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틴아메리카 최근 정치 경제적 동향 |
현장에서 미래를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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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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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최근 정치 경제적 동향
-페루의 사례를 중심으로-국제노동
김 영 철
부산 외국어대 강사
중남미 정치의 새로운 유형
1980년대 말을 기점으로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이 민주화를
달성한 이후 최근까지 문민 대통령의 연임이 일반화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사실상 20세기 중남미 정치사에서
군사권위주의 정권의 연임과 장기집권은 비교적 흔한
현상이었지만 문민정부의 연임은 80년대 이전까지는 그 사례를
찾기 힘들다. 아르헨티나 메넴 정권의 연임 이후 중남미 지역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민정부의 연임은 신임대통령들이
취임한 이후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문민대통령의 연임은 군부독재를 경험한 페루,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국가들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60년대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군부에 의한 정권 장악이 유행병처럼
확산되었고, 70년대 중반 이후 점차 나타나기 시작한 민주화는
80년대 말 이른바 “민주주의 제3의 물결”로 종결되었다.
이러한 중남미의 정치적 특성은 현재의 이 지역의 정치적 경험에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중남미 정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패턴은 지난해까지는
문민정부의 연임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었다면 올해에는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패턴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2000년 4월에 실시될 페루대통령 선거의 배경과 전망을 중심으로
최근 나타나고 있는 중남미 정치경제의 유형과 특징을
개관해보고자 한다.
중남미 국가들의 정치동향
1999~2000년 중남미 국가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면서
다음 세기를 이끌어 갈 새로운 정치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많은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아래 선거일정에 나타난 것처럼 6월 도미니카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2000년 8월까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내년까지 실시될 예정인 대통령 선거는 개별국가들이 다음
세기를 준비한다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남미 대통령 선거일정>
국 명
선 거 내 용
선 거 일
아르헨티나
대통령/의원 선거
1999.10.24
우루과이
대통령/의원 선거
1999.10.31
과테말라
대통령/의원 선거
1999. 11.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
1999. 11.
칠레
대통령 선거
1999.12.12
페루
대통령/의원 선거
2000. 4
도미니카 공화국
대통령 선거
2000. 5.16
멕시코
대통령/의원 선거
2000. 7. 6
트리나드 토바고
대통령/의원 선거
2000. 8.
현재 진행중인 일련의 정치일정들이 종결되는 시점에서 21세기
초반 중남미 전체의 정치성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남미 국가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강세를 보이는
변화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실시된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좌익성향의 차베스(Chavez)후보가
승리하여 협상을 통한 외채문제 해결 및 국가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유치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2월 1일에
실시된 코스타리카 대통령 선거에서도 집권당인
민족해방당(PLN)의 호세 미겔 꼬랄레스 후보를 물리치고
사회기독당(PUSC)의 미겔 안헬 로드리게스 후보가 46.9%의
득표로 승리했다. 또한 지난 5월 2일 파나마 선거에서도 야당의
미레야 모스꼬스(Mireya Moscoso)후보가 당선되어,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지난해 10월까지 실시된 중남미 대통령 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이
근소한 차이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브라질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현
까르도주 대통령의 헤알플랜(Real Plan)의 성공과 아시아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불안으로 인한 불안한 위기 의식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선거결과를 통해 민주화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중남미
정치동향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난해까지는 80년대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에 대한 두려움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대한 요구가 집권당의 승리를 보장해주었던
주된 기반이었다. 90년대 이후 중남미 국가들이 추진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 민영화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큰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었던 것도 주로 위와 같은
상황과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해 연말부터 시작된
대통령 선거 결과는 사회적 비용을 더 이상 국민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어려워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최근의 이 지역 선거들에서 자유시장 경제정책을 유지하면서
실업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야당이 강세를 보였다는 사실로 상당
부분 확인되고 있다.
최근 중남미의 전반적인 정치 상황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민주주의 체제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부통령 암살로
시작된 파라과이 정국 혼란 수습과정은 중남미 국가들의 민주화
수준을 잘 설명해준다. 파라과이는 군부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국가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3월의 정치적 위기가 파라과이
국민들의 지지와 의회의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해결됨으로써
군부의 정치개입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또한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는 민주적인 절차가 준수되는 상황에서 개헌논의나
총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후지모리와 페루의 변화
민주적 절차가 비교적 충실하게 준수되고 있는 최근의 중남미
상황과 다소 상반되는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페루를
들 수 있다. 오늘날 페루의 정치는 ‘변화 90년 운동’(Cambio
90)이 중심이 된 중도우파연합인 민주전선(Democratic Front,
Fredemo)과 1924년에 결성된 아메리카 민중혁명연맹(American
Popular Revolutionary Allianc, APRA)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1990년에 집권한 후지모리 대통령은 1992년 4월 5일 군의 지원을
받아 입법부와 사법부를 국가발전의 장애요인이며,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며 해산시켰다. 이후, 친 후지모리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독재권력에
가까운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제헌의회의 결정에 따라 실시된
1995년 대선에서 후지모리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정체상태에 있던 페루 경제를 회생시켰으며,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 페루 경제는 안정적인 높은
경제성장을 유지했다. 물론 인권단체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이
궁정쿠데타를 비롯한 언론통제 등으로 페루 민주주의 발전을
후퇴시켰다고 비난했지만, 후지모리는 페루 사회를 혼란시켰던
좌익 게릴라인 ‘빛나는 길’(센데로 루미노소:Sendero
Luminoso)을 해체시키며 정치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후지모리 대통령의 집권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잘 나타난다. 1995년까지 60%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로 낮아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여론조사의 결과는 경제상황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1997년 7.4%의 성장을 기록한 이후 1998년에는
아시아 경제위기와 엘리뇨 현상으로 인해 1.5% 성장에
거쳤다.
1990년 후지모리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페루경제는 연 7,000%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가 추진한
자유시장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고 국민들에게 경제안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또한 이러한 국내경제 안정으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증가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1993~1996년 32%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자유시장 정책은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많은 수의 실업자들이 양산되었으며, 또한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외국인 투자의 대부분이 광업과 석유관련 산업에
투자되어 노동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숙련 노동자들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더욱이 엘니뇨(El Nio)와 라니냐(La Nia)의 영향으로 페루의
주요 산업인 어업의 활동이 부진했고, 해안지대에서 발생하고
있는 토지의 사막화 현상도 경제운용을 어렵게 했다. 지난해의
경우 타 지역의 경제위기 여파로 인해 수요가 감소하여 제조업
부문의 활동도 위축되었다. 최근 실시한 민간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력의 50%이상이 비공식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위에서 지적한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회복을 위한 행정부 개각
1999년 1월 6일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러한 불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제 회생을 위해 내각을 교체했다. 당시까지 구성되었던
페루 행정부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거수기로 기능 했다.
후지모리는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의 공고화가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엘니뇨와 세계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문제 해결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경제회생에 필요한 자본을
지닌 호이 와이(Joy Way)를 경제장관에 임명했다. 후지모리는
이러한 내각구성이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지난해까지 성공적으로 유지되어 온 장기적인 긴축정책은 지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1월의 개각은 페루의 빈곤문제 해결, 실업률 하락과
경제성장 가속화를 위해 이뤄졌다. 지난해, 1차산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페루경제는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수요감소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이번 개각에서는 긴축적인
재정정책을 유지시켜온 경제부처 장관들이 대거 교체되어 이전에
유지되었던 정책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영화 위원회 위원장이며, 노동부 장관인 호르헤
곤살레스(Jorge Gonzalez)가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가 호르헤
마파레치(Jorge Mufarech)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페루의 주요
수출부문인 광업부 장관은 유임되었다.
3선 출마 논란
1998년 2월 10일 페루법원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3선 연임
출마금지결정을 폐기함으로써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3차
연임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법원이 3선 출마 금지 결정을
폐기하기로 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지모리 페루대통령은
3차 연임을 위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3선 출마금지 폐기 결정이 내려진 이후 국론을 분열시키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그의 가족들이 발표했었다. 그러나
후지모리 대통령 자신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무
것도 결정한 바 없다. 이 문제는 개인적인 결정사항으로 아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의 가족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그가 출마할 경우 낙선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4월 총파업
이러한 페루정치 상황의 변화는 최근에 빈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999년 4월 28일 페루
전역에서 총파업과 소요사태가 발생하여 후지모리 대통령
집권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총파업은 좌익노조가
주도했지만 야당과 경제 단체(National Society of
Industries)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는 후지모리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정책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공무원, 운송, 건설노동자들이 파업중인 거리와 산업지역에
2만여 명의 경찰병력을 투입시켰다. 또한 자동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을 공공건물 감시에 투입함으로써 다시 군부와 밀월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4월의 총파업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대선 출마 저지와 고용창출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1일에
발생했던 대통령궁 점거시도 이후 이루어진 전국적인 규모의
파업으로서 후지모리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루 노동자총연맹의 위원장인 호세 리스꼬(Jose Risco)는 이날
총파업에 전체 노동자의 70%가 참가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산업기반이 집중된 수도 리마(Lima)에서 가장
격렬하게 나타났다. 특히, 수도 리마에서는 후지모리의 최대
정적인 알베르또 안드라데(Alberto Anderade) 시장이 파업을
지지해 리마 시 지방정부 공무원이 파업에 동참했다. 4월 파업은
그 동안 후지모리 정부의 치적으로 평가받아온 긴축적인
재정정책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이 표출된 파업이었다. 반면
광업, 은행, 정유산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민간기업들은 정상적인
업무가 계속되었다. 총파업 이후 후지모리 대통령은 대선출마에
대해서는 올해 연말에 가서야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페루 노동운동은 후지모리 정부의 반노동입법으로
약화되었지만, 정부의 경제개혁이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빈곤
문제의 개선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에 노조를
비롯한 국민들의 반발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궁정쿠데타에 대한 판결
지난 5월, 후지모리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최초로 1992년
궁정쿠데타에 대한 위헌논의가 시작되었다. 5월 11일, 1992년
4월 5일 후지모리 대통령이 일으킨 궁정 쿠데타에 대한 ‘대통령
권력 남용 조사위원회’가 소집되었고, 후지모리 쿠데타의
위헌여부 결정 권한이 의회 상임위원회(Congress's Permanent
Commission)에 위임되었다. 위원회는 회기중이 아닐 때 법안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소집된 상임 위원회에서는 의회가 후지모리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법적 소송절차를 진행시킬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과는 상임 위원 구성원 3명중 2명이
후지모리 충성파라는 사실을 토대로 야당 정치인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최초로 시도된 궁정쿠데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지모리 대통령의 3선 출마에
대한 법적 장애요인들은 제거되었지만, 페루국민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게 되었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후지모리 대통령의 3선 출마에
아무런 법적 제한은 없다. 이미 1992년 궁정 쿠데타를 통해
개정된 헌법에서는 1회에 한하여 연임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2000년 4월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된다면 3차 연임 시도가 되지만, 헌법 개정이후부터
산정 한다면 페루법원이 결정한 것처럼 2차에 해당하기 때문에
대선 출마에는 아무런 법적인 장애가 없다.
또한 당사자인 후지모리 대통령도 직접적으로 차기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본방문과 3억달러 지원
요청, 페루 전역 순방 등 최근 5월에 보여준 그의 행보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대선에 출마했을 때 후지모리의
당선 가능성은 있는가? 이러한 가능성은 아마도 후지모리의
대선출마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라 할 수 있다.
선거를 1년 정도 남겨둔 현시점에서 재선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변수들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위에서
지적했듯이 중남미 국가의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나는 야당의
강세이다. 중남미 정치사는 특정시기에 따라 일정한 특성들을
보인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자유 시장 경제정책을
추진하는데 일관성을 부여하고 대외적인 신용도를 강화하기 위해
수용되었던 연임 혹은 여당의 승리가 올해 중남미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연임에 성공한 국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우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0월에 실시될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부여당의 승리를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두 번째로는 페루의 국내 상황을 들 수 있다. 페루경제는
시장경제 도입으로 인한 실업증가와 엘니뇨 현상으로 인한 국내
기초산업의 황폐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 1월에 구성된 내각이
엘니뇨 피해를 극복하는 문제는 제외한다고 해도 가장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음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해 후지모리 대통령과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인들이 있는가 이다.
페루연합당(UPP)의 하비에르 페레스 데 쿠에야스(Javier PEREZ
de CUELLAR), APRA당의 당수인 루이스 알바 까스트로(Luis ALVA
Castro)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부각되고 있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야당의 연합전선 형성이 필요한 상태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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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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