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노동자투쟁 평가
- ‘5월 총파업투쟁’의 가능성과 한계를 중심으로 -
박 성 인
사무처장
98년, 한국 노동자계급의 현실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바로 나, 내 가정일 수도 있음에 불안해 하다가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이놈의 IMF는 단순히 우리를 경제적으로만 어렵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망가뜨려 버리는 것 같아 더 더욱 그렇다. 나는 정말 알고 싶다. 누구에게든 묻고 싶다. 우리가
지금 왜 이곳 IMF 전쟁터에서 있어야 하는지를 --- ”1)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하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은 혼란과 동요 속에서도 ‘고용안정’ 요구를 중심으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끈질긴 투쟁을 전개해 왔다. 98년 5월 메이데이투쟁을 시작으로, 5월 말의 총파업투쟁, 6월 퇴출은행과 퇴출기업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및 생계대책 요구투쟁, 7월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공공부문노동자들의 투쟁, 7월~ 9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과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저지 및 민주노조사수투쟁, 그리고 11월 8일의 민중대회에 이르기까지 힘겹지만 완강한 저항을 해 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정리해고제를 철폐시켜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에서 4만여 조합원이 정리해고2)됐고, 90% 가까운 넘는 사업장에서 임금동결과 삭감3)을 강요당했다. 작업장에서의 노동통제는 고용불안을 빌미로 하여 더욱 강화되었으며, 단협안이 개악되고 노동조합 활동 역시 일방적 탄압과 통제 대상이 되어, 지난 10년간 투쟁을 통해 쟁취해왔던 현장의 민주적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4) 나아가 김대중 정권 들어 400여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구속되거나 수배되었고, 400여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사회적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길거리로 내팽겨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13일(금), 11월 19일(목)에 열렸던 민주노총 제13차, 제14차 대의원대회가 성원 미달로 유산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유산된 것은 민주노총 건설 이후 처음의 일로, 민주노총이 직면하고 있는 현 조직상태의 심각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98년 들어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정리해고와 임금동결․삭감으로 인해 생존권 자체가 벼랑 끝에서 위협받고 있으며, 고용불안을 빌미로 한 자본의 대대적인 현장통제 강화로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수호해 왔던 ‘민주적인 권리’가 침해되고 현장통제력’마저 무너지면서 민주노조 그 자체가 정체성은 물론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1998년 한국 노동자계급이 처한 이러한 현실은 1997년 11월, IMF구제금융신청 이후 등장한 김대중 정권이 경제위기 극복책으로 강행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1998년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이 바로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민주적 권리’를 침해하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한편으로는 ‘고용불안’으로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투쟁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IMF관리체제 1년이 넘는 지금,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장미빛 전망이 지면과 방송을 호들갑스럽게 장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통과 불안과 절망의 쳇바퀴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누군가를 향해’ 묻는다. “우리가 지금 왜 이곳 IMF전쟁터에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불안과 절망이 분노로 바뀌면서 절규한다.
“‘경제살리기’라는 지상과제를 앞세운 협박과 공갈은 이제 노동대중에게 노골적으로 목숨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말인즉슨, 이러다가는 배가 통째로 뒤집혀 모두가 죽으니 일단 20%가 내려 80%가 살아난 뒤 그 80%가 배를 열심히 고쳐서 앞에 내린 20%를 구하러 오겠다는 것이다. 그 20%가 내린 곳은 아무데도 의지할 것 없는 망망대해이고, 또 언제 배를 고쳐 돌아오겠다는 것인지 기약도 없다. --- 도대체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다른 이의 삶을 박탈할 권리를 부여받았단 말인가?”5)
5월 총파업, 98년 노동자투쟁의 분기점
“민주노총 중앙은 초기에 정리해고제 입법화 직권조인, 총파업 철회, 상층의 밀실담합에 의한 민주노총 임원선출기도 등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정리해고제 철폐 등 투쟁의 기치를 명확히 하면서 자본에 대한 전선을 쳐냈으나, 곧 조직장악력과 지도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관된 노선을 견지하지 못하고, 투쟁과 타협 사이에서 동요하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6)
1998년 한국 노동자계급이 처한 이러한 현실은, 한편으로는 ‘IMF관리체제’를 빌미로 한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 자본합리화 공세’의 직접적인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997년 11월 ‘IMF구제금융 신청’과 1998년 2월 김대중 정권의 출범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대응의 결과이고, 좀 더 직접적으로는 1998년 4월, ‘투쟁과 혁신’의 기치아래 등장한 민주노총 2기 지도부(위원장 이갑용)를 중심으로 전개해 온, 일련의 활동과 투쟁의 결과이다.
민주노총 2기 지도부(위원장 이갑용)는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수호할 ‘투쟁지도부’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잠정합의’와 ‘총파업 철회’로 인한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를 투쟁을 통해 극복해 나갈 ‘위기관리 지도부’로서, 그리고 현장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의 관료화 가능성을 조직 내부 민주주의의 확대․강화를 통해 혁신을 추진할 ‘혁신 지도부’로서 4월 1일에 출범하였다.7)
그러나 2기 지도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난 지금, 민주노총 2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 민주노총 존립 이유 자체가 대중적으로 문제제기될 정도8)로, ‘투쟁지도부’, ‘혁신지도부’로서의 민주노총 2기 지도부의 성격은 훼손되었고, 9월 이후에는 조직집행력마저 상실한 채,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 이행 점검’과 공약사안인 ‘조직혁신’이라는 명분으로 근근히 명목을 유지하는 상황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2월 9일 대의원대회와 이갑용 집행부 등장을 계기로 국민파의 일시적인 후퇴를 강제하였으나, 상반기투쟁과정에서 2기 민주노총은 상층 교섭주의의 흐름에 경도되면서 결국 전국적 투쟁전선의 와해와 이완을 거듭 초래하면서 ‘공동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9)
“강경투쟁과 조직쇄신을 내걸고 출범한 2기 집행부의 방침은 얼마되지 않아 사실상 소실돼 버렸다.”10)
“2기 지도부 스스로도 6.5노정합의 직전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외교 협조 운운하며 교섭에 연연하는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겉으로의 강경한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11)
98년 투쟁의 결과로서 민주노총 2기가 직면한 이러한 문제는 그것이 2기 지도부의 지도력과 조직장악력의 문제이든, 민주노총 전체의 지도력과 조직체계, 그리고 조직운영과 관련한 문제이든, 우리 사회 전체를 ‘시장경쟁 논리’에 의해 재편하려는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과 민주적인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중적 보루라는 점에서, 나아가 자본축적운동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 대해 대안 사회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실천적으로 추구해 나갈 계급적인 주체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단지 노동조합운동의 수준에서가 아닌,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 전망’12) 속에서 엄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98년 노동자투쟁의 전개과정을 일괄해 볼 때, 5월 1일 노동절투쟁을 시작으로 5월 27~28일, 1차 총파업투쟁까지는 정리해고제 철폐 요구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신속히 복구해 냈지만, 6월 10일 2차총파업투쟁의 철회와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 그리고 7월 23일 총파업투쟁 철회와 노사정위원회 복귀 결정 이후에는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와해되었고, 이후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맞선 고용안정 투쟁은 각 연맹이나 단위사업장의 투쟁으로 축소되어버렸고,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2기 지도부의 지도력 역시 급속히 와해되어 갔다는 점에서, 5월 말 1차 총파업 투쟁이 가능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6월 초 2차 총파업투쟁전선이 형성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엄밀하게 평가하는 것은, 민주노총 2기 지도부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태도를 갖고 있든, 98년 노동자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5월 총파업투쟁의 성립과 6월 총파업투쟁의 철회는, 현 시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反신자유주의’ 대중투쟁전선을 통해 대안적인 사회세력으로 발전할 가능성과 동시에,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하위동반자로 포섭될 가능성 모두 보여주었다.
1998년, 민주노총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2기 임원 선거는 민주노총이 처한 혼란과 동요,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여 민주노총의 중앙지도부가 다시 현장조합원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강화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김대중 정권의 허구적인 노사협조주의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수호하고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한 마지막 대중적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가름하는 선거이다.”13)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조건 속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권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정지표를 내세우면서, 경제위기의 극복책으로 ‘외자유치’, ‘자본자유화와 민영화’,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전면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첫 번째 대상은 ‘노동자’였다.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야 한다”는 ‘IMF이행 합의’를 명분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20%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조직노동자의 대량해고를 가능케 하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즉각 실시를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권은 96~97년 노동자총파업에서 확인되었듯이, 예상되는 조직노동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상층을 ‘사회적 합의’의 틀로 끌어 들이기 위한 ‘1기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러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해 민주노총은 한편으로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전선’을 구축하고, 동시에 ‘1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교섭을 전개함으로써 ‘투쟁과 교섭’을 병행해 나가는 전술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를 수용하는 ‘잠정합의’를 함으로써,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분노와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노사정위원회’에서의 잠정합의로 인해 초래된 민주노총의 위기는 98년 2월 9일 제8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고, 1기 지도부(위원장 직무대행 배석범)가 사퇴함으로써 밑으로부터 극복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지만,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실질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결성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단병호)가 민주노총의 내부 분열 가능성, 파업동력의 부재, 국민여론으로부터의 고립 가능성,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 등의 이유로 총파업 방침을 철회함으로써, 민주노총은 다시 민주성과 자주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14)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잠정합의’가 경제위기라는 정세 하에서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과 노선의 문제 - 즉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하위동반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 구심이 될 것이냐 - 를 제기했다면,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설 주체역량의 측면, 즉 대중투쟁동력과 총파업 전술, 그리고 투쟁지도력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변화된 정세 하에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공세에 대한 민주노총의 첫 번째 대응은 ‘혼란’과 ‘동요’ 그 자체였다. 이러한 혼란과 동요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총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전제하에서의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그를 통한 정책참여․사회개혁의 추구라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노동운동 발전전략이 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연화 공세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임금동결․삭감, 그리고 노동통제와 노동강도의 강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현장 노동자들의 고통과 불안과 분노가 증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부딪힌, 자기 모순적인 상황의 표현이었다.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 그리고 이를 계기로 더욱 격화되는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87년 노동자투쟁 이후 투쟁을 통해 수호해 온 민주노총의 자주성과 민주성, 그리고 계급적 단결의 정신을 변화된 정세 속에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하였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잠정합의’와 ‘총파업 철회’에 대해 현장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지도부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의 존립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도대체 민주노총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는 물음은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 그리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도입으로 예상되는 생존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대중의 절박한 위기의식의 표현이었다.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총노동 전선’의 구축은 2기 지도부의 과제15)로 넘겨졌다.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거세어지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과 민주적인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총노동전선의 구축은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권의 ‘총체적 개혁’ 구도 자체에 대한 ‘정치적 전선’의 성격16)을 띌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총노동전선 구축의 성공 여부는 민주노총 내부의 민주성과 자주성의 위기를 극복하여, 계급적 단결의 구심으로 서 나갈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현시기 노동자계급의 생존권투쟁과 민주적 기본권 수호투쟁은 그것이 주체들에 의해 분명하게 의식되든 불분명하게 의식되든,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거꾸로 이러한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 수호투쟁은 바로 소수가 아닌 전체 노동자대중의 계급적이고 현실적 이해를 반영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노동자계급대중 전체가 계급적이고 정치적으로 고양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투쟁이 갖는 이러한 계급적․정치적 성격 때문에, 노동자투쟁의 폭발적인 잠재력에 두려움을 갖는 김대중 정권은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상층 일부를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시민운동진영이나 노동운동 내부의 일부 세력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투쟁이 갖는 계급적․정치적 성격을 거세하려고 노력한다. 만일 우리가 노동운동의 발전을 조합원수의 증감이나 조직률의 증감이라는 지표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나아가 노동운동의 현단계 핵심과제를 ‘노동자계급 정치의 활성화’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현 시기는 ‘노동운동의 위기’의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운동의 ‘질적 발전’의 시기, 즉 ‘계급정치’를 대중적으로 활성화시켜 나갈 수 있는 시기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적 조건은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 수호투쟁은 여전히 수세적이고 방어적 수준의 힘겨운 투쟁이다. “역사상 거의 모든 노동의 격변과 진보는 ‘방어적 투쟁’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의 전망과 계획, 그리고 계급적․정치적 지도력과 결합됐을 때 비로소 노동운동의 ‘질적 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거꾸로 ‘경제위기’라는 정세 속에서,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총체적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유일한’ 위기극복책으로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에게 강요되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최소한 생존권과 민주적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도, 노동운동은 계급적․정치적으로 강화되고 고양되어야 한다.”17)
98년 5월 총파업투쟁, 그 의의와 성과
“희망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겠는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작하자.’ 그렇지 않는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18)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에 있는 어린애까지 버린다’는 말이 있다. 98년 노동자투쟁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평가는 현상적인 결과만을 놓고 ‘노동운동의 위기’, ‘노동운동의 방향전환’19)을 운운하면서, 98년 5월투쟁이 보여준 의의와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거나 과소평가는 경향이 있다.
98년 4월 1일 2기 지도부의 출범 이후, 5월 1일 메이데이투쟁을 거쳐 98년 5월 27~28일 이틀간에 걸친 총파업투쟁이라는 전국적 투쟁을 조직했다는 점은 그 투쟁의 성패 여부를 떠나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정세 속에서 전면화된 자본의 공세에 맞서, 이데올로기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분인 민주노총이 정치적 총파업이라는 전선을 침으로써, 전체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의 ‘급속한’ 하락을 저지시켜 냈다는 점이다. 개별 사업장 혹은 개별 연맹의 투쟁만으로는 총자본의 공세에 맞서 고용안정을 중심으로 한 생존권을 사수해 낼 수 없다는 정세인식을 바탕으로 조직된 98년 5월 총파업투쟁은 ‘투쟁지도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중투쟁동력을 복원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혹자는 98년 상반기 임단협 결과 많은 노동조합이 고용안정을 전제로 임금동결이나 삭감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20,000여명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위기’, 혹은 ‘현장 투쟁동력의 위기’라고 주장하고, 이후 민주노총은 ‘정책참가’라는 ‘가능성 있는 차선책’을 선택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98년 5월 총파업투쟁 이후 단위사업장에서의 양보교섭은 5월 총파업투쟁이 정치적․조직적으로 강고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결과이지, 5월 총파업투쟁 그 자체의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라는 정세적 조건과 정권과 총자본진영의 공세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선진적인 부분의 정치적 파업투쟁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의 급속한 하락을 어느 정도 저지해 낼 수 있었다는 점은, 이후 정치적 파업투쟁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조직적 강도 여하에 따라 다시 현장투쟁력과 조직력을 복원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98년 노동자투쟁과 관련해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민주노총이 수개월에 걸친 내부 진통을 거친 후, 신속하게 ‘反신자유주의, 反김대중정권’ 대중투쟁전선을 복원해 냈고,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갖는 ‘반노동자적․반민중적 성격’을 폭로해 냈다는 점이다. ‘외자유치와 자본자유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경제위기 극복책이라는 점이 전사회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에 바탕하여, ‘고용안정․생존권 사수’, ‘정치․경제․사회구조의 전면적 개혁’이라는 2대 투쟁 목표를 설정하고,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철폐 및 부당노동행위 근절’,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 ‘고용․실업대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해체․노동3권 보장․노동자 경영참가’, ‘IMF재협상’ 등 ‘5대 요구안’으로 집약20)해 냈다. 민주노총의 5대 요구안은 현 시기 ‘신자유주의 위기극복책’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98년 노동자투쟁은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해 대부분 소부르조아 시민운동세력이 투항하거나 동요할 때, 노동자계급만이 유일하게 계급적이며 정치적인 대중투쟁전선을 형성해 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투쟁동력을 바탕으로 5월 1일에는 노학연대를 복원해 냈고, 이러한 성과에 바탕하여 11월 8일에는 ‘민중10대요구안’21)에 바탕하여 민중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노동자․민중연대투쟁을 현실화시켜 내기도 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은 ‘反신자유주의․反김대중정권’ 대중투쟁동력을 바탕으로 노동자․민중연대전선을 복원함으로써 전체 민중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도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셋째, 98년 5월 총파업투쟁은 ‘잠정합의’ 및 ‘총파업 철회’로 인한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를 대중투쟁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는 경제위기라는 상황에서 파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대위 지도부의 현실인식을 ‘현실적으로’ 극복한 것이며, 동시에 총파업투쟁에 바탕하여 노정합의라는 교섭을 이끌어 냄으로써, ‘투쟁과 교섭의 결합’이라는 원칙을 현실화시켜 냈다.
이처럼 98년 노동자투쟁은, “‘경제위기’와 ‘IMF관리체제’하에서 전면화되고 있는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고용안정’을 중심적인 요구로 하는 생존권투쟁이었지만, 과거의 생존권투쟁과는 달리, 98년 상반기 노동자투쟁의 초기에서부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전선을 형성하면서 전개된 생존권투쟁이었다. 동시에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과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노동자들의 정리해고투쟁에서 보듯이, 개별 연맹 혹은 주요 개별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전국적인 파급력을 가지면서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을 띄었다. 생존권투쟁 그 자체가 정치적 계급적․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용안정’이라는 요구가 개별기업이나 개별 연맹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위기극복책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87년 노동자대투쟁과 95년 민주노총 건설, 그리고 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 등을 거치면서 성장해 온 노동자계급의 투쟁역량, 조직역량의 성과이기도 했다.”22)
98년 5월 총파업투쟁의 한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총파업의 기조에 혼선이 많았습니다. 어떤 조직은 계급적 이해를 담은 총파업으로, 어떤 조직은 현안 중심 시기집중투쟁으로, 아니면 그냥 전체 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으로 조직했습니다. 목표와 관련해서도 고용안정이라는 것이 정리해고 철폐냐 아니면 사회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냐, 노동자계급의 고용안정이냐 아니면 일자리 있는 사람들의 고용안정이냐 명확하게 이거다라고 정리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 중심의 투쟁이 민주노총의 외피를 쓰는 형식이 되고, 또 주력대오가 파업을 중단하면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23)
5월 말 1차총파업까지는 민주노총 2기 지도부는 ‘위기관리지도부’, ‘투쟁지도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6월 10일, 2차 총파업 철회와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을 전후하여 2기 지도부의 한계와 동시에 민주노총 전체 지도력의 한계가 드러났다. 이 한계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의 한계이며, 동시에 민주노총의 조직적 한계이기도 했다.
6월 1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2차총파업을 철회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결의 후, 전국적인 투쟁 전선은 무너졌다.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무너지자마자,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공세는 더욱 거세어졌으며, 이러한 공세에 대해 민주노총 산하 연맹과 단사노조는 개별적인 수준에서 힘겹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7월 공공부문노동자들과 금속노동자들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계기로 다시 ‘총파업투쟁’을 통해 전국적 투쟁전선을 복구하려는 시도는 7월 23일 총파업 철회로 좌절되었고, 이후 8월과 9월에 걸친 현자노동자들과 만도기계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저지투쟁과 민주노조사수투쟁은 현장에서의 대중투쟁동력이 강력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의 지도력의 한계로 다시 전국적 투쟁전선을 복원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처럼 정리해고 철폐와 저지를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투쟁전선이 허물어진 조건에서 치루어진 11월 8일의 민중대회는 노동자․민중연대의 복원이라는 정치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힘있게 치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2기 지도부는 ‘투쟁지도부’로서의 지도집행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98년 노동자투쟁을 총괄해 볼 때, 투쟁의 시점에서는 매번 다음의 투쟁동력에 대한 기대와 회의로 혼란스러웠고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김대중 정권과 자본의 정리해고 공세를 대중적인 정치파업투쟁을 중심으로 저지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5월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드러난 현시기 민주노총 역량의 한계가 98년 전체 노동자투쟁의 방향과 진전 여부를 규정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99년에도 더욱 거세어질 총자본진영의 구조조정 공세에 대항하여, 다시 ‘전국적 투쟁전선’을 복원하고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5월 말 1차 총파업투쟁에서부터 6월 10일 2차 총파업투쟁 철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역량이 갖는 한계를 면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먼저 ‘5월 말 정치총파업 투쟁’이 강고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경제위기를 매개로 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성격에 대한 인식에서, 민주노총 전체지도부24)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그리고 전술지도력에서 취약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력의 취약함이 정치파업투쟁을 강고하게 유지해 나갈 수 없게 한 내적 한계로 작용했으며, 5월 말 정치총파업투쟁의 취약함이 결국 6월 10일 총파업투쟁의 철회와 노사정위원회 참여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5월 31일, 정부가 총파업을 주도한 민주노총 소속 간부 143명을 입건 처벌하겠다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중단된 노정교섭을 끌어낸다는 명복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방문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나, 그리고 민주노총의 주요 요구사항에 대한 분명한 합의와 현안문제에 대한 확고한 해결도 없이 서둘러 6월 10일 2차총파업을 철회하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 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의 기조를 인정한 오류였고, 전술적으로는 투쟁 중심에서 교섭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전술적인 공세의 입장에서 수세적인 입장으로 몰리게 한 요인이 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인식의 불투명함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도 드러났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하위 동반자 기구에 불과한,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25)에 민주노총은 애초에 가졌던 ‘불참’26)과 ‘재협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지 못한 채, ‘전술적 활용’이라는 명분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노사정위 합의로 제출된 주요 사안들이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거나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어 이럴 바엔 노사정위의 문을 닫는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업자 초기업단위노조 가입 허용문제의 경우 정부내 반대에 부딪혀 정부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노동부는 월차휴가 폐지, 법정공휴일 축소,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치를 전제로 한다는 재계에 편향된 입장이다. --- 교원노조 법제화는 한나라당의 반대 당론, 국회 교육위 소속위원들의 보수적 입장으로 국회 본회의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27)
두차례에 걸친 총파업투쟁 철회와 노사정위원회의 참여․탈퇴의 번복으로 민주노총 2기 지도부는 ‘지그재그 집행부’라는 불명예스러운 규정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할 점이 있다. 하나는 ‘지그재그’ 속에서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계급적․정치적인 지향으로 나아가고 있느냐이고, 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에서 어떠한 입장과 세력이 그 발전을 가로막거나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28)이다. 억압받는 유태인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이끌려는 ‘모세’를 애굽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자가 누구인가?
두 번째, 5월 총파업투쟁과 6월 총파업투쟁으로 드러난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집행력의 한계가 민주노총 중앙과 산별연맹, 그리고 지역본부와 주요 단사간의 상호관계와 역할분담이 분명하지 못하다고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민주성의 결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총연합단체는 기존의 역할을 과감히 산별연맹에 위임하고, 전국적 차원의 노동조합운동 중장기 대안 모색에 집중”하고, “산별연맹이 일상적인 교섭, 정책, 조직, 교육, 선전, 투쟁 사업의 최소 완결단위로 자리매김”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29)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현시기 노동운동의 위기가 기업별 노조체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산별노조 건설의 물질적인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별연맹 단위의 집중투쟁이 전개”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별 교섭권을 산별연맹으로 집중”해 나가야 한다30)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의 역할 분담, 그리고 기업별노조체계의 극복과 산별노조 건설에 대해 위의 견해는 민주노총이 직면한 현실과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인 성과에 대해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다. “87년 이후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이미 전국적․전계급적 중앙집중투쟁을 전개해 왔다. 즉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슈로 쟁점화되고, 총자본진영과의 치열한 대립을 통해서 전진해 왔으며, 이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중앙집중성을 전국적이고 전계급적 수준에서 획득해 왔다. 이는 동시에 특정 지역, 특정 자본분파(예를 들어 업종자본)와의 대결도 전체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이해 및 요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투쟁전선과의 긴밀한 상호규정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31)
산별노조 건설이 현 시기 노조운동의 조직발전과 관련하여 주요한 전략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경로에서 투쟁발전의 한계에 부딪힌 민주노조운동이 어떻게 투쟁을 집중하고 확장할 것인가 하는 방향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찾지 않고, 산별문제로 환원하면서 현실의 대립지점에서 후퇴한다거나, 산별 지향성을 내세우면서 특정 자본분파와의 투쟁에 집중32)하고 국가권력이 제3자의 외양을 띄면서 조정자적 역할을 하는 양태가 나타나는 것을 현실로 나타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운동의 총단결체로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구심이자, 투쟁의 구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현실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계급적 단결과 투쟁, 그리고 그를 통한 계급의식의 고양을 바탕으로, 그 투쟁의 정치적, 조직적 성과를 바탕으로 산별노조로의 조직 전환 문제는 고민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1월 26일, ‘민주노총 개혁팀’이 구성되어 조직발전과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제도개선을 통한 민주노총의 조직적 혁신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의 2기 지도부의 마지막 공약사업으로 조직혁신을 추구한는 데에 과연 지금의 집행력으로 추동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지만,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제도개선이 이후 민주노총의 조직발전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판단한다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혁신 논의를 대중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직 혁신을 위한 대중적인 열망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2기 지도부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김미호, 「IMF 서바이벌 게임」, ꡔ아빠소리 하지마! 사람들이 듣잖아ꡕ 73쪽,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엮음, 도서출판 노기연, 1998. 11.
2) 양대 노총 조합원 변동 추이
2) 양대 노총 조합원 변동 추이
한국노총 |
931,234(97/12) |
918,171(98/3) |
897,172(98/6) |
민주노총 |
525,325(97/5) |
535,203(98/4) |
508,200(98/8) |
한국노총 |
931,234(97/12) |
918,171(98/3) |
897,172(98/6) |
민주노총 |
525,325(97/5) |
535,203(98/4) |
508,200(98/8) |
- 한국노총 : 20,999명 감소, 민주노총 : 27,003명 감소
3) 1998년 10월 15일, 경총에서 발표한 ꡔ98년 임금조정 실태조사ꡕ에 따르면, 전국 1,307개 기업 중에서 54.5% 기업에서 임금 및 상여금을 반납했고, 34.6% 기업에서 임금을 동결했으며, 임금인상을 한 기업는 10.9%에 불과했다.
4) “다양한 형태의 정리해고가 자행되고 있다. --- 정규직 해고 후 임시직 고용, 노조 탄압수단으로 악용되는 해고, 정리해고 위협을 통한 노동조건의 급격한 악화 현상 등 --- ‘100명을 살리기 위한 30명의 희생’이라는 현정권의 인력구조조정정책은 실업자의 급증과 함께 나머지 70명의 고용불안과 심각한 정도의 소득감소만 가져 왔다. ---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건비 감소와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정리해고 악용되고 있다」, ꡔ노동과 세계ꡕ 41호, 1998. 12. 7. 민주노총)
5) 이무열, 「‘구조조정’의 핵심은 이제 ‘일자리 늘이기’여야 한다」, ꡔ현장에서 미래를ꡕ35호, 1998. 8.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6) 윤명선,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ꡔ정치연대 대토론회 - ’98노동자투쟁 평가 자료집ꡕ1998. 12. 5., 60~61쪽, 정치연대(준)
7) “2기 지도부의 출범은 작게는 2개월여간의 지도부 공백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조직을 정비하는 출발점이자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민주노총의 투쟁력 회복에 대한 염원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2기 지도부는 경제위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안과 노동운동의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계급성의 강화를 통해 민주노총의 정체성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회복․강화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과제와 책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임기 1년과 위원장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이갑용-고영주 체제는 짧은 시기에 자주적인 노동운동 노선의 정립과 내부 민주주의의 강화, 고용안정과 생존권 사수투쟁 전선의 회복과 진전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실현해야 할 임무를 받아안게 되었다.”(고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민주노총 2기 집행부의 활동 방향과 과제」, ꡔ노동사회ꡕ1998. 5월호, 72~73쪽,한국노동사회연구소)
8) 지난 11월 11일, 현대자동차 대의원대회에서는 민주노총과 금속산업연맹의 맹비를 6개월간 지급보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는 “상반기 정리해고 반대투쟁과정에서 쌓인 상급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사설」, ꡔ금속산업연맹ꡕ창간준비12호, 1998. 11.30.)
9) 이환재, 「98년 투쟁평가와 과제」, ꡔ98년 투쟁평가와 향후 투쟁방향 토론회 자료집ꡕ 1998. 11. 28., 13쪽, 전국노동단체연합
10) 임영일 교수, 「지상논쟁 : 산별노조 건설이 위기극복의 첫단계」, ꡔ노동과 세계ꡕ제41호, 1998. 12. 7. 민주노총
11) 윤효원, 「1998년 민주노총 전략․전술 평가」, ꡔ노동사회ꡕ1998. 11월호, 27~28쪽,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2)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지난 9월 창립3주년기념심포지움에서 현 정세에 요구되는 노동운동의 과제로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전략’을 시론적인 수준에서 제기한 바 있다.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공세가 경제위기를 계기로 더욱 전면화하고 강화하는, 고도성장이 마감하고 정치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조건에서의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이자 새로운 주체형성전략”으로 제출했던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을 참조바란다.
12)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는 지난 9월 창립3주년기념심포지움에서 현 정세에 요구되는 노동운동의 과제로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전략’을 시론적인 수준에서 제기한 바 있다. “과학기술혁명에 기초한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공세가 경제위기를 계기로 더욱 전면화하고 강화하는, 고도성장이 마감하고 정치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조건에서의 노동운동의 발전전략이자 새로운 주체형성전략”으로 제출했던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을 참조바란다.
곽탁성,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주체형성을 위하여」, ꡔ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3주년기념 심포지움 자료집, 1998. 9.
곽탁성,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주체형성을 위하여」, ꡔ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ꡕ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3주년기념 심포지움 자료집, 1998. 9.
김세균, 「경제위기,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 ‘앞의 자료집’
13) 정치연대(준), 「민주노총 2기 임원선거에 부쳐 - ‘아래로부터의 민주노총 혁신운동을 지지하며」,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1호, 1998. 4.,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4)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잠정합의’가 자본의 ‘경제위기’, ‘시장경제논리’에 바탕한 김대중 정권의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앞에서 동요한 것으로, 정권과 자본에 대한 민주노총의 ‘자주성’의 위기를 드러낸 것이었다면,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는 주체역량의 문제를 이유로 대의원대회의 결정 사항을 일방적으로 철회한 것으로 민주노총의 ‘민주성’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정체성의 위기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박성인, 「직권조인, 총파업투쟁 철회, 그리고 민주노총 정체성의 위기」,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0호, 1998. 3.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5) 민주노총 2기 지도부의 과제와 임무에 대한 필자의 구체적인 견해는 다음을 참조할 것. (박성인, 「투쟁, 혁신, 그리고 ‘새로운 주체 형성’을 위하여(1)」,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2호, 1998. 5.,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6) 98년 노동자투쟁이 갖는 이러한 ‘정치적 성격’을 거세하고, 부르조아 노동조합이론인 ‘노동시장론’의 관점에서, ‘고용안정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를 정리한 글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심상정, 「상반기 고용안정투쟁 평가와 진로 모색」, ꡔ노동사회ꡕ제26호, 1998. 10.,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7) 곽탁성, 「노동운동의 계급적․정치적 주체형성을 위하여」, ꡔ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3주년기념 심포지움 자료집 :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운동ꡕ1998. 9. 18.~19., 165쪽
18) 김희준, 「만도기계 노동조합투쟁」,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7호, 1998. 10.,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9)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노동운동의 방향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민주노총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복권하려는 대표적인 시도가 김유선식 ‘사회적 조합주의론’이다. (김유선,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 ꡔ노동사회ꡕ제25호, 1998. 9.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 1998. 5. 20. ‘민주노총 제11차 대의원대회’에서 요구안 확정
21) 현시기 노동․민중의 투쟁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대회 10대 요구안’은 민주노총이 주력으로 참가하고 있는 ‘범국민운동본부’의 ‘민중대회 요구안’이기도 한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경제파탄 재벌총수․정치인․관료 처벌! 부정축재 환수! △ IMF협약 철폐! 외채 탕감! △ 정리해고 중단! 주40시간제로 고용안정! △ 모든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 농가부채 해결! 농축산물 가격보장! △ 철거민․무주택자에 주거권! 노점상 합법화! 장애인에 생존권을! △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교원노조 법제화! △ 무분별한 민영화․해외매각 중지! △ 정치개혁! 언론개혁! 민주화 실현! △ 국가본안법 철폐! 양심수 전원 석방!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
22) 곽탁성, ‘앞의 글’
23) 「긴급좌담, 현시기 민주노조운동 진단과 처방」, ꡔ노동과 세계ꡕ제40호, 1998. 11. 23. 민주노총
24) 여기서 민주노총 전체의 지도력이란 주요 단위사업장 노조간부까지를 포함한 지도력을 말한다. “98년 투쟁과정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하부 단위를 직접 지도하지 못하는 한계도 드러났지만, 직접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단위노조의 지도부 역시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98년 투쟁과정에서 주요 단위노조 지도부 역시 연대투쟁을 통해 정리해고를 저지시키려고 하는 생각이 없었다.”(조돈희, ‘정치연대 토론회’에서, 1998. 12. 15.)
25)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기능, 그리고 민주노총의 대응방향에 대한 필자의 구체적인 견해는 다음을 참조바란다. (박성인, 「2기 노사정위원회, 어떻게 볼 것인가?」, 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35호, 1998. 8.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26) 5월 20일, 민주노총 11차 대의원대회에서는, ‘5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을 시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한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27) 「노사정위 차라리 문을 닫아라」, ꡔ노동과 세계ꡕ41호, 1998. 12. 7. 민주노총
28) 1998년 9월 이후 소위 ‘사회적 조합주의’를 둘러 싼 노동운동 노선논쟁은 바로 98년 투쟁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이 논쟁을 통해서 노동운동 주체 내부에 ‘현 시기 경제위기의 원인과 전망’,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개혁’, ‘노동운동의 이념과 목표’, ‘현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적인 과제인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건설의 상과 경로’, ‘계급간 동맹과 연대’, ‘노동조합의 위상과 역할’, ‘주체역량’, ‘지도력과 대중투쟁동력’ 등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 차이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견해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자신의 견해를 은폐하거나 두리뭉실하게 얼버무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견해’를 분명하게 제출하고, ‘차이’를 확인하고, 또 그 ‘차이’를 인정한 조건에서 ‘공동논의’와 ‘공동투쟁’을 통해 각각의 견해를 검증하고, 나아가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노동운동의 질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29) 노항래, 「노동조합운동의 조직 혁신을 위한 제언」, ꡔ노동사회ꡕ제27호, 1998. 11. 한국노동사회연구소
30) 심상정, ‘앞의 글’, 73~74쪽
31) 곽탁성, ‘앞의 글’, 156쪽
32) 이러한 경향이 가장 분명히 들어난 것이 98년 금속산업연맹의 중앙교섭투쟁이었다. “금속의 금년 투쟁의 두가지 큰 목표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임금삭감은 허용하더라도) 고용안정과 산별 중앙교섭 쟁취였다. 또한 상반기투쟁의 기본적인 기조는 투쟁을 통한 목표의 쟁취보다는 교섭권 위임과 투쟁을 통한 교섭권 강화 및 산별 중앙교섭 쟁취에 주안점을 두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중심이오 투쟁의 주축으로서, 능동적으로 총자본에 대한 강력한 총노동전선을 형성한다는 고민은 결여되어 있었다.”(윤명선, ‘앞의 글’, 49쪽) 따라서 5월 총파업투쟁의 결과 노정협의에서 산업업종별 간담회 구성이라는 내용이 나오자, 금속연맹의 지도부는 산별교섭의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보고, 2차 총파업투쟁의 철회와 교섭을 강력히 요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