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식 위원장을 찾아서 |
현장에서 미래를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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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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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 !’ 현대자동차노동조합
김광식 위원장을 찾아서
현대자동차노조 김광식 위원장을 찾아서
곽 탁 성 / 정세분석실장
“현대자동차노동조합 제7대 위원장 선거 결과 ― 김광식 후보
당선!”
전체 민주노조운동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해 왔고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사업장 수준에서 주도적으로
실험해 왔던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이하 현자) 임원선거에서
현자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이하 민투위)에서 배출된 김광식
후보진영이 연임을 자신하며 민투위에서 분리되어 출마하였던
정갑득 전위원장 진영을 누르고 당선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자의 어떠한 계급현실이 전국적 명망성을 갖고 있던 정갑득
전위원장을 낙선시키고 거의 무명에 가까운 김광식 위원장을
당선시켰을까?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
‘현자연대투쟁위원회’(현연투)를 거치면서 민투위 3기에
이르러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늘 처음처럼 ―
현장에서 미래를’로 분화되고 있는 현자 선진노동자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인가? 그들은 이제까지의 활동과 이번 선거과정에서
어떠한 내용과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대중과 결합하려
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어떠한 측면과
가능성의 표현인가?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서 대공장 노동운동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우리가 제7대 임원선거를
취재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었다.
그런데 9월 25일(목)로 예정된 인터뷰를 위해 노동조합을
방문하려던 필자는 뜻밖의 ‘저항’에 부딪혔다. 정문에서
회사측의 통제에 부딪혔던 것이다. 규정이 바뀌어서 이제는
노동조합에 방문할 사람들의 명단이 미리 정문에 접수되어야
한다며 정문출입처에서는 필자에게 노동조합 방문출입증을
요구하였다. 할 수 없이 노동조합과 연락을 해서 정문을 통과한
뒤 노동조합 사무실로 찾아갔다. 박유기 정책기획실장이 이 날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는 정문에서 노동조합에 확인 전화만 하면 출입이
가능했는데 요새 바뀐 것 같습니다. 최근 이른바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이 전개되면서 이제까지 각종의 관행으로
처리해오던 사안에 대해 그야말로 ‘법대로’를 요구하면서
현장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대중들이 느끼고 있는 ‘긴장’이 필자에게도
다가왔다. 입수한 선거홍보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금 현장은?
노동법개정투쟁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면서 회사측은 ‘기초질서
지키기’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대대적으로 현장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시간 지키기, 근무지 이탈금지, 직장예절 지키기,
위기의식 고취 교육, 음주 후 근무단속 … ’ 등등. 이른바
‘현장 군기잡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대응은 이렇다 할 게 없었고, 관리자들은
카메라까지 동원해서 사진을 찍고, 여기서 적발된 사람은
관리자에게 불려가 죄인(?) 취급을 받는 등, 노동현장을 87년
이전의 현장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케이블 TV와
사보를 통해 조기식사, 조기퇴근하는 조합원들을 인격적으로
매도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른바 ‘WIN 21’ 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회사측의 작전을
살펴보면 회사측의 노동통제 계획은 더욱더 치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창하고 그럴 듯한 장미빛 비전을 제시하지만
사실은 현장에 대한 통제를 확실히 하여 생산에 대한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이 회사측의 생각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 김광식 후보선거대책본부,
제2호, 97.8.22.
정문을 통과한 뒤에도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7대
집행부 상집 인선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이재인
김광식 후보선거대책본부장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임원회의가 몇 번씩 열리고 많은 활동가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논의를 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위원장 당선자와
장시간의 논의시간을 당장 확보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필자는 직제개편위원회실을 들르는 여러 활동가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현장과 선진노동자의 분위기를 스케치한 뒤
먼저 이재인 김광식 후보선거대책본부장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선거의 승리 ― 정세와 조직의 산물
날짜 : 1997년 9월 25일(목)
장소 : 노동조합 직제개편위원회실
시간 : 오후 2시~3시 30분
현자 ‘현실’에 걸맞는 지도부의 요구
- 이번 선거를 보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 등과 같이 정치성, 상징성이 강한
슬로건이 제출되었습니다. 먼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 이재인 동지께서 갖고 계신 생각은
무엇입니까?
이재인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슬로건화되어 있지만
정론화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현재의 운동이
10살 정도 먹었음에도 뭔가 전망이 안보이니까 활로를 개척하기
위해 나온 수단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런 방식 자체가
틀렸다고 판단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집행되면서 나타난 문제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결과적으로 보면 저희들이
선거에서 이기게 된 요인이기도 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정치세력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과 함께
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사후 연속성이 보장되고 조직력이
훼손되어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집행의 안정성이
도모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을 위해 현실집행에서
회사와의 크고 작은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안정적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핵심적인 문제는 이제는 단임투마저 그러한
범주에 포괄된다는 것이죠. 그 결과 조합원의 요구가 묵살되고
― 완전히 묵살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 활동가들이 봤을 때에는
― 조합원의 요구를 반영한 집행이 되지 않고 뭔가 정치적으로
욕심이 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게 되죠.
두 번째 문제는 지역과 전국사업에 대한 패권성입니다. 그동안
현자에서는 민주노총 건설기금과 같은 사업을 튼튼하게
해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를 놓고 자동차는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이것이 국민과 함께 하는 슬로건 때문이라고
도식화시키면서 “우리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노동운동을 혁신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치세력화 문제를 제기하는데 지역에서는 이것이 자기들의
전유물처럼 다른 사람들이 끼여들 여지를 주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판단합니다.
- 현장활동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표현되는
양식은 어떠했습니까? 아까 마찰을 피하려 했다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대중사업이라든가 일상활동에서
나타난 특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이재인
언뜻 생각나는 게 없지만 노동법개정투쟁 마무리 시기에 나타난
태도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평소 노동조합의 공식적
차원에서는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다가
노동법개정투쟁시기에는 정갑득 위원장이 고수부지 집회에서
갑자기 “우리 현대자동차가 대우자동차에 질 수 있습니까”
하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산별노조를 내걸고 정치세력화를 해야한다는 이야기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내걸고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용상 차이가 있다는 거죠.
- 이번 선거하면서 처음부터 승리를 예감했는지 아니면
선거운동을 하면서 ‘어떤’ 예감이 들었는지 궁금한데요. 또
선거운동하면서 발견된 조합원 대중들의 특징, 상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처음부터 승리를 예상했습니까?
이재인
솔직히 얘기해서 처음부터 이긴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내건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추스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희들에게는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식이든지 참여를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최소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지더라도 압도적인 차이가 아닌 근소한 차이, 이기면 더욱 좋다.
어쨌든 참여를 하자. 이 정도의 목표를 내걸고 출발을 했습니다.
내부를 추스리기 위해서.
정갑득 후보진영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근거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민투위에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내걸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는
국민과 함께가 우리의 유일한 활로라는 선언을 하죠. 모양새가
참 안좋았어요.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당시 제 명의로 유인물을
냈습니다. 정갑득 위원장이 초대 의장까지 역임했고 무엇보다도
조직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 자기 생명줄처럼 여겨야할
현장조직을 입장차이가 좀 있다고 어느 순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간 것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는 공개서한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내부의 혼란이 일거에 정리가 됩니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사람들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대중적으로 봐도 ‘아!
정위원장 뭔가 욕심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죠. 결국 선거
전초작업이 선거승리에 기여를 한 셈이죠.
선거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회사에서 ‘WIN 21’을 발표하고,
현장통제를 강화하면서 고용불안을 유포하는 등
산업구조조정에서 나타나는 고용불안의 위기가 광범위하게
확대되면서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만의 요구가 아니라 이번
집행부는 강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힘을 실을 수 있는 집행부는 누구이겠는가,
‘김광식 집행부에게 바라는 한마디’와 같은 현장모니터를
통해서 봐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결과를 놓고 봐도 10년만에 장기근속자가 처음으로 저희
민투위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냈고, 2차 투표에서는 392명이
있는 마북리 연구소 ― 여기에는 저희 선거운동원이 1명도
없었습니다 ― 를 제외하고 전 지부에서 저희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부수적인 점을 잠깐 말씀드리면 김광식이가
누군지 몰라도 민투위를 믿기 때문에 찍었다는 사람들이 왕왕 ―
대단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 있었고.
- 선거운동 방식 중에 현장을 방문하는 순회투쟁이 있던데,
현장순회투쟁에서 조합원에게서 나온 요구는 어떠한 내용이
있었습니까?
이재인
제일 먼저 민투위는 알겠다. 거기는 옛날부터 징역 많이 가고
해고 많이 되는 유명한 집단인데 도대체 김광식이가 누구냐, 왜
잘 모르는 사람을 냈느냐, 사람도 많을 텐데 하는 요구에
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알리기 작업을 열심히 했죠. 그 성과로
후보가 어느 정도 알려지니까 그 다음에는 “집행부를 장악하면
3대 집행부처럼 확 박고 가버리는 것 아니냐 이런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도 많이 나왔고, 역으로 “대충대충 하면
안된다. 확실히 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 선거운동의 경험이 상당히 많을 텐데 선거운동본부 내부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이제까지의 선거운동 경험과 비교해서
말씀해 주시죠.
이재인
과거의 어느 때보다 결의가 높았습니다. 눈빛도 달랐고.
선거운동원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뛰었거든요. 화려한 멤버로
구성된 저쪽 멤버에 대한 배신감도 있었고,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희 선거운동본부에서도 선거에는
선거의 논리가 있다. 많이 뛰는 쪽이 이긴다.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뛰려면 새로운 각오와 결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결의금도 예년보다 훨씬 많이 걷혔고, 돈 내는데서부터 발로
뛰는 것까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뛰었던 선거였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저희 지부조합원들이 7,800명입니다. 그곳까지
갈려면 새벽 1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새벽 1시에 출발하면 새벽
6시에 그곳에 도착합니다. 도착해서 지부 운동원들과 함께
유인물 뿌리면서 선거운동하고 정리해 준 뒤에 울산에 다시
도착합니다. 도착하면 저녁 5~6시. 그 시간 동안 아예 잠을
안잔다는 얘기죠. 임원후보들의 경우 하루에 3시간씩 잤습니다.
아무래도 심리적 부담이 더 큰 위치에 있는 동지들이니까요.
운동과정 중에 저희 수석부위원장 후보가 잠을 자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반은 죽었었죠.
그리고 저희들의 조직력이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50여명의
활동가들이 매일 아침 정문에서 ‘기호2번 김광식, 현장에서
미래를’이라는 구호로 피켓팅을 하고, 홍보물을
배포하였습니다. 또한 300여명의 활동가들은 식당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홍보물을 배포를 하면서 중․석식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를 통해 타조직에 비해 월등한 우리의 조직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갑득 후보진영에서도 선거전 중반부터
중․석식투쟁에 참여하는 인원을 늘려나갔고, 마지막에는
저희와 비슷한 규모가 되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와 달리 정갑득 후보진영은 직접부서 인원이 적었기 때문에
야간조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투쟁을 하지 못했습니다.
현자의 현장조직운동
- 이번 선거와 현자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서
반드시 짚어야 하는 주제 중 하나가 민투위 일 것입니다. 3기에
접어든 민투위의 주된 활동 내용과 성과는 어떠했고, 어떠한
과제가 제기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재인
민투위 3기까지의 활동을 얘기한다면 드릴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민투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데
이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3기까지 오면서 조직의
활동방향의 문제는 아직까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있습니다만 이걸 밝히기는 곤란하고......
민투위 탄생배경은 5대 임원선거에서 패배하면서부터입니다.
선거에 진 뒤에 저희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단순히
저희들만의 충격이 아니라 현장에서 노동통제가 강화되니까
이영복 집행부하에서는 손발이 묶인 신세가 되었죠. 이렇게 맥을
못추는 상태에서 뭐하나 해보자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잘 안돼서
결국 ‘노동자의 길’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뜻을 알릴
수 있는 언론매체가 필요했던 거죠. ‘노동자의 길’ 발행 이후
1년이 경과된 뒤에 현장조직 건설논의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논의 6개월만에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했던 날 양열사가 분신을
한 거죠. 그래서 마지막 회의는 하지 못하고 싸움으로 가면서
파업에 돌입하고 조직건설을 준비했던 다수는 다시 구속되고
이러면서 조직건설이 생각보다는 뒤로 늘어졌죠. 이것을 받아서
현장에 남아있던 동료들이 민투위라는 조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전투적인 기풍만으로는 안되고, 형식적으로는
산별노조라든가 정치세력화라든가 하는 우리를 보호하는 큰 틀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지만 현실로 오면 현장문제가
이런데 방어도 안하고 뭘 하려고 하는가 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양열사 싸움터지면
파업하고 징역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업을 벌이지만
지지부진하고, 징역갔던 사람들이 다시 오면 현장문제가 이런데
다시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나가면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그러다 또다른 사안이 터지면 이같은 사안이
반복되는, 심하게 표현하면 ‘빈곤의 악순환’이었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색이 조직건설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민투위가 건설되고 초대의장을 정갑득
위원장이 맡은 후 2기, 3기가 지나면서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쪽에서는 현장조직은 집행부를 보좌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현장조직의 역할을 규정하고 들어왔어요. 뭐
특별히 다른 일이 있겠느냐 집행부 보좌하고 정치세력화
논의하자는 견해가 있었고 ― 거기에는 일면 타당하기도 하고 안
그런 면도 있었는데 ― 다른 쪽에서는 무슨 소리냐 어떤 일을
하든 우리먼저 단결하고 봐야지, 우리 먼저 단결하고 다른 일을
하자. 이 견해가 늘 대립해 왔는데 결국은 모아내지 못했죠.
민투위라는 조직은 현장에서, 조합활동의 영역에서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도 같이할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고 모인 조직이기
때문에 정치세력화의 경로라든가 하는 문제를 들고 나오면
논의가 모아지기 참 어렵죠.
- 현자민주노조운동을 보면 여러 개의 현장조직이 있어서 선거
때마다 자신의 후보를 내면서 각축을 벌여왔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이제는 이념적 지향성, 활동방식, 대중적 기반에서도
분화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던데 이 점에 대해서 정리해
주시죠.
이재인
하나는 어용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얘기할 필요가
없고 나머지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범 전위원장이
이끄는 현자노동자신문(현노신)같은 경우 선거전에 들어가기
전에 유인물을 통해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사실
우리가 먼저 제출했다. 2대 집행부 때 이미 우리는 사회발전적
노동운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었다. 그런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너희들이 제시하면 어떻게 하느냐, 우리가 사실
원조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단편적인 예이지만 색깔로 보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진영과 같은 색깔이죠. 그렇지만
역사와 전통은 다르죠. 저희 같은 경우 나름대로 변화와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고 실제 많은 변화를 했지만 시종일관
하나의 색깔이죠. 조합원이 보면 강성, 전체 운동판에서 보면
좌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죠.
- 이후 현장조직운동의 전망과 방향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재인
지금 모색되어지고 있기도 한데 ‘국민과 함께’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민주적 활동을 했던 사람 중
운동에서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과거의 역사, 색깔의
문제를 묻지 않고 하나의 틀로 뭉치자는 거죠.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마는 제안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민투위 깨지기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이고 또 민투위에서 분리되어 나간 정갑득 후보진영이
현노신과 통합논의가 있다가 선거와 맞물리면서 얘기가 잘 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제안을 할 생각이 있었다면 왜
민투위를 깨고 거기와 통합하려고 했는지 논리적 어폐가 있는
거죠. 그래서 전적으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입니다만
논의는 적극적으로 할 생각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노동법이 바뀌면서 이후 환경이 확실히 바뀔
것입니다. 여기에 적응하려면 내부분란이 커서는 안되죠.
내부분란을 극복하려면 민주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단결해야 하는데, 그 방식이나
경로는 아직까지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 노동운동환경의 변화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칭하는 거죠?
이재인
노동법개정투쟁을 통해서 노동운동이 힘을 키우기도 하고
대안세력으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안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왜소해진 것 아닙니까?
이후에는 노동조합비로 상집임금을 줘야 하는데 이 법률을
전면적으로 무시하기는 그렇고 여기에 적응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이러한 사안들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큰 힘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런 점을 얘기한
거죠.
활동가들의 고민
- 요새 활동가들이 공부를 별로 안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또 새롭게 발굴되는 활동가층도 적어졌다고 하는데 현자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재인
자동차도 큰 범주에서 보면 예외는 아닙니다. 자동차 산업의
특수성, 현자 노동운동의 역사 등에서 나오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저도 역시 그렇고 사실 공부가 게으르죠 인정합니다.
요새 와서 보면 현장활동가들이 과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육성이
안되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텐데 구조조정과 맞물리면서
채용이 안되고 있다는 점 이게 한가지 요인이고, 현대자동차는
있을 만한 직장인데 괜히 찍히는 거 아닌가. 앞서 나갔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저렇게 하면 해고된다. 저렇게 하면
찍힌다.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활동가를 육성할 만한 자기근거를 갖고 있지 못한
거죠. 과거에는 민주노조도 만들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죠.
그런데 이게 잘 안되더라는 겁니다. 그럼 이후의 진로는 뭐냐.
이게 상당히 불투명합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후배 활동가들을
열심히 육성하지 못하게 되죠. 이런 저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원론교육과 일상사안에 대한 토론 등 훈련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재인
저는 한가지만 고집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옹기가
있다고 할 때 밑이 빠지면 아무것도 못하듯이 사상이라는 것은
밑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비어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활동도 기능적 활동이 될 것입니다. 요즈음 여러 가지 기능을
많이 요구받고 있는데 이와 함께 사상학습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활동가들이 자기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죠. 문제는 의욕이 안생기는 것이지 의욕만 있으면 현장에서
활동가를 발굴하는 등 무슨 일이든 다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자기는 바빠도 새로 발굴된 활동가들은 그렇게 바쁘지 않거든요.
활동을 통해서 단련된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거든요. 문제는 자기전망이 없다는
거죠.
- 예전에는 깃발만 들면 모였는데 이제는 전과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의 활동내용과 방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재인
우선 역사부터 봐야 할텐데요. 옛날에는 깃발만 들면 모였는데
그것은 상황을 반영하는 거죠. 관리자들이 따귀 때리고, 밥시간
30분 연장에다가 일방적인 통제,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깃발
들면 모이죠. 요즈음도 바짝 쪼는 상황이라 깃발들면 모이죠.
이런 상황에서 운동하면 운동 참 편하죠. 다시 말해서 여건이
변화할수록 그만큼 집요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준비가 안되어
있던 거죠. 이걸 놓고 예전에는 깃발만 들면 됐는데 이제는 안
되니까 뭔가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생각입니다. 그런 상황을 고민해 보지 않아서 발생한 상황이지,
이 고민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민주노총의 제2기가 내년 2월부터 시작됩니다. 제기되는
과제를 어떻게 잡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현장수준에서의 고민을 말씀해 주시죠.
이재인
노동자의 공식조직은 덩치가 커야죠. 산별노조 하나만 갖고도
안되고 동전의 양면처럼 정치세력화와 함께 가야합니다. 현자,
울산, 전국에 대한 구체적 고민을 못해 봤고 잔가지 수준에서
얘기하면 ‘자기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원칙, 사람, 역사, 활동의 경험을 다
내놓아야 한다는 거죠. 가령 산술적으로 얘기해서 나는 100원을
갖고 있고 저쪽은 50원을 갖고 있는데 이거 합치면 내가
손해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곤란하다는 거죠.
- 현장 활동가들의 상호관계를 말하는 거죠?
이재인
이 관계가 제대로 풀려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내부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이번 집행부에 대해서, 확실히
해라는 조합원들도 있고 심지어는 3개월 짜리니 6개월 짜리니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과제도 많고 어려운 시기인데
현장활동가들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나 원칙에 대해서 정리된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이재인
기본적으로 조합원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급적이면 3대 집행부처럼 머리 박고 가는 ― 그때는 그만한
상황이 있었지만 ― 그러한 모습을 재현하지는 않겠다는 거죠.
가급적이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산업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사측의 공세가 막 들어오고 정신없이 칠려고 하는
상태에서 무방비로 당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단위사업장과
총자본의 대결이 된다고 해도 피할 수는 없는 거죠. 사측의
공세가 무단적이고 필연적으로 싸워야 한다면 저는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대전제 속에서 남는 문제는 가급적이면
사소한 문제는 남겨 놓고 통크게 뭉쳐야 하는 것이고 우리 단위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연대사업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또
과거에 우리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해결사 노릇을 했다면 이제는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는 활동의 전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 5대 이영복 집행부 시기에는 “앞이 깜깜합니다”하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대중동력과 활동가들의 활동력이 많이
복원된 것 같은데 주요한 요인과 특징이 있다면?
이재인
복합적으로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년여에 걸친 활동과정의
축적이 있었고 양열사 싸움은 그 자체로도 큰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주위에서도 현장의 침체를 걱정하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 어쨌든 집행부로부터 자유로웠으니까 ―
해고자복직 싸움과 현장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이런 저런
요인들이 현장동력을 복원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먼저 활동했던 사람들의 고민과
영향이 컸습니다. 지금 저쪽 ‘국민과 함께’로 간 사람들도 그
때는 함께 했었죠.
세 번의 분화, 고통과 극복
- 현자 민주노조운동을 보면 임원선거를 계기로 여러 차례에
걸친 분화과정이 있었습니다. 제2대 임원선거에서는 이상범과
김강희, 5대 임원선거에서는 정갑득과 김강희, 7대
임원선거에서는 김광식과 정갑득 등 세 차례의 계기가 있었는데
각각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리고 이번 분화의 특징과
특별한 자리매김이 있다면?
이재인
2대 때는 정확하게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지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갈라졌다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많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운동 초창기였고 막 출발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저 역시 그랬고 많은 사람들 역시 다소는
경직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이 확연했죠.
그러니까 이것은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었죠. 그 뒤에 김강희 씨와
정갑득 위원장이 분화되었던 것은 사실 충격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이긴 한데 그것이 사실상 운동의 진로를
둘러싼 대립의 한 예였다고 볼 수 있죠. 당시 김강희 씨
진영에서 진보라는 얘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제 전투성 갖고는
안된다. 진보성은 전투성과 합리성을 포괄한 개념이다. 그 때
‘느낌’은 이번과 거의 같은 ‘느낌’입니다. 그 핵심은
기회주의적이라는 거죠. 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좀더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봅니다. 김강희 씨 같은 경우도 4대 위원장
선거시에 후보문제를 논의할 때 ― 당시 윤성근 동지가 위원장
후보로 내정됐습니다만 ― 조직적 결정에 따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각자 출마했죠. 이번도
마찬가지로 총회결정에 따를 수 없다는 겁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간에.
- 이제까지 나타난 분화과정이 단순반복이 아니라 예전과 차이가
있는 분화라고 얘기하면서도 또한번 모여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뜻이죠?
이재인
그 당시와 현재의 충격과 차이의 정도는 비교할 바가 아니죠.
김강희 씨가 분화되었을 경우에는 소수였고 충격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조직적으로 분리되어
나갔고 개인적으로도 같이 징역생활을 경험하는 등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 충격은 비교할 성질이 아니죠. 왜
분화됐는지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이상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가 없지만, 그 동안의 경험과 사업양식을 보면
거기에는 패권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다분히 수단적인, 째지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국민과 함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부에
있긴 있지만 ‘국민과 함께’를 전면적으로 반대한 것이
아니거든요. 모든 민투위 회원들이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좀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헌구 위원장이 수석부위원장으로
나왔는데 그분은 가만히 있어도, 그 사람의 개별 능력여부를
떠나, 민투위 내부에서 70% 이상의 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반영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쪽 진영이에요.
그런걸 보면 굳이 정갑득 위원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선거 들어가기 직전, 제가 공식적으로 그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헌구 전위원장 같으면 민투위 내부를 수습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니 생각을 좀 달리 했으면 좋겠다. 주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그런 제안을 했습니다. 민투위가 깨지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욕을 먹더라도 이헌구 위원장을
세우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앞장서겠다는 얘기까지 하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긴 시간 논의에
임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3대 집행부(위원장 이헌구)시절 사무국장을 지내고 성과분배투쟁
당시 위원장 직무대행업무를 수행하다 구속되었던 이재인 동지는
양봉수 열사 분신투쟁 당시 두 번째로 구속되어 석방된 이후
민투위 3기 의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인터뷰를 통해
현장조직과 선거운동 당시의 여러 정황을 ― 주변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까지 포함해서 ―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에 나온 여러 홍보물을 정리해 주면서 이재인 동지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덧붙였다.
“아까 점심식사 후에 잠깐 얘기가 나왔지만 저희 2공장에서
다른 곳으로 배치전환된 분이 1,200여명쯤 됩니다. 2공장은 다른
곳에 비해서 현장투쟁이 활성화되어 있고 덕분에 맨아워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편인데, 이곳에서 일하다 다른 공장으로
가면 상당히 빡빡하게 느껴지죠. 그만큼 고향생각도(2공장)
나고……. 그분들이 김광식 후보와 민투위를 홍보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공장에서는 김광식 후보를 잘 모르니까,
저 친구 누구냐 하면 우리 공장에서 대의원 활동했었는데
확실하다 이런 식으로 대답해 주신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위원장 당선자를 만나서 인터뷰 시간을 금요일
오후로 확정했다. 이재인 동지에게는 현장과 밀착된 주제를,
위원장 당선자에게는 좀더 거시적인 주제를 갖고 접근해서
전체적인 상(像)을 만들어 볼 계획으로 위원장 당선자에게
개략적인 질문의 내용을 얘기한 뒤 첫날의 취재를
마무리했다.
어려운 시기를 조합원과 함께
날짜 : 1997년 9월 26일(금)
장소 : 노동조합위원장실
시간 : 오후 3시~4시 30분
“ 역대 위원장 중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현장의 목소리에
충실한 위원장이 되겠습니다
”
강화되는 자본의 공세
-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현대자동차민주노조운동(이하 현자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민주노조운동에 끼치는 영향은 달리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큽니다. 이번 현자 선거결과에 대해서
갖는 관심도 이러한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자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와 그 방향을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주요 관심사와 연관지어서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최근
들어 선거시에 조합원 총회시간의 단축을 시도한다든가 ―
8시간에서 4시간 ― UPH(시간당 생산되는 차량수)상승을 둘러싼
현장에서의 갈등이 강화되는 등 이른바 ‘WIN21’이 새롭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현자 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WIN21’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김광식
‘WIN21’은 3년차 계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97년에는
의식의 전환을, 98년에는 행동의 전환을, 99년에는 제도의
전환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직능자격제도와
같은 제도를 통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조합과 대중을
분리시키면서 신노무관리 형태를 전개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신경영전략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해 왔는데 현장에
힘이 없으면 이런 공세를 막아내지 못합니다. 저희들이 말하는
힘이라는 것은 일년 내내 파업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요구를 집약하고 단결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교육, 일상활동을 통해서 모아진 힘을 의미합니다. 이런 힘을
통해서만이 신경영전략에 대처해 나가고 우리 스스로의 자주권을
지켜내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일반적으로 현자의 신경영전략 하면 ‘GT10’으로 알려져
있는데 ‘WIN21’과 ‘GT10’은 어떠한 관계에 있습니까?
김광식
전혀 다른 계획이나 새로운 계획이라기 보다는 ‘GT10’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이 ‘WIN21’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민주노조운동진영에서 신경영전략의 문제가 제기되고 그
대응이 모색된지도 꽤 시간이 지나갔는데 다른 사업장에서
대응과정을 보면서 얻었던 교훈이 있다면?
김광식
현장이 상당히 혼란해진 시기를 틈타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노동조합에 일정한 방침이 있고 그 방침에 따라서
파업으로 몰아나가고 깨지고 다시 모이곤 했었는데 요즈음은
자본이 유도를 하죠. 발목을 잡아서 내려앉히고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 기회를 틈타 새로운 노무관리방식을 통해서
현장을 장악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노조활동방식은 우리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경향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한편, 새로운 노무관리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 전술을 배치하면서 집요하고 끈질기게 물고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현자의 경우 3대 이헌구 집행부의 성과분배투쟁과
대량구속․해고 이후 현장에서의 노동통제가 상당히
강화되었고 5대 이영복 집행부하에서는 현장에서의 민주세력을
중심으로 직제개편에 대한 진단과 대응을 모색해온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습니다. 신경영전략에 대한 현자내부에서의 대응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평가한다면?
김광식
다행스럽게도 저희들은 주요 고비마다 주요한 투쟁이
벌어지면서 회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4․28투쟁, 성과분배투쟁, 양열사 투쟁 등. 이 투쟁을
통해서 대중을 모아내고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 나가면서 우리가
10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 그 교훈은 뭔가,
한순간의 폭발로 이루어지는 싸움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계획을 잡아나가고 회사측과 정부와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노동의 대응, 단결의 확대와 끈기로 단호하며 유연하게
- 선거과정에서는 고용안정특별위원회 설치, 금속대산별 조직화
등을 고용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요한 방법으로
제시하셨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른바 ‘지방자치’(6대 집행부)라
해서 배치전환, 노동강도강화 등에 대해 집행부에서 적극
개입하지 않았고 이로 말미암아 조합원들이 많은 부담과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본원칙과 대응기조에서 좀 더
진전된 내용이 있는지?
김광식
고용문제는 정부와 회사의 계획된 정책에서 나오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것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고용문제를 대정부, 대자본과 대응해서 싸울 수 있도록 우리
내부를 묶으면서, 이것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으로 산별과
정치세력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이 부분은 수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 생존권이 길바닥에 내버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현장의 힘을 강화하고
조직력을 복원해 내면서 대응해 나가는 길밖에는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할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 기아그룹의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기아살리기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 갖고 계신 판단이 있다면?
김광식
사실 깝깝하지요. 현장에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기아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조합원들이 돈을 모은다면 얼마나 모아야
할까 계산을 해 보았더니 25년 동안을 한푼의 임금도 받지 않고
모아야만 기아를 살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더군요. 지금
기아가 이나마 버티는 것은 노동조합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노동자들이 생산을 회피해서 생긴 문제가
아닌 경영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되죠. 대규모의 인원을 잘라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그렇지 않고 어떻게 경영을 치밀하게 이끌어내는가
하는 이런 부분에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삼미특수강의 경우
800여 명을 해고시키고 200여 명의 자동승계문제가 남아있던데
무조건 자르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경영의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을 같이 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참 힘든 문제죠.
- 자동차산업에 대한 노동자적 입장에서의 진단과 자본의 공세에
대한 대응 등 정책적 대응의 문제를 검토하고 계시던데 현재
어느 정도 진전되었습니까?
김광식
과잉생산, 과잉투자로 인한 자동차산업에서의 위기, 이 문제는
경영참여를 통한 노동조합의 통제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것은 개별 단위사업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고 자칫하면
경쟁논리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현재 자동차연맹, 현총련,
민주금속연맹 3자간의 통합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속에서
정책방향이 잡혀야 하고 여기서 논의가 모아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활동가’와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 ‘국민’과 함께 하는
운동
- 이번 선거를 보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등 완성도 높은 구호가 제출되었고 그럴만한 근거도
있던데,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핵심적 특징을 어떻게
정리하고 계십니까?
김광식
저는 국민과 함께든 그 어떤 운동이든 충분히 함께 논의해 보고
같이 해결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기에 저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 대해서 그것이
슬로건 이상의 운동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동조합활동이 보다 확대되어서 국민적 지지와 여론을 업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찬성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현장에 뿌리를 두고 그 밑뿌리 속에서 활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제까지의 선거과정을 보면 민주세력의 분화과정이 몇 차례에
걸쳐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대규모적이고 그 성격도
뚜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민주세력 분화에 대한 이제까지의
역사적 과정에 대해, 그리고 이번 선거에 대해 자리매김을
한다면?
김광식
운동진행 방향에 대해 다소간에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노선상의 차이인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발전적으로 해나가고 조합원의 권익을 지켜내고 보호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세력으로 되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보다 각자의 장단점들을 보완하고 서로
함께 해 나가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과 함께든,
현노신이든 같이 논의하고 모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분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 서로 다른가 하는 의심을 가지셨는데 그런데도 계속 분화가
되어 왔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광식
저는 그분들이 개인적으로 너무 무리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않고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같이 활동하면서 누구의 운동방식이 잘못됐는지 대중
속에서 검증받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나, 물론 그 시기가 어느
정도 걸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진행하면 될 텐데 너무 조급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선거에서의 승리가 강화되는 자본의 공세와 고용불안,
힘있는 조직에 대한 대중적 선택이라고 보는 진단이 많은데
민투위 활동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김광식
조합원들은 두 가지 다입니다. 현장을 지켜주는 강력한 힘을
요구한 반면에 과거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어요. 한번 빵 치고 가버리면 그 혼란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렇다고 ‘국민과 함께’를 다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현장을 생각하면서 ‘국민과 함께’ 등 여러
가지를 채택하도록 바라고 있죠. 단지 그 의지가 꺾이지 않은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을 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장이 엄청나게 시끄러웠잖아요.
소란스럽고, 노무관리가 강화되면서 87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 또 고용문제, 이러한 조건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단위가 어디인가 그것은 민투위밖에 없다. 10년의 역사 속에서
변절하거나 굴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사 속에서 기조를
지켜나갔다는 점, 어려울 때 찾아갈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민투위 조직원들 정말 밤낮으로 열심히
뛰었거든요. 그것을 조합원들은 본 거죠. 설사 10년간 같이 했던
동지들이 나뉘어졌다고 하더라도 저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하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본 거죠. 그러한 분위기에서 저희들이
이번 선거가 승리한 겁니다. 사실 제가 몸담았던 2공장에서야
김광식이 10년 동안 열심히 꿋꿋하게 기었다는 평가를 합니다만,
전공장 차원에서 보면 김광식이 대단하다 이런 얘기는 별로
없었죠. 한마디로 조직을 본 거죠.
- 선거기간 중에 보여준 조합원의 태도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광식
제 이미지가 참신했어요. 강성 과격 이미지가 저희들에게
있는데 강성, 과격이라는 말은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라
노무관리 용어잖아요. 조합활동 열심히 하면 강성, 그렇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면 온건합리, 그 속에서 그런 ― 참신한 ―
분위기를 본 거죠. 그 친구들 깨끗하다는 판단을 갖고
계시더군요.
제가 아산 공장을 가니까, 아산공장이 지부인데 유세를 마치고
조합원들이 전부다 왔더라구요. 그러면서 제 손을 잡고
“아산공장 잊지 말아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주공장을
갔더니 라면박스에 “김광식 후보를 지지합니다”라는 글씨를
써서 들고 계셨습니다. 장기근속자들을 만났을 때 ― 그분들
중에는 호적상의 나이보다 실제 나이가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
“아 2번이 누고? 니가 2번이가? 느그들 하는 거 맞는데 너무
격하게 나가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하시더군요.
사무․일반직의 분위기도 비슷했습니다.
7대 집행부의 과제 - 통합지도력의 구축
- 이번 선거과정에서 통합지도력을 강조하셨는데 여러
활동가층의 결집과 함께 날로 다양해지는 조합원의 이익을
어떻게 모아내는가 하는 문제도 주요한 과제입니다.
IWS(Incentive wage system, 직무수당) 수당조정과정에서의
교훈이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사안이 이후에도 반복될텐데 어떤
원칙하에 이러한 일을 처리하려고 하십니까?
김광식
이번에 일부의 기득권이 저하되었습니다. ‘노동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 새로운 분배기준을 만들었는데 이런
과정에서 5,000~6,000명 조합원의 기득권이 저하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집행과정에서는 누구나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받고
욕을 들어먹는데 그것을 최소화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죠. 그런 과정이 있다면 다소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 사람 열심히 뛰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 6대 집행부가 세 조직의 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해서 한지붕
세 가족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단일진영에서 위원장
당선자가 나왔습니다. 통합을 강조하다보면 절충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이 많을 텐데 다양한 활동가층을 어떻게 묶어나갈
생각이십니까?
김광식
7대 집행부 상집들이 전부 민투위 조직원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민투위에 가입하지 않고 평조합원으로 계시던
분도 있고, 6대 집행부내에서 활동하시던 분도 있고. 물론 상집
구성원을 다양하게 하는 것만이 통합된 지도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행부의 사업기조는 단일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갈 때 노동조합을 사랑하지 않는
조직은 없습니다. 그리고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전임위원장들과도 정책이나 방향을 같이 맞추어 나간다면 그
해결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만 두고 봐야죠.
- 현장조직이 위원장을 배출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번 현자의 경우에도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직을 보고
조합원이 투표했다고 할 정도로 민투위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 집행부를 배출한 뒤에는 집행부와 현장조직이 상호
발전적인 관계로 발전되지 않고 부담스러운 관계가 된다거나
심지어 대상화되는 일도 종종 발견됩니다. 7대 집행부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말씀해 주시죠.
김광식
현장조직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일상영역에 개입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고 그
역할도 중요하지만 활동가를 양성하고 지도자를 키워나가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나가야 하고 또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방향을
잡아나가며 노동조합과 호흡을 맞춰 새로운 정책을 잡아나가는
사업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집행부의
공식적인 일과 민투위의 일은 일정부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조율해 내는가 하는 게 중요하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논의하고 ― 물론 최종적인 판단은
제가 내려야 하지만 ― 과정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죠. 다소
혼란스러운 과정이 있을 것이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가라는 얘기도 나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노총 제2기의 핵심, 통합금속연맹
- 이후의 전망과 관련해서 얘기해 보죠. 늘 처음처럼 이후의
10년을 맞이하겠다고 하셨는데 이제까지의 10년, 유아기라고
이름붙인 87년에서 97년까지의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하고 계십니까?
김광식
저는 88년에 입사했습니다. 87년에는 다른 곳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보려고 하다가 문제가 있어서 잘 안되었고.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엄청난 성과가 있었습니다. 물론 경제주의,
조합주의라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그런 10년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정치적 각성을 이루어냈고 우리 사회의 분배정의를
실현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임금이었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가는
단협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그것에 매몰되어 다른 일을 못한
게 아니고 10년 동안에 많은 일을 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히 커졌습니다.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민들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10년은
건강하게 평가되어야 하고 오류나 실수보다는 10년을 열어 가는
큰 밑거름이 되게 하면서 그 속에서 오류를 보완해 나가야죠.
우리는 10년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건설이라는 조직적 성과를
남겼고, 많은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현장과 연대사업은 따로 가지 않습니다. 현장을
기반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고 그 성과를 가지고 정치세력화를
하자는 것이지 현장만, 무조건 조합원의 이익만을 챙기자는 것은
아닙니다.
- 내년이면 민주노총 2기가 시작됩니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가장 큰 성과라 할 민주노총의 제1기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김광식
전노협 이후 민주노총이 건설되고 노동법개정투쟁을 통해서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것, 조합원을
하나로 결집시키면서 총단결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 큰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동법개정투쟁의 마무리과정에서
공동의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각개격파되면서 또다른 상처가
남게 됐죠. 그렇지만 이러한 오류를 극복해내면서 2기에서는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산별노조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관건적인 요소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광식
5년 이후에는 노조전임자의 축소와 임금삭감이 현실화됩니다.
다가올 2001년까지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이 단일노총으로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갈 단위는 금속
3주체입니다. 지금 미가입 조합원이 10만명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 조합원과 한국노총산하 금속사업장까지를 포괄해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정치세력화가 실현될 것이며 우리가
표를 던지는 사람이 아닌 만큼 우리 스스로가 사업을 해나갈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 ‘국민승리21’에서는 민주노총의 권영길 위원장을 이번 15대
대선후보로 추대했습니다. 민주노조진영에서 이번 대선의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어떠하며
제기되는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죠.
김광식
대선문제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인데 저 개인적으로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조직적으로는
어떠한 보고나 논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며칠 있다가
권영길 위원장님 내려오신다고 하는데 함께 얘기 나누면서
풀어야 할 과제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일단 민주노총의 결정사안에 대해서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죠. 단지 우려가 되는
것은 권 위원장님이 나가셔서 정치세력화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는지. 200만 표를 목표로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 올려놓고 표 안나오면 이거
망신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대선자금도 만만치 안잖아요. 50억
모금 얘기가 있던데 참 부담스럽습니다.
대선논의가 좀 일찍 시작되었으면 이후에 사업하는 게 훨씬
쉬웠을 텐데 지금 조합원들이 너무 모릅니다. ‘권영길 위원장이
나온다고 하더냐’ 하는 정도지 ‘권영길 위원장이 나온다더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죠. 너무 몰라요.
현장의 목소리에 충실한 지도자로
- 현자민주노조운동의 위상을 반영하면서 현자민주노조의
지도자는 전국적 영향력을 갖는 지도자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어떠한 대중적 지도자의 상을 그리고 있습니까?
김광식
저는 제 자신이 똑똑하고 해박한 지식을 갖고 조합원에게
다가가는 지도자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도자로서
결단할 때 결단하고 일의 성패를 떠나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역대 위원장들도 열심히 뛰셨지만 그보다 더 열심히
이번 선거운동에서 보여준 모습처럼 활동할 생각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분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단지 조급해하거나 서두르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단계 한단계 차분하게 내 갈 길을 정해 놓고
걸어가면서 다소의 문제가 있다면 겸허히 수용하고 우리
슬로건처럼 ‘늘 처음’처럼 신심을 버리지 않고 해나간다면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부지런한 문제 말고 이제까지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 중 어떤
것을 극복하려고 합니까?
김광식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역대 위원장들이 다
간접부서에서 배출되신 분인데 직접부서에서는 10년만에 제가
처음이죠. 현장의 생리를 가장 잘 알 수 있고 앞으로도 잘 알고
나가가야 할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 거꾸로 사무․일반직에 대한 대응이 약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김광식
저희 민투위 조직에는 전현직 간부 200여 분이 계십니다. 전직
위원장을 포함해서 임원, 상집 등 많은 분이 계신데 그 중에는
사무․일반직에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 분들을 통해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배워야겠죠.
- 집행경험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을 거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이 얘기가 그 답이 되겠네요?
김광식
역대 위원장 중에 집행경험을 갖고 또 올라온 분이 있습니까?
이영복 위원장이 그런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그 분은 지금
소사장 자리를 얻어서 나갔고. 오히려 현장활동가로서 저만큼
단련된 사람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현장의 생리에 밝다고 하셨는데 최근 들어 현장문제를
풀어나갈 때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다면 어떠한 것입니까?
김광식
‘현장에서 미래를’ 하니까 생산직만 현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무일반직은 현장이 아니냐, 그렇지 않죠. 전체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삶이 곧 현장이죠. 전체 노동자, 전체 조합원과 함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의미죠. 이 점을 먼저 확인해
두겠습니다.
최근 현장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면 상당히 관념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과거 같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면 조합원과
함께 해결해 나갔는데 요새는 협상을 통해서 풀려고 해요.
책상머리에서의 활동, 그것은 아니라는 거죠.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모든 정보가 공유되어야 하고 모든 문제가 조합원들
속에서 같이 풀어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해서는 안되죠.
그래서 저는 고민을 현장 속으로 던져보려고 합니다. 이제
조합원도 과거와 같지는 않습니다. 대단히 현명합니다. 지금 7대
집행부가 들어섰는데 이 집행부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용문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역으로 그런 어려운 점이
우리에게 유리한 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전국의 1,200만 노동형제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김광식
어려운 시기라고 다 얘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때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야 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지요. 앞으로 더욱 큰 단위로 묶여져 나갈
산별노조와 정치세력화의 희망이 있잖습니까? 우리가 단결의
대오를 넓혀나갈 때 우리는 과거처럼 소외받고 서러운 세월을
떨쳐버리고 사회적으로도 당당하고 자부심 있고 활기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힘을 가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 지는 게 아닙니다. 그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건강한 사회를 약속하며
미래를 책임질 수 있도록 연대의 기운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논리’와 ‘생리’에 가장 정통하다는, 10년만에
처음으로 ‘직접부서’에서 나왔다는 김광식 당선자.
선거홍보물에는 그의 주요한 경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90년 6월 이상범위원장 직권조인에 대한 불신임 투쟁
91년 9월 승용2공장 5대 대의원대표
92년 1월 성과분배투쟁시 지명수배․ 해고
94년 10월 8대 대의원 대표
(선거구 조합원 100% 찬성으로 대의원에 당선)
95년 5월 양봉수 열사 분신대책위 구속․해고
97년 7월 승용2공장 민투위 중앙위원
필자는 이번 인터뷰와 관련 자료의 검토를 통해 현자
민주노조운동,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의 과제와
현주소를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현자민주노조운동의 대중동력은 상당부분 복원되었고 이는
투쟁을 통해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인식은 선진노동자들에게 충분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91년 성과분배투쟁에서의 패배와 좌절, 93년 현대중공업과 함께
주도적으로 투쟁했던 현총련 공동투쟁, 96~97년
노동법개정투쟁에서의 전국적 주도성의 발휘 등 매 투쟁에서
나타난 지도부의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선진노동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 임단협에서
4년간이나 무쟁의가 실현되었지만 ― 91, 93, 96~97년을 통해
대중동력은 복원되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 대해
선진노동자들이 정리하고 있는 내용은 상당히 단편적이었다.
91년에는 그 당시의 조건이 그러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 현자에서 대중적 열기로 전개된 노동법개정투쟁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의 직접적 성과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고 있지만 대중의 상태와 정서, 동력의 복원과정, 투쟁을
둘러싼 전체 정세, 지도과정에서 나타났던 오류와 한계 등에
관한 종합적인 정리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무식하게’, ‘머리 박고’ 등 소중한 역사적 경험에 대한
‘청산적 공격’이 난무한 가운데 이러한 투쟁의 정당성을
확신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방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인식 내에서도 충돌하고 있었다. 그것은
각종의 편향을 극복하고 87년에서 97년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달려왔지만, 아니 ‘행동’했지만 그 행동이 자신의
‘의식’으로 그리고 이후의 방향제시로 이어지고 있지 못한
많은 선진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또한 투쟁을 통해서
민주노조의 상을, 획득해 왔던 선진노동자들의 질곡 지점이기도
했다.
둘째, 선명해진 선진노동자간의 정치적 분화, 이것을 어떻게
위치지워야 할 것인가? 분화의 역사적 과정과 이를 관통하는
법칙성,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현자민주노조의 역사를 보면 선거를 계기로 민주세력내부의
정치적 분화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분화는 89년 제2대
임원선거에서는 이상범 후보와 김강희 후보의 대결로, 93년
제5대 임원선거에서는 정갑득 후보와 김강희 후보의 대결로,
이번 제7대 임원선거에서는 김광식 후보와 정갑득 후보의 대결로
표현되었다. 이번 선거를 바라봤던 각 진영의 인식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은 현노신의 일관된 주장
6대 집행부가 유지해온 운영기조는 이미 2대 집행부 때부터 그
내용이 시험되어 왔다. 또, 5대 임원선거에서
노동조합발전연구모임(의장 김강희)이 주창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운동방식이 마치 정 위원장에 의한
자파의 전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과대포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노신은 92년 신문창간이래 지금껏 합리적이고 유연한
노사관계, 공정분배, 노사공동이익 실현을 기본으로 하는 운동을
펼쳐왔다. 또한 6대 집행부를 함께 운영하면서 이러한 기조를
현실화시켜온 핵심세력이라 자부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온 운동은
현노신이 원조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 당초 “정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민투위 우파와
현노신의 선거연합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조직통합을 이뤄내야
하지 않겠는가”는 제안은 ‘노동조합을 사랑하는 모임’(대표
하부영 사무국장, 이하 노사랑)에서 먼저 제기했던 것이며
여름휴가 이전까지는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휴가를 다녀온 4일은 그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으며,
‘노사랑’은 정갑득 위원장을 재추대하는 입장을 정한 상태에서
연합을 제안한 것이 확인되었고 8월 4일 전단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8월 5일 연합을 위한 논의는
더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따라 각기 독자출마하기로 정리하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되, 선거이후 조직통합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 현자노동자신문 호외, 97.8.11.
자기혁신 없이는 운동의 발전도 대중의 이익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 진영은 노동운동이 봉착한 현실을 연구․검토하고
새로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기치를 들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야말로 척결의
대상이며 형편없는 개량주의운동으로 다시는 현대자동차에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들은 민주노총의
공식 슬로건인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부정하며
민주노총지도부를 개량주의로 몰아붙이고 지난 노개투도 완전히
잘못된 투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주장이든 그것이
현실에 맞고 타당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올바르지 못한
시각은 인정할 수 없다. 민주노총도 현총련도 모두 잘못된
조직이라는데 대해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운동의 전진과 대중의 발전을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결단했다
… 낡은 방식과 운동방식을 고집하고 운동의 대의에서 멀어져
있는 동지들과의 결별은 대중의 이익과 운동의 발전이라는 원칙
앞에 완전히 정당하다. 또, 정반대 되는 주장으로 서로 걸림돌이
되기보다 정책과 대안으로 대중의 심판을 받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판단하며 조직원의 일부가 남아 배신이니 징계니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공조직 중심의 집행과 현장조직의 전면적인 재편을 위해 투쟁할
것이다
만약 우리조직이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어 다시 집행하게 된다면
대의원대회, 사업부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상무집행위원회 등
공조직 체계를 중심으로 강력한 집행을 할 것이다. 또한
일상활동에서 사사건건 집행부와 대립하는 조직, 중요한
사안에는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는 현장조직이 아닌 새로운
현장조직으로 재편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국민과 함께, 97.8.18.
… 과거 활동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조직관은 어디로 갔나요.
주장이 그렇게 옳은 것이라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그렇게 옳은 것이라면 왜 민투위 성원들에게 총의를 묻지
못하시는 겁니까? 민투위 조직원들은 그 동안 현자노조운동에서
어느 누구보다 투쟁의 선봉에 섰던 동지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지들에게 당당하게 ‘국민과 함께’하자는 주장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또한 국민과 함께 하자면서 민투위
조직원과도 함께 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됩니다. 혼란과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정갑득 위원장님께서 지금이라도 독자출마의
입장을 거둬주시고 민투위조직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 민투위,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조직을 떠나다니요?
97.8.8.
현노신은 자신이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원조임을
강조하고 있고, ‘국민과 함께’에서는 대중의 이익과 운동의
혁신을 민투위와의 분리근거로 제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투위에서는 의사결정과정의 독단성, 분열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 가지 들었던 의문은 이른바 ‘국민과 함께’ 진영은 노선적
분리의 의미를 분명하게 부여하고 있는데 인터뷰나 민투위의
유인물 ― 경향성에 대한 ― 에서는 이런 점보다는 활동방식,
욕심 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개투식 투쟁전술은 김영삼 정권도 어쩌지 못했다
… 대가리 처박고 무모하게 달려들지도 않고 누구처럼 직권조인
해버리고 줄행랑을 쳐버리는 겁쟁이도 아닌 회사로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집행부인 것이다. 투쟁을 위한
투쟁, 어설픈 의욕과 열정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회사에 역공을
허용해 조합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표류하게 만들 수 있다.
- 정갑득 선거대책본부 제6호, 97.8.29.
경직된 사고와 투쟁관으로는 노동조합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경직된 활동과 투쟁관을 가진 노조가 들어서자 도요타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하고 과격하기만 하던
노동조합은 사사건건 던지는 대로 물었고 한판승부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14년 동안 단협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절망공장이라 부르는 작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강한 듯
보이지만 부러지기 쉬운 집행부로는 현자노조를 이끌 수
없습니다.
- 정갑득 선거대책본부 제11호, 97.9.8.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그것은 민주노총 제1기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운동노선이다. 그것이 이론적 체계를
갖추면서 학습되고 보급되어졌던 것은 아니지만 현노신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90년대 들어와 진보적 노동운동,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의 등장에서 이미 예고된 ‘노사동반자관계론에
근거한 노동운동론’이다. 물론 그것이 현재 초기이고 실험적
단계에 있긴 하지만 작업장 수준에서부터 산별노조수준 나아가
노동자 정치활동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방향을 갖고 있는
운동노선인 것이다. 이미 이 노선은 자본에 대한 기본관점과
현장활동양식, 조직건설의 동력과 경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목표와 수단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일관된 방향으로 즉 이미
물질화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정치적’이면서도 ‘개량적’이고 ‘통큰 단결’을
주장하면서도 현실에 와서는 노자간의 동반자논리에 의해 노동자
내부에서는 ‘노동자간 경쟁의 논리’가 될 수 있는, 이
운동론의 한계는 정세적 요인에 의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날로 강화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시장경쟁의 논리를 전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자본간의
무한경쟁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무한수탈을 보장하고자 하는 이
공세가 그 어떠한 동반자 논리도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
운동론은 ‘허구적 동반자논리’이며 이러한 운동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대립구도는 허구적 대립구도로써 이 구도로는 현재의
노자간 대립지점, 노동자계급이 겪고 있는 고통의 올바른 반영과
표현은 불가능하게 된다.
6대 집행부 출범시부터 유별나게 ‘정책대안’을 강조하였고
마침내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으로 자신의 모습을
완성시켰던 정갑득 후보를 조합원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왜 현장통제가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현자노조는 93년 현총련공동임투 이후 4년간 무쟁의로 임단협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 내부적으로도 노사협조,
노사대등, 참여적 노사관계, 협력적 노사관계 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용’이라는 낙인이 붙었을 내용들이 버젓이 통용될
정도로 노사관계의 긴장감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현장에서조차 치열한 일상투쟁이 없어지고, 대충
타협하려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한발 한발 물러서다 보니 현장의
장악력이 회사측으로 점점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투쟁도 처음부터 “정부와의
싸움이지 회사측과의 싸움이 아니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폄으로써 투쟁과정에서 회사측에 대한 분노는 없었지만 결국에는
‘무노동무임금, 고소 고발, 손배청구’ 등 무차별로
얻어맞고서야 열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듯 노사관계에서 지나치게 협조의 일면만 강조되어 무엇이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적당히 주고받는 타협으로 인해
현장의 단결력과 투쟁력이 약해진 것입니다.
-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 김광식후보 선거대책본부 제2호
97.8.22.
이것은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정갑득
후보진영이 ‘위기’, ‘수권능력’, ‘화려한 멤버’, ‘혁신’
등을 산만하게 제기하면서 ― 고용문제를 주요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 선거운동을 한 반면 김광식 후보진영은 초지일관
‘현장에서 미래를’ 내걸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집중시키면서 자본의 공세에 정면대응해 나갔으며 그것이 이른바
‘녹색바람’ ― 민투위진영은 선거운동원의 유니폼부터
유인물의 칼라까지 녹색을 사용했다 ― 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상당히 완성도 높은 ―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
노선에 대한 면밀한 분석보다는 패권성, 독단성 등 활동방식에
대한 비판이 선거운동과정에서 ― 때로는 개별 활동가의 문제로
진단되면서 ―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거라는
특수성,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활동가들이 다수
존재하는 상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분화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정치적 내용이 활동방식을
규정한다. 이미 물질화된 노선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그것이 패권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 그러나 패권과
독단 밑에 근거하고 있는 경향성, 이것을 포착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이 활동가들 상호간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인정’하면서 ‘모색’해 나갈 때 사실상 통큰 단결이
가능하기 떄문이다.
선거라는 양식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표현되어졌지만 어용과
민주의 대립구도로 출발했던 현자선진노동자들의 실천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다는 이상범 제2대 위원장의
‘직권조인’, 낡은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하자는 진보적
노동운동론, 자기혁신을 내세우며 대중의 이익이라는 이름 하에
노사동반자관계론을 그 본질로 하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과 자신을 분리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이것은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대중적 비판과 함께 ―
그것이 얼마나 총체적인 자각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차치하고 ― 민주노조운동이 그 계급적․민주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새롭게 출발할 지점에 와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두 가지의 과제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요구의
정식화와 활동방식의 혁신’이 그것이다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민주노조’가 되기 위해 당장 제기되는
과제는 고용문제로 집약된 자본의 공세에 대한 대응이지만
이러한 대응을 위해서도, 나아가 진정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서도 노동자계급이 내걸어야 할 요구가
‘구체화’되고 이를 대중적 수준에서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앙상한 원칙의 확인이 아니라 하나의 요구가
작업장수준, 산별수준, 나아가 총노동수준에서는 어떻게
공유되고 표현되어져야 하는지까지 포함된 요구의 정식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진영을 포함한 총노동진영의
과제이며, 이러한 과정이 해결되어 나가는 만큼 개량적 노선에
대한 절충적 인식은 극복되어질 것이다.
‘요구의 정식화’가 ‘단결의 방향’을 근저에서 규정하지만
이와는 다른 수준에서 선진노동자 ‘활동의 혁신’이 요구된다.
‘대통합’, ‘가진 것 다 내놓기’ 등 인터뷰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자신의 중심을 분명히 하면서 서로 다른 경향을
인정하고 연대와 제휴를 모색하는 ‘분리와 통합의 활동’이
지금까지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요구되고 있다. 막연히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수준에서 정치적 분화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노동자가 하나로 될 수 없는 길이다. 내용을
중심으로 분화되어지면서 통합되어지는 과정, 그것은 단결을
‘약화’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강화’시키는 과정이 될
것이다.
셋째, 현재의 조건에서 현장조직이 ― 엄밀하게 얘기해서 이
틀에 모인 활동가들이 ―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자의 현장활동가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은 고용문제로 집약된다. 이 사안에서 얼마나 대중의
투쟁동력을 올바로 이끌고 추동하면서 자본의 공세를 저지하는가
하는 점이 노조지도부의 안정성은 물론 현장활동가들이
대중적으로 검증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금속 3주체의
통합에 의해 건설될 통합금속연맹이 관료화되지 않도록 계급성을
강화하는 것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발전하는 것도 이들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
또한 현장의 문제와 맞물려 해결될 것이다.
현자의 현장조직운동은 상당히 선구적인 수준이며 그 활동은
다른 사업장 현장조직의 주요한 관심이기도 하다.
현장조직운동이 보편화되고 민주노총 제2기를 맞는 현재의
조건에서 활동의 전형을 창출하는 것, 그것은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에 새로운 자극과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90년 이상범 위원장의 직권조인에서 발생한 이른바 이상범
신드롬, 92년 성과분배투쟁의 패배 뒤에 제기된 전투적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 96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주도적인 실험과 97년 7대 임원선거에서의 민투위후보 당선 등
현자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민주노조운동에 끼쳤던 영향은
그야말로 ‘전국적’이었다.
87년 어용노조 민주화투쟁에서 출발했던 현자민주노조운동은
10년이 지난 현재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로 지난
10년을 마감하고 다가올 10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현장에서
미래를’, 그것은 87년 이후 현자민주노조운동의 방향이었고
10년이 지난 오늘 다시 확인한, 더욱 풍부하게 이해되고 있는
삶의 방향이었다. 어려운 시기라는 7대 집행부를 중심으로
현자민주노조운동이 어떻게 자신의 문제와 대결하면서 전체
민주노조운동 발전에 기여하고 그 전진의 디딤돌을 놓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약된 조건 속에서도
과제인식은 분명하게 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치열한 모색, 그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동시에 ‘과제’이기도 했다.
우리의 요구가 협상테이블에서 말싸움 잘하면 쟁취될 것이라고
믿는 조합원은 없다.
또한 회사가 조합원들의 어려움을 먼저 알아서
정당한 보상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도 없다.
흉내내는 쟁의절차만으로는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할 수 없다.
협상자리에 많이 앉았던 경륜과
‘좌’에서 ‘우’로 과감히 옮겨가는 패기(?)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임․단협을 가지고 파업하면 국민여론이 안좋다”고
걱정하는 판에는
우리가 회사를 상대로 쟁취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장조합원의 의지와 요구를 하나로 모아내고,
이것이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와 묶여져 힘있는 투쟁으로
나타날 때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천투쟁의 길에 김광식은 대안 있는
집행으로 우뚝 설 것이다.
- ‘늘 처음처럼 현장에서 미래를’, 김광식후보 선거대책본부,
제6호,97.8.28.
…… 일정에 쫓겨 남양지부 유세가 끝나고 곧바로 아산공장으로
달려가 현장순회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나는 아산공장 의장부 한 라인을 다 돌지 못하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목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장을 보았다.
악수를 청해도 손조차 잡지 못하는 조합원들, 핑핑 돌아가는
콘베어 위에 잠시 쉴 틈도 없이 계속 조여대는 임팩트 소리.
어느 한 곳 빈틈도 없이 단정하게 정돈된 콘베어라인. 그 속에서
1분 1초의 여유도 없이 콘베어와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
조합원들은 로봇이 되어 있었다. 어찌 이 지경인가?
쉴 틈이 없으니 앉아 있을 의자가 필요 없고, 신문 볼 시간이
없었다. 쉴 틈이 없으니 사람이 찾아가도 반길 시간조차
없다.
그뿐인가? 각 공장(건물)앞에 버티고 있는 I.C 카드는
조합원들이 출입할 때마다 체크를 해야하니 수용소가 여기 말고
따로 있겠는가? “어떻습니까? 일할 만 합니까?”라고 물으니
대뜸 하는 말이 “조․반장 천국이지요” 아! 참으로
가슴이 아파 더 이상 인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오토바이조차 출입을 시키지
않습니다’, ‘차체 쪽은 식사시간에 30분 연장탑니다’ 복장이
터지고 환장할 일이었다. 유세가 끝나고 조합원들이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찾아와 본조에서 제발 도와달라는 부탁 어린 말들을
했다. 아산에서 나는 회사에서 말하는 ‘꿈의 공장’이 아닌
‘절망의 공장’을 보았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들은 서로 말을 못했다.
현자노조 지부 조합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울산공장에서 자행되는 회사측의 도발이 무엇을 노리는지 똑똑히
알 수가 있었다. 이제 정말 현자민주노조를 올바로 세우자,
현장에서부터 단결하고, 투쟁해서 조합원의 권익을 지킬 수 있는
힘있는 노동조합을 만들자.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 그것만이 참된 인간으로 사는 길이다.
- 같은 글, 제8호, 지부순회기 중, 사무국장 후보 주윤석, 97.
8.30.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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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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