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민주적 조합운영 |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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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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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관료화와 민주적 조합운영
황 기 돈 / 편집위원 ․강사, 노동경제학
특집2
지난 겨울의 총파업과정에서 제기된 주요 쟁점 중의 하나가
민주노총의 합법화였다. 합법성은 한 권력단위가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법적 토대이다. 따라서 ‘법외노조’로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어왔던 민주노총이 합법성을 쟁취하고자 한 것은
필요하고 또 당연하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을 통해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형식적 합법화 과정이 남아있다는
의미에서) 합법성을 쟁취했다. 그 반면에 자본은 자본대로
개별적 노사관계법을 개악하여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수단을 장악했다. 이러한 민주노총과
자본/정부 사이의 전략적 게임의 과정에서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복수노조의 법적 허용과 함께
노조지도부의 교섭권과 체결권의 일원화가 법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노동자대중의 의결을 필요로 했던 기존의 민주적
단협추인 메카니즘을 불법화하고 노조지도부만을 정치적 협상 및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겠다는 의도를 성문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노총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용이주도하게 대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 노동운동의 발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법적․사회적 조건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주의 그 의미와 본질
전국적 노조의 지도부가 합법성 유지를 위해 자본 및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이용하여 노동자대중의 동력을 통제하고자 할
경우, 이를 관료주의적 경향이라 부를 수 있다. 관료주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 및 개념 규정이 가능하지만 여기에서는
‘대중과 분리된 지도부가 공권력으로부터 이양받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동력을 발전시키는 경향’으로 규정하기로
한다. 따라서 관료주의적 지도부란 대중의 이해와는 다른
자기이해를 가지며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중의 위에
존재하면서 대중의 동력을 지배하는 지도부를 일컫는다. 그러나
지도부의 관료화는 단순히 지도부 구성인자의 개인적 성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객관적․사회적 관계의 표현이다.
투쟁이나 협상이 대중의 자발성이나 직접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대표조직이나 조직 상층부간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조직의 상층부에 힘이 모아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힘의 위임과정이 제도화되기 시작하면서 조직의 상층부는
권력의 창출 및 집행자로서의, 즉 관료로서의 자기이해를 가지게
된다. 물론 지도부의 이해가 대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중의 이해와 어긋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면 협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대중의 자유와 자율성 그리고
대중의 동력을 통제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양식으로 지도부가
대중을 지배하는 힘으로 현상하는 것 자체가 노조로서의
자기정체성 부정, 대중의 집단적 자기규정, 즉 자율성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관료주의의 강화는 다시 지도부와 대중의
분리, 대중의 약화 그리고 이에 기초한 지도부의 개량화로
나타나고 그것은 결국 노동운동의 전반적 약화로 귀결된다. 다른
한편 관료주의의 영향인 노동운동의 약화는 역으로 관료주의가
기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자본과 국가가 이번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노조지도부의 교섭권과 체결권의 일원화를
법제화한 것은 바로 노조지도부의 관료화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며 이를 통해 노동운동을 약화시켜 지도부의 관료화와
노동운동의 약화라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관료주의는 ‘비자유’의 표현이다. 특히 노조지도부의
관료주의는 노동자대중의 비자유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대중의 비자유는 계급적 시각으로 볼 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는 자본의 분할-지배전략과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지배관계의 핵심은 잉여노동을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뽑아내는 것이며,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계급사회와 마찬가지로
대중으로부터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타 계급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조,
특히 관료화된 노조지도부를 통해 자본의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의 자유를 공고히 한다는 점 즉 관료화된 노조지도부가
노동자대중의 자율성을 억압함으로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배와 착취의 자유를 강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자본 및 국가와 권력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분점할 때 지도부는 피지배자로서의 대중과는 분리되는 반면
자본의 사회적 지배관계와 자본운동의 자유는 일반화되고 더욱
공고해진다.
우려스런 몇 가지 경향
위에서 언급한 관료주의의 본질은 물론 노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 국가 등 모든 사회조직에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서 새롭게
확보한 사회적 위상 때문에 이 글에서는 민주노총을 주된
분석대상으로 설정한다. 87년 이후 (재)활성화된 한국
노동운동은 민주노총의 시대를 열면서 또하나의 질적 도약을
이루었다. 지난 겨울의 총파업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이라는 전국적 단일 쟁점에 관한 투쟁을 조직, 지도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으로 부각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대중동력에 토대를 둔 민주집중성의
강화보다는 중앙집중의 상대적 강화와 이에 기초한 관료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관료화는 단결을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의 역동성에 대한 장애요소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고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사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켜 줄 가능성이 매우 커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노동운동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산별노조의 건설과 노동자 정치운동의 새로운
모색기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시대를 둘러싼 객관적 정세는
어떠한가? 한국사회는 전반적 위기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위기는 ‘경제위기’로 축소․왜곡되고 있다.
실제로 이윤이 작아지고, 경쟁이 강화되며,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도산 및 법정관리 신청이 줄을 잇고 있으며, 대부분의
산업분야가 퇴락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위기는 경제적
위기일 뿐 아니라 국가의 위기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은
산업화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국가가 더 이상 전과 같은
능력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으며 이를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욱 급진적인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누적시켜온 핵심
주역이라는 것을 왜곡하고 정부에 대해 특단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기존의 정치경제적 체계에 편승하고 있던 정당들도
엄청난 도덕적 손상을 입어 일부는 야합이 아니고는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기존의 사회적 지배체계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현재의 위기는 ‘기존의 사회적 관계의 총체적
위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총체적 위기론’은 즉각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다양한 공세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새로운 기업 및 국가경영 방식이 연구․도입되고 있고,
물리적․제도적․법적 공세 등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뿐만 아니라 도덕, 훈육, 윤리, 질서로의 환원을 요구하면서
이를 “잘 관리했었다”는 파시즘 정권(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유포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를
관료화하여 ‘사회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통해
위기상황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재구성하고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노․사․정간의 사회적 대화’는 자본주의
체계의 위기시에 자본과 정부의 이니셔티브로 시작되어 후에
제도화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이 ‘노자관계의 안정’,
‘산업평화’에 대한 대가를 노동자계급에게 어느 정도 지불할
수 있는가라는 물질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노조지도부가 어느 정도 관료주의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인가이다. 이들이 국가가 수행해 오던 ‘비합법적’,
‘법외적’, ‘불법’ 노동운동에 대한 제약 및 제한를 대신
수행하면서 ‘법 수호자’로서 기능할때 지도부와 대중은
분리되고, 대중은 다시 내부적으로 분화한다. 이러한 상태는
노동운동의 전반적 약화를 의미하지만 지도부가 국가 및 자본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관료화된 지도부가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대신 자본, 정부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유지를 위한 삼각축을 형성했다는 것을
서유럽의 역사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 노동운동은 서유럽과는 다른 조건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노조지도부가 자본과 국가로부터 위임받아서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이 아직은 많지 않고, 한국사회 역시
사회복지 등 계급타협의 산물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다. 즉
한국사회는 노조지도부의 관료화를 위한 물적 조건이 충분하지
않고 계급타협도 경험한 적이 없다. 또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는
달리 자본과 국가가 시도하고 있는 사회적 대화의 경험도
일천하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를 사회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면서 이들을
타협의 장으로 끌어들이고자 할 경우 (예를 들면 자본주의적
합리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건설적
비판자’로서의 정책참여 요구) 서구의 경험이 한국사회에서
관철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가 없다.
이러한 우울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민주노총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과 이를
구체화한 것으로 ‘나라살리기 11대 요구안’이 그 좋은 예이다.
민주노총은 5월 15일 투쟁본부 대표자회의를 열고 다음의 11가지
요구안을 확정한다: 대선자금의 공개와 정치자금법 개정,
돈세탁방지제도와 공익정보제보자 보호제도 신설 등의
부패방지법 제정,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규제와 족벌경영 철폐,
중소기업 금융․세제․기술지원과 하도급 불공정거래
일소,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적용 확대, 고용보험
적용확대와 공공직업안정기관․공공직업훈련체계의 확립,
근로소득세율 인하 및 세제개혁, 만 5세 아동 무상교육과
공교육체계의 내실화,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보장과
민주노총 합법성 인정, 구속해고자 원직 복직 및 사면 복권,
민간차원의 북한동포돕기운동 보장.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은 5월의 요구안 쟁점화, 6월의 대정부교섭 그리고
7월초부터 총력투쟁에 돌입의 순서이다.
민주노총이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사회적
쟁점화시키고 그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의 강화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요구안이 나오게 된 배경과 노선
그리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다. 민주노총은 한보사태와
일부 재벌의 도산과 실업의 급증으로 대표되는 경제위기, 김현철
비리사건, 대선자금 의혹 등의 사회적 문제들과 총파업의
영향으로 교섭준비가 늦어지고, 상부단체로의 교섭권 위임이
원만하지 못한 '97년의 조건에서 임단협만으로는 전국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정치적 쟁점을
임단협에서 ‘사회개혁’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이 쟁점의
이동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객관적 정세와 노동운동의 주체적
능력에 관한 인식의 문제점을 들어내고 있다: 1. ‘경제위기’에
관한 사회적 동반자로서의 인식; 2. 교섭권 위임과 교섭력
강화의 상호관계에 대한 비과학적 인식.
1. 민주노총은 정부 및 자본이 제공한 수량적 지표에 근거하여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져있다고 판단하여 임단협을
핵심쟁점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이 전략은 민주노총이
자본의 경제위기 공세를 암묵적으로 수용하면서 이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인식의 협소화는
‘나라살리기 운동’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나라’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보면 민주노총의
인식의 협소화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은
‘나라 살리기운동’으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규제와 족벌경영
철폐”를 요구하는데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민주노총이 독점규제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자본주의적 합리화를 ‘나라’를 살리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운동의 주체로서의 민주노총에게는
독점자본도 ‘나라’의 한 부분이며 이들과의 협상과 대화를
통해 이들을 합리화시켜 나라를 살리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이나 정부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임금을
동결하거나 해고를 강화해야 하며, 민주노총이 노동자대중에게
이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면 민주노총은 어떤 논리로
반박할 것인가? 스스로 자본과 함께 ‘나라’를 이루고 있는
민주노총으로서는 반박의 여지가,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없을
것이다. “그말이 맞다, 그러나 .....”라는 수세속의
머뭇거림이 최고의 논리일 것이다. 이렇게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적극적 투쟁보다는 재벌, 정부와 함께
대화/교섭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를 유지 내지는 합리화시키는
역할을 자임한다면, 민주노총이 한국사회를 본질적으로 바꾸어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민주노총이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자본의 합리화공세를 노동자대중의 고통으로
연결시키는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은 강화되는 반면
노동자대중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해관계는 서로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지도부와 대중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2. 민주노총이 임단협투쟁 강화를 회피하는 이유 중 또하나는
하부조직들이 교섭권을 소속연맹에 위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공동교섭의 진용을 짜고 있는 연맹의 경우도
공동교섭의 진행이 쉽지 않고, 일부 연맹소속 단위노조들은
교섭권 위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섭권의 위임은 산별로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섭력의 강화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교섭권을
연맹에 위임하고 스스로는 그 결과를 기다리고만 있고, 연맹은
준비없이 교섭권만을 위임받아 교섭에 임한다면 교섭력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자본 협상력은
노동자대중으로부터 올라오는 대중적 동력을 올바로 수용하고자
하는 지도부의 조직적 노력이 계속되지 않을 때 강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섭력의 강화는 ‘현장의 강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재의 ‘현장’은 총파업투쟁과정에서의 피해와
그 후의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악 그리고 자본의 무자비한
공세로 인해 약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안은 산별연맹과 그룹에 현장 강화의 과제를 부여하면서
스스로는 ‘경험과 과제의 조직간 공유폭 확산’ (민주노총 97년
임시대의원대회 회의자료 74쪽) 이라는 소극적 입장을 택하고
있다. 3월 27일 임시대의원 대회에서 민주노총이 제안한 이
전략은 지극히 약해진 ‘현장’에 ‘현장’의 강화라는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민주노총이 약해진 현장을 강화하기 보다는
‘현장이 약하다’는 것을 빌미로 ‘사회개혁’ 투쟁이나
‘나라살리기 운동’에 전력을 다한다면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지도부의 투쟁이 현장과 괴리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전되지 않는다면, 상황에 따라 생겨날 수 있는
지도부의 개량화를 견제할 힘이 현장에서 나오기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전체 노동운동이 약화, 자본운동의
자유의 극대화와 노동자 대중의 자율성의 극소화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위의 두가지 현실을, 즉 기존 정치경제적 체계의 위기를
‘나라’의 위기로 보는 애국주의와 교섭력의 강화보다는
교섭권의 위임에 중점을 두는 민주노총의 노선과 정치적 수단을
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에도 관료주의적 경향성이 배태되거나
부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동자 대중의 지배/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형태는 관료주의적 조합지도부를 통한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라는 대리착취의 형태를 띠게 되고 자본주의적 착취는
안정화되며 이의 극복은 무망해진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본질적 가능성은 관료주의
자체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탈물신화와 재물신화의 지속적인
과정’(홀로웨이)이라는데서 찾을 수 있다. 즉 관료주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관료주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물론 관료주의를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어떤 사회세력에서도 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힘이 나오지 않는다. 유일한 원천은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적인 모순으로부터 발생하는 파괴/변화의 가능성을
노동자계급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즉 노동자대중의
실천적 투쟁이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듯이, 이를 통해
노동자계급내의 조직적 변화, 즉 관료주의의 파괴도 이루어낼 수
있다. 이것이 ‘탈물신화의 과정’이다.
탈물신화와 재물신화의 투쟁 - 관료화의 극복과정
한국의 노동운동은 최근 관료주의의 탈물신화와 재물신화의
투쟁과정에 있다. 철저히 관료화된 한국노총을 파트너로 한
사회적 대화의 구도가 지난 겨울의 총파업투쟁을 통해 파열되고
그후 자본과 정부의 검은 커넥션이 들어나면서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메카니즘이 전반적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은 탈물신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과정의 초기를 주도했던
민주노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자본과 정부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관료화 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 일차적 수단은
합법성의 부여이다. 최근 노동부가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다양한
‘결격사유’를 빌미로 늦추고 있는 것은 협상의 파트너를 우선
최대한 약화시키고자 하는 전략적 사고의 일환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으로 경제위기론의 유포를 들 수 있다. 이 전략은
궁극적으로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한국노총처럼 관료화시켜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합리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관료주의의
재물신화 시도’이다.
이러한 자본과 국가의 시도를 파괴하기 위해 민주노동운동은
다음의 두가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시기의
한국사회의 위기를 기존 질서와의 단절의 계기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단절은 재구성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어서는 안되는 두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단절을 재구성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두 번째는 단절은
단기간에, 항상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진행중인 과정이다. 즉 새로운 시도들은 이미 견고해져서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물화된 현실이 아니라 그 자체가 투쟁과정이다.
이는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자본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극복하는데 민주노총이 기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노동운동이 이러한 협조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선진국의 예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언제든지 ‘경제위기’시에는
다시 빼앗길 수 있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서유럽의 현실에서 보고
있다. 한국사회를 지배해오던 기존 질서를 단절하고
노동자대중의 이해가 철저히 관철되는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대안의 개발과 수행이 어느때 보다 시급한 시기이다. 대안없는
투쟁은 항상 현존하는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바로 그 곳에서
정지한다. 이를 한국 노동운동은 여러번 경험했고 어찌보면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으로는 탈물신화 과정으로서의 관료주의의 파괴는
도둑맞았던 노동자의 생산물인 노조와 지도부를 노동자대중이
재환수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자본의 지배도구로서 기능을
하던 관료주의적 지도부를 다시 노동자대중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이 관료주의적 한국노총이 수행해 온
친자본적, 반노동자적 역할을 계승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대중의 지속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물론
저항은 지도부에 대한 것과 사회적 지배체계 전반에 대한 것이
구분되어야 한다. 지도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자본의 사회적
지배체계에 대한 파괴적 투쟁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보다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후자이다. 관료화는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지배관계의 표현이기 때문에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사회적 지배관계에 대한 투쟁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
즉 지도부의 대자본투쟁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관료화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현실적으로
분리하기 쉽지 않지만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이 양면전략이 조화를 이룰 때 노동자대중의 자율성
강화, 대중동력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지도부의
관료화 경향의 분쇄와 이를 통한 대자본 협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민주노총도 교섭권의 위임만을 요구하며 그것이
안된다는 이유로 사회의 자본주의적 합리화 운동의 성격을 가진
- 내용적으로 - 사회개혁투쟁의 주체로 그 위상을 고정시킨다면
노조지도부에 교섭권과 체결권을 일원화시켜 대중과 지도부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대자본
협상력은 총노동전선을 중심으로한 단위노조와 연맹, 지역
그리고 민주노총의 유기적 결합없이는 강화될 수 없다. 대중의
투쟁력을 지도, 조직하여 자신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제낀
민주노총이 자신과 민주노동운동 그리고 이 부분이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심각히 고민해야할 지점이다. 민주노총은 지금 첫
단추를 끼우고 있는 중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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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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