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주의의 원조 미국노조운동 위기논쟁2 미국노동자들은 반제국주의를 받.... |
현장에서 미래를 제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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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플레처주니어/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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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실리주의의 원조 미국노조운동 위기논쟁1
미국 노동자들은 반제국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Bill Fletcher Jr.** Can U.S Workers Embrace
Anti-Imperialism?(Monthly Review, Vol.55, No.3, 2003년
7~8월)
* 빌 플레처 주니어는 오랜 기간 노동운동 활동가였으며,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비영리 조직·교육 센터인
트랜스아프리카 포럼(TransAfrica Forum)의 의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아프리카, 카리브 연안, 라틴 아메리카의 국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형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그는 또한 먼슬리리뷰재단(Monthly Review
Foundation)의 의장이기도 하다.
/ 번역 이지선. 서울대 경제학부 석사과정
분명 우리는 부채와 병역(兵役)에 시달리는 비참한
평민(plebeian, 옛 로마시대의 평민: 역자)이다. 그러나 반면
우리는 로마의 시민이며, 다른 민족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법률을
제정함에 있어 우리 자신의 몫을 갖는다.
― Sigmund Freud, 환상의 미래 The Future of an
Illusion(1927)
기획
실리주의의 원조: 미국노조운동 위기논쟁2
2001년 9월11일부터 이라크 전쟁 사이의 기간은 일반적으로는
미국 국민들의 혼란, 특히 미국의 노동계급의 혼란에 대한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압박해 들어오는 국내의 이슈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해 공포와 애국심을 이용한 부시 행정부의
능력은 정말 놀라울 만한 것이었다. 2002년 11월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는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였는데 이는
앞선 여름 동안에 이라크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9.11 테러로 인해 확산된 공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센터를 파괴하여 시민을 공격하고 무기로서 민항기를
사용하는 것은 명백히 인류에 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영속적인 전쟁 상황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빈 라덴, 지금은 사담 후세인의 성격에 온갖
종류의 실제적이고 인지된 위험을 연관시켜, 영속적인 불안
상태를 귀착시켰다. 그것은 또한 전 세계의 나머지국가에
대항하여 미국 국민들을 대표하여, 친제국적인 전선의 기초를
강화시켰다. 이 전선은 선량한 국민들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을
미국의 대외 정책의 목적에 대한 해외나 국내의 여러 걱정과
반대를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믿도록 이끌었다. 대신,
논쟁적이지만, 비용에 관계없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여러
방법들이 환대를 받았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국내 치안 상태에 대한 위험은 닉슨 행정부
때에도 보여진 적이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한 자본주의 제국의 이익을 강화하기 위한 카우보이
대외정책의 또 다른 위험은 전 지구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확실히 어느 누구의 안전도 증대시키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근본적인 의문이 일어난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변화시키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미국을 전환시킬 기반이 되는,
노동계급에 기초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노동, “인종”, 제국과 관련한
어려운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만 한다. 조직된 노동을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정책들을 만들기 위한 전술적이고
전략적인 선택들을 고려하기 위해, 우선 미국 노동계급의 조직된
영역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 시기 미국 노동의 위기
현대 미국 노동운동의 결정적인 이데올로기적 특징을 정의한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 런던
출생. 1863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담배공장의 연초공이 되었다.
1874∼1881년 연초공조합 위원장을 지내고, 1886년 AFL(American
Federation of Labor:미국노동총동맹)을 설립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한 후, 1895년을 제외한 평생을 회장직에 있었다.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하였고, 급진적
사회주의를 배제하여 온건한 경제적 요구만을 내세우며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에 진력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시노동위원회 위원장과 국방회의 위원으로
조직노동자가 국가의 정책에 동조하도록 하는 데 힘썼다. 저서로
자서전인 생활과 노동의 70년 Seventy Years of Life
and Labor(2권)이 있다. (역주)
의 개념이다. 미국노동연맹의 설립자이자, 오랜 기간 지도자로
있었던 사무엘 곰퍼스는 19세기 후반에 담배제조공 노조에서
성장하였다. 당시 영향력이 컸으며, 극단적으로 포괄적인 노동자
연대를 주장하였던 노동기사단 남북전쟁 후 임금인상 요구 등의
필요에서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더 나아가
연합조합의 설립이 과제가 되었다. 이에 1969년 U.스티븐스가
소집한 필라델피아의 피복공 회합에서 처음으로 노동기사단이
결성되었고, 1979년에 T.포더리에 의해서 중앙집권적인 산업별
조합으로 조직되면서 모든 노동자를 통합하는 조합이 되었다. 이
기사단은 직업·산업·숙련정도·성별·인종 등에 차별없이
전체를 포괄하여 8시간 노동, 소년노동의 폐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의 지불 등을 목표로 하였다. 가입자의 급증으로
회원수가 73만 명에 달하였으나, 1986년 헤이마켓 사건으로
여론의 지지를 잃게 되었고, 현실파악 미흡·조직구성상의
약점·파업계획의 실패·내부분열·재정의 어려움 등이 겹쳐
많은 숙련공들이 경제 실리주의적인 미국 노동총연맹(AFL)에
흡수됨으로써 1900년에 완전히 소멸되었다. (역주)
의 위기에 조응하여, 곰퍼스는 노동자들이 오직 숙련공을
기본으로 해서 효율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숙련 노동자들에게는 립 서비스뿐이었고, 그가 중점으로 여긴
것은 숙련노동자였다. 미국노동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이후 AFL)을 구성할 때, 곰퍼스는 그러한 관점을
지지하는 연맹을 건설하였고, 연맹은 머지않아 노동 기사단을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능가할 수 있었다.
곰퍼스는 노동 계급에 의한 노동자 정당을 반대하여 초기 미국의
전통과 유럽의 전통과 단절하였다. 이는 노동조합의 역할은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는 그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그의 철학은 노동조합 운동은
자본주의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에 반대하는 데 어떤 방도를
강구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곰퍼스의 강령은 밥그릇
노동조합(bread-and-butter trade unionism)이나 일자리를 위한
노동조합(job conscious trade unionism)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데올로기적이지 않고 실용적인 주장으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는 조직된 노동자들은―곰퍼스의 주장에
따르면―영구적인 동지나 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 계급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들릴 수 있으나, 곰퍼스는 노동 계급 전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조직된 숙련공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였다. 정치적
행동 측면에서 볼 때 곰퍼스는 AFL의 활동을 노동 계급의 정치적
동원이 아니라 로비활동을 하는 것으로 제한하였다. 다시
말해서, 곰퍼스는 AFL이 오직 전통적인 이익집단의 정치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동조합에 대한 곰퍼스의 철학은 그의 계급관과 국가관,
함축적으로는 인종, 성별, 미국의 대외정책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록 한때 사회주의자이기는 했지만, 그는 곧
반자본주의적인 미래관을 거부하였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운이
좋게도 조합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곰퍼스는 실제로 침투 효과(trickle-down thinking)의 특수한
형태―노동조합에 의해 성취되는 것은 점차적으로 비조직된
노동자의 생활도 향상시킬 것이라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조직된 부분은 곰퍼스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들이 진보를
원한다면 그들은 조합에 가입하거나 조합을 형성해야 했다.
곰퍼스의 실용주의는, 조합주의의 목적은 자본과 최선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관련된 구성원을 한정하는 것이라는 배타적
조합주의(exclusionary unionism)라는 관점을 반영하였다. AFL은
시작부터 유색인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숙련
노동자들 대부분을 배재하였다. 이 “실용주의적” 실천이라는
것은 실제로, AFL의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곰퍼스는 또한 미국 국가를 본질적으로 여러 종류의 정치적,
경제적인 흐름에 의해 채워질 수 있는 빈 배로 여기게 되었다.
노동조합 운동의 역할은 조직된 노동자에게, 침투효과를 통해서
노동 계급 전체에 이익을 주기 위해 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노동계급이 국가권력을 두고 자본가에게 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국가는 조직된 노동자나 자본가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국가가 조직된 노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조직된 노동에 달려 있었다. 곰퍼스는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였다. 국가는 계급 중립적인 존재라는 그의 관점은
오늘날조차도 많은 조직된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곰퍼스는 느리지만 꾸준히 인종과 성별에 관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였다. 인종적으로 연합한 노동운동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1892년 뉴올리언스의 총파업 이후에, 그에게 인종
문제와 그것의 중요성은 점점 가치를 상실해 갔다. 1900년대
초반에 이르러, 곰퍼스는 노골적인 백인지상주의자가 되었다.
곰퍼스의 “실용주의”에서, 계급투쟁과 권력 투쟁에 대한
부인(거부)은 아주 쉽게 자본주의, 해외에서 미국 기업의 이익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포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다시
말하면, 곰퍼스에게 있어서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둘 다
지속적으로 보다 나은 경제적 상태를 추구한다는 일치가
존재한다. 대외 정책의 부문에서 이러한 관점은 미국 정부가
해외에서 무엇을 하던지 노골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심지어는
광신적이기까지 한 지지를 뜻하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한 초기의
예가 AFL의 1차 세계 대전 지지와 세계 산업 노동자
연맹(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AFL에 의해 무시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둔 좌익 조합―과 같은
전쟁반대자를 진압하는 데에 대한 지지였다. 곰퍼스에게, 조직된
노동자의 이익은 다른 국가의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과는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강화와 미국 대외정책의 성공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제국주의적 애국주의의 깃발이 AFL의 기치가
되었던 것이다.
곰퍼스주의 노동조합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AFL의
설립 이후에 나타났다. 공산당과 사회당, 독립적인 좌익적이고
진보적인 흐름, 피억압 민족의 운동세력이 연합한 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은 미국 노동조합의 담론과 실천 양면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 대안적인 정치세력이 때때로 성공을
거두는 동안에도 (종종 억압적인 국가에 의해 지원을 받는)
곰퍼스적인 관점은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종차별적
억압을 공격하기를 (이러한 공격이 대개 분열을 낳는다는
이유로)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것; 민주당의 뒤꽁무니를 쫓고, 더
나쁘게는 형편없게 두 거대 정당의 비위를 맞추는 것;
애국주의라는 이름하에 미국의 대외정책에 시종일관 지지를
표하는 것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로, 운동의
발전을 질식시켰다.
조직된 노동의 ‘애국주의’
조직된 노동자의 “실용주의”의 결과를 더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애국주의’의 개념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전(American Heritage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에
따르면, 애국주의는 자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정치에서 사용되는 애국주의의 기능적 정의(operative
definition)가 아니다. 이는 “공언된 정책이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사회적 비용에 상관없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에 더 유사하다. 미국에서 기능적 정의는 주로 반대의견을
억압하기 위해 쓰여진다.
곰퍼스는 기능적 정의로서의 조직된 노동자를 포괄했으며, AFL과
후에 AFL-CIO(American Federation of Labor-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는 친경영, 친제국주의 정책의
반대파를 분쇄하기 위해 이것을 사용했다. 보다 중요하게는,
곰퍼스 사후 이십여 년 동안 냉전이 시작되어 충성서약이 법률로
제정될 때, 기능적 정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40년대
후반에, 백만 이상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조들이
노사관계법(Taft-Hartley Act)에서 요구하는, 노조 간부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표명하는 선서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별회의(Congress of Industrial Organization)에서
축출되었다. 축출을 실행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애국주의”는
반대자들을 위협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되었다. 애국주의의
이러한 왜곡된 관점과 관련한 것 중 하나가 인종차별반대주의가
공산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정치적 우파에 의해 조장된
개념이다. 이는 조직된 노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산별회의에서 축출된 노조들은 노동운동 내에서 인종주의에
대항해 가장 강력한 입장을 가진 노조들이었다.
따라서, 애국주의의 기능적 정의는 계급 연합과 순수한 국제
노동계급 연대에 대한 거부의 신호이다. 국제 정세에서, 예를
들어 AFL과 후의 AFL-CIO는 미국 세계 헤게모니를 인정하는
대외정책과 정치적 좌파에 대항하는 해외의 노조운동을
지지하였다. 다시 말하면, 애국주의의 기능적 정의는 제국을
지지한다.: 국내에서 제국을 반대하는 이들은 비애국적이라고
간주된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자본가로부터의 공격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조직된 노동은 애국주의의 기능적 개념의
확대와 이에 대한 지지라는 전략적인 수단을 택했다. 그들은
종종 노동자의 (그리고 특히 노동자 간부들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이 있는 듯해 보이지만, 노동계급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정책을 지지한 것이었다.
인종 중립적인 사회 계약, 혹은 밀물이 모든 배를 띄울
것인가
노동조합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범위 내에서 노동과 자본의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개념을 받아들여
간부들과 조직된 노동의 구성원은 인종과 성차별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외면하였다. 한편으로 이러한 외면은
또한 제국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억제한다.
다시 한 번 용어들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계약”이라는 용어는 18세기 계몽주의와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되어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이 용어는 부르주아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식인들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약정
내지는 계약이 선사시기의 미개한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초기의 인류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체결된 것이라는 취지의
신화에 기원을 두고 있었다. 이 사회계약은 생각건대 전제적인
규칙에 대항하여,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기본권을 인정하고,
사람들을 보호하였다.
초기의 부르주아들이 절대 전제군주정치와 봉건제와의 싸움에서
사회계약의 신화를 사용하는 동안, 이 용어는 사실상 계급의
존재와 각각의 계급의 상대적인 역할을 정당화하였다.
사회계약이 홉스의 야만적 상태를 받아들이던지, 루소의 보다
혁명적이고 평등한 상태를 받아들이던지 간에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십세기에, 특히 대공황과 이차 세계대전 직후에
사회계약은 새로운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이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국가와 사회청구권를 가리키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강력한 공적 부문, 모두를 위한 핵심적인 사회보장급여와
노동조합의 존재라는 사회의 전 영역에 의해 신화는 기본적인
믿음으로 발전하였다. 실제로는, 신화의 교훈이 완전히
수용되거나, 신화를 진실이게 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실시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계급투쟁에서의 힘의 균형이 사회계약의
새로운 의미를 그럴 듯하게 만든 것이다.
조직된 노동은 좁은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계약이라는 용어를
바라보았다. 곰퍼스의 임기기간에, AFL 조합에 있을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은 사회계약의 수혜자로 여겨졌다. 공식적인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운명은 운에 맡겨졌다. 시간이
지나자, 조직된 노동 사이의 시각은 변하여, 비조직 노동자의
상황과 장래에 대해 깊은 관심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진보적인 법률 입법을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특히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비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로, 이후 1960-70년대에는
공공부문에서의 조직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뉴딜 정책에서조차도, 사회계약은 결코 일관적이지 않았다.
노동조합 운동이 사회계약의 신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노동계급, 보다 일반적으로는 피압박민 사이의 인종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루즈벨트의
농업 및 노동 정책은 남부의 흑인 농장주 및 농장노동자, 그리고
남서부의 아시아·멕시코 계 농장주 및 농장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1945~1973) 동안
흑인과 라틴계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직면한 주변부 노동 시장의
상황(저임금과 불안정)이 다뤄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회계약의 신화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고 사회의
모든 부분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하였다. 그것은 또한
현재의 노동자를 위한 조건이 계속해서 향상되어 노동자의
자식과 손자들의 생활수준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신화는 선의의 신화이다. 직업, 주거, 교육, 건강
정책에서 인종의 차이는 사회계약의 완전한 이행을 항상
방해하였다.
유색인종과 비교할 때 백인에게 주어진 상대적인 특권의 존재는
사회계약 신화를 강화하는 근시안을 만들었다. 이민 초기의
가난을 떨쳐낸 능력은 많은 백인들을 이 사회가 시민들을
공평하게 대우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사회 계약은 이러한
생활양식modus vivendi의 지속을 약속하였다. 결국 사회 계약의
인종적 본질은 유럽인을 백인으로의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의 인종적 성격에 더하여, 사회계약의 신화는 또한
제국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거대한 부는 단순히
국내의 경제적 행위와 재주(독창성)의 결과가 아니라 전 지구적
힘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최고의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힘을 가지게 되었고, 달러는 사실상 국제
통화가 되었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현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부채를 전가하기 위해
국제적인 힘을 사용하였다. 이 제국주의적 역할이, 따라서, 미국
노동자(백인만이 아닌)에게 단순히 심리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미국 노동 계급과 쁘띠부르주아 대부분의
상태에 양의 물질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생활과 그들의 조직의 이론과 실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 계약 신화의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본질과
이에 도전한 조직된 노동의 실패는 그들 스스로 합법적이고
독립적인 진보 계급의 이익을 성취하고자 계획한 노동자들의
능력을 손상시켰다. 이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실패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예 중의 하나가, 노동조합운동이 거대 규모의 남부
조직 운동(“딕시작전” Operation Dixie 이라고 알려진)을
이끄는 데 실패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시민운동으로의 통합에
실패하였을 때이었다. 비록 딕시작전의 실패와 과격한
반(反)노동적인 태프트-하틀리 법(Taft-Hartely Act)의 연이은
통과로 출혈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된 노동의
대부분은 노동이 기업, 정부, 조직된 노동의 삼자관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이 위치가 노동이 미국
자본주의를 활성화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두 번째 비극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외국의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겨냥할 때조차도 미국의 대외정책에 노골적인 지지를 표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예는 1940년대 후반의 프랑스 부두노동자
진압에 대한 지지, 1964년 영국령 기아나와, 1973년 칠레에
있었던 군사 진압에 대한지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노동
계급의 이러한 행동이 이들 국가의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끼침을
알면서도, 조직된 노동의 대부분은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전쟁에 보병으로 참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공산주의
운동에서, 조직된 노동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남아프리카에서의 합법적인 노동계급 조직(COSATU, Congress of
South American Trade Unios)뿐만 아니라 1980년대 동안
브라질의 합법적 노동계급 조직(CUT: Central Unica dos
Trabalhadores)을 포함한, 조직을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노동에 대한 인종적인 사회 계약 신화의 영향은 복지 국가/뉴딜
합의와 사회계약의 자유주의적 개념이 붕괴된 마지막 사반세기를
지나면서 특히 심화되었다. 복지국가와 사회계약의 붕괴는 오직
유색인종에만 영향을 끼쳤고, 조직된 노동은 역시 위기에 직면해
있었지만,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미국
제국의 정당성에 대한 다수의 수용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제국에 의해 주도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출현은 거대한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이는 백인 노동자의
인종적 대우라는 초기의 이해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도전: 우익 포퓰리즘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백인 노동계급의
대다수와 가장 두드러지게는 그 중 조직된 부분, 이 양자의
공모에서 관건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백인 우월적인 특권과 그것의 사회적 블록을 형성하고, 나은
생활수준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비록 연관되어
있지만, 분리되어야 한다. 백인 차별적인 특권이 필연적으로
미국의 경제적 위력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권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고 구조적이며, 미국 사회에서 강제적인 인종차별이
백인과 비백인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차별은
호황과 불황기에 전부 존재한 것이지만, 국가와 시민 사회에서의
관례를 통해 강화된 것이다. 이는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와 같은
유색인종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경쟁의 장에서뿐만 아니라 직업,
교육, 주거, 건강, 문화의 영역에서도 보여질 수 있다.
생활수준은 다른 한편으로, 총괄적인 경제 상황, 인종 차별과
지배적인 제국주의 강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와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 선택이 생활수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 활동은 직접적으로 더 큰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미국 경제의
스태그네이션(stagnation)은 경제적, 정치적 요인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결정이 이 스태그네이션을
처리하기 위해 선택되었고, 이는 일반적으로 유색인종집단 내의
불균등한 고통을 포함하여 전체로서의 노동계급에 영향을
미쳤다.
침체 경제는 미국 노동 계급 대부분의 생활수준의 현저한 저하를
가져왔고, 이는 사회 도처에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에,
유색인종과 여성의 사회운동의 승리는 이민 유형의 변화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의 외양(tapestry)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이
생활수준이 영구히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으나, 1980년대와 90년대 동안 이는
확실히 이해되었다. 1990년대까지 기존 미디어는 이 현상과
대체로 자신들은 경제적 손실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던 사회적 분야에 대한 이 현상의 영향에 대해 높은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노동계급의 저하된 생활수준의 영향 중 하나가 우익
포퓰리즘(populism)의 발호였다. 이는 단순히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포퓰리즘의 발호는 백인 지역 내에서의 위기가
신자유주의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전개되었다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백인의 인종적 블록에 대한 도전은 인종차별반대 투쟁에서의
승리와 제국주의 자체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국내의
인종차별반대 투쟁에서의 승리는 유색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가져왔다.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와 콜린
파웰(Colin Powell) 같은 관료가 상부 권력에서의 기본적인
변화를 대표한다. 이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정부에서 유색인종이
맡았던 전통적인 역할이 아니다. 미국 기업에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l Express) 같은 주요 기업에서의 흑인 CEO의
등장 역시 중요한 것이다.
이 변화에 대해 백인 미국에서 제기된 문제는 흑인 쿼터백의
출현이 백인 플레이어의 장래와 관련해서 유감이라고 생각한다는
스포츠 평론가 “그리스인 지미”(Jimmy the Greek)의 악명 높은
말로 요약된다. 평균적인 백인의 희망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인가? 백인이 되는 데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인가?
미국 제조업의 대규모 붕괴와 친 국제자본주의와 국제제국주의
동맹의 구성을 포함한, 노동자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맹공격은
미국의 노동력이 미국 자본에 있어 소비자로서의 역할 이외의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에서의
운동의 위협이 그것의 실정은 언급되지 않은 채, 일반 노동자의
현상 유지에 대한 확신에 주요한 위험으로 등장하였다. 노동자가
그들의 고용주에게서 기대하게 되었던 성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성실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전능한 돈에 대한
것이다.
배신감이 현재의 우익 포퓰리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2000년
선거에서 보여진 형편없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치 평론가 팻
부캐넌은 “미국 노동자”를 외면하는 이른바 배반적인 기업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을 때 수백만의 동조를 얻었다. 부캐넌은
미묘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국수주의를 통해 반기업적인
(비록 확실히 반자본주의는 아니더라도) 주장을 하였다.
인종 정책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백인 블록의 주요 구성원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고, 백인 노동자들은(백인 쁘띠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향상된 생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일반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객관적인 경제적 감소와 인종 정책의
재정립이 결합하여 우익 포퓰리즘에 불을 지폈다. 이것이 낳은
분노는 군사행동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나 팻 부캐넌 같은 보다
용인될 수 있는 형태로 퍼져, 미국의 사회 구조 내의 급소가
되었다.
이 우익 포퓰리즘은 백인 중심의 인종 정책의 복권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투적 반(反)코포라티즘에서 조차도,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인 사회계약으로의
복귀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 상황에 따라서, 이 우익 포퓰리즘은
고립주의자이자 보호주의자이기도 하며, 반면에 다른 때는
팽창주의자이자 강경 외교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경우 다
미국 영토의 보호와 세계에서의 지배적 역할을 중요시 한다:
미국이 우선이고, 미국 내에서도 소위 자국민이 우선이고, 소위
자국민 중에서도 백인이 우선이다. 기능적 정의 측면에서
애국주의는 모든 잠재적 위협에 대한 제국의 방어를
의미한다.
미국의 좌파 내에서는, 미국의 경제 쇠퇴 특히 노동계급의
조건의 악화가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투쟁적인 반응을 낳고
있다는 여러 각도에서의 가정을 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
되겠지만, 좌파에서 기대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생활수준의 감소가 자동적으로 어떤 예측 가능한 반응을 낳는
것은 아니다. 좌파는 직접적인 수익자라고 하기 힘들다. 이러한
가정에 의해 예견된 어떠한 정책도 실현될 수 없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복잡한 요소는 백인 인종 블록의 문제이다.
백인 인종주의와 백인의 인종적 특권의 프리즘을 통해 이해된
생활수준의 감소는 자본가나 자본주의 시스템보다는 다른
이들에게 그 책임이 쉽게 전가될 수 있다. 우리가 지난 이십여
년 간 보아왔듯이 기록되든 안 되든 증가하고 있는 남반구의
이민자는, “아메리칸 드림”을 해결할 희생양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이는 오직 영국에서 일어난 이민 반대의 시작의
증거가 되어 왔다.
여기 한 가지 기록이 더해져야 한다. 우익 포퓰리즘은 유색 인종
내에서는 같은 수준의 반향을 얻지 못한다. 이에 대한 증거 중
일부는 우익 포퓰리즘의 핵심이 백인 인종주의에 있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게다가, 미국 내 유색인종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1990년대에, 이민 반대의 감정과 폭력이
확산될 때, 유색인 공동체 중 일부에서 포퓰리즘적 정서가
생겼다.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에서 이민을 반대하는 187개의
캠페인이 일어나는 동안, 다수는 아니지만, 많은 수의 흑인,
멕시코계, 아시아계 유권자들이 반동적인 계획에 동조하는
백인들의 열정을 보조하였다. 자본주의하의 제한된 자본을
둘러싼 경쟁에서, 최악의 경향이 표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몇 년 후, 9·11의 여파로 유색인의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우익
포퓰리즘이 생겨났다. 애국주의라는 명목 하에 예를 들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다른 이들과 함께 소위 대 테러 전쟁에
참전하라고 요청받았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드디어
자신들이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
부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이미 기록했듯이, 우리가 9·11 이후 보았던 것처럼, 우익
포퓰리즘은 제국주의적 확장에 복무할 수 있다. 복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 사이를 움직이며, 우익 포퓰리즘은 애국주의의
명목 하에 모든 종류의 이익을 지키는 강경 애국주의와 안보,
그리고 미국 헤게모니의 유지를 혼합시켰다. 단순히 알
카에다(al-Qaeda)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미국적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단체와 국가에 대한 복수의 바램은 정치적으로
전쟁에 대한 지지, 군사주의, 그리고 정치적 압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한 예가 극우적인 부시 정권과 제임스 호파
주니어(James Hoffa, Jr)가 이끄는 트럭운전자 노조 사이의
협력이다.
조직된 노동의 지도자들은 우익 포퓰리즘의 출현에 대응하는 데
상대적으로 무력하였다. 곰퍼스주의 패러다임에 얽매여, 조직된
노동의 대부분은 새로운 포퓰리즘에 확실히 대응할 수가 없었다.
수사적인 것을 제외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의 결여와 사회 계약의 인종주의적 본질에 대한 솔직한
인정의 결여, 그리고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한 일관된 분석의
결여 때문에 많은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배신감에 대해
대처할 수 없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아이러니는 우리가 이라크
공격을 접했을 때, 공격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를
희망한 조직된 노동자의 지도자 중 일부가 그들의 관점이 반드시
전체 회원의 관점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인과응보라는 단어에 새로운 뜻을 부여하였다.
곰퍼스주의 패러다임은 조직된 노동이 인종과 성을 대하는
태도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실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억제하였다. 조직된 노동이 자신의 역할을 사람의 얼굴을
한 미국을 위한- 글로벌 자본주의를 장려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한에 있어서는, 조직된 노동은 미국 대외정책을 반대하는데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직된 노동은
미제국주의를 지지해왔던 불합리한 역사에 맞서라는 요구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잔혹한 행위에 동조했던 것이 옳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9·11의 여파로 미국 대외정책과 미국이 남반부에서
행한 만행이 낳은 폭발적인 증오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9·11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나타났을 때 애국주의의 명목 하에 조직된 노동 계급
내에서 전국적으로 반대파의 입지를 억압하였다.
조직된 노동이 반제국주의에 설득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은 없다. 단기적으로 조직된 노동의
일부를 포함한 노동 계급의 일부가 다양한 반제국주의 방침에
설득된다고 믿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사회주의 같은 진보적이고, 변화를 추구하는 정견이 헤게모니를
갖고자 한다면, 반제국주의는 미국 노동 계급 내에서 주도적인
견해가 될 필요가 있다. 우루과이의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는 북반구가 발전한 만큼 남반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태양계에 10개 이상의 행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원을 국제적으로 분배하고 사용하는 데에 관한
왜곡된 방식을 보여주는 극적인 예이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의
가장 부유한 5분의 1이 전체 자원과 서비스의 86%를 소비하는
반면, 가장 가난한 5분의 1은 1.3%를 소비한다고 한다. 게다가
실질 자산인 부의 경우, 더욱 분극화되어 있다. 또한 유엔에
따르면, 2002년 세계 최고 부자 225명- 그중 60명은 미국인- 이
세계 인구의 최빈층 47%의 연간 수입과 같은 1조 달러 이상의
전체 재산을 갖고 있다.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결과인 자원과 부의 불균형은 도덕적
호소를 위해 여기에 언급하지는 않겠다. 이 글은 굶주리는
빈민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선을 위한 광고가 아니다. 게다가,
진보하고자 하는 미국 노동계급을 위해 그리고 특히 스스로
변모하고자 하는 노동조합 운동을 위해 이 불균형에 대한 인식은
많은 사람들을 흔들리게 하는 진술, 즉 국제적인 부의 재분배의
필요를 지적하는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받아들여져 새로운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미국 노동계급과 미국 사회의 다른 영역 내에서 우익 포퓰리즘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분열점을 찾아 다면적인 공격이 이루어져야
한다. 백인 인종 블록과 제국주의적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은
공격의 열쇠이다. 미국 노동계급의 일부가 스스로를 제국주의적
게임의 인질이자 희생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나머지 세계의
희생물로 생각하는 한 우익 포퓰리즘은 그들의 세력 확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상 -국내적으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국제적으로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을 위한 투쟁은 객관적으로
반제국주의 성격을 갖고 있다. 보상에 대한 요구는 전 지구적인
(그리고 국내적인) 부의 재분배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한다. 이는
백인 혹은 국제적으로는 북반구의 시민이 그들의 칫솔과 차를
포기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대신에, 이 요구는 우리가
북반구에서 사는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침탈에 대한 보상, 보다 일반적으로는 찢겨진 역사를
뒤로하고 자기결정적인 발전의 길 위에 사람들을 올려놓는
재건을 위한 원조를 정부, 초국적 기업, 은행, 부동산 산업을
대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
또, 이것은 자선이 아니다. 저지른 죄에 대한 배상이다. 이것은
또한 북반구 전체, 특히 미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나머지로부터 탈취한 부(와 사람들)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한
결코 신뢰받지 못한다는 인식이다. 이는 도덕주의라고 불릴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이기적인 것이다: 부, 자원, 힘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동안에는 누구든 안전이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조직된 영역 내에서, 보상과 전 세계적 부의
재분배를 위한 투쟁은 선의를 가진 좌파들의 요구에서
운동으로서의 정치적 요구로 이동하여야 한다. 이러한 요구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민주적인
대외정책을 위한 투쟁이다.
2002년 가을 발표된 새로운 미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드러나는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세계 질서”(New World Order)의
체계화로, 평화롭고 인도적이며 무해하다는 미국 대외정책의
완벽한 가식(거짓)이 폭로되었다. 새로운 독트린은 세계 전체에
선언하였다. 미국이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적 제국으로 향하고
있음을; 어떤 강국도 미국의 군사력과 싸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미국은 그들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고
간주되는 어떤 국가나 세력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당연히 가진다는 것을.
새로운 독트린이 주장하는 것의 대부분은 미국이 역사적으로
행해왔던 것이나, 다른 것이 있다면 선언이 뻔뻔하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은 이라크를 둘러싼 격한 국제적인 논쟁에서 미국의
중요한 제국주의 동맹들의 의견과 행동을 명백히 경시했다는
점이다.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전에 부시 행정부는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놀라운 점은 부시 행정부가 이 고립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오만하게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 계급 내에서 거대한 흐름으로 반제국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미국의 민주적인 대외정책을 위한 투쟁을 포함한다. 물론
미국이 제국주의적 힘을 지니고 있는 동안은 항상 민주적인 대외
정책의 실행능력에 객관적인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관한 미국 노동계급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다음의 요구를
포함할 수 있다. 보상/재건 원조를 위한 요구, 국제적인 에이즈
기금에 대한 대규모 원조,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폐기, 독재
정권에 대한 군사 보조 철수, 미국의 기업 농업에 주는 농업
보조금 폐지, 유엔 회비의 완전 납부,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의 민주적인 다자간 교역 협정으로의 전환.
포함될 리스트는 늘어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것은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여기에 민주적인 대외 정책을 위한 투쟁의 또 다른 일면이 있다.
노동계급이 이 투쟁에 함께 하는 것은 구 자본주의 정당에
의존하고 있는 곰퍼스주의에 대항해 투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투쟁은 훌륭한 민주주의자이기만 하면 누구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해 독립적인 노동계급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을 두드러지게 고취시킨다. 클린턴 집권기 동안
노동조합 정책은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클린턴의 대외정책 (또는 복지 개혁 같은 국내 정책)에 대해
반대할 때조차도, 독립적인 영역을 확립하는 데 깊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는 노조운동이 (WTO 집회를 제외하고) 클린턴의
친세계화 정책에 대해 일관적으로 투쟁하고자 하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 노동계급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은 보호주의이다. 보호주의는
때때로 반제국주의는 아닐지라도 반기업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반기업적이지도, 반제국주의적이지도 않다.
노동계급이 실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보호주의적인
반응으로서가 아니라, 자본을 공격하고, 해외 노동자를 지지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 제시 잭슨(Jesse Jackson)은 198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연설로 자본이 이웃, 공동체, 도시,
또는 국가를 떠났을 때에는 자본에―보상/배상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이 글의
영역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이슈로 나아간다. 기술의 변화나
국외로의 이동에 의해 가치를 생산하는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지더라도, 기업에 의해 얻게 된 생산성은 분배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노동당의 설립자인 고(故)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의 개념을 도입하여 노동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일자리를 저임금에서 고임금 고용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거대한 조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해외로의 일자리 이동 문제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진정한 국제
노동 연대이다.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브라질, 남한 같은
지역의 좌파적 노동조합운동의 성장은 세계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성과이다. 이는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인종차별적으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
스위니(John Sweeney) 하의 AFL-CIO는 노동 연대와 관해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으나, 이는 냉전시대의
노동조합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것과는 모순된
것이다. 미국의 조직된 노동에게 선택은 아쉽게도 뉴딜정책의
사회계약의 “좋은 옛날”로의 복귀라는 환타지를 수반한
부르주아 사회의 지위에 대한 선망 대 순수한 외국의 노동자와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대 사이의 선택인 듯 보인다.
위에서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마지막 영역은 미국의 무모한
전쟁에 대한 반대이다. 시나리오가 이차 세계대전과 유사한 몇
가지 점을 보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식에 있어서는 이차대전과
분명히 다르다. 오히려, 새로운 국제 안전보장 독트린에서
우리는 미국의 군사화가 인권, 테러리즘, 소위 깡패국가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에 대해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이 나올 때,
자유주의와 진보주의 진영은 보통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대신에, 우리는 “정해진 각본을 던져버려야 한다”(flip the
script). 글자 그대로, 미국 정책과 군사적 행동의 목적에 대해
곤란한 질문을 해야만 한다. 특히 9.11 이후의 상황에서 이를
위해서는 공포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항하여야 한다. 허위이든
사실이든 위협에 대한 공포가 전 영토를 지배하고 있을 동안,
반제국주의는 억제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공포는 앞으로 올지도 모를 테러
공격에 대한 공포이다. 이 공포는 침체하는 미국(그리고 전
세계) 경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방해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 그리고 군사화와 국내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주장에
의해 조장된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미국의 행동이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받은 동조에 근거를 주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종교 독재자와 국가 테러리스트)의 정치적 본질을
알게 되는 정도에 따라 깨질 수 있고 깨질 것이다.
결론
미국 노동계급과 조직된 노동에 대한 도전은 공식적인 좌파운동
없이는 맞설 수 없다. 지금의 반제국주의의 출현은 몇몇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운동이 아닌, 노조 운동과 보다 광범위한 운동
내에서의 다양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운동은 반제국주의 운동의
기초를 쌓을 수 있는 대중적인 사회 현상 중 하나이다.
여기에서조차 다양한 세력들을 한데 모으는 보다 조직화된 좌파
진영이 없다면, 반제국주의 운동은 실패할 것이다.
좌파의 재건설에 대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진정한 반제국주의 운동의 발전은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하는 걸로 만족하고자 한다. 최선의
반제국주의는 단지 북반구의 폭력적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기반 위에서 움직여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만드는 것은 진정한
좌파의 임무이어야 한다. 좌익적이고 새로운 비전이 없이는
우리는 최후의 승리에 대한 희망이 없는 끝없는 저항 투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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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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