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방침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
김세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97 대선 방침



김 세 균 / 소장






이른바 7룡이니 8룡이니 하는 대권주자들의 다툼이 치열해지고, 15대 대선 문제가 누구에게나 관심 있는 문제의 하나로 부각되면서 전국연합과 같은 기존의 민중운동권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97년 대선 방침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현 시기의 논의는 어느 것이나 민주노조 진영의 방침이 가장 중요성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또한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논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결집체인 민주노총이 논의를 주도하는 가운데 논의가 대선 참여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고 ‘노동자후보’ 추대 문제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문제가 결부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이 논의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성장, 발전해 온 것을 배경으로 하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산별노조 건설’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주요한 당면과제로 제기되고 있고, 96년 말과 97년 초의 노동자총파업투쟁을 거치면서 보수정치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현 시기의 논의의 특징은 87년의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발전과 민주노총의 건설, 그리고 노동자총파업투쟁을 거치면서 강화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역량에 기반하여 이루어지거나, 또는 그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운데 전개되고 있는 점이다. 이 점은 80년대에 있었던 (실패하거나 좌절한) 진보적 지식인층 중심의 다양한 모색들과 명백히 구분되는 결정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등이 구체적으로 문제되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 이제는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위성 자체보다는 ‘어떠한 정치세력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향과 목표 등이 한국 노동자 정치운동과 노동자계급의 미래에 핵심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 글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올바른 방향과 목표가 무엇이며 이와 관련하여 노동운동 진영이 어떠한 대선 방침을 확정해야 할 것인지를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글이 현 시기 노동운동 진영이 내딛는 한 걸음을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유의미한 것이 되게 하고, 노동운동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쟁취해야 할 것을 쟁취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1. 97년 대선방침 등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노동운동 진영의 대선 방침 등은 단지 어느 개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거나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세력화’ 내지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말은 여러 운동진영에서 허다하게 사용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그러나 ‘누구’ 내지 ‘어떤 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의미하는가와 정치세력화의 목표와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떤 세력 내지 누구의 정치세력화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민중의 정치세력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세력화’, ‘민주진영의 정치세력화’, ‘진보진영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등의 말이 사용되고 있다. 정치세력화의 단위가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는 데에는 현 시기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무엇이며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정치적 대치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 것인가, 또한 정치세력화의 목표와 내용이 무엇이며 정치세력화를 주도하거나 적어도 대외적으로 자신의 대표자로서 내세워야 하는 세력이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상이한 계급적, 정치적 입장이 표시되어 있다.

‘민주진영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수평적 정권교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설정하고 있다. 이들은 수구․보수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뭉쳐야 할 세력으로 보고, 대체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강령을 내세우는 자가 정치세력화를 주도하거나 대외적으로 내세워야 할 세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 대표적으로 ‘전국연합’ - 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 및 연합 또는 동맹의 범위 등을 민주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비슷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정치세력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이른바 ‘민족민주진영’을 주도하는 세력인) 민족주의적․급진 민주주의적인 소부르주아 세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깔고 있다.

과거에는 ‘진보진영’이라는 말이 범민주세력과는 구분되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거나, 적어도 범민주세력의 좌파 부분이 우파 부분이나 스스로를 민족민주세력으로 부르는 자들과 구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범민주연합의 대상이었던 야당 세력 등의 보수화를 목격하면서 오늘날에는 보수진영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민주진영이 모두 자신을 진보진영으로 부르기도 하며, 자신을 민족민주세력이라고 칭해 온 세력 역시 오늘날에는 자신을 진보세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문에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연합 단위를 정치세력화의 단위로 보는가 등은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전에는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계급문제를 민중주의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입장에 선다면, ‘정치세력화’는 당연히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과제 및 정치적 대치선 역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나 급진적 소부르주아지의 관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항상 타 기층 민중 내지 근로대중의 이해를 함께 대변하고 그들을 가장 가까운 연합세력 내지 동맹세력으로 삼아 연대해 나가야 한다. 이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목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경우에도 그 용어는 계급적․변혁적 관점에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정치세력화에 대한 ‘노동자주의적, 조합주의적 관점’ 혹은 ‘의회주의적, 개량주의적 관점’에서 사용되고 있다. 정치세력화에 대한 노동자주의적 접근은 노동자들의 소박한 직업적 동료의식의 정치적 표현으로서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시하지만 정치세력화의 목표나 내용은 부차적으로 파악하며, 노동조합주의적 관점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조합활동의 외연적 확장으로서만 파악한다. 그리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회주의적 관점은 노동자․민중정치가 부르주아 정치의 형태로써 구현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개량주의적 관점은 대체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론자들도 동의할 수 있는 최소 목표의 달성을 절대화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또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무엇을 위한 정치세력화인가’에 관계되는 ‘정치세력화의 목표’이다. 이때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략적 과제’ 및 ‘전술적 과제’와 관련시켜 파악되어야 한다.

전략적 목표는 ‘노동자․민중권력의 창출’과 이를 통한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과 새로운 대안적 사회 건설’이어야 하며,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

전술적 목표는 그러한 전략적 목표의 달성에 요구되는 현 시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과제의 해결을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에게 가해지고 있는 현 시기 지배세력의 핵심적인 공세가 무엇이며, 자본과 노동 및 지배층과 피지배 대중이 현 시기에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주요하게 대치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해지고 있는 지배세력의 핵심적인 공세는, 전세계적 수준에서 가해지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잔존하고 있는 구래의 파시즘적 억압책에 의해 뒷받침 받음으로써 그 반동적 성격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이며1),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둘러싸고 자본과 노동 및 지배층과 우리 사회의 대다수 노동자․민중이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내각제 개헌의 분쇄, 우리 사회의 패권적 지역주의 타파, 김영삼 정권과 신한국당 지배구조 타파, 수평적 정권교체와 부르주아적 민주주의 자도 찬성하는 민주개혁의 완성 등을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보는 견해들에 대해 반대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자본과 노동 및 지배층과 노동자-민중이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가를 무시하는 견해이자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야당이나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의 입장에서 파악하는 견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전술적 목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모든 측면, 모든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맞서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확대, 심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과제로는 (노동자․민중을 사회경제적 과정과 정치과정 전체를 통제하는 실질적인 주체로 발전시키고 경쟁의 원리가 아니라 연대의 원리를, 이윤 창출이 아니라 필요충족을 위한 생산과 분배라는 새로운 사회구성의 원리를 확대, 발전시킨다는 관점에서 제기하는) ‘잔업 없는 생활임금의 전면적인 쟁취’와 ‘전산업, 전업종에서의 노동시간의 단축’,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 반대’, ‘독점자본에 대한 민주적․민중적 통제의 확대’, ‘공공부문의 민영화․사유화 반대와 공공부분 및 공적 시설의 확대’, ‘개악된 노동관계법의 개정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모든 반민주악법의 폐기’, ‘사회복지체제의 수립’ 및 ‘남북한 평화군축체제의 수립과 민주적․민중적 통일의 달성’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2)



3. 동맹(연합)과 제휴의 대상, 주투쟁 대상과 주견제 대상


노동자 정치운동의 전술적 과제 내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전술적 목표와 관련하여 우리는 동시에 현 시기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대치선 및 동맹(연합)과 제휴, 주투쟁 대상과 주견제대상(주요타격대상) 등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추진하는 핵심적인 힘은 이른바 ‘세계화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독점자본과 독점자본 운동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정권이며, 그 기본적인 정치적 추동력은 ‘부르주아 보수세력’ 일반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먼저 정권이 YS정권이 아니라 DJ세력과 같은 다른 보수세력에 의해 장악될지라도 정권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장치로서 기능하게 된다는 점을, 그리고 오늘날의 보수야당 세력은 그 공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3) 그리고 이른바 정부 내부의 공안세력이나 JP, TK세력과 같은 수구세력이 크게 보아 수구적 보수주의 분파 내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을 기존의 파쇼적 억압책의 활용 등에 의해 뒷받침하려 하는 ‘신자유주의의 반동적 분파’에 속한다면, ‘민주진영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논자들이 ‘민주진영’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야당 내부의 DJ 반대파’ 및 시민운동 세력의 많은 부분은 수구세력은 아니지만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찬성하거나 적어도 큰 틀에서 반대하지 않는 ‘개혁적 보수주의 분파’, 또는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과 우리 사회의 일정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을 결합시키려고 하는 ‘신자유주의의 개혁적 분파’에 속한다. 예를 들어 ‘경실련’ 등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을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의 개혁적 분파’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DJ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양면적 성격을 지니면서 정세에 따라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에는 더욱 수구보수화 되어 가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반면 ‘참여연대’는 ‘개혁적 신자유주의’의 요소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를 옹호하는 자유주의를 지지하지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가 지닌 병폐를 인정하면서 그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규제를 가하는 데에 찬성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조류인 ‘혁신자유주의’의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중적 시민사회론’ 등을 제창한 창립 초기에는 혁신자유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조직의 확대 등을 위해 자본과 권력 및 사회의 유산자층의 도움을 얻기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점차 혁신자유주의적 요소가 희석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야당에 적을 두고 있는 ‘민주개혁파’의 일부 역시 혁신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생각된다.4)

그런데 수구세력은 물론 자유주의적 보수세력 전체가 그 기본적인 정치적 추진력으로 기능하는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투쟁은 군부파시즘 체제에 대항하여 형성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보수 대 진보’의 대립구도를 핵심적인 측면으로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세력들의 연합은 과거와 같은 이른바 독재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의 ‘민주대연합’과는 달리 그 속에 ‘진보와 보수’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삼는 새로운 질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이 연합을 ‘민주(대)연합’과 구분하여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 (내지 연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고 노동자․민중연대를 기초로 하여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청년․학생 및 인텔리층을 포괄하는 연합이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항하는 그러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을 앞장서서 조직하고, 그 연대체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을 적극 추동해 내가야 할 시대적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때 정권과 독점자본 세력은 이 새로운 연대운동의 주투쟁대상이 되고, 야당과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세력 등은 주견제대상이 되며, 혁신자유주의 세력은 연합․동맹세력이 아니라 민주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힘을 합칠 수 있는 제휴세력이 된다.



4. 정치세력화의 내용


정치세력화는 오늘날 대체로 ‘사회세력화+정치조직화’로 이해되고 있다.

이때 ‘사회세력화’는 단지 조합원 수의 증대나 노조의 대사회적 발언권의 증대 등으로서가 아니라, 대중적 정치투쟁 역량의 강화와, 대중운동 수준의 노동자․민중정치 내지 대중정치, 운동정치의 활성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를 발전시키는 기본적인 추동력이 대중운동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노동자․민중권력의 창출이 국가권력의 대중으로의 이전 내지 대중권력의 국가권력으로의 전화를 핵심으로 하는 것이라면, 대중적 경제투쟁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적 정치투쟁 역량을 강화하고 대중정치, 운동정치를 활성화한다는 의미의 사회세력화란 사실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기반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핵심적인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사회세력화+정치조직화론’을 제기하는 많은 논자들은, 대중조직은 경제투쟁을, 정치조직은 정치투쟁을 행해야 하는 것과 같은, 대중조직과 정치조직 간의 역할분담론을 제창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분담론은 운동 속에 부르주아 사회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재생산시키는 것으로, 정치세력화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대중정치의 활성화, 대중에 의한 정치의 전유를 방해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가장 잘못된 견해에 속한다. 왜냐 하면 운동 속에서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재생산되고 그 분리가 확대된다면, 설령 노동자 정당이 집권한다고 할지라도 노동자 대중은 여전히 통치와 지배의 대상이라는 위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조직화’는 정치조직 내지 정당 건설의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다.

정치조직화의 문제에 대한 주류적 견해는 (정치에 대한 ‘합법주의적 견해’와 ‘의회주의적 견해’가 파생시키는) 정당에 대한 합법주의적 견해와 의회주의적 견해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은 원칙적으로는 전략적 목표의 달성을 최우선시 하면서 투쟁하는 ‘변혁적 계급정당’이 되어야 하며, 제도정치권에서의 활동을 우선시하는 의회주의적 제도정당이 아니라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복무하는 ‘비제도적 투쟁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면투쟁과제가 변혁 그 자체라기 보다 변혁을 가능케 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데에 있고, 주․객관적으로 그러한 변혁적 계급정당의 건설이 어려운 우리 사회의 조건 속에서 정세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치조직은,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복무하는 비제도적 투쟁체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주요하게는 현 시기 전술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조직이어야 한다. 위에서 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을 조직하는 새로운 연대체로서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을 제창하였는데, 노동자계급에게 정세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조직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체’의 성격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고 노동자․민중연대에 기초해서 건설되는,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체로서의 이러한 정치조직은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감행하는 자본운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보수정치 일반과 철저히 맞서 나가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자본과 함께 하는 정치, 사회개혁’의 내용을 담는 이른바 ‘개혁적 국민정당’ 등과 그 지향성이나 성격 등에서 명백히 차이를 지닌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체’로서의 이 정치조직은 변혁적 계급정당 건설의 모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정치조직은 대중적 논의의 활성화에 기초하여 건설되어야 하며, 노조간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노동자계급의 선진역량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의회주의 정당이 아니라 비제도적 투쟁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역조직화’가 아니라 ‘현장조직화’가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이 정치조직은 노조와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하되 조직적으로 명백히 구별되는 조직으로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의 개입과 의회로의 진출 등을 통한 노동자․민중세력의 제도권 정치로의 개입은 지배세력이 제도권 정치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제도권 정치가 우리 사회의 정치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형태라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러나 제도권 정치에의 참여는 ‘대중정치’, ‘운동정치’를 ‘제도정치’로 전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중정치를 제도정치권으로 확산시킨다는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유럽에서 노동자 정당의 예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다시피, 제도정치에의 참여를 최초에는 운동정치를 제도정치권으로 확산시킨다는 관점에서 추진했다고 할지라도 일단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하게 되면 정치를 제도정치 중심으로 행하려는 유혹이 내부적으로 강하게 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점에서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하면서도 그 진출을 대중정치, 운동정치의 제도정치권으로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계속 추진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모순을 회피하면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오히려 그러한 모순이 존재함을 자각하면서 모순을 끌어안고 그것과 끊임없이 대결해 나감으로써 그 모순이 운동을 발전시키는 생산적 모순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5.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 정치조직화 사업


정치조직화 사업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치조직의 건설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는 점만이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전면적으로 감행되고 있고 그 공세로 말미암아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 그 공세에 대항하는 ‘민주적 진보를 위한 연합’을 형성, 발전시킴에 있어 노동자계급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 정치세력화에 대한 요구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다는 점, 수구․보수정치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 마찬가지로 수구․보수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일반 국민들을 노동자․민중진영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파악과는 달리, 예를 들어 임영일(경남대 교수)은 정치조직화를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기초’를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정치조직의 건설을 산별조직화의 진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로 미룰 것을 제안하고 있다.5) 이러한 견해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화는 어디까지나 산별조직화가 일정하게 진전된 기초 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 문제와 정치조직 건설 문제란 하나가 해결되어야 다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순차적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가 아니라, 중층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의 과제이다. 또한 임영일의 견해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노조간부들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조합운동 수준의 정치를 제도정치권으로 확장시키는 것으로 파악하는 조합주의적 정치관을 대변한다. 그러나 정치조직이 비록 노조의 뒷받침을 받음으로써 대중적 기초를 갖게 되어도 노조간부 중심의 사업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의 선진역량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조합활동을 단순히 제도정치권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운동으로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사회변혁의 과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총이 설령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정치조직화 사업이란, 대선 방침이 어떻게 되든, 노동자계급의 선진역량이 주축이 되어 항상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노동운동의 당면과제 중의 하나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동춘(성공회대학 교수)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당면과제를 노조 조직률의 제고, 기존 노조의 단결력 강화, 산별조직으로의 재편으로 보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지방의회, 단체장의 노동자 후보 당선을 통한 노동자 지역정치의 경험 축적, 국회에 노동자후보 당선을 통한 노동자 의회정치 경험 축적,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사회개혁투쟁,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노동자 대표참가, 범민주정당, 혹은 계급연합 정당의 구성을 통한 독자정당(범노동자정당)의 건설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하고 있는데6), 그의 주장 역시 정치와 정당에 대한 의회주의적, 조합주의적 견해만이 아니라, 임영일과 동일하게 (역사발전에서 일체의 도약이나 질적 단절 등을 부인하는) 노동운동 발전에 대한 전형적인 점진주의적-누적주의적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여러 가지 정치세력화 방침과 97년 대선방침들에 대한 검토


지금까지 우리는 대선 방침을 확정하는 데 전제가 되어야 할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주요한 측면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기초하여 이제부터는 현 시기에 제출되고 있는 정치세력화와 대선 방침들의 내용과 성격 등을 검토해 보도록 하자.


1) 여러 가지 대선방침에 대한 검토

그간에 제출되고 있는 정치세력화 방침은 주로 97년 대선 방침을 중심으로 제출되고 있고, 또 대선 방침은 주로 후보전술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는 먼저 후보전술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논의된 그간의 제반 대선 방침을 검토해 보려고 한다.


(1) 야당후보 지지론

과거의 민주대연합론은 대선후보전술과 관련하여 항상 (당선 가능한) 야당후보 내지 DJ에 대한 지지를 내세웠다. 이러한 입장을 기본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대표적인 견해로서는 박세길(인천연합 정책위원장)의 주장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신한국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후보(DJ)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7) 그리고 김광수(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기획실장)는 ‘일당지배의 종식’을 현 시기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는 점을 들어 민주대연합전술에 기초한 야당후보 지지론을 제출하고 있으며,8) 이수봉(현총련 사무차장)은 이번 대선에서는 정권교체를 목표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전체야권을 포함하는 국민적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9), 이러한 주장 역시 사실상 야당후보지지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황태연(동국대 교수)은 ‘저항적 지역연합’ 혹은 ‘지역계급연합론’을 DJ지지 혹은 DJP연합 등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제출하고 있는데10), 그의 견해는 한국 사회를 PK세력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패권적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소외 받는 모든 지역의 저항적 지역주의 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지역문제를 계급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계급문제를 지역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또는 계급문제의 해결을 철저히 지역문제의 해결에 종속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탈계급적․탈노동자적 관점에 속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절대화함으로써 수구세력과의 연합이나 보수세력의 반노동자적 행동도 모두 정당화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야당이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견제대상 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그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노동자․민중운동의 주투쟁대상이 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목희(前 한국노동연구소 소장)는 ‘여에서 야로의’의 정권교체는 우리 역사의 일보 진전이라는 점을 들어 황태연과 마찬가지로 ‘지역계층연합론’을 제출하고 있다.11)

다른 한편, 재야운동진영에서 제기하는 ‘범야권단일후보론’이나 민주노조 일각에서 제출하고 있는 ‘야당과의 정책연합론’ 역시 큰 틀에서는 야당후보지지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2) 제 3후보론

이 견해는 주로 손호철(서강대 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에 의하면 궁극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수평적 정권교체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고 정권교체의 역사적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만큼, 3김 청산과 3김 구도를 유지, 재생산해 온 사당정치와 지역할거주의를 청산하고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한 정치발전을 이루기 위해 국민회의, 통추, 민주당 등 민주화세력이 DJ가 아닌 ‘제 3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12) 그런데 손호철은 이러한 주장과 동시에 민중운동 진영은 범대위를 개편, “민교협, 학단협, 참여연대, 환경단체, 여성단체 등 정책능력이 있는 민중운동의 싱크탱크와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대중조직들이 중심이 되어 작업팀을 만들어서 ‘21세기 한국사회개혁안’을 준비해 7, 8월경에 제시하고 이를 매개로 대선에 개입해야 하며”13), 독자후보, 민주야당과의 연대, 여야후보 중 개혁적 후보를 지지하는 등거리전략, 무행동(능동적 불개입)의 4가지 선택 가능성 중에서 야당이 DJP가 아니라 제 3후보를 내는 경우 제 3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유력한 대선 전략이라는 주장을 아울러 제출하고 있다.14) 이러한 그의 주장은 제 3후보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와 민주개혁을 최우선시하면서 민중운동의 독자성 확보를 부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의 견해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아니라 3김 청산과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을 위한 일종의 대민주연합을 최우선시하고 있고, 제 3후보론이 정권교체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DJ의 출마가 기정 사실화되어 있는 조건에서 실현 불가능한 공상적 방안이다. 나아가 노동자․민중세력이 제 3후보를 지지해 그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과연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기여하는 것인지를 질문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나 손호철은 최근의 한 토론회에서 제 3후보론이 지역주의의 청산을 위한 전술의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지만 제 3후보 추대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점을 들어 노동자․민중진영의 독자적인 대선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호철의 기존의 제3후보론 주장과 유사하게 유시민 역시 제 3 후보론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김대중은 승리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완패 당하기보다는 ‘제 3후보의 대리전’을 통해 부분적 승리를 얻는 것이 그에게 요구되는 보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5) 이 점에서 손호철의 제 3후보론이 ‘DJ 청산론’이라면, 유시민의 주장은 ‘제 3후보를 통한 DJ의 계속적인 역할 수행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 정당 내에서 개혁세력과 반개혁세력의 대치선을 형성하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 이종오(계명대 교수)의 ‘온건한 개혁세력 연합론’16) 역시 그 논리적 귀결은 제 3후보론을 지지하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3) 독자후보론

여기서 말하는 ‘독자후보론’이란 DJ나 야권 소속의 제 3후보를 지지할 것이 아니라, 여당만이 아니라 보수야당에 대해서도 일선을 긋는 진보진영 자신의 독자후보를 대선후보로 내야 한다는 주장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개진되고 있는 독자후보론에는 크게 보아 ‘국민후보론’,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후보론’ 그리고 ‘차선의 선택으로서의 노동자후보론’으로 대별된다.

(3.1) 국민후보론

‘국민후보론’이란 우리 사회의 대립구도가 여당과 보수야당을 포함하는 보수세력 전체 대 민주세력 (혹은 진보세력) 간의 대립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지워진다고 파악하면서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민주진영 (혹은 진보진영) 전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민주개혁을 위한 최저강령을 내세우고 민주진영 전체를 대변하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대화(상지대 교수)에 의해 가장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그는 현 시기 한국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국민회의를 비롯한 야당을 포함한 보수세력 대 민주진영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면서, (1) 민주진영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해 중장기적인 전략과 후보전술의 적극적 구사와 같은 다양한 개입전술을 구사해야 하며, (2) 민주진영의 정치적 요구를 집약한 ‘21세기 개혁강령’이나 ‘민주강령’을 제시하는 가운데 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계급계층적 한계를 넘어서는 국민후보를 내세워 전국적 수준에서 민주진영의 정치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98년 지방선거에서는 정치세력화의 지역적 근거지를 확보해야 하며, (3) 이를 토대로 향후 2~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0년에 실시될 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당을 건설하여 정치세력화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7) 그의 주장은 그러나 야당세력을 보수세력으로, 시민운동세력을 민주세력으로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 시민운동세력에도 여러 다양한 조류가 존재한다는 점, 그가 말하는 21세기 개혁강령 혹은 민주강령 역시 제 3후보론에서 말하는 민주개혁의 내용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는지가 모호하다는 점, 보수야당을 제외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과거의 민주대연합론을 계승하는 민주연합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손호철의 제 3후보론에는 비록 부차적이지만 노동자․민중운동의 독자성 확보라는 문제의식이 제출되어 있으나 그의 주장에는 시민운동과 노동자․민중운동의 무차별적인 단결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민운동세력과 노동자․민중진영의 차이를 희석화시키고 있다는 점, 그가 말하는 계층계급적 한계를 넘어선 국민후보란 사실상 시민운동적 수준의 개혁강령을 내세우는 후보라는 점에서 계층계급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중간층 수준의 계급적 요구에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요구를 가두어 두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또한 그의 주장은 시민운동세력이 노동자․민중세력을 필요시 제휴할 수 있는 세력 정도로 보지, 결코 동맹․연합세력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으며, 정치세력화를 단지 선거와 의회로의 진출과 의회주의 정당의 건설 문제로서만 파악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노회찬(진보정치연합 대표)은 제 3후보론과 민중후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3김의 통제를 벗어난 모든 정치, 사회운동세력과 시민, 종교세력들이 앞장서는 (‘운동권후보’가 아닌) 진정한 ‘국민후보만들기 운동’을 제창하고 있는데18), 그의 주장은 정대화의 국민후보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른 한편 전국연합의 주류파는 그간 ‘진보적 민주후보론’을 제출해 왔는데19), 이 ‘진보적 민주후보론’의 내용은 사실상 정대화의 ‘국민후보론’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진보적 민주후보론’은 민주진영 내부에서 이른바 민족민주세력의 주도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반면, 정대화나 노회찬의 국민후보론은 보다 명망있는 부르주아적 민주개혁세력의 주도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전국연합 6기 정기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 등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제 세력들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민주연합을 대표하는 ‘우리 후보’인 ‘국민후보’를 내는 동시에 정권교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범야권의 후보단일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민주진영의 공동의 선거기구로서 가칭 ‘민주개혁국민연합’을 결성할 것을 결의했는데20), 이러한 결의는 전국연합 주류파의 견해인 ‘국민후보론’을 앞세우면서도 전국연합 내부에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는 ‘야당후보지지론자’들의 견해를 수용하고 있는 절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안은 일단 독자후보를 내되 DJ가 JP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를 위해 DJ를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른 한편 오늘날 민주노조진영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술로서21), 그리고 민주진영이나 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민주노총 또는 민주노조운동의 주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노동자후보론’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조진영의 주류파가 제기하는 ‘노동자후보론’은 대체로 야당세력과는 구분되는 이른바 민주진영이나 진보진영의 ‘독자후보’가 노동자출신의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즉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정대화 류의 ‘민주개혁 강령’을 가진 ‘국민후보’가 민주노조진영의 대중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제출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진영 혹은 진보진영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민주노조진영이 앞장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강령을 가지고 나서는 ‘국민후보’가 다른 인물이 아니라 바로 민주노조진영의 대중지도자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국민후보론’의 주장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자후보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러한 의미의 ‘노동자후보론’은 ‘국민후보론’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후보론’의 일종, 즉 민주노조진영의 ‘국민후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3.2)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후보론

이러한 입장은 민주노조진영의 주류파나 전국연합의 주류파들이 제기하는 ‘국민후보론’과는 달리, 정치세력화는 민주진영이나 범진보진영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국민후보론에서 제기하는 민주개혁 강령을 넘어서는 보다 변혁적인 강령을 지닌 후보를 노동자․민중진영의 후보로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노동청년연대’(한청연)의 97년 대선 방침으로 확정되었으며, ‘대학생신문’을 비롯한 진보적 학생운동진영에서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22) 그리고 오세철(연세대 교수) 역시 한 토론회에서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민중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견해를 개진했다. 그런데 한청연은 대선 국면과 관련하여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민중후보 추대운동을 중심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오세철은 보수정권 반대와 재벌지배 타파를 위한 투쟁을 조직하고 그 투쟁에 참여한 세력들의 합의에 기초하여 민중후보를 추대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출하고 있다.

그리고 박희석(민철노련 정책기획실장)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실천적 과제로서 다가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근본적 변혁을 위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의 구조적 변혁적 대안이 제출되어야 하고, 단련된 선진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정치세력화에 대거 참여해야 하며, 노동자정치활동이 자본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현장 속에서 분명히 각인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23), 이러한 그의 주장은 민주노조진영의 주류파에서 제기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자후보론’과는 구분되는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노동자․민중후보론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청련’의 주장 등이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의 조직에서 나온 주장이라고 한다면, 박희석의 주장은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3.3) 차선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노동자후보론

이러한 주장은 기본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후보론’을 지지하지만, 그러한 후보를 노동자․민중진영의 후보로 내세우기 어려운 현실적 조건을 감안한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진영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과 중심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의 후보로는 부족하지만, 차선으로 민주노조진영의 대중적 지도자를 97년 대선후보로서 내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아직 공식적으로 표명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 ‘후보방침 없는 대중투쟁 전개론’ 혹은 ‘97년 대선 최소대응론’

현재의 노동운동 내부 상태에 비추어 볼 때 단일의 정치방침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고 노조가 직면한 다른 과제들을 수행하기도 벅찬 만큼 ‘DJ 지지론’이나 ‘제 3후보론’ 또는 ‘독자후보론’ 등의 후보전술을 채택함이 없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 강화해 나가는 데에 주력하자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임영일이나 김동춘과 같이 산별조직화가 더 한층 진척된 이후 정당을 건설하자는 입장에서 제출되고 있거나, 아니면 제도정치권의 진출을 기본적으로 불신하거나 아니면 대중투쟁 역량이 강화된 후에 그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제출되고 있다.


(5) 진보진영 단결 우선론

이러한 견해는 현 시점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사회가 크게 달라지거나 진보세력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보전술로 인해 진보세력이 분열해서는 안되며 진보진영 모두의 대동단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대변하는데, 정영태(인하대 교수)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24) 그런데 정영태가 말하는 진보진영이란 국민후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민주진영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및 대선 방침 검토

지금까지 우리는 97년 대선방침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제반 논쟁들을 주로 후보전술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진보진영 혹은 노동자․민중진영의 정치세력화 방침 및 대선방침을 결정하는 데는 민주노총의 방침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여기서는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및 대선 방침을 별도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민주노총은 95년 11월 출범 이후 강령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조직의 당면과제로 확정한 가운데 ‘정치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이 위원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정치방침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연대사업과 사회개혁 투쟁을 전개하면서 정치세력화를 위한 전제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1997년 3월 27일에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97년 대선에서 독자적 영역 구축, 98년 지자체 선거에 대거 진출, 98~99년 정당(정치조직) 건설, 2000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 달성’을 결의했다.

1997년 5월 7일에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이라는 제하에 민주노총 간부토론회가 열었는데, 이 토론회에서는 국민후보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중세력의 후보론, 범야권단일후보론 등이 개진되었다. 이 토론회를 통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상과 경로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다양한 이견들이 드러났다.

그런데 1997년 5월 21일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초안)을 만들었는데, 이 초안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정당 건설이 시급하다는 점, 정당건설을 민주노총이 주도해야 한다는 점, 건설되는 정당은 이념정당이나 계급정당이 아니라 ‘개혁적 국민정당’으로서 노동운동진영은 물론 신사회운동으로 대표되는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주요역량을 포괄해야 한다는 점, 97년 대선에서는 (노동자후보인) 독자후보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국민후보로서 내야 한다는 점, 민주노총이 정당 건설을 주도하기 위해 각 조직의 대표자와 간부들을 핵심발기인으로 하는 정치실천단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있다. 이 안은 민주노총 주류파의 견해를 최초로 공식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지닌다.

이어 정치위원회 기획국은 1997년 5월 29일 열린 민주노총 제 7차 중앙위원회에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과 97년 대선 방침’을 토론자료로 제출했는데, 이 자료에서 현 시기는 새로운 정당 건설의 호기로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의 과제라는 점,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조합이 모태가 되어 정당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점, 97년 대선을 맞아 민주노총은 국민후보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고 국민후보운동을 지지하는 개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정치조직(가칭 ‘민주개혁연합’)을  각계각층에게 제안하여 건설해야 한다는 점, 다가오는 대선과 지자체 선거 과정을 통해 실질적인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98~99년에 본격적으로 정당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 민주노총의 대선 방침이 시급히 확정되어야 하고 정치실천단을 대대적으로 조직하여 정치세력화를 위한 사업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 자료는 5월 21일에 제출한 정치위원회의 안을 더욱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6월 19일에 열린 민주노총 제8차 중앙위원회는 정치위원회 위원장의 교체 이후에 마련된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사업계획(안)’에 ‘대중적 합의에 의한 정당건설’을 강조하는 문구를 삽입하는 정도로 수정하여 민주노총 내부의 토론자료로 채택했다. 이 토론자료는 기존의 정치위원회 안을 기본적으로 계승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전제를 내세우고 있는 점 - 대선 방침은 정치세력화라는 장기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상의 전술적 방침이라는 점, 정치세력화는 97년 임․단투의 승리, 현장의 노동운동 탄압과 개악된 노동법의 개정이라는 당면투쟁과제의 해결 및 산별노조 건설과 보수화 흐름에 대항하는 대안의 모색과 관련시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 민주노총이 대중조직이라는 점에서 최대공약수를 찾아가는 형태로 사업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 민주노총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다른 단위의 논의와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열려진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 (2) 민주노총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선거대책기구이자 향후 정당건설의 기초가 될 새로운 정치조직으로 정치세력화를 위해 사업의 중심을 옮기려 한다는 점 (3) 전국연합 등 민족민주진영과 각계 민주세력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국민후보’라 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후보’를 내되, 이 후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민주개혁의 상과 내용에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서 ‘기존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을 포함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어느 세력도 배제하지 않고 가능한 한 연대의 폭을 최대한 넓히려고 시도하고 있는 점 등이다.

정치세력화와 대선 방침에 대한 민주노총 주류파의 견해는 개혁적 국민정당의 건설과 국민후보론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입장에서 내세운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전국연합 주류파의 견해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민주노조진영 내부에는 한편으로는 ‘야당후보지지론’이나 ‘97년 대선 최소대응론’을 지지하는 견해가 다수 존재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변혁적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후보론을 지지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주노총의 방침이 주류파가 바라는 대로 채택될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그러나 비주류파의 견해들이 밑으로부터의 강력한 운동의 형태로서 표출되지 않는 한 주류파의 견해가 다소 수정을 거쳐 민주노총의 방침으로 확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위에서 우리는 그 동안 민주노총에서 정치세력화와 대선방침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그간 성장, 발전해온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역량을 기반으로 하여 제기되고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 주류파의 견해는 많은 문제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그 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민주노총 주류파의 견해는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는 주체의 측면에서는 민주노총의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세력화의 성격과 상 및 연대대상을 파악함에 있어서는 전국연합이나 이른바 ‘민주연합’ 주창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탈변혁적, 탈계급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견해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서 노동자들의 중심성만을 중시할 뿐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노선과 구분되는 노동자계급의 노선이 지닌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시민운동세력 등과의 연대는 중시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이해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해를 전 사회적으로 관철시켜 나가려는 관점은 결여하고 있다. 또한 전국연합의 노선이 노동자계급의 노선과 구분되는 민족주의적․급진민주주의적 소부르주아 정치노선을 대변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반세력들과의 관계 및 자본․권력과 시민운동세력과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총 주류파가 추진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란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기보다는 ‘그 속에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세력의 정치세력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정치세력화 노선은 과거에 민주대연합론에 기초하여 DJ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을 내세움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심대한 장애물을 놓았던 전국연합 등을 견인하기보다는 그들에게 견인당하고 있는 노선이자, 노동자․민중운동과의 연대보다는 권력에 대해 정책적 대안의 제시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고, 자본과 보수세력과의 단절보다는 비판적 협조를 중시하는 시민운동세력 등에 짝사랑을 보내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개혁적 국민정당 건설론’과 ‘국민후보론’을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으로 내세우는 민주노총 주류파의 정치노선은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노선을 ‘자본의 정치에 대항하는 노동의 정치’를 전국민적 헤게모니를 지닌 정치로 발전시키려고 한 그람시(A. Gramsci)의 노선과 같은 것인 양 치장하기도 하지만 - 그 핵심은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자본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추구하는 노선이다. 이 노선은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노동자대중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게 만든 전투적, 변혁지향적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 위기론’을 제창하면서 전투적, 변혁지향적 민주노조운동을 비판하고 나온 제반 ‘우경적 노동운동 혁신론자들’의 견해를 계승하고 있는 노선이며, 가까이는 96년 말과 97년 초의 노동자 총파업투쟁에서 발현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저항의식을 더 한층 발전시키려 하기보다는 ‘국민적 관점의 도입’ 등을 통해 억누르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과거 전노협이 주최하는 집회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노동해방’, ‘평등사회의 건설’ 등의 구호가 이후의 집회에서는 귀를 씻고서도 듣기 어렵게 된 점, 노동자총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중투쟁 동력을 목적의식적으로 유지, 강화하려 하기보다는 ‘국민여론’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전술을 채택하고 투쟁을 ‘합법적 기조와 틀’에 묶어두기 위해 밑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올라오는 투쟁동력조차 억누르기 위해 애쓴 점,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겠다는 언질을 전해 듣고 총파업투쟁을 서둘러 끝내 버린 점, 노동자총파업투쟁과 굳건히 연대한 범대위를 발전시켜 새로운 정치조직의 모태로 삼기보다는 범대위를 총파업투쟁 당시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 시민운동세력을 중심적 주체로 한 느슨한 회의체인 ‘민주연대’로 대체해 버린 점, 민주노총의 사업방침에 (‘회사 살리기’와 같은 애사주의적 관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와 같은 노사협력주의에 의해 뒷받침 되고 있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같은 자본의 경쟁논리 및 ‘경제살리기’와 같은 애국주의적, 국가주의적 논리가 스며들고 있는 점 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 주류파가 내세우는 ‘개혁적 국민정당론’과 ‘국민후보론’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의 정치적 표현이다.

셋째, 민주노총 주류파의 정치방침은 당연하게도 합법주의적, 의회주의적, 조합주의적 정치관과 정당관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점은 정치세력화를 주로 합법적 정당 건설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점, 정당조직과 활동 기반을 선거구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 점, 정치활동을 선거활동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 정치세력화의 목표를 원내진출로 협소화시키고 있는 점, 정당건설의 주체를 노동조합 전현직 간부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정치방침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투쟁, 특히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것을 통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려 하기보다는, 정치세력화의 일정을 모두 부르주아 선거일정에 맞추어 제기하고 있고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97년 대선 방침과 과도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선거에서의 승리와 의회진출은 중시하고 있지만, 정치세력화를 통해 현장투쟁력을 복원하고 강화하려는 전망 및 현장투쟁력을 정치세력화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넷째, 노동자의 정체세력화의 목표를 ‘민주개혁’ 수준으로 협소화하고 있고 국민후보운동의 취지에 동의하는 개인을 중심으로 정치조직(가칭 ‘민주개혁연합’)을 건설하겠다는 민주노총 주류파의 97년 대선방침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략적 목표를 97년 대선에 대한 전술적 목표에 종속시키는 견해이다.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술적 목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목표를 전술적 목표에 종속시키는 것은, 내부의 변혁적 역량의 발전을 억압하고, 상정하고 있는 전술적 목표를 넘어 운동이 성장하는 것을 억누르는 운동 발전의 질곡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7. 결론 - 무엇을 할 것인가?


현 시기에 진척되고 있는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 방침 등에 대한 논의와 시도는 어느 것이나 87년 이후 성장해온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투쟁역량을 기반으로 한 것이거나 그 역량을 중요시 여기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지식인층 중심의 논의와 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현 시기의 논의와 시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개혁적 국민정당론’과 ‘국민후보론’을 앞세우고 있는 전국연합 주류파의 관점을 수용한 민주노총 주류파의 관점이다. 우리는 앞에서 현 시기에 요구되는 노동자계급 내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목표와 내용 등을 구명하려고 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여러 대선방침을 검토하고 특히 민주노총 주류파의 견해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은 노동자 내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가 추진되고 있는 현실의 지배적 경향이 노동자계급의 노선으로부터 명백히 이탈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노선을 견지하려고 하는 세력이 무엇을 행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노동자계급 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구현하려는 노동자․민중정치의 목표와 내용이며 이를 추진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선진역량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을 추진해 나가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 특히 현 정세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저항하는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합을 추진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노동자계급 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가장 중요한 한 당면과제임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비해 대선전술과 후보전술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함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정치세력화를 위한 사업에 착수하고 있는 정세와 관련하여 민주노조진영 내부의 선진역량을 정치세력화 사업의 중심적 주체로 서게 하고 이들의 역량에 기초하여 민주노총 및 노동자․민중진영 전체의 정치노선를 변화시켜 내는 사업이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조진영 내부에 자생적인 흐름의 형태로 우경적, 개량주의적 흐름과 전투적, 변혁적 흐름이 뒤섞여 있는 점을 아울러 주목해야 한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은 그러한 자생적인 우경적, 개량주의적 흐름의 목적의식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을 지배하는 노선이 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자생적인 전투적, 변혁적 흐름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우경적, 개량주의적 흐름에 억눌림을 받고 있지만 저항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투쟁이 전개될 때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노동자계급의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선진역량을 정치세력화의 중심 주체로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저변을 형성하는 이러한 자생적인 전투적, 변혁적 흐름이 목적의식적인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으며, 이 사업은 어느 시기, 어느 국면에서도 노동자계급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와는 달리 민중후보 추대사업을 노동자계급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중심과제로서 파악하는 것은 과거의 민중후보 추대운동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는 견해이며, 후보전술을 노동자계급과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핵심적인 사업으로 보는 잘못된 견해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선 노동자․민중후보 추대운동을 노동자계급의 선진역량이 주도하는 운동이 아니라, 외부의 진보적 지식인층 운동으로 제기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은 민주노조 내부의 선진역량과 결합하고, 이를 통해 자생적인 전투적, 변혁적인 힘을 목적의식적인 정치적 힘으로 발전시키는 일을 최우선시해야 하는, 진보적 지식인층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보적 지식인층이 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 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역량을 주축으로 삼으면서 그러한 선진역량과 진보적인 외부적 역량과의 굳건한 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현 시기에 진척되고 있는 정치세력화 및 대선방침을 둘러싼 논의와 시도에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개입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야 하며, 대선 방침과 후보전술에 지나치게 연연함이 없이 노동자계급 및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본래의 목표에 충실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 자유화, 탈규제화, 민영화, 사유화, 유연화, 개방화 등의 구호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하거나 시장적 관계에 철저히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이념적, 정치적 조류를 가리킨다. 이 신자유주의는 원래는 1970년대 중반 이래 세계 자본주의체제가 심대한 구조적 불황 국면에 빠져든 이후 그 구조적 불황의 부담을 자국의 노동자․민중 및 제 3세계의 노동자․민중 전체에게 폭넓게 전가시켜 해결하려고 한 선진국 독점자본의 반동적인 공세로서 출현한 것으로 한편으로는 이른바 ‘포스트포디즘적 내지 유연적 생산체제’의 수립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운동의 지구화․세계화에 의해 뒷받침 받고 있는 현 시기 자본운동의 역사적 발전 추세에 상응하는 현 시기 자유주의의 주류적 흐름을 대변하는 이념적․정치적 조류이다.


2) 이에 대해서는 김세균, ‘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 민주노총 노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안적 해결책의 모색을 중심으로 -’,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22호(1997년 6월호), 31~51쪽 참조.


3)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DJ가 정부가 제출한 개악된 노동관계법안을 별달리 수정 없이 통과시키겠다는 것을 약속한 점, 그리고 노동자총파업투쟁 이후 재개악된 노동관계법이 여․야 합의에 의해 통과되었다는 점 등이 지닌 의미를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4) 진보적 자유주의 조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혁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김세균, ‘신자유주의 정치이론의 연구경향과 문제점’, ꡔ이론ꡕ 제15호(1996년 여름, 가을호), 41쪽 이하 참조. 그런데 야당 내부의 혁신자유주의자들과 혁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세력은 전자가 후자와는 달리 보수세력에 대해 대치선을 긋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세력의 아성 속에서 그들과 협력하거나 그들에게 종속된 가운데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5) 임영일, ‘97년 대선과 노동자 정치세력화(3)’, ꡔ연대와 실천ꡕ, 1997년 5월호, 9~10쪽 참조


6) 김동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 현재의 과제와 전망’, FIET-KLC 주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주관 ‘정치활동 강화를 위한 노조지도자 교육과정(III)’ ꡔ97년 대통령선거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자료집ꡕ, 6~12쪽 참조


7) 박세길, ‘민족민주진영의 주도 아래 반신한국당 전선으로 돌파하자’, 전국연합 주최, ꡔ‘97년대선 방침 토론회 자료집ꡕ 참조


8) 김광수, ‘50년 일당지배 종식 위한 민주연합전술’, 월간 ꡔ말ꡕ197년 7월호, 72~73쪽


9) 이수봉 ‘노동조합과 정치방침’, 민주노총 간부토론회 ꡔ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ꡕ자료집, 15~17쪽 참조


10) 황태연, ‘지역주의와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 FIET-KLC 주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 주관 ꡔ‘정치활동 강화를 위한 노조지도자 교육과정(III) : 97년 대통령 선거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자료집ꡕ, 13~22쪽 참조


11) 이목희, ‘여에서 야로의 정권교체는 역사의 일보진전’, 월간 ꡔ말ꡕ, 1997년 3월호


12) 손호철, ‘왜 ‘제3후보’가 승리전략인가’, 월간 ꡔ말ꡕ, 1997년 3월호, 50~53쪽


13) 위의 글, 53쪽


14) 위의 글, 53쪽 참조


15) 유시민, ꡔ97년 대선, 게임의 법칙ꡕ


16) 이종오, ‘개혁세력과 반개혁세력의 대치선이 형성되어야 한다’, 사회평론 ꡔ길ꡕ, 1997년 5월호, 106~109쪽 참조


17) 정대화, ‘국민후보가 대안이다’, ꡔ길ꡕ, 1997년 5월호, 52~61쪽 참조


18) 노회찬, ‘‘국민후보’를 통해 정치세력화로 나서자‘, 사회평론 ꡔ길ꡕ, 1997년 3월호, 112~113쪽; ‘국민직접후보로 독자후보 뽑자’, 월간 ꡔ말ꡕ, 1997년 4월호, 70~71쪽 참조


19) 전국연합 정책위원회, ‘왜 진보적 민주후보 전술인가?’, 전국연합 주최, ꡔ97년 대선방침 토론회(1997.4.3.) 자료집ꡕ 참조. 


20) 전국연합, ‘1997 대통령 선거방침(안) : 1997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6기 정기대의원대  회 결정사항’ 참조


21) 예를 들면 이근원(전문노련 조직쟁의국장), ‘대통령 선거! 대책은 무엇인가?’, FIET 주최, 앞의 자료집, 59~72쪽


22) ꡔ대학생신문ꡕ1997년 6월 10일자 참조


23) 박희석,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 민주노총 간부토론회 ꡔ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97년 대선ꡕ 자료집, 11~14쪽  참조.


24) 정영태, ‘문제는 역시 민주주의이다’, 사회평론 ꡔ길ꡕ 1997년 5월호, 48~51쪽 참조


1997-07-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