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사태의 본질과 대응에 대해서 |
현장에서 미래를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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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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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사태’의 본질과 ‘대응’에 대해서
정세초점
필연에 얽힌 음모, 그리고 굴절된 의식
채 만 수 / 부소장
연초부터 순차로 터진 한보․삼미․대농․진로
그룹의 도산 및 사실상의 부도사태에 이어, 다시금 국민경제에
긴장과 혼란을 격화시키고 있는 ‘기아그룹’의 사실상의
부도사태는 현대자본주의의 모순과 항쟁․암투, 그리고
그를 둘러싼 굴절된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벌간의 항쟁과 암투․음모
우선, 기아사태의 배후에는 독점자본 간의 항쟁과 암투 그리고
음모가 있다.
‘기아그룹 사태 정상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입장’이라는 제하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보도자료(97.7.20)도 “기아 사태가
이처럼 촉발된 여기서 ‘촉발되었다’는 용어는 정말 적절한
것이다. 민주노총도 그 ‘보도자료’에서 “기아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고 물으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 글이 뒤에서 간략히 설명하는 것처럼, 여러
정황과 조건 때문에 ‘기아사태’는 언젠가 조만간에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모재벌이 작용했다는 음모설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 ‘삼성재벌’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아사태가 촉발되는 데에서
삼성그룹이 논 역할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삼성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전에도 여러 번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려는 시도로 물의를 빚었던 일이 있다. 그런데 이는
차치하고서라도,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삼성은 지난 5월 하순에
공개된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개편의 필요성과 정부의
지원방안’이라는 ‘보고서’로써 이번의 기아사태가 촉발되게
되는 직접적 계기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국내외
시장에서의 자동차의 전반적인 공급과잉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 그리고 이른바 리스트럭처링(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후 노골적으로 기아자동차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쓰고 있다. 보다 자세히 옮기자면, “현대와
대우자동차를 제외하고는 (기아, 아시아, 쌍룡 등 여타의
업체는) 2000년대(에는) 성장역량(이) 소진”되고,
‘기아자동차’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부채비율,
증가추세의 이익률 등 외견상 국내 타 자동차업체에 비해 건실한
경영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자산규모에 비해
차입금이 과다하여(96년 6월말 기준 자산은 현대자동차의 78%
수준, 차입금은 현대자동차의 108%) 상당한 금융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고, “자동차 중심의 그룹구조로 인한 그룹 지원력 미약,
최고 경영진들에 대한 불신, 경영진 간의 갈등 상존 등으로
장기적인 발전가능성은 기대하기 힘든 상태”로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이상 삼성 ‘보고서’의 인용은
ꡔ신동아ꡕ 97년 7월호, p. 304 : 인용문 중 괄호
속의 것은 기술의 필요상 인용자인 필자가 써넣은 부분이다.
다름 아닌, 사실상 한국의 최고 재벌인 삼성의 ‘판단’이었기
때문에, 그러찮아도 심각한 재정상의 문제를 안고 있는
기아그룹을 흔들고 목조이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삼성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그룹의 최고위 간부
중의 한 사람(임경춘 삼성자동차 부회장)도 자인하고 있는
것처럼, ‘한솔종합금융’은 기아그룹에 대한 “대출금을
회수하고” 있었고, ‘삼성생명’은 기아그룹의 사실상의
지주회사인 “기산의 주식을 투매”했다.
ꡔ중앙일보ꡕ, 97. 7. 19: 물론 임 부회장은
“한솔과 삼성은 전혀 별개의 기업이며 삼성과 이 문제를 놓고
논의한 사실도 없다”고 말하고, 또 삼성생명이 기산의 주식을
‘투매’한 것도 단순히 “수익성 차원에서 실무자가 개인적으로
한 일”로서 “이것이 보고서 파문 와중에 나와 소문의 진원지가
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인 ‘제2금융권’의 자금회수를
선도하고, 주식시장에서의 기아그룹 주가의 폭락을 유도하는
작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아사태와 관련한 삼성측의 저간의 일련의 행동들이, 풍문 혹은
‘제3자 인수설’처럼 기아를 인수․합병하려는
의도(‘음모’)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삼성측의 얘기대로
ꡔ중앙일보ꡕ 97.7.19의 예의 임 부회장의 발언.
삼성은 정말 기아를 인수할 의사나 의도가 없는 것인지, 우리는
그 속내를 알지 못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삼성은 기아를
인수하면 물론이고, 설령 그것을 인수하지 않더라도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기아가 크게 쇠잔해 가고 그리하여 결국 도산해
가기만 해도 자동차 사업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는 처지에서
‘크게 바람직’하고, 삼성 역시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기아사태의 배후에는 삼성의 악의나 음모만이 있고 현대와
대우는 일반적으로 추측하듯이, 삼성과 기아가
갈등․대립하는 상황에서 삼성을 경계하기 위해 기아를
우호적으로 지원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순진함의 발로일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그리고 기아자동차는 좁은
시장을 두고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는, 말하자면 사실상
‘적대적인’ 경쟁자이다. 그런데 기아가 잘못될 경우 그에 따른
모든 사회적 비난을 삼성이 뒤집어쓰게끔 되어 있는 ‘호기’를
이들 적대적 경쟁자들이 아무런 ‘작전’도 하지 않은 채 헛되이
보냈으리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도 차량가격의
40% 내지 55%를 ‘유예’해주는 이른바 ‘새로운 구매제도’를
넘는 무언가 은밀한 작전을 감행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기아사태가 발생한 후, 예컨대 보도대로 현대와 대우가 수백억
원어치의 기아 전환사채를 ‘우호적으로’ 매입하는 등의 조치로
기아를 ‘지원’했다면, 그 진의는 기아를 지원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있을지도 모르는 삼성의 기아 인수를 견제하는
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기아가 막강한
삼성에 인수되어 재차 강력한 경쟁자로 소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기아사태 이후 동반해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해외시장에서의
신뢰도 손상이나 기아의 자동차 투매 등에 의한 동반 손실 등을
논거로 들면서 현대 및 대우의 ‘악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주장이 혹시 있다면 이는 필시 이들 동반 손실은 단기적이지만,
기아의 퇴출에 의한 시장 점유율의 확대는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주장일 것이다.
생산의 무정부성과 과잉생산
말할 것도 없이 기아사태의 본질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과 과잉생산에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기아 사태의
주요 원인인 철강(기아특수강) 및
자동차(기아자동차․아시아자동차) 등의 과잉생산은,
반도체 및 조선․석유화학에서의 과잉생산, 그리고 급격히
확대되었던 국제수지 적자와 더불어, 지난해에 자본측이
강력하게 몰아친 ‘경제위기설’의 주요 근거였다. 그러나,
이른바 ‘국민총생산’(GNP), ‘국내총생산’(GDP),
‘산업생산’의 전반적 증대를 ‘통계’로 제시하고 있는데 몇몇
부문에 ‘과잉생산’이 있다고 해서, 그리고 그들 부문에서조차
‘아직’ 생산의 증대가 진행 중인데, 국민경제의 상황을
‘위기’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거대한 누적적자로 이번 기아사태의 주체적 그리고 실질적인
원인이 된 특수강(기아특수강)의 경우, 구구하게 통계를 들
필요도 없이 절대적 과잉생산으로 일찍이 삼미특수강이 사실상
도산한 바 있고, 기아그룹의 중추인 자동차(기아자동차 및
아시아자동차)의 경우도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긴 하지만
대대적인 설비증설과 국내 신규수요의 답보 내지 축소로 전체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만성적인 과잉생산 상태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이다.
더욱 심각한 의미를 갖는 것은 자동차 산업의 경우 국내외의
엄청난 공급과잉이 이미 충분히 예측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동차 생산업체의 대대적인 도산 없이는 세계적으로
그 과잉생산을 흡수할 시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없다는
전망이 자동차 업계는 물론, 일반적으로도 널리 승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업체는 경쟁적으로 설비를 증설하고
증산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은, 각 자본이 그러한
전망을 수용하면서도 그렇게 설비를 증설하고 증산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엄청난 과잉생산과 그로 인한 대대적인 파산이 필연적인
것으로 예측되는데도 경쟁적으로 증설과 증산을 강행하는 것은
결국 각 자본이 서로간에 ‘너 죽고 나 살자’는 주의에
매달리는 것이고, 또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냉혹한 강제기구
속에서는 멈추는 순간이 곧 패배요 ‘죽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삼성의 ‘보고서’도 말하고
있듯이 “2000년 이후(에는)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10대
메이커만 생존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는 가운데 “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세계 톱 텐’(Top 10)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ꡔ신동아ꡕ,
같은 호, p. 302.
형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문제의 본질과 상황이 이렇고, 또 한국의 3대 자동차
생산업체가 모두 다 ‘세계의 톱 텐’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현실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기아사태를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국민기업 살리기’ 운운하면서 호들갑스럽게 보는
것과는 좀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앞에서 인용한,
민주노총의 ‘보도자료’도 “기아사태가 이처럼 촉발된 …… ”
운운함으로써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다만(?), 민주노총의
‘보도자료’는 그러한 문제의식에 수미일관하진 않다.
기아사태와 같은 ‘사태’는 필연적이었고 다만 그 시기와
희생자가 누구이냐만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번의
기아사태가 어찌어찌 ‘수습’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는
조만간, 어쩌면 더욱더 증폭된 형태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보고서’가 예상하듯이 국내 자동차업체의
‘공급과잉’을 2000년에 108만 6천 대, 2010년에 180만 대로
본다면, ꡔ신동아ꡕ, 같은 호, p. 302.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2000년대에 각각 “세계 10대
메이커로 부상”하고 “가속성장”할 것이라는 삼성 ‘보고서’
속의 ‘전망’과 ‘예견’도 ꡔ신동아ꡕ, 같은 호,
p. 304.
사실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연간 공급과잉이 180만 대에
이른다고 했을 때, 기아 등 제3, 제4의 업체가 아직 생존해
있으면 그것은 바로 재고를 상대적으로 고르게 나누어지고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 업체가 이미 도산해
버렸다면 또 바로 그들이 도산해 버렸기 때문에, 현대와
대우에게도 각각 수십만 대씩의 제고가 누적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현대와 대우가 아무리 “자본 조달과 판매에서 전체 그룹이
밀어 주는 대재벌”이고 “선단경영”이라 이봉수,
「‘포드는 용서할 수 없다’」,
ꡔ한겨레ꡕ, 97. 7. 23: 이봉수의 이 글은 물론
그의 숭미(崇美)․숭일(崇日)적 사대주의와 경실련적
허위의식에 입각해 있다. 그리하여 이른바 ‘크라이슬러의
교훈’ 혹은 “크라이슬러의 회생을 경제민주화의 과정과
소산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그에게
있어서 ‘재벌’의 문제는 독점의 문제가 아니라 ‘족벌경영’의
문제이다. 그러면서 그는 “소유 분산기업”이자
“전문경영체제”이며 “국민기업”인 기아가 “우리 나라에만
있는 재벌 구조의 희생물”이 되어 “먹힌” 데에 화내고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자동차 업계의 과잉투자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과 경쟁의 강제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에 취미가
있는 두 재벌 2세의 신규 진출을 정부가 허용했기 때문이다.”
ꠏꠏ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그에게 한 가지는
꼭 묻고 싶다. 수백만의 홈리스(homeless)가 절규하고 있고,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홈리스(homeless)로 되어 갈 수밖에
없는 미국에 정말 ‘경제민주화의 소산’, 곧 이른바
‘경제민주주의’가 있긴 있느냐고? 혹은 그것은 바로 자유가
없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같은 것은 아니냐고?
하더라도 오래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잉생산과 그로 인한 대대적인 파산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도
‘너 죽고 나 실기’ 식으로 생산을 확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은 또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즉,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되면 과두제적 금융자본의 사회적 부기에 의해서, 그리고
나아가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로 되면 국가의 개입과 ‘계획’에
의해서 자본제적 생산의 무정부성이 부분적으로 일정 정도
제어되지만,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극도로 고도화된
생산력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는 무정부성과 그에 따른
과잉생산을 통제하려는 금융자본과 국가의 그러한 시도와 의지를
무력화시키면서 생산과 소비간의 모순을 극도로 격화시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생산과 소비간의 이 모순은 자본제적 생산의
내부에서는 결코 지양될 수 없는 모순이다.
삼미특수강은 ‘양호한’ 수준?
기아사태가 발생한 이후 발빠르게 조직되어 행동에 들어간
이른바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기범련)의 ‘국민기업
기아사태 해결을 위한 촉구 성명서’(97.7.21) 중의 한두 구절을
보자.
정부는 재벌그룹의 소유분산․소유경영 분리원칙으로
국민이 바라는 민의의 정책을 추진해와 그 대표적 모델기업으로
기아그룹이 국민기업으로 성장해 왔으나 최근 제2금융권의
무리한 자금회수로 인해 빚어진 부도유예사태로 인해 예측못할
상황이 전개되어 국가경쟁력 악화와 국민불안이 증대되고 있음을
주지하고 조속한 지원 해결책을 통한 방안을 마련, 시행해 줄
것을 촉구하는 바 입니다.
채권은행단은 국민의 여망과 국가 경제체제의 혼란을
막기위해서라도 무리한 정책에 의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최선의 방안을 마련, 지원과 자구책에 의해 스스로
국민기업으로서의 경영정상화를 이룰수 있도록 협력해 줄 것을
요청 합니다.
기아그룹은 노사가 하나되어 자산매각과 임직원들의 임금동결 및
자진삭감 등의 의지 실행과 경영군살을 빼는 자기살을 깍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자구 노력에 의한 경영합리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건전경영과 내실경영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
국민의 신뢰받는 공기업으로서의 면모를 확립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 입니다.(이상 원문대로. 단, 강조는 인용자)
이상의 내용과 관련하여 기범련이, 그간 정부가 “재벌그룹의
소유분산․소유경영분리원칙으로 국민이 바라는 민의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보든, 기아그룹을 이른바 “국민기업”
참고로, 앞서 인용한 민주노총의 ‘보도자료’에도 “30대 재벌
중에서 유일하게 소유-경영분리와 주식분산에 의해
‘국민기업’으로 평가되는 기아그룹 …… ” 운운하는 서술이
보인다. 그런데, ‘국민기업’이란 사실도 아닐 뿐더러 그
착취적 성격을 은폐하는 용어이다.
혹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기업”으로 보든 문제삼지 않기로
하자. 여기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른바 ‘금융’이다.
‘기범련’의 성명서에 의하면 기아의 ‘부도유예사태’는
“최근 제2금융권의 무리한 자금회수로 인해 빚어졌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 관련기관과, 통상산업부와, 포철 등
원자재 공급사 및 유관단체 그리고 협력사들에게, 그리고
기아그룹과 그 임직원들에게까지 가지가지를 ‘요청’하고
‘촉구’하는 ‘기범련’의 그 성명서 어디에도 ‘제2금융권’에
대해서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촉구’하는 바가 없다.
기껏해야 ‘채권은행단’에게 (그것도 예컨대 정부에 대해서는
당당히 ‘촉구하는 바’와는 사뭇 다르게 최상의 예의를
갖추어서) “협력해 줄 것을 요청 합니다”라고 쓰고 있을
뿐이다.
이는 기실 ‘기범련’뿐 아니라 ‘기아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무언가 ‘방안’을 내놓는 개인과 단체들의 대부분의 태도인데,
필자는 이를 그들이 기아 ‘임직원들의 임금동결 및
자진삭감’을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고 싶다.
기아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말 기아그룹이 부담해 온 엄청난
‘금융비용’, 즉 이자지불이다. 보도에 의하면 사태가 발생할
당시 기아특수강의 부채총액은 1조 3천여억 원으로 총자산의
96.5%를 점하고 연간 이자지불액은 약 922억 원으로 무려
매출액의 28.7%였다. 그리하여 매출액 대비 이자지불액이
17.2%였던 (이미 도산한) 삼미특수강의 경우는 오히려
‘양호한’ 수준이었다는 ꡔ중앙일보ꡕ,
97.7.21.
평가조차 나온다.
기아그룹의 총부채는 9조 4천 360여억 원인데,
ꡔ중앙일보ꡕ, 97.7.21.
기아특수강과 비슷한 이자율로 이자를 지불했다고 볼 때 연간
이자는 무려 6,700억 원 정도이다. 결국 연간 약 6,700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기아그룹으로부터 은행이나 제2금융권
등으로 이른바 ‘금융비용’, 곧 이자로 유출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기아가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그보다 훨씬
더 많거나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규모의 돈이 ‘이자’로
유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다름 아닌 기아그룹 수만 명
노동자들이 착취당한 잉여노동 중 그 액수만큼의 부분이
무위도식하는 한줌 금리생활자들 수중으로 이전되어감을
의미하고, 그것의 대부분이 다시 ‘이자 낳는 자본’으로 되어서
그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잉여노동을 착출하는 새로운 원금으로
전화됨을 의미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범련’을 위시한 사람들은
불로소득으로서의 이자의 폐지나 삭감을 주장하기는커녕 그들
무위도식하는 불로소득자들에게는 최대의 예의를 갖추어서
‘협력을 요청’하고, 사실상 기아그룹 수만 노동자들에게는
더한층의 생활압박을 강요하는 ‘임금동결 및 자진삭감’을
‘촉구’하고 있다. 가히 전도(顚倒)된 의식의 극치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위기시에 노동자를 타격한다
사태가 아직 폭발하기 전, 그것이 아직 한참 무르익고 있을 때인
지난 6월 하순에 기아자동차노동조합(위원장 이재승)은 97년도
임금을 회사측에 무교섭 위임하였고, 7월 9일까지는 기아그룹
전체 계열사 노조가 그 뒤를 따랐다.
기아자동차노조가 발행한 ꡔ함성속보ꡕ
제42호(1997.6.25) 및 제43호 (1997.6.25)에 의하면, 노조는
“삼성보고서의 파문”과 기아를 부도위기로 몰아넣어 “이를
먹겠다는 삼성재벌의 농간”, 즉 “금융․증권 배후조종”
때문에 기아의 위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기아를
“절대로 삼성에게 넘길 수 없다!!”, “삼성재벌의 도발야욕에
우리가 무너질 수는 없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짐하는 이유를 “삼성재벌은 무노조경영의 악덕기업일 뿐
아니라 기아 인수가 현실화된다면 필연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ꡔ함성속보ꡕ
제42호, 97.6.25.
말하자면 노조 집행부가 ‘무교섭 위임 결단’을 한 것도
“스스로의 일터사수와 고용안정”을 위해서였던 셈인데,
회사측의 무교섭 위임 제의를 수용한 노조 집행부는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찬성을 유도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ꡔ함성속보ꡕ 제43호, 97.6.25.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선택은 전조합원 동지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무교섭 타결을 통한 회사부도 위기상황 돌파냐, 아니면 회사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투쟁을 통한 임금쟁취냐’라는 두가지 중
한가지를 분명하게 선택하고 책임지는 결단만이 있을
뿐입니다.(원문대로. 단,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무교섭 타결을 통해서 회사의
부도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인식 혹은 주장인데, 7월 15일의
사실상의 부도사태를 통해서 이러한 인식 혹은 주장은 극히
주관적이었음이 드러났다. “백지 위임 절대로 안된다!”며,
회사측의 무교섭 타결 제의는 “기아의 자금사정이나 위기해결과
전혀 무관한 노동조합을 걸고넘어지면서 노조무력화를 이루려는
정부와 김선홍의 음모” ‘평등세상을 여는 노동자회’ 선전부,
ꡔ평등세상ꡕ 속보4호, 97.6.24.
라던, 기아자동차 내의 ‘평등세상을 여는 노동자회’의 주장이
타당했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 기아자동차노조나 그를 추종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오류로 판명되고, 그들을 비판하고 반대하던 의견이
타당했던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해서 자신들의 태도를 바꾸고
있지 않다. 무교섭 타결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찬․반 의견이 대립했을 때, 필시 노조
집행부를(?) 열렬히 지지하는 한 조합원(시작부 고수환,
97.6.26)은 “제3호 기아를 사랑하는 조합원 동지들에게”라는
제목의 개인전단에서, “기아를 흔드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악성노사분규와 계속되는 노사불안정임을 정부나 금융기관에
알려 주가하락을 유도하고 그렇게 하여 여론을 삼성 입맛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삼성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또 금융기관이나 언론이 삼성의 선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금융기관의 어음회수를 막고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받기 위해서는” “기아의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고, 노사가 하나 되어 회사살리기에 나섰음을 필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노조와 그를 추종하는
노동자들은 바로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기라도 한 듯한 태도를
확고히 취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을 기업별로 분단하여 서로
대립시키는 기업별노조 형태에서 특히 강한 ‘애사주의’요,
회사에 대한 노조와 노동자들의 불행한 짝사랑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특히 기아자동차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그 자체로서 ‘회생’할 것인지, 삼성이나 다른 ‘제3자’가
인수․합병할 것인지, 법정관리 혹은 ‘국유화’될 것인지
여부 등이 아직 유동적이다.
하지만 다음 두 가지만은 명확하다. 그 하나는, 현재의 사태가
회사 및 자본측에 대한 노조나 노동자들의 태도 여하와 무관하게
발생했듯이, 기아의 앞으로의 운명도 노조 등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혹시 앞으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할 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국가가 기아를 분해․해체해서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것을 해체․소멸시킨다면
그 절대적 규모나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비중으로
봐서 그 충격이 너무나 치명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
그리고 기업으로서의 기아 혹은 기아자동차는, 설령 그 이름과
주인이 바뀔 수는 있지만 적어도 상당 기간 그 존재를 유지할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동자들의 처지인데, 현재의 사태가 어떤 형태로
귀결되든 자본이 대량해고 사태를 벌이고 또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들 것임은 자명하다. 위기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기 위해서인데, 실제로도 기아 자본은 그러한 계획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기아 자본은 은행단의
대출금을 구걸하기 위해서 ‘자구 계획서’를 제출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임직원 30%, 간부사원 18% 감축 등으로 5천 3백여
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인건비 절감 등으로 1조 5백억 원의
경비를 절감키로 했다” ꡔ중앙일보ꡕ, 97.7.22.
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사제도도 철저한 상벌제도를 토대로
하겠다” ꡔ중앙일보ꡕ, 97.7.17.
고도 다짐하고 있다.
기아의 노조는, 그리고 기아의 노동자들은 당연히 자본의 그러한
대량해고, 통제․노동강도 강화 음모를 좌절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데, 지금 취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른바
‘노사협조’나 ‘노사화합’을 통해서 그 과제를 수행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노사협조’나 ‘노사화합’적인 자세를
취하면 취할수록 노조는 철저히 무력화되고, ‘회사 살리기’란
이데올로기만 무성해져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통분담은
불가피하다’는 허위의식이 노동자들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보다 기아가 좋다”고 하는 이유는 (기아가 이른바
‘국민기업’이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이 있고,
이에 따른 조합원의 권리가 그나마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자주적 노조만이 위기를 극복할 버팀목이다.
ꡔ평등세상ꡕ 속보6호, 97.6.26.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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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8-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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