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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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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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창 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인권하루소식 기자
1. 인권활동가들의 단식농성
정부는 지난 3월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인권법’안을 최종
의결․통과시켰다. 이제 국회에서 인권법안이 통과되면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이전부터 약속해 왔던 국가인권기구
국가인권기구는 영어로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e다.
여기엔 위원회(Commision)와 옴부즈맨의 형태가 있으며,
우리나라는 위원회(National Human rights Commision) 형태를
선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인권위원회의 민간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인권위원회라는 용어로, 민간단체들은
국가기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용어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
(국민인권위원회) 설치 문제가 올해 안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무회의에서 인권법 최종안이 의결되자마자, 국내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나섰고, 급기야 18개
인권단체 활동가 30여 명이 연합해 지난 4월 7일부터 일주일간
명동성당에서 단식농성 투쟁을 전개했다. 게다가 4월 11일,
국제앰네스티와 국제고문방지기구 등 저명한 국제 인권단체들도
“한국 정부의 인권법안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요지의 성명과 연대서명을 발표했다.
도대체 웬일일까? 정부가 국민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인권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인권법안을
마련했다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인권활동가들이 단식농성이라는
극한적 투쟁까지 선택하며 강력히 저항하고 나선 까닭이
무엇일까? 또 저명한 국제인권단체들 역시 한국정부의 결정에
혹평을 내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정부의 인권법 최종안에 의해 새로 설치될 인권위원회가
시작 전부터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으며, 따라서 독립성도
실효성도 없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하기
때문이다.
2. 왜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는가?
국가인권기구 설치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사항으로 내세웠고 새 정부의 1백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면서 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했다. 그리고 98년 9월
법무부가 인권법 시안을 내놓으면서 이에 대한 논란도
본격화됐다.
해방 이후 반세기동안 독재와 억압, 차별과 배제의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국민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누구보다도 환영했으며, 또 거기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인권기구란 무엇인가? 이는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인권침해의 가장 큰 주체이자 주범인 국가가 국민들에 대한
인권보장 책임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인권보장
의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하는 장치다. 이를 위해
국가인권기구는 전 국민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조치들을 인권의 시각에서 바로잡고 자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기관 또는 사회적 강자에 의해
끊임없이 저질러지는 인권침해 사건을 독립적이고 객관적
위치에서 신속하게 조사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주요한 기능이다. 수사기관에서 또는 회사에서
억울한 인권피해를 당하고도 속앓이만 해야 했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고, 나아가
우리사회 전반에 인권의식과 인권보장의 토대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인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된 인권법안에 따르면,
새로 설치될 인권위원회는 인권피해에 대한 구제기능이나,
인권교육 및 정책기능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유명무실한 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다.
3. 종이호랑이 인권위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가 아닌 민간특수법인 형태로
설립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인권위원회를 국가기구로 설치할
경우 오히려 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이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측의
주장이다. 덧붙여 국가기구로 설치해 공무원들이 인권위 업무를
맡게될 경우, 과연 같은 공무원(경찰 또는 검사, 교도관 등)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냐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되짚어보자. 우리가 왜 인권위원회를 설치하고자
했던가? 앞서 살펴봤듯이 국가인권기구를 설치한다는 것은 과거
인권단체를 비롯한 민간의 역할에만 머물러 왔던 인권보장의
임무를 국가의 의무로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국가기구들이 해오지 못했고, 또 할 수 없는 인권보장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새로운 국가기구가 요구되었던 것이며, 이를 위해
법무부 등 여타 정부부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지위의 기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인권법안대로 특수법인 형태의 인권위원회가
설치된다면 그 인권위원회는 법무부의 입김과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종속적 인권위원회가 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의 인권법 최종안에 따르면, 인권위원회의 최초 설립과정을
주도할 설립위원 전원을 법무부에서 인가받도록 되어 있으며,
인권위원회 활동의 주요 사항은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되어
있다. 대통령령은 누가 만드는가? 주무부서인 법무부에서 그
작업을 맡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인권위원회 활동의 구체적
사항들이 법무부의 의도대로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무부가 과연 어떠한 곳인가? 수사기관의 총사령탑으로서 예나
지금이나 인권침해 행위의 주역이 바로 법무부다. 양심수에 대한
준법서약제를 도입한 곳도, 실직자 노조가입 문제를 앞장서
반대해온 곳도 법무부였다. 최근 공공부문의 파업 등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마저 공안대책협의회라는 공안권력기구를 통해
억누르려는 발상을 내온 곳도 법무부 산하 공안검사들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반인권적’ 법무부의 영향력 아래 위치하는 특수법인
형태로는 인권위원회가 그 지위와 권한에 있어 본질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강조컨대 인권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기구일
바엔 그 존재의 이유가 없다.
지난 97년 안산의 한국후꼬꾸에서는 용역깡패들의 사내
폭력행위가 크게 문제된 바 있다. 당시 노동자들은 수십 차례
경찰, 검찰에 용역깡패들의 폭력행위를 고발했다. 하지만,
검․경으로 사건이 넘어가기만 하면 희한하게도 그 결과는
천편일률적으로 ‘무혐의’ ‘이유없음’ 등의 꼬리표를 단 채
종결되는 것이었다. 아직도 산업현장 곳곳에서 구사대의 폭력이
횡행하고,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인권피해가 계속되는 현실에서,
인권위원회의 존재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인권위원회에는 명실상부한 지위와 권한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민간특수법인이라는 형태를 가지고는 결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또 법무부는 똑같은 공무원 처지에서 다른 공무원의 인권침해
행위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반문하고
싶다. 검찰(공무원)이 그 수사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검찰마저 민간기구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뜻인가?
4. 한정된 조사대상
정부의 인권법 최종안을 살피다보면, 인권위원회 설립의 취지가
완전히 실종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권법 최종안에 따르면, 인권위원회가 조사할 수 있는 영역이
수사기관의 인권침해행위를 비롯한 8개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마저도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명백한 불법행위는 본래 수사기관이나
권리구제기관에서 담당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권위원회의
설립취지는 도리어 불법인지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합법적인
행위라 하더라도 국제기준에 비춰 인권침해행위에 해당하는
문제들, 즉 기존의 국가기구로는 구제받기 어려운 영역을
조사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는 데 있다.
예컨대, 점심시간에 동료 노동자들에게 회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줬다는 이유 때문에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있다고
하자. 노동자들의 힘이 약한 사업장인 경우, 유인물 배포 행위는
회사사칙이나 단체협약 상의 규정에 의해 징계가 가능할 수도
있다. 회사가 노동자를 해고한 행위가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원회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법
논리가 아닌 인권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유인물을 배포한 행위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따라서 해당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가한
회사측의 조치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인권유린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아래 인권위원회는 회사측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흔히 접하는 노점상 단속이나 강제철거 사건들에
대해서도 인권위원회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노점행위가
현행법상 불법이고, 또 철거지역에서 이주하지 않는 것이
불법행위라 하더라도 인권위원회는 단속과 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피해에 더 주목할 것이며 이에 따라 인권의 시각에서
구제조치를 결정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인권법 최종안에 따르면 이상의 사건들은
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조차 포함되지 않는다.
조사영역에서부터 한계 지워진 인권위원회를 설치해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이야기인가?
5. 있으나마나한 조사권
설령 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이 ‘모든 인권침해 영역’을
포괄하고 있더라도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조사권이 제약되어
있고 그 실효성도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노동자의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원회가 회사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조사를 결정했다고 하자. 하지만 회사측은
인권위원회의 조사를 거부할 수 있다. 조사를 거부할 경우의
불이익은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민주적 권리를 탄압하기 위해 수억원을 퍼부어가며
용역깡패를 고용하는 회사가 고작 1천만원 정도의 과태료에 눈
하나 깜짝하겠는가?
국가기관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인권위원회의 조사를 거부할
수 있다. “공개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협할 수
있다”거나 “수사방법상의 기밀이 누설될 수 있다”는 이유서만
제출하면 언제든 조사를 면할 수 있는 것이고 인권위원회는
그때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것이다.
6. 효과적 구제조치도 불가능
일단 조사를 예정대로 마무리했다고 하자. 이제 인권위원회는
조사내용을 토대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인권침해 사실이
확인되면 그에 대한 피해구제 조치를 결정짓게 된다. 그러나,
인권위원회에 부여된 권한은 시정권고권에 불과하다.
인권위원회가 아무리 피해구제와 시정조치를 권고하더라도 해당
인권침해자가 이를 거부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97년 이래 계속되어온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을
우리는 기억한다. 포항제철이 삼미특수강을 인수하면서 1천여
명의 노동자를 불법해고했고, 이에 맞서 해고자들은 눈물겨운
투쟁의 행군을 거듭했다. 그 결과, 중앙노동위원회가
“포항제철의 불법해고” 사실을 인정하며 포철측에 노동자들을
복직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포철은 이에 대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다시 법원에 소송을 내고 1심에서 패하자 다시
2심에 항소하는 식으로 시간을 벌어왔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부여된 권한은 시정권고권보다 강력한 시정명령권이다.
시정명령권을 행사하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도 무시되는 판에,
고작 시정권고권만을 부여받는 인권위원회가 무슨 권위와
실효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7. 올바른 인권법 제정투쟁, 인권단체만의 몫이 아니다.
정부의 인권법안에 따르면, 결국 법무부의 입김에 놀아나는
무력한 인권위원회가 설치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내외
인권․시민단체들이 이에 반대하며 인권법의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비판 속에서도 정부가(특히
법무부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까닭은 지금까지 인권위원회 설치 논의를
주도해온 법무부가 인권위원회의 설치를 전혀 달가와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무부의 한 관리는 자신들의 속내를 이렇게
털어놨다. “수사를 하다보면 피의자를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있는 건데 그때마다 사사건건 인권위원회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가?”
이처럼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관리들의 시각은 여전히
‘반인권’적이다. 그렇다고 국내외에 널리 선전해온 인권위원회
설치방침을 철회하기엔 부담이 더 클 것이며, 따라서 대충
형태만 갖추고 실질적 권한은 없는 인권위원회를 궁리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진정 국민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이미지를
국내외에 과시하면서, 그동안 부담이 되어왔던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픈 얄팍한 심사만 있을 뿐이다.
끝으로, 인권위원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환상”과
“냉소” 모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권위원회를 모든 인권문제의 해결사이자 국내
인권상황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수퍼맨’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거꾸로 인권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간과하고 이를 폄하하는 것도 올바른 입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인권보장을 위한 토대와 인식이 천박한 우리 사회에서
‘인권위원회의 설치’는 일보진전을 의미한다. 물론, 제대로 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은 인권위원회를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다.
인권위원회는 우리 사회가 인권보장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며, 쓰기에 따라 힘없고 빽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인권위원회가 설치되는 순간부터 국내 인권단체와 국민들은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권위원회가 그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견인․비판하는 역할이다.
인권활동가들이 연합단식투쟁을 벌이면서까지 정부의 인권법안에
대해 저항한 것은 출발도 하기 전부터 왜곡되고 비틀거리는
인권위원회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권법 제정’투쟁은
결코 인권단체들만의 몫이 아니다. 인권문제는 모든 국민의,
바로 ‘나 자신’의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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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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