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끓는 저항의 지리산2 산과 사람 |
현장에서 미래를 제1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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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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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림골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선 이정표입니다. 세석대피소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이정표가 반갑기만 합니다.
거림매표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6km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이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동료들의 말에 다시
신발끈을 조입니다. 세석대피소 아랫쪽에 놓여진 판자쪽이 길의
운치를 더해주는군요. 세석대피소와 그 주위에 펼쳐진 세석평전
들머리입니다. 갑자기 훤하게 펼쳐지는 경관이 그동안의 힘듦을
줄여줍니다.
세석대피소 바로 아래에 시원한 샘물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세석고원의 음양샘인 것 같습니다.
이 샘은 바위틈에서 음수와 양수 두줄기의 샘물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답니다. 옛날
대성골에는 호야와 연진이라는 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다른 걱정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직 자식이 없어 애를
태웠답니다. 어느날 곰이 찾아와 연진에게 세석고원에 있는
음양샘의 위치와 함께 그 물을 마시고 산신령께 기도를 드리면
자식을 가질 수 있다고 알려주어 연진은 기뻐하며 그 샘터에
와서 물을 실컷 마셨으나, 곰을 미워한 호랑이의 밀고로 크게
노한 산신령은 음양샘의 신비를 인간에게 알려준 곰을 토굴 속에
가두어 버리고 연진에게는 세석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꿔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에 연진은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빌고 빌다가
돌로 굳어져 버렸답니다.
한편, 아내를 찾아 헤매던 호야는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달려갔지만 산신령의 저지로 끝내 만날 수 없게 되자 가파른
절벽 위에서 목이 메이도록 아내만을 부를 뿐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날 세석고원의 철쭉은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애련(哀戀)한 꽃을 피우고 있고, 촛대봉의 바위는 연진의 굳어진
모습이라고 합니다.
마침 목이 마른지라 시원한 물을 배가 차도록 벌컥거리며
마셔봅니다.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가슴까지 시원해지는데
가지고 갔던 물통의 먹던 물을 버리고 새물로 채워봅니다.
세석고원은 지리산에서 특이한 지형을 나타내는 고원지대입니다.
해발 1,400m~1,703m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동쪽의 촛대봉과
남쪽의 영신봉 사이에 주변 둘레 약 12km(약 30만평)에 달하는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남쪽으로 약 15°의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으로 꼽히고 있으며,
신라 때는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세석고원은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잔돌고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음으로 표기하면서
세석평전(細石平田)으로 불리워졌는데 평전이 일본식 표기라
하여 고원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는 세석고원으로 불러야 겠습니다. 이곳에는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등 침엽수가 위치한 하대, 철쭉 등 관목류가 자라는
중대,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종류가
군락을 형성한 초원지대로 이루어진 상대 등 등고선에 따라
뚜렷한 식물 생태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면모가
드러난 계기는 약 200여년 전의 큰 산불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지리산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을
보여주고 있어 각별한 관심과 보존이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세석고원에는 지리산 십경중의 하나로 알려진 세석척촉으로
유명하답니다. 매년 5월말에서 6월초에 만개하는 수십만그루의
철쭉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고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그 장관을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곳에서 나는
진달래와 철쭉을 구별하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쭉의 빛깔은
연분홍이지만 진달래는 붉은 빛이 더 많이 난다고 합니다. 또한
진달래는 꽃부터 피고 나서 잎이 나는데 철쭉은 꽃과 잎이
동시에 피므로 철쭉의 개화시기가 그만큼 늦어지는 것이랍니다.
산행은 다만 역사와 고행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 그야말로 아름다운 즐거움이 아닐까요...
이렇듯 연분홍의 세석철쭉을 붉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과거 빨치산 투쟁 당시 이곳에 김일성대학을 운영했었고,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관계로 그들의 붉은 피가
연분홍 철쭉에 새겨졌다는 의미로 붉게 표현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나타나는
대성골은 1952년 1월18일경 소위 백야전 전투사령부의 제3기
빨치산 토벌작전이 감행되면서 당시 사면초가의 빨치산 수백명이
비참하게 전멸당한 피의 골짜기로 통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토벌작전은 백야전사(白野戰司)의 토벌작전 중 가장 크고 강력한
작전이자 가장 격렬한 전투였으며, 이를 기점으로 지리산
빨치산은 거의 궤멸되다시피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당시 전투에서 빨치산 8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당시의 상황은 토벌작전의 책임자였던 백선엽이 쓴 ‘실록
지리산’과 최후의 여자 빨치산으로 알려진 정순덕이 구술하고
정충제가 기록한 ‘실록 정순덕’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국군 3개 연대는 완전히 포위당한 빨치산들에게 비 오듯 박격포
공격을 감행했었고, 이어 공군기들이 휘발유가 가득 든 드럼통을
물샐 틈없이 뿌리고 다닌 후 소이탄을 투하하여 사방을 시뻘건
불길 속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공격으로 인하여 단
한사람의 빨치산까지 전부 궤멸하였다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대성골은 전체가 마치 숯더미 같았다고 하는군요.
빨치산이란 비정규 유격대를 가리키는 러시아어
‘partizan’에서 파생되어 불려졌는데 좌익게릴라, 야산대,
무장유격투쟁대 등으로도 불리운다 합니다. 빨치산이 진정으로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세석고원을 오르면서 돌아본 세석대피소가 주위와 어우러져
아름답게 보입니다. 저 아름다운 건물이 지난날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었다면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옵니다. 어쩌면 남한의
이승만 도당이나 북한의 김일성 도당에 의해 저질러진 6.25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자는 이 지리산의 빨치산이 아닐까요...
아니 정통한 남로당원이 아닌 대다수의 뜻 모를 빨치산
가입자들이 아닐 것인가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희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핍박받고 분노한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갈아엎는 길과 더러운 세상에 순응하면서
길들여지는 것 외 무엇이 있을 것인가?
세상을 갈아엎는 길, 그것은 김일성이라도 좋고, 빨갱이라도
좋았다는 것. 다만 개처럼 순응하다가 죽으나 세상을 갈아 엎는
시도라도 하고 죽으나 죽는건 매한가지라는 것. 아니 나의
울분을 마음껏 내지르며 이렇게 피 끓는 저항을 하며 죽는 길이
오히려 속이야 시원하다는 것... 이런 저런 상념 속에서 걷는
세석고원이 처절하리만치 아름답게 보입니다.
세석고원에서 촛대봉으로 가는 길에 잘 놓여진 등산로입니다.
역사는 바람결에 자고 있는데 산천은 의구하여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세석고원이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꾸어져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합니다.
나는 꽃 이름은 완전 무식입니다. 그러나 한참을 빨치산을
생각하며 걷노라니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까지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세석고원에 지천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지난날의 이름 모를 빨치산들을 추념하듯이 가만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입니다.
세석고원을 뒤로 하고 오르는 길에 아름답게 서 있는
주목입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이 한창 푸르름을
더하고 있는 것들과 이미 고사목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삐죽이
큰 키로 인해 더욱 돋보이지만 그로 인해 경관에 거스르는 것은
없습니다. 주변과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을 깊게 할 뿐입니다.
푸르름 속에 삐죽이 솟아나온 고사목을 보십시오.
촛대봉입니다.
해발 1,703m.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듯한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모여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머얼리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이 까마득히 위용을 뽐내며 서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득하게 멀지만 오늘 안으로 반드시 가야 할 길이랍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는 비가 올지 모른다고 하여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올라와서 보니 일년에 그리 많지 않은 맑은
하늘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리산은 고산이기 때문에
일년에도 이렇게 맑은 날씨를 보여주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는 오늘 대단한 행운을 가지고 오르게
되었다고 제각기 환호성입니다.
저 까마득한 봉우리가 오늘 우리가 지향한 목표지점입니다.
앞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몇번이나 반복하면서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촛대봉을 내려오면서 우러러 본 하늘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푸른 상록수와 고사목이 어우러져 말로 표현키 어려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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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3 13: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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