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영전략 이렇게 맞서자(대우조선노동조합의 사례) |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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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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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료
“신경영전략 - 이렇게 맞서자”
- 대우조선의 사례 -
백 순 환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
여기서 소개하는 글은 지난 10월 5일,
‘전국민주금속노동조합연맹(추)’ 주최로 열린
정책토론회(ꡔ신경영전략 - 이렇게
맞서자ꡕ,울산)에서 백순환 대우조선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 동안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업장인 대우조선에서 94년 이후 신경영전략에
맞서 투쟁해 왔던 노동조합의 고민과 활동은 신경영전략에
맞서는 노동조합 운동의 활동과 관련하여 소중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책토론회
자료집」을 참조하길 바란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자본의 의도대로
관철된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몇년 사이 노동운동진영 내 관심의
초점이 되어 왔다. 대우조선이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80년대 말 소위원 제도를 창안하여 탄탄한 현장조직력을
자랑하던 민주노조가 90년 이후 자본의 신경영전략으로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94년 임투 당시
조합원의 63% 가량이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정작 파업
당일은 300여명(조합원 8,000명)만이 참여하였고, 그후
총회에서도 300여 명만이 참여하여 총회조차 무산된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신경영전략이 자본의 의도대로 모범적으로 안착된(?)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어떠한 상태였는가?
대우조선 조합원들은 신경영전략이라면 진저리를 친다. 이는
간부만이 아니라 전체 조합원의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거제를
떠날까?”만을 고민하고 회사문을 들어서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조합원들은 조기청소, 견딜
수 없이 강화된 노동강도 때문에 가정생활이 파탄이 날
지경이었다. 회사에 들어서면 동료간 불신으로 인해 서로가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산재 사고는 빈발하고 있었으나
회사의 무재해 운동 때문에 금딱지 타려고 웬만한 사고는
비산재처리를 하였다.
활동가들은 대안이 없어 사표를 쓰고 나갔고, 94년 9월 이후
거제를 떠난 노동자가 1,000여 명이나 되었다. 노조의 공식
집회에 참여하면 병신 취급을 받고, 노조 관여 여부가 호봉의
기준이 되어 조합원들은 웬만한 용기가 없고서는 조합활동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사측에서 개최한 음악회나
체육대회가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화제거리로 되고, 노동조합은
일상적인 화제거리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였다. 작업장은
한마디로 감옥․지옥이라고 표현될 수 있었고 이런 상태는
조합원을 자포자기 상태로 몰고 갔다.
94년 하반기 출범한 백순환 집행부는 그러한 대조노조의 조건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의 동력을 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조합원들의 고통을 수렴하여 현장의 동력을 회복해
낼 것인가?
그 고민은 94년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이하 노민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민추 시절의 고민을 정책 사안으로 정리하여
6대 집행부 공약사항으로 제출하고, 이를 구체화해 나갔다.
6대 집행부는 자그마한 사업부터 조합원의 신뢰를 형성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먼저 정책기획실을 확대 개편하면서 교육, 조직,
문화부서를 조직문화부로 통폐합하고, 산안고충팀을 신설하여 각
팀별 사업 계획서를 수립하였다. 모든 사안에 대해서 상집
전체가 철저하게 공유하면서 한 사안이 발생하면 다른 모든
부서사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라도 그 사안에 전체 상집이
집중하였다. 크게는 산재문제, 화장실 환경개선 문제, 교육문제,
건강검진 등의 사업을 상집이 모두 달라 붙어 문제 해결에
전력투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조합원이 아직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지도부에 대해 신뢰하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그 자체로
커다란 성과였다.
한편 노동조합은 기업문화를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노동문화를
개발하고 보급하므로써 대응 방침을 마련하였다. 노동조합이
주최로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체육대회를 했다. 조합원의 발길이
끊어진 노동조합의 문턱을 낮추고자 노조에서 BC카드도
발급했다. 이런 행사는 조합원의 화제거리로 등장했고 그 자체가
성과였다. 일상적으로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사측의
기업문화에 대해 조합원들이 노조를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노조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을 회복해 나갔다.
하지만 갈길은 아직도 멀었다. 95년 5월 대의원 선거를 했는데
민주파가 1/3밖에 당선되지 못했고, 조합원 총회에는 1,000여
명만이 참석하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6대
집행부는 한계를 느꼈고, “더 곪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울분을 삭이며 사퇴하려고 했다. 노조 업무를 중단하고 조합원을
상대로 위원장은 단식, 상집은 텐트 농성을 시작했다.
12일간이나 계속된 조합원 상대의 투쟁 끝에 쟁의발생 결의를
끌어 내었고 그 과정에서 울분을 참지 못한 박삼훈 열사가
분신을 하였다.
박삼훈 열사의 분신은 짓눌려 있던 조합원들의 분노를 이끌어
냈다. 현장의 동력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고 투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투쟁 속에서 임투가 성과 있게 마무리
되었다. 신경영전략에 포위되었던 조합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함으로써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조노조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대중들의 상집에 대한
신뢰는 높고 현장 동력이 살아난 건 사실이지만, 전체 조합원을
포괄한 중간간부층이 너무 엷고 인사고과를 매기는 직급자들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봉쇄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우노조는 95 투쟁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리 없이 와서, 어느 날 눈 뜨면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것이
신경영전략이다.” 신경영전략에 대한 대응은 사안 사안별로
대처하면 백전백패다. 입체적으로 대안을 세우고 입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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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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