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가는 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 교육.교육현장 |
현장에서 미래를 제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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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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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가는 사회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고통
김산/ 교육 노동자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세상이 미쳐가고 사람들이 미쳐가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같이 미쳐가라고 부추긴다. 미치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모두들 미쳐 가는데 혼자
미치지 않았다면 그가 미친 사람이다.
아파트가 미쳤다. 자고나면 몇 천 만원 씩 값이 오른다고 한다.
오르는 집값에 민중들은 한숨만 쉬고 허탈감에 삶의 의욕을 잃고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야한다며 은행대출 창구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연일 떠들고 있으나 그
말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소위 정부 발표의 반대로만 한다면
살아가기가 한층 쉬운 것이 한국사회이다. 가족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은 이미 그 역할을
자본축적의 수단, 생존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있는 자에게는
가장 높은 이윤을 제공해주는 수단이며, 없는 자에게는 생존의
수단인 것이다. 민중들에게 자기 집을 가진다는 소박한 꿈은
꿈으로 끝나가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는 그렇게 민중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와 함께. 이 사회에서 누가 최종승자가
되겠는가? 누가 미치지 않고 살아남겠는가?
한·미 fta 협상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미 fta는
단순한 관세철폐나 수입규제완화 등의 무역거래에 대한 협정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fta 협정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협정으로서 협정이 체결된다면 한국의 사회체제는
일대 전환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쓰나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말하는 이는 극히 소수이며 미친놈 취급을 당한다.
청와대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비서관조차 왜 하는지를 모르겠고
미친 짓이라고 말하고 있고 관련됐던 연구소의 연구원조차
역사에 죄를 짓는다고 생각해 나왔다고 말을 하고 있건만 이들의
말은 미친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 그들이 미쳤다고 하는
대상들에 의해 그들은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한다. 누가 미쳤는가?
언젠가 역사가 말해주겠지만 그 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한 두 명의 교사(전 위원장 원영만,
전 부위원장 조희주)가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아 교사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판결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 수구세력은 일제히 위원장의 자격이 없다며
사퇴하라고 난리다. 굶주린 상어들이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무엇을 그리 잘못해서 이런 판결을 받았는가? 장
위원장 등은 2004년 노무현 탄핵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사실상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판결을 받았다. 그것도 고법에서는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던 것을 올려서 말이다. 명백한 전교조 탄압의지가 보이는
판결이다. 노조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의사표현조차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그럼 노조는 정부의
나팔수만 되라는 이야기인가. 정치·경제·사회체제의 변화는
노동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의사표현과 투쟁은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노조는 그저 작업장
내에서 부대끼며 자본이나 국가가 하지 못하는 공백을 메워주는
일이나 하라고 한다. 노조에 대한 심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노조라면 경제투쟁은 당연하며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정치투쟁 또한 당연히 해야 하며 권리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절름발이 노조를 허용하고서는 그것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일이나 하라고 하고 있다. 특히 전교조에 대해서는
그저 촌지추방이나 하고 학교에서 얘들이나 잘 가르치라고 하고
있다. 이것이 노조가 할 일인가. 이런 것은 노조가 할 일이
아니라 자연인인 교사 각자의 할일인 것이다. 이런 왜곡에
대해서 많은 교사들 또한 동조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 할
일이다.
교사들을 엄벌에 처하겠단다. 11월 22일에 있는 전교조의
연가투쟁에 참가하는 교사들에 대해서 엄벌에 처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아니라 협박정부이다. 무엇을 근거로
엄벌에 처한다는 것인가? 연가는 교사의 기본적 권리이다. 또한
집회·결사의 자유 역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다. 두 기본적
권리가 연결되면 엄벌에 처한다고 하니 정말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전교조는 노조이다. 사용자인 교육부나
사학재단과 대립적 지위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노조를
사용자의 보조단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측의
정책에 대해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연가 투쟁을 하는 것인데
참가한다면 엄벌을 처한다고 사용자가 말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모순 아닌가. 하루 연가가 엄벌에 처할 일인가? 물론
그들은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서 뜻한 바를 이룰 지도 모른다.
한국의 사법부가 우리 손을 들어줄리 없지 않은가. 박정희
시절에도 전두환 시절에도 그들은 여론을 들먹였으며 사법부는
항상 그들의 편이지 않았는가?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로의 이 말들이 우리의 가슴에 바로 와
닿지는 않는가? 우리의 정부는 이민숙 전교조 대변인을 비롯해
3명의 동지들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었으며, 이용석 교사에
대해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을 내렸으며, 법원은 장위원장 등 3명에게는
사법살인(교사에게 교사직 박탈은 살인이다)을 하였다.
이 모든 과정을 보았을 때 현재 우리사회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자본에 저항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에 저항을
했을 때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저 맛 뵈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대가는 지금보다 더욱 엄혹할 것이며 우리의
우군은 없을지도 모른다.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정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단순히 법해석에 치우치는 법률가들,
노동자의 생존은 안중에 없고 이윤추구만이 지상의 목표인
자본가들이 넘쳐나고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치며 승자만이 환호를 받는 사회에서 우리가
과연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전교조에 대한 탄압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아니 노동계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 되고 있다. 미쳐가는 사회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세력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어 질것이며 국민의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억압을 해 올 것이다. 전교조는
국민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 일면 타당한 측면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본질을 본다면 이 미쳐가는 세상에 대한 저항에
대한 비난이다. 전교조는 자본에 굴복하지 않으며 제국주의에
협조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교조의 정신이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의 논리에 포섭되어
있으며 제국주의에 편입되기를 바라고 있다. 심한 외부부터의
공세 못 지 않게 내부에서도 합리성이라는 이름하에 자본과
제국주의에 타협하려는 세력이 그 세를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사뭇 진지하며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자본의 충실한 시종이 되간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새로운
전교조 운운하는 류의 세력들은 자본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자신들이 해나가면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치열한 투쟁이 없이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 날 수
없으며, 제국주의에 저항할 수 없다. 굴종에서 오는 달콤함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옛날 일제 식민시대에 왜 그리도
친일파가 많았으며 독립 운동가들은 미친 사람 취급을
당했겠는가? 저항에서 오는 고통보다는 굴종에서 오는 달콤함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이라고 이런 구조가 변했겠는가?
생존하기 위해 비굴해지는 것이 그저 남의 모습일까? 우리는
견뎌낼 수 있을까? 모두가 미쳐가는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모두가 나에게 미쳤다고 할 때 미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20대에도 하지 않았던 운동을
40이 넘은 나이에 하는 것은 더 이상 미치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 미쳐가는 세상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투쟁하고 저항 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인간으로 살다 죽고
싶다. 이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며 전교조에게 거는 희망이다.
미쳐가는 세상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고통을
함께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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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3 11: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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