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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고소하라!
 학생발언대

현장에서 미래를  제110호
윤교선

기획
학생발언대: 우리도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라!

윤교선 / 학생




나는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에서 활동하며 운동을 배워가는 학생이다. 80년 광주 이후에 태어나 87년 민주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때는 엄마 손 잡고 밖에 나갔다가 매캐한 최루탄의 흔적이 남아있는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어렴풋한 기억밖에 안 남아있고, 정권의 폭압적인 탄압 속에서 전노협을 건설하고 또 자랑스러운 민주노총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나는 운동의 ‘운’자도 모르고 세상 흘러가는 대로 대충 발맞춰 살아가는 순진한(?) 학생이었다. 어쩌다보니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들 따라 이곳저곳 다니면서 대학물 좀 먹고, 일주일에 한번 씩 무서운 선배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머리 좀 키웠더니 이전까지 나의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인생살이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가 늘어만 갔다. 진정한 대학생활의 진수는 낮에는 데모하고 밤에는 술 먹는 것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에 세뇌를 당해 내내 그렇게 살다가 결국 학점순위도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르고, 대학교도 좀 오랫동안 다니게 되었다. 사실 우리에게 대학교 졸업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대학교 졸업장보다 더 믿을만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에 기반한 혁명적 노동계급의 잠재력이다. 무시무시한 말만 나열한다고 우리와 같은 학생신분의 학생들이 갑자기 혁명적으로, 사회주의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계급의식은 오로지 투쟁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혹은 상당 부분을 운동에 바친 선배동지들로서는 먹물 티나 벗으라고 충고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무시무시한 원칙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젊은 우리의 꿈이 자본주의라는 체제 틀 내로 갇히기에는 너무나 원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우리의 원칙은 우리 스스로 책을 파서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이는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이고 선배동지들이 몸소 실천하는 윤리(?)이다. 남한의 노동운동 역사 속에서 민주노조가 건설되는 과정, 그리고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을 봤을 때, 그러한 원칙은 선배동지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교섭을 기를 쓰고 추진하려는 민주노총 지도부를 보면서 ‘일부’ 선배동지들에 대한 불신이 쌓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자본에게 더욱 손쉬운 착취를 보장할 비정규개악법안을 노사정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정말 참신(?)했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무의미성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단체들이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따로 다룰 필요는 없어 보인다. 또한 3.15 임시 대대에서 부위원장이 “이 사람들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아닙니다!” 라고 외쳤던 것도 이성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부위원장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백번 양보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을 용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민주노총이(물론 민주노총이 고소한 것은 아니지만, 사진을 보고 피고소인을 민주노총 간부가 찍어준 것, 중집회의 결정 사항으로 재판을 통해 당시 질서유지대였던 한 사람의 치료비를 받아낼 것을 명시한 정황으로 보아 민주노총이 고소인과 한 뜻을 가진 것은 명확해 보인다.) 3.15 임시 대대 단상점거 투쟁에 참여했던 10여명의 동지들을 경찰에게 고소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이지만 “세상에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라는 당혹감이 덮쳐왔다. 민주노조 내부의 노선투쟁에서 비롯된 사건을 지배계급의 권력기구, 그것도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탄압하는데 최선봉에 섰던 경찰에게 맡기다니! 설마 3.15 대대 때 부위원장이 단상점거에 참여했던 노동자 동지들에게 “이 사람들은 조합원이 아닙니다!” 라고 외쳤던 것이 진심이었단 말인가?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에게 팔아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별의별 생각에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일어나서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민주노총이 조합원들을 고소고발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 노동운동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던 것인가? 민주노총 지도부에 있는 선배동지들이 나보다 운동을 더 했어도 몇 십 년을 더 했을 텐데 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저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과 노동의 화해불가능성은 책에서나 현실에서나 쉽게 알 수 있는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점인 비정규개악법안을 교섭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가? 사실 데모 나가면서 학교 선배들에게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비판은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탄압 속에서도 민주노총을 방어하고 사수하려고 했던 것은 민주노총이 지도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지켜온 것은 이름도 알지 못할 수많은 노동자 그리고 민중들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고소 건을 접하게 되면서, ‘일부’ 선배동지들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세력을 이번 기회를 빌미로 찍어내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응방식이 유치했다. 단상점거 투쟁에 참여했던 노동자 동지들의 태반이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98년 정리해고 도입으로 인해 해고의 경험이 있던 동지들이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투쟁의 현장에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절대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싫어했던 학생 동지들도 있었다. 꼬리를 물고 계속 나타나는 의문들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결론이 무엇이냐고? 뻔하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면서 유교적 관례에 의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으로 권위를 인정해주고 일정 정도의 예의를 차렸다. 그러나 살다보니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적인 공경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사회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한 학년 더 올라간다고, 후배가 생긴다고 저절로 선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일부 선배동지들은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를 제외하고는 권위를 인정해 줄 생각도, 존경할 생각도, 배울 생각도 없다. 나는 10여명의 조합원들을 고소한 선배동지들에게 적에게 동지를 팔아넘긴 행위에 대해 일체의 부끄러움이 없다면, 우리 학생들도 고소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고, 단상을 점거했으며 사회적 교섭에 대해 극력하게 반발했던 “폭력세력”의 당당한 일원이었으니 말이다.

말이 좀 심한 감이 있지만, 나는 내 생각에 변함이 없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은 고소를 도와준 민주노총의 일부 선배동지들에게만 해당된다. 내가 알고 있는 선배동지들 가운데에는 이제 그만 쉴 때도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험한 길을 후회하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사회적 교섭은 옛날에도 잘못이었고, 지금도 잘못이며, 미래에도 잘못이다. 다시 한 번 3.15 임시 대의원대회와 같은 자리가 열린다면, 나는 주저없이 참여할 생각이다. 나는 고소당하는 것보다 자본과 노동의 적대성을 부정하고 타협하려는 것이 훨씬 더 무섭기 때문이다.

2005-07-27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