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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버테크 97샌프란시스코

현장에서 미래를  제25호
김명준


레이버테크(LaborTech)
97 샌프란시스코


김 명 준 /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참관기
레이버테크(LaborTech) 97샌프란시스코





금문교 1997년 7월 12일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면 누구나 금문교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우아한 금문교를 세워놓은 노동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노동자계급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서 이미 좌초해버린 셈이다. 그 어떤 도시가 그렇지 않으랴 마는, 돌이켜보면 샌프란시스코는 노동자의 도시였다. 지금도 이곳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도시를 ‘노조의 도시’(Union town)라고 부른다. 그에 걸맞게 이 도시의 초대 시장은 노동자였고, 작년 이맘때 150만 노동자의 의지를 모아 최초로 건설된 노동당(Labor Party)을(http://www.igc
.apc.org/lpa) 이끌고 있는 핵심조직들도 이곳에 근거를 두고 있다.

노동운동은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7월 12일에서 13일까지 이틀동안 이 노동조합의 도시에서는 노동운동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국제회의 ‘레이버테크’(LaborTech)가 개최되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진행되어온 레이버테크 국제회의는, 테크놀로지가 자본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노동운동은 어떠한 조직적 과제를 안게 되는가, 그리고 그러한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노동운동의 조직적 발전, 특히 국제연대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모색하는 공간이다.
캐나다, 터어키, 한국, 영국 등에서 온 국제 초정자들을 포함한 150여명의 비디오 운동가, 각급 노조간부, 교사, 연구자, 인터넷 운동가, 정보통신 전문가 등은 이틀간의 빡빡한 일정속에서 다채로운 주제를 점검하며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노동운동의 발전방향을 모색해 갔다.(일정은 아래와 같다. 일정표 중 동일시간대에 3개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워크숍으로 서로 다른 공간에서 동시 진행한 것이다.)
7/12 9:00~10:00 노동자, 인터넷과 노동조합의 민주주의
10:30~12:00 노동자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노동자 비디오와 조직화
노동자를 위한 온라인 조사연구 기술
13:30~15:00 오늘날의 노동자 투쟁과 테크놀로지
멀티미디어 노동자 교육
지역 엑세스 TV에 관하여
15:00~16:30 인터넷을 통한 전지구적 조직화
편집과 디지틀 비디오 테크놀로지
17:00~19:00 칵테일 리셉션
19:30~ 디트로이트 노동자와의 연대 문화행사
7/13 9:00~10:00 노동자와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미래
10:00~11:30 컴퓨터를 활용하는 내부 조직화
인터넷과 케이블 TV의 상업화
노동자 라디오
12:00~13:30 지구화,NAFTA,GATT와 노동자 커뮤니케이션
13:30~15:00 인종,계급,성(性)과 컴퓨터에 대한 접근권
전자적 작업공간
개발도상국의 노동자 커뮤니케이션
15:00~16:00 회의 평가

일정표에서 드러나는 주제의 분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테크놀로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고민은 지극히 다변화되어 있으며, 그 연대의 수준 또한 세기말을 바라보는 지금 이미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보다 자세한 회의 관련 내용은 레이버테크와 관련된 각종 문서를 포함하고 있는 레이버테크 인터넷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특징적인 몇 가지 내용을 기술해보기로 한다(LaborTech 97 : http://www.igc.apc.org/labortech/).

현재진행형의 국제연대 투쟁 : 인터넷
아무래도 회의의 전반적인 화두는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활성화에 있었다. 특히 96~97년 초에 있었던 한국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을 국제적으로 홍보해낸 정보통신지원단(http://kpd.sing-kr.
org/strike)과, 2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리버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 투쟁 과정에서 정보소통의 중심역할을 해낸 영국 레이버네트(http://www.labournet.org.uk)의 활동은 회의 내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한국 사례의 경우,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반노동자적 주류 미디어로는 알기 힘든 각종 정보를 신속하게 알려냄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국적 투쟁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조직해내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진행과정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국의 사례는 실질적인 동시투쟁을 조직해내는 구심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의 투쟁상황을 알려내는 정보의 집산지 역할을 함으로써 이후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었다. 덧붙여, 이미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미국의 경우, 디트로이트 신문노동자의 파업투쟁에서 인터넷이 대중조직화의 무기로 사용된 사례, 항공사인 아메리카 에어라인(AA)의 사례가 거론되었다. AA의 경우, 파일롯들은 어용노조가 굴욕적인 단체협약을 체결하려 하자, 인터넷을 통해 논의를 집중하고 조직해냄으로써 결국 단체협약안을 수정시키는데 성공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있기에 논의가 쉽지 않은 파일롯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인터넷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던 셈이다.(파일롯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던 마크 허니벌은 이 활동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그 전문은 레이버테크 홈페이지에 이미 실려있다.)

이미지로 본 노동운동 : 비디오
동시에, 한편으로는 딱딱한 문자가 아니라 강렬한 영상 이미지를 통해서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직까지 정보통신 산업의 하부구조가 도입되지 않은 나라의 경우는 거의 유일한 대중적인 의사소통의 매체라는 점에서, 노동자 비디오는 여전히 주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었다. 국제적인 사례로는 ‘노동자뉴스 제작단’이 제작한 ꡔ총파업 투쟁속보 1,2호ꡕ의 국제적 배급이 주요하게 거론되었으며, 미국의 경우 미네소타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지의 노동자 비디오운동 상황이(미국의 경우, 비디오 및 방송 운동가의 모임인 UPPNET의 자료를 참조, http://
www.mtn.org/~jsee/uppnet.html), 캐나다의 경우는 노동자 TV(Working TV. http://www.workingtv.com)의 활동이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
미네소타의 하워드 클링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영상활동과 관련해서 기술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촬영자료에서부터 다큐멘터리 작품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 속에서의 다양한 활용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스티브 젤쳐는 미국노총(AFL-CIO)이 선거기간동안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광고에 돈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그 돈의 일부만이라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노동자 비디오를 조직화해낼 수 있는 독자적인 노동자 위성네트워크 방송의 구축에 투자해야함을 역설했다. 특히 스티브의 주장은 곧바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독자적인 방송국을 건설해야 하고, 현실속에서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물론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 각국은 주로 케이블 TV에 개방채널이라는 구조가 이미 확보되어 있는 상태에서 더 진전된 논의가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황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으나, 국민주 방송운동에 대한 노동운동의 입장 개진이나, 전국의 노동자영상 동아리를 조직화하는 사업에 있어서도 노동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분명 보편적인 고민을 지니고 있었다.

내부 조직화
비록 미국노조의 상황을 중심으로 전개된 점이 한계이긴 했지만, 컴퓨터를 노동자 내부 조직화 사업에 활용하는 사례는 조직화의 도구로 컴퓨터를 다시한번 바라보게 하는 계기였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서 활용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로는 조합원 관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각종 문서자료를 관리하는 문서관리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것인데, 미국의 경우 노동조합의 활동에 걸맞게 전면적으로 새로이 구성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이 조금은 신선했다. 우리의 경우, 노동조합 활동만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일부 개발되기는 했지만, 아직 전국적 조직화의 정도에 비추어 독자적인 정보통신망의 구축이나, 민주노총의 활동체계에 걸맞는 시스템이 안착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타국의 사례는 선진적인 경험으로 참고할 만하다(보다 자세한 자료는 http://www.
nwu.org/nwu 중 Have computer will organize를 참조할 수 있으며, 주요한 내용은 조합원 데이터베이스, 전자게시판, 팩스서버, 통계표, 보안시스템 등이다).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노동과 자본 : ‘피자 만들기’
비록 화려한 뉴 미디어는 아니지만, 이번 회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중에 하나는 캘리포니아 교사노동조합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학교에서의 ‘노동’ 교육사업이었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교육적 내용을 교원노조는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그러한 전제가 성과를 거둔 것인지는 몰라도 현재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의 노동관련 강좌들에는 개교이래 가장 많은 수강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교사노조의 작업은 노동운동을 학습하는 커리큘럼의 작성에서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이 누구의 손으로 건설된 것인가를 애니메이션이나 여타의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재미있게 설명하는 비디오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바로 초등학교에서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는 ‘피자 만들기’ 교육이었다. 앙증맞은 표지로 장식된 노트를 교안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피자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지급한 후 몇 차례의 상황변화를 통해 학생과 교사가 가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입장이 되어 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 매우 이채로웠다. 이 교육과정에서는 영화 ‘뉴스 보이’를(디즈니사의 뮤지컬로 비록 결말은 싱겁지만, 신문팔이 소년 노동자의 파업(!) 투쟁이 군무를 통해서 묘사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며, 이 교육과정에서도 바로 그 장면이 학생들에게 영상자료로 제시된다) 비롯한 다양한 영상자료가 사용되며, 때로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학생들이 파업에 돌입하기도 한다고 했다.

멀고도 가까운 미래 : 전자 작업장
이렇게 뉴 미디어와 기존 미디어를 섭렵하며 진행된 회의기간 중 가장 공상과학 소설을 연상케한 시간은 ‘전자 작업장’에 대한 워크샵이었다. ‘전자 작업장’이란 공장이나 사무실에 첨단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폭넓은 개념으로서, 이번 회의에서 다루어진 새로운 주제는 일반적인 노동자 통제감시의 이슈 이외에 ‘원격공장’이었다. 원격공장은 미국과 같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생산시설을 설치하고, 그 가동에 필요한 노동력은 후진국의 저임 노동자를 고용한 후 양자를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자본유출이라는 선진국 노동자의 비판을 둔화시킴과 동시에 저임금 노동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성과 낮은 구매력 및 고가의 수송비용이라는 부담을 회피하려는 다국적 자본의 미래 전략이다. 멀어보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른다.
이 ‘전자 작업장’과 더불어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는 자본의 전일적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시급한 과제로 제기된 것은 신문, 잡지 등을 공간으로 활동하는 자유기고가들의 저작권 문제였다. 현재 거대 미디어자본들은 자유기고가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현존하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발될 모든 미디어를 포함하는 저작권을 모두 장악하려하고 있다. 그에 따라 대규모 언론사의 광범위한 저작권 남용이 독립 저술가들의 착취를 대가로 진행됨으로써 그에 따른 국제적 대응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었다(자유기고가노조 인터넷 사이트 참조. http://www.nwu.org/nwu).

다시 한국의 전선으로
테크놀로지, 그리고 미디어 산업의 발전정도에서 보면 한국은 전세계 자본주의 국가중 높은 수준에 속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미디어 산업에 대한 진보적 개입의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노조의 인식 또한 지극히 초보적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국제적 사례에 대한 이해 및 연구와, 직접적인 실천적 연대는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해 이제 필수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국제적 경험과 관련하여, 한국의 특수한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조직적 발전이 한국과 유사한 나라들(브라질, 터어키 등)과 미디어 산업이 발전한 나라들(미국, 캐나다, 유럽 등)로부터 동시에 교훈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반가운 것은 이러한 인식이 이제 국제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으며 한국 또한 독자적 경험들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NAFTA, GATT, 그리고 각국의 노동법 개악, 민영화 등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그러한 연대의 필요성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97년의 레이버테크 회의는 그러한 연대를 향한 희망이 전세계적으로 존재함을 또다시 입증했다. 한 문화행사에서 미국의 노익장 여성 시인은 전태일 열사를 소재로 한 <불, Fire>이라는 제목의 시를 헌정하기도 했고, 2년째 전투적인 파업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디트로이트 노동자들은 전해투 노동자를 연상케하는 전투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생산과정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 없이 이루어지는 법적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올해초 미국에서는 AFL-CIO의 주도로 이 파업과 연대하는 10만 노동자의 행진 ‘모타운 액션 97’이 열렸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회의의 대미를 장식한 한 노동자의 발언이었다.
“자본가들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선처를 구해야 하나? 아니, 그리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오직 그것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 노동자의 힘으로......”
이 말은 초과착취에 시달리는 중미 신발공장 노동자가 아니라,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전세계에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팔기에 여념이 없는, 최고로 잘나가는 기업 ‘인텔(Intel)’ 노동자의 고백이다(http://www.igc.apc.org/faceintel).



아직도 금문교에 얽힌 사연이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한가지 역사적 사실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금문교를 만들던 당시만 하더라도 대형공사중 추락할지도 모르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그물망은 전혀 설치된 바가 없었다. 금문교를 짓던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해서 그물망의 설치를 요구했고, 그렇게 설치된 그물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구했다. 투쟁속에서도 유머는 끊이지 않게 마련이니, 그물위에 떨어진 노동자들은 조직력 덕택에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여 서클을 만들었다. 그 서클의 이름은 바로 ‘반쯤은 지옥에 간 사람들’ (Halfway to hell)이며, 샌프란시스코의 비디오 팀 ‘레이버 비디오 프로젝트’ (Labor video project)는 이 사건을 소재로 배우조합의 일원인 대니 글로버를(영화 ‘리셀웨펀’의 흑인형사) 기용해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http://www.igc.apc.org/lvp). 한/노/정/연

1997-09-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