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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3김시대와 노동자정치

현장에서 미래를  제2호
이해영


‘후3김시대’와 노동자정치



이해영(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 연구위원)



    I.



6.27선거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96년 총선, 9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중기적 정세운동 싸이클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업윤리적 기회주의자’ 곧 정상(政商)을 포함하는 현실정치인의 중기적 정치계획 속에서 이 선거는 소권→중권→대권으로 이어지는 권력투쟁의 마라톤에서 전초전의 의미를 갖는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도 아니고 또 이를 통해 ‘정치발전’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진정 환상은 빨리 버릴수록 ‘유리하다’. 구미와 북미를 비롯한 자본주의 중심국가군에서 봉건권력과 신흥 부르주아지간의 권력분점이 삼권분립이란 산물로 나타났듯이, 지방자치 역시 강력한 지방 영주의 권력이 할거하는 현실을 인정한 타협의 산물이다. 모든 권력이 본질적으로 집중적이라고 할 때, 강력한 절대군주제가 발전해 있었던 프랑스에 비해 독일이 상대적으로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잘(?)’정비되어 있는 것은 강력한 절대왕권의 미성숙에 그 원인이 있다. 독일의 경우 중앙권력이 지역할거권력을 제압할 충분한 물리력이 부재하였고 따라서 협상을 통해 지역권력과 타협하고 그런 다음 이를 통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연방제가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구미와 북미의 현대정치에서 지방자치는 지배블록의 안정화에 필수불가결하다. 지방자치가 갖고 있는 양면성 가운데 대중의 자치능력을 높힌다고 하는 민주주의에 관건적인 측면을 일단 접어 둔다면, 그것은 지극히 복합적인 현대사회에서의 갈등을 ‘센싱(sensing)’하여, 중앙정치화하기 이전에 1차적으로 ‘필터링(filtering)’한다. 그리고 그 압력을 체제가 감당할 정도로 ‘밸빙(valving)’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야당을 포함한 지배블록 전체의 유지와 안정에 지방자치는 이처럼 센서, 필터 그리고 밸브로 기능하는 것이다.

만일 김영삼정부의 실명제 도입이 한국사회의 소유관계의 사실성을 승인하고 이를 ‘합리화’함으로써 한국국가의 조세국가적 기초를 강화한 것이라면, 지방자치제는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지역적 권력관계를 사실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돈에다 이름을 다는, 아니 돈의 소유자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을 통해 돈의 흐름을 통제하고 또 이를 통해 생산관계를 일정정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명제는 한국국가에 소망스러운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지자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는 지자제를 통해―그 자체로 한국국가로 봐서는 나쁘지 않은―지역적 권력관계가 사실화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구색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는 대단히 구체적인 데에 있다. ‘하필이면’ YS의 정적인 DJ와 그에게 소위 ‘烹’당한 JP가 지자제 덕분에 ‘재기’한 것이다. 이는 단지 YS에게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의 진보적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몹시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김씨들’을 통한 씨족 내지 부족정치적인 한국형 지역주의는 우선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닌다.

첫째, 다수 대중 특히 노동자 다수의 이해가 3김이라는 ‘지역대표’들을 통해 제대로 대변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물론 과거라고  해서 달랐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3김에 의한 정치독점으로 인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둘째, 노동자의 이해가 3김구도의 지역성을 통해 여과됨으로써 노동자의 분열을 야기시킬 수 있다. 지역분열이 계급, 계층간의 사회적 분열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이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셋째, 3김간의 지역분할 구도는 노동자의 이해 대변을 위한 정치조직의 형성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3김간의 퇴행적 경쟁구도는 민족분열을 극복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현재 한반도는 ‘4김씨’가 분할 지배하고 있다?). 특히 통일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향후 권력의 향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므로 민족적 이해가 정파적 이해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다섯째, 3김 간의 권력경쟁은 .총자본의 입지를 넓힐 것이며 이것은 당연히 노동운동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II.



6.27선거 이벤트사업(?)의 결과로 지역할거주의를 초래한 원인제공자는 물론 김영삼정권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실패 내지 중단된 데에 기인한다. 취약한 원내 기반하에서 서구적 의미의 보수-자유주의 연림정부형태와 시민사회내 (신)보수블록의 엄호하에 출발한 초기 ‘개혁’의 내용 자체도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물론 보수언론과 연대하여 TK분파를 제거하는 등의 인적 청산을 통해 지배블록을 일정 재편하고 몇 가지 한국자본주의에 유의미한 ‘개혁’(실명제)을 통해 사회의 합리적 재편에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개혁을 적극적인 의미 즉 사회와 경제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정권의 개혁은 시작과 동시에 끝난 것이었다. 이는 6.27직전 대중조작 차원에서 진행된 한국통신사태와 지하철사태에 대한 현정권의 시대착오적 개입에서도 극명히 드러난 것이다. 이를 전후한 이른바 ‘세계화’ 국면은 시작과 동시에 종결된 개혁국면에서 현재 준비 또는 진행 중인 보수화국면으로의 매개 역할을 한다는 것 외에 큰 의미는 없다. 왜냐하면 ‘세계화’라는 속빈 강정 같은 구호를 업지 않고서도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은 보수자유주의적 시장론자들의 주도로 세계시장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강요해 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현 지역분열체제에 대한 유신독재의 매니져였던 JP와 한국정치사에 또 하나의 정치코메디를 더한 DJ의 현실적, 정치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DJ의 경우, 이른바 대중의 ‘민심이반’을 정확히 짚어 내고 여기에 ‘지역등권론’이라는 고리를 걸어 자신의 ‘恨’을 ‘호남인의 恨’으로 또다시 일반화시켜내는 정치기술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5.18기소문제에 대한 기회주의적 태도와 뒤이은 창당코스는 스스로 자신을 ‘호남성주’로 만들면서 지역분할구도를 고착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로써 유신체제에서 생겨나 5,6공을 거치면서 굳어지고 92년 대선에서 극에 달한 지역분열문제는 일시 퇴조를 보이다 또다시 한국정치의 원죄처럼 더욱 공고하게 굳어져 버렸다.

현 3김구도의 특징은 무엇보다 그것이 보수기조하에서 전개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는 어느 정파도 순수히 독자적인 힘으로 정권을 창출하기 어려운 상황에 기초한다. 여기서 문제는 3김간의 힘의 균형점이 현 정치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해 있는 JP―경우에 따라서는 ‘신TK’―주변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힘의 중점이 이전 보다 훨씬 오른쪽으로 이동하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이와 같은 중점의 우향이동을 저지할 만한 의미있는 세력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직 정형화되진 않았지만 20-30대층의 反 내지 非3김 정서와 사회운동의 분발이 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 아무튼 지역주의가 향후 보수화경향과 결합되면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은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III.



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라는 돌발변수에 의해 ‘피다 만’ 3김정치는 특히 87년 대선이후 한국정치를 규정해 온 기본적인 틀거리였다. 그리고 6.27에서 97년 대선에 이르기까지의 정세 역시 기본적으로는 3김에 의해 짜여질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부분적인 타격은 있겠지만 3김정치 자체를 청산할 수 있을 지는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효과적인 노동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원하건 원하지 않건 3김정치의 전개방향과 속성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순수논리적으로 볼 때 3김간에 합종연횡할 경우의 수는 아래 그림과 같다.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은 3김의 정치적 선택에서 이데올로기나 정책 차이와 같은 것은 이제 아무런 영향도 미치치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때 ‘상대적 진보성’이나 ‘비판적 지지’와 같은 3김간의 차별성에 대한 논리는 이제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런 점에서 3김은 오로지 권력의 장악과 유지를 위해서만 기능하는 ‘세계관 중립적’ 정치행위자일 뿐이다. 덧붙여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 실증해 주듯이 정당이나 권력구조(내각제, 대통령제, 이원집정제 등) 그리고 법치국가적 제도(예컨대 헌법) 등은 합종연횡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어떤 정치적 선택―경우에 따라서 선택폭과 시기를 제약할 수는 있어도―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YS    DJ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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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S     *    ①     ②  

  DJ     ③    *     ④  

  JP     ⑤    ⑥     *


위의 그림에서처럼 수학적인 의미에서 있을 수 있는 3김간의 조합의 경우는 모두 6가지이며, 여기서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가 연합하고 모두가 독자행동을 할 경우를 합하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나온다.


1. YS + DJ + JP

2. YS + DJ ↔ JP (①과③)

3. YS + JP ↔ DJ (②와⑤)

4. DJ + JP ↔ YS (④와⑥)

5. YS ↔ DJ ↔ JP


여기서 3김 모두의 합의하에 6.27이후 97년 대선까지의 정치싸이클이 진행되는 경우(위 1의 경우)는 3김 모두에게 위협적인 인물이 강력한 계층적, 지역적 기반하에 등장하는 경우로 이것은 개연성이 희박하다. 3김 모두 자신의 기반하에 단독 행동을 하는 경우(위 5의 경우) 역시 1김이 나머지 2김을 단독으로 제압할 만한 계층적, 지역적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현재의 조건(특히 20-30대의 반 3김정서)에서 볼 때 큰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1과 5의 경우는 97년 대선까지 이어질 현 싸이클 속에서 항상적으로 가동되면서 정세 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의 경우를 보자. 이를 위해서 먼저 80년대 후반 이후 3김정치의 경험적 사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시기                구도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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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대선        노↔YS↔DJ↔JP         노태우정권 

88년총선         노↔YS+DJ+JP           여소야대

90년 3당통합     노+YS+JP↔DJ           DJ고립 

92년 대선        노+YS+JP↔DJ           김영삼정권

95년 6월선거     YS↔DJ+JP              여소야대

96년 4월 총선        ?                       ?

97년 대선            ?                       ?

이번 지자제선거에서 지금까지의 3김정치에서 빠져 있었던 위 4의 경우, 즉 YS↔DJ+JP가 실현됨으로써 3김정치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는 이제 실험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6.27선거 이후 3김구도는 ‘全과 盧’와 같은 돌발 혹은 외생변수가 소거된 보다 순수한 원형을 복원하였다. 현재와 같은 조합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는 이 조합을 가능하게 하였던 조건 자체에 YS가 어느 정도의 강도로 개입하여 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군부, 학생운동 그리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어 이 구도에 규정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3김구도 자체는 일정한 안정성을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3김정치는 1김이 살기 위해서는 나머지 2김을 잡아야 하고, 동시에 2김이 완전히 잡힐 때 그 1김도 죽어야 하는 실로 애증(愛憎)과 모순의 연합이다. 또한 3김정치는 한국의 보수적 지배블록의 능력과 무능력을 실증하는 것이다. 능력이라 함은 3김정치를 통해 노동자의 이해가 정치화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저지해 왔다는 의미이며, 무능력이라 함은 보수블록의 후보단일화(?)조차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3김간의 이질성은 곧 보수적 지배블록의 이질적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3김정치의 구조와 성격으로부터 거칠지만 다음 몇 가지를 주장해 볼 수 있다. 첫째, 3김정치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기능하는 한국정치의 하나의 구조이자 또 그런 점에 있어서 ‘문제’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동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세대교체’와 ‘세력교체’를 통해 극복되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이다. 둘째, 3김정치가 어떤 조합과 형태를 취하건 그것은 노동자 정치와는 분리되어 있다. 노동의 정치가 어떤 형태로든 3김정치를 강제할 실력이 없는 한 이는 당연하다. 이 때문에 3김을 통하지 않는 정치세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셋째, 노동자세력은 3김정치 속에서 한번도 주동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다. 넷째, 3김정치는 노동보다 자본의 정치에 친화적이다. 다시 말해 ‘표면’에서 전개되는 YS, DJ와 JP간의 긴장과 갈등이 총자본의 이해를 건드리거나 다치게 한 적은 한번도 없다.




    IV.



노동의 정치는 궁극적으로 노동과 자본간의 역관계를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6.27지방선거에서 97년 대선에 이르는 기간에 정치적 역관계를 규정하게 될 상수적 조건인 3김 관계가 친노동적으로 움직이리라는 징후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과 관련한 김영삼정권의 운동공간은 넓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현재의 보수강화 경향과 적어도 내년 1/4분기까지 지속되리라 예측되는 경기순환의 활황국면 속에서 현재까지의 노동 배제주의적-억압적 노동정책기조가 바뀔 전망은 크지 않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역관계에 반응한다. 이 때 노자간의 역관계는 구체적인 작업장 수준에서 국가권력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복합적이고 다양한 수준에서 표현되고 또 규정된다. 지금까지 김정권은 ‘국가경쟁력’이나 ‘세계화’정책 등을 매개로 자본의 축적조건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자 시도해 왔고, 또 자본측 역시 신경영전략 등의 방식으로 단위사업장의 역관계를 자신에 유리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시민사회내 보수블록 또한 반노동자적 ‘담론’의 보급창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더군다나 소비주의와 개인주의가 연대와 단결의 문화적 기초를 잠식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현 상황에서 합의가능한 대안은 당장 준비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3김의 지역주의는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지역적으로 파편화시키고 이를 기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노동자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현실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세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3김의 권력투쟁은 자본의 선택공간을 넓히게 될 것이다. 3김의 지역주의는 노동자의 이해에 대립적이다. 그렇다면 3김 외에 노동자는 누구를 선택할 수 있는가?

한노정연

 

1995-09-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