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
가토 고이치 (加藤光一)
이 글은, 일본의 진보월간지 「經濟」 1998년 8월호(도쿄, 新日本出版社)에 실린 加藤光一의 ‘韓國の小農․家族經營の現代的位相 ꠏꠏ 經濟危機にある韓國の農業․農村問題ꠏꠏ’를 번역한 것으로, 지난 호에 이은 제2회 분이다.
농민층의 분해를 논함에 있어서 농업 내부에서의 생산력 발전을 거의 고려하고 있지 않은 점, ‘지주소작관계’의 형태규정과 성격규정을 혼동하고 있는 점, 서두에서 ‘통계’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했으면서도 막상 분석에서는 실증주의적으로 통계를 절대시하는 점 등등 몇몇 논점이나 방법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최근의 자료까지를 아우른 훌륭한 글이라고 판단되어 번역․소개하기로 하였다. 자본주의 발전을 이론적․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농업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엷어져 있는 최근의 분위기이기에 특히 의의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주소작관계의 성격에 관해서는 <역자 보론>에서 간단히 논해 두었다.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2)
ꠏ 경제위기에 있는 한국의 농업․농업문제 ꠏ
가토 고이치 (加藤光一)
日本․信州大學 敎授
二.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형태
이상과 같은 경과 및 상황에 기초하면서,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의 농업구조상의 문제의 하나인 농지임대차관계에 관해서 보기로 하자. 현재 광범하게 전개되고 있는 농지임대차관계는 80년대 후반의 한국자본주의논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중요한 논점(이른바 ‘再生小作制’론)으로서 논의된 적이 있다. 그러나 농지임대차관계의 기본적인 성격을 제2차대전 전 식민지하에서의 재생소작제(= 전후 일본의 지주제 부활론과 묘하게 유사하다)라고 하는 사고는 뒤로 밀려나고, 한국의 경제발전과정 속에서 나타난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조응한 과도적인 형태의 소농적 차지형태라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정설로 되어 있다.1) 그 형태가 어떤 것인가를 검토해 보자.
1. 농지임대차(小作)의 전개
그간의 소작지(농지임대차지) 비율의 추이를 <표 5>에서 보면, 60년대 초두에 14%였던 것이 점차 증가하여 70년에는 17.6%, 80년대 전반에는 20%대, 85년에는 30.5%로 되고, 94년 이후로는 40%대로, 95년 현재로 42.2%까지 되어 있다. 표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농지개혁 후인 1951년에는 8%였기 때문에 그동안 약 5배나 확대된 것으로 된다. 또한 총경지의 4할 이상이 소작지(농지임대차지)라는 것은 차지농업형태가 전개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적 차지형태’인가, 그렇지 않으면 ‘소농적 차지형태’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자(前者)가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소농적 차지형태’임은 사실이다.
<표 5> 소작지율 및 추정 소작지의 추이
|
1962 |
1965 |
1970 |
1975 |
1980 |
1985 |
1986 |
1987 |
소작지율 (%) |
14.1 |
16.4 |
17.6 |
13.7 |
21.3 |
30.5 |
31.5 |
31.1 |
총경지 (1000ha) |
2,063 |
2,256 |
2,298 |
2,240 |
2,196 |
2,144 |
2,141 |
2,143 |
추정총소작지(1000ha) |
,291 |
370 |
404 |
307 |
468 |
654 |
674 |
666 |
총농가호수 (1000호) |
2,469 |
2,507 |
2,483 |
2,379 |
2,155 |
1,926 |
1,906 |
1,871 |
|
1988 |
1989 |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소작지율 (%) |
34.8 |
36.5 |
37.4 |
37.4 |
37.2 |
39.4 |
41.2 |
42.2 |
총경지 (1000ha) |
2,138 |
2,127 |
2,109 |
2,091 |
2,070 |
2,055 |
2,033 |
1,985 |
추정총소작지(1000ha) |
744 |
780 |
789 |
782 |
770 |
810 |
838 |
838 |
총농가호수 (1000호) |
1,826 |
1,772 |
1,767 |
1,702 |
1,641 |
1,592 |
1,558 |
1,501 |
주 : 추정소작지는 ‘총경지 x 소작지율’이기 때문에 실제의 총소작지와는 다르다. 단, 총소작지를 집계한 통계는 작성되어 있지 않다.
출처 : 소작지율은 ꡔ농가경제통계ꡕ(각년도판). 총경지 및 총농가호수는 ꡔ농림(수산)통계연보ꡕ(각년도판) 한국농림(수산)부.
역주 : 원문에는 1962년 이후 1985년 사이에도 매 연도의 자료가 기록되어 있으나, 중간 해의 자료들은 생략하여도 추세를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어 5년 단위로만 기록하였다.
김성호(金聖昊) 씨는 이 과정을 지가수익률을 기초로 한 상대지가(地價) 등도 감안하여
1951~67년 : 소작지주제의 부활 (고지가 단계)
1967~74년 : 소작지주제의 쇠퇴 (저지가 단계)
1974년 이후 : 자산적 지주제 (고지가 단계)
라고 규정하고 있다.2)
여기에서 말하는 ‘소작지주제’란 과거의 지주소작제이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재생소작제’, 즉 해방 전 식민지시대의 지주소작제를 가리킨다. 이렇게 본다면 거의 74년 단계까지는 ‘재생소작제’였다고 위치지워진다. 과연 그렇게 평가해도 좋은지 여부는 별도로 하더라도, 해방전의 색채를 띤 측면이 존재했음은 사실일 것이다. 한국의 농지개혁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불철저했기3) 때문에 농지개혁 후의 농지이동의 대부분이 과거의 소작인 내지는 농업노동자(농지개혁 후에는 영세하긴 하나 ‘자작농적 토지소유’였지만)의 그것이었고, 그들은 농촌에 머무르면서 본래의 소작인이나 농업노동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개혁 후인 50년대에는 적지 않게 ‘재생소작제’였음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60년대 이후의 소작지의 증대는 자작농의 소작농으로의 전락, 그것도 단순한 소작농으로의 전락이 아니라 자작농의 차지확대에 의한 규모확대라고 하는 ‘자소작 전진(前進)’이고, 자작지와 소작지가 함께 증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시기는 62년도부터 시작되는 ‘개간촉진법’ 등에 의한 총경작지 면적의 대폭적인 증대가 이루어진다. 그 증가부분의 자작지와 소작지의 비율이 거의 1대 1.4임을 고려하면 ‘재생소작제’라고 말할 수 없다.
또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 일시적으로 소작지율이 거의 예외적으로 저하하고 있다. 이 시기는 영세한 소작농의 대량적인 이농, 그에 기초한 소작지의 지주에의 반환, 거기에 일부 소작농의 매입에 의한 자작농화(이 시기의 상대적인 ‘고미가’에 지탱되어)가 이러한 예외적인 소작지율의 저하를 초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 이래로 전개되는 소작률의 확대는 기본적으로는 대량의 이농 ꠏꋼ 대부농지의 증대 ꠏꋼ 소작관계의 증대라고 하는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소작관계를 가리켜, 앞에서 언급한 ‘자산적 지주제’라고 규정하기에는 그 내부와 관련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자산적 지주제’라는 말(文言)에서만 판단한다면 농지의 ‘사용가치’의 측면보다 ‘교환가치’의 측면이 강조되고, 자산소득(capital gain)을 노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사실 도시근교에서는 지가등귀가 일어나고, 농지전용(대규모 택지개발, 공공 전용 등에 의해)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지가(高地價) 압력과는 관계없는 지역에서의 농지임대차의 전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1986년에는 농정당국에 의해서 농지유동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제정되었는데, 시행령의 성립이 늦어져 실제로 시행된 것은 1990년 9월부터였다. 그것이 곧바로 현장인 농촌에 반영되지 않는 것이 또한 한국이고, 즉시 소작률을 대폭적으로 증대시키고 있지는 않다. 추정총소작지의 면적도 적어져 있고, 94년부터는 그 면적도 증가하지 않고 있다. 또 ‘농지임대차관리법’을 흡수하여 도입한 ‘농지법’이 1993년 12월에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명백히 ‘정체’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형태를 몇몇 실태조사(스스로 실시한 조사를 주체로)를 기초로 검토해 보자.
2.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형태
- 임대인(지주)과 임차인(소작)의 성격과 소작료 수준 -
그런데 <표 5>에서 최초로 확인한 것처럼 이 높은 소작지율(농지임대차율)은 기본적으로는 ‘소농적 차지형태’이다. 표에서는 생략했지만 경지 소유별 농가의 동향을 보아도 반절 이상은 자소작농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소농적 차지형태’이다.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는 농업기계화의 급속한 발전을 배경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계층의 차지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그러한 상층농도 소작료를 지불한 후에도 이윤범주가 성립하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적 경영’은 결코 아니고,*4) 그 규모확대도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인’(어쩔 수 없다고 하는) 대응도 많다.
<표 6> 전라북도 김제시 D 지역 소작관계의 실태 (1995년 8월)
농가번호 |
대차별 |
면적
(평) |
연도 |
상대 와 이유 |
소작료 형태 |
소작료
수준 (A)
마지기당 (kg) |
수확량
(B)
마지기당(kg) |
소작료율 A/B
(%) |
1 |
차 |
3,508 |
87 |
아버지한테서이고, 연간생활비조로 400만원을 내고 있다. |
|
|
|
|
1 |
차 |
856 |
90 |
본래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지금은 전주시로 이농해 있다. |
定租法 |
160 |
280 |
57 |
1 |
차 |
5,197 |
88 |
고모네로, 10년 전에 이농하여 지금은 안양시에 살고 있다. |
정조법 |
160 |
280 |
57 |
1 |
대 |
1,500 |
89 |
본래는 밭이었는데 지금은 복숭아밭으로 전주 사람에게 빌려주고 있다. |
|
연간
80만원 |
|
|
4 |
차 |
2,400 |
88 |
동생(현재 서울)한테 빌리고 있다. |
정조법 |
160 |
280 |
57 |
농가번호 |
대차별 |
면적
(평) |
연도 |
상대 와 이유 |
소작료 형태 |
소작료
수준 (A)
마지기당 (kg) |
수확량
(B)
마지기당(kg) |
소작료율 A/B
(%) |
4 |
차 |
2,400 |
88 |
아버지 땅이고, 아버지가 필요한 만큼 쌀을 드리고 있다. |
|
|
|
|
4 |
차 |
2,400 |
87 |
동생 (가장 먼저 서울로 이사)의 땅 |
정조법 |
140 |
280 |
50 |
5 |
차 |
1,200 |
83 |
친척 |
정조법 |
140 |
280 |
50 |
6 |
차 |
1,200 |
83 |
동생 (현재 서울) |
정조법 |
160 |
280 |
57 |
7 |
차 |
1,200 |
88 |
40년 전에 이농, 현재 전주에 거주 |
정조법 |
160 |
280 |
57 |
7 |
차 |
1,200 |
88 |
지주는 서울에 있지만, 소작료는 같은 마을에 사는 그 누이에게 지불 중 |
정조법 |
160 |
280 |
57 |
13 |
대 |
4,800 |
88 |
겸업하고 있기 때문에 이웃에게 빌려주고 있다 |
정조법 |
100 |
280 |
36 |
14 |
차 |
2,400 |
90 |
이웃이 노인이라서 |
정조법 |
160 |
280 |
57 |
14 |
차 |
1,200 |
88 |
전주 사람의 땅 |
정조법 |
160 |
280 |
57 |
18 |
차 |
1,200 |
90 |
이웃의 노동력 부족 때문에 |
정조법 |
160 |
280 |
57 |
19 |
차 |
2,400 |
90 |
서울 친척 땅 (서울에 살지만 상속지) |
정조법 |
160 |
280 |
57 |
20 |
차 |
1,800 |
68 |
하천부지에 있는 국유지 |
|
연간
8만원 |
|
|
26 |
대 |
7,200 |
63 |
이웃사람 |
정조법 |
160 |
280 |
57 |
28 |
대 |
1,200 |
90 |
이웃사람 |
정조법 |
16 |
280 |
6 |
29 |
대 |
3,600 |
89 |
아들에게 (필요한 쌀을 받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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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① 1마지기는 200평.
② 수확량 및 소작료는 쌀(精米)로 환산되어 있다.
역주 : 농가번호 28의 소작료 16kg은 160kg의 오기(誤記)이고, 소작료율은 그에 기초해서 (잘못) 계산된 듯하다.
그러면, 약간 번잡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조사사례4)를 기초로 검토하여 보자. <표 6>은 1995년에 조사한 전라북도 김제시 D지역(里)의 농지임대차관계의 실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곳의 총 농가호수는 29가구이고, 이 지역의 평균적인 마을이다.
그 경영규모별 농가구성은 3헥타르 이상이 5가구(17.2%), 2~3헥타르 층 9가구(31.0%), 1~2헥타르 층 4가구(13.8%), 0.5~1.0헥타르 층 6가구(20.7%), 0.5헥타르 이하 층(완전임대농가도 포함) 5가구(17.2%)이고, 논농사 비율이 거의 97%인 논농사 지역이다. 차지농가는 3헥타르 이상 층 3가구, 2~3헥타르 층 4가구, 1~2헥타르 층 1호, 0.5~1.0헥타르 층 2가구(20.7%)로서, 총 농가 29가구 가운데 차지농가의 비율은 34.5%이다. 또, 임대농가는 3헥타르 이상 층 1가구, 2~3헥타르 층 1가구, 0.5헥타르 이하 층(완전임대농가도 포함) 3가구로서, 임대농가의 비율은 17.2%이다.
<표 6>과 이 지역의 특징으로부터 농지임대차관계의 기본적인 동향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로, 농지임대차관계는 ‘상층 = 임대인’, ‘하층 = 임차인’이 아니라 전 계층에 임차인이 존재하고, 또 지역 내부에서 농지임대차가 성립하는 지역(리) 완결형이 아니라 지역 외부 및 부재지주가 주요 임대인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한국 전체의 움직임과 같은 동향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친척관계가 기본적으로 많다. 셋째로, 정조법(정량) 소작료이다. 다만, 원(화폐)으로 환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현물로 지불되는 경우가 많다. 넷째로, 소작료율이 극히 높다(50~70%).
이러한 것을 기초로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형태가 어떤 것인가를 임대인(지주)과 임차인(소작)의 성격과 소작료 수준으로부터 간단하게 고찰해 보자.
우선 임대인(지주)은 농민지주와 비농민지주가 있는데, 전자는 대부분 고령이 되어 경작할 수 없게 된 경우와 농업 외의, 예컨대 면사무소 직원과 같은 겸업농가인 경우가 많다. 또한 비농민지주인 경우에도 이농한 사람의 토지나 상속에 의한 농지인 경우가 많다(물론, 일부에는 투기적 목적의 농지소유도 존재하지만). 이에 미루어 보아, 자산가치의 증대를 노린 농지소유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소작료는 현물로 지불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농한 사람의 식량으로도 되고 있다.
다음에 임차인(소작)의 경우, 상층농가만이 임차인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전 계층에 분포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결코 자본주의적 차지형태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소농적인 차지형태이고, 상층농도 증간층도 ‘보완형(借り足し型)’ 차지형태인 경우가 많다.
다음에, 소작료 수준은 50~57%로서 극히 고율이다. 이 고율의 소작료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특히, 땅을 빌리는 것이 적극적으로 빌리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어쩔 수 없어 빌리고 있는 상황인 현실에서는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임차인 시장으로 되어가고 있고, 이 고율도 저하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소작미가 이농한 사람의 식량이라든지, 또는 고령 농가의 생활비라는 의미에서도, 순수하게 경제학적으로 딱 잘라 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점에 오히려 중요한 의미가 존재한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 소작료는 한국의 ‘가족’제도나 농촌집락인 ‘마을’의 논리나 상호부조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5)
이상으로부터, 농지임대차의 현대적 형태는 결코 ‘자산형 지주제’가 아니고 오히려 소농․가족경영적인 ‘소농적 차지형태’라고 성격지을 수 있다.*5)
三. 논농사 지역의 소농․가족경영의 위상
그러면,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이 어떠한 것으로서 정책적으로 위치지워져 있고,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1997년 여름에 조사한 사례도 참조하면서 보기로 하자.
우선 정책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농가변동에 의해 고령화 및 농업노동력 부족 하에서 구조정책이 취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 조응한, 경쟁력 있는 농가나 농업회사법인의 육성이다. 이 점에서는 일본의 농정기조(農政基調)와 일치하고 있다(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의 정책당국은 일본의 정책을 뒤따르든가, 논의되고 있는 것을 앞서 도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주 일본의 연구자들은 한국농촌을 주마간산 격으로 조사하고 나서 시간지체(time-lag)론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한데, 현실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특유의 것 ― 농가변동의 차이, 농촌에서의 농가구성의 차이, 가족․마을제도의 차이 등 ―이 존재한다.
1. ‘새로운 농업담당자상(農業擔當者像)’으로서의 농업법인의 현실
WTO체제를 향한 한국판 ‘농정개혁’은 1989년 ‘농어촌발전종합대책’에서 처음 구조정책, 구체적으로는 농지 유동화, 대규모 농가․법인의 육성을 내걸고 출발했다. 그를 위한 법률로서 1990년에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국가적 지원책을 재정적으로도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 제6조와 제7조는 각각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을 규정하고 있다. 그 설립자격은 농업인 및 농산물 생산자 단체인데, 그 출자제한을 두어 전자(영농조합법인)는 조합원 1인의 출자액이 총출자액의 3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농업인이 자격이다. 후자(농업회사법인)는 비농업인의 출자액의 합계가 총출자액의 2분의 1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는데, 명백히 농업 외의 참가를 인정하고 있다(주식회사도 가능하다). 농지소유는 모두 인정되고 있지만, 후자에 관해서는, 주식회사는 불가로 되어 있다. 이러한 농업법인이 한국의 ‘새로운 담당자상’으로서 상정되고, 정책적으로도 재정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부터 설립되어 1996년 말까지 영농조합은 3,487법인, 농업회사는 1,419법인으로 합계 4,906개 법인이 존재하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일본의 농업생산법인(1995년도)의 총수가 4,150이기 때문에, 일본의 그것보다도 많다. 또 이 법인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금액은 1991~96년 사이에 합계 9,426억3천만 원이나 된다.
이러한 농업법인이 어떠한 현실에 있는가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997년 여름에 조사한 보고5)에서 보면, 극히 재미있는 결과를 엿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책지원금액은 상당하지만, 융자된 정책자금에 대한 상환능력을 묻는 항목에 의하면, ‘기한 내 상환 가능’이 21.84%, ‘현재에는 가능, 장래에는 불투명’이 8.05%, ‘현재에는 불투명하지만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29.86%, ‘장래 불투명, 적기 상환 불가능'이 25.29%, ’기타‘가 25.29%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농업법인이 과연 전망이 있는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는가 극히 의심스럽다.
또한 농업법인의 발전방향에 관한 항목에 의하면, ‘생산협동체로서 독립적인 사업화’가 11.49%, ‘출자농가를 도와 소득향상에 기여’가 11.49%, ‘지역 농업발전에 기여’가 74.71%, ‘기타’가 2.3%로 되어 있다. 그것에 의하면, 지역 농업발전에 기여한다. 바꾸어 말하면, 고령화․노동력 부족이라는 현실 하에서는 이러한 법인이 지역의 담당자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의 전망과 관련해서는 ‘현상유지’가 32.18%, ‘규모축소’ 12.64%, ‘규모확대’ 55.17%로 되어 있어, 확대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겨우 반절을 조금 넘고 있고, 나머지는 현상유지나 규모축소를 고려하고 있다. 특히 농업회사법인 쪽에 축소라고 답한 것이 25%나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법인에 정부가 전망하는 ‘새로운 담당자상’으로서의 실태가 과연 존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또한 일본의 농업생산법인보다 많다는 점도 반영되어, 단기간에 법인이 과열 설립된 데에 대한 반성도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는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많기 때문이다. 법인의 이러한 과열 설립에 대해서는, ‘현재가 적당’이 14.94%, ‘축소하지 않으면 안된다’가 59.77%, ‘더 설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가 12.64%, ‘기타’가 12.64%로 되어 있고, ‘축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실로 6할이나 된다.
이렇듯, 정책당국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러한 농업법인에 전망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실의 소농․가족경영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그 보완적인 조직으로서 생각하는 쪽이 좋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많다(구체적인 농촌조사에서의 의견). 그러면 다음에, 이러한 농업법인 특히 농업회사법인을 설립시키고 있는 논농사 지역의 농가구성 = 소농․가족경영이 어떠한 현대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2. 어떤 논농사 지역의 농가구성
ꠏ 1997년 여름 현재의 소농․가족구성 ꠏ
<그림>은 1997년 여름에 실시한 김제시 S리의 농업구조나 농가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개념도(槪念圖)이다. 이 지역은 앞에서 말한 농업회사법인이 설립되어 기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농가구성 = 소농․가족경영의 존재형태는 어떠한가를 봄으로써 한국의 농업․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 전라북도 김제시 S리의 농업구조 및 농업구성 개념도
타지역에서
농작업 위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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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역(리)에서
농작업 위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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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상층
1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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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회사법인
(수탁조직)
3가구 |
콤바인2대
트랙터2대
이앙기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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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은
이웃지역의
2명으로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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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축
9,000평
(3ha) |
(농작업 위탁) (농작업 위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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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없는 농가 (일부임대농가) 6가구 |
대
부 |
기계없는 농가
(일부차지농가)
11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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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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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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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임대농가 2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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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지주
(이 마을 이농자) 4명 |
부재지주
(투기목적) 4명 |
(주) 1997년 7 ~ 8월에 조사한 것이다.
조사대상 지역(里)은 자연촌락이고, 약 10년 전에는 농가호수가 33가구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농가도 포함하여 23가구로 되어 있고, 10가구가 솔거이촌하였다. 현재 경작면적 3헥타르 이상인 3가구의 상층농가에 의한 농업회사법인과 자작상층농 1가구의 이른바 3헥타르 이상의 농가군(農家群)과, ‘기계 없는 농가(일부 땅을 빌려주고 있는 농가)’ 6가구, 마찬가지로 ‘기계 없는 농가(일부차지농가)’ 11가구, ‘완전히 땅을 빌려주고 있는 농가’ 2가구의 농가군이라는 양극분해적인 농가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들 ‘기계 없는 농가’는 이른바 농작업 위탁을 하여 비료, 재배, 관리 과정을 직접하고 있는 농가이고, 또 그 가운데에는 ‘땅을 빌리고 있는 농가’도 다수 있다. ‘완전히 땅을 빌려주고 있는 농가’는 고령농가와 공무원이다. 따라서 이 분해의 지표는 경지면적규모라기보다는 농업기계체계를 구비하고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3가구의 농업회사법인은 본래 이웃 지역의 2가구와 함께 공동으로 기계화영농법인으로서 출발했는데, 농지법의 제정, 가트 우루과이라운드의 대책으로 기계화 영농법인에게는 우선적으로 보조금이 제공되게 되어 트랙터․콤바인․대형이앙기 등 기계화 일관체계를 획득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농작업 수탁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하였다.
한편에서, 농작업을 위탁하고 있는 농가는 기계를 전혀 소유하지 않고 완전히 비료, 재배, 관리 과정만을 하는 ‘수동적’ 농지임대차로 존재하고 있다. 농로도 정비되어 있고, 1필(筆)당 1,200평(40a 구획)으로 비교적 농작업도 하기 쉬워 대규모 농가가 성립될 조건은 정비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이 농업회사법인에 농지를 임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자신과 마찬가지의 농가에 임대하고 있다. 기이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은 왜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농가에 임대하지 않고, 같은 규모의 농가, 그것도 ‘기계 없는 농가’에 임대하는가이다. 여기에는 두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는, 농업회사법인으로는 ‘토지’가 거칠어지고, 둘째로는 임대차관계가 ‘친척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재지주, 그것도 투기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농업회사법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책당국이 전망하는 ‘농업회사법인’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리(里)의 농업이 유지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 법인은 보조금을 노린 조직으로서의 측면이 강하고, 농업기계는 개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농가이기도 하다. 또한 현실적으로는 ‘농작업의 수탁’밖에 없고, 지역 내 농가로부터의 작업수탁이 아닌 것 때문에도 작업수탁에서 임대차로 이행할 전망은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언제 다시 개별경영으로 분해될지 모른다고 한다. 차기 갱신시에는 분명히 보조금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조직은 해체되고 개별경영으로서 재생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남아 있는 농가도 적극적으로 경영개선을 꾀하려 하고 있지 않다. 그 점에서 본다면, 위기․해체에 있는 한국의 농업 중에서 소농․가족경영 또한 위기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농업․농촌의 현실은 극히 엄혹하다. [한국의 농업이 나아갈 길은] 이 구체적인 소농․가족경영의 존재형태를 인식하여, 종래의 개발독재적인 위로부터 정책을 유도하는 구조정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과 농가 스스로 선택할 다양한 메뉴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맺음말
ꠏ 경제위기 하의 한국의 농업․농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ꠏ
특히 현재 한국은 IMF 관리하에 있는 경제위기 상태이다. 따라서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수억제책을 포함한 경제구조조정이 실행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현 단계 이상의 대량실업이 발생한다. 한국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그러한 대량의 실업자는 일부 농촌으로 귀향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농촌․농업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해체에 박차가 가해질 것이다. 농산물시장은 더욱더 국제화되어 값싼 농산물이 대량으로 들어오고, 농업으로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더욱더 증가하는 추세이다. 보조금체계 하에서 성립되어 있는 농업법인도 그 보조금을 바랄 수 없게 되고, 많은 곳에서 해산또는 개점휴업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도 과열 설립이라고 얘기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전망’을 발견할 수는 없다.
거기에서 새삼 한국의 소농․가족경영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가 문제로 될 것이다.
첫째로, 한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이른바 ‘압축형 경제발전’은 ‘압축형 농업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압축형 농업해체’를 가져왔다. 동시에 그것은 ‘20세기 말 농업공황’의 현실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농업구조조정이 세계적인 경제구조조정 = 20세기 말 공황 하에서 진행되려고 하고 있는데, 지구환경문제까지도 시야에 넣은 소농․가족경영을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가 문제로 되어 있다(소농적 농법이 가지는 지구환경 유지 능력의 평가).
둘째로, 변모해 온 소농․가족경영은, 한편에서는 ‘소농적 차지형태’를 창출시켜 왔다. 이 형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일본도 포함한 ‘동아시아 소농사회’에 공통의 문제로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로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소농’이라는 경제학적 명제의 해명으로 된다.
셋째로, 그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기초로 어떻게 구조정책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단지 ‘농지 유동화 ꠏꋼ 규모확대’라고 하는 논리가 아니라 제1의 지구환경문제도 고려한 정책이 아니면 안된다. 그를 위해서는 미국 자본주의를 위한 ‘세계 표준(global standard)’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의미의 ‘공생의 대지’를 한일 공동 또는 ‘동아시아’ 공동으로 탐구할 길을 제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역자 보론 >>
‘소작제’의 성격 규정에 대한 간단한 메모
1. 필자 가토 고이치는 이 글에서 현 시기 한국의 소농․가족경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스스로 ‘아포리아(aporia)한 중요한 논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소작제’의 성격문제에 대해서 논하면서 그것을 “한국의 경제발전과정 속에서 나온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조응한 과도적 형태의 ‘소농적 차지형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그 자체만을 떼어서 본다면, “부족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서 오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류는 없을지 모르지만 부족한’ 이유는, 그것을 고립적으로 고찰할 때 그것은 정당한 ‘형태규정’이자 ‘이행적(移行的)․과도적 성격규정’이지만 ‘생산관계적 성격규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농적 차지형태’라는 가토 고이치의 ‘성격규정’을 다시 보면, 그의 성격규정은 명백히 오류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소농적 차지형태’라는 성격규정으로 소작제의 생산관계적 성격규정까지를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현 시기의 소작제를 이른바 ‘소농적 차지농’으로 규정하는 국내의 많은 (농업)경제학자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이기도 하다.
2. 위에서 “‘오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든가 혹은 “오류는 없을지 모르지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사실은 ‘소작제’를 ‘소농적 차지형태’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엄밀히 말하면 무의미한 ‘동의반복’이기 때문이다. 즉, ‘소작(농)’이라는 어휘 자체가 사실은 ‘소농적 차지농’이라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가토 고이치 등의 규정에서 부차적인 긍정성은 ‘소농적 차지형태’ 혹은 ‘소농적 차지농’이라는 규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과도적 형태’로 규정하는 데에 있다.
참고로, 엥겔스가 소농이란 “대체로 자신의 가족으로 경작할 수 있는 것보다는 크지 않고 가족을 양육하는 것보다는 작지 않은 토지의 소유자나 임차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소농’은 결코 동질적이지 않은데, 그 가장 전형적이면서도 과도적인 형태는 ‘농민적 분할지 소유’, 즉 소토지의 소유자로서의 ‘자작농’이다.
3. 본래 동아시아, 특히 일본(그리고 일제 지배하의 조선)에서 ‘아포리아한 중요한 논점’으로서 ‘지주소작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회혁명상의 실천적 동기에서였다. 즉, 1920~30년대 당시 한편으로는 공업부문의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적 경제제도가 지배하고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과제가 던져지고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수의 근로인민(직접생산자)이 농업생산에 ‘소작농민’으로서 편제되어 있던 상황에서 이들 소작농민을 주요한 동력으로 삼지 않으면 혁명의 전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들이 ‘혁명의 동력’으로 될 수밖에 없는 근거를 규명하고자 한 것이 일본자본주의 논쟁 = 지주소작제 논쟁의 발단 동기였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상이한 두 입장이 대립하였다.
하나는, 소작농민을 ‘자본주의적 시장관계에 의해서 포위된 봉건농민’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반봉건적 관계 때문에 강화되는 착취에서 농민의 혁명 동기를 찾고, 따라서 그들을 본래적인 혁명의 주력부대인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의 강고한 동맹세력으로 보는 입장으로, 일본의 ‘강단파’,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수용한 한국(혹은 일제하 조선)의 ‘봉건파’가 그들이다. 여기에서 지주소작제는 ‘자본주의적 시장에 의해서 포위된 봉건적 생산관계’, 즉 반봉건적 성격의 생산관계이다.
다른 하나는, 소작농민을 ‘사실상의 노동자’로, 따라서 소작농민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의 특수한 형태로, 따라서 소작농민 자체를 반자본제적 사회주의 혁명의 무매개적인 주력부대 자체의 일부로 보는 입장으로서, 일본의 ‘노농파’,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수용한 한국(혹은 일제하 조선)의 ‘자본파’가 그들이다. 여기서 지주소작제는 당연히 (사실상의) 자본제적 생산관계로 규정된다. (물론 설명에는 상당한 스펙트럼이 있고, 논자에 따라서는 그것을 이른바 반(半)자본제로도 규정한다).
4. 각각의 주장은 지대형태 및 본질 문제, 고율소작료의 문제, 경제외적 강제의 유무문제 등등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성격규정의 기본적인 준거로 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농업생산에서의 잉여가치의 형태로서의 지대 = 소작료의 본질이다.
주지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는 이윤이 잉여노동 = 잉여가치의 본원적․제1차적․정상적 형태이고 지대는 이윤의 파생형태․분지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봉건적 생산관계에서는 지대가 잉여가치의 본원적․제1차적․정상적 형태이고 이윤은 지대의 파생형태․분지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소농적 차지형태’로서의 지주소작제에서 ‘소작료’는 분명 잉여노동의 본원적․제1차적․정상적 형태이다. 따라서 그것은 봉건적 생산관계이다. 그런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시장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고, 그 때문에 거기에서는 착취가 고도로 강화되면서 소작료는 고율화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본래적인 봉건적 관계와 구별되어 ‘반봉건제’로 규정된다.
직접생산자인 농민의 경영의 자율성 때문에 봉건적 착취에는 ‘경제외적 강제’(보다 절실하게 표현하면, ‘생산과정외적 강제’)가 수반하는데, 현 시기의 지주소작관계와 관련하여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에 기초하여 지주소작관계를 ‘(반)자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경제외적 강제의 형태변화를 그 존재 유무 문제로 혼동하고 있는 데에서 오는 오류이다. 맑스가 (ꡔ자본론ꡕ 제3권 제47장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외적 강제는 (근대의 로마법적 사법에 기초한) 계약과 그 이행을 강제하는 국가폭력을 포함한다.
5. 애초 일본의 자본주의 논쟁에서 ‘노농파’의 ‘(사실상의) 자본제’ 주장은 농업에서의 생산관계에 대한 이론적 이해의 부족 내지 오해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그들 논자의 소부르주아적 관념성․조급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혹은 일제하 조선)에서의 ‘자본파’ 역시 그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6. 특히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의, 언필칭 ‘최대의 히트작’이라는 이른바 “사사방” 곧 ꡔ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ꡕ에서 지주소작관계를 ‘본질적으로 자본제’인 “(반)자본제적 생산관계”로 규정한 것은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근로대중의 계급투쟁이 분출되던 시기의 그러한 관념성․조급성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게다가 그것은 지적 사기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를 한 두 가지 들자면, 예컨대 “사사방”의 저자는 지주소작관계를 반봉건제로 규정하는 입장을 격렬하게 ‘비판’하기 위해서 “1986년의 서울의 건물주는 봉건지주다!”라는 반어법으로 ‘건물의 임대료’가 자본제적 “지대”라고 주장한다. 물론 건물은 토지 위에 서 있어 그 임대료에는 현실적으로 지대가 포함되어 있지만, ‘건물’의 임대료라는 개념은 ‘건물 자체’의 임대료를 표상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결코 ‘지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마 ‘지대’를 ‘부동산 임대료’와 동일시하여, 건물의 임대료를 ‘자본제적 지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그 ‘인용문’ 중에 ‘차지료’ 가 “이윤의 일부분”이니 “정상적인 노임의 일부분”이니 하는 표현이 있는 데에 기대어, 지주소작제가 ‘본질적으로 자본제’인 (반)자본제임을 논증하기 위해서 ‘아일랜드의 차지농업자’에 대한 맑스(ꡔ자본론 제3권 제37장)의 서술을 ‘인용’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인용문은, “어떤 종류의 관계들 아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즉 차지농업자 자신이 산업자본가가 아니기 때문에, 또는 그의 경영방식이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지대가 형식적으로 존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응하는 토지소유양식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수가 있다”(MEW 25, S. 638)는 서술에 이어지는 일절(一節)이다. 즉,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자본제적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자본주의적 관계임을 설명하는 일례(一例)였다.
ꡔ자본론ꡕ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 또 역설하고 있는 그 책에서 그는 그렇게 엉터리로 주장하고, 그렇게 거꾸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진정 ꡔ자본론ꡕ으로 돌아가 있었다면 가능한 지대 이해였고 가능한 인용방식이었을까?
7. 필자 가토 고이치는 또한 “소농적 농법이 가지는 지구환경 유지 능력의 평가”(?)하면서, “그 소농․가족경영의 현대적 위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을 기초로 어떻게 구조정책을 해야만 되는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는 “그것은 단지 ‘농지 유동화 ꠏꋼ 규모확대’라고 하는 논리가 아니라 제1의 지구환경문제도 고려한 정책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암암리에 일종의 ‘소농 보호․육성론’을 제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소농 몰락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8. 물론, 엥겔스가 “조세․흉작․유산분배․소송은 농부를 차례로 고리대금업자에게 몰아대고 부채가 갈수록 일반적이 되어 … 소농은 지난 생산양식의 어떤 잔재와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몰락하고 있다”고 정식화했던 소농 몰락의 필연성을 부정하면서 ‘소농 존속 ꠏꋼ 소농 보호․육성론’을 주장하는 이가 ‘맑스경제학자들’ 중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김호균 교수 같은 이가 그렇다. 그는 “맑스주의 발전을 위한 시론”(ꡔ창작과 비평ꡕ 1992년 여름호)에서, 엥겔스를 비판하고 엥겔스가 비판했던 ‘소농보호론자’ 폴마르 등을 옹호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틀림없이 몰락하고 있다’는: 채] 엥겔스의 언명에도 불구하고 소농은 오늘날 중요한 농업생산자로서 남아 있으며 몰락할지라도 자본주의적 대농에 의해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소농에 적합한 정책은 [엥겔스가 말하는 ‘소농 설득을 통한 협동조합화’ 대신에: 채] 이들이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하는 일이다.”
그의 비판의 근거는, “소농은 오늘날 중요한 농업생산자로서 남아 있으며 몰락할지라도 자본주의적 대농에 의해서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거대 농업기계 등의 발달로 오늘날 서유럽의 농업에서 상당한 비중의 담당자로 되어 있는, 말하자면 ‘상당 규모의 기업형 가족경영’ ― 오우치 츠토무(大內力)와 같은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대형소농’이라 부른다 ―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영형태를 가리켜서 “오늘날 중요한 농업생산자로 남아 있는 소농”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소농이란 “대체로 자신의 가족으로 경작할 수 있는 것보다는 크지 않고 가족을 양육하는 것보다는 작지 않은 토지의 소유자나 임차자”라는 엥겔스의 소농개념을 탈역사적으로 확대하여 사실상 무개념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김호균 교수 자신이 같은 글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계, 즉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의 농업인구가 1870년대에는 평균 49.4%였는 데 비해 1930년에는 35.9%, 1981년에는 6%였다”는 통계 자체가 ‘소농 존속론’으로서의 김 교수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고 ‘소농 몰락론’을 역사적 사실로서 증명해주는 것 아닌가? 이 통계야말로 1870년대 이후에, 특히 1930년 이후에 대부분의 소농이 몰락해 갔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논리적으로는 1870년대, 1930년 및 1981년의 총인구와의 관련 속에서 농업인구의 ‘절대수’를 산정해야 그 절대적 감소를 증명할 수 있으나, 그것이 생략되었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다. 김호균 교수 등의 주장의 의의 및 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비판은, 구광숙․채만수, “현대자본주의하 농업문제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하여” [ꡔ경제사회연구ꡕ 제2권 제1호, 1995. 1] 참조).
9.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의 소농 몰락의 필연성을 인정하는 위에서만 농업․농민문제에 대한 전망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가능한 것 아닐까?
번역 및 보론 : 채만수
1)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편 ꡔ한국농업문제의 이해ꡕ 한길사, 1990년, pp. 55~83의 「토지개혁」(이호철), 「소작제」(장상환), 「농지가격」(서순열)을 참조. 특히 한국자본주의 논쟁 자체에 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는데, 앞에서 든 졸고 「韓國資本主義の構圖」(中)에 약간 보여주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2) 전게 ꡔ한국농지개혁사연구ꡕ, p. 1112.
3) 한국의 농지개혁은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첫째로 기생지주제의 역사단계적 차이와 그로부터 오는 상품생산자로서의 농민의 주체적 역량(농민운동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둘째로 농지개혁 주체의 성격과 실시과정의 차이(미 점령군의 의식의 차이와, 한국의 경우 농지위원회 구성의 차이 = 소작인의 이해가 반영되지 않은 구성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지주의 소작지의 21.6%밖에 분배되지 않은 사실 등등), 셋째로 분배농지(해방농지)의 상환부담에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는 사실 등이 한국의 농지개혁을 불철저하게 끝나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한국의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의 일치를 보고 있지 못한데, 기본적으로는 개혁 후에 창출된 ‘자작농’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이호철의 「토지개혁」(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편 ꡔ한국농업문제의 이해ꡕ)에는 각 논자의 견해가 표로서 작성되어 있으므로 참조.
* “소작료(지대)를 지불한 후에도 이윤범주가 성립”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농업)경영’이 아니고, 임금노동자를 고용하여 경영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경영’이다. 그리고 이 경영에서는 총이윤 가운데 ‘일반적 이윤율’을 초과하는 부분을 지대(소작료)로 지불하는 것이지 그 반대, 즉 ‘지대를 지불하고 난 후에 이윤범주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ꠏꠏ 역자.
4) 필자는 지금까지 1989년부터 거의 매년 한국의 농촌․농가조사를 실시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전라북도 김제시(과거의 김제군)는 주요한 조사지역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논농사지대로서 1가구당 경영규모가 극히 높은 지역이고, 또한 제2차 대전 전에는 일본이 지주가 활보한 지대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이용하는 조사사례는, 앞서 말한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제정․시행된 후의 시기의 농업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고, 또 여기에서 이용하고 있는 통계들의 시기(1995년)와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골라 이용하고 있다.
* 이러한 분석은 방법론상의 중대한 오류에 기인하고 있다. 즉, 필자(加藤)가 여기서 ‘땅을 빌리는 것’이 “소극적으로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표 6>에 의하면, 예컨대 농가번호 14나 18 등이 자신들의 차지(借地) 혹은 소작의 이유를 “이웃이 노인이라서”라든가, 혹은 “이웃 사람의 노동력 부족 때문에” 등등으로 대답하고 있는 데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순수하게 경제학적으로 딱 잘라 명쾌하게 말할 수 없는 점에 오히려 중요한 의미가 존재”하고, “그러한 의미에서는 이 소작료는 한국의 ‘가족’제도나 농촌집락인 ‘마을’의 논리나 상호부조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신 등의 ‘조사사례’를 그 자체로서 절대시하는 ‘실증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조사대로라면, 농가번호 14나 18 등은 자신들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령의 이웃’이나 ‘노동력이 부족한 이웃’인 지주의 이익을 위해서 ‘극히 고율의 소작료를 지불하는 고역’을 담당하고 있는 셈인데, 과연 그러할까? 필자가 조사대상의 진술을 비판적으로 평가․분석하는 대신에 그것을 실증주의적으로 절대시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경제학적으로 합당한 판단 대신에 “순수하게 경제학적으로 딱 잘라 명쾌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역자
* 이에 대한 비판으로 이 번역문에 이어지는 “역자 보론”을 참조 ― 역자
5)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대상으로 한 법인은 영농조합법인 67개, 농업회사법인 20개로 합계 87개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ꡔ농업법인의 운영실태와 정책과제ꡕ(金正鎬 외), 199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