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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

현장에서 미래를  제37호
김희삼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




이 글은 기본적으로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모델을 영미식의 시장주의적 개혁과 스웨덴식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결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스웨덴모델이 사실상 해체된 이후 시장주의적 개혁을 위해 노동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데 성공한 네델란드 모델이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 편집부는 일면적 고찰일 수 있다는 판단이 있지만 - 예를 들어 필자가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 실업율의 감소나 고용확대 효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 사회적 합의 모델의 역사적 사례를 풍부히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싣는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 모델

- 노동배제적 구조조정을 넘어서 -



김 희 삼

서울대 박사과정 수료․경제학






머리말


네덜란드1)는 1980년대부터 시장주의적 개혁2)을 노사정 3자합의 방식으로 수행해 성공을 거둔 모델로 최근에 주목받고 있다. 복지병과 고실업의 위기상황에서 중앙노사단체는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임금․복지비용을 삭감하는 대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려 고용 증대에 노력했다. 그리고 비효율적인 복지제도와 공공부문에 대해 시장원리에 입각한 개혁을 단행했다.

<표> 네덜란드의 주요 경제지표

연도

성장률1)

실업률 (EU)2)

물가상승률3)

협약임금인상률4)

1988

2.6

9.1  (9.6)

0.5

0.8

1989

4.7

8.3  (8.7)

1.1

2.0

1990

4.1

7.5  (8.1)

2.5

3.5

1991

2.3

7.0  (8.5)

3.1

3.5

1992

1.3

5.6  (9.4)

3.2

4.4

1993

0.8

6.2 (10.9)

2.6

2.9

1994

3.2

6.8 (11.3)

2.7

0.8

1995

2.3

6.5 (11.0)

2.0

1.4

1996

1997

1998

1999

3.3

3.2

3.7

3.6

6.3 (11.5)

5.8            

5.1

4.6

2.1

-

-

-

1.8

-

-

-

자료: 1), 2)는 OECD(1998), OECD(1997). 1997년은 추정치, 1998~99년은 전망치.

  3), 4)는 네덜란드 노동부․중앙은행, Visser & Hemerijck(1997)에서 재인용.

점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개혁과 구조조정에 힘입어, 네덜란드는 성장, 민간소비, 투자, 고용, 경제활동참가율이 모두 높아지면서 건전 재정을 유지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3) <표>에서 보듯이, OECD(1998)는 네덜란드가 당분간 3~4%의 성장률에 4%대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두자리수 실업률에 시달리는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어서, ‘네덜란드 모델’ 또는 ‘네덜란드 기적’이라 불리우며 부러움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욱이 네덜란드는 노사단체를 구조조정과정에 적극 참여시킨 결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처럼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복지제도가 훼손되며 노조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처럼 복지국가의 기본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성공한 것이 네덜란드 기적의 비결이라는 평가도 있다(Visser & Hemerijck, 1997).

최근 고통스러운 구조조정과정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노동배제적 구조조정을 수행한 영미 모델보다 네덜란드의 경험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최영기, 1998). 물론 네덜란드는 우리와 사회의 바탕이 다르고 개혁의 출발조건도 다르지만, 노사정 3자합의에 의한 사회통합적 구조조정, 또는 협력적 유연화의 사례로서 그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는 점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회적 합의 모델의 기본 요건을 ① 노사관계의 분위기(climate), ② 노사단체의 대표성(representative), ③ 합의의 유인(incentive), ④ 협상의 의제(agenda), ⑤ 합의의 실행 강제력(enforcement)이라는 다섯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 보았다. 그 각각의 의미를 간략히 짚어 보자.

첫째, 합의에 도달하려면 노사관계의 분위기가 비타협적인 이데올로기적 근본주의에 의해 지배되지 않아야 하고, 노사 양측이 정치적 고려에 의한 완강한 반대가 아닌 실용주의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둘째, 결사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협상주체가 되는 노사 조직이 대표성의 독점과 권위의 집중성, 그리고 위계에 의한 하부구성원 통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협상 당사자들은 그들의 참여가 협상의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들의 양보가 그 대가로 얻게 될 이득에 의해 보상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의의 유인을 가지게 된다.

넷째, 각 주체들은 막다른 궁지에 몰리지 않고 운신의 공간이 있어야 하며, 조직의 기본 원칙과 핵심적 이익을 침해받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적 교환이 가능한 적절한 의제들을 놓고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합의사항을 입법과 행정에 반영하고 각 주체의 실행을 강제할 수 있으려면, 사회적 합의기구의 위상이 확고해야 하고 합의를 실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관행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제 이 다섯 가지 측면에서 네델란드 3자합의 모델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노사관계의 분위기


네덜란드는 독일,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근대의 민족적 통일과 국가의 성립과정 자체가, 조직된 이익집단들의 도움에 의존한 경우로서 이익집단들이 국가와 정치공간을 공유해 온 오랜 전통이 있다(Crouch, 1993). 네덜란드가 사회적 합의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사회경제협의회(SER: Social-Economische Raad)4)와 노동재단(SvdA: Stichting van de Arbeid)5)을 설립하게 된 것은 2차대전 직후 경제 재건을 위한 노사 협력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2차대전 중에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들은 나치즘에 대한 공동저항운동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전후에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임금 안정이 중요했는데, 이를 대중이 수용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요구들은 노․사․정(공익)이 폭넓게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조율되었으며, 정부와 의회는 이를 정책과 입법에 반영해 왔다.

네덜란드의 노사가 큰 마찰없이 사회적 합의 모델을 유지해 온 데는 역사적․문화적 전통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Th. Quene, 1990). 중상주의 전성시대부터 네덜란드에는 온건하며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 부르주아적 생활양식이 자리잡았고(‘Dutch pay’문화), 상인과 성직자의 뿌리에서 비롯된 네덜란드인의 성격도 실용적이고 온건하며, 조심스럽고 인내심이 강하며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네덜란드의 노조는 온건하고 실리적이며, 사용자들도 합리적이고 타협적인 태도로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의 장애물인 정치적 극단주의나 상호배척주의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사회구성을 이해하려면 경제적․계급적으로 분할된 거대 이익집단의 존재뿐 아니라, 종교적․이념적으로도 구교와 신교,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를 큰 축으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나뉘어 묶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네덜란드 사회는 전통적으로 구교와 신교로 분열되어 있었다. 양 종교는 각자가 거느린 독자적인 노조를 비롯한 여러 조직들을 통해 사회생활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고,6) 이에 따라 네덜란드 노동운동도 종교적인 영향권하에 놓여 있었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와 젊은 세대의 의식 변화로 종교적 분할의 정체성이 약해지기 전까지, 각 종교 지도자는 산하 노사단체를 신앙공동체의 끈으로 묶어 계급적 대립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내부적으로 다른 종교와 차별성을 강조하며 결속을 다지는 가운데, 노자 대립은 상대적으로 희석화되었던 것이다(Ramondt, 1981). 

한편 네덜란드 단체교섭제도의 특징도 노조가 협조적 노선을 채택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사용자는 교섭의무가 없고, 원칙적으로 교섭창구는 단일화되어 있다. 그리고 1927년 단체협약법에 의해 사용자는 한 노조와 체결한 협약을 다른 노조의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관련 노동자에게 적용할 의무가 있다. 협약을 타결한 노조는 대표권을 얻고 사용자로부터 협약체결 보상금을 받는다. 따라서 교섭 테이블에서 배제될 경우 노조의 정치적․재정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강경한 독자노선을 고집하기 어려운 것이다.


2. 노사단체의 대표성


네덜란드는 스웨덴형의 사회주의적 코포라티즘보다 약한 형태의 자유주의적 코포라티즘을 발전시켜 왔다. 종교적․정치적으로 분열된 노조와 유럽기준에서는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3자 합의구조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노조의 전성기인 1950~60년대에 40%수준을 유지하던 조직률은 1980년대말 25%까지 하락하다가, 1996년에 30%선까지 회복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대표성과 조직장악력은 조직률에 비해 큰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평의회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이 매우 커 노동자위원 중 2/3가 노조의 지지를 받은 조합원이고, 비조합원도 파업참가권이 있으며, 단체협약의 노동자에 대한 적용률이 평균 85%로 높은 편이다.

1996년 기준 총 188만명의 조합원 구성을 노조별로 보면, 사민주의 노조에 구교 노조가 통합된 네덜란드노총(FNV)이 119만7천명(64%), 신교 노조인 네덜란드기독노총(CNV)이 35만명(19%), 고학력 사무직 중심의 사무노련(VHP)이 16만3천명(9%), 기타 17만명(9%)이다. 주로 도시지역의 공업노동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FNV가 사민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데 비해, 전통적인 무역 및 산업 부문의 고학력 전문직과 농촌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CNV는 노동운동 내 우파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조합원 중 취업자는 152만명(81%), 실업자는 36만명(19%)이다. 노조는 각자 성향에 맞는 정당과 연대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전통적으로 사회고용부 장관은 노조 출신이었고 1994년에는 노조위원장 출신 수상을 배출하기도 했다.7)

사용자의 조직률은 노조보다 높아서 민간기업의 60~70%, 100인 이상 사업장 대부분이 사용자단체에 가입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네덜란드경총(VNO), 구교․신교 연합인 네덜란드기독경총(NCW), 50인 이하 중소기업과 농업 부문의 연합조직인 산업조직중앙회(RCO)가 3대 사용자조직이며, VNO와 NCW 산하에 약 130개의 연합체가 있다. VNO와 NCW 사이에 정책적 차이는 거의 없고, 양 조직에 동시에 가입한 기업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결속력이 강한 사용자 연대를 바탕으로 단체교섭이나 사회협약의 체결과정에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사용자단체의 높은 조직력과 대표성은 스웨덴 사용자연합(SAF)에서도 확인되듯이, 코포라티즘 모델을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3. 합의의 유인


2차대전 후 네덜란드는 노사단체의 협조를 바탕으로 1960년대 초까지 임금안정을 유지하면서 고도성장하여, 완전고용과 복지증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 초 네덜란드 경제는 다른 유럽국가들보다 훨씬 나쁜 성과를 보였다. 1967년 이후 임금의 물가연동제가 고수되었고, 장애연금의 적용대상이 대폭 확대되었다.8) 1970년대 중반에는 국가부조금을 최저임금에, 최저임금을 민간부문 평균임금에, 공공부문 임금을 민간부문에 연동시킴으로써 물가­임금­사회복지비용이 동반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임금안정과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기반으로 고성장하고 동시에 사회복지를 확대하여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나갔던 네덜란드는, 1970년대 복지의 과잉 속에 임금안정의 기조가 무너지면서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 1973~82년에 실질노동비용이 3.8% 상승하고 유휴설비가 늘어나는 가운데 고용증가율은­3.1%를 기록했으며, GDP대비 사회복지 비중도 1970년 11%에서 1983년 24%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경제 전반에 대해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한편 1960년대 중반 이후 노사정 3자합의구조는 유명무실한 채로 형식만 유지되고 있었다. 노사간의 중앙합의는 1962년 이래 1970년 한 번을 제외하고는 1982년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70년대 급진적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노조내 좌파블럭이 형성되면서 합의구조에 대해 반대 기류가 확산됐다. 또한 석유파동으로 실업이 늘자 노사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노에서 사로, 중앙에서 업종연맹으로 이전되면서 사측도 중앙합의에 대한 요구가 강하지 않았다(최영기, 1998). 그러나 네덜란드 경제를 고비용․고실업의 덫에서 건져내려면 노사의 상호 양보가 필수적이었다. 비용 절감이 절실한 사측은 임금안정을 원했으며, 고실업의 위기에 처한 노측은 고용증대를 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바세나르에서 노사단체가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자, 교착상태에 있던 코포라티즘 구조를 거의 20년만에 복원시킨 계기였다. 이 사회협약의 핵심은 임금안정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경제회생과 고용창출이었다. 노조는 임금동결을 받아들이고 1983~84년 중 1월과 7월에 예정된 물가연동조항에 의한 임금인상을 포기했다. 경영자단체는 그동안 금지해 온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협상을 허용했다. 전국 수준의 바세나르 협약과 후속적인 노사협약들을 통해 대체적인 임금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었고, 실제 임금교섭은 각 산업부문 수준에서 일어났다.9) 이와 같은 중앙 교섭과 분권적 교섭의 혼합은 전체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서도 산업별 특성이 반영되도록 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서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정부는 사회보장지출의 절감, 최저임금의 인하, 감세를 통해 임금­비용의 안정을 강력히 뒷받침했다. 이러한 조치들이 수반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회 평화는 유지되었고, 1991년 이후에는 단체교섭과정에서 파업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노사분규가 적었던 노사관계의 전통도 있지만, 노사 합의에 의한 자발적인 임금안정, 그리고 일방적인 복지철폐가 아닌 복지제도의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재교육을 통해 복지생활자를 취업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결합했기 때문이다.

바세나르 협약을 계기로 노사합의구조가 정상 가동되면서 후속 협약들이 잇달아 맺어졌다. 특히 1993년 ‘신노선(A New Direction)’ 협약은 1992~93년 경기불황에서 정부가 임금을 동결하고 단체협약의 적용 확대에 관한 법을 폐지하겠다는 강경론을 편 데 대한 노사단체의 공동대응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 협약도 임금안정과 노동시간 단축을 교환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노사는 자발적으로 임금을 억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정부의 임금통제 위협을 철회시켰다. 이 신노선협약을 계기로 노사자율 교섭기반이 확고해지고, 교섭의 분권화와 유연화가 진전되었으며, 단위사업장의 노동자평의회와 노조대표의 교섭재량권이 확대되었다.



4. 협상의 의제


바세나르 협약은 임금의 억제와 물가연동제 폐지에 대해 노측이 양보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을 사측이 보장하는 정치적 교환이 핵심이었다. 노정간에는 공무원이 누려왔던 고용보장제와 연금특혜를 폐지하는 대신 교섭권과 파업권을 인정해주는 정치적 교환이 일어났다. 이처럼 서로의 양보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막다른 궁지에는 몰아넣지 않는 적절한 의제의 상정은 네덜란드의 사회협약을 의미있고 실천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 협약은 가이드 라인, 공동의견, 권고, 합의 등 다양한 형태로 된 78개 조항의 합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부조직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실효성 없는 합의를 남발하지 않기 위해 교섭의 분권화를 인정하고, 협약의 형식도 산하단체의 교섭에 참고하도록 하는 권고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협약의 실제 효과는 매우 커, 1985년까지 임금의 물가연동제는 거의 폐지됐고 실질임금도 1982~85년에 9% 하락했다. 그 대신 1983~84년 대부분의 업종별 교섭에서 주당근로시간이 38시간으로 단축되는 등, 실업 증가에 대응한 일자리 나누기가 폭넓게 수용되었다. 한편 1984년에 공공부문 임금의 3% 삭감 조치에 대해 노조는 전후 최대의 파업을 조직했다가 비난 여론으로 철회했는데, 결과적으로 1986년부터는 주당근로시간을 민간부문처럼 38시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에 체결된 일련의 사회협약에서도 임금안정과 노동시간 단축 및 실업대책을 교환하는 기조는 확인되었고, 네덜란드 코포라티즘은 다시 약동기로 복귀했다. 1984년 협약에서는 노동재단 산하 4개 실업대책소위원회(직업훈련․장기실업․청년실업․실업통계) 설치를 합의했다. 그리고 1986년과 1990년 협약에서도 실업대책에 관한 합의가 주종을 이루었고, 1990년 합의에서는 외국인 실업대책이 포함되었다.

1993년의 신노선협약에서는 자발적인 임금동결로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가운데, 주 36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협약이 체결되기 시작했다.10) 특히 전체 산업 노사의 공동포럼인 노동재단은 1993년에 파트타임 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적극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요구하는 사측과 파트타임 노동의 보호를 요구하는 노측은 파트타임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데 별다른 견해차를 보이지 않았다.



5. 합의의 실행 강제력


노사정 3자합의 사항을 실행에 옮기도록 강제하는 데 있어 사회적 합의기구의 위상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경제협의회(SER)는 산업조직법에 의해 1950년에 설치된 법적 기구로, 네덜란드 최고의 정책협의 및 자문기구다.


<그림> 네덜란드 중앙 노사관계의 정책결정구조 (Blum, ed., 1981, p. 401)


압력단체                    공무원

(노사조직 등)                                     

                                    정당

               

내 각

(행정부)

           ◦좌파정당(노조영향)


   

사회경제협의회

(SER)

 

의회

(입법부)

     ◦기민당(노사공동영향)



◦사용자대표

◦왕립위원(공익)                       ◦우파정당(사용자영향)

◦노조대표


SER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부에 대한 자문이다. 산업조직법에 의해 각 장관들은 새로운 법률 제정을 비롯한 일체의 중요한 사회경제 문제11)에 대해 SER에 의무적으로 자문을 구해야 한다. 또한 산업조직법 이외 약 20개의 법률에서도 정부는 행정집행 절차와 관련된 문제에 SER의 자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관들은 SER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반영할 것인가에 대해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SER의 의견이 의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 부처는 직․간접적으로 SER의 견해를 반영한다.

한편 노사정이 생산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중앙협의기구 인력의 자질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SER은 처음에 노사 대표 각 15명과 각 분야 전문가인 공익위원 15명으로 모두 45명으로 구성되었다(1990년에 노․사․공익위원을 11명으로 조정). SER은 각급 조직의 대표 구성을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는데, 위원의 인원수 뿐만 아니라 자질에 대해서도 기준이 정해져 있다. 7개 사용자 중앙조직과 3개 노동자 중앙조직이 SER에 대표를 보내고 있으며, 공익위원은 중앙은행 총재, 경제기획청 장관, 대학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SER과 그 분과위원회는 전문간부 35명을 포함한 170명의 사무국 직원의 지원을 받는다. SER은 법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정부기관이 아니므로, SER의 재정은 정부가 아닌 네덜란드 산업이 책임지고 있다. 매년 상공회의소에 납부되는 위탁부과금으로 지출되는 SER의 연간 운영예산은 1990년 기준으로 약 2천만 길드(약 145억원)이다.

그런데 자문기관으로서 SER의 존재는, 노사 당사자 이상으로 정부에게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처럼 SER이 거대이익집단의 이익을 중간에서 조정해 줌으로써 정부는 이익집단의 직접적인 압력을 면할 수 있다. 또한 의사결정과정에서 SER과 담합이 가장 용이한 것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가 의회에 대해 입지를 강화할 수 있고 의회의 압력도 덜 받게 된다. 더욱이 정부는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골치덩이 문제들을 장기과제로 SER의 ‘냉동창고’에 맡김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전가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맺음말


네덜란드 경제의 고용창출 성과는 대량실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비교하면 극적인 것이다. 그런데 1982년 이래 창출된 새 일자리의 2/3 이상은 파트타임이었고, 보다 최근에는 파견노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파트타임 노동자는 전체 고용의 거의 40%로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고, 파견업체를 통한 노동도 총노동시간의 3.5%에 달하는 OECD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노동시간의 유연성 증대와 임시직 사용의 확대를 통해 고용이 창출된 부분이 크기 때문에, 사회협약을 통한 노동시간의 단축이 얼마나 고용증대에 기여했는지를 독립적으로 추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이미 1970년대부터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았고, 1980~90년대에 급증한 파트타임 일자리도 기존 풀타임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기보다는 주로 비취업상태에 있던 여성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의 사회활동보다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종교적 영향과 소극적 고용정책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여성이 전체 노동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에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여성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이 시행되고 서비스 부문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평균 수준으로 꾸준히 상승해 왔다. 여성의 취업인구비율도 1983년 34.7%에서 1990년 47%, 1996년에는 EU 평균인 48.4%보다 높은 55%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맞벌이 하는 가계가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이 임금안정을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편 네덜란드의 고용성과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도 있다. 과거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성차별이 지금도 풀타임 남성노동자와 대부분 저임금 직종의 파트타임 여성노동자라는 형태로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증대가 주로 불황이 닥칠 때 가장 먼저 실직할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Slomp, 1997). 물론 임금안정을 통한 저임금 일자리의 창출 전략(low road strategy)보다 지속적인 훈련 및 재훈련을 통한 고임금 일자리의 창출 전략(high road strategy)이 바람직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나라가 직면한 경제상황과 정치적 제약조건에 따라 전략의 선택 가능성은 달라질 것이다.

요컨대 네덜란드 모델은 노사정 3자합의주의 전통에 영미식의 시장주의적 개혁과 스웨덴식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모델의 운영에 별다른 균열이 보이지 않고 네덜란드 경제가 최근에도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현 모델은 큰 틀에서는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노사합의구조는 점차 국가의 직접 개입이나 영향력이 사라지면서 분권화와 유연화라는 세계적 추세로 가고 있다. 따라서 중앙합의의 필요성과 자발적인 협상 유인이 노사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남아 있다면 사회적 합의구조가 유지될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까지와 다른 노사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12) 또한 경제성과의 호전에 따른 기업이윤의 증대와 주변국 임금의 증가로 노측이 자발적인 임금안정을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럽통합으로 국경이 없어지고 독자적인 정책결정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으며, 최근 유럽각국에서 좌파정권이 득세하면서 노동자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주변국보다 실업이 낮은 네덜란드에서 임금안정의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코포라티즘 모델의 일반적인 문제점이지만, 이익집단이 자신의 영향력만큼 정책결정을 지배하는 체제는 모든 사회계층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잘 조직된 거대이익집단(대기업집단, 대기업노조, 공공부문 등)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가거나 담합하게 되며, 조직력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중소기업, 미조직․일용 노동자, 영세농어민, 도시빈민 등)는 정책 결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많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이후 경제문제 이외의 환경, 여권, 평화, 삶의 질과 같은 쟁점이 부각되면서 비생산자 집단의 정치적 발언권이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결정에 대한 일반시민의 직접 참여가 주창되면서, 집단대표자를 통해 이익집단 구성원들의 이익을 중개하는 코포라티즘은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다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 비해 약한 형태의 코포라티즘을 운영해 온 네덜란드 모델의 경우에는 변화의 과정이 큰 마찰없이 진행되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기말에 서구의 중도좌파 정권은 ‘제3의 길’을 주창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이던 스웨덴 모델이 사실상 해체된 상황에서, 네덜란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로서 제3의 길을 찾는 사람들의 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코포라티즘의 경험이 전무한 우리들에게 네덜란드는 먼 나라 얘기에 불과할 지도 모르지만,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에 세뇌되어가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머리 속에 상상력이 작용할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참 고 문 헌



최영기(1998), 「네덜란드, 제3의모델」, 한국노동연구원, 1998. 6.

Blum, Albert A., ed.(1981), International Handbook of Industrial Relations (“Netherlands” by Joop Ramondt), Greenwood Press.

Crouch, Colin(1993), Industrial Relations and European State Tradi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European Trade Union Institute(1995), Collective Bargaining in Western Europe 1994-1995 (“Netherlands” by Jan-Peter van den Toren, CNV Research Department, Utrecht).

OECD(1997), Employment Outlook.

OECD(1998), Economic Surveys 1997-1998: Netherlands.

Slomp, Hans(1997), 「네덜란드의 새로운 발전전략 - 노사합의를 통한 임금안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한국노동연구원, ꡔ분기별 노동동향분석ꡕ, 1997, 3/4.

Th. Quene(1990), 「노사관계와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제도적 조치 - 네덜란드의 사회경제협의회」, 국민경제사회협의회․한국노동연구원 편, ꡔ사회적 합의와 노사관계ꡕ, 1994.

Visser, Jelle & Anton Henerijck(1997), ‘A Dutch Miracle’ : Job Growth, Welfare Reform and Corporatism in the Netherlands, Amsterdam University Press.

von Potobsky, Geraldo(1987), 「사회적 합의: 이론과 경향」, 국민경제사회협의회․한국노동연구원 편, ꡔ사회적 합의와 노사관계ꡕ, 1994.


1)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은 작지만, 1996년 인구 1,549만명에 일인당 소득 25,556달러인 선진국이다. 또한 로얄 셀, 유니레버, 필립스, 하이네켄 등 해외거점과 연구소를 가진 다국적기업의 모국이고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GDP중 수출 53.7%, 수입 47.3%로 대단히 개방적인 경제다.


2) 임금의 안정과 물가연동제 폐지로 임금­물가상승의 악순환을 끊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며, 수요관리정책을 탈피해 보다 공급지향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만성 적자재정을 건전화하며,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길더화의 환율을 안정시키고, 사회보장제도를 점진적으로 개혁하고 효율화하며, 각종 규제를 개혁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다. 자세한 것은 OECD(1998)와 Visser & Hemerijck(1997)를 참조하라.


3) 네덜란드의 경제성과를 유럽연합(EU) 전체와 비교해 보면, 1991~96년에 EU의 GDP는 1.5%, 민간소비는 1.5%, 투자는 ­0.2%, 고용은 ­0.5%, 실업수준은 11.1%, 취업인구의 비율은 60.6% 증가한 데 비해, 네덜란드는 GDP 2.2%, 민간소비 2.3%, 투자 1.3%, 실업수준 6.2%, 취업인구비율 64.2% 증가의 좋은 성과를 보였다. Visser & Hemerijck(1997), p. 11 참조.


4) 사회경제협의회는 1950년에 폭넓은 사회․경제정책의 협의 및 자문을 위해 노․사 및 농민단체, 공익전문가, 정부대표가 참여하는 법적 기구로 출범했다. 상공회의소 회비의 재정 지원을 받으며 독자적인 정책 조사 및 연구 기능을 확보한 이 기구는 주요 정책이나 법안에 대한 자문에 응하고 스스로 발의한 정책을 건의할 수도 있다.


5) 노동재단은 1945년 노사단체가 주요 노사관계 현안들을 협의하는 자율적인 중앙협의기구로 발족했는데, SER이 법적 기구로 창설되면서 사적 기구인 노동재단의 위상이 약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후 20여년간 시행된 정부주도의 임금가이드정책이 1960년대 노동시장의 공급 부족과 암거래 임금의 확산으로 약화되고 노사간의 자율임금정책이 도입되면서 노동재단의 역할은 강화되었다. 노동재단은 산하에 임금위원회를 두고 매년 가을 경제전망에 대한 공동토론을 기초로 노사간 임금합의를 이끌어 내는 등 노사간 중앙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6) 전통적으로 네덜란드 사회는 종교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공간이 분리되는 체제였다. 예를 들어 구교에 속한 사람들은 구교 신문을 보고, 구교 라디오방송을 듣고, 구교 학교에 다니고, 구교 정당에 투표하고, 구교 노조나 구교 사용자단체에 가입하고, 여가시간에는 구교 스포츠클럽에 가고, 구교도와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7) 노조와 정당의 정치적 연합관계를 보면, 1918~1994년까지 CNV와 연대한 기민당이 장기집권했는데, 1994년에 FNV와 연대한 사민당이 66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후 1998년 5월 재집권에 성공했다. 현 Wim Kok 수상은 FNV 위원장 출신이다.


8) 네덜란드의 장애연금은 ‘복지천국’ 네덜란드의 표상이자 ‘네덜란드병’의 주요 환부이기도 했다. 업무상 재해가 아니더라도 최종임금의 80%를 지급하는 관대한 체계였고, 자영업자․공무원․선천적 장애인에게도 적용이 확대되었다. 특히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할 때 장애연금 대상자로 분류될 경우 노조는 협조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장애연금은 해고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전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었다. 그 결과 장애연금 대상자는 1993년에 성인 7인당 1명꼴인 1백만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장애연금에 대한 정부지출이 GDP의 약 5%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50세 미만의 장애인에 대한 재심사를 실시해 1994년에 이들 중 52%, 1995년에 35% 인원의 급여를 삭감 또는 박탈했다.


9) Slomp(1998)는 바세나르 협약은 단체교섭 절차나 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파트너들이 실업의 증가를 막고 전반적인 경제활동참가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도록 자극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중앙합의는 노사의 의지 표명 차원이었고 여전히 임금과 총노동시간은 산업별 교섭이 지배적이었는데, 네덜란드가 실업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교섭주체들의 실업 극복 의지와 책임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10) 그러나 바세나르 협약 후 38시간제가 빠르게 확산된 것과 달리, 금속연맹이나 필립스사 등 패턴설정자가 시간단축 대신 임금인상을 선택함으로써, 36시간제가 급속히 확산되지는 않았다.


11) SER은 방대한 양의 정부자문에 응하여 매년 400~500건의 의견을 정부에 제출하고 있다. 자문사항은 유럽공동시장, 무역, 이민, 개발협력, 공공지출, 산업정책, 에너지, 소비자보호, 환경, 사회보장, 노동조합과 협동조합법, 노동자평의회, 노동시장, 실업대책, 직업훈련, 교육, 대중교통 그리고 주택정책을 망라하고 있다.


12) 예컨대 임금억제는 1982년 이후 네덜란드의 고용조건 교섭에서 줄곧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임금억제의 배경은 변화했다. 이제 임금 억제는 사측보다는 노측의 관심사가 됐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은 더 이상 일률적인 임금억제의 요구보다는, 교육․훈련 수준이 낮은 잉여인력․부서를 방출하고 핵심인력에게 인상된 임금을 주고 싶어한다. 반면 노조는 낮은 지위의 노동자가 불황과 구조조정의 위협에 더욱 시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률적인 임금안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ETUI, 1995, p. 110).


1998-10-05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