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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좌절과 도전

현장에서 미래를  제21호
채만수

특집1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좌절과 도전





채 만 수(부소장)




1. 잠시 방황하고 머뭇거리기는 해도......

시간의 흐름은 이제 그것을 현실감 없는 ‘기억 속의 역사’이게끔 하고 있지만 7⋅8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돼 버리고, 동유럽과 옛 쏘련 지역의 사회주의 국가체제들이 연이어 무너져 내릴 때, 부르조아 이데올로그들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야말로 인류사에 종국적이고 인간성에 가장 적합한 체제라며 ‘역사의 종말’을 노래하였고, 세계의 노동자 계급은 ‘자본의 승리’를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돌연 자본은 역사의 당연한 주체로 나섰고, 그리하여 ‘국제화’니 ‘세계화’니 ‘지구촌화’니 하는 말들이 그 행위 주체가 자본임을 명시하지 않고 범람하여도 대개는 ‘누구의’ 혹은 ‘무엇의’ ‘국제화’며 ‘세계화’인지 문제의식조차 가지려 하지 않았다. 자본은 이제 올마이티(almighty)한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세계가 경의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80년대의 투쟁의, 특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활기가 아직 대중 속에 살아 용트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투쟁 동력이 심대한 타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전망과 지향은 어쩔 수 없이 ‘조정’과 후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진보’의 깃발을 높이 흔들면서 80년대 중반 이래의 역동적인 투쟁과 운동에 편승해 있던 인텔리들의 다수는 동유럽에서 전개되는 사태를 보면서, 마치 좌초한 배에서 도망쳐 나오는 쥐떼들처럼, ‘노동자호’를 탈출하여 ‘자본호’로 옮겨 탔다. ‘사회구성체’와 ‘변혁’이니 하던 그들의 담론은 이제 ‘유연생산체제’니 ‘다품종 소량생산’이니 ‘포스트 포디즘’이니 ‘포스트 모던이즘’이니 하는 것을 예찬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거대이론을 버려야 한다”는 정말 거대한 주장을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껄여 댔다.
그러나 역사는 잠시 방황하고 머뭇거리기는 해도 멈출 수는 없는 것인 듯, 최근 수년 사이에 상황은 빠르게 반전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등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대략 1992년 혹은 1993년을 계기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되살아나서, 근래에는 그 투쟁의 규모와 강도가 ‘전후(戰後) 최대’의 기록을 경신해 간다는 보도를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강국을 머리에 이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노동자계급과 농민들의 투쟁이 새롭게 거세 지고 있는데, 그들의 기치는 놀랍게도(?) ‘신자유주의 반대’이다. 그리고 지난 연말⋅연초에 한국의 노동자들이 ‘노동법 및 안기부법의 개악’에 항의하여 영웅적으로 벌인 총파업에 대해서 세계의 노동자 계급은, 그것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면의 투쟁으로 받아들이면서, 열렬한 연대를 보내 주었다. 동유럽과 옛 쏘련 지역의 상황도, IMF 등 국제기구와 열강의 ‘재자본주의화’의 염원을 담은 막대한 지원과 공작 그리고 현지 정권과의 협력 및 대중에 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혼미를 거듭하면서 애초 대개가 당연시(?) 했던 재자본주의화 = 시장경제화의 전망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


2. 동유럽 및 옛 쏘련에서의 사태

우리는 옛 쏘련 및 동유럽 국가들에서 지난 수십 년간 정확히 어떠한 일들이 벌어져 왔고, 어떻게 해서 그들의 ‘사회주의’가 붕괴하기에 이르렀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그들 사회와 우리 사회 사이에는 정말 ‘철의 장막’이 쳐져 있었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사회에 관한 정보란 언제나 일방적인 것이었으며 대개는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기껏해야 ‘여과’(濾過)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의 일방성은, 비록 그 정보가 과거에 관한 것일지라도, 아직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굳건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동유럽과 옛 쏘련 지역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모른다’는 대답으로만 일관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런 저런 해석을 구하게 되는데, 그러한 조건 속에서 어떤 이들은 말한다.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의 붕괴 원인은 ‘스탈린주의’라고. 이때 ‘스탈린주의’란, ‘피의 숙청’으로까지 묘사되는 무자비한 정치적 억압, KGB로 상징되는 정보⋅공포정치, 당에 의한 권력의 독점, 관료주의, 그에 따른 새로운 특권계급의 등장과 대중의 정치적 소외, 집단농장화 등등을 가리킴은 물론이다. 쏘련 및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가 비록 빵 문제는 해결했을지 몰라도 그러한 스탈린주의 때문에 대중은 사회주의에 대해서 염증을 내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들의 경제적 창의성과 능동성을 죽이기에 이르러 사회주의는 위기에 처했고, 결국 붕괴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러한 거대한 사회체제가 붕괴되기까지 수십 년간에 걸쳐서 행해진 외부로부터의 경제봉쇄나 파괴 공작, 그리고 정치⋅이데올로기적 공작을 감안하더라도, 실제로 그러한 ‘스탈린주의’가 체제 붕괴의 내적 원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주장은 사실은 아무 것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스탈린주의가 왜 발생했으며, 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추상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대답은 “러시아 혁명과 동유럽의 사회주의화는 사회주의화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생산을 위한 물질적 = 생산력상의 조건을 결(缺)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다. 즉, 20세기의 혁명은 이른바 ‘제국주의 체제의 약한 고리’가 파열한 것이어서 그 지역은 사회주의를 위한 높은 생산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 물질적 조건을 짧은 시간 안에 창출해 내려는 정치적 지향이 외부로부터의 파괴⋅공작에 대한 대응과 어우러지면서 이른바 ‘스탈린주의’를 탄생시키고 배양했으며, 결국은 그 무게에 무너졌다는 것이 우리의 해석이다.
그러한 조건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동유럽과 쏘련의 사회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자본은 동유럽과 쏘련 지역의 ‘재자본주의화’를 전망했다. 그러나 상황은 지금 명백히 그들의 원망(願望)을 배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동유럽과 쏘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회주의 정권의 정치적 강제만 없다면” 금방이라도 해체될 것처럼 주장되던 동유럽과 쏘련 지역의 ‘집단농장들’은, 그것을 해체하려는 ‘개혁파 정권들’의 무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강히 그 집단적 소유⋅생산양식을 고수하고 있다. 자본주의화를 지향하는 ‘개혁파 정권들’은 ‘사회주의적 계획 생산’을 폐기하고 생산과 분배를 시장기능에 맡기려 들고 있는 데에 대항해서 노동자들은 공장과 광산, 그리고 노동방식에 대한 쏘비에트적 통제권을 쉽사리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생산은 혼란과 축소를 거듭하면서, 대중의 생활 상태는 현저히 악화되고, 그에 따라 정치적⋅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수개월에 걸친 임금 체불에 항의하여 지난 3월 27일 러시아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항의 파업과 시위를 벌였을 때, 옐친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자본 소유 언론 매체들은 “겨우” 200만 명만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친옐친적인 러시아의 ‘자주노조연맹’(Federation of Independent Unions : FNPR)조차, 대중의 위세에 눌려서, 7,200만 노동인구 가운데 1,700만 내지 2,000만 명의 노동자가 시위나 파업에 참가했다고 보고했다. 전국의 1,300개 도시에서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는데, 친옐친적인 FNPR의 지도부는 파업의 요구사항을 “일자리, 임금, 그리고 사회보장”에 한정하려고 하면서 그들의 지방조직들에게 “보안군(保安軍)과 협력하여 파업이 알바니아적인 투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령했지만, 발틱해로부터 극동에 걸쳐서 많은 시위대들은 쏘비에트의 적기(赤旗)를 들고 나와 “알바니아”, “쏘련”, 그리고 “옐친 도당을 재판에 회부하라”라고 외쳤다.
모스크바에서의 중심 집회에서는 공산주의자 연사(演士)의 연단 접근이 금지되고, FNPR의 의장 유리 쉬마코프(Yuri Shmakov)는 적기를 든 시위 군중들을 “앞잡이들”(provocateurs)이라고 비난했지만, 수 천 명의 군중이 ‘일하는 러시아 운동’(Working Russia Movement),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Russian Communist Workers party), 그리고 ‘러시아연방 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Russian Federation) 등의 깃발 뒤를 행진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일하는 러시아 운동’의 대열은 알바니아 노동자들의 봉기를 지지하는 깃발을 들었다.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의 사태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이 ‘자본주의화’한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이루어진다는 것, 곧 그 지역의 수 억의 직접생산자, 즉 수 억의 노동자 농민이, 이제까지 그들이 어떤 형식으로든 보유하고 있던 생산수단, 토지와 공장에 대한 소유권을 박탈당하고, 무산의 임금노동자로서 자본-임노동관계에 편제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그야말로 ‘모공(毛孔)마다 선혈이 뚝뚝 듣는’ 잔혹한 과정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본주의의 생성기에 상대적으로 사회의식이 빈약했던 봉건농민들조차도 피의 저항을 거듭했던 그것인데, 동유럽과 옛 쏘련 지역의 노동자 농민들이 과연 그 과정을 제정신으로 감내할 것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다.


3. 유럽통합과 서유럽의 노동자들

지난 4월 21일에 프랑스의 쟈크 시라크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고 내년 3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을 앞당겨 5월 25일에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하였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날 TV와 라디오를 통한 특별 연설을 통해서, “국가의 이익이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며, “나는 향후 5년 동안 지속될 변화의 규모와 속도에 대해 국민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명백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는데, 이는 오는 1999년 1월 1일로 예정되어 있는 유럽연합의 ‘단일통화’ = 유로(Euro)의 창설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수년 전부터 유럽연합,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태리, 벨기에 등의 독점대자본들은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강화하여 오는 99년 1월 1일을 기해 유럽통화연맹(EMU)과 그에 기반한 단일통화를 창출할 것을 추진하고, 이미 지난 95년 12월에는 마드리드 정상회담에서 그 단일통화의 명칭을 유로(Euro)로 확정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단일통화의 창출을 합의한 유럽통합 조약인 지난 92년의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은 EMU 참가의 조건으로 낮고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인플레이션, 이자율, 환율 등 몇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 통합 지향국들을 괴롭히는 조건이 연간 예산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그리고 정부 부채, 즉 누적재정적자가 GDP의 60% 이내로 수렴해야 한다는 이른바 ‘수렴’ 조건이다. 99년의 EMU 창설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금년 내로 이 조건을 충족시켜서 내년 4월에는 ‘통과’ 판정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유럽연합 국가들 가운데 이들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나라는 룩셈부르크 한 나라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유럽통합과 단일통화 창설에 가장 열성인 프랑스와 독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 국가는 이들 수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가히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있어서 그 방법은 ‘긴축예산’, 즉 사회보장 예산지출의 대폭적인 삭감과 국영기업의 민영화이다. 그리고 이들 조치는, 부르조아 언론의 표현을 빌면 ‘인기가 없는’ 것들이어서, 불가피하게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면서 계급투쟁을 격화시키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금년에 이들 조치를 강행하고 나면, 내년 3월의 총선에서의 집권 우파연합의 참패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금년에 총선을 치르고 나서 그러한 긴축조치를 강행하려는 것이 이번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앞당기는 시라크의 계산이라고 한다. 지난 93년의 총선에서 집권 우파연합은 총의석 577석 가운데 460석 이상을 획득해서 지금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다가올 총선의 결과는 물론 ‘뚜껑을 열어 봐야’ 알겠지만, 여론조사 기관들은 집권 우파연합이 150여 석을 상실해서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길 것으로 예상하거나, 심지어는 그러한 결과를 바라는 시라크의 계산을 착오라고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라크는 ‘의회 해산 - 조기 총선’을 선택했다.
이는 두 가지를 얘기해 준다. 우선, 단일통화를 창출하려는 프랑스 대자본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하고 단호한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다음엔 총선 이후에 우파 정권이 밀어붙일 ‘긴축조치’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프랑스에서의, 그리고 나아가 서유럽에서의, 계급 대립이 얼마나 격렬할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프랑스는 이미 이들 문제를 둘러싸고 결코 가볍지 않은 탐색전을 치른 바 있다. 지난 95년 11월 말에서 12월에 걸친 투쟁이 특히 격렬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태우의 2,000억 비자금’ 파동에 이목을 빼앗기고 있을 그 당시 프랑스의 노동자 계급은 한달 이상에 걸쳐서 수도 빠리는 물론 프랑스의 주요 도시, 거의 전역을 거의 마비상태로 몰고 갔다. 예산적자의 축소를 위해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고 국철(國鐵)의 일부 노선을 폐지하겠다는 우파 알랭 쥐페 총리의 계획에 항의하는 철도 노동자들 중심의 파업과 시위로 시작되었는데, 초기에 쥐페 총리는 ‘200만이 길거리에 나서면,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200만이 훨씬 넘는 노동자들이 연일 시위하면서 전국의 교통을 마비상태로 몰고 가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에서의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는 비단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95년 프랑스의 노동자 계급이 프랑스를 마비시키고 있을 때 당시 벨기에 노동자들도 벨기에를 마비시키고 있었고, 그에 앞서 이태리 노동자들도 아주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96년 6월에는 30만 명 이상의 독일 노동자들이 독일이 수도를 본으로 정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를 본에서 전개했고, 지난 3월에도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정부의 탄광보조금 삭감에 반대하여 라인 지방에서 연일 시위를 벌여 정부의 양보를 얻어냈다. 그리고 금년 초에는 프랑스 자동차 자본인 르노(Renault)의, 3,100명 이상의 노동자를 실업으로 몰아 넣는, 벨기에 공장 폐쇄 계획에 항의하여 유럽의 자동차 노동자들이 벨기에,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연대파업을 벌였다.
지금 서유럽의 상황은 엄중하다고 할 수 있다. 공식적인 그것으로도 실업률은 평균 12%대이고, 청년들의 실업률은 대개의 국가에서 20%를 훨씬 넘고 있다. 서유럽 경제의 견인차라고 하는 독일의 경우에도 이미 지난 1월말로 실업률이 13%대에 육박해서 실업자 수가 465만 명을 넘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실업률’일 뿐 실제의 실업자 수는 700만 명에 이른다고 이미 지난 해 초에 중앙통계국 간부가 언론에 말하고 있다. 물론 1933년 당시와 지금은 인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수평비교하는 데에 문제는 있지만, 히틀러가 집권하던 1933년의 연간 평균 실업자 수가 500만 명선이었다고 하니, “지금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처럼 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염려가 전적으로 과장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유럽의 이러한 고실업률은 부분적으로는 90년 이래 지속되고 있는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그 원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제구조 자체, 곧 과학기술혁명의 성과의 자본주의적 이용에 따른 구조적인 성격의 것으로서, 경기의 호전으로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격화되고 있는 고율 실업화의 경향을 역전시킬 수 있는가는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격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파시즘을 고취시키고 있다. 지난 2월의 지방 보궐선거에서 4번째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프랑스 전역을 놀라게 한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성장이나 우파 정권에 의한 인종주의적 반이민법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서유럽의 노동자계급에게는 독점대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대항 못지 않게 노동자 대중을 파고드는 신나치즘, 파시즘의 봉쇄 및 극복도 당면한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서유럽의 대자본들이 유럽통합과 단일통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아주 장래에 거기에서 벌어질 거대한 계급투쟁을 목격할 것인데, 서유럽 노동자계급은 오랫동안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사민주의의 덫을 벗어 던지는 날 스스로를 해방시킬 충분한 조직적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미국, 새로운 기회의 땅

미국의 대부르조아들은 미국을 가리켜 ‘기회의 땅’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대부르조아들은 대개가 본래의 거주지 유럽에서 뿌리가 뽑혀 ‘신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건너온 자들로서 거기서 기회를 잡은 자들이다. 그리고 미국은 아직도, 물론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는 해도, 유럽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신분 상승이 일어나기도 하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반대 측면은 절대 다수에 대한 당연히 무자비한 착취와 수탈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노동자 대중의 생활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실상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3월 3일의 “미국의 감량 경영”(The Downsizing of America)이라는 특집으로 충격을 준 것처럼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같은 부르조아 언론조차도 노동자들의 대량실업과 빈곤화를 외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특히 대자본에 의한 노동자 공격이 얼마나 냉혹하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지난 해 3월 ‘체이스맨허턴’(Chase Manhattan) 은행과 ‘케미컬’(Chemical) 은행이 통합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들 은행이 그들의 지배인들에게 내린, “‘새로운’ 조직을 위해 선발되지 않은 피고용자 면담 요령”, 즉 ‘해고 통지 요령’을 통해서 보기로 하자.

‘새로운’ 조직을 위해 선발되지 않은 피고용자 면담 요령(Communication Guidelines Manager Meeting With Employees Not Selected for the "New" Organization : 발췌)
면담시간 : 대략 5~10분 이내이어야 하고, 가능하면 아침 일찍이어야 한다.
면담 장소 : 회의실과 같은 은밀하고 중립적인 장소이어야 한다.
내용 : 1) 통지는 짧고, 간단하며 명확하게 할 것.
2) 동정적인 태도를 취하되, 타협해서는 안됨.
3) 침묵해서 상대방이 해고 소식에 반응할 기회를 줄 것.
4) 수세적이 되어 논쟁을 벌이지 말 것.
5) 변명하지 말 것.
6) 해고 결정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 것.
7) 해고자의 과거 공적에 대해서 논의하지 말 것.
8) (통합에 따른) 재배치 과정, 분리 수당, 등등 자세한 것은 인사부장에게 미룰 것.
자료 보안 : 비밀을 취급하는 컴퓨터나 해고자 파일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것.
반드시 해고자의 감정적 반응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해고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며 최고위층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재차 주지시킬 것.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인사부장에게 알릴 것. 그러면 그가 경비 요원이나 의료 요원을 대기시킬 것임.(이상 : “뉴욕타임즈”, 1996. 3.3.)

지난 해 ‘신노사관계 구상’에 따른 ‘노개위’ 국면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처럼 한국의 재벌들과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이 부러워해 마지않는 미국의 대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무자비한 공격은 비단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예산 적자’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작년 여름에는 ‘복지개혁법’(복지파괴법)이 입법되어 금년 4월 1일부터 부분적인 시행에 들어갔고, 비등록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물론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소수민족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공격이 강화되고 있고, 반이민-백인우월주의를 고취하는 파시즘 선동이 강화되고 있다.
당연히 격화되고 있는 계급 대립으로, 미국의 노동자 계급은 95년 8월에 지난 16년 이상을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취하면서 국내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배신하고, 중남미에서는 CIA의 앞잡이 역할을 해 왔으며, 중동과 아시아에서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뒷받침해 온 미노총(AFL-CIO)의 커크랜드(Kirkland) 지도부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새로운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지난 해 6월에는 100만 명 이상의 조직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당(Labor Party)을 창당하였는데, 그 동안 점점이 분열되어 있던 변혁적 세력들을 통합시키는 구심체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찰컨대, 자본의 대대적인 공세에 맞서서 미국에서는 지금 활발하게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투쟁들이 조직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인식도 급속히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해 가면서 정치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 본래는 ‘행려병자’인 ‘홈리스’(Homeless)들도 그들의 수가 수백만으로 증가해감에 따라서 더 이상 행려병자이기를 이미 그만두고 ‘홈리스 조합’(Homeless Union)으로, ‘복지권을 위한 연합’(Association for Welfare Rights) 등등으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교육하면서 맹렬한 정치적 투쟁을 벌여 가고 있다. 1992년에는 빈곤과 실업에 대한 투쟁이 ‘L.A. 흑인 폭동’이라고 하는 왜곡된 형태, 인종 폭동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지금은 ‘인종주의 분쇄’, ‘소수 민족 단결 투쟁’이 흑인 사회와 중남미로부터의, 그리고 아시아로부터의 이민 사회의 새로운 구호가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증권가 월스트리트는 사상 유례없는 주가의 폭등을 기록해 왔다 - 물론 조만간의 폭발을 예비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감옥의 수감자의 수 역시 100만을 훨씬 넘으면서 사상 신기록을 기록해 오고 있다 - ‘예산 적자’를 내세워 사회보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도 군대, 경찰, 감옥은 증원, 증설하면서 말이다. 미국에서의 계급 투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의 표현임은 물론이다. 미국의 노동자 계급에게 이제야 미국은 ‘기회의 땅’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5. 지금까지의 역사 변화가 그러했던 것처럼......

가끔 망각하기는 하지만, 아주 완고한 사람이 아니면, 인류의 역사가 원시의 공동체적 공산사회에서 노예제 사회로, 봉건제 사회로, 그리고 자본제 사회로 변화해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하는 것인데, 역사사회과학은 거기에 대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서로 조응하지 못할 때 계급투쟁을 통해서”라고 답한다.
오늘날 가속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은 고도의 생산력을 획득해 내고 있는데, 그것이 이윤의 생산을 위해서 자본주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특히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대량실업과 저임금 노동, 그에 따른 사회적 긴장과 대립, 억압을 양산하고 있다. 인류를 장시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고도의 생산력이 지금의 조건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재앙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역사상의 또 다른, 그리고 어쩌면 최후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거대한 비조응이 있으며,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역사는 거대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면, 현실을 잘못 파악하는 것일까? 한/노/정/연

1997-05-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