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현대자동차 노조 8대 임원선거 평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44호
강성신


지/금/현/장/은



꺼지지 않는 불꽃, 절망에서 희망으로
-현대자동자 노동조합 8대 임원선거 평가-
강 성 신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이상욱 후보 선거대책본부 수행실장


열은 받지만 후회는 없다

이상욱 2,142(8.3%), 이헌구 6,700(26.0%), 정갑득 7,804(30.3%), 이경훈 8,904(34.5%)

4월 28일 새벽, 8대 임원선거 1차 개표가 끝났을 때 현대자동차 민주세력 최악의 득표를 놓고 많은 동지들이 망연자실, 큰 충격을 받았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9년 전 4․28 연대투쟁이 있던 날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가?
그날 저녁 나온 마지막 유인물에서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1차 투표 결과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했습니다.
98년 고용안정투쟁 이후 저희 민투위(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 이하 민투위)는 조직원의 3분의 2가 정리해고․무급휴직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김광식 위원장과 7대 집행부 다수가 조직을 떠났습니다. 선거에 참여해야 될지 말지 논란을 벌일 정도로 최악의 조직력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는 이번 선거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위원장 자리에 욕심이 있어서, 없는 조직력에 무리한 출마를 결심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순히 ‘조직력 복원’을 목적으로 선거에 뛰어든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당락을 떠나서 우리는 조합원 동지들께 외치고 싶었습니다. 작년 여름 누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는지, 누가 정리해고 최소화를 강요했는지, 누가 끝까지 정리해고 수용을 반대하여 투쟁했는지. 우리는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 현장통제를 박살내고 평생일터를 쟁취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습니다. 실질임금 삭감 없이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주간연속2교대제로 근무형태를 개선하는 것만이 평생일터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조합원 동지들께 확신시키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힘들게 출발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는 일당백으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목에서 피가 나는 동지도 있었고, 저희 후보들은 악수를 얼마나 했는지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습니다. 조직력도 재정도 명망성도 열세였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보내주신 조합원 동지들의 지지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우리는 조합원 동지들의 가슴속에 이글거리는 분노와 절망, 고통과 열망들을 절절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표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저희에 대한 동지들의 지지와 성원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가슴으로 벅차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35시간 노동과 주간연속2교대에 대한 조합원 동지들의 높은 관심은 야간노동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었습니다. 저희를 지지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조합원 동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조합원 동지들의 냉엄한 심판,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가 너무나 부족하여 1차 투표 결과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조합원 동지들의 냉엄한 심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민투위가 새롭게 거듭나라는 채찍으로 알겠습니다. 조합원 동지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아 ‘절망에서 희망으로’ 새롭게 전진하는 민투위로 거듭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 있다 하더라도 조합원 동지들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호1번 민투위 임원후보
이상욱, 지진성, 황성하, 허성관, 김주희 드림

수행실장으로 있으면서 후보들과 함께 매일 2~3시간 밖에 자지 않고 역대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도 열심히 뛰었다고 자부한다. 열은 받지만 후회는 없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98년 여름 고용안정투쟁과 김광식 집행부의 굴욕적인 정리해고 수용 이후 2,000명 가까운 동지들이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을 당했다. 2,000명 가까운 이 동지들 가운데 상당수가 현장여론을 만들어내고, 실천활동을 앞장서 이끌어왔던 민투위와 민투위 성향의 핵심적인 현장활동가들이었다. 이 동지들이 현장에서 떨어져나가고 노동조합이 회사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면서 현장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현장통제와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절망공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나마 정리해고․무급휴직자 원상회복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가 정리해고․무급휴직 동지들의 원상회복투쟁을 제대로 이끌어냈더라면 현장이 이렇게까지 초토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8개월 동안의 이 ‘현장 공백’은 “민투위 없는 현장, 지옥과 뭐가 다릅니까?”라고 절규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민투위 조직원 235명 가운데 희망퇴직, 자진퇴사, 탈퇴 등으로 60여명이 나가고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로 120여명이 현장에서 쫓겨났다. 선거에 들어가기 직전 ‘총을 맞지 않고 살아남은’ 민투위 조직원은 54명에 지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최악의 조직력이었다.
게다가 민투위 6기 지도부는 7대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투쟁 이후 시트사업부 매각 문제와 정리해고․무급휴직 동지들의 원상회복투쟁 등 현안문제에 대해 ‘활동 정지’ 상태에 있었다고 할만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민투위 6기 체제가 사업계획서조차 제출하지 않고 유인물 한 장 제대로 내지 못하는 동안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하 현지사)은 이 틈을 비집고 유인물 작업과 조직 확대사업을 벌여나가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조합원 동지들 속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1차 투표에서 민투위 성향의 기존 고정표가 현지사 이헌구 후보로 몰린 까닭은 이헌구 후보의 명망성과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부채의식(91~2년 성과분배투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투위가 무기력하게 있는 동안 현지사가 상대적으로 민투위 성향의 내용을 갖고 선전사업과 조직사업을 활발히 벌여나갔기 때문이다.
또한 김광식 집행부는 어찌됐건 민투위 집행부였다. 김광식 위원장이 98년 고용안정투쟁 당시 민투위를 탈퇴하고 7대 상집 상당수가 선거 직전 민투위를 탈퇴했더라도, 더구나 민투위가 양보교섭과 정리해고 수용을 끝까지 반대했던 유일한 조직이었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은 7대 집행부의 잘못을 고스란히 민투위에게 물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문제는 민투위 안에 있었다. 선거전에 정리해고를 수용했던 책임을 물어 7대 집행부 임원․실장 선에 대한 징계 건이 발의되었으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독자출마냐 연합이냐 논란을 벌이느라 입후보가 시작되는 4월 6일 총회에서야 겨우 후보를 결정하면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준비도 늦고 출발도 늦게 되었다. 7대 집행부에 대한 징계를 반대하고 현지사와의 조직 통합과 선거연합을 주장했던 동지들 가운데 상당수가 선거운동을 아예 하지 않거나 소극적으로만 참여하거나 적극적인 반대행동을 벌였다. 심지어 타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직력의 열세로 유인물 배포망이 수시로 펑크 나고, 타후보나 현장 모니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급휴직․정리해고․산재 조합원들에게 전화 한 통 제대로 하지 못한 선거운동이었다. 후보들이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발로 두세배를 뛰어다녔지만 조직적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누구는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누구는 선거를 하는둥 마는둥 하니 안팎으로 너무나 힘들었다.


우리는 무엇을 주장했는가?

현장조직력 회복으로 현장통제 분쇄

조합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숨막히는 현장통제였다. 작업시간 내내 앉지도 못하고 커피도 못 마시고 책이나 신문 보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하물며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통제가 심해 현장은 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듯 했다. WIN21 현황판, 인사고과, 조기체조, 우수사원 선발제도, 조반장 임명제도, 품질실명제, 사무일반직 휴일 강제특근 및 연월차 강제사용, 지부 IC카드, R/F카드, 오토바이 통제 등으로 숨쉴 틈 없이 조여오니 “처자식만 아니면 당장 때려치운다”는 소리들이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왔다. 이런 조합원들의 정서를 보고 이경훈 후보는 자진퇴직을, 정갑득 후보는 명예퇴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리해고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자진퇴직과 명예퇴직은 조합원들의 체념과 절망에 영합해서 퇴직위로금 몇 푼의 실리를 따주는 것으로 평생일터를 포기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따라서 자진퇴직이나 명예퇴직은 노동조합의 공약으로 내걸 사항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부서별, 사업부별 대소위원회의 현장투쟁력을 복원하고 노동조합 안에 노동강도와 현장통제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둠과 동시에 의장부총연합을 복구하고, 도장부총연합, 차체부 연합 등 부서별 연합을 구성하여 사업부를 뛰어넘는 전 공장 부서별 일상활동과 투쟁체계를 꾸려내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현장조직력을 회복하고 작은 투쟁 하나 하나를 착실하게 조직하는 것만이 현장통제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주35시간 노동과 주간연속2교대제로 야간노동 철폐하고 평생일터 쟁취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조합원들이 가장 많은 관심과 호응을 보여줬던 내용이 바로 ‘주35시간 노동과 주간연속2교대제’였다. 이런 높은 관심은 야간노동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조합원들의 뜨거운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들었을 때 임금은 어떻게 보전되고, 주간연속2교대제가 되었을 때 구체적인 근무형태와 시급 적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했다.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단순계산으로 현대자동차에만 17,000여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주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통상임금은 당연히 100% 보전되어야 한다. 잔업수당과 야간수당이 없어지는 문제는 고정 O/T 확보와 기본급 인상으로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월급제로 전환하여 임금수준과 임금체계를 안정화시킨다. 이랬을 때만 무급휴직자 원상회복과 정리해고자 리콜․재취업을 앞당길 수 있고, 시트사업부 매각과 공작사업부 엔진기어부분 분할매각, 사무일반직 외주화 및 소사장제 도입, 영업직 분리판매를 저지할 수 있으며, 부품 모듈(반제품)화, 플랫폼 통합에 따른 고용불안, 현대3사(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써비스, 현대정공) 통합에 따른 여유인원 1만 명 설 등 고용불안을 근본적으로 분쇄할 수 있다.”
조합원들은 주40시간 단축에 머물렀던 다른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이러한 우리의 주장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조합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야간노동을 철폐하고 평생일터를 쟁취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은 이것밖에 없다. 노정 사이에 이미 합의된 주40시간으로는 1만4천명이나 축소된 인원의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고 98년과 같은 가동률의 급격한 하락에 대처할 수도 없으며 야간노동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프랑스는 주35시간을 법제화했고 독일 금속노조는 주35시간에서 주3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현대3사 통합과 지부․본조 런닝메이트

현대3사 통합과 현대의 기아자동차 인수에 따른 노동조합 통합 문제는 금속산업연맹이 내놓은 “2000년 10월까지 산별노조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맞물려 이번 선거에서 상당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이 문제는 선거과정에서 그다지 큰 쟁점이 되지 않았다. 금속산업연맹의 산별노조 건설안과 기아․현대공대위의 통합노조 건설시안에 적극 동의했던 7대 집행부 상당수와 현지사는 현대3사의 하반기 통합선거를 전제로 한 현장조직 통합과 과도기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거연합을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연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하반기 현대3사 통합선거 얘기는 꼬리를 감추었다.
우리는 형식적이고 일정박기식으로 진행되는 산별노조 건설이나 노조통합 계획을 반대했다. 우리는 오히려 지부와 본조의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했다. “지부는 쟁의권을 못가지고 있다. 투쟁 시기 본조 위원장과 지부장의 입장이 다를 경우 본조와 지부가 단일한 지도집행력을 가지기 힘들다. 조합원이 적은 지부는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서 지부 해고자에 대한 신분보장이 불가능하다. 결정적인 것은 노동조합 운영위원회에 지부장이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노동조합 확대운영위원회를 폐지하고 지부장이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부와 본조의 예산 통합으로 부족한 지부 예산 문제를 해결하고 지부와 본조의 상근자 비율을 상향조정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혔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현대3사 통합에 따른 조직통합 문제에 대해 본조와 아산, 남양․마북, 전주, 정공, A/S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등의 지부를 두고 본조 위원장과 지부장 런닝메이트제를 도입하여 전국조직으로서의 통일성과 사업의 집중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공과 A/S를 지부로 둠으로써 무리하게 조직형식을 끼워맞추는 식의 조직통합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조직통합 방식을 제기했다.


성과와 과제

우리는 자본의 집중된 탄압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이번 선거투쟁에 나섰다. 비록 ‘꼴찌’긴 하지만 우리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민투위가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만일 우리가 최악의 조직력과 내부 분열을 이유로 이번 선거에 불참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민투위는 조직을 유지조차 하지 못하고 산산히 공중분해되었을 것이다.
조합원들은 이 ‘꼴찌’가 여전히 가장 전투적이며, 민투위가 ‘죽으면’ 현장이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1차 투표 결과를 놓고 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조합원 자신이었다. 반(反)이경훈 반(反)정갑득 성향의 조합원들은 이상욱 후보 2,142표(8.3%)와 이헌구 후보 6,700표(26.0%)를 합친 8,842표(34.3%)를 던졌다. 이 표야말로 현대자동차 민주세력의 실천적․전투적 경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표가 막판에 이헌구 후보로 몰렸다고 해서 현지사가 현대자동차 민주세력의 실천적․전투적 경향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정통성은 이번 선거를 통해 죽지 않고 되살아난 민투위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들은 정말 크고 무겁다. 무엇보다 시급한 정리해고․무급휴직 동지들의 생계대책 마련과 조기 원상회복, 사업부 분할매각에 대한 대응, 현장조직력을 회복하고 크고 작은 투쟁을 통한 현장통제 분쇄, 주35시간 노동과 주간연속2교대제에 대한 정책 대안 구체화, 현대3사 통합에 따른 통합노조 건설과 현장조직 재편, 99년 임단투,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 무엇 하나 만만하고 쉬운 것이 없다.
우리는 이번 선거 결과를 조합원들의 냉엄한 심판이자 민투위가 새롭게 거듭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조합원들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남아 ‘절망에서 희망으로’ 새롭게 전진하는 민투위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조합원들과 함께 다시금 하나씩 풀어나갈 것이다. 한/노/정/연

1999-06-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6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