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NAFTA, 멕시코의 선거결과를 결정한 빈곤

현장에서 미래를  제24호
Gloria La Liva

국제노동



아래에 소개하는 글의 본문은 미국의 군소 노동자 정당의 하나인 “노동자세상당”(Workers World Party)의 기관지인 주간 “노동자세상”(Workers World) 1997년 7월 24일자의 기사인 “NAFTA, POVERTY BEHIND MEXICAN ELECTION RESULTS”(단, Online판인 Workers World News Service의 것)의 번역이다. 필자인 글로리아 라 리바는 흑인여성으로서 95년 11월의 미 대통령선거에 노동자세상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뒷 부분의 <참고 자료>는 100만 명 이상의 조직노동자와 홈리스(Homeless) 조직을 대표하여 1996년 6월에 미국의 클리브랜드에서 창립된 미국의 “노동당”(Labor Party)의 기관지인 격월간 “레이버 파티 프레스” 제2권 제4호(Labor Party Press, Vol. 2 No. 4 : 1997년 7월)에 실린 "NAFTA, the NAFTA Index on Unemployment and it's Threat to Organizing"(단, Online판에 의거했음) 가운데 “NAFTA INDEX, NAFTA in Real Life ... For the U.S.와 ... For the Mexico” 부분을 번역한 것으로서, 이들 지수의 작성자는 “Public Citizen's Global Trade Watch”로 되어 있다.


국제노동
NAFTA,멕시코의 선거결과를 결정한 빈곤


Gloria La Liva






7월 6일, 수백만 명의 멕시코 시티 주민들은 민주혁명당(PRD)의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 솔로르자노(Cuautehmoc Cardenas Solorzano)를 시장으로 선출하였다. 카르데나스는 총 투표의 47%에 이르는 표를 얻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카르데나스의 선출은 직접선거에 의해 수도의 시장이 선출되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것은 또한 1929년 창건된 이래 최근까지 도전 받지 않고 지배해왔던 제도혁명당(PRI)의 주요한 정치적 패배이기도 했다. PRI는 1910~17년 혁명 이후에 권좌에 오른 멕시코 민족부르주아지의 정당이다.
카르데나스의 민주혁명당은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적 분파를 포함한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이다. 당명에 있는 “혁명”이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PRD의 강령은 개량주의적이다.
PRI는 또한 하원에서 다수를 상실하기도 했다. 친미적 우익 민족행동당(PAN)은 122석을 얻었고 PRD는 125석을 얻었으며, PRI는 239석을 확보했다. 환경주의 당은 8석을 얻었고 노동자당은 6석을 얻었다.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는, 육군 장군으로서 1934년에 대통령이 되어 멕시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시기 동안 통치했던 라자로 카르데나스(Lazaro Cardenas)의 아들이다. 1934년에서 1940년까지 라자로 카르데나스는 멕시코의 막대한 광물자원과 산업기반시설을 철저하게 국유화하는 법률을 시행하였다.
이런 국유화는 미국과 영국의 막대한 기업 주식을 몰수하였으며, 국민경제를 10년에 걸친 발전기로 인도하였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주요한 투쟁목표였던 토지혁명은 수맥만 에이커의 토지를 멕시코 농민(campesinos)에게 나누어주었다.1938년에 시행된 사회보장 및 기타 사회 프로그램이 수백만의 멕시코 노동자, 농민, 그리고 토착민 공동체에 혜택을 주었다.
멕시코에서의 1930년대 10년간은 미국의 30년대와 유사했다. 워싱턴의 프랭클린 루즈벨트처럼, 라자로 카르데나스는 노동자와 농민의 혁명적 투쟁이 진정한 사회변혁을 요구하고 획득했던 시기에 멕시코 정부를 이끌었다.
카르데나스의 개혁은 급진적이었지만,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국에 대항한 피억압 국가의 지도자인 카르데나스와 제국주의 국가의 지도자인 루스벨트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의 역사적 역할 때문에, 멕시코의 대중들은 라자로 카르데나스를 영웅으로 간주하고 있다.


나프타와 빈곤

1980년대 초, 멕시코의 경제는 전세계적인 석유의 공급과잉과 석유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석유 수출에 의존했던 멕시코는 1970년대 호황기 동안 지게 되었던 채무를 지불할 수 없었다.
제국주의 은행들과 국제통화기금은 멕시코 정부에게 가혹한 긴축 프로그램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식량과 농업 보조금 및 의료혜택을 감축시키며, 국유 광산, 토지 및 산업을 매각하는 것, 즉 대은행들에게 빚을 갚기 위해 모든 것을 처분하는 것을 의미했다. 1982년 채무 불이행 시기에, 멕시코의 외채는 270억 달러였다. 오늘날은 은행들의 개입 덕분에 부채는 1735.7억 달러이다.
PRI는 제국주의자들의 요구에 동의하여, 제국주의의 이윤을 위해 수천만 명을 빈곤으로 몰아 넣었다. 이것은 PRI에게 있어 정치적 위기와 분열을 야기했다. 오랜 기간 PRI의 지도자였던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가 1988년 당에서 이탈하여 PRD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민주전선연합(NDF)을 결성하였다. 그는 그 해 선거에 NDF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는 인민들 중 가장 억압받는 부문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었다. 왜냐하면 그는 멕시코에서 빈곤에 대항한 투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자인 카르데나스는 물러나는 대통령 미구엘 데 라 마드리드 후르타도의 사유화 전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카르데나스는 1988년 PRI 대통령 후보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에 대한 인민들의 대안으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거 당일, 투표를 관리하는 전국의 컴퓨터 시스템이 24시간 동안 고장났다. 그런 다음에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가 투표의 50.1 퍼센트를 얻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PRI가 대통령직을 얻기 위해서 사기를 저질렀다는 비난이 광범위하게 일었다. 여러 주일 동안 거대한 항의와 건물 점거가 일어났다.
살리나스의 대통령 취임은 우익으로의 선회를 의미했다. 그는 강렬한 반노동자적 프로그램을 수용했다. 그는 국유화된 멕시코의 모든 산업의 재사유화를 가속화했다. 살리나스가 취임했을 때의 대략 1,200개의 국유기업들(para-estatales) 중의 700개가 개인 소유자들에게 매각되었다. 오늘날에는 주요 석유생산을 제외하고 실제적으로 모든 기업이 사유화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1994년 1월에 발효된 북아메리카 자유무역 협정의 서명 이후에 카르데나스는 PRD의 1994년 대통령 후보로서 그가 NAFTA에 반대하지만 그것을 무효화하거나 개정하자는 제안을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투쟁의 전망

NAFTA는 자본가들에게 무역장벽과 노동 및 환경적 제한조치를 제거하기 위한 캐나다, 멕시코, 미국의 부르주아지 간의 조약이다. 미국의 기술 및 생산상의 우위로 인해 멕시코는 미국 자본주의와 경쟁할 수 없으며, 국민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아 왔다. NAFTA는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급격하게 하락시켰다. 그와 동시에, 멕시코 부르주아지의 어떤 부문은 그 부가 크게 증가하였다.
카르데나스의 첫 번째 출마 이래로, PRD는 선거에서 그리고 선거 사기에 대항하는 인민들의 동원으로 집권 PRI에 도전했다. 최근 선거에서의 PRI의 권력 상실의 주요한 요인은 PRI가 NAFTA와 동일시되고 막대한 다수의 멕시코 인들이 겪고 있는 호된 경제위기와 동일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멕시코인들, 심지어 과거에 PRI를 지지했던 특권적 중간계급 분자들까지도 경제적 구원을 얻으려고 필사적이다. 그들은 PRI의 의석을 빼앗는 것 또는 자본가들의 당 사이에서 권력을 공유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 위기, 수백만 명의 해고 그리고 장기적 사회적 프로그램의 종식에 뒤이은 기타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수백만 명의 멕시코 인들에게 극단적인 빈곤을 강요하였다. 그와 동시에, 자파티스타민족해방군(EZLN)과 인민혁명군(EPR)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혁명적 세력의 등장은 심화되고 있는 빈곤과 외국지배에 대항하여 멕시코에 혁명적 조류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 제국주의는 1930년대 멕시코 PRI 정부의 국유화에 대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데탕트를, 다음에는 PRI 및 멕시코 지배계급의 긴밀한 지지와 협력을 도모해 오고 있다. 이는 특히 미국 기업들에게 극히 유리한 조건들로 인해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마퀼라도라(maquiladora) 공단의 멕시코인 임금(일당 3.50달러)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액수이다.
지금 미국의 지배계급이 PRI의 상대적 약화에 대해 슬퍼하는 것 같지는 않다. PRI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부패, 암살, 불법 마약거래 등 연이은 스캔들의 수렁에 빠져 있으며, 겨우 이제야 미국 정부와 언론은 그것들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은 무엇보다도 모든 정당들을 통제, 조정, 지배할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등을 돌림에 따라 더욱더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는 PRI와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비록 다수의 멕시코 인들이 기아와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멕시코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멕시코는 천연자연과 토지, 모든 인민들의 커다란 경제적 잠재력이 풍부하다. 멕시코의 빈곤과 부채의 원인은 자본주의, 즉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있다.
외국 제국주의자들과 멕시코 자본가들에 대한 혁명적 수탈만이 멕시코의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할 것이다. 오직 그 때에만 나라의 부가 모든 멕시코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멕시코의 노동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지금 던지고 있는 질문은 카르데나스의 승리와 PRD의 선거 성과물이 멕시코 대중들의 기대치를 높이고 그들의 억압에 대항하는 더 많은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여부이다.


<참고 자료>

NAFTA와 실생활

미국에 미친 영향

․NAFTA 이전 1993년 미국의 대 멕시코 무역흑자 : +17억 달러
․NAFTA 이후 1996년 미국의 대 멕시코 무역적자 : -168억 달러
․NAFTA 재훈련 프로그램에서 미국 노동부에 의해 NAFTA 때문에 해고된 것으로 인정되는 미국 노동자들의 숫자 : 121,937명
․NAFTA 하에서 “캐나다로부터의 수입 증가”로 인해 포카혼타스의 아칸소브라운 그룹 구두 제조업체에서 해고된 노동자의 숫자 : 2,400명
․아칸소주 포카혼타스의 인구 : 6151명
․해고된 미국 노동자가 이전과 동일하거나 높은 임금의 직업을 찾지 못할 대략적인 확률 : 2분의 1
․1990년대 초 해고되었다가 다시 고용된 노동자의 연간 임금 하락치 평균 : 4,420달러
․NAFTA와 GATT에 대해 알게 된 결과 1년 전보다 자유무역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미국인의 비율 : 27%


멕시코에 미친 영향

․1993년 “극빈”으로 간주되는 멕시코 시민의 비율 : 31%
․1996년 “극빈”으로 간주되는 멕시코 시민의 비율 : 50%
․지난 2년간 멕시코의 마퀼라도라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 : 50%
․같은 기간 동안의 물가상승률 : +100%
․오늘날 자신이 경제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는 멕시코 인들의 비율 : 95%
․NAFTA에서 멕시코가 거의 또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고 믿는 멕시코 인들의 비율 : 67%
한/노/정/연

1997-08-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