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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끓는 저항의 지리산 3
 산과 사람

현장에서 미래를  제124호
재곤이

피 끓는 저항의 지리산 3

재곤이


산은 거듭 갈수록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아름답다’는 말은 지겨운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보이는 곳마다, 가는 걸음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우리는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칠선봉입니다.
일곱개의 암봉이 각각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있는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모여서 노니는 것 같다 하여 칠선봉이라 하였는데 이곳의 아름다움은 구름이 산릉을 넘어가거나 안개가 끼어 암봉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나타날 때 극치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제 천왕봉이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인다고 다 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아직도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야만 닿을 수 있으니까요.
멀리 보이듯이 각기의 깎아지른 봉우리를 넘고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천왕봉은 의연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기엔 평범한 길이지만 직접 가서보면 대단한 비탈길이었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절경도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중간 대오와 자주 멀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지체하다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대오를 따라 붙다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산악회를 따라 오기 싫었던 것도 이런 연유였었는데 오늘 그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습니다.
혼자 오는 산행은 일단 비용 면에서 대단한 지출이 따릅니다. 또한 모르는 길이기 때문에 자칫 산행을 놓칠 수 있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구요. 일장일단이 있지만 혼자 오는 것과 산악회를 따라오는 것 모두 제각각의 재미는 분명 존재합니다. 우리는 삼신봉과 연하봉을 넘어 장터목대피소로 가고 있습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온다고 대부분 아침을 굶고 나왔을 터입니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아침 대용으로 김밥을 한통씩 나눠주더군요. 그런데 나는 아침을 거의 먹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그 김밥을 점심 때 먹으려고 배낭에 넣어왔는데 힘든 산행을 하다 보니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이래서 초보들은 경험자들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떡하든 장터목까지 가야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집념으로 힘을 내어 봅니다.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삼신봉과 연하봉을 넘어야 합니다. 삼신봉이 1,284m이고, 연하봉이 1,667m라고 합니다.
장난이 아닌 길이 앞에 놓여 있군요. 그나마 아름다움까지 볼 수 없었다면 낙오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때 나로 인해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마음 속 다짐을 했건만 스스로 낙오라는 말이 불현듯 솟아나는 것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힘이 드는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나온 웃음인 것 같습니다.
삼신봉을 지나 연하봉으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주목의 향연이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죽은 고사목과 살아있는 나무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주목의 향연은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암괴석이 군데군데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기도 합니다.
반드시 놓일 자리에 놓여서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저런 풍경이 참으로 성스럽기만 합니다.
고사목은 푸른 나무들 속에 있어도 아름답지만 저렇게 홀로 서 있어도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의연하는 것, 당당하다는 것.
연하봉으로 오르는 길에 놓여진 계단입니다. 이래저래 운치와 감동이 곁들여져 아름다운 길이랍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문득 다시금 빨치산이 떠오릅니다. 저리도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처절한 투쟁을 앞둔 빨치산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요?

지리산은 수많은 골짜기들을 거느리고 있어 한번 깊숙히 들어가면 찾기가 불가능한 산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천혜의 산세를 이용하여 빨치산들은 각각의 지형에 맞는 전투를 치렀을 것입니다. 때문에 골골이 가슴 아픈 처절한 전투가 수없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피의 골짜기라 불리우는 대성골 전투, 지리산 십경 중의 하나이자 빨치산 최대의 격전지였던 피의 능선 벽소령. 벽소령에서 삼각고지를 거쳐 명선봉 일원을 일러 피의 능선이라 한답니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는 것이죠. 또한 빨치산의 주무대였던 빗점골.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이곳을 무대로 하여 사살 당하기 전까지 활약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빗점골은 이현상이 평당원으로 강등된 채 1953년 9월18일,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소속 경찰 매복조에 걸려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한데 지금은 이러한 현장을 반공의 현장으로 선전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또한 여순항쟁의 주동자 지창수가 생포된 곳이자 토벌대의 매복조가 많이 이용하기도 한 토끼봉 능선. 한번은 토벌대가 빨치산의 습격을 받아 엄청난 타격을 입자 토끼봉 아래에 있던 애꿎은 칠불사가 빨치산의 근거지라는 명목으로 토벌대에 의해 몽땅 태워져버린 사실이 기록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불과 60여 년 전에 일어났던 피의 항쟁 현장이 지금은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붉은 피를 고스란히 받아 흡수한 땅은 처연한데 우리는 저 아름다움에 환호성으로만 답하고 있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고 처연함도 느낄수 없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긴장감을 잃은 것 때문이겠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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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2 23:28:35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4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