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15대 대통령 선거 평가(안)

현장에서 미래를  제29호
국승21









노동자후보 진영의 15대 대선평가

  이번호 열린마당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진보정당 건설’을 내걸고 참여한 노동자 후보진영의 15대 대선 활동평가에 관한 글을 실었다.

  ‘국민승리21’ ‘민주노총’ ‘정치연대’가 각각 작성한 총 세편의 글들은 내부이견과 충돌이 많았던 만큼 평가의 기조와 내용이 상이하다. 게다가 각 글들을 살펴보면 국민승리21의 이후 진로에 관한 견해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노동진영이 참여했던 선거에서는 같은 지표를 갖고도 약진이었다는 평가와 실패였다는 평가가 나올만큼 자의적인 면도 있었지만, 이번의 평가(안)들은 표피적인 결과에 대한 분석은 비슷하지만, 그 원인과 이후 진로 및 방법에 대해서는 입론을 달리하고 있다.

15대 대통령선거 평가(안)


국민승리21





1. 평가의 관점


이 평가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 입각하고 있다.

첫째, 득표를 지표로 삼아 평가한다. 득표에 의해 선거를 평가하는 것이 상례이며, 국민후보 운동 역시 득표 전략에 입각하여 입안된 것이므로 득표 분석을 통해 평가함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세세한 전술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는, 결과가 보여주는 정치적 함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는, 개별 전술에 대한 사후적 찬반을 검증할만한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다소 정치성(精緻性)이 떨어지더라도 경향적 평가의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다.

셋째, 시사점과 교훈을 찾는 데 주력하겠다. 15대 대선 경험을 진보진영 정치세력화의 주요 계기, 분기점으로 삼고자 함이다.



2. 권영길 후보 - 미흡한 득표, 진보정치 기반 확인


1) 30만6천26 표 - 기본 목표를 충족시키기에 미흡한 득표

* 국민승리21 권영길 후보는 30만6천26표(1.2%)를 득표하였다. 이는 14대 대선 당시 백기완의 득표보다 7만표(0.2%) 많은 데 불과하다.

* 국민승리21은 ‘보수기성 정치세력의 정치독점을 타파하고 진보정치세력을 현실 정치구도 속에 정립’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기본목표를 설정하였다.

① 의미있는 득표를 통한 정치적 시민권 획득

② 진보정당 건설의 국민적 지지 기반 확보

③ 진보정당의 조직적, 인적, 물적 기반 확보

④ 지방선거 준비


① 선거마스터플랜은 ‘의미있는 득표’를 250만표(10%)로 설정하였다. 우리의 득표는 대선 득표에 힘입어 정치적 지속성을 가졌던 박찬종의 150만표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 실패이다.

② ‘진보정당 건설의 국민적 지지 기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계량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승리21 다수 성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 또는 기대 수준은 60만표에서 80만표 수준에서 형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 역시 성취되지 못하였다.

③ 국민승리21은 80여개 지부, 220개 선거연락사무소, 700여명의 상근자, 4만여명의 회원을 조직하였다. ‘진보정당의 조직적, 인적, 물적 기반 확보’는 비교적 성공이었다.

④ 아직 평가를 내릴만한 시점은 아니지만, ‘지방선거 준비’는 주도면밀하게 이행되지 않았다.


2) 1.2%는 어떻게 모였는가? -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득표 집중

* 그러나 권영길 후보의 득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큰 변화를 담고 있다. 백기완 후보가 전국 모든 지역에서 고르게 1.0%를 득표하고, 우리 후보의 경우에도 전국 대부분(호남 제외)의 지역에서 1.2%의 고른 득표를 하였다.

하지만 아래 21개 선거구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즉, 노동자 밀집지역 특히 대공장 소재지에서 진보적 지지표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 주요 사업장 소재 선거구별 백기완 권영길 득표 비교

 

백기완

권영길

사업장, 공단

대구시 달성군

1.2%

1.9%

달성공단

인천시 동구

1.4%

2.1%

인천제철

인천시 부평구을

 

1.8%

대우자동차

인천시 서구

1.1%

1.8%

인천공단

대전시 유성구

 

2.0%

과기노조

대전시 대덕구

 

1.5%

과기노조

울산시 동구

1.0%

9.7%

현대중공업

울산시 북구

(분구)

14.0%

현대자동차

평택시 을

1.1%

2.4%

쌍룡자동차

청주시 흥덕구

1.0%

1.8%

청주공단

아산시

1.0%

2.1%

기아자동차,만도기계

전북 완주군

0.4%

0.7%

팔복공단

경주시 갑

1.2%(분구)

2.3%

풍산금속,자품공단

경주시 을

1.2%(분구)

3.3%

       ″

구미시 갑

1.0%(분구)

2.5%

구미공단

구미시 을

1.0%(분구)

1.7%

       ″

포항시 북구

1.0%(북구)

1.3%

포철,제철공단

포항시 남구

1.0%(북구)

1.7%

       ″

창원시 갑

1.0%

2.8%

창원공단

창원시 을

1.2%

3.8%

창원공단

거제시

1.0%

4.0%

대우조선


* 위 21개 선거구에서는 약 1.5배~10배 가량의 득표율 상승이 있었는데, 전국 득표율 0.2% 상승은 이에 힘입은 것이다. 이것은 곧 노동자 정치의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 반면 백기완 후보를 지지했던 지식계층에서는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아래 4-3 참조).

* 결과적으로,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는 집단 내부의 구성에 많은 변화를 보였다.



3. 선거 결과의 정치적 의미

1) 최초의 정권 교체, 지역연합의 승리

* 김대중의 승리는 여권이 분열된 가운데 국민회의-자민련의 지역 역포위 전략이 성공을 거둔 데서 비롯되었다. 요컨대 충청권에서의 득표 증가가 김대중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지역주의적 정치 행태가 완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 충청권에서의 김대중 득표 변화

 

14대 대선

15대 대선

대전

28.4%

45.0%

충남

27.9%

48.3%

충북

25.5%

37.4%


* 김대중의 득표는 충청권 뿐 아니라,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도 고른 향상을 보였다. 이는 TV토론을 통해 ‘반김대중 정서’를 불식시킨 결과이다.

* 한편, 호남권의 고정표는 더욱 증가되는 양상을 보였다.


            ▣ 호남권에서의 김대중 득표 변화

 

14대 대선

15대 대선

광주

95.2%

97.3%

전남

91.1%

94.6%



2) 40년 여당의 분열과 패배

* 여당 패배의 원인은 앞서 지적한 충청권에서의 김대중 약진과 이인제 등장으로 인한 영남권 지지표 분열이다. 이에 더불어 병역 시비에 휘말리고, 미디어 선거에 적절히 대응치 못하는 등 상대적 무능을 노정하였다.


          ▣ 영남권 김영삼 이회창 이인제 득표 비교

 

김영삼

이회창

이인제

부산

72.6%

53.3%

29.8%

경남

71.5%

55.1%

31.3%



4. 미흡한 득표 원인과 선거운동상의 문제점


1) 자원 동원 실패

* 우리는 애초에 목표하였던 조직과 돈을 동원하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에서 보여준 위력, 북한돕기에서 나타난 전국연합의 열의는 국민후보 운동에서 재가동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선거운동 계획 전체가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보았다.

* 민주노총 주요간부의 결합이 적었고, 다수의 조합원이 권영길 후보의 출마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또 상당수 지역연합이 실질적으로 국민후보 운동을 보이코트하였다.

* 총 예산 100억원 중 15억원만이 집행되었다. 30억원을 모금한다는 계획만이 있었을 뿐 애초부터 주도면밀한 재원확보 계획이 서있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재정위원회를 구성치 못한 것은 우리의 재정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이에 따라 홍보, 유세 등 선거운동 전반이 심각하게 위축되었다.

* 자원 동원의 실패 원인으로는 논의 및 추진 과정의 불충분함, 선거기조를 둘러싼 혼란과 분열을 들 수 있다.

* 선거기조를 둘러싼 혼란과 분열은 실재하였고, 자원 동원에 악영향을 미쳤다. 급조한 공동대오 내의 다양성, 지도력의 부재 등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 권리와 의무의 부조응이 있었다. 발언권과 의결권의 행사에는 적극적이었으나, 그에 수반되어야 하는 조직적, 재정적 의무이행은 회피하거나 방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2) 대중적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치 못함 - 범국민적 대안 세력으로 부각되지 못함

* 권영길 후보는 유권자에게 사표를 감수하면서 투자할만한 흡인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국민에게 이렇다할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 국민에게 권영길 후보의 슬로건과 비전을 전달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인 매스미디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슬로건과 비전 즉, 선거기조 전반이 잘못 설정된 것이 선거 실패로 이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① 매스미디어 대응 부재 - 객관적 제약과 주체적 무능력

*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매스미디어 특히 TV를 통해 후보들을 인식하고,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 후보는 전파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당했다.

* 이번 선거에서는 총 35회의 TV 토론, 대담, 강연이 있었으나, 권영길 후보는 군소 후보 토론에 한 차례, 대담에 두 차례 나갔을 뿐이다. 이는 방송토론위원회의 자의적 기준 등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기득권층의 의도적 배제 탓이다.

* 그러나 이와 같은 장벽을 넘을 만한 시도를 하였는가, 언론이 바라는 상품성 있는 뉴스를 제공하였는가를 되짚어 보면 우리의 주체적 노력 역시 부족하였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 그나마 출연 기회가 주어졌을 때도 준비 부족으로 역효과를 보았다. TV 출연시 그 준비를 미디어대책위 주관 하에 정책위와 비서실이 담당하였는데, 각 위원회 간의 협조가 원활치 않았으며, 후보에게 숙지되지도 못했다. 우리 후보가 TV에서 보인 것은 ‘준비되지 않은 부족함’이었다.

* TV 광고와 방송연설도 극히 부족하였다. 22회(440분)의 방송연설 기회 중 단 1회(10분)만을 활용할 수 있었다.

* 선거마스터플랜은 ‘미디어가 선거의 70%를 좌우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하였다. 그러나 홍보 예산의 1/4 만이 집행되었고, 미디어대책위는 투표일 열흘 전까지 위원장 혼자 일하는 조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후보와 정책을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② 선거 기조에 관련하여

* 선거 전략, 정책, 홍보 등의 오류에 의해 애초부터 선거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이에 선거기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위해 각각의 의견을 병렬한다.


◆ 전략 기조 - 후보의 상


- 국민후보는 타당한 설정, 정세에 따라 노동자후보로 유연하게 변화

국민후보는 노동자(또는 조직대중) + α전략이며,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타당하고 적절한 설정이었다.

첫째, 선거 결과가 보여주듯이 노동계급 일반의 정치의식이 대단히 저급하고, 조직화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득표 목표로 설정한 250만표 내지 100만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 외부의 3,500만 유권자 속에서 지지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또 선거가 일상적 시기에 준비된 조직에 비조직적 지지자를 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국민후보라는 기조 설정은 적절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둘째, 우리 후보의 경우 지지율과 반대율이 거의 비슷(타 후보는 지지율:반대율이 3:1~2:1)한 수준이었으며, 이는 주로 ‘운동권’ 이미지와 막연한 괴리감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미지 변신을 통한 대중 접근은 선거과정상 필수적이었다. 또 국민후보론이 가지는 ‘유연성’은 민중후보의 자족적 경직성을 지양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에 입각한 총파업 승리를 계승하고자 한 것이다.

셋째, 국민후보론은 말 그대로 선거기조였으며, 정세에 따라 후보의 상과 이미지는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 후보는 대상과 시기에 따라 노동자후보로서의 이미지와 범국민적 후보로서의 이미지를 적절히 병행하였으며, 정세와 득표 목표가 급변한 선거 후반기에는 주로 노동자후보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우리 후보를 명실상부한 ‘국민후보’로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 후보는 노동자 계급의 대표, 국민적 지도자라기보다는 ‘노동조합의 대표’로서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 몰계급적 국민후보

국민승리21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후보전술은 국민후보로서의 선거운동을 기조로 설정함으로서, 자본과 권력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당면한 노동자의 투쟁과 결합하면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망 속에 선거투쟁이 전개되기에는 애초에 한계가 노정되어 있었다. 탈계급적 후보전술로서 국민후보기조는 출발부터 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가 아니라 봉급생활자의 요구를 내세우면서 계급적 요구를 희석하고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주도적으로 관철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오히려 상실하였으며, 이러한 취약지점을 비집고 들어와 한국노총, 전국연합을 중심으로 유포된 정책연합에 기초한 정권교체론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짐에 따라 민주노총 조합원 숫자만큼도 득표로 연결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선거기조는 동시에 활동가, 선진노동자, 학생 등이 투쟁, 재정 등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 정책 기조


- 신보수주의에 대한 총체적 대안 제시 노력

국민승리 21의 정책은 신보수주의에 대한 총체적 대안(진보적 사회대개혁) 제시를 목표로 하여 준비되었으며, 이러한 기조는 선거운동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초기에 사회복지를 핵심공약으로 부각시키고자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개별 공약이 아니라, 신보수주의에 가장 대립되는 종합적 정책이자 사회상이라는 점. 우경화된 타 후보들과 우리 후보를 차별화시키기에 유리하다는 점.

그러나 우리는 (이슈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복지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킬 선전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또, 정세 변화에 의해 정리해고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치 못했던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정세 변화에 발맞추어 고용보장으로 핵심정책을 변화시켰으며, 이 변화는 후보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조직대중과의 결합을 높이는 성과를 낳았다.

- 노동 대중으로부터 이반돼 있는 정책

국민후보가 내건 정책공약은 여론조사를 근거로 내민 ‘사회복지 대혁명’이었으며, 따라서 정리해고, 퇴직금문제 등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응한 투쟁을 요구하는 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기란 애당초 어려운 것이었다.


◆ 홍보 기조


- 재정 곤란으로 홍보 차질

‘일하는 사람이 신명나야, 주저앉은 나라가 일어선다’는 홍보 기조와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로 오도되었다.

‘안전모와 넥타이가 일어나는’ TV 광고, 재벌해체 고용보장 공약이 게재된 법정 홍보물(8쪽짜리, 16쪽짜리)이 계획돼 있었으나, 재정 곤란으로 대폭 축소(TV광고는 2회, 법정 홍보물은 부재자용 2쪽)되어 홍보 물량의 절대 부족을 빚은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처럼 법정 홍보물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평등세상(서울시본부)>, <정치연대>, <국민승리21(경기동부연합)> 등 통제되지 않는 홍보물에 재원이 분산, 낭비된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 인지도와 선전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자기조건에 걸맞지 않게 파격적인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점은 조직 내부의 합의나 민주주의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전문 역량의 기술에 관련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 반동적 홍보 기조로 대중 이탈

15대 대선의 애국주의적 성격규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이 홍보 슬로건이었다. 휘날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일어나라 코리아’를 슬로건으로 내건 현수막과 벽보는 가히 압권이었다. IMF금융지원을 계기로 한 공황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구호는 국민적 상실감을 왜곡시킬 수 있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유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결국은 대중적 요구에 의해서 교체되는 해프닝을 연출하였으며, 대중적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 선거 기조 종합 평가


- 선거 기조를 실현할 자원 부족

선거기조를 둘러싼 내부의 긴장과 불협화는 실제보다 과장되고 조장된 측면이 크다. 국민승리21의 득표 실패는 선거기조의 오류가 아니라, 자원동원 실패와 미디어 대응 부재 때문이다.


- 몰계급적 선거 기조가 실패 자초

결과적으로 국민승리21의 실패는 전략, 정책, 홍보 등의 몰계급성에 의한 것으로 향후의 정치 활동에서는 이런 경향이 철저히 지양되어야 한다.


3) 선거 종반의 지지 이탈

*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권영길 후보의 예상 득표율은 약 2%로 내외로 추정되었다(11월 30일 한겨레 여론조사 - 2.1%). 군소후보의 특성상 사표방지심리에 의한 이탈이 당연하지만, 예상 득표율의 절반에 가까운 0.8%가 이탈한 것은 대단히 예외적이다.

* 이러한 이탈은 선거 종반 각종 언론의 ‘박빙 보도’가 유권자들의 사표방지심리를 자극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 특히 총유권자의 1/4을 차지하는 서울에서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 지역별 지지율 득표율 비교

 

11월 30일 지지율

실제 득표율

서울

4.7%

1.1%

부산 경남

2.3%

1.2%

1.7%

인천 경기

2.3%

1.5%

1.0%

대구 경북

0.9%

1.2%

1.5%


* 이는 백기완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학생, 지식인, 전문직 등이 최종 순간에 이탈하여 ‘전략적 투표’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 대비 득표 지수를 보더라도 고학력자가 많은 서울의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였다.


▣ 지역별 득표율과 민주노총 조합원 비교

 

유권자 대비

조합원 비율(A)

득표율(B)

조합원비율 대비

득표지수(B÷A×100)

전국

1.6%

1.2%

75

서울

4.0%

1.1%

28

광주 전남

1.0%

0.2%

20


* 그러나 이인제가 끝까지 500만표(20%, 11월 30일 15%)를 고수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인제는 이탈을 방지할만한 내적 유인력을 가지고 있었던 데 비해 권영길 후보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4) 준비기의 문제점

* 주요 조직 사이에서 국민승리21 노선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5월경부터이나, 본격적 선거운동에 나서기까지 미리 완비했어야 하는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전체 조직구성, 대중설득, 정당 등 세 가지를 검토하겠다.


① 광범위한 연대가 성사되지 못함

광범위한 연대틀을 구성한다는 구상하에 각급 부문운동 단체에 제휴와 협력을 제안하였으나, 초기에는 세 조직(민주노총, 전국연합, 진보연합), 후기에는 네 조직(정치연대)으로 국한되고 말았다(물론 비공식적 결의를 통해 많은 단체가 부분적으로 결합하였다). 이는 정세와 선거에 대한 판단이 상이했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 현실은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으로 분화했음에도 그를 아우르고, 장기적 전망을 제시할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부족하였던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핵심 대오를 엄호할 주변세력을 폭넓게 구축하지 못하였으며, 정치연대와의 통합 후에는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자초하였다.

② 대중적 논의와 추진의 불충분

국민승리21의 선거기조와 제반 활동은 조직 대중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리라는 전제하에 잡혀진 것이다. 그러나 조직원의 각오와 결의는 예상 수준보다 낮았으며, 조직 활동에 능동적으로 임하지 않았다.

이는 논의 및 추진 과정의 불충분함에서 비롯된 것인데, 시간상의 촉박함 등에도 불구하고 더욱 대중적인 논의와 추진을 통해 대중 동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③ 선거용 정당 문제의 혼란

국민승리21의 제반 활동과 재정 마련은 선거용 정당등록에 의해 가능했다. 즉, 선거용 정당을 등록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활동과 모금이 불법으로 규정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용 정당의 등록 과정에서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였다면 조직 내부 논의를 좀더 일찍 시작하고 결의 과정에 만전을 기하였어야 한다.


④ 정권교체론에 대한 논리 개발과 대응의 부족

정권교체론에 다소 안일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다. 초기의 국민승리21 노선은 ‘김대중 필패론’에 입각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반전된 이후에도 논리를 변경 보강하지 않았다. 정권교체론의 영향력 차단을 주요 활동 중 하나로 삼았어야 한다.


5) 의사결정력과 집행력의 취약함

* 국민승리21은 시의적절한 판단을 하고, 일사불란한 행동을 하는 선거운동 조직이라기보다는 일상적 시기의 단체협의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상임집행위원회는 정세 변화에 따른 정확하고 발빠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논쟁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였다.

* 집행력 역시 취약하였다. 중앙 상근자들과 지부 운동원들은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자기 판단이나 관성에 따라 행동하였다. 지휘 통제력의 부족은 경기동부와 서울시본부가 중앙 방침과 무관하게 선거운동을 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 민주진보 진영의 절대다수를 국민승리21로 묶어 세운 것은 매우 성공적인 성과이다. 하지만, 각 세력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킬 만한 계기와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고, 할거구조와 선거운동본부의 무기력함-무대응이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 최고 지도부에게 부여된 각 조직간 조절과 융합, 조직원에 대한 비전 제시, 모범과 헌신 등의 역할은 적절히 수행되지 않았다.



5. 의미와 교훈


1) 재벌해체 - 고용보장 정책의 승리

* 국민 대중의 우리 정책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노동자’, ‘재벌해체’, ‘고용보장’ 정도일 것이며, 최근 상황은 우리 정책의 올바름과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다.

* 이 정책을 노동자 밀집지역과 함께 우리의 정치적 자산으로 남겨야 한다. 이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켜, 국민들이 ‘재벌해체’, ‘고용보장’과 우리 대오를 하나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대선 성과의 올바른 계승이다.


2) IMF 정국의 영향

* IMF 사태와 고용 불안은 최종 득표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후보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상승시켰으며, 민주노총 내부의 단결을 촉진시켰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 첫째, 초보적 계급의식의 대두

과거 아무리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더라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 관계로부터 ‘해방된’ 투표 행태를 보여왔다. 이에 비해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고용 문제와 기표 행위의 연결은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최초로 계급적 투표 행태가 대두되었음을 보여준다.

* 둘째, 대자적 계급의식에 다다르지 못한 경제적 이해 수준

그러나 선거 초반부터 내세운 재벌해체, 국가보안법 철폐, 사회복지 확대, 진보정당 건설 등의 공약에 노동자들이 별 무반응이었던 것은 아직도 가시적인 생활상의 이해, 곧 단시기의 경제적 이해에 주로 착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일상적 정치활동의 축적 없이는 작은 승리도 기대할 수 없다

* 울산, 창원 등의 득표는 노동조합에 기초한 것만은 아니다. 여타 선거구에 비해 나은 성과를 낳은 지역 대부분은 오랜 선거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1.5%대를 넘은 선거구가 관악(갑 : 1.5%, 을 : 1.7%)이라는 사실도 축적된 선거활동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 국민후보 운동의 실패에는 백선본의 경험이 축적되지 못하고 유실된 것도 적지 않은 장애로 작용하였다.

* 일상적 정치활동, 특히 정당을 통한 대중 접근 없이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5월 지자제와 2000년 총선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도 짧다. 지금부터 지역 주민에 밀착한 준비와 대응을 도모해야 한다.



6. 총평


유일한 활로, 최선의 선택, 오류보다는 한계, 정치세력화의 단초

국민승리21 운동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또 현재 우리 운동이 다다른 지점과 전망, 정치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유일한 길이었다. 만약 우리가 이 길 이외의 것을 택하였다면, 지금 한창 조직 대중의 정치적 분열과 무기력함에 홍역을 앓고 있거나, 김대중 정권과 정리해고에 대한 태도, 한국노총과의 관계 등을 둘러싸고 곤혹스런 분란과 치욕에 잠겨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우리 운동의 발전이 부여한 역사적 책무에 충실히 임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정당성을 폄하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노동조합이 과감하게 정치에 나선 것, 독자 정치세력화에 주저하던 전국연합 등의 재야가 대의를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한 것은 우리 진보운동사 최초의 일로, 이미 시작부터 ‘절반의 승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절반의 승리’를 더욱 다지기 위해 공격적 전진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현실의 엄혹함과 우리의 부족함에 의해 좌절하였다. 성은 쌓았으나, 성 밖으로의 공격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재 다다라 있는 지점을 냉정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즉, 단위노조의 현장투쟁과 가두에서의 재야운동에 의존해온 지난 10년 간의 우리 운동이 국민승리21의 30만표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동지들의 노고와 곤궁 속에서 쾌척된 15억원으로 작지만 소중한 성과, 노동자계급 내부의 정치세력화 단초를 발굴하였다. 국민후보 운동은 무엇에 의해 평가되는가? 이 단초를 어떻게 발전시키는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7. 전망과 과제 - 간략한 서술


1)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도전

- 현재 발표되고 있는 어떤 경제 지표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중단기적 전망을 예측할 수 없다. 외국 투자기관의 평가대로 장기 회복 기반은 건실하지만, 회복 여부와 회복 시기 등은 극히 ‘유동적’이다.

-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이 가져올 영향이 무엇인지는 명약관화하다. 근로 대중의 실질 소득 저하, 빈부격차 심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이다.

- 최근 나타나고 있는 여성 우선 해고, 복지후퇴, 환경기준 완화 등의 현상은 IMF 정국이 지난 10년간 우리가 쌓아온 성과에 대한 도전이며, 민주주의의 전반적 후퇴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김대중 당선자 역시 대선 공약과는 달리 IMF의 신보수주의적 정책에 적극 협조할 것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같은 ‘신공약’의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따라서 김대중 정권 전반기는 다국적 자본을 등에 업은 김대중의 공격과 근로대중의 대응으로 점철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긴장과 충돌이 가시적인 전선으로까지 발전할 지는 불분명하다.

- 김대중 정권은 최초의 정권교체를 통한 국민적 기반과 ‘최악의 경제 상황’이라는 최선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우리의 무기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국민의 분노는 아직도 개인적이며, 방치될 때는 체념과 동조로 급변할 것이다.

- 정치의 가변성 역시 경제 상황 이상이다.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자민련, 구심없이 방황하는 한나라당 등을 볼 때, 기성 정치권의 재편 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


2) 대선 성과를 당면투쟁으로 !  당면투쟁 승리로 진보정당 건설 !

- 우리는 다음을 우리의 핵심 과제로 삼고, 면밀한 계획을 세워 즉시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 98년 전반기에 우리는 지자제 선거에 대응하고, 재벌해체, 고용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당면투쟁을 수행하여야 한다. 이 양자는 선택적 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상호 발전하여야 하는 우리 운동의 양 측면이다. 당면투쟁의 성공은 지자제 선거의 성과로 연결될 것이며, 지자제 선거에서의 승리는 당면투쟁을 통한 정세 주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현 정세는 지난 10년 간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성취한 민주주의와 근로대중의 복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어떠한 이유로도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근로대중에게 전가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당면투쟁을 지난 10년의 성과를 사수하고, 대중과 긴밀히 결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분기점으로 자리매김되도록 해야 한다.

- 지자제 선거는 국민승리21의 대선 성과를 실질적으로 물질화시킬 기회이며, 2000년 총선을 향한 통과의례이자 도약판이다. 전국 각급 선거에 모두 대응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정치적 상징성에 의한 미래투자, 당선 가능성에 의한 집중투자를 적절히 병행하면 귀중한 성과를 남길 수 있다.

- 내외 조건은 운동 질서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유지돼온 ‘재야운동’의 조직 형식과 운동 방식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다양한 수준의 단체가 모인 ‘재야협의체’는 정치적 구심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조직(정당)과 대중조직으로의 분별 정립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 운동 질서의 재편은 조직 형식의 재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 질서의 재편은 지도사상, 지도주체, 운동관행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쇄신, 재구축을 기반으로 하여야 한다.

- 진보정당 건설은 국민승리21의 대국민 공약이다. 국민승리21은 조직 대중과 정치적 중핵 사이에 뚫린 ‘최초의 공식 통로’이다. 그 절차와 형식이 어떠한 것이든, 진보정당은 국민승리21의 확대, 발전, 심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진보정당의 창당은 미래의 추상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로 우리에게 강제되고 있다.

- 창당을 위해서는 당의 대중적 기반, 사상, 재정, 창당 경로, 각급 조직과의 관계, 중장기적 목표와 발전 전략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어야 하며, 지금 즉시 구체적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1998-02-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4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