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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혁명가1 프란츠파농(2)

현장에서 미래를  제110호
김경근

연재/세계의 혁명가1

연재
세계의 혁명가 1 : 프란츠 파농(2)

프란츠 파농 (2)


김경근 / 연구원, 연구위원회




4. 혁명의 주체들

폭력이 혁명의 방법이라면, 그러한 방법을 수행할 행위자가 필요할 것이다. 파농은 혁명의 방법론에 이어 혁명의 주체에 대해 논의한다.

혁명의 주체에 대해서도 파농은 맑스주의와의 긴장을 보여준다. ‘식민지 나라에서 유일하게 혁명적인 세력은 농민’으로 판단하고 있으며(82)* ‘식민지의 프롤레타리아는 식민지 체제로부터 커다란 수혜를 입은 계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134)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파농은 식민지라는 조건에서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를 노동계급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파농은 식민지 사회에서 도시 노동자, 관리 등은 특권층으로서 식민주의와 타협하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농민대중, 그리고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들은 식민지배의 이익으로부터 제외되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들만이 비타협적이고 오직 폭력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하 이 글에서 괄호 속의 숫자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그린비, 2004)의 페이지 번호이다.
박홍규(2003), 396~397p

이제 파농이 혁명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각 주체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1) 민족정당과 민족 부르주아지

3세계의 탈식민 운동에서 대체로 지도부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은 민족정당이었으며, 그러한 민족정당은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a) 개량적 태도에 대한 비판

파농은 “식민지 시기에 식민지 민중에게 잠재된 폭력의 새로운 배출구를 열고 그 폭력의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내는 힘은 우선 정당과 지식인(상업엘리트)”이라고 말한다.(80) 파농은 그 시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민족정당과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부르주아적 지식인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파농은 곧이어 그러한 현존하는 민족정당과 지식인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게 된다.
“민족 정당은 체제의 근본적인 타도에 그 목적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장투쟁의 필요성은 결코 강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로만 폭력적일 뿐 행동에서는 개량적이다.”(81)
“이주민(식민지 권력)은 단지 양보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양보한다. 원주민은 비록 식민주의와의 타협을 받아들인다 해도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168)
‘우리들 아프리카인들의 잘못은 우리의 적이 정말로 후퇴하는 법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던 데 있다. 그들은 타협하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주장을 바꾸지는 않는다. 우리의 잘못은 적들이 우리를 해치고자 하는 적의를 잃어버렸다고 믿은 점이다.’ 레나테 자하르(1982). 21p


(b) 지도부와 대중의 관계

물론 파농은 모든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에는 평당원(평조합원)과 지도부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지적한다. “평당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총체적이고 즉각적으로 개선해달라고 요구하지만 후자는 고용주가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알고 있으므로 노동자들의 요구에 한계를 정하고 제약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133)

(c) 민족정당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한계

하지만 식민지의 민족정당과 민족 부르주아지는 그러한 일반적 한계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한계점들을 가지고 있다. 민족정당과 부르주아지들이 식민지 권력에 맞서 제시하는 민족주의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체제 하에서 민족주의 정당이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식민지 민중을 탈식민지 해방운동을 항하여 통일시켜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발성에 기초한 민중의 민족적 의지를 구현하는 민족국가를 실현시킬 수도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민족주의 정당이 내세우는 민족주의와 민족, 국가에 대한 이해가 식민지 본국에서 수입된 것이고 그래서 식민지 상황에 대해서 선험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민족주의 정당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의 이익으로부터 제외된 원주민’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식민지 착취를 이용하려는 원주민’의 입장을 대변한다. 민족주의 정당이 말하는 민족주의는 식민지 체제를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체제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셋째. 민족주의 정당의 민족주의는 민중을 대상화한다. 그들은 농촌 민중들의 삶 안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아내기보다는 식민주의자들처럼 정복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민족주의 정당의 지도자들이 민중들을 향한 일정한 독재의 필요성을 언제나 묵인하고 있는 것은 민중을 이와 같이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넷째. 민족주의 정당과 민족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는 민족 전체에 호소력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못하고 민족 분열을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종족주의적·인종주의적 쇼비니즘(국수주의)을 양산한다. 다섯째. 민족 부르주아지의 민족주의는 결국 민족과 민중의 의지를 구현하는 민족 국가가 아니라, 식민 본국의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신식민주의의 대리인으로서 민족 국가를 세우게 된다. 양권석(2002), 283~285p

민족주의 정당이나 민족 부르주아지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파농의 비판은 민족주의 그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파농은 식민지 해방전쟁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단계가 사회적 의식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단계에 선행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다만 민족주의는 식민지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이 식민지 권력이 누리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에, 보다 철저한 식민지 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체제의 탄생을 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양권석(2002). 286p


2) 농민

위에서처럼 운동의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정당과 부르주아지들을 비판하는 파농은 이들의 체제 내적이고 개량적이며 민중에 대한 지배를 영속화시키는 운동과 완전히 탈피한, 당시에 분출되기 시작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농민들의 폭력적 저항이었다.

(a) 혁명의 중심 주체로서의 농민

파농이 농민이 식민지 체제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보는 데에는 4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농민의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식민주의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난다. 둘째. 농민은 땅에 대한 애착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민족에 대한 사랑도 갖고 있다. 셋째. 농민에게는 반역의 본능 즉 오랫동안 이어져오는 호전성이 존재한다. 넷째. 농민의 극심한 빈곤은 폭력투쟁을 유발시킨다. 식민지 체제 하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집단인 농민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며 폭력만이 유일한 길인 것이다. 김대영(1984), 52p

그런데 이러한 파농의 정치적 전략은 이러한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알제리에서 대다수는 농민이었으며, 도시 노동자 계급, 숙련노동자 등은 국민의 1%도 안 되었던 것이다. 민새얼(2005), 142p


(b) 농민에 대한 민족정당의 오류

위에서처럼 파농이 농민을 주체로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당시의 민족 정당이나 엘리트들은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생각하지 않았다. “민족정당의 추종자들은 모두 도시 거주자들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여러 면에서 부유한 계급과 일치한다. 민족정당의 대다수는 농민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보인다.”(135)
이러한 모습에 대해 파농은 비판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러한 민족정당의 구성원들 즉 도시 노동자와 지식인이 농촌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은 식민주의가 농촌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농촌지역을 정체시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135) 즉 도시인들은 농촌지역의 봉건적이고 낙후된 현실만을 주목할 뿐, 왜 그러한 현실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고민하지 않으며 또한 무엇보다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농민들의 잠재적이며 동시에 실질화되고 있는 ‘계급성과 혁명성’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파농은 “시골에 남은 농민들은 전통을 완강히 수호하며 식민지 사회에서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137)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식민주의자들이 도시와 시골 사이의 적대감을 이용하기 때문이며 또한 무엇보다 정당이 시골 지역을 조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당은 민중을 위해 복무하지 않고 선험적인 일정으로 집행되는 틀에 따라 민중을 재단할 뿐이다. 중앙 당국으로부터 하달되는 지침에만 충실한 정당의 조직가들은 지역의 토착 지도자들과 갈등을 빚고 실패하게 되고 그러한 실패의 경험은 농민에 대한 불신감을 낳고 적대감을 증폭시킨다.”(139) 즉 민족정당의 지도부는 농민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실패하고 또한 그들을 올바르게 추동하는 데에도 실패한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들의 잘못에 의해 벌어지는 농민들의 현상적 보수화와 반동화를 농민들의 본래적 속성으로 여기고 그들을 적대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즉 “시골사람들이 민족 정당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농촌 지역에서 원인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 농민들은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투쟁을 전개해나간다.”(142) 지도부의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스스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 정당은 투쟁을 발생시키는 데에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발적 투쟁을 더 높은 수준의 투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에도 실패하고 만다. 이렇게 농민 대중이 민족 투쟁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 민족정당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지도부를 농촌으로 보내 민중을 정치적으로 교육한다든가, 민중을 자각시켜 투쟁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다.(142)
파농은 이처럼 민족정당의 무능과 무기력, 그리고 기회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농민의 자발적 투쟁을 의식화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채 그 투쟁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만 도모하는 것이 당시 민족정당 구성원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농민들의 저항을 빌미로 식민 권력으로부터 자신들에 대한 양보를 얻고자 할 뿐이었다.

이러한 민족정당 지도부의 잘못들은 식민지 시기뿐만 아니라 독립 이후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골 사람들은 독립 이후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개혁에서 뒤처지게 된다.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 식민지 시대에 당의 목적, 국가적 추세, 국제 정치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식민지 시대의 농촌 주민들의 민족 정당에 대한 불신은 국가 수립 시기에도 적대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해방 시기 동안의 게으름과 농민들을 불신한 대가를 뒤늦게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143) 즉 식민지 시대에 정당이 농민들을 아무렇게나 대한 것은 신생국이 출범하려는 순간에 민족 통합을 크게 저하하게 된다. 해방의 과정에서 분리되었던 지도부와 대중은, 그리고 대중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방기했던 지도부는 해방 이후 대중의 지원과 지지를 받지 못한다. 당연히 악순환은 반복되게 된다.

(c) 농민과 봉기의 지도부의 변증법적 관계

앞서 파농은 혁명의 주체로 농민을 상정하고, 농민의 자각을 통한 직접적 투쟁으로 혁명을 가져오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파농은 분명 그러한 농민의 투쟁의 자발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투쟁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위 집단에 의해 지도받을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고 있다. 파농에게는 순수한 ‘자발성’도, 순수한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먼저 파농은 투쟁 지도부(민족정당 지도부가 아니라)와 농민이 처음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민족주의 정당 내부에 식민주의를 쳐부수려는 의지와 더불어 그것과 전혀 다르게 식민주의와 우호적인 협정을 맺으려는 의지도 존재한다.” 그리고 민족 정당 내에서 그러한 온건파는 다수파를 차지하게 된다. “식민지배 권력은 민족주의 온건파에게 접근하고, 혁명적 소수파는 고립되게 된다. 도시에서 거부당한 이들은 농촌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그들은 귀로 농촌의 참된 목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농민의 비참하고 가난한 현실을 본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식민지 체제에 관한 무익한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했음을 깨닫는다. 이제 그들은 필요한 변화는 ‘개혁’도 아니고 ‘사태의 개선’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도시에서의 정치 활동은 식민지 체제를 변화시키거나 타도할 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경찰의 추적을 받는 투사들과 반역의 본능을 지닌 혈기왕성한 농민 대중의 만남은 엄청난 폭발력을 낳게 된다.”(152)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무장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투쟁의 진행과정에서 봉기의 지도부와 농민은 계속해서 변증법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투쟁을 발전시켜 나간다. 봉기의 지도부와 농민이 진정으로 혁명적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농민들과 실제로 함께 호흡함에 따라 “봉기의 지도부는 여러 집단을 계몽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160) 이러한 계몽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성숙하게 하는 일은 조직이 완벽하고 지도부가 높은 지성을 갖추어야 가능하다.”(171) 한편 그러한 계몽의 과정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알제리 혁명이 알제리 지식인들에게 베풀어주는 가장 큰 은혜는 그들을 민중과 접촉하도록 해주는데 있다.”(214)

“의식의 계몽, 사회와 역사에 관한 지식의 진보는 조직의 틀 내에서, 민중의 구조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한 조직은 봉기 초기에 도시에서 생겨난 혁명적 인자들과 투쟁이 진행되면서 시골로 내려가는 반란 세력이 융합되어 탄생한다. 이 핵심이 반란의 맹아적 정치조직을 형성하게 된다. 전시 체제에 있는 국민과 그 지도자들 사이에는 계몽과 보완의 상호관계가 성립된다.”(168)

파농은 민족주의 정당의 민족주의가 사회적 변혁의 물질적·정신적 토대를 만들어 내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식민지 해방전쟁과 독립이후의 국가건설을 이끌어나갈 새로운 주체에 대해 말한다. 파농이 내세우는 새로운 주체는 민족주의 정당의 비합법 공간에서 일하다가 도시를 떠나 농촌 대중에게로 후퇴해간 전투적 민족주의자들, 농촌 민중들, 그리고 도시 주변의 룸펜프롤레타리아트들이다. 전투적 민족주의자들의 전투적 본능과 용감한 농촌대중의 결합으로 민중봉기가 이루어지고 , 이러한 민중봉기들이 비로소 건강한 의미의 민족의식을 만들어가게 된다. 민족부르주아지와 특권계급의 대두를 막으면서 민중의 일상적 삶과 전체 국가가 괴리 없이 하나가 되도록 이끄는 것은 민중이며 또한 민중으로부터 나온 혁명적 엘리트들이다. 양권석(2002). 287p


3) 민중의 성장 민중의 성장하는 과정의 생생한 모습은 그의 두번째 저서인 ‘혁명의 사회학’에서 주된 테마이다.


(a) 봉기에 따른 식민지 권력의 변화

농민들의 봉기에 따라 식민지 권력은 자신들의 전술을 변화시키게 된다. 개량적 정책들을 통해 저항하는 주체 중에서 온건파들을 포섭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민중들의 투쟁에는 일정한 교란이 발생하게 된다.
“적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부 주민·일부 지역·일부 족장들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한다. 투쟁이 진행되면, 이주민과 경찰에게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행동 즉 ‘더 인간적으로 처신하라’는 지침이 전달된다. 그렇게 되면 원주민들은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단지 ‘굶주렸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이주민에게서 짐승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기를 들었던 원주민은 변화된 조치들에 매우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처음에는 대단했던 계몽에 대한 갈등이 점점 줄어들고 모호해지게 되고, 이제 원주민은 언제든 약간의 양보만 얻어내면 스스로 무장을 해체하고자 한다.”(165)

(b) 민중의 자각에 의한 전진

이처럼 농민의 봉기는 식민지 권력의 정책 변화로 인해(그것이 아무리 실질적인 것이 아니다 하더라도), 초반의 동력을 잃게 되고 식민지 권력에게 포섭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파농은 이러한 현상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민중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민중이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투쟁의 정확한 순간에 상황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 민중은 총체적이고 무차별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사회경제적 인식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169)

전쟁은 한 차례의 전투가 아니라 수많은 국지적 교전의 총체이다. 중요한 것은 개별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무장투쟁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강력한 식민지 권력 앞에서 그러한 투쟁은 실패를 거듭할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투를 수행하는 민중들의 의식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민중 스스로가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지도부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해방전쟁이 한 민족을 자각으로 이끄는데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219) 그러한 과정이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대중에게 계획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노동자를 인간으로서 대우하는데 소비한 그 시간은 계획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민중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지도부는 민중의 의식이 불완전하고 초보적이고 모호할 경우 미래는 닫힌 책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219)

그리고 이것은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혁명 이후의 국가 건설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정치인은 민중의 사정에 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앎은 매우 변증법적이어야 한다. 전 민중의 자각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며 민중이 국가 건설에 참여한다고 해서 즉각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219)
“우리는 비범한 사람을 육성하거나 영웅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그보다 우리는 민중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두뇌를 개발하여 생각을 불어넣고 그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223)

진정한 민족과 민족의식은 외부로부터 선험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민중 자발적 봉기 안에서 성장하고 형성되어 간다. 봉기과정은 민중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민중의 자기실현의 요구, 무장봉기의 목표, 국가 건설의 목표와 과정이 서로 일치할 때 비로소 올바른 민족의식, 민족형성, 민족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다. 식민지 해방전쟁과 민족국가 건설의 과제는 민중이 자기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다는 민중의 자기 해방적 인식과정 또는 민중에 대한 철저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민족 엘리트의 지식은 민중의 세례를 받아서 민중에게 봉사하도록 민중에 의해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폭력적 투쟁의 과정, 민중봉기의 과정은 민중의 자기 해방 실현의 과정이고 민중의 해방적 인식과 해석의 운동이 스스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물론 민중이 민족의식을 넘어 인간성의 승리를 향해서 정치화되고 사회화된 민중의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순조롭고 자연스러운 과정도 아니며 한꺼번에 일시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민중은 전투적 민족주의자들과 혁명적 지도자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정치적 교육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양권석(2002), 288~290p


해방투쟁은 식민지 민중의 민주적 훈련의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식민주의의 극복과 민중해방이라는 과제가 투쟁이 진행됨에 따라 모든 민중의 절실한 기본과제임이 발견되고, 이에 따라 특정한 지도자가 해방자라는 이름으로 우상화되기 어렵다. 이제까지 민중들은 책임 있는 일을 결정한 경험이 없었으나 실제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동안에 자기 민족의 운명이 자신들에게 달려있음을 실감하게 되고 모든 일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자가 결국 자기 자신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한다. 그들이 누가 시켜서 혁명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상 자발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김종철. 1982. 144p



5. 혁명의 대상과 조건

1) 식민지 권력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주체뿐만 아니라 혁명의 대상에 대한 분석도 반드시 필요하다. 파농은 혁명의 대상 즉 식민지 권력의 속성을 파악해나간다. 파농은 식민지 권력이 노리는 목적과 사용방법이 변화하고 있음을 파악한다. “식민주의가 우리 모두를 학살하리라고 걱정하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식민지 권력이 노리는 것은 군부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인 금융부문에서 드러난다.”(88) 즉 식민지 권력의 착취 방법은 예전의 육체적이고 단순화된 것에서 점점 더 정교화 되며 비가시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식민지 권력은 원주민을 어르고 달래는 작업을 병행하며, 이 작업에서 종교의 도움을 받는다.”(88) 파농은 문화적 지배 메커니즘에 기독교의 선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강준만. 1999. 23p


그람시적 의미에서, 식민지 권력은 ‘강제’만 행하지 않는다. 물론 식민지에는 압도적 강제가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도 특히 민족 부르주아지를 겨냥한 ‘동의’의 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 권력은 반드시 물리적 억압을 통한 절대적 가치 착취만을 노리지도 않는다. 이제 식민지 권력에게 있어 식민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착취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농은 식민지 권력이 실제로 어떠한 방법들을 사용해서 원주민에 대한 지배를 영속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고자 노력한다. 식민지 권력은 매우 다양하고 또한 다층적인 방법들을 통해 원주민들을 지배한다. 이것은 탄압에 의한 굴복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 이윤의 분배를 통한 포섭이나 심리적·이데올로기적 기제를 통한 지배자와의 동일시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수행된다.
원주민들은 자신의 흑인성 혹은 자신의 원시성의 폐기를 통하여 백인화 되어가는 존재이다. 프랑스 식민지 군대 특히 세네갈 출신의 흑인병사들로만 구성된 연대 내에서 흑인 장교들이 맡고 있는 주요 업무를 주목해 보라. 그들의 임무는 주로 통역과 관련되어 있다. 즉 백인 상관의 명령을 동료 흑인들에게 전달하는 임무 말이다. 이런 하찮은 임무 속에서 그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종류의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프란츠 파농. 1998. 24~25p


2) 세계주의적 관점

파농이 알제리라는 개별 국가의 구체적 상황들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시야가 일국에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a) 혁명에 대한 국제적 정세의 영향

파농은 식민지 구조가 붕괴하고 독립국이 생겨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민중의 격렬한 투쟁의 산물일수도 있고 식민지 민족의 주변 상황이 식민지 체제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적 정세가 가지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있었던 파농은 당시의 냉전이라는 특수한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식민주의라는 튼튼한 성채는 피식민지인들의 칼과 맨주먹으로는 난공불락이었지만 냉전의 상황을 고려하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되었다. 억압자의 군사장비와 비교하면 원주민의 폭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폭력을 국제적 상황의 역학 속에 위치시키면 억압자에게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사회주의적 선전이 대중에게 먹혀들어가 그들을 오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중립주의를 존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101~102)

(b) 혁명 이후 발전에 대한 국제적 정세의 영향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대립이라는 냉전의 국제적 정세는 탈식민화 투쟁에서 뿐만 아니라 , 해방 이후의 발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식민지 민족 스스로 그러한 국제적 정세를 인식해야만 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의 재건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서 전개되며, 결국 식민지 민족들도 자신들이 외부의 지역적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더 이상 지역적 차원에 머물지 않게 된다. 자신들도 국제적 긴장상태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99)


6. 혁명 이후

1) 신식민지

파농은 식민지적 상황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를 벗어났음에도 진정한 해방을 획득하지 못한 상황 즉 신식민지적 상황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아직 신식민지적 상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이전인 1950년대 말에 이미 그러한 형태들을 지적하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신생국의 경제적 노선은 어쩔 수 없이 신식민주의로 흐르게 된다. 예전에는 보호를 받았던 국민경제는 이제 통제를 받게 된다. 예산은 차관과 기부금으로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주요각료들은 서너 달에 한 번씩 예전의 모국이나 다른 나라로부터 자본을 얻기 위해 방문한다. 옛 식민지 권력은 요구를 더 늘리고 양보와 보장을 더 큰 폭으로 얻어내고 민족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194)

이러한 신생 독립 국가들이 겪게 되는 곤란들은 후에 탈식민주의 이론으로 정교화되어서 등장하게 된다.
반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투쟁들이 지닌 민족주의는 효과적으로 역으로 기능하며, 해방된 나라들은 국제적인 경제 질서에 종속된 자신을 발견한다. 민족해방과 국민 주권은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 위계제에 대항해서 무력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자본주의 위계제의 조직화와 기능 작용에 기여한다. 국가는 민족해방이라는 독이 든 선물이다. 네그리 하트, 2001, 제국, 188~189p


2) 저개발국의 발전

(1) 민족 부르주아지

파농은 민족 부르주아지들의 민족주의가 민중을 배신하고 식민주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신식민주의적 착취 구조를 강화해갈 가능성을 경고한다. 투쟁 과정에서부터 민중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던 민족 부르주아지들은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더욱이 이러한 민족 부르주아지들은 자본주의의 확립에 기여했던 서구 부르주아지의 역할조차 해낼 수 없다. 따라서 파농에게 있어 서구적 의미의 단계적 혁명론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개발국의 민족 부르주아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말 그래도 그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202)
“민족 부르주아지는 늘 무역 부문의 경제를 국유화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말하는 국유화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발달시켜 국가를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부당이득을 이제는 원주민이 수취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일 따름이다.”(178)
“민족부르주아지는 태생적으로 나라의 모든 문제들을 나라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못하기 때문에 서구 기업의 관리자 노릇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180) 즉 “권력을 획득한 민족 부르주아지가 계급적 공세를 취하면서 예전에 외국인들이 차지했던 직책들을 독점하는 것이다.”(182)
그러므로 파농은 이러한 민족 부르주아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게 된다. “당이 이끄는 대중과 의식수준이 높고 혁명적 원칙으로 무장된 지식인의 공동 노력을 통해서 이 쓸모없고 유해한 중간층을 가로막아야 한다.”(201)

(2) 독재로의 귀결과 그 결과

저개발국의 민족 부르주아지는 취약한 기반으로 말미암아 쉽게 국내 문제에 등을 돌리고, 구 식민지 및 외국 자본가들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외국 자본의 이익을 위해 민중을 탄압하게 된다. “신생 독립국의 지도자는 과거 독립전쟁의 결과로 도덕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대중들의 독립, 정치적 자유, 민족적 존엄성에의 열망을 구현하고 있었지만 독립 이후 쉽게 민중을 배반하고 착취자의 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 지도자들은 곧 독재로 향하게 된다.
“제도적 측면에서도 의회 단계를 뛰어넘어 국가사회주의적 독재형태로 향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반세기를 지배했던 파시즘은 독립기에 거쳤던 반식민지적 상태의 논리적 귀결인 것이다.”(198)
“민족 부르주아지들은 저개발국에서는 강력한 권위 즉 독재정권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이들은 독재가 역사적 과정으로서 필요하며 독립의 필수불가결한 전주곡이라고 믿는다. 독재는 부르주아 계급이 저개발국을 통치하는 방식을 나타내는데 이들은 처음에 민중의 도움을 받지만 이내 민중에 반대하는 흐름으로 나아간다.”(208)

한편 파농은 이러한 독재의 결과에 대해서 경고한다. “중앙권력이 부족주의화되면 당연히 지역주의적 관념과 분리주의가 싹트게 된다. 또한 온갖 분권화 경향이 되살아나 힘을 얻고 나라는 산산조각으로 해체된다.”(210) 그리고 이러한 경고는 제3세계 즉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오늘날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파농이 늘 우려하던 것이 권력층의 발생이었는데, 그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알제리 부르주아 출신의 엘리트들이 유럽인들이 전유했던 특권을 재빨리 낚아채, 유럽인 엘리트들이 물러난 자리를 독차지했다. 식민주의는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빈곤과 사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했으며, FLN은 해방 이후 몇 십 년 동안 1당 정당체제를 고수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프리카는 분열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종속과 차별이라는 해악은 청산되지 않은 채 아프리카인들의 자유의식을 파멸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대다수의 토지와 경제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패트릭 엘렌. 2001. 296~297p


물론 아프리카의 독재는 식민지배의 악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독재는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이식된 것이다. 열강들이 영향력과 시장 유지를 위해 독재를 묵인하거나 간접 지원한 탓이 크다. 전쟁의 병고와 배고픔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노예사냥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가 어긋나면 나머지 모든 것도 어긋나기 쉽다. 서방 강대국들이 아프리카의 뿌리 자체를 흔들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어린 시절 큰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가해자는 반성이나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회만 있으면 피해자와 관련된 일에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상황인 것이다. 강준만. 1999. 17p


(3) 독립 이후의 당의 역할

파농은 독립 이후 당의 역할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시한다. 그것은 신생 독립국들이 독재로 귀결되는 데에 당이 커다란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또한 사회주의권의 국가들에서 당이 비대화되면서 민중을 억압하게 되는 맑스주의의 이론상 기형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편으로 파농이 저개발국의 발전에 있어 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이 정부와 뒤섞인다면 당의 활동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목적 즉 정부에서 경력을 쌓고 고위직에 승진하는 지름길로 이용될 수도 있다.”(212)
“저개발국에서 당 조직은 단지 대중과 접촉하는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당은 포고령을 발하는 책임을 지닌 행정부가 아니라 대중의 적극적인 대변인이며 청렴한 옹호자이다. 당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구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따라서 대중은 스스로를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실제로 경험을 통해 보면 대중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도 아주 잘 이해한다.”(214)

(4) 정치교육을 통한 발전

파농에게 있어 저개발국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에 대한 교육이다. 혁명에 있어 민중의 자각이 가장 중요했듯이, 독립국의 발전에 있어서도 민중의 자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저개발국에서는 모든 것이 대중교육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사고 수준을 높이는 것 즉 정치교육이다. 대중을 정치적으로 교육하는 일은 정치연설을 한다는 뜻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모든 일이 대중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조물주는 바로 대중 자신이며 마법의 손은 바로 대중의 손이다.”(223)
“힘은 밑에서부터 솟아나와 꼭대기에 그 역동성을 공급하며 변증법적인 도약을 가능케 한다.”(224)


7. 민족에 대해

1) 민족의식

파농은 저개발국의 발전에 있어서의 민족의식의 허구성에 대해 경고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식민주의와의 투쟁이 민족주의의 노선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가르쳐준다. 민족의식은 모든 사람의 내적인 희망을 아우르는 결정체가 아니며 대중 동원의 즉각적이고 명백한 결과도 아니다. 그것은 속이 빈 껍데기일 뿐이고 원작의 치졸한 모작에 불과하다.”
또한 파농은 신생 독립국들이 쉽게 민족에서 종족으로, 국가에서 부족으로 이행해버린다고 경고한다. 파농은 그 원인을 식민지 지배에 의한 민중의 불구화의 결과이고,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적 타성, 정신적 빈곤과 지나친 세계주의적 정신형성의 결과라고 진단 내린다. 민새얼(2005), 143p

이처럼 파농은 혁명 과정에서 그리고 혁명 이후에서, 민족주의라는 명목으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부작용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한다. 핵심적으로 말해서, 민족주의는 민중의 이익을 필연적으로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농이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라는 상황 하에서 민족주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어떠한 민족주의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파농은 민족주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좌파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파농은 식민지의 원주민들이 서구 좌파정당의 당원이 되고, 그러한 정당의 요구를 식민지에서도 똑같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이들은 노동자의 정부라는 추상적인 구호를 가지고 투쟁하지만, 자기들 나라에서 앞세워야 할 구호는 민족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잊는다.”(81)

2) 민족 문화

아프리카의 식민지 해방 투쟁에 있어 주요한 운동 중의 하나는 민족 문화 운동 즉 ‘네그리튀드 운동’이었다. 파농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이러한 민족 문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파농은 이러한 민족 문화운동의 긍정성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민족문화운동이 민중과 유리되고 엘리트들의 관념적 유희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그리고 민족문화운동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분석하고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문화에 관한 연설이나 선언만으로 근본적 과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 과제란 영토의 해방이며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이고, 상층부의 회담에서 결의된 상호존중이라는 그럴듯한 미끼에 결코 넘어가지 않는 자세를 가리킨다.”(266)

민족 문화운동이 고취하는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반식민투쟁이 전개될 수도 있지만, 민족문화운동은 비현실적인 관념의 유희로 전락하여 식민지 해방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김대영, 1984, 37p

민족 해방운동이 성장함에 따라 식민지 이전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게 된다. 민족 문화의 요구는 식민주의자들의 협박 즉 자신들이 떠나면 식민지는 야만의 상태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다. 자기 민족의 정당성을 방어하고 그 정당성을 지지하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무기로서의 민족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민족 문화는 민중이 자신을 창조하고 그 자체를 보존하려는 행동을 기술하고 정당화하고 찬미하기 위한 민중의 노력의 총체이다. 그리고 민족 문화를 위한 투쟁은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그리고 문화의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토대의 해방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고 민중적 투쟁과 분리되어서 존재하지 않는다. 민새얼(2005), 145p


“현실과 접촉이 없는 문화는 노래나 시 혹은 민속의 수준에 머물게 되고 결국 과거 회고조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네그리튀르에의 집착은 미개한 아프리카의 개념을 체계화시켜주는 또 하나의 식민지적 정형화에 기여하게 된다.”


Ⅲ. 결론

파농의 논리에서 가장 큰 강점이면서 동시에 손쉬운 파악을 불허하는 특징은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마니키안적 이원론이 지배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자와 원주민, 근대와 전통, 남성과 여성, 민족의식과 사회의식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배제하고 다른 한쪽을 선택하는 방식의 선택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미 주어진 둘 중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려 한다거나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눈을 고정하고서는 파농의 논리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 양권석(2002), 292p


이처럼 파농의 논의는 무엇보다 변증법적 사유를 치열하게 현실에 대입하고, 끊임없이 검증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와 레닌 그리고 그람시 등의 여러 맑스주의 사상가들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의 조건들에 대해 끊임없이 파악하고 고민해나가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폭력과 민중의 자각 역시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를 통해 인식하게 된, ‘혁명의 코기토’일 것이다. 실제로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고, 또 수십만 명이 고문을 당하고, 또 수백만 명이 착취당하는 현실에서, 압도적 식민지 권력의 힘 앞에서 그러한 현실을 바꿔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변화의 모색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폭력 즉 비타협적인 직접 투쟁이며, 그러한 폭력을 통한 민중의 자각이며, 민중의 자각을 통한 폭력이다.

그는 많은 것을 말하고자 한다. 혁명의 방법, 혁명의 주체, 혁명의 노선, 혁명 이후의 세계에 대해, 어린 손자를 지켜보는 할머니처럼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댄다.

물론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그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의 경고는 불행히도 현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 알제리에서조차 그의 사유들은 어느덧 잊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들은 결코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1970년대와 80년대 김남주와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러했듯이, 그의 잔소리들은 그의 죽음 이후에 펼쳐졌던 수많은 (신)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울려 퍼졌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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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그린비
패트릭 엘렌. 2001. 파농 평전- 나는 내가 아니다. 우물이 있는 집

<프란츠 파농. 끝.>

2005-07-27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