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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노동교육의 형성과정과 그 특성

현장에서 미래를  제24호
정민승

노동자교육포럼과 토론요약문은 97년 7월 21일 제4차 노동자교육포럼에서 발표된 글과 토론된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앞으로 포럼결과를 지속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노동자교육포럼

영국노동교육의 형성과정과 그 특성


정 민 승 / 서울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수료






노동교육은 노동자라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노동계급의 처지라던가 의식 등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궁극적으로 교육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노동교육은 개개인의 상황이나 의식변화에 민감한 측면 역시 가지게 된다. 이러한 노동교육의 양면성은 노동교육의 실천에 직접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개인의 발달에 주력하는 교육은 노동교육이 추구해야 할 이념이나 과제를 소홀히 하게 되는 반면, 노동자 집단만을 강조하는 교육은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교육시작 이전에 요구하게 됨으로써 많은 개인들을 교육에서 이탈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교육의 이념에서도 인간 개인의 완성성을 추구하는 것과 노동자의 계급적 발달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 역시 파생된다. 이렇게 보면 노동교육 형성 과정이 나라, 혹은 지역에 따라 개인주의적 성향과 집합주의적 성향으로 나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개인주의적 노동교육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노동교육, 그 중에서도 노동자교육협회의 지도학급교육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개인주의’적이라는 명명은 물론 당시 교육에 참여했던 행위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활동가나 참여자들 모두 교육은 사회변화의 중요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회의 개혁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교육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주의적 교육으로 결과하게 된 역동, 즉 당시의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을 규정했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자원적 활동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역동은 우리의 노동교육을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 교육발전의 사회경제적 배경

교육이 사회의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다는 생각은 19세기 이후에 출현하였다. 18세기만 하더라도 교육은 소수의 귀족자제만이 누릴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의 특권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교육 대상이 사회구성원 전체로 된 것은 급격히 변화한 사회관계 때문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상인과 기업가가 급성장하고, 종과 하인이 공원과 일꾼으로 대체되었다. 영주와 기사, 그리고 소작농이라는 계급관계는 점차 작위귀족과 기업가, 상인 등의 중간계급, 그리고 노동계급이라는 계급관계로 변하였다.
계급관계의 변화과정에서 노동자는 급속히 자신의 노동력을 잃어 갔다. 또한 노동계급의 범죄가 늘고, 어린 나이에 죽는 노동자들도 늘어갔다. 노동자에 대한 교육은 이런 상황에서 ‘처방’으로서 이루어졌다. 노동자교육은 더 이상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진 노동자들에 대해 동정적인 박애주의자들과, 자신의 이익 유지를 위해 노동자들을 교화시켜야 겠다는 기업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9세기 전반에 교육이 중요해진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구의 증가와 대도시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의학이 발달함에 따라 18세기 중반부터 1890년대까지 인구는 무려 7배나 증가하였고, 토지를 잃은 소작농들이 도시로 이동하여 대규모의 노동력을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도시에 많은 슬럼가가 형성되었고, 피폐해진 노동계급의 생활은 다른 계급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몇 백명, 심지어 천여명씩을 ‘함께 교육한다’는 생각은 이런 상황에서 출현하였다.
두 번째로 영국의 경제적 독주에 도전하는 세력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1850년경부터 독일과 미국의 추월전이 시작되어, 1870년 이후로 수출면에서 영국이 뒤지는 경우가 생겨났다. 미국과 독일은 19세기초부터 대량생산체제, 공정(process)의 자동화 등에 주력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기술교육, 과학교육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중공업 부분에서 성과를 올렸다. 영국의 국가적 차원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국제경쟁에서 우월성 회복을 위해서였다. 노동자의 기술능력이 독일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평가에 기반하여 기술교육을 강조하고, 테일러리즘 등 생산라인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세 번째 이유는 사회운동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급진적인 운동은 1830년대부터 시작한 차티스트운동이었다. 차티스트운동은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을 기존 정치계로 하여금 채택하게 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운동이다. 그 핵심은 노동자에 대한 선거권부여였다. 1832년 개혁법이 선거권의 확대폭을 중간계급까지만 제한하자, 노동자들은 중간계급과 자신의 처지가 다름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정치적 권리확보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런 법개정운동은, 그러나 단순히 법의 차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념이 점차 퍼지고 있었고, 노동자라는 존재가 숫자의 측면에서만도 상당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차티스트 운동원들은 대개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었고,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운동은 1848년 비록 실패했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노동운동은 사회주의 이념을 그 기초로 하고 있었고, 사회주의는 귀족이나 중간계급에게는 공포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자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지배계급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노동계급을 지배계급의 영향력하에 두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 교육이었다. 사회주의의 발흥은 오히려 중간계급이 노동자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하게 하는 역할도 하였던 것이다.


2. 영국 노동자의 상황

19세기 후반의 사회주의 운동은 1880년대 이후로 결성된 사회주의 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오웬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교육을 중시하였으며, 급진적인 전통은 드물게 나타난다.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대표적인 단체는 페비안 협회(Fabian Society)와 사회민주연맹(Social Democratic Federation)이다. 이 두 단체는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다. 페비안협회가 더욱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면 사회민주연맹은 실천을 통한 노동계급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노동계급에 대한 교육의 위상도 매우 달랐다.
페비안 협회는 사회주의의 수립을 ‘도덕성에 의한 사회의 재건’과 동일시했다. 도덕적 사회주의, 즉 평화로운 문화화에 의한 쇄신으로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비안 협회의 성원들은 “필요한 것은 오직 대중에게 사회주의를 가르치는 일이고 나머지는 온화한 처녀지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자연의 결과를 기다리면 다 되는 것” 이라고 생각하여, 햄프스태드 역사모임(Hampstead Historic Club)을 만들어 그 곳에 협회의 성원들이 출강하는 형식으로 노동자를 교육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교육에 대한 관점은 반교조주의로 일정한 결론을 유도하는 수업을 반대하고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수준에서 입장과 주장을 사실로부터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견해는 당연히 맑시즘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비판의 과정에서 등장한 단체가 사회민주연맹이다.
사회민주연맹은 페비안주의와는 달리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한 정권의 장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아 교육은 노동자를 투쟁적인 노동자(Militant labourer)를 만들어내기 위한 의식적인 활동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연맹 구성원인 노동자에 대한 선전적 형태의 수업을 진행하며, 토론을 하더라도 일정한 결론을 유도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물론 페비안 협회로부터 교육이 아닌 선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민주연맹의 활동은 톰만(Tom Man) 등 유명한 노동운동가를 배출했음에도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동조합의 지원을 잃으면서부터 사회민주연맹은 재정적인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런 침체는, 1850년대 이후 절대적인 부가 상승하고, 노동자의 삶이 상대적으로 나아짐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급진적인 경향보다는 온건한 노선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배경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회주의 운동의 성숙으로, 노동대중에 대한 교육적 노력은 구체화되고,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교육도 나타나게 되었다. 결국 지도학급교육이 출현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은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찾아지며, 교육의도를 가진 사람들은 중간계급 구성원이나 박애주의자, 사회주의운동가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노동계급은 19세기 후반, 1873년부터 1896년까지의 대불황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노자간의 계급 구분이 분명해지고, 기계의 발달로, ‘반숙련(semi-skilled)’ 노동자를 요구하는 공장이 증대한다. 또한 1850년대부터의 호황으로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의 경험을 가지며, 1845년 이후로는 라디오, 잡지 등 대중매체의 출현으로 노동자들의 공통의 문화가 형성됐다. 1870년대의 공황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를 탄생시킨다. 노동계급, 서민을 위한 특수한 상점이 등장하고, 소비조합, 연쇄점, 의류상회, 오락기구 등이 등장하여 산업혁명 이후 최초로 영국의 노동계급을 산업사회에 정착시킬 수 있는 생활형태가 출현한다(해리슨,1988: 318-322). 1880∼90년대에는 노동자들의 쇼핑거리가 탄생하여 신발과 옷 등을 판매하였으며, 20세기 초에 이르면 체인점들이 생기게 된다. 이런 점에서 1890년대는 노동계급의 삶과 문화가 거의 표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Hobsbawm,E.,1984:
184-186).
문화의 중요한 영역인 오락도 그 내용이 변화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폭력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투계, 쥐놀이, 경마 등 동물을 가지고 하는 도박은 오래전부터 노동계급이 즐기던 오락이었는데 이 시기에는 경마가 특히 인기있는 도박으로 등장하였다. 스포츠 역시 중간계급이 권장하는 ‘규칙이 있는’ 축구 등이 유행하였다(Thompson, F.M.L,1981). 덜 야만적인 동시에 순종적인 방향으로의 변화였다. 이런 현상은 모든 지역을 너머 노동자라는 계급이면 어느 지역에서건 공통으로 즐기는 문화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표준화된 생활양식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공동의 생활감정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계급의 공통된 ‘의식’이 출현했다. 이러한 공동의 의식은 계급의식상 초보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계급의식 출현의 세 가지 조건을 첫째, 자신이 다른 노동자와 동일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공동의 이해를 갖는 것, 둘째 계급이익에 대한 규정을 공유하는 것, 세째 모든 사회관계에 걸친 계급갈등을 이해하고 미래 사회질서를 구상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골드트로프의 입장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대응시켜 본다면 아마도 첫 번 째의 요건 정도에 머무르는 의미에서 ‘계급’형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해보면 19세기를 걸쳐 노동계급은 여러 방면에서 동질성을 획득하였으며, 이런 동질감을 기초로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비교적 균질적인 노동자집단에 대한 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된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주 경향은 노동주의(Laborism)로 나타났는데, 노동주의란 정치적으로는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온건한 사회주의를 지향(박지향,1991: 118)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운동이 그랬듯이 대중운동에서도 온건한 경향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조직적으로 숙련노동자로 구성된 구노동조합과 1889년 가스노동자의 파업으로 형성된 미숙련 노동자의 신노동조합으로 나뉘지만, 그 이념적 성향은 모두 노동주의로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던 신노동조합의 경우도, 체제 내에의 점진적 개선을 옹호하였다.
왜 이런 성향이 전사회적으로 나타난 것일까? 이는 우선 영국사회의 지배계급연합이 강력하면서도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중간계급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지배계급을 이룸에 따라 진보적인 성향을 체제내로 수용할 여지를 높였고,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곧, 노동자의 불만은 제도적인 수준에서 수용,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안이 통과되는 등 현실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맑시즘이 수용되기 이전에 이미 숙련 노동자에 의한 노동조합운동이 노동계급내에 이미 그 전통을 확립하고 있었던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이미 마련된 노동조합에 대한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뒤늦게 탄생한 신노동조합도 ‘노동조합이란 경제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조직’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경제적인 영역으로 노동조합을 한정하는 한, 노동운동의 혁명적 성격은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노동조합 역시 개량을 강조하고, 노동자의 능력향상에 힘쓰는 조직이 되었던 것이다. 교육 역시 그런 의미로 진행된다.


3. 노동자교육협회의 지도학급운동
(Tutorial Class Movement)

1) 노동자교육협회의 구성
영국의 교육개입은 급속히 증대하여 1902년에 이르면 성인교육까지 포함하는 모든 교육을 국가교육체제에 편입하는 법이 통과된다. 주된 어려움으로 제기되던 노동교육의 재정문제도 국가의 지원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노동자교육협회는 맨스브리지(Mansbridge, A.)에 의해 설립되었다. 맨스브리지는 협동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을 민주주의의 중심적인 운동이라 보고, 교육은 이런 운동의 근원적 발전을 가능케하는 중요한 기초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발전시켜 대학과 노동계급조직의 연계를 제안했다. 곧 당시에 상당한 정도로 형성되어 있던 노동자들의 모임과 대학의 교육을 연결시킨다면 노동자의 요구를 확장강좌에 반영, 더욱 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그의 생각은 여러 대학과 노동계급조직의 광범한 동의 속에 현실화되고, 1903년 노동자교육협회가 설립하였다. 노동자교육협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나 노동자들의 모임단체였다. 1914년 당시 노동자교육협회 산하에는 2,555개의 관련단체가 있었고, 이들은 노동조합이나 협동운동 등 노동자의 권리향상을 위해 힘쓴 단체와 교육의 증대를 위해 노력한 단체, 그리고 노동자들의 친목단체들이었다.
맨스브리지의 교육사업 방식은 독자적 교육조직 건설보다는, 대학교육에 많은 노동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잘못된 초등교육에 의해 이루어진 허례허식’ 때문이라고 보았고(Harrison,J.,1982: 263) 명확하고 옳은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수준 높은 일과 여가를 위해 수준 높은 지식을 통해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해 가장 주목되는 기관이 대학이었다. 그는 “교육의 영광(the Glory of Education)”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진심으로 교육이 정치보다 더 근원적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정치 경제적 세계로부터 개성을 분리시키고 개인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노동자교육협회 교육의 특징이기도 하다. 노동자교육협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육제공자가 아니라 교육매개자로 전락하였다. 대학이라든지 지방교육당국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반될 경우 언제라도 노동자교육협회를 배제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대학이 확장교육의 주체에서 노동자교육협회를 배제하는 과정이라던가, 지방교육당국이 자체 교육을 유치하면서 노동자교육협회를 배제하였다는 사실은 자체 교육력의 중요성을 잘 드러내주는 예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교육협회의 노력은 당시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설립 이후 5년간 노동자교육협회에는 50개의 지부에 900개의 관련단체, 5,000명 이상의 개인구성원(Kelly, 249)이 참여할 정도의 성과를 얻었다.

2) 지도학급제의 도입과 노동자교육협회의 교육
지도학급이라는 생각이 처음 출현한 때는 1906년이었다. 1906년 런던대학에서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확장강좌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교육으로서 교사의 개인지도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지도학급을 실시해보도록 결정하였다. 1907년 가을 런던대학의 교수 게즈( Geddes, P.)는 시민정신에 대한 강좌를 10주에 걸쳐 강의하였다. 이런 시험적 교육는 옥스포드 확장과정에 나오던 노동자교육협회 학생들이 요구에 의해 현실화되였다. 이들은 맨스브리지와 토론하면서 3년동안 진행되는 지도학급제를 요구하여 1908년 1월 로크데일과 롱턴에 경제사 지도학급이 시작된다. 최초의 학급은 40명으로 구성, 3년간 교육에 충실할 것을 선서하고 격주로 논문을 제출하면서 시작되었다(Kelly,T.,1962: 251-252). 지도학급의 특성은 장기적, 소규모적, 과제부과적 교육이라는 점이었다. 3년 동안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들이 2주 마다 보고서를 제출하는 교육은 이전의 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런 교육방식은 노동자교육협회에 속한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도학급교육은 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각 개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었으며,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일회적인 전달식 교육을 벗어난 개인의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교육이였기 때문이다.
맨스브리지는 옥스포드대학에 지도학급교육을 요청하고 교육청장관에게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교육청은‘교양교육’에 한하여 지원을 하였다. 옥스퍼드 대학은 노동자계급의 대표와 대학의 대표가 동수 참여하는 지도학급의 행정적 주체인 합동위원회(Joint Committee)를 건설하였다. 더불어 다른 대학에서는 이 모형을 본따 확장강좌에 지도학급제를 도입하였다. 1908년 이후 급격한 지도학급운동이 전개되었다.
대학의 참여는 대학교수나 대학출신 지식인들의 교육 참여와 대학의 재정부담도 의미하는 것이어서 노동자교육협회의 교육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덜게 되었다. 또한 1902년 통과된 교육법에 의하여 공교육이 교육청의 관할 하에 체계를 갖추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청의 재정지원도이루어졌다. 이렇게 하여 노동자교육협회에 의한 새로운 교육양상이 공식적으로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지도학급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교육내적인 중요한 요인은 이러한 형식에 방향을 마련한 교사의 자질이었다. 지도학급은 소수 대상의 개인적 지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형태였기 때문에 교사의 보이지 않는 주도는 지도학급제를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도학급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초기의 교사들이 이런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노동자교육협회의 지도학급교육이 성공하게 된 것은 대학의 적극적 참여와 국가의 지원, 그리고 자발적 교사의 노력이 잘 맞추어진 조화덕분이었다.


4. 지도학급교육의 운영과 특징

1) 지도학급의 특징적 이념
지도학급의 가장 특징적인 사상은 동반자정신(Partnership)이었다(Harrison,J.,1982: 265). 이런 특징은 많은 곳에서 드러났다. 우선 대학과 노동계의 동반자관계이다. 앞서 말한대로 합동위원회는 대학과 노동계급 두 집단의 상호이익을 증진한다는 목표하에 일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교사와 학생도 지도-피지도의 관계가 아니라 동료로서, 서로 배우는 자세를 취할 것을 전제로 하였다. 교사는 학생의 동료로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규정됐다. 학생 역시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가르칠’ 것이 권장되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더욱 식견있는 학생과 더욱 경험이 풍부한 학생의 관계였던 것이다. 내용에서도 성품과 능력의 동등한 개발을 지향하고 있고, 강의 방식도 강연과 토론의 병행이 나타났다. 즉, 모든 영역에서 지도학급은 동반자정신을 구현하고 있었다.

2) 토론중심의 교육과정
지도학급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은 토론이었다. 수업은 1시간의 강의, 1시간의 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강의는 토론의 기초지식이자 강사의 의견으로 간주되었고, 교육활동의 초점은 토론에 있었다(Hughes,H.,1918: 257). 지도학급에서는 학생을 존중하고 공평무사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방법은 토론이라고 생각되었다. 토론은 공정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공정성에로의 접근’이라는 교육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채택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교육을 통해 ‘토론의 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건 학생이건 토론에 임해서는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했으며, 설득보다는 인정을 중시했으며 논리를 전개할 때는 항상 전거를 들어 증명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즉,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의견 교환을 통해 지성을 높여나가는 방법이 지도학급에서 채택한 교육방식이었다. 이는 교사가 학생 개인의 의견을 잘 알고, 개별적 지도를 가능하게 하는 기초로 작용했다.

3) 학생의 권리와 의무
강좌는 경제학, 역사 등 노동자들의 현실 문제와 밀접한 사회과학을 중심으로 학급의 요구에 따라 마련되었고, 주제와 교사의 선택은 학생에게 있었다.
주목되는 현상은 교육에 대한 통제권이 학생에게 있다는 점이다. 학생은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었다(Tawney,R.,1964: 80~84). 학생과 교사는 동반자관계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교육에서 배울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상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교육에 대한 권리는 사뭇 높았다.
교육전반에 대한 학생의 자치권은 전체 차원에서는 합동위원회에 노동자측 대표가 대학측 대표와 동수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정적으로 그 기초를 마련하였고, 교육을 실천하는 각 지부는 지도학급 편성시에 학생의 의견에 기초하여 학급을 편성하고 있었으므로, 학생의 요구에 기초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한 과제물은 반드시 써서 내는 보고서였으므로 글씨에 익숙하지 않고, 공부할 장소가 없는 노동자 학생들은 선서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식구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숙제를 하였으며, 이 때문에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Mansbridge,A.,1913: 38). 이렇듯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고서 중에는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도 있어, 대학의 수업시간에 읽혀지기도 했다. 과제물의 수준은 편차가 심했으나 공통적인 것은 노동자들은 대부분 12∼13세에 공부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1년째에는 작문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지만 3년째가 되면 논리전개나 생각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제물이 중시된 것은 합동위원회의 평가가 최소한 두개의 논문을 읽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학생의 논문들은 두달에 한번씩 엮여져 노동자교육협회 명의로 출판되기도 했다(Tawney,R.,1964: 84).

4) 교사의 자질
지도학급교육은 개별적 지도를 할 수 있는 교사를 전제로 한, 소수를 향한 심도있는 학습이었다. 이런 교육형태는 우선 성인학생과 교사의 대화를 전제로 한다. 즉, 교사는 성인의 경험과 식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생각을 분석, 비판해 줄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하고 학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육을 받고자하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곧 교육은 전문적 지식과 숙련을 가진 교육자와 풍부한 인생경험을 가진 피교육자 사이의 상호이익적 협력과정(Tayler,R.,1985:17)으로 상정되는 것이다. 지도학급교육의 성공은 이런 교육자와 피교육자간의 만남이 가능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들은 세부류로 나뉘어졌다. 첫째는 전임교사로서, 이들은 지도학급교육, 확장강좌 등의 행정적인 일까지 도맡아 했고, 대개 6∼7학급을 맡고 있었다. 둘째로 시간강사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런던의 경우 공무원들이 많았다. 이들은 3∼4학급을 맡고 있었다. 세째는 대학교수들로, 지도학급교육로 보면 보조강사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대개 한 강좌만 맡고 있었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생들의 입장에 근거한 토론, 성의있는 강의 등으로 교사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하는 내용임에도 이들이 받은 보상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재정상 가장 큰 지출 중의 하나가 교사에 대한 임금이었지만, 상당한 박봉이었고, 다음 학기 강좌를 받을 것인지도 불명확했으며, 본 대학과의 관련이나 교수와의 접견기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사충원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5. 지도학급교육의 한계

지도학급교육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고,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며, 그 교육양식은 개방대학, 지역교육당국의 교육, 지역교육 등에서 받아들여져 토론에 입각한 교육의 일반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된다(Crombie,A.,1983: 12).
그러나 지도학급교육에 대한 비판 역시 다양한 수준에서 제출되었다.
우선 노동자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를 지도학급교육의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의 재정보조였다는 점이다. 교육청과 지방교육당국의 지원은 전체의 반을 넘었다. 이런 국가의 보조는 국가의 통제를 의미했다. 이에 대하여 노동자교육협회 측은 재정지원이 곧 종속은 아니며, 만약 그렇다면 모든 복지사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 그리고 법의 제정은 다 종속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냐며 반박하고 있지만, 교육, 그것도 노동계급의 교육이 자생적인 힘을 상실한 채 진행되었다는 면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노동자교육협회는 대학과 지역교육당국의 보조자로서 학생을 유치하는 기능만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노동자의 요구에 맞는 교육을 직접 실시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애초에 노동자교육협회는 노동자의 교육을 진작시키고 교육욕을 자극한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실제로 수행한 일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는 교육기관에 노동자를 유치, 그 교육의 번영은 초래했을지 모르나 진정한 노동자를 위한 교육체는 건설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또한 교육의 내적인 특성으로서 ‘독특하다’고 평가되는 장기적, 토론중심의, 고등교육이 실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장기성이라는 점을 보자. 노동자들은 잦은 이사와 직업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장기적으로 한 강좌에 수강하는 것이 힘들다. 따라서 준비반이나 임시반 등 짧은 과정이 노동자에게는 훨씬 접근하기 쉬운 교육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확히 드러나는데, 1981년에 이르면 노동교육에 참여한 9,383명 중 지도학급교육 3년 강좌에 참여한 사람은 375명으로 전체의 3.4%에 불과하다(Crombie,A.,1983: 14). 이렇게 보면 지도학급교육이란 소수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수적인 교육에 불과하며, 과목중심적, 학술적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는 대학의 시혜에 불과한 교육이 된다.


6. 결 론

노동교육은 그 성격이 어떻든 노동자를 위한 교육이라는 목적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교육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노동자를 위한 교육이란 어떤 교육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최소한 교육을 수행하는 한 집단안에서) 이루어진 상태에서 출발한다. 영국의 경우에서 이런 합의는 노동자 개인의 발전으로 정리될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의 영향과 숙련 노동자들의 자기수련의 정신, 그리고 기독교운동의 영향으로 19세기에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생각은 사회의 문제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인 실천은 우선 개인을 염두에 두는 것이었고, 교육은 당연히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지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노동자의 계급의식고취라는 생각은 오히려 19세기 후반에야 나타나고 있다. 노동교육은 그 대상의 특수성에 상관없이 교육일반에 적용되는 원칙을 가지고 출발하였던 것이다.
개인의 발전을 위한 교육이란 또한 당연히 교양을 쌓는 교육으로 여겨졌다. 자유인을 위한 교육, 교양교육이 교육의 유일한 표상이 되던 당시로서는 그 이외의 교육은 제기되지 못하였다. 중간계급의 이익은 이런 개인적 수련의 교육을 강화하는 촉매로 작용하였다. 중간계급으로서는 더욱 많은 사업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폭력적이거나 충동적인 노동자보다는 잘 훈련되고 규율이 있는 개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교육은 개인의 발달을 위해 가장 의미로운 교육으로 새롭게 출현한 사회 속에서도 그 기반을 굳히게 된다.
교양교육은 방법면에서 대화중심의 교육으로 세련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노동자대중에 대한 여러 교육시도의 결과 가장 공정하고 사고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대화라고 여겨졌다. 교육의 형식은 ‘토론’이었지만 그 내용은 집합적 의지를 고양하는 토론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지력을 상승시키기 위한 대화였다. 대화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관점의 유지를 위해 사용되었다. 지성적인 인간이란 타인의 의견을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경청하며, 제기되는 의견을 주장과 사실로 구분하여 비판할 줄 알며, 자신에 대해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 인간으로 상정되었다. 이런 인간을 가장 잘 양성할 수 있는 방법이 곧 대화(토론)이었던 것이다. 지성적인 인간의 양성은 현실 속에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의 양성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더욱 면밀히 주장을 검토해야만 하고 행동은 판단 이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침묵주의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결국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당시 노동자들은 의식주조차 인간답지 못하게 살고 있었다. 더구나 하층 노동자들의 비참상은 당시의 지식인들도 놀랄 정도였다. 노동자들은 계급으로 스스로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교육은 이러한 상황에서 주로 상층노동자에 대하여, 집합적 문제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발달을 위해서 수행됨으로서 노동자의 선진적인 영역을 규합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보수성을 양성하는 중요한 매개가 되었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나 박애주의자들의 교육적 노력은 그들의 의도와 반대로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교육이 되었고, 이는 ‘계급사회에서의 교육’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였던 당시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교육은 노동교육 나름의 질을 갖지 못하고 전통교육의 틀 안에서 존재해왔던, 학교교육의 이념이기도 한 개인중심의 교양교육으로 그 성격이 국한되게 된다. 이후 많은 나라에서 보수적인 기능을 하는 이런 교육이념은, 19세기 영국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계급간의 힘이 맞부딪는 과정을 통하여 출현했던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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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의 노동자 참여
토론요약
토론결과 요약
노동자교육포럼

1. 지도학급교육의 합동위원회에 참여한 노동측 대표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이후 변화과정은 어떠했나?

ꁾ 대학측 대표와 권한은 같았다. 대부분 평생근무를 하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아서 전달하고 행정적인 처리를 담당하였지만, 노동자 스스로 모여서, 또는 대표를 뽑아서 가는 형태가 아니라, 노동교육협회(이하 WEA ; Workers’ Educational Association)를 통해서 요구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후 과정에서 많은 내용적 변질은 있었지만, 현재까지 그 형태는 유지하고 있다.
대중교육으로 전환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내용적인 결합을 하지만, 진행과정에서 소위 평생교육같이 순수한 취미 등의 주제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학도 대학확장교육의 일환으로 굳이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자유롭게 주제를 열어, 관심있는 사람들은 와서 들어라는 식으로 변했다. 이는 노동운동 자체의 보수화와 매스컴의 출현 등으로 인해 학습자 통제방식으로 변화된 교육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초기 발생시에는 적극적인 의도와 의지가 분명했으나 차츰 제도화되면서 부정적인 측면들이 나타나게 된다.

ꁾ 노동교육의 활동이 약화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WEA가 지방자치단체 등 국고보조를 많이 받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영국 경제에 재정적인 위기가 오면서 이에 대한 지원이 전면적으로 축소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교육이 약화된 것이 아닌가라는 의견이 있다. 그럼에도 스웨덴이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은 WEA로부터 시사받고, 노동자 교육의 형태를 마련해 갔다고 볼 수 있다.

2. 교육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한 사례들이 있는가?

ꁾ 이들은 자신의 교육과정에 대한 기록(교사들의 기록과 학생들의 리포터 등)이 매우 많다. 거의 100년 전부터 노동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가 파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당시 교사들에게도 노동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새로운 체험이었고 그들은 굉장한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그들의 기록을 보면, 한 인간의 지적인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생생한 고민의 흔적이 있다.


WEA의 노동자 교육에 대한 관점
1. 영국에서 노동자 성인교육 활동을 정열적으로 한 E. P. Thompson이 영국의 낭만주의 시를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본적이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웬 낭만주의 시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은 영국 낭만주의 시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이고 전인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내용이나 반시장적인 명제 등을 노동자들과 함께 학습한다는 점에 착목하고 있다. WEA에서 한 것 중에 특히 인상적인 내용이나 주제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ꁾ 이들의 교육에서 특이한 것은 대학과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노동자 강좌는 어려운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대중적 언어로 표현하려다 보니까, 주요 초점을 놓치면서 주변을 빙빙 도는 경험이 있었다. 오히려 풀어서 쉽게 한다는 것은 내용을 주입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영국의 이 교육에서는 그 내용이 핵심이라고 판단되면 편견없이 아는대로 가르쳤다. 어려운 개념이 있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하자는 식이었다. 그 대신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또한 노동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라도 배제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2. 노동자교육이 대상면에서 보면 분명 노동자인데, 그 내용을 보면 시민교육라는 인상이 크다. 교육의 목적에서도 계몽적인 의도가 강한 듯 하다. 교육방식, 상대방을 인정하는 토론의 기술 등을 보면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나 생활 방식과 유사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노동자를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시민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이를 노동자교육이라고 개념지울 수 있겠는가?

ꁾ 딜레마라고 생각된다. 노동자계급의 교육에서 만일 맑스의 자본론, 조직론을 가르쳐서 혁명적인 투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이것이 혁명적일 수 있겠는가라는 반대의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교육에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의 삶의 맥락을 존중하면서 동일하게 교육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는 교육은 실질적으로 일반적인 사회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해 볼 수 있다.
혁명적인 교육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있어 왔는데, 이 양자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성과 집단성이 교직되어 가는 고리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기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고 본다. 영국의 사례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찾아내기는 어렵다.

ꁾ 확장해서 보면 제국주의와 식민지와의 관계속에서 덜 문명화된 야만적인 식민지 나라들을 제국주의가 교화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교육, 계몽주의 교육에서는 노동자들은 야만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므로 교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매우 진보적인 듯 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영향이 큰 것이다. 이 점에서 노동자의 문화, 노동자의 교육을 어떻게 개념화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또 하나는 혁명적인 노동자교육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페비안 협회와 사회민주연맹과의 논쟁에서 보면, 페비안 협회는 사회민주연맹에서 강조하는 혁명적인 교육은 노동자 교육이 아니라, 선전선동이다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계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우리는 한편에서 노동자대학의 형태로 혁명적인 교육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또 한편에서는 WEA의 교육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는 역설적인 현상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개인성과 집단성간의 조직과정, 양 측면을 고려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탐색해 나가야 한다.

3. 노동교육이라 하면, 이론의 학습을 통해 인문적 체계를 갖추는 것 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투쟁을 통해 형성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실천과 관련된 현장속에서 계급성이 형성된다고 본다.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 이전에, 계급간의 투쟁속에서 노동자들이 그 투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교육의 영역이라고 본다.

ꁾ 노동자교육은 당연히 계급적이어야 한다. 투쟁을 통한 노동자의 각성, 이것이 빠진채 노동교육을 얘기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하다. 여기서 교육자, 피교육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노동교육이 지적인 학습과 실천, 그리고 경험으로부터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학습방식이 같이 이루어졌다면 두 측면을 같이 분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영국의 이 교육이 계급성이 빠진 교육이었다고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개별화되고 지적인 형태로 축소된 이와 같은 형태를 노동교육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ꁾ WEA에 대해서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워주는 것 같다. 이 교육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는 우선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지만 역시 노동자 이전에 인간이고 한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이러저러한 필요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는 교육단체 입장에서 볼 때 피교육자들이 배우고 싶다는데,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거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분명한 목적들이 존재하는데 그의 충족을 위해 각각에 대한 분화된 교육 주체(기관)가 필요하다. 분화된 목적에 따라 분화된 기관들이 각각의 전문성을 확보해 나가는 것으로 사고한다면, 노동자교육의 질곡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목적을 가진 하나의 기관에 대해서 이렇게 복잡하게 의미부여를 하면서 토론을 하는 이유는 워낙 우리나라에는 아무것도 - 국가에 의한 것 조차도 - 없으니까, 또한 노동자들의 여가시간 등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총괄적으로 담아내려는 우리의 복잡한 조건속에서, 영국의 이러한 교육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것 같다.

ꁾ 하지만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나는 지적인 교육을 할께, 너희는 실천적인 교육을 해라는 식으로 조화롭게 진행된 사례는 발견하기가 힘들다. 여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자신의 실천이 전형이 되어 버리고 최선의 방법이 된다. 노동자의 짧은 여가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갈수 있는 내용은 이것 뿐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교육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인간관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동자들 내부에서는 사회민주연맹과 팽팽한 대립의 시기에는, WEA에서 일하다가 뛰쳐 나오는 노동자들도 많았고, 사회민주연맹에서 역시 그것을 부정하면서 뛰쳐 나온 노동자들도 많았다. 당시에는 관점의 차이가 많았고, 통일된 교육기관의 성립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양한 형태들이 부딪히면서 나가는 것이지, 각 단계에 따라 통일성을 가진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다양성을 포괄하면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교육의 방향으로 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남는 문제이다.


WEA 교육의 효과
1. 교육을 수행하면 의식적이건, 실천적이건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인데, 지도학급교육의 효과에 대한 분석내용은 어떠한가?

ꁾ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1910년대에 유럽 전체의 노동자들이 총파업 결의를 하는 과정에서 영국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거부의 결정을 내리게 된 주요한 요인이 바로 이 교육기관 출신 노동자들의 발언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투쟁에 대해 분석해야 하고, 토론을 해야 하는 식의 접근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인 침묵주의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상황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것은 이 교육기관이 평소 행하던 접근방식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우리나라의 경우 70년대에 공장의 여공들이 대학생 흉내를 내고 다니는 경우들이 많았다는데, WEA의 교육을 받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의 처지로 돌아왔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 궁금하고, 오히려 노동자들이 스스로 분열되는 사례는 없었을까? 노동자들이 낭만적인 시를 배우고, 그것이 오히려 현실에서 무력감을 낳지 않았는지, 또는 그것이 진정으로 전인격적인 인간으로 성숙하는데 기여했는지 궁금하다.

ꁾ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잘은 모르겠지만, 훨씬 분수를 더 알자는 주의였다. 의식주가 열악한 하층의 경우는 일단 문해가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육의 참여대상이 아니었고, 어느 정도 글자를 깨우친 중상 수준의 노동자들이 대상이었다. 그리고 자조운동이 강력한 당시의 조건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전사회적으로 정신적 위기감들이 존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한다는 허영심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는 내 분수와 처지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자료를 통해서는 그래서 자기분열을 겪었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나 사회의 여러 측면 모두 형성기였기 때문에, 중간계급이 귀족 상층의 문화를 가져보려는 시도와 노동계급 상층이 중간계급의 그것을 가지려는 시도들은 전반적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3.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비교적 고전적 발전의 길을 걸었고,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서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자 교육 역시 자신의 존재속에서, 삶의 전후 맥락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독특한 자신들의 교육문화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모형이 단순하게 2가지로 나뉘고, 노동자들은 아무런 여과없이 교육의 효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의적인 구도와는 달리 실제 이들의 현실에서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을 것 같다. 노동자 자신들의 문화, 교육, 또 기존의 복합적인 의식구조, 특히 노동계급으로서 자기 문화, 정체성이 일정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는 영국은 그렇지 않은 나라들과 좀 다르지 않겠는가?

ꁾ 물론 교육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100% 스며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교육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교육에 참여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똑같이 교육을 해도, 좋다는 사람이 있고 튀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그 반대의 교육에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그들이 ‘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교육에 참여하기 이전의 문화적, 교육적 상태와 특성들이 WEA의 교육을 확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속성을 강화시키는 측면은 존재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서도 어느 한 측면을 더욱 결집시켜, 그것이 노동자의 특징으로 부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후 사회교육이나 노동자교육에서 지적인 수련을 통한 인격적 형성을 추구하는 활동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런 측면을 본 것이다.


노동자교육의 개념
1. 당시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 그에 준거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론적 평가에 기초한 것 같다. 맑스는 1840년대에 차티즘운동을 하면서 노동계급의 형성을 보았고, 이후 1880년대 홉스봄이나 톰슨이 발견한 것은 단일한 노동계급이 아닌, 노동자집단들(working classes)이었다. 하나가 아닌 분산된 집단들을 본 것이다. 이후 노동자계급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그 기반에서 교육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다. 한편 국가에 의한 통제, 관리의 측면이 강했는데, 이는 의도적인 목적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서 이 교육이 전형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또한 노동자들의 문화나 삶의 맥락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를 노동교육이라고 개념화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ꁾ 노동자교육을 개념화하기에 앞서, 혁명적인 노동자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과 교육적 관계, 노동운동 내부의 헤게모니 문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문제는 혁명적 노동자교육이 실패하고, 중간계급의 지원하에 보편주의적 교육을 취하는 것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현실 노동운동 내에서 주류를 형성해 나가는데,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가의 점이다. 다양한 노동자들의 교육욕구, 특이성 들을 인정하는 것 자체도 넓고 다양한 노동자교육의 정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의를 부정하는 것은 다양한 이념의 조건들, 우선 순위, 조직적으로 노동자교육이 어떠한 정치 경제적 맥락속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노동교육과 관련해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의 조건에서 보면, WEA의 방식이 노동교육의 전형적인 형태로 자리잡아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의 계급의식 형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결국 이러한 규명속에서 노동자교육의 개념화가 달라질 수 있다.

2. 노동교육의 개념을 절대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노동-자본간의 관계에서 규정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의 경우 70년대 노동자교육을 담당했던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한 교육활동은 주로 꽃꽂이나 문해교육 등 노동자들의 교양을 높이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내용을 기업이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기업교육 속에 담고 있다. 기업교육의 효과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매우 유익한 교육이라고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문제는 같은 내용의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70년대에는 노동자권리의 보장과 노동조건개선투쟁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동했음에 반해, 현재의 기업교육은 기업에 대한 몰입으로 노동자를 유인하는 효과, 계급간 모순을 은폐시키는 효과를 강하게 갖는다는 점이다. 소위 교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이 주체가 되어서 행해지는 현재의 기업교육을 과연 노동자교육의 범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ꁾ 오늘의 자리가 그 답답함의 현실 조건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노동교육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들은 교양교육이나 시민으로서의 교육이 이미 - 부르주아에 의하건, 국가 또는 기업에 의한 것이건간에 - 다른 기관에 의해 충족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교육은 자신의 영역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노동자로서 계급적 호명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이다. 전인성적 욕구를 부르죠아적 욕구라고 말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오히려 전인성적 욕구가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타당한 요구이다. 이것을 계급적으로 쉽게 재단할 수는 없다. 이미 사회 전체적으로 그들의 계급적 호명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 작업장안에서 늘 수시로 경험하는 계급적 적대의 내용이 있고, 또 일상적으로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무수한 장치들이 있는 여러 계기속에서 노동자교육이 노동자의 전인성에 대한 욕구를 계급성에 결합시켜 새로운 대안 사회의 전망과 연결시켜 내는 문제는 매우 갑갑한 문제이다. 여러 한계의 지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의 처방전을 내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리라고 본다.
또한 초창기의 노동교육보다 이미 자본주의가 더욱 성숙하면서 더욱더 이러한 장치들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호명의 방식들이 변화하였다. 따라서 개입의 지점을 발견하고, 노동교육 자체가 자신의 독자 영역을 확보하면서 노동자들을 계급적 주체로 호명하려는 작업이 대단히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거의 다 갈피를 못잡고, 교육내용이 더욱 변질되고, 영국도 노동자교육의 실질적인 내용을 거의 상실하고, 성인교육으로 자리잡아 나가는 것, 이것이 현실인 것 같다. 이러한 현실진단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자 교육방법
1. 개인 대상의 교육체계나 방법이 노동자들의 개인적 주체성을 형성하는 측면에서 많은 효과를 가졌던 것 같다. 당시의 노동자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도 바로 이 때문인 것 같은데, 당시 급진적인 그룹에서 인문 교과를 내용으로 하면서도 좀더 노동자를 개인 중심에서 집단적 정체성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없었는가?

ꁾ WEA의 교육은 대화식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교육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변하고 의지의 결집 등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라면, 지도학급교육에서는 - 그들은 물론 끊임없이 ‘discussion’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 오히려 대화, 즉 집합과는 거리가 있는 개별적인 소통이 주된 교육소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강의식교육에서는 가장 큰 문제가 그것이 피교육자들의 경험구조안에 충분히 흡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습자가 충분하게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것도 학습자간의 준비도가 거의 비슷하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 강의의 형태일 때에만이 효과를 볼 수 있다. 혁명적인 노동교육은 거의 100% 강의식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토론식 교육을 진행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굉장히 뛰어난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토론의 진행자는 교육참가자들의 수준을 다 알고 있어야 하고,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해야 하고, 가능한 주제에서 나올수 있는 질문의 수준을 미리 예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조합해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집합적인 의지로 결집해 내는 어려운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 노동자대학에서 좀더 개인의 삶에 밀착한 토론식의 교육방법을 구사하였다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ꁾ 교육방법론적 측면에서 교육의 효과를 검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급진적인 그룹 중에 노동교육협회라는 기관이 있는데, 거기는 이 WEA의 tutorial 시스템이 좋다고 생각하고 도용하여 사용했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효과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의 노동교육협회는 매우 침체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침체에 빠지는 것은 노자 역관계와 노동조합의 힘의 상태에 의해 교육은 실질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방법의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다르게 된 경험인 것이다. 영국의 이러한 시스템은 교육적 측면에서 많은 긍정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으로 전면적으로 방점을 두어 평가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WEA 방식이라고 하면, tutorial 시스템으로 공식화되어 있는데 이를 총체적으로 봐야지, 노동자대학이 이런 식의 교육방법을 썼더라면, 좀더 많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식의 평가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2. 르네상스 이후에 자유인을 키우고자 하는 자유주의 교육이 그런 흐름으로 이어왔다고 보는데, 이는 단순한 방법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습자의 이전 전사와 삶의 조건, 집단적 조건 들을 고려하고, 그것과 교육내적인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교육 과정에서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ꁾ 실제 교육이라는 것이 큰 효과를 가진다고 보지는 않는다. 학습자의 상태가 중요하고, 학습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중매체 등을 주요하게 보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학교의 교육과정보다도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강의식보다 토론식 교육이 좀 나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러한 관점이다. 학습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의 문제를 고찰할 때, 교육을 노사관계의 종속변수로 위치지우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사회적 조건이 전반적인 의식의 흐름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미세한 과정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단적으로 의식이 어떻게 흐르고 있고, 어떤 것들이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봐야 한다. 그것을 밝히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ꁾ 교육방법이 매우 강조될 필요는 있다. 학습자들이 폐쇄된 공간속에 위치지워져서 일방적인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은 실제 고욕이다. 영국의 경우에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한 것은 제도를 통한 문명화, 즉 야만적인 국민의 의식은 제도화된 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조직적인 틀을 만드는데 큰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고, 교육방법이 그러한 특정한 제도, 맥락속에서 얘기되고 있다.
또 한편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변화라는 것은 노사관계 측면에서 봐야 한다. 참여한다고 해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참여하는가가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기업에서 얘기하는 팀교육방식은 강제성을 띠고, 제한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팀속에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화, 이전의 언어와 말, 행동들을 사후적으로 합리화시키고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동질적인 집단의 사람들이 모인 토론과정에서라면 좀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즉 교육방법을 고민할 때, 특정한 형태로서 육체나 공간과의 관계 등 물리적 측면에서 노동자들의 반응과 주체적 변화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전 전노협에서 했던 교육을 보면 실제 분위기로 효과를 본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이라는 것은 특정한 조직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함으로써 변화시키는 과정, 그것을 집단적인 맥락이나 정체성에 동일시하도록 만드는 주체화 과정인데, 조직이 주변 맥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피교육자가 생각하지 않는 한, 변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자교육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 : 과제
1.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정치적으로 노동교육의 장이 매우 협소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노동교육 또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조건에서 노동자교육의 위치를 어떻게 매김하고 발전시켜야 하겠는가?

ꁾ 정책적 수준에서 교육을 정의하고 시행할 수 있다. 노동자대학의 방식과 WEA의 방식이 대립되면서 상호 비판속에 상대의 교육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 사이 어딘가에 ‘교육’이 위치하는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문화적, 제도적 맥락의 관계속에서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과, 적극적인 노동자들의 참여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대립인데, 문제는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호명하고, 담론적 실천을 수행하는 정치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적 수준에서의 교육, 무한하게 열려있는 정치과정으로서의 교육, 또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분화된 욕구를 담아내는 특이한 교육 등 그 개념화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정치의 과정인 특정한 정책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가는 과정이 노동자교육의 개념 규정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시 많은 수준과 범주의 노동조직들이 자신들 각각의 조직의 호명에 노동자들을 동원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기본적인 수준의 조사들이 이루어져서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야 한다.

ꁾ 현재 실제 노동자교육을 고민하는 초점은 노동자들을 각기의 정체성으로 호명해 내는 기제들이 전면화되어 있고, 특히 자본측에 의해 그것이 더욱더 전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동측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봉쇄되어 있어, 무엇으로부터 고민을 출발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이 매우 달라졌기 때문에 접근이 달라져야 한다든가, 특히 전인격적인 범주속에서 교육이 접근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내용상으로는 교양교육으로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논의 안에 있다는 점이다. 방법상으로 tutorial 시스템을 도입해서 가야한다는 - 교육자체에 대한 육체적, 공간적 규율화의 기제로서 방법을 보는 방식이 아닌 - 기법 차원에서 효율성 위주의 접근이나, 교육내용에서 다양성으로 접근하려는 수준에서 이런 고민을 풀어내려는 것은 문제이다. 일차적으로는 노동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제부터 다시 봐야 하는 것이고, 또 한편에서는 교육의 개념이나 방법, 내용들이 넓은 범위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ꁾ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정책수립의 측면에서 노동자교육에 대한 접근이 지배적일 것이다. 자본, 국가 뿐 아니라 노동조합 역시 사회적 산물로서 특정한 노동자교육의 전형들이 얘기될 것이다. 영국에서 노동자대학의 실패의 경험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실 정치적인 과정에서 혁명적 교육을 추구했지만 왜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였는지를 평가해야 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ꁾ 현실속에서 착목지점은 어차피 다양성에 대한 이해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대안과 현실적으로 당위적인 처방이 비록 모순적이라 하더라도, 그 모순적인 전략을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으로는 노조교육에서 일반적인 교육을 포괄할 수밖에 없고, 어느 정도는 문화전선속에서 사회 각 부분에 대한 대안문화로 체제적 분열을 시도하는 운동들과 연합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노동교육의 처방은 다양한 요소 - 현실에서 불규칙적으로 터져나오는 노동자들의 증오들 - 에 대한 모순적인 개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어느 한 부분으로 다 환원시켜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보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해 나감과 동시에 현실운동에서의 개입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 조합원부터 간부들까지 대상의 다양한 층위들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간에 서로 모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지도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 노동운동과의 접점과 개입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ꁾ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사회적 맥락속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교육운동 실천을 통해 반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WEA의 지향성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세련된 방식을 같이 고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는 노동자다’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는 인간이고 싶어하고, 시민으로서 위치하고 싶어한다. 영국의 이 당시에 WEA는 노동자들을 시민으로 교양인으로서 위치지우고 있고, 따라서 그에 동일시 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호응이 높았다. 생산적인 효과를 고려하면서 담론정치를 한다거나 정책수립을 보완하는 세련된 정치를 했던 것이다. 반면 소위 사회민주연맹 그룹의 교육은 노동자들의 사고, 추구하는 의미, 그들의 상호연결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WEA에서 배울 점이 많고, 노동자 대학의 실패를 좀더 분석해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2. 노동교육의 영역이 관심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노동교육이 노동운동의, 노사관계의 종속변수로만 위치지워져서, 그의 결정에 그대로 종속되어 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영역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그 속에서 함의를 끌어내고 좀더 구체화하는 작업이 앞으로 우리의 과제일 듯 하다. 한/노/정/연

1997-08-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