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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한국타이어 노동탄압
 우리는 왜 아사단식투쟁에 들어가야만 했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
박응용

고발! 한국타이어 노동탄압
우리는 왜 아사단식 투쟁에
들어가야만 했는가?
현장통신 2

고발! 한국타이어 노동탄압



박 응 용 / 한국타이어 해고노동자






죽으리라......
돌려주리라, 원하는 몸뚱이를,
해고 생활 8년, 이젠 머무를 곳도 서 있을 자리도 없다.
손배 2억 700만원,
그러나 가만히 앉아 돌려줄 순 없다.
우리가 당한 야만적이고 반인간적 탄압의 백 배, 천 배를.
너희 따스한 침실에서 따스한 밥을 먹으며 살찐
자본가 너희들에게 되돌려 주며 죽어 가리라.
- 지난 6월 16일부터 아사(餓死)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이서광, 김진종 동지가 조합원들에게 보낸 속보에서 -

그 놈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내 살이 찢겨져 나가는 이상한 소리를 내가 듣고 있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안돼요”
아무리 소리쳐도 말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놈의 한 손엔 식칼이 들려 있었고, 다른 놈들은 출입문마다 칼을 들고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칼든 놈이 나의 옷을 찢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친 듯이 길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밤만 되면 그 끈적끈적한 소름끼치는 환영이 되살아나 불도 끌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다니는 붉은색 셔츠만 보아도 소름이 끼쳐왔습니다.
- 한국타이어 노민추를 후원하다 96년 5월 15일 새벽 5시 강도, 강간 테러를 당한 여성 노동자의 증언 -

근로조건의 개선을 이야기하였거나 노동조합을 이야기했던 동료들 중 단 한 사람도 한국타이어 정문을 무사히 걸어나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관리자 놈들은 자랑삼아 회식자리에서 낄낄대며 말했습니다.
“성형과에 있던 걔 말야, 어떻게 쫓겨났는지 알아?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한 거야, 그 가족들 거지새끼 다됐대”
“그러니까 잘난 체 해봐야 저 고생, 식구들 고생인 거야” - 현장 노동자의 증언 -

조용히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토론하고 있는데 12명의 사복 형사가 들이닥쳐 나와 주호 형을 연행했습니다. 우리는 단체협상안이 부결된 것에 항의하고 있었고, 사측의 폭력테러를 수사해 줄 것을 기관에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문을 몰랐습니다. 연행된 우리들에게 형사들은 토막살인사건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더니 구속시키고, 1심을 6개월이나 끌고, 1년을 감옥살이 시켰습니다. 수감생활 중 교도소에서는 사형집행장 청소를 시켰습니다. 저는 사람의 목에 걸리는 오랏줄이 그렇게 굵은 지 처음 알았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 노민추 활동 중 구속되었던 박희태 동지의 증언 -

농성 중인 노동조합 사무실로 관리자들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엔 쇠망치, 쇠파이프, 가스총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순간 책상과 의자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저항하였습니다. 그들은 쇠망치로 문을 부수고 저에게 가스총을 직격으로 3발 발사하고 문을 다시 닫았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가스에 질식돼 기절하면 끌어내리려고 밖에 봉고차를 대기시켜 놓았었답니다.
제가 16주의 허리부상을 당해 현장에서 일하기 어렵게 되자 해고당했습니다. 퇴직금과 국민연금까지 털어 구속자와 수배자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5월 갑자기 하혈을 하고 위가 부어 움직일 수가 없는데도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누워 있습니다.
- 해고자 전구환 동지의 증언 -

95년 12월 동지들이 끌려가고, 해고는 계속되고, 현장 동지들은 협박에 견디다 못해 줄줄이 지점발령 가는데, 투쟁이 잘될 때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개미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난만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무려 2년 간이나 계속해서 우리들은 철저히 고립된 채 비명소리 한 번 못 내고 그저 탄압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노민추 사무실이란 무덤 속에서 짐승처럼 뒹굴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 현재 노민추 의장 김종범 동지의 증언 -


죽음의 아사단식 농성투쟁

대전광역시 대덕구 목상동 100번지. 신탄진에 소재한 한국타이어를 둘러싼 신탄진 지역은 지난 95년 12월 6일 이후, 섬이었다. 한국타이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은 철저히 통제되었고, 언론은 물론 같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한국타이어 투쟁과 탄압은 금기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리고 지금 정문 앞에선 왜 해고자들이 아사단식투쟁이란 극단적 투쟁방법을 선택하고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가?
나는 당장 하루하루 먹을 것, 잠잘 곳이 문제로 되는 쫓기는 몸이 되었지만 끊임없이 따라붙는 의문에 시달려야 했다. 왜 이토록 잔인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을까? 무엇이 이 비정상적, 비이성적, 반인간적 탄압을 지속하게 하고 있을까? 끝없는 고민과 의문에 묻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인간에게 가해질 수 있는 끔찍한 범죄란 범죄는 다 일어나고 그 피해자들은 무수히 많은데 왜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일까? 나는 이 의문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 진실을 동지들과 이 사회에 알려야 했다. 어쩌면 한국타이어 탄압이 안고 있는 문제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수많은 논란의 화두일지 모른다. 어쩌면 한국타이어 탄압을 둘러싼 수많은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죽음의 아사단식 투쟁을 멈추게 할지도 모른다. 이윤추구와 권력을 향한 탐욕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무수한 음모와 잔혹함에 종지부를 찍게 할지도 모른다.
한국타이어는 1993년을 넘어서면서 더욱 극단적 노동탄압과 노동강도의 강화에 열을 올렸다. 한국타이어는 93년에 충남 금산군에 공장부지 30만평을 매입, 무리한 사세확장과 중국 현지공장건설에 나섰다. 대표이사 홍건희는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자금이 문제였다. 1조 원이 넘게드는 금산 공장을 준공하려면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여야 했다. 대부분 은행돈이었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극단적인 노동통제와 노동강도 강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 오만한 탐욕자 홍건희는 하나를 빠뜨리고 있었다. 극단적 탄압은 극단적 투쟁을 동반한다는 것을.
93년 직선제로의 규약개정 결의가 대전공장 대의원을 중심으로 결의되었을 때, 상무이사 오수정은 길길이 날뛰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였다. 협박, 테러, 회유, 해고, 전직 등등. 결국 회사측이 성공적으로 투쟁을 진압한 듯이 보였다.
94년 사측은 완전히 미친 듯 어용노조를 앞세워 3반 3교대도 힘에 겨워 산재가 다발하는 근로조건을 아예 3반 2교대 12시간 맞교대로 바꾸려고 시도하였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이 무모한 기도는 회사쪽의 패배로 끝났다. 3반 2교대 저지에 앞섰던 대의원들은 해고되거나, 테러 당하거나, 회유와 협박으로 소사장이 되었다. 철저한 보복이었다. 그리고 기초공사 단계에 불과하였던 금산공장의 자금압박은 계속되었다.
95년 노동자의 조직적 투쟁, 선대본과 노민추 투쟁이 일어나자 홍건희는 경악했다. 믿었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마침내 6월 21일 노동조합을 점거한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 주식값은 반값으로 폭락하고 증권회사의 전화가 조합으로 빗발쳤다. 국회까지 문제가 알려졌다. 홍건희는 관리직 사원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본사 업무가 마비된 것이다. 금산공장 준공은 94년 말이었으나 2년 뒤인 96년 12월 31일에서야 완공되었다. 공기가 연장되면 공사비가 상승한다. 95년 12월, 1차로 한국타이어 내에서 비타협적 투쟁을 계속하던 노조간부, 조합원이 구속되거나 해고되었다. 그래도 저항은 계속되었다. 홍건희와 관계기관은 96년 12월 금산공장 준공에 가장 큰 장애로 한국타이어 노민추를 지목하고 외곽 활동의 자금선과 활동선을 파괴하기 위해 투쟁을 지원하는 가족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테러를 자행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손해배상 2억 700만원이 부과된 것이다.
1997년 6월 23일 현재 한국타이어 정문에서는 사측 관리자 경비원들과 몸싸움을 벌여가며 텐트를 치고, 노민추 의장 김종범, 이서광, 장진호, 김진종 등 4인이 8일째 단식농성에 들어가 있다.
사측은 농성이 장기화되어 현장 노동자들이 합류하는 것이 우려되자 7월 1일부터 6개월 간 정문 앞에 장기집회 신고를 냈다. 이에 농성단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사측이 만약에 농성단을 해체하기 위해 어떠한 탄압이라도 있을 시에는 나머지 해고자 전원도 아사단식에 들어갈 것이고, 투쟁을 현장으로 확대시켜 지금까지 있던 반인륜적 탄압에 대해 낱낱이 폭로하고 사회문제화시키는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만성적 폭력테러의 실상과 권력기관과의 유착․공생의 실태

이성을 가지고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타이어 노동자 탄압에 머리를 절래 흔든다.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수단을 노동운동 탄압의 방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밝혀진 사안은 협박과 폭력을 극복한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폭력테러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구조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검찰, 정보기관, 경찰, 노동청, 노동위원회, 지역의 보수정치세력, 조직폭력배까지 한덩어리가 되어 공생․유착하며 자행되고 있는 범죄행위라는 데에 있다. 노동현장의 동향은 경찰과 정보기관이 충실히 전달해 주고 회사로부터 그 대가를 받는다. 대전북부경찰서와 한국타이어는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노동자들이 문제가 되면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할 만큼 이들의 유착은 관례화되어 있다.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활동가와 그 주변 노동자들이 포착되면 사측은 관리자 지역의 조직폭력배에게 폭력을 의뢰한다. 그리고 인력관리부의 실무 핵심부인 이승우, 박승규, 강철순 등은 그들을 사무실로 불러 저희들의 엄청난 위력과 공생구조를 설명한다. 아주 여유있고 침착하게 농담까지 섞어가며. “한타를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해서 이긴 역사가 없어.” “너 만약에 저녁에 혼자 걸어가는데 몇 놈이 와서 죽도록 패고 가면 어떻게 할래. 너만 손해잖아”. “방법은 많지. 길가다 누가 발을 밟으면 서로 실갱이 하겠지. 쌍방이 고소하면 누구를 잡아갈까?” 그래도 투쟁의 의지를 꺾지 않으면 관계기관은 개떼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든다.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면 위원장이나, 공익위원이란 자가 심문과정에서 ‘좌경폭력세력’이라고 매도하고 따로 불러 (화해의 명목으로) “나도 한 때는 젊은 혈기에 그런 일에 나서본 적이 있어. 참 훌륭한 일이지...... 그런데 말이야, 가족 생각도 하고 식구들 생각해야지. 어디 지점이나, 타지역에 가서 한 번 살지 않겠소?”라고 말한다. 이것을 거절하면 구제신청은 ‘기각’된다.
경찰과 검찰은 폭력을 당해서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을 잡아간다. 해고자들에게 벌금을 물린다. 죽으라는 소리다. 노동청 근로감독 과장이란 자는 공개적으로는 모든 자리에서 사측에 호통친다. 그러나 활동가들을 따로 만나면 “내가 79년 YH노조 사태를 해결하는 데 실무자였어.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거 하나 죽이는 일 쉬워. 누가 죽였는지 알게 뭐야” 라며 협박을 일삼는다.
그러다 보니 사측의 탈법사실과 범죄사실을 신고하면 ‘증거가 없다, 시정지시를 했다’며 검찰에 넘기고 검사는 껌값 정도의 벌금을 먹이고 범죄는 계속된다. 94년 9월 홍장기 테러 사건 때는 집으로 가자던 택시가 반대방향으로 달렸고, 결국 테러 장소인 신탄진 국민학교에 와서야 섰다. 내리자마자 주먹과 각목이 날아들었다.
한국타이어 노조 집행부는 이 범죄집단들의 충실한 하수인이다. 노조 대의원선거는 기표소도 없는 공개투표이다. 그리고 개표되면 개표통지의 필적을 사측 관리자에게 넘겨준다. 넘겨받은 사측은 사측이 내보낸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반드시 불이익을 준다. 특히 신입사원의 경우 멋모르고 투표하였다 끌려가서 협박당하면 그때서야 사태를 짐작하고 후회한다. 위원장은 간선제로 선출된다. 현장에 있지도 않고 서울 역삼동 본사 사장실 옆방에 붙어산다. 95년 농성 당시 노동조합 책상에서 블랙리스트가 나왔다. 관리자의 책상도 아닌 노조사무실에서 말이다. 게다가 당시 사무실 케비넷에서 나온 조합비 지출 영수증은 어용노조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1억에 가까운 조합비가 대부분 술값과 고급음식을 먹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누구와 먹었을까? 놀랍게도 경찰, 노동청, 노동위, 지역 건달 등이었고, 심지어는 이들에게 상납까지 하고 있었다. 지역건달들은 대부분 용역업체를 위장하고 입사하거나 타이어를 운송하는 물류과에 자리잡고 상주한다. 사측이 제공해 주는 각종 정보를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임무(?)를 완수한다.
이 더러운 공생․유착과 이들에 의한 폭력테러를 근절시키지 않고는 민주노조의 건설은 절망적이다. 즉 한국타이어 노조민주화 투쟁의 이면에는 권력과 독점재벌, 지역보수정치, 조직폭력배가 수십 년 간 공생․유착하며 만들어 온 반노동자적 범죄집단과의 투쟁이라는 성격이 있다.


연대투쟁의 물꼬는 트이고
2년 넘게 묻혀 있던 한국타이어 사태가 서서히 전국에 알려지고 있다. 동시에 이 진실을 접한 수많은 민주노조진영과 양심 세력이 분노하고 있다.
6월 25일 현재 한국타이어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국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아사단식투쟁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의 문제조차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한국타이어 노조민주화 투쟁의 제 일의 적은 무엇보다도 권력과 독점대기업의 공생․유착에 있다. 현재 투쟁의 중심 역량인 노민추와 제노조 민주화세력, 지역 민주노총본부와 민주노총 중앙 그리고 사회 각층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민주노총 제 7차 중앙위원회에 한국타이어 노동자 탄압사례가 보고되고, 제 8차 중앙위원회에서는 민주화학연맹의 발의로 민주노총 조직강화위원회 탄압대책위가 꾸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대투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하기 위한 첫 사업으로 6월 24일 한국타이어 탄압대책 계획서를 민주노총 상무집행위원회에 보고하고 확정하였다. 투쟁계획의 골자는 지역 민주노총이 주무기관이 되고, 민주노총 중앙, 민주노총 여성특별위원회, 민주노총 해고자복직 특별위원회, 화학연맹이 참석하여 한국타이어 탄압에 대해 공동보조를 맞춰나간다는 것이다. 우선은 한국타이어 노동자 탄압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려나가고 국회, 여성, 민주노총, 사회 각계각층이 광범위하게 진상조사단과 항의방문단을 구성하여 진상규명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때는 한국타이어에 대한 불매운동을 강력히 전개하기로 하였다. 민주노총 대전충남지역본부는 6월 28일 각 지구별 총력투쟁 장소를 대전역 앞에서 한국타이어 앞으로 옮기고 한국타이어 투쟁에 힘을 싣기로 하는 한편 ‘한국타이어 탄압공대위’를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특히 민주노총 여성특별위원회는 여성노동자와 가족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강도․강간 문제에 대해 강력히 투쟁하기로 하였으며, 전해투는 6월 15일 전국대표자회의를 한국타이어 노민추에서 개최하고 지원대책을 논의하여, 사측이 정문 앞에 장기 집회를 신고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7월 1일부터 3일씩 12월 31일까지 서울 역삼동 본사앞 광장에 집회신고를 마쳤다. 나아가 대전지역 동지들과 ‘지역해고자협의회’의 건설 기초를 다지고 준비위원회 임시의장의 선출을 마쳤다. 이제 연대투쟁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한국타이어 사측이 잘못을 시인하고 손배철회, 해고자 복직, 폭력테러 진상규명에 책임지지 않을 시 이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다.

아직 현장이 사측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어 있고 투쟁주체가 해고자이다 보니, 현장은 폭풍 속의 고요에 잠겨 있다. 폭발의 숨을 고르며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사측은 또다시 단식투쟁에 대해 무모한 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이것이 폭발점이다. 한국타이어는 민주노조 건설의 가장 큰 산맥, 생존권 사수와 폭력테러 박멸이란 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 전근대적 폭압의 가장 큰 피해자 현장 조합원 동지들이 반드시 이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야 말 것이란 것을. 그리하여 1차적으로 독점대기업과 권력의 봉건적, 전근대적 노동탄압과 노무관리를 제치고 민주노조의 기초를 다져나갈 것이란 것을.
그러나 재정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현재의 아사단식투쟁은 굳이 결의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아사투쟁이다. 선전물 찍을 돈, 차비, 약값조차 없다. 각계의 지지, 지원이 급박하게 요구된다.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전국 노동운동진영에 지지를 호소하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단식투쟁단이 걱정이다. 그래도 동지들이 자랑스럽다. 사랑스럽다. 그 지긋지긋한 탄압을 뚫고 솟아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함께이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대오와 연대의 대오에 대해 이 시점에서 진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과거와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중대한 투쟁이 일회적으로 끝나 또다시 절망과 탄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알리지 않으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아 수배자가 전국을 뛰어다녔는데, 자료를 들고 가는 곳마다 두 가지 공통된 질문을 받았다. “왜 지역 민주노총은 가만히 있는가? 그리고 지역에 알아본 결과 별 것 아니었다. 증거가 있는가? 너희들도 문제가 있지는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95년 12월에서 96년, 97년까지 한국타이어 노민추에 집중되었던 폭력테러는 현실이다. 누가 탄압받고 있는가? 누가 탄압하고 있는가? 탄압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고 있는가? 이것을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질문들이었다.
한국타이어의 문제가 단사의 문제만이 아니듯이 투쟁의 승리 또한 한국타이어만의 것이 될 수 없다. 모든 민주노조진영의 진정한 승리가 되어야 한다. 한/노/정/연

1997-07-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