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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녀의 고용기회균등법 개정에 대하여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
카와나 미유키

일본의

남녀고용기회균등법 개정에 대하여

- 주로 노동기준법 여성보호규정 철폐문제를 둘러싸고 -


카와나 미유키




최근 일본에서는 노동기준법 개악문제, 특히 여성노동자보호규정을 둘러싼 사안이 정부-자본측과 노동운동진영 간에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현장활동가인 카와나 미유키씨가 이 문제의 전말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글을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에 기고해주었다. 이 글은 한국 노동자들에게 자신들과 같은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카와나 미유키씨에게 감사드린다.




1. 균등법 개정의 경위와 법의 개요


1997년 6월11일, 참의원 본회의는 「고용분야에서의 남녀의 균등한 기회 및 대우의 확보 등을 위한 노동성 관계법률의 정비에 관한 법률안」을 가결, 이 법안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2월7일에 중의원에 법안이 제출되고나서 4개월, 95년 10월부터 시작된 노동성 여성소년심의회에서의 심의기간을 합하면 약 1년 8개월에 걸친 균등법의 ‘수정’ 작업은 일단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일본]에서 균등법(정식으로는 「고용 분야에서의 남녀의 균등한 기회 및 대우의 확보 등 여자노동자의 복지 증진에 관한 법률」이라 한다. 이하 균등법으로 표기한다)이 제정된 것은 1985년 5월이며, 이듬해인 86년 4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균등법은, 제1조에 따르면 “법 아래의 평등을 보장하는 일본국 헌법의 이념에 따라서 고용분야에서의 남녀의 균등한 기회 및 대우가 확보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법률의 제정은 국제여성의 해였던 1975년에 멕시코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여성회의와, 이를 수용한 국제연합(UN)의 ‘여성의 10년’(76년~85년)을 계기로 하여 추진된 남녀평등시책의 구체적 성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내용의 일면만 본 단순한 판단에 불과하고, 독점자본이 74~75년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인민에게 희생을 전가하는 형태로 채용한 노동력 정책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올바로 평가할 수 없는데, 그점은 후술한다.

<표1>은 균등법이 어떻게 ‘개정’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균등법은 85년 제정 당시부터 내용적으로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구체적으로는, 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력의무규정일 뿐 금지규정이 아니며, 더욱이 벌칙이 없다는 점, ② 여성의 차별적 대우를 규제하지만 남녀 쌍방에 대한 성차별의 금지가 아니라는 점, ③ 성적으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쪽의 성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간접차별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 점, ④ 성희롱(sexual harassment)을 금지하고 있지 않은 점, ⑤ 남녀간의 임금격차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 ⑥ 노동기준법(노기법)상의 여성보호규정의 개악을 수반한 점 등이다. 지배계급은 주도면밀하게도 “필요한 경우에는 수정한다”는 부칙을 두어 이들 비판을 피해 갔다.

균등법은 일본자본주의가 ‘거품’(bubble)에 들떠 있던 80년대 말경까지는 매스컴이 쏟아붓는 선전에 의하여 과대평가를 받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균등법 시행후, 원칙적으로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남성밖에 없었던 직장에도 여성이 들어갈 수 있게 된 점이라든지, 소수이기는 하지만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관리직이 되는 ‘엘리트’ 여성이 증가해온 점을 들어 “균등법 덕분”이라고 평가하였다. 물론 그것은 독점자본과 정부에 의한 기만에 찬 선전이었다. 실제로는 대다수의 여성노동자가 전혀 균등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선전되어 왔던 균등법이지만, 90년대 들어 일본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자 소리높이 그 ‘결함’이 지적되기 시작하였다. 독점자본이 위기 속에서 생존을 걸고 휘두른 칼은 여성노동자를 직격하는 것이었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파견노동자를 중심으로 많은 여성노동자가 해고되어 여성 실업률은 남성의 그것을 웃돌고, 여학생과 재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에게 전례 없는 취직난이 엄습하였다. 이러한 객관적 상황에 대해서 균등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매스컴은 서둘러 균등법은 “수정돼야만 한다”는 ‘국민적 합의’의 형성을 선도하게 되었다.


<표1> 균등법의 주요 ‘개정’ 사항

[균등법]

 

‘개정’ 전

‘개정’ 후

모집?채용

배치?승진

교육훈련

복리후생

정년?퇴직?해고

노력의무

상동

일부 금지

상동

금지규정

금지규정

상동

상동

상동

상동

조정(調停)

쌍방의 동의 필요

일방의 신청으로 가능

국가의 지원

없음

사업주가 행하는 균등확보의 상담이나 지원

배려

없음

성희롱이 없도록 고용자가 배려

[노동기준법]

 

‘개정’ 전

‘개정’ 후

여성 보호

여성의 시간외?휴일노동?심야작업의 규제

삭제

1년 8개월에 걸쳐서 완료된 ‘수정’작업에 의해 균등법은 외관상으로는 어느 정도 좀 나은 법률로 수정된 것처럼 보인다. 노력의무규정은 금지규정으로 대체되고, 위반기업의 명단을 공표한다는 제재조치도 마련되었다. 기업에 성희롱 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점도 새롭다. 간접차별 금지와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 우대조치)에 대한 조항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가결된 부대결의(附帶決議)에는 “「성차별 금지법」 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라든지, “남녀 모두의 시간외 규제에 관한 검토를 추진한다”는 것이 명시되었다. 이것만 본다면, 불충분한 점은 있지만 일보진전된 법개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세계적인 규모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노동자․인민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서, 계급적 관점을 가지고 투쟁하고자 해 온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번의 균등법 ‘개정’은, 아무리 ‘남녀평등 추진’이라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더라도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다.

최대의 문제점은, 노동기준법 속에서 여성노동자의 시간외, 휴일, 심야노동을 규제하고 있는 규정(일반적으로 ‘여성보호규정’이라고 불린다)이 직접적으로 모성보호와 관련되는 부분만 남기고 모두 철폐된 점이다. 지금까지 여성보호규정에서는 공업적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해서는 1주 6시간, 1년 150시간, 비공업적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에 대해서는 4주 24시간, 1년 150시간의 시간외노동 규제가 설정되어, 사용자가 이를 초과하여 일을 시키면 처벌받았다. 또한 심야노동은 공업적 업무에서는 전면 금지되고, 비공업적 업무에서도 원칙적으로 금지되었다.

예외가 인정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를 무제한적인 시간외 노동이나 심야노동으로부터 지켜온 여성보호규정이 철폐된 것은 여성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대단히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여성보호규정의 철폐는, 우리나라(일본)의 독점자본과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이름하에 강행하고 있는 노기법을 비롯한 노동법제 개악의 일환이어서, 그것만이 단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일본자본주의의 노동력 정책과 균등법, 여성보호규정의 박탈 공격


여기에서 현대 일본자본주의의 구조전환과 노동력 정책과의 관련 속에서 균등법의 제정 및 ‘개정’이라는 이름을 빈 여성보호규정의 박탈공격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균등법 제정이 논의되기 시작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에 걸친 시기는 일본자본주의가 74 ~ 75년 공황으로 입은 타격으로부터 재기하려고 기를 쓰고 있던 때이다. 나카소네(中曾根) 내각하에서의 ‘행정 및 재정 개혁’은 국철(國鐵), 전전공사(電電公社), 전매공사 등 공적 서비스 기관의 민영화를 내걸었고, 국철을 ‘분할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10만명이나 되는 국철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세출 삭감을 위해서 사회보장 삭감이 이루어지고, 부담은 인민에게 전가되었다. 1972년부터 무료였던 노인의료비는 82년에 일부를 자기부담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기업경영의 개혁을 위해서 철저한 ‘감량정책’이 채택되었다. 기간산업에서는 하청기업으로의 외주를 증가시킴으로써 정규직 노동자의 수를 삭감하고, 하청기업에서는 생산현장의 기계화를 추진하여 잉여인원을 삭감함과 동시에 파트타임 노동자 등 불안정한 신분의 노동자로 대체시켰다. 그때 파트타임 노동자가 된 것은 공황시에 맨먼저 해고된 여성노동자와 가정의 ‘주부’이다.

이와 같이 여성노동력이 “활용”되기 시작하자, 노기법의 여성보호규정의 개악 책동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1978년 11월, 노동대신(勞動大臣)의 사적 자문기관인 노동기준법연구회는 여성보호규정의 ‘완화’를 제언한다. 80년대 전반에 균등법 제정을 앞두고 지배계급은 “보호인가 평등인가”라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1985년, 균등법이 제정되고, 동시에 여성보호규정은 개악되었다. 이때까지 여성보호규정은, 간호사나 여객기 객실승무원 등 소수의 직업에 대해서 심야노동규제의 예외가 인정된 것 외에는, 모든 여성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개악으로 시간외노동규제에 대해서는 ① 지휘명령자, ② 전문업무 종사자가, 그리고 심야노동규제에 대해서는 ①② 외에 ③ 업무의 성질상 심야업이 필요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시간이 짧은 자(파트타이머), ④ 노동자의 요청에 의거하여 사용자가 행정관청의 승인을 얻은 자가 새로이 적용제외 대상이 되었다. 기정사실화하고나서 이를 전체적으로 확대하여 일반화하는, 지배계급의 상투수법이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그후 91년에는 적용제외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

80년대 전반까지 수출의존형이었던 일본자본주의는 85년의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고(円高) 유도에 의하여 ‘구조조정’이 촉진되었다. ‘구조조정’은 ‘내수확대’와 ‘시장개방’이라는 두 기둥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엔고를 배경으로 일본기업은 점차로 동남아시아, 그리고 미국에 다국적기업으로서 진출하였다. 현지의 값싼 토지, 노동력을 사용하여 제품을 본국 일본으로 역수입하는 방법은 국내기업, 그 중에서도 제조업에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초래하였다. ‘시장개방’이 거리낌 없이 모든 분야에서 활보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성역’으로 불리던 쇠고기, 오렌지, 그리고 쌀과 같은 농산물의 수입제한도 ‘완화’되었다. 산업구조의 전환 속에서 ‘고용조정’의 물결은 전체 제조업으로 확대되고, 현장 노동자의 해고에서 시작된 물결은 화이트칼라에게도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90년대의 일본자본주의는 ‘규제완화’에 의한 새로운 자본축적의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버블’ 후의 국가 경제는 400조엔을 넘는 재정적자를 안고 있어, 그것을 삭감하고 외국자본에 뒤떨어지지 않는 경쟁력 있는 자국의 자본을 육성하기 위해서 하시모토(橋本) 내각은 ‘6대 개혁’을 제창하고, 이를 “악착같이 추진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하시모토 내각이 말하는 ‘6대 개혁’이란 ① 행정 개혁 ② 금융시스템 개혁 ③ 경제구조 개혁 ④ 사회보장 개혁 ⑤ 재정구조 개혁 ⑥ 교육 개혁이고, 노동자․인민에 대한 공격은 바야흐로 전면적 성격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

‘6대 개혁’은 우리나라(일본)의 노동자․인민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로 강행되려 하고 있다. ‘행정개혁’은 공무원 노동자의 대량 해고를 낳고, ‘일본판 빅뱅’이라는 이름의 ‘금융시스템 개혁’은 금융자본의 정리․도태, 합병․거대화를 추진, 노동자의 대량해고의 길을 열 것이다. ‘사회보장 개혁’에서는 의료보험 개악이 이미 강행되고, 금후에는 새로운 부담 증대를 강요할 간병보험(看病保險)의 창설이라든지 연금지급 개시연령의 상향조정 등이 대기하고 있다.

노동력 정책에서는, 정규고용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키고, 파트타임 노동자와 파견노동자, 계약사원을 전력화(戰力化)하는 고용의 ‘유연화․다양화’가 추진되려 하고 있다. 96년 12월에 정부행정개혁위원회 규제완화소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에는, 고용․노동분야의 ‘규제완화’로서 ① 변형노동시간제 ② 재량노동제 ③ 노동계약기간 ④ 여자의 시간외․휴일․심야노동의 ‘규제완화’가 명기되었다.

이들 노동시장의 ‘규제완화’는 노기법 개악에 의하여 현실화된다. 여성보호규정은 이미 철폐되었다. 나머지 3개에 대해서도 정부․노동성이 이미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 있다. 또한 유료직업소개업과 근로자파견업의 대상업무를 전직종으로 확대하기 위한 법개악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6월20일의 보도에 의하면, 국제노동기구(ILO)는 ‘민간직업소개소에 관한 조약’을 채택하여, 지금까지 직업소개는 공적기관에서 해야 한다는 방침을 바꾸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국내의 법개악을 가속시키리라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95년에 일본경영자단체연맹(日經連)은 ꡔ신시대의 일본적 경영ꡕ이라는 제목의 책 속에서, 노동자를 세 개의 집단으로 구분하여 필요에 따라 고용한다는 구상을 발표하였다(<표2> 참조). 현재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는 노기법을 비롯한 노동관련법의 개악은 일경련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기초를 부여하는 것이다.


<표2> 자본이 의도하는 금후의 고용 시스템

 

고용형태

대상

임금

상여

퇴직금?연금

승진

?승격

복지

시책

장기축적능력 활용형 그룹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고용계약

관리직

종합직기능부문의 기간직

월급제나 연봉제

직능급

승급제도

정률+업적슬라이드

포인트제

임원승진직능자격 승격

생애종합 시책

고도전문능력 활용형 그룹

유기(有期)고용계약

전문부문(기획,영업,연구개발 등)

연봉제

업적급

승급 없음

성과배분

없음

업적평가

생활원호 시책

고용

유연형 그룹

유기고용계약

일반직

기능부문

판매부문

시간급제

직무급

승급 없음

정률

없음

상위직무로의 전환

생활원호 시책

3. 여성노동자의 현황


다음으로, 이와 같은 일본자본주의의 노동력 정책 속에서 여성노동자는 어떤 지위에 처해 있는지를 살펴보자.

<표3>은 우리나라(일본)에서 고용되어 있는 여성노동자에 관한 자료이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파트타임 노동자(이하, 파트타이머로 표기)가 많다는 점이다. 약 2000만 명의 전체 여성노동자 중 630만 명, 고용되어 일하는 여성의 실로 3명 가운데 1명이 파트타이머이다. 최근 10년 동안에 남성을 포함한 전체 파트타임 노동자의 수는 약 2배로 증가하였다. 그 가운데 70%가 여성이다. 파견노동자(남녀 모두)는 노동자파견법이 시행된 86년에는 약 8만 명이었던 것이 10년 동안에 50만 명으로 무려 6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파트타임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의 비상한 증가만 보더라도 지배계급의 노동력 정책이 현실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표 3> 일본 여성노동자 현황 (1995년)

고용자수 (만명)

2000 (남성 3100) 중 파트타이머 632 (남성 264)

완전실업률 (%)

3.2 (남성 3.1)

산업별 취업 비율 (%)

서비스업 33.5; 도매?소매?음식 27.3; 제조업 22.3

직업별 취업 비율 (%)

사무 34.4; 기능공, 제조?건설 17.8; 전문,기술 14.8; 판매 12.6

기업규모별 취업 비율

(%)

1~29인 36.1; 30~99인 16.8; 100~499인 16.7; 500인 이상 20.5

평균 근속년수 (년)

7.9 (남성 12.9)

평균정액 급여 (엔/월)

20만6천 (남성 33만)

남성과의 임금격차

62.5 (남성=100)

여성노동자의 3분의 1을 점하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지위는 대단히 열악하다. 임금은 정규고용 노동자의 약 70%이다. 또한 파트타임 노동자로 정기승급이 있는 사람은 30%, 상여금을 받고 있는 사람은 56%, 승진승격제도가 있는 사람은 15%, 퇴직금제도가 있는 사람은 9%이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은 불과 4%에 지나지 않는다.

정규고용 여성노동자의 지위도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균등법 이후에도 결코 높지 않다.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여성은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소수일 뿐이다.

여성노동자가 이와 같은 낮은 지위에 처해 있는 배경에는 봉건유제(封建遺制)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한 우리나라[일본]의 가족관계와 남녀관계를 지배계급측이 노동력 정책에 이용하고 있는 사정이 깔려 있다. 요컨대 “남자는 바깥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성적 역할분담의식이 사람들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고, ‘현모양처’ ‘부창부수’ 같은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우리나라(일본)에서는 오랜 동안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을 보조하거나 혹은 주변노동을 담당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간주되어 왔다.

국제적인 남녀평등 실현 요구의 고양이나 국제여성의 해 이후의 남녀평등 추진정책에 의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총리실이 95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결혼․임신으로 직장일을 그만두고 아이가 크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아직도 70%를 점한다. <표4>는 우리나라(일본)의 연령계급별 여성의 노동력률인데, 기본구조는 10년 전과 변함이 없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그 시대에 지배적인 대중의 가치관을 노동력 정책에 이용한다. 균등법 제정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성의 고학력화와 권리의식 향상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차별 받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식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권리의식을 가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일하고 싶다” “일한 만큼은 남성과 동등하게 평가받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는 대단히 건전한 바램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측은 이러한 여성의 바램이나 사람들의 가치관을 역이용하여 균등법을 주는 대신에 여성보호규정을 박탈하고, 최종적으로 고용의 ‘유연화․다양화’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흐름이다.

자본측에서 보면, 요컨대 파트타이머나 파견노동자나 계약사원으로서 일하는 질 높은 노동력을 필요에 따라 확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번의 균등법 ‘개정’으로 여성보호규정의 철폐를 ‘쟁취한’ 자본은, 여성노동자를 태어나면서부터 모성(신체생리)를 가진 존재로서 대우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얻었다. 여성에게 대량의 시간외노동을 시키더라도, 심야에 일을 시키더라도 아무한테서도 트집을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남녀평등’이라는 미명하에 허용되는 것이다.



4. ‘남녀평등’시책을 추진하는 지배적이데올로기와 운동의 약점


우리나라(일본)의 지배계급은 1975년 국제여성의 해에 멕시코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여성회의와 그후의 ‘국제여성의 10년’ 속에서, 세계적 조류에 뒤지지 않고 ‘선진국’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남녀평등추진시책을 강구해 왔다. 75년에는 세계여성회의 개최를 계기로 총리실에 ‘여성문제기획추진본부’가 설치되고, 내각총리대신이 본부장에 취임하였다. 76년 10월에는 여성소년문제심의회가 균등법 제정을 요구하는 건의를 노동대신에게 제출하였다. 최근에는 95년에 북경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여성회의의 결의를 받아들여, 96년에 총리실의 남녀평등참획심의회(男女平等參劃審議會)가 ‘남녀평등참획 비전 - 새로운 가치의 창조 -’를 하시모토 내각에 보냈다.

제 4회 세계여성회의는 ‘북경선언’ 제19항에서 “젠더(gender: 사회적․문화적 성차이)에 민감한 개발정책 및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정책 및 계획을 여성의 완전한 참가를 얻어 입안, 실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일본]의 ‘남녀공동참획 비전’도 ‘사회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성별(젠더)에 민감한 관점의 정착과 심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선진’자본주의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여성정책은 ‘젠더적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그리고 ‘젠더적 관점’은 현재의 일본자본주의의 노동력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균등법 ‘개정’은 그 특징적 표현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상황은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와 함께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번의 정부․노동성의 균등법 ‘수정’작업에 대한 비정부․대중측의 운동은 지극히 미미한 것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여성노동자는 무관심하였다. 그 가운데 ‘보다 좋은’ 균등법을 요구하여 독자적으로 개정안을 만드는 등의 작업을 했던 여성그룹이 있었다. 그 그룹에는 변호사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들어 있다. 그들이 입각하는 사상은 역시 ‘젠더적 관점’이다. 여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일본)의 여성해방운동의 사상적 약점, 즉 정부와 운동측의 기묘한 동화현상(同化現象)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일찍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균등법(남녀평등법) 제정을 요구한 여성들이며, ‘우먼 리브’ 운동의 일환으로서 균등법 제정운동을 담당했던 층이다.

과거의 ‘우먼 리브’, 그리고 현재의 ‘젠더적 관점’에 입각한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과거와 오늘날의 균등법 요구운동 속에서, 일관되게, 독점자본이 균등법에 의해서 진짜로는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운동은 여성보호규정의 박탈공격을 돕는 역할을 하였다. 그들은 여성보호규정 대신에 ‘남녀 공통의 시간외 규제’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투쟁에 의하여 획득한 권리를 스스로 방기하는 그러한 운동 방침의 입각점은 결정적으로 오류이다. 후술하는 것처럼, 노동운동이 괴멸상태에 있는 가운데서 만족스러운 ‘남녀 공통의 시간외 규제’를 인정하게끔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 우리나라(일본) 여성해방운동의 비극적인 현실이 있다. 여성들이 계급적 관점을 갖지 못하고, ‘남성 대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는 한 “여성보호규정 철폐는 노동법상의 ‘규제완화’이며, 노동자의 기득권을 박탈하는 독점의 공격이다” 라는 인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해방운동을 지배하는 이러한 사상적 조류를 20년 동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운동측과 정부가 ‘젠더적 관점’에서 사상적으로 동화하고 있는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배계급은 스스로의 체제유지, 정책의 추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한에서는 운동측의 주장을 기꺼이 수용한다. 그렇게 해서 운동을 빈껍데기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장기(長技)이다. 그러나 체제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운동의 주장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인민의 강고한 투쟁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균등법 ‘수정’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노동조합은 사태의 본질을 간파하여 여성보호규정의 철폐에 반대하였을까?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균등법의 ‘수정’을 논의하는 장이었던 노동성 심의회에 ‘노동측’으로서 위원을 파견하고 있던 렌코(일본노동조합총연합(連合): 우리나라(일본) 최대의 노동조합 전국센터)는 96년 5월의 시점에서 여성보호규정의 철폐에 찬성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렌코 산하의 산별노조로서 철폐찬성의 방침을 내놓았던 곳 가운데에는 도요타와 닛산(日産)의 노조를 산하에 두고 있는 자동차총련(自動車總連)이 있다. 자동차총련은 조합원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60%의 여성이 철폐를 지지하였다고 말했다. 물론 렌코 내부에도 반대의견은 있었다. 여성의 취업률이 높은 섬유산업의 노조를 조직하고 있는 젠센동맹(全纖同盟)은 여성보호규정의 철폐에 반대하였다. 금년에 들어와서부터는 지방공무원의 노동조합인 자치노(自治勞; 렌코 가맹)의 내부로부터 본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단위노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 반대의견은 소수파이고, 렌코 중앙집행위는 반대의 소리를 무시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일본]의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은 25% 정도 된다.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는 노동조합과는 무관한 세계에서 하루하루의 노동과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80년대의 국철분할․민영화 반대투쟁의 패배에 이은 총평(總評)의 해체와 렌코의 탄생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우익적 재편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렌코는 오늘날과 같은 아주 절박한 상황하에서도 여전히 체제보다도 더욱 체제답고, 지배계급에 협력적인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당연하지만, 노동현장의 운동에 뿌리내린 여성해방운동도 자라나지 못한다. 본래대로 한다면 여성보호규정의 철폐공격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반대의 소리를 높여야만 하는 것은 노조의 여성부였을 터이다. 그러나 노조 본체가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젠더의 관점’이 노조 여성부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도 존재한다.

그런 가운데 공산당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전노련(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이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관점에서 여성보호규정의 철폐에 반대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전노련이 중심이 되어 주장한 여성보호철폐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전국연락회는 수차에 걸쳐서 집회를 열고 서명운동을 전개했지만, 투쟁시기도 늦었던 데다가 아마 조직력이 취약한 문제도 있어 ‘반대’의 결집축으로는 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이 왜 이와 같은 참담한 상태에까지 조락하였는가에 대한 분석은 다른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여성보호규정 철폐 저지투쟁이 생산현장의 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되지 못했던 점, 그 때문에 만족스러운 반대운동이 전개될 수 없었던 점을 총괄하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전개될 공격에 대하여 또다시 아무런 대응수단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5. 한국의 노동자매에게


여성해방이란 무엇인가? 자본축적을 위해 노동자 인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지배계급의 공격과 싸우지 않고 여성 해방은 있을 수 있는가?

새로운 균등법이 노기법의 여성보호규정 철폐와 함께 성립된 지금, 우리는 위 질문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이 오늘의 우리의 패배를 초래하였는지를 구명하고, 거기에서부터 배우는 작업을 개시해야만 한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균등법을 정말로 실행성 있는 것으로 하는 투쟁과, 빼앗긴 여성보호규정에 필적할 만한 구속력 있는 시간외․심야노동 규제를 만들게 하여 남녀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투쟁을, 우선은 노동현장에서 개별기업에 노동협약을 맺게 하는 구체적 투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균등법의 부대결의에 ‘남녀 공통의 시간외 규제’가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자본은 국경을 넘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맘대로 노동자․인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하는 공격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여성이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고, 세계의 여성들과 연대하여 투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작년 12월부터 투쟁한, 노동자의 제네스트(총파업)에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고 동지들과 함께 성원을 보냈으며, 우리가 얻은 정보를 일본의 노동자에게 가능한 한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한국에는 87년의 노동자 대투쟁에서부터 축적된 투쟁이 있어, 그것이 이번 제네스트를 가능하게 했으며, 최근 10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계급적인 교육이 끈질기게 이루어지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노력을 해왔다고 듣고 있다. 일본의 노동자계급은 한국의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진지하게 배워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해방운동은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 그것은 노동자의 투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부디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의 여성노동자가 지금 바로 직면하고 있는 곤란이 한국의 여성노동자를 언제 내습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매여, 우리의 전철을 밟지 말라. 여성해방은 노동해방과 함께 있다.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살고, 그리고 투쟁하고, 여성해방을 목표로 할 때, 자본의 공격에 대한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투쟁에 참가하지 않고, 여성의 해방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일본에서의 균등법 ‘개정’을 둘러싼 패배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에 다름 아니다.(97.6.24.)

한/노/정/연


번역 : 이은숙 / 연구기획실장

1997-07-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