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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민주화의 깃발은?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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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민주화의 깃발은?


김 명 희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전 사무처장)


철도 노동자와 관련된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 하나가 있다. 그들은 정년퇴직 이후 3년만에 맞이하게 되는 회갑연의 초청장을 받는 경우가 매우 드물단다. 사람이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지극히 기본적이어야 할 밥 먹고 잠자는 시간조차 변칙적인 철도의 노동현장이고 보면 끈질기고 모질다는 생명줄조차 버티기 어려운 것이다.

변형근로제, 살인적 강압제도

94년 전지협 공동투쟁시 철도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는 변형근로제 철폐였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말이 좋아 변형근로제이지 사실상 철도현장의 근로조건은 이미 용도폐기된 87년 이전의 실정법 개념의 변형근로제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의 자연 수명조차 위협하는 살인적 강압제도이다. 월 360시간 근무! 노동 후진국이라는 이 나라의 어느 사업장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장시간 노동과 연중 단 하루의 휴일도 보장되지 않는 초법적 근무 형태가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국노총의 활동 정신을 선도적이며 완벽하게 견지해 오고 있는 어용 철도노조가 묵인 방조하는 가운데 자행되고 있으니 문제의 심각성은 만만치 않다.
해방의 공간속에서 전평의 자주적 투쟁 정신은 철도노동자가 주축이 되어 실천되었다.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산업현장을 용납치 않겠다는 독재 정권은 폭압적인 탄압과 함께 어용노총을 급조해 냈고 철도노조의 어용화 획책은 역대 독재정권에게 노동통제의 정략적 목표와 일치해 온 것이다. 어용노총의 활동 과정을 살펴본다면 어용 철도노조의 역사성과 지향성을 확인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88년과 94년의 두차례에 걸친 철도 총파업은 노조민주화 세력의 주도에 의한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투쟁이었다. 작년의 철도 파업투쟁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전지협 공동투쟁으로 전국의 궤도 노동자가 함께 조직적으로 실천할 수 있던 동력은, 살인적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는 강한 분노와 함께 정권과 사용자의 하수인에 불과한 철도 어용노조를 끝장내겠다는 인간선언의 절규였던 것이다.
94년 철도․지하철 노동자의 총파업은 94년 전국 투쟁전선을 힘차게 열어 제꼈다. 그러나 역대 군부 독재 정권을 능가한 김영삼 정권의 입체적 탄압으로 일주일간의 투쟁이 종료된 후 철도노조 민주화 세력에 대한 김영삼 정권의 탄압은 그들이 문민을 위장한 독재 정권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구속 30명, 해고 59명을 포함하여 정직, 감봉, 경고 등 800여 명의 징계자가 발생하였고, 이와 별도로 120여 명이 부당 전출을 당함으로써 단위 사업장에 대한 탄압으로선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기만적인 개혁을 표방하며 출범한 정권은 현행 실정법상 보장된 최저 수준의 근로조건조차 철도 노동자에겐 결코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들에게 기능 동물로서의 굴욕적 삶만을 강요하는 것은 정권, 사용자와 더불어 어용노조가 일관되게 표방해 온 통일된 탄압 책동이다. 철도 어용노조는 한국노총의 앞잡이답게 투쟁 준비기엔 정권과 사용자를 대변하는 조합원 분열 공작에 여념이 없었고, 파업투쟁 기간엔 공권력에게 식비를 지원하는 비열한 짓을 하면서 민주 세력들에 대해서는 물리적 탄압을 자행하였으며, 현장 복귀후엔 더욱 많은 노조 민주화 세력이 희생당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정권과 사용자에게 철저하게 기생하는 어용노조하의 철도 현장엔 오늘도 통한과 회한의 한숨이 꽉 차 있을 뿐이다. 언제나 철도 민주노조의 깃발 아래 자주적인 노동자로 살아 볼 수 있을까? 94 전지협 투쟁시 집중되었던 민민진영의 관심과 참여는 멀어지고만 있고 역으로 정권과 사용자의 지원 아래 철도 어용노조의 노동자 죽이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하는 노동조합!

금년 9월 4일 아침, 대전의 철도 공작창(차량부품 취급)에 근무하는 서전근 동지가 온몸이 숯덩이로 변한 채 죽어 갔다. 다음날 일간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문제의 본질은 철저히 외면한 채 내용을 왜곡하여 보수언론의 반노동적 작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노동자 언론조차 이러한 사실을 소극적이고 미흡하게 보도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한즉, 서전근 동지의 죽음이 사실대로 세상에 알려질 리 없다. 서전근 동지는 전북 남원이 주요 생활 근거지로써 처와 자식을 남겨둔 채 대전에서 근무해 왔다. 연고지 배치라는 인사 운용의 기본 원칙조차 무시해 온 철도청의 노동통제 일변도의 인력 관리 정책의 진면목이다. 하숙과 자취에 의한 객지생활은 신체적 고달픔과 이중적인 경제적 부담 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상적인 고민 외에 서동지에겐 견디기 어려운 속사정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내의 질병인 것이다. 대수술까지 겪은 형편이고 보니 박봉의 노동자로서 집안 살림살이인들 오죽했겠는가? 직장과 가정과의 통근 거리상 주말 부부인 그에게 가정을 돌보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연고지인 순천 지방 철도청으로 배치될 수 있다면 시간․돈 모두 적절한 수습이 가능할진데, 그러한 정상적인 인사배치가 고려되기는커녕 청천벽력과 같은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불가피하게 결근한 것을 이유로 현재의 근무지보다도 가정 생활 근거지와 더욱 멀어지고 교통 여건조차 여의치 않은 충북 제천으로 전보 발령을 내린 것이다. 아내의 병간호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절망감에 젖은 서동지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민주화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부당한 인사 조치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설령 있었다 하여도 무언가 사후 대책이 세워지지는 않았겠는가? 누구도 자신의 절박함을 위해 나서 주지 않는 비참한 현실속에서 서동지는 부임 예정 당일 아침 마지막 타협을 시도하겠다는 각오로 소속장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설명하며, 시정 요구를 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철저한 냉대와 멸시 뿐이었다. 어용노조 간부까지 배석한 자리였다니 서동지가 느꼈을 절망감과 비애감은 오죽했으랴!
하나뿐인 목숨을 … . 그것도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분신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서동지의 이성과 감정을 짓밟아 버린 확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분신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사용자측 대표인 소속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로 일관, 서동지의 죽음을 술주정뱅이의 우발적 사건으로 규정지으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시신이 안치된 대전의 중앙병원엔 어용노조 간부에 의한 조합원 접근 방지용 감시의 따가운 눈초리만 있을 뿐 진상규명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유가족에게도 철도청과 공권력에 의한 회유, 압력이 전달된 듯 노조민주화 세력에 대한 경계가 있을 뿐이었다.
척박한 철도현장에서 기름에 찌들은 몸으로 가정과 직장문제로 고통받던 서동지의 죽음은 이대로 끝나야 하는가? 분신 현장과 병원에서 두 차례나 가볍게 졸도했던, 죽음 이전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소속장의 행동을 의심하는 것은 무리일까? 통상 관례를 무시하고 사망 하루만에 서둘러 장례를 치루는 기이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적인 직장 풍토는커녕 인간적 대화조차 단절되어 있는 인권의 사각지대, 그것이 바로 오늘의 철도 현장인 것이다. 지금도 어용노조는 서전근동지의 죽음에 대해 말이 없다. 오로지 노조 민주화 세력에 대한 철저한 탄압책을 정권, 사용자와 공동으로 심오하게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철도노조 민주화를 어떻게?

민주노조란 투쟁과 탄압이 반복되는 가운데 성장하고 발전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 통하지 않는 철도현장이다. 두 차례의 총파업으로 노동자 단결투쟁의 모범적 자세를 보여왔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업장은 어용 철도노조의 벽을 깨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96년으로 예정되었던 철도공사화가 법적, 행정적 준비가 완료되고 그 시행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무기한 연기되었다. 96년 공사화는 이미 기왕의 정부 방침이었고, 오히려 몇차례 그 시기를 연기해 오다가 최종 확정된 공개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돌연히 무기한 연기를 발표한 그 이면에는 철도청과 어용노조의 이해관계(?)에 따른 공동의 연기 요구를 정권이 수용한 것이란다. 민주노조 세력을 말살하고 철도 노동자에겐 근로조건 개선의 여지조차 원천 봉쇄시키는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있는가? 철도의 현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총파업까지 하면서 왜 어용노조를 몰아내지 못하느냐라고. 단순 명쾌한 질문에 복잡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 철도노조 민주화 세력의 고민이다.
지난해 총파업으로 인하여 해고된 철노 민주화 추진 간부들의 활동 조건이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다. 지난 9월, 해고 동지에 대한 후원사업을 전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기부금품 모집법’ 위반이라는 해괴한 근거로 철도 노조의 현직 대전 기관차 지부장이 파면되었다. 온갖 악법을 동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도노조 민주화 세력을 철저히 제거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주화 세력의 씨를 말리겠다는 노사간의 공동작품임이 분명하다.
지금도 민주적 활동이 포착되면 사안의 정도에 관계없이 탈법적 탄압을 가할 자세로 제2, 재3의 징계의 칼을 번뜩이고 있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조하는 자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철도 어용노조의 간부들은 조합원에 대한 아무런 부담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철도노조의 선거제도에서 직선제란 단위 지부의 대의원 선출 과정에 한할 뿐, 나머지 간부 및 파견 대의원들은 모두 간선제로 선출한다. 특히 위원장을 선출하는 본조 파견 대의원들은 지부장 또는 지방본부 위원장의 두차례에 걸친 독선적 권한 행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조건속에서 조합원의 의사와는 무관한 노조위원장이 선출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다.
반세기 동안 노총과 함께 어용의 역사성을 창조해온 철도노조가 기득권 고수를 위해 중층 간선제의 선거 제도를 사수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조합원 대중이 아닌 소수의 노동귀족을 동원하면 안정적인 장기 집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선거 풍토가 가능하겠는가? 철도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협잡, 매수, 공갈, 폭력 등 선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온갖 부조리가 극성을 부린다. 이 과정에서 정권과 사용자들에게 충성 경쟁을 하는 노동자들이 츨현하고 이들에겐 관권과 금권의 무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의 체육관 대통령 선출 방식보다도 더욱 더 반민주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선거제도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노동조합의 위원장 선출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는 철도는 아직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가 죽어갈 수밖에 없는 별천지임에 틀림없다.
철도의 민주화 세력이 현행과 같은 선거제도 하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집행부를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비민주적인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노조 규약에 대한 개정 권한을 갖고 있는 세력이 그들이고 보니 제도 개선을 통한 민주적 집행부의 장악조차 원천 봉쇄되어 있는 실정이다. 철도노조 민주화의 요체는 직선제를 통한 조합원 대중의 엄정한 심판을 통해서 뿐이다.
철도노조 민주화는 전 민중적 과제이다. 철도 민주화는 오로지 집행부만을 장악하려는 사업이 아니다. 설령 그와 같은 목표를 정한다 하여도 사용자 또는 어용노조의 지원, 협조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이렇듯 철도노조 민주화의 장정은 극복해야 할 난제의 연속임을 되새겨야 한다. 두차례의 총파업에도 흔들림 없는 어용 철도노조! 노동자의 분신을 통한 부당인사 항거조차 방관하는 관제노조! 공사화를 통한 근로조건 개선 기회조차 반대하고 사용자를 대변하는 노조! 해고동지 후원사업을 추진한다고 현직 지부장이 파면되는 노조 아닌 노조! 조합원 대중의 의견을 제도적으로 봉쇄한 채 노동귀족으로서 정권과 사용자들에게만 미소 짓는 패거리! 이 못된 무리들을 갈아 엎는데 오직 철도 민주화 세력에게만 그 역할을 기대하고 있어야 하나? 전 민중이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철도노조 깃발 아래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확대해 내고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위한 또 하나의 투쟁부대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노조 진영은 물론이고 자주와 민주, 통일을 염원하는 민민진영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때이다. 한/노/정/연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현장활동가분들의
원고를 모집합니다


「현장통신」이 노동현장의 생생한 소식과 치열한 고민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채택된 원고의 필자에게 저희 연구소에서 나오는 자료(회보, 정책 자료집, 토론회 자료집 등)를 보내드리겠습니다.

1995-10-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