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보건의료

현장에서 미래를  제25호
박병현


자본이냐 노동이냐 (14)




14회 ?자본이냐 노동이냐?는 박병현 씨의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보건의료’를 게재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건강권이란 빈자든 부자든 모두에게 평등하게 부여되어야 할 자연스런 기본권이기 때문에 의료부분의 공공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경쟁력 강화 논리가 의료부분에도 파고들어와 1차 의료기관이 노골적으로 영리화되고 있음을 문제제기 하고 있다.

더불어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권을 작업장 안과 밖으로 분리해서 사고하는 인식이 극복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건강(권)과 보건의료



박 병 현 /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김영삼 정권의 산재보험 민영화 방침에 이은 년초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이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깊이 있게 제기하였다. 더구나 96년부터 검토되기 시작한 산재보험 민영화 방안은 노동법 날치기를 정점으로 강화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국가경쟁력 강화론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과거 정권의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보건정책과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재추방운동 단체와 피해자 단체의 반대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모든 민중운동진영의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아무튼 이 문제가 산재보험 민영화 문제뿐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에 대한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비판과 대안이 모색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과 노동자 건강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은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질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결정적인 원인1)이다.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이 곧 착취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노동은 본질상 일방적이며 강제의 과정이다. 자본가들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들을 고용한 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능력 이상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작업속도를 높이며 일하는 시간 내내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자본은 노동강도를 강화함으로써 이윤을 높일 뿐 아니라 노동자의 정신과 육체도 같이 약탈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문송면 군 수은중독이나 원진레이온 직업병문제를 들 수 있는데 밝혀진 사실이 매우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원자력 발전소는 환경문제 이상으로 건강문제를 제기하였다. 방사선에 피폭된 노동자들은 기형아를 출산하였고, 그밖의 수많은 영향들은(은폐되어) 아무도 모르고 있다.

자본주의적 노동은 고용주(또는 노동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생산과정, 생산자 개인, 생산자 집단을 장악함으로써 모든 노동과정을 통제한다. 그들은 노동과정을 더욱 세분화하고, 분업이라는 명목으로 위계질서화하며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해 알거나 검토하고 계획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한다(하지만 이윤창출을 위해서는 창조성의 명분아래 수백 수천 개의 아이디어를 공짜로 전용한다). 전체주의와 관료주의는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뿌리 깊은 것이다. 이러한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은 질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며, 피로와 스트레스를 항상 지고 다니게 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신경영 전략과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절대적으로 위협하면서 동시에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엄청나게 증대시킨다. 신경영전략과 구조조정 속에서 해고는 일상적인 것이 된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임금을 깎이거나 동결당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한 보고서2)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이 신경영 전략 도입후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필자는 이 글에서 자본의 신경영 전략이 노동강도를 강화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파괴함으로써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3), 아시아자동차는 신설라인의 작업속도를 증가시키거나 인원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노동강도를 강화시켰으며 비용감소를 목적으로 정규직을 축소하고 하청 노동자를 고용함에 따라 작업장의 위험도를 훨씬 증가시켰다.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소하리, 아산공장), 아시아자동차의 년도별 총재해발생률을 보면, 대우는 93년 6.11, 94년 6.41로 증가하였고, 기아의 소하리공장은 93년 3.5, 94년 5.1, 95년 6.52, 아산공장은 94년 2.92, 95년 3.68, 아시아자동차는 93년 1.6, 94년 2.24, 95년 2.3, 96년 3.03으로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자본주의적 노동관계는 노동자들의 삶을 항상 불안정하게 하고 노동자들 간에 경쟁을 유발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을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자본에 의해 육성된 보건의료 전문인들과 행정관료들에게 질병이나 사고는 결코 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상구나 황수관의 관점으로 보면 질병이란 개인의 습관이나 의식주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다. 그들은 왜 택시노동자들이 십중팔구는 만성적인 요통이나 위장병으로 고통 받는지 알지 못한다.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 노동자들이 제 몸을 갉아먹으면서도 왜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데 사회적인 관계가, 자본주의적 착취가 왜 그토록 중요한 관건으로 등장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생물학적이고 개인적인 행위조차도 구체적인 사회관계속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외면한다.


보건의료에서 보건의료 전문가들, 행정관료들은 노동자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자본주의적 착취관계로 인해 죽어가고 질병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그 구조를 더욱더 강화하는데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보건당국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건강에 대한 개인적 습관의 중요성을 캠페인하고, 그 개인적 습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기만한다. 계급투쟁에 의해 산업재해가 인정되자마자 그들은 작업장에서 발생한 질병과 작업장 바깥에서 발생한 질병이 서로 무관하다고 가르친다. 산업의학의 탄생이란 것도 늘 이런 식이다. 산업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종 고용주의 이익을 옹호하고 작업현장에서 발생한 재해의 초점을 흐리게 하거나 은폐시키는데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작업장 안팎의 구별은 곧 노동자와 시민(국민)의 구별을 낳고 노동자의 건강권과 국민의 건강권이 서로 다른 경계에 있는 것처럼 우리를 혼돈시킨다.


자본주의적 보건의료와 노동자 건강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는 노동자의 노동능력을 재생산하는 동시에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재생산한다. 과학에 중립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가지 짚고 넘어 갈 것은 그러한 관점에서 의료가 상품화되어 있기 때문에, 혹은 의료가 가치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를 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모든 국가에서 의료가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몇몇 나라에서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의료는 국유화될 수도 있고, 가치를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료를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의료가 자본의 영향하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국영의료 서비스제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주목할 만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성과지만 그 제도를 사회주의적 제도 내지 기구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일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국민)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영의료제도, 무상의료제도를 주장하고 또한 그것을 위해 투쟁한다고 해서 언제나 자본주의적 계급관계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의료는 상품이면서 이윤획득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된지 오래다. 국가와 보건당국은 노동력의 재생산조차 개개인의 능력으로 미루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기조와 경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9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서 보건의료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고 그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이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90년대는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국제경쟁력 강화’의 시대다. 특히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러한 담론과 기조가 한국사회에서 드러내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1) 보건의료 분야에 있어 재벌(독점자본)의 침투와 병원의 대형화

현대, 대우, 삼성 등 재계의 선두그룹들은 정부의 대대적인 지지와 지원 아래 병원사업에 진출하였고 병원대형화의 붐을 일으켰다. 이들의 영향이란 한국사회 보건의료 지형을 거의 바꿔 놓다시피 할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거의 모든 대학의 병원들이 이 대오에 휩쓸렸다. 막대한 돈을 끌어다 여기 저기 병원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보건에 이바지하고 대학병원답게 의학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오히려 ‘질 높은 의료와 환자의 만족 증대’를 위한 서비스의 강화 또는 고객중심의 병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아래 경영합리화를 도입하였으며 병원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고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에 의한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였다. 의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정부의 주도아래 보건당국이 앞서 깨뜨림으로써 한국사회에서 국민의 건강과 의료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는 종말을 고하였다.

보건의료 분야에 있어서 국제 경쟁력 강화 논리는 기하 급수적인 병상의 확대와 무차별적인 경쟁, 1차 의료기관들의 폐업, 기업경영이론의 도입(경영혁신운동 등), 마케팅 이론의 도입을 가져왔다. 이것들이 90년대 한국사회 보건의료의 참모습이다.


2) 의료보험의 민영화 등 공공성의 축소와 공공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

경쟁력강화 이론은 마침내 공공의료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시립병원 등 지방의 공적인 중소 의료기관들의 파산 및 축소가 그것이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병원들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거나 경영합리화를 도입해 착취를 강화하는 병원들이다. 지자체들은 돈이 되거나 재선에 도움이 되는 의료기관은 살리고 적자상태에 있는 병원은 버리기로 한 듯하다.

의료보험 통합안이 노태우 정권에 의해 거부된 이래 한국사회 의료보험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고 있다. 일부 의료보험 조합은 그 돈으로 돈벌이를 일삼고 있고 또 일부 의료보험조합은 재정악화로 빈사상태에 있으며 그 책임을 지역주민들에게 모두 전가하고 있다. 정권은 한술 더 떠 그나마 이마저도 민영화시키기 위해 온갖 정책을 짜내고 있는 형편이다. 96년부터 제기되고 있는 산재보험 민영화 방안은 전초전에 불과한 극히 작은 예다.

공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여야할 1차 지역의료기관은 김영삼 정권과 보건당국하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영리화되거나 양적으로 몰락하는 추세에 있다.

90년대 들어 보건의료의 공적부분은 갈수록 축소되고 사적부분은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강화되어 공적으로 보장되는 노동자(국민)의 건강(권)이란 찾아보기 힘든 말이 되었다. 건강과 의료의 시장지배는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킨다. 보건의료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건강권을 박탈하고 특히 노동자에 대한 ‘배제와 불평등’을 구조화-재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은 사회적으로 점점 악화되고 있다.


기본권으로서 (노동자)건강권에 대하여 : 방향과 문제들

먼저 지적할 문제가 있다.

노동자의 건강권과 국민의 건강권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대한 미신이다. 이 미신이 살아 숨쉬게 된 데에는 우리의 책임도 적지 않다.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문제를 바라보고 질문하고 대답하는데 있어 곧잘 산업재해나 직업병으로 한정지어 왔다. 대안이란 것도 언제나 작업장의 안전문제나 산업안전과 관련된 법률이나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였지만 대안은 산업안전 보건(법)이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이 작업장 안팎을 구분했듯이 얼마간은 그 테두리에서 우리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간의 연구와 실천으로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심각성을 대중적으로 제고시키긴 했지만 그것뿐이다. 노동자들은 산재는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면서도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것, 기본권으로서의 건강권은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산업재해는 자본주의 제도에서 노동자 건강문제를 고발하는 주요한 장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러한 문제인식은 그동안 진보적인 보건의료 진영의 계획과 실천 역시, 노동자의 권리를 시민(국민)의 권리와 구별하는 자본의 설계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어쩌면 산업의의 출현이 진보적인 측면도 있지만, 작업장 안과 밖을 구분지으려는 자본의 새로운 시도일지 모른다.

노동자들의 건강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인 문제였다. 자본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국가는 사회적인 노동력 - 노동자의 건강 - 을 재생산하고 유지하고 회복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재생산 문제를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하기에 이 사회는 너무도 복잡하고 비대해졌다. 게다가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질병과 사고의 원인이 사회적 관계, 특히 자본-임노동 관계와 무관하지 않은 바에야 이것들을 전적으로 개인이 떠맡아야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다. 노동자들은 이를 용납해서는 안되고, 개인적으로 해결하라는 논리와 제도에 반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건강권은 시민들에게 기본권으로 되어 있다. 다만 한국 사회만이 그렇지 못할 뿐이다.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직업병을 넘어서 기본권으로서 공공의 건강권과 보건의료를 요구해야 한다. 어떤 계급 계층들보다 앞서서 건강권 쟁취를 위해 싸워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건강권이란 공기처럼 아무런 배제나 불평등 없이, 그가 부자이건 빈자이건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고 평등해야만 하는 기본적이고 자연스런 권리이다. 노동자들은 보건의료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만들고 개입해야 한다. 약탈당한 보건의료와 사회적 임금을 되찾아야 한다.


1) 보건의료를 포함한 사회복지 확대투쟁은 가치가 있다

사회복지는 노동자(국민)의 사회적 임금부분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투쟁은 약탈당한 임금을 되찾아오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그 동안 봉쇄되고 배제됐던 기본권을 되찾아오는 민주주의 투쟁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투쟁은 장차 진보적인 사회적 관계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 크고 튼튼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사회복지 확대투쟁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현실(의 민주주의 투쟁)의 고려없이 자본에 대한 투쟁을 강요하고, 자본에 대한 분석과 철저한 비판없이 제도개선을 주장하는 것이 서로 대립할 뿐이다. 사회복지의 확대가 노동자들을 체제내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현 사회를 뛰어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4)


2) 노동자 건강권에 있어서 의료의 공적인 성격을 강제해야 한다

의료가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상업화된 현실이지만 더이상 사적으로 무분별하게 경쟁하고 재벌에 의해 독점화되는 경향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는 건강권 투쟁에서 앞으로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건강과 의료가 기본권이라는 인식하에 국가가 보건의료의 전부분을 책임지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제공하는 보건의료의 영역과 재원을 확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공적인 성격을 강화한다는 것이나 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의료에 저당잡혀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을 위해 국가가 보건의료에 대한 투자를 늘이고 공적인 의료를 확대 강화하고 재벌의 의료 독점화와 상업화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 적어도 1차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늘이고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이 1/3이상 공공의 성격을 갖도록 만드는 것, 건강권이 아니라 오히려 생존권을 위해 산재보험 민영화를 추구하는 대신 근로복지 공단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것, 산재와 직업병의 인정범위를 더욱 확대하고 노동자의 완전한 재활과 치료를 전적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보건의료 기관에서 실시토록 하는 것들을 말한다.

이런 일들은 노동자(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당장 시급하게 주장하고 투쟁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작업장 안팎으로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 재생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국영의료제도나 무상의료제도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조합활동을 잘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요구를 갖고 투쟁해야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을 비롯해 진보적인 모든 민중운동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선두에 서서 싸울 때가 되었다.


19세기의 한 이태리 민요를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사회질서를 바꾸고 싶다,

우리는 의미없는 노동에 진절머리가 난다,

우리는 인생과 건강, 태양, 그리고 꽃들을 즐기고 싶다.

우리는 여덟 시간은 일하고, 여덟 시간은 쉬고, 그리고

여덟 시간은 삶을 살고, 기쁨을 누리고, 그리고 꿈꾸고 싶다.


한/노/정/연


1)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넘어 소비의 부분 그리고 그외의 사회관계 역시 노동자의 건강과 질병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자본주의적인 인간관계, 환경, 식생활들이 노동자들을 질병에 노출시킨다. 하지만 종종 (부르주아에 의해 양성된) 전문가들은 인간관계, 환경, 식생활, 작업장문제만을 제기한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는 무시된다. 우리는 이 절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 노동과정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2) ꡔ자본의 신경영 전략과 산업보건ꡕ, 1997, 손미아, 민의련 산업보건 세미나 자료. 이 글의 필자가 연구대상으로 삼은 사업장은 기아자동차(소아리, 아산)와 대우자동차, 아시아자동차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자본의 합리화 과정의 일환인 신경영 전략이 노동자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업장의 구체적인 분석과 조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3)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와 대우자동차 노동자의 노동시간 비교 (단위:시간), 같은 글 13쪽

3)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와 대우자동차 노동자의 노동시간 비교 (단위:시간), 같은 글 13쪽

                                            92     93     94     95

                                            92     93     94     95

전체 노동자          주 노동시간                          48.7   49.1

전체 노동자          주 노동시간                          48.7   49.1

전체 생산직 노동자   주 노동시간                          51.4   51.4

전체 생산직 노동자   주 노동시간                          51.4   51.4

대우자동차 조립라인  야간 작업시간         17.5   35.6   36.3   36.9

대우자동차 조립라인  야간 작업시간         17.5   35.6   36.3   36.9

상동                 주 노동시간           52.4   54.9   55.3   56.3


4) 우리나라 사회복지 수준은 아시아에서조차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복지에 지출하는 돈은 GNP 대비 1% 수준이다. 이는 선진국에 비교하면 1/20 수준이고 우리보다 못하다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교해도 1/2~1/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의료의 공적인 성격을 기대나 할 수 있을 것인가?


1997-09-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