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의가 묵살되는 한국타이어의 현실 |
현장에서 미래를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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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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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가 묵살되는 한국타이어의 현실
박 응 용 / 한국타이어 해고자
들어가며
먼저 한국 타이어 투쟁에 뜨거운 가슴으로 지지 성원하여 주신
전국의 노동형제와 진보적 사회 단체, 청년 학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뜨거운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97년 한국 타이어 투쟁은 과도한 생산과 무분별하게 설비를
확충하던 자본과, 정권 재창출의 눈이 먼 김영삼 정권이 어떻게
기층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는가를 전사적으로 폭로시켜 그
진상을 규명해 내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인권의 사각지대, 노동자
탄압의 무법 천지 한국 타이어에서 범죄적 부당 노동 행위를
근절시키고, 노동법 개악 이후 자본과 정권에 의한 노조 무력화,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전략에 일대 경종을 울리고자 하였던
투쟁이었다.
한국 타이어 노동자들의 아사 단식 투쟁의 배경과 결과
한국타이어(이하 한타)에서 잔인한 노동자 탄압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같은 지역의 민주노총
대전충남지역본부(이하 지역본부)는 철저히 한타 상황에 대해
함구․외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역본부의 외면과 함구는
자본과 권력에게 마음놓고 탄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한타 노동자들이 철저히 고립된 상태에서 수십명의
활동가들이 구속, 수배, 해고, 전직, 테러가 자행되었고 심지어
그 가족 후원자까지 성폭행, 성추행하는 잔인 무도한 테러가
자행되었다. 검찰은 해고자들에게 2,000만원이 넘는 벌과금을
물리고 법원은 수억원의 손해 배상을 선고하였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투쟁은 폭발하였다. 지역본부의 배신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가 ‘말’지, ‘길’지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민주노총 중앙에 보고되면서 전국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였다. 그것은 합의나 협상이 아니라 항복
문서였다. 아니, 하지 않은 투쟁보다 못한 것이었다. 연대투쟁이
아니라 협박이었고 자본가들이 던져 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고 그
동안 그 모진 탄압을 가한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었다. 투쟁은 처음부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협상을 위임받아 일방적으로 중앙 차원에서 타결을
봐버렸다. 그 어디에도 한타의 야만적 노무 관리의 핵심적
문제인 폭력 테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는 없었다.
2년간 진행중인 수배자 문제 해결도 없었다. 그리고 성폭력,
성추행, 테러문제와 한타 정문투쟁을 분리시켜 버렸다.
지역본부는 전체 한타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에 4차례 모두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지역본부, 이서광, 김진종, 신영수가
주축이 된 한타 해고자, 실노회, 민주노총 등이 투쟁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지 않고 협상에 치중하고 문제 삼기 껄끄러운
폭력 테러, 수배 철회 문제는 제외시키는데 공감을 형성하였고
그 결과 아래와 같은 합의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합의문 요약
해고자 중 7명을 계열사 2년 근무 후 원직에 복귀하고 계열사에
복직하는 해고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손배, 계류중인 고소,
고발을 취하하고 (수배자 제외) 단식자를 치료한다.
단, 이 협상에 대해 복직자나 미복직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를 위한 집회, 농성을 하거나 선전물을
배포하면 이 합의는 무효로 한다.
또한 이미 사법 기관에 의해 사법 처리된 내용을 문제로 삼아
집회, 농성, 시위를 하거나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거나
보도되었을 경우 이 내용의 선전물을 배포했을 경우 이 합의는
무효로 한다.
이것을 합의하는 대신 모든 투쟁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합의 직전상황
민주노총이 배제하려던 성폭력 문제를 한타 투쟁으로 보지 않고
이를 분리시켰고 폭력 테러 문제 또한 제외되자 노민추
해고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다. 민주노총은 이 문제를
묵살하였고 투쟁 주체였던 실노회의 이서광, 김진종, 신영수에
의해 더욱더 묵살되었다. 그들은 문제제기를 하였던 노민추의
해고자를 미친 놈 취급하였다.
“현실적으로 해야지, 근거도 없는 요구 때문에 이 중요한
협상이 (?) 깨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민주노총 중앙, 지역본부,
실노회의 한 목소리 주장이었다. 빨리 협상을 보자는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협상을 보자는 것이었다.
몽키 스패너에 머리통이 터지고 조직 폭력배에게 짓이겨 지고
가스총 난사로 허리 병신이 되고 24시간 감시와 성추행, 성폭행
그 잔인한 테러가 근거가 없단 말인가? 진정으로 미친놈들은
누구인가? 야비한 협상을 통해 폭력 테러와 야만적 노동 탄압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들이 진정 미친놈들이 아닌가?
결국 민주노총 중앙과 지역 본부 실노회는 폭력 테러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전자들은 폭력 테러를 당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노민추 동지들의 폭력 테러의 문제가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묵살, 회피하였다. 회의를 한다고 하였지만
분위기는 일방적이었다. 심지어 당시 해고자 대표였던 실노회
이서광에게 직권 조인하라는 말까지 회의석상에서 공개적으로
튀어 나왔다. 민주노총의 협박은 노골화되었다.
“지금 빨리 협상하지 않으면 이것마저도 없다.”는 것이었다.
단식중인 해고자들에게 민주노총 조직차장 홍명진은 회사 쪽에
협상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농성장에 걸어 두었던 요구 사항을
적은 플랜 카드를 뜯고 농성을 해체하라고 하였다. 결국 노민추
동지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실노회 사람들이 텐트를 철거하고
말았다. 단식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입원하였고 한타 정문
아사단식 투쟁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성폭력 투쟁은 한타 정문투쟁과 분리되어 정문투쟁이 마무리되자
급속도로 투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인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 김재수는
한국 타이어 해고자들을 회의에 참가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은 이 투쟁에 협력 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실무자인 이혜순은 어떻게 하든 문제를 지역으로
떠넘기려 하다 그것이 여의치 않고, 검찰에서 내사 중지
처분되면 투쟁은 끝난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직차장 홍명진은 수배자 가족에게
“검찰에 가서 잘 하고 해결하지, 왜 그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용적으로 그것은 자수하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지역본부
간부들 역시 공개적으로 정리하라는(자수하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투쟁은 협상에만 매몰되고 있었다. 협상 내용과 과정이
단 한번도 현장동지들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더러운
야합이었다.
천인공노할 자본의 범죄에 떡고물 몇 개를 받고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더러운 야합이다. 이것은 분명히 투쟁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타 투쟁은 마무리되었다.
그나마 합의는 무시되고 탄압은 계속되고 있다
이 투쟁의 최대 쟁점이었던 폭력 테러, 성폭력 테러 문제는
검찰에 의해 무혐의 내사 중지 처분되었고 여인숙 방에 살던
수배자 가족들은 나가라는 주인의 이유 없는 협박에 쫓겨났다.
수배자는 거리에서 세 번째 겨울을 보내야 한다. 자본쪽은 이런
개량적 공간을 통해 복직 대상 해고자들을 개별적으로
협박하면서 4,000만원을 줄 테니 정리하라, 충분히 먹고 살게 해
줄 테니 정리하라고 지금도 회유하고 있다. 10월중으로
발령한다는 계열사 복직조차도 이행되고 있지 않다. ‘말’지에
기사를 썼던 기자 김동진씨는 검찰에 고소 당하여 조사 받고
있다. 폭력 테러의 중심에 서 있던 수배자의 고소, 고발은
취하되지 않았다. 폭력 테러에 가장 큰 정황 증거를 가지고 있던
실제 테러 당사자 전구환, 전 노조 총무부장 김동열이 가족과
함께 갑자기 행방 불명 되었다. (김동진 기자가 고소된 일주일
후) 그 직후 곧바로 성폭력 테러는 내사 중지되었다. 후에
확인한 결과 전구환과 김동열은 9,000만원 짜리 고급 빌라에
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세방도 못 살고 있던 사람이 어디서
돈이 나서 고급 빌라에 살고 있단 말인가? 한쪽으로는
어마어마한 협박이 가해 졌고 다른 한쪽으로는 돈을 주며
회유하였을 것이다. 폭력 테러 문제를 은폐하려는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것이다.
현장에서는 4조 3교대 공휴일에 출근하게 하는 공출에 불만을
이야기 하였다고 작업 반장에게 또다시 폭행 사태가 재연되었고
산재가 다발하여 진폐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노민추 회원들은 징계위에 회부되어 지점으로
강제 발령되었다.
관리부 환경 안전팀은 해체할 계획에 있으며 관리직과 현장
노동자 중 184명을 조만간 정리 해고할 계획이다.(현장 주임 중
50%) 98년 8월까지 전 공장을 4조 3교대로 전환하여 공출이라는
합법적 강제 노동을 제도화하려 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전
공장 80%를 용역화 (실제 계열사는 그렇게 하고 있다.)할
계획하에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다. 그 첫 대상자가
누구이겠는가? 당연히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던 동지들이 그
첫 대상인 것이다.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사장 홍건희가 11월 대전 공장을
순회하였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현장 동지들은 소외시킨 채 투쟁이
진행되어 현장 동지들이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엄청난 현장
탄압에 대해 그 잘난 협상이 깨질까봐 선전물 한 장, 집회 한
번은 고사하고 문제 제기 한번 되고 있지 않다. 이것이 협상의
결과이다. 민주노총이 한타투쟁을 끌어안지 않고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끌어 않지 않는 산별건설, 정치세력화 국민
승리 21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한타만이 아니라
한국합섬, 삼미특수강, 덕부진흥, 대전에 성웅만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현장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탄압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국민승리21’과 투쟁
노선은 전면적이고도 심각하게 재고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
타이어는 95년 12월 대탄압 상태로 되돌아갔다. 아니, 그 때는
탄압에 맞서 투쟁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누구와 투쟁할 것인가?
그나마 남아 있던 해고자들마저 순천, 부산, 서울, 금산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 현장은 짖이겨질대로 짖이겨져 있다.
한국 타이어에 대해 이제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95년에
외면보다 더욱 크게, 더욱 넓게, 더욱 깊게 우리는 고립되었고
상처받았다. 민주노총은 지금의 전반적 투쟁노선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도 우리는 진군할 것이다
협상(?)을 마무리하고 한타 노동자들의 첫 투쟁 계획은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노총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은 여전하다. 그에 상응하여
억압의 사슬을 끊으려는 노동자들의 절절한 열망 또한 항상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현장노동자들의 절절한 열망과 지향을
묶어 세울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이 아닌
‘국민승리21’이 아닌 투쟁전선을 조직하면서 우리는
일어서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처음으로 되돌아가 우리가 그
동안 피눈물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튼튼한 무기로 하여 광범한
교육사업과 조직사업을 배치할 것이며 적극적인 선전, 선동 또한
조직화할 것이다. 몇몇 개량화되고 관료화된 그래서 현실적이고
타협적인 상층 간부가 아니라 투쟁을 통해 일어서는 기층 노동
형제들과 굳게 손잡고 힘차게 진군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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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2-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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