이라고 한다.
“너는 베드로(반석)다. 내가 이(너라는)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인데,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이런 유래로 ‘열쇠’는 성 베드로의 상징이 되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베드로는 예수가 죽은 뒤에도 계속 교단의 기관차
구실을 했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교에 힘썼다. 그러나 그는
결국 네로 황제에 의해 ‘거꾸로 매달린 채’ 순교했다.
성베드로의 유해 위에 세워진 것이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에 동상이 하나 있는데,
손에 ‘번쩍이는 열쇠’를 들고 있다. 바로 베드로 동상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 천정을 올려다보면, 높이가 119미터인
거대한 돔이 보이고, 베드로의 진짜 시신이 묻혀있다는
중앙제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에서 오른편으로 돌다보면
두터운 방탄유리로 둘러싸여 있는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피에타’이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
제작했다는 조각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그
시신을 끌어 안고 있는 성모(聖母)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회화말고도, ‘피에타’나 ‘다윗상’, ‘노예상’ 등의
조각으로 더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회화’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조각은 ‘돌을 깍아내는 단순작업’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미켈란젤로는 ‘조각’에 더 많은 애착과
애정을 보였다. 그는 ‘모든 돌은 이미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단지 불필요한 부분만을 제거할 뿐이다’라고까지
말하면서, 어떤 영감에 의해 조각하는 것을 자신의 지론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어머니인들 자식의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겠는가? ‘피에타’는 성모(聖母)의 처연하고도
슬픈 마음을 가슴 시리게 전해왔다. 나는 잠시 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는 죽일 년 ?
성베드로 성당에서 약 5분 정도 걷다보면 예배당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시스티나 예배당이다. 교황 시스투스
6세가 신변의 안전을 우려하여 자신의 전용 예배당을 지은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미켈란젤로의 걸작이 있다.
좁은 복도와 어두운 터널 같은 곳을 통과하여 나는 어느 조그만
방으로 들어섰다. 모든 사람이 천정을 올려다 보고 있다.
‘천지창조’가 거기 있었다! 사진촬영은 물론 금지되며, 소리의
진동에 의해서도 작품이 훼손될 수 있다면서 관계자들은 연신
관객들을 조용히 시킨다. 나는 인류 최고의 작품이라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 이들
작품을 천천히 뜯어 보았다.
천지창조는 예배당의 천장에 있다. 중앙에 가지런히 아홉 개의
장방형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최후의 심판’의 벽화가 있는 쪽에서 네 번째인 ‘아담의
창조’와 여섯 번째인 ‘뱀의 유혹과 낙원 추방’이다.
‘아담의 창조’에서는 생명의 숨이 불어 넣어진 건장한
청년에게 장년의 모습으로 표현된 하느님이 손을 뻗어
축복해주려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하느님이 거의 전신으로
그려지게 된 것도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 같으면
단지 오른손 끝만 그려서 하느님의 축복을 상징했을 일이다.
신과 인간의 유대를 표현하는 이 그림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헐리우드의 유명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그림을
자신의 영화인 ET의 한 장면에 원용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손가락과 손가락을 맞대 서로의 연대와 신뢰를 표현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연대와 사랑이라고 해석해도
무리없을 듯하다.
여섯 번째 장면이 ‘뱀의 유혹과 낙원 추방’이다. 하느님이
먹지 말라는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따먹은 후,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이다. 아담과 이브의 행동에
노한 하느님은 이브(여자)에게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할
것이며,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한편,
아담(남자)에게는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죽도록 고생해야만
먹고 살 운명”을 내렸다.
여자는 원래 유혹에 약한 것일까? 조금만 참았더라면 낙원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대부분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여자의 역할과 모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내용이 바로 뱀의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은 대목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결코 일반적인 생각처럼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금단의 열매를 먹기 전에, 아담과
이브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금단의 열매를 먹기 전까지
아담과 이브는 ‘선악의 판단’을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어떠한
가치관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부끄러움’조차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은 ‘바로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신으로부터 독립해서
인간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장면을 재구성해본다면, 뱀은 ‘사악한 동물’이
아니라 ‘진리의 전달자’이며, 뱀의 ‘유혹’이 아니라
‘진리의 전수’이며, ‘이브’는 ‘인류의 선각자’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여성들은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오고, 주변부화되어 왔다. 그러한 배제의 정당성을
각종 신화나 성경 구절에서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세상의 모든 악(惡)을 가져왔다’는 것
등은 아주 유명한 근거들이다. 그러나 선(善)과 악(惡)이 없는
인간의 세계는 결코 상상할 수 없으며, 더구나 선(善)만이
존재하고, 악(惡)은 전혀 없는 인간 세계는 더더욱 상상할 수
없다. 악(惡)은 숨겨 놓는다고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공개적으로 논하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때만이, 인간 세계의 악(惡)은 소멸될 수
있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행위는 바로 ‘인간 세계에
숨겨져 있는 악(惡)을 공개화’시킨 행위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소외시키고 있는 집단들은 다양하다. 노동자계급이
그렇고, 여성이 그렇고, 소수 민족, 소수인종 등이 그렇다.
그러나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배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속되어 온 아주 오래된 문제이다. 보다 이성적이고 발전적인
사회를 위해 배제된 집단들간의 적극적인 연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며, 우리들 사이에 은연중에 심어져 있는 ‘여성 배제
의식’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람 가죽 속의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의 경건함과 환희도 잠시, 우리는 한쪽 벽면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을 보아야 한다. 천지창조를 그린 후
23년이 지나고, 다시 붓을 잡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벽화이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 천당으로 가는 사람, …… 아수라장도 그런
아수라장이 없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에서 두 명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린다.
한명은 자신을 괴롭힌 추기경이다. 그 추기경은 결국 지옥으로
떨어지며, 뱀에 의해 온몸이 칭칭 감겨져 뱀이 자신의 남근을
물고 있는 벌을 받게 된다. 조금은 짖궂은 천재 예술가의 또다른
‘인간적인 감정’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 한명은 자기
자신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어떤 심판을 내렸을까? 천당으로
올라갈 사람이라는 심판을 내렸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벽화
속에 가죽이 벗겨지는 처형을 당한 ‘성 바르톨로 메오’
순교자를 그려넣는데, 그가 들고 있는 사람의 가죽 속에 자신을
그려넣는다. 아마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의 모습을 갖고
싶었나 보다. 신이 모든 것이었던 시대에, 천재 예술가의
‘인간’에 대한 강한 애정을 느낀다. 아니면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으라!’는 인간세계에 대한 충고인지도 모르겠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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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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