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문턱에 선 맑스주의 국제 맑스주의 대회 참관기 |
현장에서 미래를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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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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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의 미래
“21세기의 문턱에 선 맑스주의 : 결산과 전망"에 대한 소개
하노버, 1997년 3월 14~16일
특집3
21세기의 문턱에 선 맑스주의
임 운 택 (독일 마부르크대 사회학 박사과정)
1. 대회의 성격과 배경
지난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독일의 하노버 대학에서는
1989,90년의 대전환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맑스주의의 위기
및 개혁에 대한 방향없는 논의에 구두점을 찍고, 운동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려는 맑스주의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프랑크
데페(마부르크 대학 정치학교수), 요하힘 비숍(잡지
『사회주의』 편집장), 우베-옌스 호이어(독일 사회주의당
-PDS), 프레드 슈미트(독일 공산당 -DKP), 하인쯔 융(잡지『Z』
편집장, 1996년 사망) 등에 의해서 주도되었으며, 좌파교수 및
맑스주의 연구자들, 여러 좌파 이론지, 그리고 다양한
좌파정당과 그룹들을 총괄하는 "좌파 에쿠메니스트"들이 대규모
참여하였다(대략 4백 명). 5차의 총회, 3차의 강연회, 그리고
30여 주제의 워크숍이 준비된 대회는 비교적 일관된 주제를
다루는 학술대회의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본주의
단일세계 체제(One-World capitalism system)에서 맑스주의의
새로운 위상정립과 과제를 염두에 두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대회의 기본적 배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 기본적으로는 서구 맑시즘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는 현실로써, 68학생운동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던 맑스주의 부흥기에 역설적으로 동반된
좌파진영 내부의 분열과 대립의 구도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분열은 실제로 십 수년간 서로 자리를 마주하는 것조차 꺼려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였고, 이는 곧 이론과 실천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는 좌파운동 전반을 맑스주의의 ‘위기’와
‘개혁’이라는 당위론적 논쟁 (즉,위기와 개혁에 대한 논의
자체는 이미 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구조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공멸에 대한 위기의식을 첨예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배경에서 지난 1995년 9월, 프랑스 맑시스트 이론지 『Actuel
Marx』가 주도하여 파리에서 개최된 “맑스 국제대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걸음으로써 여타 서구 맑스주의자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이번 하노버 대회는 대체로 그러한
자극에 힘입어 1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추진되었으며, 다양한
입장을 표방하는 좌파그룹들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둘째, 대회의 궁극적인 의도는 “20세기의 짧은
역사”(홉스봄)의 끝에 놓여있는 시대적 단절에 직면하여 지난
시기의 맑스주의에 대한 결산과 향후 전망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절실하다는 현실적 요청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
맑스주의의 “방향성 위기”는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광범위한 구조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론의
결핍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오늘날 신보수주의
정치프로젝트 하에 전지구적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을 적절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맑스주의는 과거의 이론적 태만을 반성하고,
이론의 개혁과 발전에 대한 요청을 진지하게 검토해야만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는 이번 대회의 참여자 모두에게
핵심적인 출발점으로서 인식되었다.
짧은 지면에 3일간 진행되었던 대회의 내용을 모두 소개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아래에서는 대회의
주축을 이루었던 총회에서의 발제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2. 맑스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
1차 총회 ; ‘맑스주의의 결산과 전망’
첫날의 개막 총회는 ‘맑스주의의 결산과 전망’이라는 주제
아래 세 명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철학자에 의한 기조 발표로
시작되었다.
비스마르크 연구자로 잘 알려진 구 동독의 역사학자
엥엘베르크(Engelberg,E.)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였다. 1917년의 출발이 경제적 발전단계에 상응하지 않은
“반 맑스주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1989년의 사회주의 붕괴의
씨앗은 이미 그 출발에서 노정되었다는 테제 (대표적으로 아담
샤프; 부분적으로는 러시아 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반
“자본론”적 이라고 언급한 그람시)는 역사의 발전과정을
생산력발전에 제한시켜 이해한 맑스의 초기저작 『독일
이데올로기』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 같은 맑스의 탁월한 정치적
저작에서는 계급투쟁이 극단의 상황에서는 정치적, 사회적
복합적 요인들에 의해서 더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방식으로
혁명으로 전화,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1905년에서 1917년에 이르는 일련의 러시아 혁명은
경제적 발전단계에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위기,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전쟁 등의 복합적인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엥엘베르크는
“우리는 사회주의의 확실한 특성을 보여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는 혁명 직후의 레닌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회주의로의 발전과 전망에 대한 맑스주의의
고정관념이나 도그마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정치학자 데페(Deppe, F.)는 과거의 맑스주의의 위기와 발전
과정을 뒤돌아보고, 미래운동을 위한 전망을 표명하였다. 이와
관련, 그는 3개의 테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20세기 후반의
사회주의의 위기는 맑스주의 존재의 위기임을 환기시키고,
20세기 전반과의 질적인 차별성을 강조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위기논쟁이 사회주의 운동과 문화를 둘러싼 조직화의 문제에
대한 차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람시, 루카치, 코르시
그리고 가까이는 70년대의 알뛰세에 이르기까지의 위기논쟁을
의미한다. 나가서 데페는 주체 없는 붕괴론을 파산한 맑스주의의
시대정신으로 규정한다.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승리위기”(Siegkrise: 울리히
벡)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특성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는 체제경쟁의 대립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생태학적
위기로 집약되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위기가 문제시된다고
하겠다. 둘째, 현재의 위기는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사회주의 운동이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7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즉, 현존 사회주의의
뼈아픈 진실은 자신의 개혁가능성을 내부에서만 구함으로써,
(정치적이 아닌)전략적 차원에서 현대화과정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말의
“지진과도 같은 대변동”2) 홉스봄은 20세기의 사회주의를
현존사회주의, 3세계 사회주의, 메트로폴 사회주의 등의 3가지
흐름으로 분류한다. 이들 각각은 단선적인 역사라기보다는,
주기적, 국면적인 역사로 파악되며, 80년대 말에 시기적으로
상이하게 진행된 세 흐름의 사회주의의 파산을 "지진과도 같은
대변동"이라고 표현하였다. 참고. Hobsbawm, E. (1994): Age of
Extreme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London
이 흡사 자연의 법칙처럼 상정된 정치적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후쿠야마)에 의한 현대화의 논리적 종말을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 데페는 80년대 이후 신보수주의 헤게모니 아래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던 자본주의의 축적구조 혹은 사회구성체
변화가 사회전반에 물질적 조건의 해체뿐 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하였고, 여기서 발생된 “궁핍의
의식(화)”는 비판이론의 필수조건으로서 맑스주의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셋째, (전위)정당과 노조와의
관계에서 파악되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남성 중심적 노동자운동은
더 이상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의
공산당은 부분적으로 소멸되었거나, 그나마 현존하는 것은
인텔리 중심의 정당이 되어버렸고, 노조는 현저한 조직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동자운동의 탈 신비화와
신보수주의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로서 정치적 역관계의 재구성은
당면한 과제로 제시된다. 즉, 이는 내재적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단일 세계자본주의에서 다양한 자율적인
사회운동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운동들을 재차 접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오늘날에도
국제주의(Internationalism)가 일종의 해방적 프로젝트로 여전히
유의미함을 강조하였다. 맑스주의의 전망과 관련, 데페는 우선
역사발전의 기초를 생산력 발전으로 협애하게 해석하는 맑스주의
독해를 비판하였다. 나가서 그는 금융시장의 세계화와 지배로
압축되는, 신자유주의 아래 자행된 “전문가들의 횡포”
(tyranny of experts)가 빈부격차의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생태학적위기, 과잉축적 위기의 결과로서 사회국가의 해체,
실업의 증가 등을 초래하였음을 상기시키고, 바로 여기서 물질적
부(富) 뿐만이 아니라 지식을 둘러싼 ‘분배투쟁’이 현시기
맑스주의의 과제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방어투쟁은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시장신학”(홉스봄)에 대항하는 헤게모니
프로젝트로서 정치적 역관계(즉, 계급관계)를 재구성 할 때,
공세적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사회철학자 넥트(Negt, O.)는 맑스주의가 지난 100년간의
사회주의 역사에서 보여준 과도한 정치화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우선 과학의 영역에서 올바른 자리 매김을 해야한다는
기본테제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현재의 자본주의가
ꡔ자본론ꡕ에서 분석된 “자본의 논리”(비용이전의
논리로서 자본의 경영논리) 그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면서(Kapitalismus pur!), 이러한 점에서
자본분석으로서의 맑스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나가서 그는 인간 노동력의 제한을 가능하게 한 극소전자 혁명의
시대에 사회의 해방 없이도 국가의 소멸은 가능해졌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에 대한 미완성의 프로그램으로서 맑스이론의
극복을 향후의 과제로 제기하였다. 한편, 넥트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철학 혹은 사유방식에 반하는 무비판적이고 빈번한
맑스 인용을 비판하고, 현대사는 역사이론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주장과 더불어 시대에 조응하는 맑스이론의 재해독을 요구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당연히 문제의 핵심으로 제기되었다.
맑스이론의 방법론과도 관련되는 이러한 문제는 실천이 이론의
진리기준으로 될 수 없다는 논리와 함께, 일반성에 앞선
특수성의 우위라는 실천 편향적 오류가 지적되었다. 이는 잘
알려진 바처럼, 일반성과 특수성 및 구체와 추상의 관계를
서술한 맑스의 방법론 저술에 근거한다. 참고. Grundrisse 서문
또는 동일한 텍스트로서 MEW Bd.13, p.615-642.
다시 말해서 특수성으로서 “조직에 대한
환상”(Organisationsphantasie)은 이론을 통해서만 일반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차 총회 ; ‘20세기 말의 자본주의’
‘20세기 말의 자본주의’라는 주제로 열린 두 번째 총회에는
비숍, 슈미트, 클라인, 마이어 등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세기말의 자본주의 분석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맑스주의와
‘현대’의 관계,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생산력 혁명,
그리고 세계화와 지역화간의 변증법적 모순 등이 토론되었다.
비숍(Bischoff, J.)은 자본주의 중심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자본의 위협’과 관련, 3가지 테제를 제시하였다. 첫째, 세계
통화체제의 붕괴(1973년 브레튼 우즈 조약)와 그 뒤를 이어
공세화된 금융시장의 탈규제는 화폐자본 축적의 자립화를
가속화하였고, 이는 새로운 자유방임 자본주의 (그러나 넥트가
언급한 “순수 자본주의”와는 다른 뉘앙스에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둘째, 실질자본의 구조적 과잉축적에 대한 지배블록의
대응으로서 통화수축 정책은 “주식보유자의
가치지향”(shareholder value-orientierung)으로 압축되는
금융자본 헤게모니의 강화와 실물경제에 대한 투자우위를
지속적으로 이자소득과 자산가치를 증식시키는 방향으로
이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셋째, 이미 영미에서 80년대에
완성된 금융자본의 지배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소위 자본의
가치증식과 사회국가적 규제의 결합으로 특징 지워지는 ‘라인
자본주의’ 프랑스의 경제학자 알베르는 단기적인 이윤과
생산비용적 사고에 집착하는 “앵글로섹슨 자본주의”에 대하여
노자간의 공동협력과 장기적인 이해균형 지향적인 “라인
자본주의” (독일, 스칸디나비아국가, 그리고 일본)를
대비시킨다. 참고. Albert, M. (1991): Capitalisme Contre
Capitalisme, Paris
조차 흡수하였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증가하는 위협의
분석과 연관하여 비숍은 생산성 이윤의 재분배를 위한 정치적
대안이 시급함을 제기하였다.
마이어(Mayer, L.)는 세계경제가 전례가 없이 네트워크화되어
있다고 하면서, 흥미롭게 독일 콘체른 지멘스의 다국적
생산전략을 예로 들었다. 그에 의하면, 현재 지멘스는 독일
바깥의 190개 국가에서 (대부분 아시아와 동유럽에 밀집) 대략
300여 개의 생산기지를 운영한다고 한다. 이는 기업이 자유롭게
노동자 군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자, 발전된 생산기술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따른 예측 가능한 결과로서, 그는 범세계적인 중심-주변 노동자
양극화현상을 들었다. 끝으로, 마이어는 세계시장을 둘러싼 고삐
풀린 경쟁 자본주의의 배후에 위치한 신자유주의 또한 금융자본
헤게모니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는 현시기의 제국주의의 표현에
다름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구 동독의 대표적 이론가로 잘 알려진 클라인 (Klein, D.)은
과거의 포드주의적 성장모델과 대립되는 현재의 고용 없는
성장모델이 곧바로 사회국가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그에 따르면 현재 진행중인 새로운 유형의
고용정책은 이해관계를 둘러싼 또 다른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자본주의의 현대성 잠재력을 이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의 전망이 놓여있다고 한다.
경제학자 훕슈미트(Hubschmid, J.)는 세계화와 국제
정치경제학의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형과정으로
파악하면서 그 질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입장 (데페 등)에
대립되는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세계화에 대한 이해를 둘러싼
정치학자와 경제학자들 간의 견해차이를 대조적으로 보여주었다.
즉, 현재의 세계화는 독점자본의 형성시기부터 이미 가능하였던
것의 형태변화에 불과하며, 정치적, 사회적 역관계의 완전한
재배치라는 의미에서 전형과정으로 이해될 만큼 폭발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완전고용과 사회동반자적 협력에 대한
합의로서 요약되는 포드주의적 발전모델은 파시즘과 전쟁의
결과에 뒤따른 자본의 위기라는 경제적 메카니즘에 의해 사회적
응집력과 합의가 강제된 것으로 파악하며, 심지어 경찰국가와
관료주의 없는 자본주의의 “황금시대” (마글린/슈어)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동일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가치증식 영역을 찾아 나선 자본 내부의 정치적
변형으로서 이해된다. 즉, 세계화의 여파는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화는 시장에
의한 상황강제일 뿐이며, 그에 대한 고유한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러한 분석에 근거하여 신자유주의의
정치모델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모델이 향후 과제로서
제기되었다.
3차 총회 ; ‘변화된 자본주의의 계급사회’
‘변화된 자본주의의 계급사회’라는 주제로 계급론
사회학자들이 주도한 세 번째 총회에서는 사회조직에서 노동의
역할과 생산 및 생산수단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레닌의
계급정의가 계급관계의 단순화 (양극화)와 노동자계급의
단일화가 병행되었던 제국주의의 상승시기에 제한되는 한
유의미하며, 장구한 시간에 걸쳐 사회구조의 차별화 과정이
진행된 오늘날에는 ‘계급환경’이 현저하게 변화되었으므로
이론의 재구성이 불가피하다는 데에 인식을 공유하면서 상이한
논점들이 제기되었다.
헤어코머 (Herkommer, S.)는 “계급 없는 자본주의”(히르쉬)와
같은 사회과학의 시대진단에도 불구하고, 대량실업, 빈곤화,
사회의 양극화 등의 현실에 비추어 보아 계급이론에의 복귀는
필연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다원화, 개인화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계급사회의 탈구조화의 배경에서 오늘날,
계급은 (계급구성의) “기원”(Herkunft)에서 보다는
“환경”(Milieu: 생활양식, 일상생활에서의 가치지향 등)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사회적 상황, 생활양식,
그리고 사회적 태도 등의 분화가 계급이론의 연구대상으로
설정되었다. 그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사회계급’론에
근거한 이러한 접근이 사회(계급)와 개인의 재생산연관을,
더불어 사회의 기본구조 재생산을 위한 생활양식을
해명해줌으로써, 고전적 계급이론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부르디외 이론에 기초한 환경개념은 계급 연관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비판하는 크레머 (Kremer, U.)는 사회운동과 계급구성의
주체적 측면에 접근하였다. 그는 계급이론은 사회구조 분석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 의해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테제를
제시하였다. ‘정치’에 대한 강조는 복지국가를 통해
계급구조의 토대가 변화되었다는 현실과 현재의 정치적
수세국면을 감안하여, 다양한 계급분파들의 역할을 분석하고,
연대에 의한 새로운 사회 재건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그는 노동자운동의 역사가 계급관계를
반영하고는 있으나 언제나 계급투쟁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실천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되는 계급이론의 총체성
개념을 반박하고, 계급이론은 “사회권력관계에 대한 비판”
일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한 (Hahn, E.)은 이전의 교조적인 입장에서 물러나 고전적
계급개념이나 계급범주는 더 이상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단일 계급의 “역사적 사명”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으며, 계급주체를 찾아 나서는 무용한
노력보다는 계급모순 관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하였다. 복지국가에서 성장한 공공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과 같은 새로 탄생한 계급의 성격 분석 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총회의 발표자들에 의해서 소홀하게 취급된 맑스주의 계급론과
여성이론 사이의 위상문제는 참여한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열띤
토론이 있었으나즉, 성문제가 계급이론의 주변으로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이론의 한계만을 확인한 채, 향후의
과제로 남겨놓게 되었다.
4차 총회 ; ‘민주주의, 인권, 해방 그리고 사회주의’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된 민주적 인간사회라는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가 출발 당시부터 전제한 네
가지 핵심적 주제를 그대로 담았던 ‘민주주의, 인권, 해방
그리고 사회주의’의 총회는 좌파 법학자들 (호이어, 스튜비,
외르쩬, 페치)이 참여한 패널 토의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백년 전의 유토피아가 오늘날에도
유토피아로 머물고 있는 탓인지 비교적 상이한 입장 대립으로
뜨거웠던 이전의 총회와는 달리, 기본적 입장을 공유하는 선에서
마감되었다.
토론자들은 언급한 네 개의 개별적 개념들이 상이한 목표지향의
개별적 정치영역에서 분리, 고립화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이들
개념들 간의 관계 및 상호 결합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는데
동의하였다. 나가서 그러한 결합을 위한 세 가지 기본조건들이
논의되었다.
첫째, 네 가지 거대 개념들의 역사적 출발점을 올바로 인식하고,
사회발전에서 개념의 변화를 규명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파산한 사회주의에서 확인되듯이, 민주주의와 인권은 서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셋째, 오늘날의 사회에서 인간해방의
전망은 현실적인 사회모순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정치적
투쟁조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달려있다. 이번 총회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사민당의 핵심 이론가로서 지난 70년대에
내각에 참여하였고, ‘직업 금지법’을 주도하였던
외르쩬이 시종일관 급진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여타
맑스주의자들을 아연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는 신보수주의
헤게모니와 자본주의의 구조변화 아래 사민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가 갈수록 그 토대를 잃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노(老)사민주의자의 반작용으로 추측된다.
5차 총회 ; ‘계급운동에 미래는 있는가?’
세계화가 민주주의와 계급권력 행사의 토대를 현저하게
침식시켰으며, 고전적 의미에서의 노동자운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테제는 계급운동의 미래와 관련하여 결코
비관적 전망만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데페에 의해서 제기된
이러한 문제틀은 고전적 의미의 노동자운동 중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 기능 하는 노조운동이 그 영향력의 축소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유럽의 중심부에서 전개된 정치투쟁의
첨예화 및 사회저항의 확산에서 반증되듯이 그 존재와 역할이
이전보다 더 중요해졌음을 뜻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계급운동에 미래는 있는가?’라는 대회의 마지막 총회에
노조간부이자 이론가들에게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논의의 기본적 출발점은 다음과 같다. 지난
2년 간 급격히 증가한 사회저항은 신자유주의의 정치 프로젝트에
의해서 진행된 세계화의 배경동일한 맥락에서 권력 엘리트에
의해 현실을 무시하고 추진되고 있는 유럽 단일통화
체제속에서 이해되며, 그 결과 점증하는 대량실업, 지속적인
사회보장의 철폐, 노동시간의 연장 및 유연화, 그리고
임노동자의 소득을 볼모로 하는 재분배 정책 등 도처에 투쟁의
잠재력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의 르네상스”가
‘대항권력으로서 노조와 좌파 정치의 개혁을 위한 출발점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노조가 (여전히) 일자리를
확보한 사람들을 위한 방어진으로서만 남을 것인가?’의 문제,
‘신보수주의적 체제 설계자들에 대항하여 사회국가를 방어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토론되었다.
미디어 노조의 지구위원장인 슈탐(Stamm, S.)은 지난해부터 독일
노동자들의 저항의지가 급격히 증가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에, 노조 내부의 정책과 조직구조는 매우 부정적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이와 관련, 첫째,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방지하기
위한 독일노총(DGB)의 강령과 인사 구조에 커다란 약점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한다면, 이러한 언급은 독일노총 내부의
좌,우파 간의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즉, 1949년에 빅토르
아가르츠 등의 좌파 지도자의 영향 아래 관철된 뮌헨 강령의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권력으로서 노조의
지위를 천명하는 것이었으나, 작년 10월에 개정된 신 강령에서
당내 우파의 치밀한 공작에 의해 노조의 위치가 기업가와의
동반자적 관계로 둔갑(?)됨으로써, 좌파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었다. 나가서 재정상의 이유를 들어 지난 수년 사이에
독일노총의 기관지와 학술지들의 통폐합 과정이 진행되었는데,
이는 그 곳을 장악하고있던 좌파 노조원들에 대한 숙청작업에
다름이 아니었다.
둘째, 여타 국가들과의 비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독일의
단체협상 체제가 파업의 조직화 문제에 맞닥뜨려서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예컨대, 노조의 조직화 비율이 5%도 채 안되는
프랑스의 경우, 파업의 조직화는 오히려 독일보다 신속하다는
점이다. 셋째, 조직형태의 세련화된 모델의 추구보다는 사회적
응집력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찾아내는 것이 노조투쟁의
성공을 위해 더 시급하다. 그 연장선에서 슈탐은 대중의
탈연대화 과정에 대응하는 좌파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금속노조의 사회정책 위원장인 슈미트헨너(Schmitthenner, H.)는
고용 없는 신 성장모델과 탈규제 정치는 사회국가의 해체뿐만이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분화과정도 초래하였다고 분석하였다.
즉, 고용이 확보된 2/3의 노동자와 고용이 불안정한 혹은
실업상태의 1/3의 노동자들의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급운동은 그러한 경향에 대해 새로운 정치
프로젝트로 대응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독일 사회주의당 (PDS)의 노조정책 위원인 델하임(Dellheim,
J.)은 구동독 지역의 열악한 노조활동 실태를 분석해 주었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체제합병 이후에 서독으로부터 유입된
자본이 대부분 투자의 목적이 아닌 투기적 성격을 띰에 따라
폭발적으로 실업이 증가하거나 고용구조가 현저하게
불안정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의 단체협상의 조건은 구
서독 지역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형편없는 상황이며, 이는
노조활동의 상실감으로 이어져 노조원의 감소와 노조활동에 대한
불만족으로 표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서비스 노조(TV)의 벤들(Wendl, M.)은 신자유주의가
사회보장의 철폐에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 사회국가 체제
자체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당면한 투쟁의
목표는 사회국가의 방어투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국가 개념이 70년대에 개량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성격으로 좌파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부정되어왔던 현실에 비추어
보아 이러한 방어 투쟁이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님을
지적하면서, 좌파의 공동행동을 위한 전략대안이 시급함을
역설하였다.
금융노조(HBV)의 티어마이어(Tiermeyer, H.)는 인권과
민주주의는 노조투쟁의 핵심적 요소라고 하면서 현시기에
조응하는 투쟁의 기본적 성격을 제시하였다. 즉, 노조 및
계급운동이 사회운동이 고조되었던 70년대 식의 ‘전부가 아니면
전무’ 라는 식의 투쟁이 되어서는 안되며, ‘부분에 대한
부분’의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가서 과거의 패배로부터
배우고, 새로운 운동을 준비할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운동세력들 간의 협력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3. 에필로그
이상으로 이번 하노버에서 개최된 맑스대회의 주요 부분들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았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번 대회는 학술
모임의 성격이 아닌지라 논자들의 분석 내용 및 미래전망과
관련한 입장은 다소 산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우리와는 또 다른 고민과
투쟁의 제약 (?)이 있는 탓인지 원론적이기도 하다.그러나
공통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1996년 영국 맑스주의 연보
“사회주의 명부”(Socialist Register)에서 무제한적인 듯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신조로 익살스럽게 표현된 ‘티나’(TINA:
There is noalternative)가 신자유주의 정치 프로젝트의
의도와는 달리 도처에서 ‘세계화의 한계’(알트파터)를
드러내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좌파도
아닌 국제 금융계의 거물 게오르그 쏘로스의 “열린 사회의 가장
큰 적은 더 이상 공산주의의 위협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협이다”라는 실토에서 역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Die Zeit
1997년 1월 17일자 인터뷰).
한편, 대회 기간 내내 견해의 차이가 확인되는 장면마다 고성과
야유가 쏟아져 나옴으로써 토론 자체가 부분적으로 중단되는
상황마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는
대양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느꼈던 다른 입장을 지녔던 좌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시도하였고, 또 그것이 불가능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비 맑스주의 경제학자
쏘로우(Throw, L.) 조차 “20 세기 말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모든 문제들이 재차 사회주의 운동을 부르고 있다”고 할 정도의
현실이라면,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걸음은 내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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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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