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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5월 영국총선, 누구의 승리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오건호

97년 5월 영국총선:누구의 승리인가?


오 건 호 / 해외연구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국제노동1


단지 관찰자로서 외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총선은 영국 사회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이 글은 TV. 라디오, 신문에 나타난 선거운동, 지역펍(생맥주집)에서 주민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대학기숙사, 노조교육과 총회에서 만난
노조활동가들로부터 얻은 필자의 관찰기이다.



18년만의 승리.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압승

투표날인 5월 1일 밤부터 개표방송이 시작되면서 기숙사 주변은 터져나오는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한국의 85년 2.12총선에서 야당후보가 당선되었을 때처럼, 곳곳에서 노동당후보의 당선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성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노동당의 압승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론조사는 15∼20%의 압도적인 노동당 우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크게 이길 줄은 노동당도 확신하지 못했었다.
영국정치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지배하는 양당 의회구조에 기반하고 있다. 중도좌파적인 ‘자유민주당’이 제 3당으로 존재하나 세력은 약한 편이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으로서 지역간 사회문화적 독자성이 매우 강하다. 런던을 끼고 있는 잉글랜드가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영국을 주도하기 때문에 이들 세 지역의 자치 움직임이 계속 일고 있다. 이러한 지역구조에 기초한 지역정당으로 스코틀랜드국민당, 웨일즈당, 그리고 북아일랜드에 5개의 지역정당이 있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여러 의석을 차지하며 약진을 보였다.
영국정치는 2차 대전 이후 70년대까지 대체로 보수,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45~51:노동당, 51~64:보수당, 64~70:노동당, 70~74:보수당, 74~79:노동당). 그러나 79년 이래 18년 동안 보수당의 집권이 계속되면서 계속 야권에 머물러야 했던 노동당은 이제 43살의 젊은 리더 토니 블레어(Tony Blair)를 내세워 권력으로 돌아왔다. 20대 초반의 젊은 영국 노동자나 대학생들에게는 사실상 처음 접하는 노동당 정부이다.

1992, 1997년 총선결과

1992년 총선
1997년 총선
의석수
득표율
의석수(%)
득표율
보수당
336
43
165(25)
31
노동당
271
35
419(64)
45
자유민주당
20
18
46 (7)
17
기 타
24
4
29 (4)
7
계
651
100
659(100)
100

표에서 보듯이, 노동당이 차지한 의석수는 전체의석의 2/3에 거의 육박하는 419석으로 야당들의 의석을 합한 것보다도 179석이나 많다. 노동당은 2차 대전 이후 영국 의회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다수의석을 가진 거대여당이 되었다. 이러한 압도적인 다수의석의 창출에는 노동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뿐만 아니라 영국 선거제도도 큰 몫을 했다. 영국의 선거제도는 전국구 비례대표제 없이 보통 6만~8만 유권자로 구성된 선거구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이다. 이 덕택에 노동당과 보수당의 득표율의 차이는 14%이나 의석수의 차이는 39%(254석)로 거의 세배로 증폭되었다.
보수당은 이제 의회의 1/4만을 차지한 ‘잉글랜드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 가지고 있던 의석(각각 8, 11석)을 노동당, 자유민주당, 지역정당들에 모두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내각에 참여하였던 중견 정치인들의 대다수가 ‘실업’ 상태로 내쫓기었고, 역대로 보수당 안정의석으로 여겨오던 여러 선거구가 노동당으로 넘어갔다.

노동당의 ‘신노선(New Labour)’

이번 선거과정을 한 언론인은 ‘따분’했다고 표현했다. 노동당의 신노선이 주요한 이슈들에서 보수당과 별반 정책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투표율은 71.3%로 다소 저조하였다(87년 75.7%, 92년 77.7%). 노동당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발본적이라고 평가되는 신노선을 작년 6월 공식 발표하였다. 집권 이후 국정정책을 담고 있는 1만자에 걸친 신노선의 ‘정책선언(The Road to the Manifesto)’은 종래까지 노동당이 추구하던 주요정책을 오른쪽으로 전환하였다.
정책선언의 내용을 보면, 고세금․고재정․완전고용 등의 전통적인 사회정책의 포기, 80년 이후 보수당 하에서 입안된 노동관계법의 유지, ‘탄력적인’ 최저임금기구의 신설, 유럽연합의 사회헌장 조인 등이다. 이중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 정책선언이 발표된 직후 노동당내 좌익과 노동조합들은 노동당의 우경화에 분노했으며, 보수당마저 자신의 고유한 정책을 노동당이 훔쳐갔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더욱이 지난달 선거운동시 발표된 선거정책에서는 불과 5개월 전 정당대회에서 확정한 철도의 재국유화를 포기하고 민영화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미 많이 민영화되어 버려 다시 국유화하는 데에 재정부담이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년 신노선이 발표되었을 때, 블레어가 주창하는 신노선의 이념적 근거는 ‘사회-주의’(Social-ism)라는 한 신문사설의 지적은 날카롭다. 19세기 영국 좌익정치운동의 기반이 소유의 공유에 입각한 근본적 사회주의(radical sociailsm)이었다면, 2차 대전 이후에는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개혁주의적 사회주의(reformist socialism)이었고, 이제 노동당의 신노선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함께 긴밀히 동거해야 한다는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비꼬았다.

신노선은 정책전환의 ‘급진성’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전략의 ‘의외성’으로 놀라움을 던졌다. 노동당의 선거운동은 속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중간계층과 비지니스맨을 상대로 추진되었다. 첫번째 방영된 노동당의 텔레비젼 정치광고(5분)에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기업가들이었다. 전직 영국중앙은행 고문에서 대기업 회장에 이르기까지 정치광고 방송에 배우로 등장하여 한결같이 신노선의 ‘기업가 정신’을 찬양하며 노동당 지지를 호소하였다. 블레어가 경제계에도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풍문을 입증하는 작품이었다. 뒤이어 보수당의 실정을 비판하는 정치광고, 블레어의 리더쉽을 부각시키는 정치광고 등이 방영되었으나 일반서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광고는 없었다. 기존의 노동당 지지자들은 결국 노동당을 찍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확한’ 선거전략을 노동당은 가지고 있었다.


선거에서 제기된 주요 쟁점들

선거과정에서 각당이 내세운 정책을 보면 모두 교육, 의료, 고용정책의 혁신을 강조하였는데, ‘정책선거’에 낯설은 관찰자에게는 놀라울 뿐이었다. 이슈가 되었던 쟁점들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유럽정책 : 1999년 실시되는 유럽 단일통화의 가입을 둘러싼 논의로 보수당 지도부는 원래 ‘관망후 결정’으로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으나, 선거운동 중 민족주의 무드가 고양되면서 급격히 가입보류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보수당은 사분오열되었고, 노동당도 기존의 친유럽정책에서 ‘이후 결정’으로 한발 물러섰다.
- 사회헌장(Social Chapter) 조인 : 유럽연합 국가 중에 영국만 사회헌장을 비조인한 상태로 노동당은 집권 시 조인할 것임을 명시했다. 사회헌장이 조인되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제, 종업원평의회 등에 대한 법적 권리를 얻게 된다. 보수당은 영국경제의 타격을 이유로 반대했다.
- 세금동결 : 보수/노동 양당 모두 소득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반면 자유민주당은 소득재분배를 위해 누진소득세를 인상해야 한다며 노동당 보다 ‘좌익적’인 세금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헀다.
- 스코틀랜드/웨일즈 자치 : 두 지역이 제한적인 조세권을 가지는 독자의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보수당은 분리주의라며 반대하였고, 노동당은 지역별 국민투표 후 그 결과에 따르겠다며 자치주의에 우호적 정책을 내세웠다.
- 뇌물수수 : 한 보수당 중진의원의 뇌물수수가 문제시 되었는데, 당사자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보수당의 도덕성은 타격을 입었다. 야당의 지원하에 한 BBC기자가 ‘무소속 반부패후보’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보수당의 선거분석 : ‘보수주의는 여전히 옳았다’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영국민들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보수당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거개표가 거의 마무리된 새벽 존 메이저(John Major) 수상은 ‘우리는 졌다, 그러나 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새로 시작하자’라며 선거패배를 시인하고 곧바로 보수당 당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선거 전부터 지도력의 취약성이 제기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메이저의 짤막한 패배언급을 제외하고는 보수당으로부터 뚜렷한 ‘패배의식’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선거 일주일 후 보수당 당수 경선에 출마한 전직 장관은 ‘노동당의 신노선이 선거에서 성공했듯이 보수당도 신노선을 채택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는 기존의 보수당 정책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블레어가 내세운 신노선은 다름아닌 우리의 것이다. 그들은 정부긴축재정, 세금동결, 민영화 등 우리의 정강정책을 그대로 빌려갔다. 만약 노동당의 신노선이 승리했다면 그것은 보수당의 정책이 여전히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패배한 이유는 유럽정책을 둘러싼 당내분이 너무 심했고, 보수당 의원이 연루된 스캔들 사건 등이 가세되면서 보수당 연속집권에 식상한 국민들이 보수당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당수경선 후보인 전직 재무장관은 말한다. ‘18년 간의 보수당 집권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덕택에 영국은 이제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실업율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현격히 낮으며 경제는 성장궤도에 서 있다. 노동당은 이러한 보수당의 성과를 그대로 물러받은 행운아다’. 보수당의 ‘공식적인’ 선거패배 분석은 한결같다. 당내분, 장기집권, 정치스캔들 등 집권당으로서 ‘행동’의 잘못이었지 ‘정책’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보수주의에 지쳤다

그러나 보수당의 해석은 너무 궁색하다. 선거 전 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 텔레비젼 정치토론에서 그들이 낮은 실업율, 영국 경제의 붐을 주장할 때마다 국민들은 한결같이 야유를 보냈다. 영국 정치에서 텔레비젼은 매우 중요한 정치의 장이다. 각 채널마다 정규적으로 정치토론 프로그램을 주요 방송시간에 방영하며, 영국 국영방송 2(BBC2)는 평상시 오후 3시에서 4시까지 한시간 동안 매일 국회의사당의 토론과정을 생중계한다.
도대체 어디에 붐이 있냐고? 공식통계청이 실업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발표를 해도 국민들은 이를 거의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실생활에서 실업의 감소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경제의 붐’과 실제 생활의 ‘빈곤화’라는 괴리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통계수치의 비적합성’과 ‘소득분배구조의 악화’. 정부는 작년 말 실업율(claimant unemployment)이 6.9%(192만명)라고 발표하였다. 이는 9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실업수준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실업율은 ‘실업수당실업율’(claimant unemployment, 실업수당을 신청하여 수혜를 받는 사람의 수)과 ‘표본조사실업율’(Labour Force Survey unemployment, ILO,OECD의 실업정의에 기초하여 매분기 6만 명을 설문조사. 구직의사가 있으나 주간 1시간도 일을 하지 못한 사람의 수) 두 가지가 있다. 작년 말 전자는 192만 명, 후자는 226만 명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보수당은 79년 집권 이후 실업수당 수혜규정을 31차례나 까다롭게 바꾸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실업 숫자를 낮추는 데 기여했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표본조사 실업율' 역시 국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구직의 어려움에 지친 구직 좌절 노동자의 수가 상당하고 전체 노동시장에서 파트타임노동이 이미 1/4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종래의 전통적인 실업 통계치는 그 타당성이 의문시 되기 때문이다. 독립연구기관인 ‘실업연구소(Unemployment Unit)’의 보고서는 실제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의 수가 540만 명이라고 발표하여 정부의 공식발표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서로 실업을 계산하는 방법이 다른 데서 연유한다.
특히 선거운동 과정에 발표된 ‘보수당 집권동안 빈부격차가 확대되었다’는 보고서는 다수 국민들이 보수당에 대해 느끼는 반감에 ‘이유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보수당은 최저임금제를 폐지했고, 의료체계를 상업화했으며, 연금수당을 낮추고 이제 연금제도를 민영화하고 있다. 보수당은 기존복지(welfare)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 일자리와 복지가 결부되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내세웠지만, 일반 서민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도 없고, 복지도 사라졌다’고 보수당을 비판한다.
이 때문에 보수당이 연일 영국경제의 ‘경쟁력’을 내세워도 이를 지지하는 여론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선거 과정에서 ‘경쟁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공정성과 정의’를 둘러싼 이야기에 압도적으로 묻혀 버렸다. 보수당은 두 번째의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쟁점을 선거과정에서 피하는 것이었으나 국민들은 계속 이를 최대 쟁점으로 올려 놓았다.
보수당은 분명히 졌다. 단지 행동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보수주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 때문에 졌다. 무엇보다도 보수당이 ‘회피하고 있는’ 중요한 분석은 보수당이 영국 사회의 공정(fairness)과 정의(Justice)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의 중심에는 노동조합과 서민층, 시민단체 등이 서 있었다.


우리는 ‘비판적 지지’일 뿐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노동당의 해석은 단순 명확하다. 선거 승리 다음 날 수상관저에 입성하면서 가진 첫 공식연설에서 블레어는 ‘국민들이 투표로 보여준 노동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 이것은 다름아닌 노동당이 채택한 신노선의 승리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수상관저 앞에 몰려 든 블레어 지지자들의 환호성을 듣는다면, 노동당이 차지한 의석수를 잠시만 떠올린다면, 노동당의 신노선이 이번 선거에서 다수 국민의 용인을 받았다는 해석은 일리가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관찰자’로서 필자가 접한 경험은 그것과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노동당을 찍은 국민들이 노동당만큼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당 후보의 낙선에 환호성을 올리고, 노동당이 무언가 새로운 개혁을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계속 씁쓰레이 우려섞인 한탄을 내 뿜는다. 노동당에 표를 주고, 노동당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으면서도 노동당의 신노선(New Labour)을 언급할 때 마다 종종 앞에 ‘bloody(염병할)’라고 형용사를 붙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블레어나 노동당의 정치인이 텔레비젼 토론에 나오기만 하면 매번 첫 번째 제기되는 방청석의 질문이 있었다. “나는 내내 노동당 지지자였다. 물론 이번에도 노동당을 찍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노동당과 보수당의 차이가 무엇이냐.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 긴축국가재정을 운영하겠다, 보수당시절 입안된 노동관계법을 유지하겠다, 민영화를 인정하겠다,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겠다, 어떻게 이것이 노동당일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방청석의 질문자는 그가 약속한 대로 노동당 후보에 표를 주었을 것이다. 뿌리깊은 양당 구조에서 일반 서민이 투표할 수 있는 대안은 노동당이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사표를 방지하고 보수당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될만한 야당후보’ 노동당 후보를 찍는 것이었다.
노동조합도 신노선의 ‘노조 멀리 하기’에도 불구하고 예외없이 노동당에 표를 주어야 했다. 서구 좌익정당이 노동조합운동과 별개로 좌익 정치활동가들에 의해 창당된 것과는 달리 영국 노동당은 의회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노동조합운동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에 의해 정치자금이 조성되었다(1900년 창당시 ‘노동자대표위원회’였으나 1906년 노동당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주요 노조들은 노동당의 가입 멤버이고, 노동당 재정의 반 이상이 노조 규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정치자금(Political Fund)으로 충당되며, 노동당의 지역활동이나 선거운동은 지역 노동조합 활동가에 의해 전담되어 진다. 이와 같은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아무리 노동조합이 노동당에 대해 비판적일지라도 선거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노동당에 가맹된 노동조합 중앙은 조합신문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노동당에 투표할 것을 공식적으로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수의 조합원들에게 ‘비판적 지지’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선거 10일 후인 5월 11일부터 개최된 운수산업 사무직노조(Transport Salaried Staff Association) 연례 대의원총회에 참관한 필자는 신노선에 대한 비판을 직접 발견할 수 있었다. 총회 3일 째 일부 대의원들이 신노선에 항의하며 지금까지 행해지던 노동당 중앙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을 철회하고 이를 노조 이해를 대변하는 특정의원에 한정할 것을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약 65:35의 비율로 부결되기는 했지만, 위원장(현 노동당 전국집행위원)을 비롯한 지도부가 노동당 신노선의 적극적 지지자인 노조에서, 더구나 1926년 영국 총파업 이후 아직 한 번도 전국 파업을 해보지 않은 온건노조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이미 영국 최대노조인 공공부문연합노조(UNISON)와 통신노조(CWU) 등 다른 노조에서도 노동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으며, 이는 6월의 ILO 총회와 가을 노동당 전당대회를 전후해서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좌익정치조직 : 너무나 큰 경쟁자, 노동당

노동조합들이 노동당과 조직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 좌익 정치조직들이 선거과정에서 행할 수 있는 영향력은 지극히 미약했다. 사회주의 노동당(Socialist Labour Party) 사회주의 노동당은 1984~5년 격렬한 광산노조파업으로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notorious’) 광산노조 위원장 스카길(Arthur Scargill)이 노동당을 탈퇴하여 1996년 5월 만든 당이다. 이번 선거에서 사회주의 노동당은 63명의 많은 후보를 내세웠는데, 선거과정에서의 정치선동도 목적이었지만, 60명 이상이 후보를 입후보한 정당에게는 정규방송시간에 방영되는 5분 정치광고의 기회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좌익 정치조직들은 법적 제한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대부분이 트로츠키즘에 기초하여 급진적 체제변혁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 사회주의당(Socialist Party) 등이 각각 63명, 20 여 명의 후보자를 내세워 독자후보전술을 폈으나 그들이 얻은 득표는 미미했다. 조직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사회주의노동자당(Socialist Workers Party)은 보수/노동당이 독점하는 선거제도의 제약 때문에 직접 후보전술을 취하기 보다는 ‘노동당 혹은 사회주의 후보’에 투표할 것을 방침으로 세워 사실상 노동당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투표를 행하였다. 이들 좌익조직들의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은 득표율의 저조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는 점이 다소 흥미롭다. 애초에 양당 선거구조에서 득표의 성공보다는 ‘이미 승리가 예상되는’ 노동당의 한계에 대한 선전선동을 목표로 하였었기 때문이다.


세가지 전선의 승리, 그러나 한 가지의 독점

그러면 누구의 승리인가? ‘신노선의 승리인가?’ 필자는 ‘신노선으로 한정될 수 없는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승리의 주역을 신노선으로 결론내리고 마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노동당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보수당에 대한 14%의 득표우위는 선거 이전에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의 예측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노동당의 신노선이 공식 발표되기 훨씬 이전인, 젊은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로 당선되기 이전(94년 7월)인 보수당의 통화정책이 위기를 맞았던 92년 가을부터 꾸준히 노동당이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지 신노선 때문에 노동당이 승리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번 총선에는 세 가지 전선이 교차해 있었다. 하나는 ‘반여당 전선’이다. 18년 간의 보수당의 지배와 자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의 정권교체 요구였다. 어디고 ‘보수당 후보 떨어뜨리기’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노동당이 당선되든, 자유민주당이 당선되든, 스코틀랜드국민당이 당선되든 모두가 똑같이 환호를 질렀다. 이러한 면에서 너무 오래 집권했다는 보수당의 선거분석은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다. 두 번째는 노동당이 주장하는 ‘신노선 전선’이 있었다. 일부의 부동표와 보수당 지지자들까지 신노선의 ‘더 나은 영국사회 건설(‘Britain deserves better’)’에 동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젊은 당수가 발휘하는 ‘리더쉽 정치’는 신노선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수당의 복지, 사회정의의 파괴와 노동당의 신노선에 반발하는 ‘조직되지 않은 반보수주의 전선’이 있었다.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 충직하게 ‘전술적 투표’를 행했던,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내내 보수당의 반사회성과 노동당의 우경화를 비판했던 목소리였다. 앞의 두 전선은 공히 노동당의 최대 의석이라는 전리품을 획득했다. 반면에 ‘반보수주의 전선’은 조직되지 못한 까닭에 의석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노동당의 옷을 빌려야 했다. 하지만 신보수주의라는 이름을 낳으며 영국사회의 재구조화를 추진한 18년 간의 보수주의 정치를 좌초시킨 의미있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는 노동당의 신노선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세 전선의 승리이다. 결과는 신노선에 의해 거의 독점되었다. 이 때문에 거대 노동당 정부의 미래가 의석수만큼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반여당 전선은 이제 여당인 노동당으로 향할 수 있으며, 반보수주의 전선은 집권노동당과 잠재된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전자는 아마도 노동당 정부의 경제운영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노동당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으로 가시화될 것이다. 후자는 선거에서 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투표를 행하였던 일반 서민층의 복지제도 강화 요구로, 그리고 보수당 시절 입안된 반노동조합법에 대한 노동자들의 노동관계법 개정 요구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1997년 5월 19일) 한/노/정/연

1997-06-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