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발과 올가미 그리고 득의망언 |
현장에서 미래를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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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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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원 담
문학평론가
‘오늘부터 구조조정∙정리해고를 중단합니다.’
지하철노조에서 역내에 대통령 담화문형식의 대자보를 내걸었다
하여 세간이 떠들썩하다.
장자가 그랬다. 통발은 고기를 잡는 데 쓰이는 것이지만 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은 잊혀지고, 올무(올가미)는 토끼를 잡는 데
쓰이지만, 토끼를 잡고나면 올무는 잊혀지기 마련이며, 말은
뜻을 얻는 데 목적이 있지만 뜻을 얻고 나면 말은 잊혀지는
법이니, 내 어찌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 수 있겠느냐고. 이른바
득의망언(得意忘言)이라.
장자의 말씀을 명분삼은 것인가. 대권을 거머쥐었으니
쏟아부었던 말, 공약, 국민과의 약속이야 수단에 불과했던 것,
저버린 들 대수랴. 현 정권의 파렴치한 안면몰수도 그러고보면
‘옛것을 익혀 새롭게 한(溫故而知新)’ 면모가 그리 돋보일
수가 없다.
그런데 장자처럼 자연스러움의 경지를 즐긴다거나 어찌 그런
족속과 더불 수 있겠는가고 무시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개인적
수양, 도 닦는 차원에서 해결지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적 삶의 방법이란 역사적 현실 속에서 가차없이
재편되는 것, 그러한 뻔뻔한 수작이 천만 노동자를 위시한
사천만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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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목줄을 죄고 그야말로 민중적 삶의 파탄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작금의 엄연한 현실에서야, 외면‧무시‧도외시의
개인적 해결방식은 그대로 범죄행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노조의 ‘대자보’는 그야말로 민중적
입지에서 현 정권의 본질을 명확히 규명한 것이요, 단순히
문제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죄과를
씻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계기와 활로까지를 열어 준 민중적
방법론의 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막다른 궁지로
내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절치부심(切齒腐心),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의 파고를 무릅쓰고 살 길을 제시해주는
넉넉함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봉황그림을 도용했으니,
국가원수모독운운 하며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법석을 떠는 데야 이런 무도한 지경이 따로 없다. 그럴수록 현
정권의 성격이 노골화되는 것이니, 민중적 쟁점은 더욱 또렷해질
것이지만, 혼자 자멸의 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으면 그만이 아니라
바로 모두가 망하는 공멸의 길을 재촉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냉혹한 현실의 비바람 앞에 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진심은 불현듯 서릿발을 일으킬 수 있고, 성을
무너뜨리고 금석을 뚫을 수도 있는 법, 현 정권의 자성을
촉구하는 이런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이므로 비단
지하철노조 뿐만 아니라 이땅의 노동자 민중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통한의 화살과 비수를 현 정권의 심장부에 쉬임없이
쏘아대고 정확히 꽂아 역사적 전환의 극적 계기를 바로 우리
민중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즉각 동참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현 정권이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주도해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노동의 유연화, 시장의 전면자유화,
그것으로 인해 초래된 작금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보수세력과의 연합을 통한 정권의 수립이라니,
그 귀결은 자명한 것이며,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경제를 잘 아는
준비된 대통령이라니 조지 소로스라는 세계를 상대로 사기치는
천하의 투기꾼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경제위기를 타개해줄 수
있는 국빈으로 모셔오고 극진히 대접할 때 이미 그 마각은
드러났고, 그리하여 그 의도가 분명했던 바, 경제개혁의 행로는
여실했던 것이다. 정체벗기기의 칼날을 더 곧추 세우기 전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넉살떨기 말의 여유를 한번 부려보면 현
정권이 장자의 말씀을 잘못 새긴 게 있다. 누구도 통발이 되고
올가미가 되고 그리하여 득의망언의 그 버림받는 ‘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IMF체제로 세계경제를 휘몰아
가는 미국의 전략, 정확히 말해서 미국 투기자본의 전략이 현
정권쯤이야 통발과 올가미로 내팽개치는 것은 일도 아니며,
쥐새끼가 똥구멍을 간지른다고 내장까지 죄 파먹히는지도 모른
채 꼬꾸라져 죽고 마는 멍청한 닭의 신세로 전락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고대철학가 장자가
아니라 오늘의 세계를 관철하는 엄연한 자본의 논리, 그 가공할
전횡적 세계지배논리이자 그 “대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가 꺼꾸로 솟을 노릇인 게, 당사자만 꼬꾸라지면
좋겠는데 우리 사천만 민중의 삶을 한꺼번에 파탄지경으로
끌고들어 가는 형국이니, 더우기 기가 찰 노릇은 지금이
세기말의 시점이라는 것이다. 타율적 근대의 아픔 속에서 시작된
20세기 100년 동안 어디 세계사에 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드러내본 적이 있는가. 전반세기는 일제강점에 민족 전체가
세계사로부터 소외되는 아픔을, 후반세기는 강대국의
세계지배전략의 산물이요, 세계사적 모순의 엄연한 실체로서의
분단현실을 강요당해 왔는데, 패권적인 세계지배양식의 전환기에
그 모순을 또다시 한몸에 받아야 하다니, 이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거다. 새로운 천년을 우리
민중의 주체적 역량으로 열어내어 민족사의 전진을 이루고
나아가 세계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느냐, 자본의 논리에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삶이 형해화되고 그리하여 세계사의 모든
진보지향이 또다시 꺽이느냐.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역사적
담판의 현장에 서있는 것이다.
전 국민적 열망을 응집하여 그 단꿈을 실현해줄 대의가 아니라
대권야욕이라는 소의에 눈멀고, 이제 신자유주의의
길딲기를 자임하며, 권력과 자본이 배태해낸 고통을
분담하자고 윽박지르기를 넘어 고통의 전가를 서슴없이 해대고
있는 현 정권의 이후 행보는 불보듯 빤하다. 그래도 거기에
또다시 일말의 희망을 건다면 그야말로 그런 얼치기 자만이 따로
없겠다. 작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를 승인한 결과가
비단 현대자동차의 경우만이 아니라 지금 전체 노동자를 생존의
위기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 웅변으로 입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본질을 알면서도 길을 열어준 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들이니까 화살을 정확히 우리의 정수리에 관통시키고 나면
그 불철저함과 가당치 않은 동정심이 또렷이 드러날 것이다.
정말 환상을 깨자. 재벌개혁은커녕, 재벌 위주 구조조정으로
잔뜩 배가 부르고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독점자본이 우리 살길을
열어줄 리는 만무하고, 세계 도처를 투기대상으로 삼고 작년만
해도 1조5천억 달러라는 돈으로 특히 제3세계를 돈놀이 대상으로
삼아 해당국가의 국민경제가 파탄이 나든 말든 치고 빠지는
투기놀음에 혈안이 된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한
단기성투기자본들이나 그 증식구조로서의 IMF가 우리의
피해상황을 안중에 둘 리 없다. 또 컨피던스 게임(confidence
game), 크루그만이라는 미국학자가 신뢰게임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하는데, 투기자본의 신뢰를 얻고자, 투기자본의 입맛에
맞추는 게임을 벌여오고 있는 현 정권이 실업의 고통, 가공할
노동강도에 죽음을 넘나드는 천만 노동자, 살인적인
연체금리(25%)에 허덕이는 농민 등 대다수 민중과 중산층의
파탄‧몰락에 자기죄과를 인식하고 돌아올 리가 없다.
다시 한번 통발과 올가미가 되자. 고통 속에서도 주저없이
통발과 올가미가 되는 것, 그것은 물고기와 토끼라는 선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민중의 생존권과 제반 사회적 권리향상이
작은 목표라면 스스로 말이 되는 것은 민중적 민족적 대의,
세계사적 대의를 위해서이다. 자본의 흉포하기 짝이 없는 음모를
부수고 정말 인간답게 살아보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제3세계 민중의 보편적 염원, 그 단꿈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스스로 말이 되고 화살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대의를 획득할
수만 있다면 잊혀져도 좋은 말, 화살, 비수.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은 전 세계를 향하여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투쟁의 그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총자본의 폭력에
우리는 총파업, 민중적 결집으로 대응해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십세기말 우리가 살아온 피어린 삶의
역정입니다. 오늘의 국가경제의 위기는 결코 우리 사천만
민중에게 전가될 성격의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기적 전환에 주목합니다. 투기성자본의 세계적
관철로 인한 국가민족단위 지역단위 경제의 파탄을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현 정권은 신제국주의의 앞잽이 노릇을 즉각
중지하고 국가경제의 동공화에 책임을 지고 민중생존권을
박탈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지금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노동자, 농민, 빈민을 비롯한 이땅의 사천만 민중은
생존권적 요구와 함께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소외의 상태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중정권의 수립을 통한 민족사의 숙원을
이루고자 세기의 마지막 항전을 시작합니다. 8-90년대를
관통해온 민중항쟁의 정신과 조직적 성과, 민중적 쟁점이 오늘
우리의 결사항전의 진정한 동력입니다. 자본주의적 근대의
폐해를 갈라치고 새로운 천년을 열어갈 세기말은 이렇게
총괄되고 전망되어야 합니다.”
말이 맺혀지는 시점에서 지하철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는 소식이
꽃바람 속에 전해온다. 민주노총의 총력투쟁선언, 이어질 전농을
비롯한 민중진영의 투쟁소식이 꽃망울처럼 환하게 연이어
터져나오는 4월은, 그리하여 잔인한 달이 아니라 뜻을 꽃피우는
소생과 희망의 달인 것이다. 5월의 무성하게 푸르러가는 전진을
기대하며....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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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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