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고 공습은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전쟁의 전초전이다. |
현장에서 미래를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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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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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맡고 계신 이무열씨가 유고공습을 분석한 장문을 글을
보내주셨다. 상당히 쉽게 서술되어 있지만 유고공습을 둘러싼
국제역학을 중심으로 전쟁의 성격과 의미, 전망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5월호 정세초점과 함께 검토하면 이 글의 의의를
더욱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무 열
책 만드는 노동자
유고 공습은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전쟁의 전초전이다.
긴급점검
유고 공습은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전쟁의 전초전이다
세계는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전쟁’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힘없는 한 피압박민족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의
온 열강이 힘을 합해 또 하나의 힘없는 민족, 그러나 엄연히
주권을 가진 한 나라를 짓밟는 밀레니엄판 ‘십자군 전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전쟁이 고조될수록 그 피압박민족의 처지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고통이 가중되고, 전쟁의 폐해와 그
음산한 그림자가 전장인 발칸 반도를 넘어 온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유고 공습이 시작된 지 벌써 두 달.
코소보를 비롯한 유고 전역이 불모지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과
그 유럽 동맹국들은 아직까지도 공습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유고의 방공망과 군사시설이고 민간인의 피해는 천 번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오폭’의 유감스런 결과일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NATO의 1차 공습
목표는 공습 3,4일 만에 이미 달성되었고, 그뒤로는 오로지
유고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고 자신들의 추악한 거짓말을
은폐하고 자신들의 숨겨진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한
거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쪽으로 공습이 진행돼왔다.
유고의 각급 정부청사는 물론, 모든 종류의 공장과 정유소,
비행장, 다리와 철도, 열차와 버스, 도시의 민간인 밀집거주
지역, 병원과 학교에 이르기까지, NATO의 미사일과 폭탄을
비껴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보호자를
자처한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의 밀집 거주지인 프리슈티나에까지
폭탄을 떨어뜨려 대규모의 난민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공습
피해가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고의
방송국과 송신소까지도 파괴해버렸다.
그 결과, 유고의 생산기반은 삽시간에 무너져, 앞으로 50년은
지나야 이전 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이미 수 천명을 헤아리고, 피해액도 천 억불을
넘어섰다고 한다. 9년간의 공습과 봉쇄로 이미 중세시대로
후퇴했다는 ‘이라크’가 유럽 한복판에 또 하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에 미친 영향도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고, 공습 피해를
입은 공장들에서 흘러나온 화학물질들로 다뉴브 강과 그
지류들은 죽음의 강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미사일에 함유된
우라늄 물질의 폐해는 아마도 수세대 뒤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고
한다.
이른바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시작했다는 이번 공습이
이처럼 파괴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것이 무엇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NATO의 전쟁명분은 분명히 상실되었다.
NATO와 미국 및 유럽열강 정부의 발표문만을 앵무새처럼
주워섬기며 공습을 부추기던 서방 언론들의 논조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소보 주민과 난민의 피해에만 열을 올리던
인권단체들도 공습으로 인한 유고 민간인의 폐해 쪽에 눈을
돌리고 있고, 환경단체들도 공습의 폐해를 본격 거론하기
시작했다. NATO 공습 중지를 주장하는 각국의 반전 시위에, 이제
유고(세르비아)인만이 아니라 대사관을 폭격당한 중국인, 그리고
진보적인 시민들도 대거 합세하기 시작했다. 수만 명의 그리스
시위대는 철도와 도로를 봉쇄하고 군수물자의 수송을 막았다.
아드리아 해에서 물고기를 잡던 이탈리아의 어부들도 그물에
탄피만 걸린다고 공습 중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진보적인
단체와 시민들도 남의 나라에 감 내놔라 밤 내놔라 하지 말고
국내의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인권이나 보호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확인되어 미국과
유럽열강의 정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하나는 유고의
거부로 NATO에 공습의 직접 명분을 제공해준 랑부예 협정의 전문
공개인데, 그것은 주권국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적인 조항들을 담고 있다. 또 하나는 공습의 포괄적이자
유일한 명분이던 코소보 알바니아인에 대한 대규모
‘인종청소’의 근거가 여지껏 확인되지 않고 있고, 반대
근거만이 계속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NATO의 공습
명분의 뿌리를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공습에 반대해온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NATO
내부에서까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공습에
반대하고 있는 그리스는 공습의 무조건 중지를 원했고,
이탈리아는 일시 중단을 제안했다. 프랑스와 독일도 지상전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쟁을 지지 또는 묵인하여 자신의 색깔을
만천하에 드러낸 유럽의 사회민주계 정당들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예로, 독일 사민당의 전 당수인
라퐁텐은 이번 공습을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처음부터
유고 공습을 제국주의적 침략전으로 보고 공습의 즉각 중지를
주장해온 각국의 소수 좌파 정당과 단체들은 물론, 이제 우파
정당들에서까지도 공습 중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공습 중단을 넘어 이제 반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해가고 있다.
NATO는 점점 궁지에 몰리면서도 공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공습 자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NATO는 이처럼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 표방했던 NATO의 의도는 처음부터
빗나갔고, 계속 빗나가고 있다. 2, 3일 만에 항복하고
코소보에서 물러날 줄 알았던 유고는 두 달이 넘도록 전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상전을 피하기 위해 공습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공습만으로 이번 전쟁을 끝내고 NATO가 바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공습 초기에
밀로셰비치를 유고 국민들로부터 고립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오히려 반정부 세력들까지도 자기 나라와 민족의 수호를
위해 일치단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밀로셰비치를 러시아와
분리시키려는 의도도 수포로 돌아갔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에는 반미, 반NATO의 기운이 강화되고 있고, 대사관의
‘오폭’까지 겹쳐 중국은 미국의 ‘친구’에서 ‘제1의
적’으로 변해버렸다. 세계의 여론은 공습 중단 쪽으로 선회하고
있고, NATO 내부의 균열도 심화되고 있다.
궁지에 몰린 미국과 유럽열강은 약간의 유화 제스처를 내비치고
있다. 사실상 유고 점령안이던 랑부예 협정안보다는 다소
부드러워진 새로운 평화안을 내밀었고, 이제는 코소보에 유고 군
일부의 잔류를 허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비치고 있다. 이는
그전의 자신들의 요구가 얼마나 무리하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은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애초부터 ‘착한 알바니아인’의
인권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의회는 백 억불이 넘는 발칸 전비를 승인했고, 돌격대장인
영국의 블레어는 온 유럽에 확성기를 대고 지상전의 강행을
외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저들을 광분케 하는 것일까? 확인된
수치만으로는 공습 이전에 학살됐다는 알바니아인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사망자가 나오고 있고, 산업기반과 자연환경에 이미
엄청난 피해가 빚어졌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피해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저들은 무엇에 눈이 뒤집혀 이처럼
무리한 전쟁을 강행하려 드는 걸까? 인구 천만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를 내노라 하는 열강들이 개떼같이 달려들어서 물어뜯고
있는 진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전쟁은 어느 쪽으로 비화될
것인가? 전쟁이 확산된다면 전선은 어떻게 그어질 것인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인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미래를 맞게 될 것인가? 미국과 유럽열강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이며, 그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이런 재앙을 막고 온 인류가 자주적이고
평등하며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할 방도는
없는가?
물론 이런 물음에 다 답하기는 힘들다. 작게는 전쟁 상황에서
전쟁 당사자, 특히 우세한 정보매체를 가진 쪽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유통시키고 필요한 경우에는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널리 확산시키므로 진실을 포착하기가 어렵고, 또 전시와
같은 예민한 상황에서는 우연한 실수나 변수가 뜻밖에도
물줄기를 크게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며, 훨씬 큰
이유로는 그런 분석 작업에는 튼튼한 지적 바탕과 분석력,
정보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히 이런
종류의 작업의 적임자는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체계적인
분석방법을 취하지 않고, 명백한 것, 명백해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본 뒤, 그것을 한데 모으는 방법으로 접근해볼까
한다. 코끼리를 여기저기 만지다 보면, 코끼리의 전체 윤곽이
드러날지도 모르니까.
자명한 것들, 분명해진 것들, 분명해지고 있는 것들
NATO 공습 이전에 ‘인종청소’라고 불릴 만한 사태는 없었다
NATO의 공습 명분은 단 하나,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에 대한 유고
정부와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였다. 6만 명 대학살설, 10만
명 실종설, 20만 명 추방설, 징집연령의 젊은층 몰살설 등을
계속 확대재생산하면서 공습의 분위기를 잡았다. 유럽
한복판에서 그런 만행이 저질러지는 것을 더 두고볼 수는
없으니, 이제 우리가 나서서 ‘문명 유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선전의 홍수 속에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선량한 희생양’으로, 밀로셰비치와 유고 내 세르비아인들은
‘히틀러’와 그 ‘돌격대’나 ‘유겐트’로 자리매겨졌다.
그러고는 랑부예 협정이라는 굴욕적인 점령안을 들이밀고
밀로셰비치가 이를 거부하자, 곧바로 ‘선량한 희생양’들을
구해내기 위한 ‘십자군’을 일으켰다. 이 ‘새로운 전쟁’은
압박받는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성전’이었다. 전쟁의
성격상, 소수자를 억압한 무리들은 그 어떤 대가를 치러도
유구무언일 파렴치범이고 악당들이어야만 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나쁜 짓, 2차대전중
아우슈비츠에서 히틀러 독일의 나치가 한 것처럼 ‘선량한
사람들을 한곳에다 모아놓고 집단학살을 자행한’ 악의 무리들은
그 어떤 벌을 받아도 쌌다. 설령 유고 전역이 아무도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해도, 세르비아인 전체가 지구상에서 멸종한다 해도,
성스러운 이 지구를 정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응당 치를 수 있는
대가였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그런 ‘십자군’의 결의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며칠 전에도 NATO 대변인은 10만
명의 알바니아인 실종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을 입증해줄 만한 증거는 여지껏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공습 이전의 충돌과 잔혹행위는 유고 군경과
코소보해방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즉 낮은 수준의 내전의
결과이거나 그 여파였고, 그조차도 대규모로 학살이 자행된
증거는 없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출처가 다소 불확실한
20여 구의 알바니아인 시체를 공개한 것이 최대의 ‘성과’일
뿐이다. 해외의 난민들 속에서도, 아직껏 코소보에 남아 있는
알바니아인들 사이에서도 그것을 입증해줄 만한 증거나 증언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공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약간의
갈등은 있었다 해도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는 이웃으로서
별문제 없이 어울려 살았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서방의 한 기자는 젊은이가 말살되었다는 알바니아계 마을들에
젊은이들이 건재함을 전해왔다.
‘인종청소’ 비슷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공습 이후에 시작된
것이었고 그 책임은 곧바로 NATO에 연결된다. NATO의 공습은
세르비아인의 호전적인 민족주의에 더욱 불을 붙였고, 코소보의
세르비아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유고 군경과 코소보해방군
사이의 전투가 격화하면서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세르비아측의
압박이 거세졌다. 그리하여 많은 난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코소보를 떠난 10만여 명의 알바니아계는 내전의
산물인 반면, 그후에 나온 20만여 명의 알바니아계는 공습과
그에 따른 민족갈등 격화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다수의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거주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진짜 대규모의 난민 행렬이 시작된 것은 공습 2주째
코소보의 민간인 마을과 코소보의 주도인 프리슈티나에 폭격이
가해지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공습을 피해 나온 난민이 크게
늘어나, 이전에 코소보를 빠져나온 사람까지 합쳐 해외에 약
70만, 국내에 60만의 난민이 떠돌게 되는 것이다. 진짜
‘인종청소’의 주범은 미국 주도하의 NAT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사태의 전개이다. 이렇게 대규모의 난민을 만들어놓고
미국과 유럽열강은 이제 ‘난민의 무사귀환과 안전보장 확보’를
구실로 다시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세르비아인의 씨를
말려서라도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그 일념에 정말
고개가 내둘려진다. 그와 더불어, 그렇게 계속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이유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크건 작건 다른 민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잔혹행위를 가하는
것을 비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일어나게
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이 잘못된 정보에 입각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인종청소’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그림 중에,
1992~1995년의 보스니아 내전 중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 내
이슬람계에 대해 집단살해, 집단강간 등 끔찍한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동안 지겹도록 보고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설마하면서도 세르비아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후의 조사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학살은 내전 중에 쌍방간에 이루어진 것이고, 큰 규모의
대학살이 일어난 적은 없으며, 그후에 이루어진 인구조사도
쌍방간의 피해가 대등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보스니아 안에서도
비교적 대규모의 ‘인종청소’가 이루어진 것은 이슬람계에 의한
세르비아계의 축출이었고, 그보다 더 대규모로 ‘인종청소’가
자행된 것은 크로아티아 내에 거주하던 25만 명의 세르비아계를
공습으로 축출한 것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세르비아계가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축출 공습은 미국의 직접 지원하에 이루어졌고, NATO 대변인은
당시 이런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날 세르비아계의 잔혹행위
사진을 공개하여 온 세계의 언론이 그 사진으로 장식되었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되었다. 세르비아계는 어찌 보면 유고 붕괴와
내전의 최대 희생양인 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세르비아는
유고 최대의 민족으로서 미국과 유럽열강이 유고를 장악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고분고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인권’은 언제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더 큰 악행을 범하거나 감추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수민족을 억압한
범죄는 언제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합당한
주체가 합당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해야 한다. 더욱이 엄연한
주권국을 상대로 책임을 물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초석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미국은 어떤 이유로도 그 역할을 감당할 존재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미국의 온갖 비행과 그 고무줄 잣대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분쟁에 개입한 적은 없으나
인권을 유린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다른 열강도 물론 대동소이하지만, 특히 미국이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코소보 사태에 개입했다니, 소가 웃다 짖다 못해
나뒹굴 일이다. 만일에 혹시 정말 그랬다면, 세상이 이제 좀
조용해질 수 있을 텐데… 만일에 정말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심을 한 거라면, 이런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200만의 쿠르드 인을 ‘인종청소’한 죄를 물어 터키의 앙카라에
미사일을 한방 날리는 건? 타밀 인을 독립시켜주라고 스리랑카의
콜롬보에도 한방. 바스크 인을 자기끼리 살게 놔두라고 스페인의
마드리드에도 한방. 체첸 인을 독립시켜주라고 모스크바에도
한방.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원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그만
놔주라고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도 한방. 카슈미르를 놔주라고
인도의 뉴델리와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도 각각 한방씩.
팔레스타인을 빨리 완전 독립시켜주라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도 한방. 동티모르를 무조건 해방시켜주라고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도 한방. 치아파스 인디언들을 제멋대로
살게 놔주라고 멕시코시티에도 한방… (내친 김에 흑인과
히스패닉계와 그밖의 소수민족들을 억압한 죄를 물어 워싱턴과
뉴욕에도 홱 한방씩?)… 그러면 ‘오, 양키, 람보, 역시 멋져’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멋진 일들을 제쳐두고 그렇잖아도
복잡한 발칸 반도에는 왜 뛰어들까?
이들에게 미사일을 날리지 않는 이유는 중학생도 대강 알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거나, 아니면
상대하기가 조금은 껄그럽거나, 아니면 그러지 않는 쪽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서슴없이 미사일을
날리고 군대를 보내 정권을 뒤엎었다. 1980년대 이후로 미국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한 사례만도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그레나다, 파나마, 리비아, 레바논, 소말리아,
아이티, 이라크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이고, 지난해
여름에는 르윈스키 사건으로 클린턴이 곤혹을 겪고 있던 와중에,
케냐의 미대사관 폭파범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만
가지고서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을 날렸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중세시대로 후퇴해버린 이라크가
다시 꿈틀거린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사막의 여우
작전’이라는 것을 개시, 지금까지도 이라크에 연일 공습을
퍼붓고 있다. 그렇게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가 돈도 잃고 아까운
젊은 목숨도 수없이 희생시키며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베트남의 사례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이번 미국과 유럽열강의 코소보 사태 개입은 미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로서 분명한 행보를 내딛기 시작한 1898년의
미․서 전쟁과 성격상 다소 닮은 점이 있다. 그때에도
미국은 스페인의 억압에 시달리던 쿠바와 필리핀에 대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표방하며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스페인을 물리치고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로서 위상을 굳혔고, 이를 발판으로 큰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지금 1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유엔 결의 등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주권국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그것도
독립된 민족도 독립된 국가도 아닌 코소보 알바니아계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미국과 유럽열강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제물로 쓰이고 있다
200만의 코소보인, 그중에서도 180만의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의 뿌리는 그다지 깊지 않다.
1912~1913년 발칸 전쟁 당시만 해도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영토로서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1913년 알바니아가
당시 오스만투르크 령에서 독립을 달성할 때에도 코소보의 영토
문제는 불거지지 않았다. 1차대전 후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유고슬라비아(당시의 국호는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벤)가 세워진
뒤, 코소보 땅에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들이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2차대전 후 코소보는 유고 내 세르비아 공화국의 한
자치주가 되었고, 유고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코소보
세르비아계는 더 이상 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 출생률은 가장
높고 생활수준은 가장 낮은 주변의 알바니아인들이 광산 등의
일자리를 찾아 대거 코소보로 몰려와 1980년경에는 알바니아계가
주민의 80%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들어 유고의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코소보인들은
마케도니아 등 다른 남부지방민들과 함께 유고인들 중에서도
가장 혹심한 고통을 겪었다. 광업과 농업이 주산업이던 코소보의
주민들은 유고에서도 가장 먼저 저임금과 고실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당시 지방분권 정책을 취하고 있던 유고의
경제위기는 다양한 민족들간에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고, 서방자본은 유고를 분할 지배하기 위해 이런
쇼비니즘을 더욱 조장했다. 1980년대 후반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면서 코소보에도 호전적인 알바니아 민족주의가 대두했다.
코소보의 독립을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1989년 밀로셰비치는
역시 호전적인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정권을 굳히고자
코소보의 독립 움직임을 역으로 이용했다.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버린 것이다.
1990년대 초 유고의 다른 공화국들이 하나둘 유고에서 떨어져
독립해 나갈 때, 코소보의 알바니아인들도 줄기차게 독립을 위한
싸움을 전개했다. 그러나 4년간의 보스니아 내전을 마무리지은
1995년의 데이턴 협정에서 코소보의 독립 문제는 거론조차도
되지 않았다. 서방 열강의 입장에서도 코소보의 독립은 ‘대
알바니아’의 출현과 발칸 지방의 지나친 불안정화 가능성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스스로 자결권을 행사하여 ‘자치정부’를
세웠고, 자치에 불만을 품은 일부 강경한 민족주의자들은
코소보해방군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1997년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코소보해방군은 1998년 초까지 유고(세르비아) 경찰과
민간인들에게 몇 차례 집단테러를 가하여 이목을 끌었다. 유고
군경이 코소보해방군과의 싸움에 나선 것은 이때부터다.
소규모의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까지도 미국은
코소보해방군을 조무래기 테러리스트 집단 정도로 여기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코소보해방군은 자유시장 경제의 건설, 서방세계 및 NATO와의
연대, 코소보의 완전독립과 대 알바니아 건설 등의 목표를
굳히는 한편, 아랍 부호들의 후원, 마약업자들과의 거래로
자금을 조달하여 무기를 사들이는 등 차츰 세를 넓혀갔다.
전사들의 수도 1만 이상으로 불었고, 내전의 강도도 높아졌다.
1998년 여름에는 일련의 대공세를 펼쳐 코소보 땅의 30~40%를
차지했다. 미국의 CIA는 이들을 재평가했다. 1998~99년의
겨울을 거치며 코소보해방군은 갑자기 상당한 조직력과 전투력을
갖춘 게릴라 전사집단으로 변모했다. 내전이 격화하며 쌍방에
피해가 커지고, 고향을 등지는 난민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9년 봄 코소보해방군은 자치론자들을 제치고 코소보
알바니아인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부각되어, 랑부예 협정에도
한쪽 당사자로 참여했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이들을 앞세워 사실상 유고 전역을 장악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내전의 결과로 발생한 알바니아계 난민들은
유고 군과 세르비아인들의 ‘인종청소’의 결과로 둔갑되었고,
이를 빌미로 밀로셰비치에게 굴욕적인 협정안을 들이밀었다.
밀로셰비치가 협정안을 거부하자 NATO는 3월 24일 즉각 공습에
돌입했다. 난민이 크게 늘자, 알바니아계에 대한 유고와
세르비아인의 ‘인종청소’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선전했다. 공습의 피해가 커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이제
알바니아계 난민의 무사귀환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내세우며
공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열강의 작전을 ‘돕는’ 대가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 받게 될 보상은 무엇일까? 코소보의 완전독립과
자주적인 정부 수립? 이전의 ‘평화안’에도 5월에 새롭게
제시된 ‘평화안’에도 그런 조항은 없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상 NATO 점령하의 군정일 뿐이다. 잘해야 지금의
보스니아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그들의 미래상일 텐데, 이걸
얻자고 그렇게 목숨을 내걸고 싸웠단 말인가? 물론 소수
상층부는 군정의 녹을 받으면서 비교적 안락한 삶을 누리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아와 빈곤의 끝없는
질곡뿐일 것이다. 풍부한 자원이 매장돼 있는 광산들만 잘
운영해도 웬만큼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과 유럽열강이 그것을 순순히 코소보인들에게 맡겨둘까?
얼마나 신경을 써서 겨우 얻어낸 성과인데.
지금의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인 거주지역, 그리고
코소보를 합친 대 알바니아의 건설? 이것 역시 순진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머리 속에나 있는 그림일 뿐이다.
알바니아인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그야말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발칸
반도에서도 가장 큰 화약고로 꼽히는 지역이다. 만일 대
알바니아가 출현하게 된다면, 그것은 서방열강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칸 기지, 발칸 식민지의 모습일 것이다. 이래저래
답답하기만 한 형국이다.
그래도 한 가닥 활로는 있을 것 같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주변의 형제 민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앞길을 함께 의논하면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길이다.
유고 공습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공습 피해의 확산과 함께 궁지에 몰리면서도 NATO가 공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을 보면, 이건 예사 전쟁이 아닌 게 분명하다.
NATO가 진정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원한다면 단 며칠만이라도
공습을 중단해 그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합리적인
주장까지도 묵살하고 공습을 계속 강행하는 것을 보면, NATO의
의도가 코소보 사태의 수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최근의 공습 대상에서는 군사시설보다
산업시설이나 국가의 각종 기간망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유고 자체의 완전 무력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번의 유고 공습은 1991년부터 시작된 옛
유고연방(6공화국, 2자치주) 분할점령 계획의 마무리 수순임이
분명하다.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그것이 금세 드러난다.
1991년, 경제파탄 후에 몰아닥친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의 열풍 속에서 서방세계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민족주의 세력을 부추겨 독립을 선언케 했다. 이때에는 독일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두 나라는 그 즉시 서방세계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었다. 1992년에는 미국이 적극 나서서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이끌었다.
마케도니아는 사실상의 미군정 치하에 들어갔고, 민족 구성이
복잡하여 일종의 완충지대로 설정되었던 보스니아에서는 이후
4년간에 걸친 피비린내나는 내전이 펼쳐진다. 서방세계는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NATO군을 파견하여 보스니아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의 연합을 도왔다. 95년의 데이턴
협정으로 전쟁이 종결된 후, 보스니아는 이슬람-크로아티아계
연합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2정부 1국가 체제로 재편되고,
국가의 메가폰은 서방세계와 NATO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실상의
군정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는 남은 몬테네그로와 함께 신 유고연방을 결성하여
유고의 명맥을 지켰으나, 세계는 신 유고연방을 옛 유고연방의
계승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보스니아의 갈등이 잦아들 즈음,
이번에는 세르비아 내의 두 자치주(코소보, 보이보디나) 중
하나인 코소보에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코소보해방군이 차츰
힘을 얻어가자, 미국은 그들을 본격 지원했다. 코소보 내전과
지금의 유고 공습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과 그 유럽동맹국들의 의도는 공습 직전에 유고에 들이민
랑부예 협정안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랑부예
협정안은 ‘까불다 죽을래 아니면 노예로라도 목숨을
부지할래?’ 하는 식의 최후통첩이었다. 협정안의 핵심은
코소보의 완전한 자치와 코소보 내에 NATO군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는 것이었다. 엄연한 주권국가인
유고로서는 자국의 영토에 외국군의 주둔을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유고는 협정
참여를 거부했고, 3월 24일 NATO는 공습을 단행했다.
공습이 2~3주 경과할 즈음, 랑부예 협정문서의 전문이
공개되었다. 그것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까무라칠
조항들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는
‘평화안’이 아니라 ‘점령안’이고 ‘항복문서’였던 것이다.
부록 B, ‘다국적 평화군의 지위’가 특히 그러했다. 그에
따르면, NATO 요원과 그들이 탄 차량, 선박, 항공기는
코소보뿐만이 아니라 유고연방의 전 영토와 영해, 영공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다. 지원이나 훈련, 작전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모든 지역과 시설들을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또, NATO 요원들은 유고연방 안에서 어떤
형사․민사․행정상의 범죄를 저질러도, 어떤
군기위반을 해도, 유고 사법부의 재판을 받지 않는 면책특권을
누릴 수 있다. ‘평화군’이 아니라 ‘점령군’이었던
것이다.
그간의 전개 상황으로 보나, ‘최후통첩’으로 들이민 랑부예
협정문서를 보나, 미국과 유럽열강은 유고를 공격, 점령할
기회를 노리고 그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코소보에, 유고에 무엇이 있길래, 이들은 이처럼 치밀하게
유고의 공습을 계획하고 준비했던 걸까? 코소보의 광산에서,
다뉴브의 평원에서 무슨 황금산이나 생명수라도 발견한 걸까?
그것을 추적하기 전에 몇 가지 더 짚어볼 게 있다.
더 이상 존립할 명분이 없는 기구인 NATO가 오히려 울타리
바깥으로 나섰다
이번 공습은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바람을 잡고는 있지만,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NATO다. 다 알다시피, NATO는 1949년 미국의
주도하에 북대서양 양안의 서방국가들이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해 결성한 집단 방위체제다. 1955년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NATO에 맞서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결성했고, 두 기구는
냉전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서로 날카롭게 대치하면서도
세력균형에 입각한 평화를 이루는 한 축이 되었다. 두 체제는
이런 견제와 균형 위에서 2차대전 후 약 30년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안정과 번영을 구가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경과하며 그 세력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1990년을 전후하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세계는 단일 체제로
회귀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해체되었고, 예전에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국이던 폴란드, 체코, 헝가리는 NATO에
가입했으며, 다른 동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NATO 가입을 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파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며 예전의 힘을
잃었다. 더욱이 러시아의 현 옐친 정부는 서방자본의 충실한
하수인으로서, 서방세계의 힘에 의지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NATO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NATO는 딜레마에 빠졌다. NATO의 갈 길은 세 갈래 중 하나였다.
하나는 해체, 하나는 역내 평화유지기구로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 다른 하나는 전세계적인 기구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유럽연합(EU)으로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던 유럽열강은 일각에서
유럽군의 창설을 추진하며 끊임없이 미국의
‘보호우산’으로부터의 탈출을 기도했다. 경제적으로
유럽연합의 핵을 이루는 독일이 이에 가장 적극적이나, 독일은
아직 2차대전의 전범이라는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군비 강화와 군대의 해외진출에도 여러 가지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점은 이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프랑스가
메워주고 있다. 반면에 영국은 독-불 주도의 유럽 통합에
반발하며 상대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밑받침으로 독자 노선을
걸으며 미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은 어떻게든 유럽을
하위 동반자로서 자신의 우산 아래 가둬두려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요인들이 유럽의 완전한 통합과 NATO의 새로운 진로
모색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의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은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가장 큰
요인은 군사적인 열세이다. 유럽연합 전체의 경제력은 미국을
능가하나 군사력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 정도의 군사력으로는
날개 꺾인 독수리인 러시아마저도 쉽게 상대할 수 없고,
그조차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유럽은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을 추구하면서도, 아직은 미국의 보호우산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 점을 십분 활용하여 유럽열강을 휘하에
두고서 자신의 세계정책을 추진한다. 독일은 끊임없이 군비를
강화하며 차후를 모색하는 한편, 일단은 자신의 입지를 고려하여
경제적인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NATO의 유고 공습에서
독일이 2차대전 후 처음으로 해외에 전투부대를 파견하는 한편,
공습의 장기화와 그 폐해로 갈등이 증폭되자 이내 미국과
러시아간의 교량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도 그런 이중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 구조를 안고 있으면서도 NATO는 최소한의 국제법과
관례도 무시하며 UN의 동의도 얻지 않고 유고 공습을 단행했다.
이는 NATO가 가능한 세 가지 진로 중 마지막, 즉 세계기구로의
전환을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NATO 회원국이 공격을
받거나 위협을 당한 것도 아닌데, NATO 권역 밖에서 일어난 일에
군사적으로 개입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독불장군으로
‘세계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에 NATO 회원국들이 가세한
것으로, NATO가 이제 더 이상 방위동맹이기를 그치고
공격동맹으로 전환한 것을 뜻한다.
공습 한 달 뒤인 4월 23일에 열린 NATO 창설 50주년 정상회담은
이런 전환을 사후에 공식 승인했다. NATO의 권역 밖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른바 ‘신전략 개념’을 채택한
것이다. NATO가 그 행동범위를 얼마만큼이나 확장해 나아갈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NATO가 힘으로 자신의 한계를 돌파했듯이,
NATO를 다시 일정한 범위 안에 가둬두는 것은 그에 대한 반발과
견제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의 유고
공습은 미국과 유럽열강간의 단순치 않은 갈등 구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의 독점자본, 초국적자본들의 이해가
일치했음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원료시장이건 상품시장이건
노동시장이건 상관없이, 서방의 독점자본은 지금 새로운 시장을
갈구하고 있으며, 그것도 이렇게 무력으로 시장 점령에 나설
만큼 그 필요가 절박해졌고, 또 지금 눈앞에 놓인 떡이 그만큼
큰 것임을 뜻한다. 열강간의 사소한 입장 차이는 독점자본
공동의 이해 앞에서는 언제든 봉합될 수 있다.
발칸 반도는 이제 ‘세계의 화약고’이다
100년 전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로 불렸다. 빈사 상태에
빠진 오스만 제국(오스만투르크)의 붕괴를 틈타 발칸 지방의
다양한 민족들이 다투어 독립을 쟁취했고,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해체의 궤도에 올라 발칸 북부 민족들
사이에서도 자립의 움직임이 가속되었다. 서방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시뻘개진 눈으로 먹음직스런 사냥감을 찾아다녔다.
그중 에서도 영국과 독일과 러시아가 각 나라의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세력권의 확장에 열을 올렸다. 당시 영국은 중동
지역의 패권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었고, 독일은 그
아성을 뚫고 조금씩 세를 넓혀가고 있었으며, 러시아는
지중해로의 출구 확보가 첫 번 째 목표였다.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로 그 화약고에 불이 붙었고, 세계는
사상 초유의 대전쟁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당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르던 발칸 반도의
일각에서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이렇게 서로
아웅대다가는 제국주의 열강의 밥이 될 뿐이라는 자각이
성장하여 여러 민족들간의 동등한 결합을 토대로 하는 발칸
연방의 건설이 진지하게 모색되었다. 그러나 팽배한 민족주의와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열강들의 부추김으로 그 시도는 이내
수포로 돌아갔고, 발칸 민족들은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걸쳐 서로 적이 되어 싸우며 혹심한 고통을 겪는다.
2차대전 후 30여 년에 걸친 상대적인 안정기를 지나, 1980년대의
경제 악화와 뒤이은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발칸 반도를 100년
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되돌려놓고 있다. 옛 소련과 발칸 반도를
포함한 동유럽의 모든 나라는 이전의 사회주의 경제기반의
붕괴와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부작용으로 진통을 거듭하고 있고,
서방세계의 자본은 이 기회를 타고 옛 사회주의권 전역을 원료,
상품, 노동 시장으로 재편해가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그 견제력
약화는 서방세계의 열강들에게 100년 전보다 더한 야욕을 불태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러시아와 함께 옛 소련을
이루고 있던 나머지 14개 공화국이 모두 러시아로부터
떨어져나와 서방세계가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고, 그중
8개국이 카프카스 지방과 중앙 아시아에 몰려 있다.
그러나 옛 사회주의권의 급속한 체제 전환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경제를 파탄내버렸고, 그에 대한 민중들의 반발과 저항은
거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중들은 사회주의권 붕괴 후
앞다투어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했던 정부들을 거부하고
사회시장경제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부들을
세워놓고 있고, 그들도 별 차이가 없으니까 다시 그들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 아직은 그 지향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반발이 세계의 다른 어떤
지역들보다도 거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중 에서도 발칸
반도의 나라들은 더 가난하고, 그에 따라 불만도 더 크다.
서방자본들이 이 지역에 진출해 이익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런 민중들의 불만을 누르거나 딴 데로 돌려야 한다.
맹목에 가까운 호전적인 민족주의는 이런 서방자본들에게 좋은
이용감이자 무기였다. 특히 옛 유고처럼 수많은 민족들이
모자이크되어 있는 곳에서 이 민족주의는 파괴적인 결과를 낸다.
실제로 1990년을 전후하여 체제에 대한 유고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들은 이들의 일각에서
일고 있던 민족주의를 부추겨 서로 죽고 죽이는 내전으로
이끌었고, 민족 독립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이 지역을 차례차례
‘식민지’로 만들어갔다. 그러고는 이제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명맥만 남은 신 유고연방을 또 갈가리 찢어
지배하려 한다.
유고의 해체와 더불어 발칸 반도는 다시 명백한 ‘화약고’가
되었다. ‘화약고’의 심지는 옛 유고에 속해 있던 소국
마케도니아다. 마케도니아의 서부가 알바니아인 밀집거주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마케도니아 자체가 원래 불가리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그리스, 터키가 서로 적어도 한 지방에
대한 자신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실상
미군정의 지배하에 있지만, 언제 분쟁이 터져나올지 모른다.
특히 그리스와 터키는 둘다 NATO의 동맹국이면서도 키프로스
분쟁에서 보듯이 영원한 앙숙이다. 1997년 민중들이 부패한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운 유럽의 최빈국 알바니아도
지금은 서방의 통제하에 있으나, 민중들의 불만이 거세고 ‘대
알바니아’의 건설을 주장하는 알바니아 민족주의도 결코 만만치
않다. 또, 코소보와 함께 세르비아 내의 한 자치주인
보이보디나는 헝가리가 연고권을 주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 발칸 반도를 ‘세계의 화약고’로
부르는 것은 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련의
붕괴와 견제력 약화를 틈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이 지역과
인근에서 노골적으로 패권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고
공습이 바로 그 극단적인 표현이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UN의
지적, 러시아와 중국의 거듭된 경고를 연거퍼 무시했다.
러시아는 특히 서방세계가 자신의 영향권이었거나 자신과 함께
옛 소련을 이루고 있던 나라들에 영향력을 확대해오는 것에
대해서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의 옐친 정권은 서방세계
및 그 자본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갖고 있어 그 반발이
쇼맨십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옐친 정권은
러시아 민중들로부터 완전히 신임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다음에
들어설 가능성이 큰 공산주의-민족주의 연합정권하의 러시아는
지금의 옐친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게 분명하다.
더욱이 서방세계의 손길은 이제 흑해를 건너 카프카스 지방으로,
다시 카스피해를 건너 중앙 아시아에까지 닿고 있다. 카스피아해
연안에는 중동에 버금가는 양의 석유가 묻혀 있다. 발칸 반도는
유럽의 중심부와 카프카스, 중앙 아시아, 그리고 중동 지역과
유럽 중심부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유고 공습은 크게는 이
통로의 장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임이 분명하다.
요컨대, 경제 파탄과 그로 인한 민중들의 불만 폭발, 발칸
민족들간의 대립과 그 여파,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세계의
패권 추구와 러시아의 반발,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와 그
수송로를 둘러싼 대립 등이 이제 발칸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칸의 위기 한가운데에
유고슬라비아의 해체가 있다. 따라서 이번 유고 공습과 발칸
반도의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고슬라비아의 해체
과정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고슬라비아는 IMF가 망쳐놓았다
이번의 유고 공습은 유고슬라비아 공중분해의 마지막 수순이자,
그보다 더 큰 전쟁의 전초전이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돼온
과정을 검토해보면 그것을 쉽게 추론해낼 수 있고, 또 서방측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유고는 소련 및 서방세계와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높은 성장을 기록해온 나라였다. 지도자인 티토는
제3세계와 비동맹 그룹의 탁월한 리더였고, 국민들도 자신의
나라와 사회제도에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연평균 산업성장률이 7%대에 달해 동구권과
제3세계의 모범국가로 꼽혔고, 사회보장도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일국사회주의 정책을 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찍부터 서방세계에 문을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유고 경제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1970년대 중엽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유고는
막대한 국제수지 적자를 보기에 이르렀고, 이 적자는 당시
남아돌던 오일달러의 차입으로 메꿔졌다. 1980년 유고의 외채
총액은 200억불에 이르고 만다.
감당하기 힘든 외채는 IMF와 세계은행을 앞세운 초국적자본의
개입을 불러왔다. 유고에 상륙한 IMF는 국제수지 개선을 이유로
경제안정과 구조조정, 규제완화, 재정지출 삭감, 사회보장 축소,
공공부문의 축소와 시장경제화 등의 프로그램을 강요했다.
요컨대 허리띠 졸라매고 수출을 더 많이 해서 빚을 갚고, 경제는
되도록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파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1986년 인플레가 100%에 이르고 120만의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1987년에는 성장률이 제로로 떨어지더니 1989년에는
급기야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987년에는 IMF가 전면에 나서서,
통화의 평가절하, 임금동결, 가격규제 철폐 등의 이른바
‘충격요법’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무엇보다도 통화가 급락하기 시작하여, 2년여만에
무려 1/200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IMF 감독하의 80년대
10년을 거치며 유고 경제는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60%의
노동자가 최소생계 수준 이하로 전락했고, 생활수준이 이전의
40% 정도로 떨어졌다.
1989년 동유럽 붕괴 이후, IMF는 구조조정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자본주의로의 본격적인 체제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경제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면서 부실기업의
도산이 속출했고, 임금동결하에서 기록적인 인플레가
계속되었다. 세계은행은 전체 노동자 270만 중 무려 190만을
잉여인력으로 계산했다. 정부는 중앙은행의 통제권을 상실했고
경제체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 과정에서 민족간의 대립과 갈등이 싹텄다. 그것은 유고
정부의 지방분권화 정책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유고 출범
당시부터 공업이 비교적 발달해 있던 북부의 두 공화국,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일찍부터 서방과의 교류를 강화하며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제조업을 발달시켜 높은 수준의 성장을
지속했다. 농업과 광업이 주산업이던 남부 지역에서도 한때
과감한 중화학 공업 정책을 추진하긴 했으나, 비동맹의 붕괴와
함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여전히 1차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지속되었다. 80년대의 외채위기와 농․공산물의 가격격차
확대로 말미암아 두 지역의 경제와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지역간의 갈등이 야기되었다. 북부는 남부를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고 있다고 여겼고, 남부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데도
소득은 더 줄어든다고 불만이었다. 북부인들 사이에서 분리주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IMF의 개입과 재정감축은 이들 사이의
갈등을 더욱 격화시켰다. 각 공화국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의
축소와 중단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를 연결하는 고리를
끊어버렸다.
경제파탄과 분리주의 움직임의 가속은 각 공화국과 민족들
사이에서 배타적이고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불러일으켰다. IMF의
‘충격요법’에 따른 경제파탄에 민족 구분 없이 대규모
파업으로 맞섰던 노동자들도 이제 민족 구획선을 따라 서로를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며 연방에서 떨어져나갔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4년간의 내전 끝에 사실상 미국과
서방자본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 마케도니아도 사실상
미군정하에 들어갔다. 남은 신 유고연방에서 코소보 사태가
불거지면서 유고는 이제 해체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다.
요컨대, 유고슬라비아는 외채위기와 그에 따른 IMF의 개입으로
경제가 완전히 파탄나버렸고, 국민들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서 ‘민족’이라는 괴물이 전면에
부상했으며, 그 위기를 이용하고 부추기며 미국과 서방자본은
유고의 각 공화국을 하나하나 점령해 들어갔던 것이다. 이번의
유고 공습은 일차적으로는 유고 점령의 완성에 그 목적이 있다.
클린턴은 이제 유고가 ‘인종청소’ 방침을 되돌리느냐 여부가
아니라 유고군이 언제 어떻게 괴멸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일차적인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열강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미국과 유럽열강은 옛 소련권 전역의 지배를 노리고 있다
소련 붕괴 후 동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의 옛 소련권은 힘의
공백 상태에 빠졌다. 점점 떨어지는 이윤율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던 서방자본이 지구의 1/6의 면적과 1/10의 인구, 엄청난
자원을 가진 이 새로운 ‘황금’ 시장을 놓칠 리 없었다. 이
지역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통합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의 사활을
좌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러시아를 비롯해 새로이 들어선 각국의 정부가 앞다투어
자본주의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옛
사회주의권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완전히 편입시키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개혁’의 미진함과 부작용,
경제파탄과 그에 따른 대중들의 불만 고조, 옛 사회주의
제도와의 충돌, 끝없는 정정 불안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또, 이 지역의 중추이던 지금의 러시아는 비록
자본주의화의 수렁에 빠져 허덕이고는 있지만, 그 인적, 물적
자원이나 경험으로 보아 언제든 다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또 아직까지도 미국과 더불어 양대
핵강국의 하나라는 점 역시 서방열강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호락호락하게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방세계의 동유럽 진출은 동유럽으로부터 끊임없이 러시아의
영향력과 옛 사회주의의 잔재를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돼왔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동유럽은 거의 서방자본의
새로운 시장으로 탈바꿈했고, 골칫덩어리이던 유고슬라비아는
이제 무력 평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NATO의 유고 공습과 유고의
무력 장악은 발칸 반도를 포함한 동유럽 전체의 장악을 확고히
하는 마지막 수순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서방열강의 지배권
확대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를 예고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방열강의 다음 목표는 옛소련 구성 공화국들이고, 그중에서도
카프카스 지방의 3개국과 중앙 아시아의 5개국에 집중되고 있다.
이곳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중심부로서,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도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동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발칸 반도는 서방세계와 카프카스 및 중앙 아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그 통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지금
미국과 유럽열강은 러시아와 중국의 거센 견제에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써가며 유고를 폭격하고 있는 것이다.
유고 공습은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자원 지배를 둘러싼
패권다툼의 서막이다
일각에서 유고 공습의 경제적 목적으로 코소보 내의 풍부한
자원이 거론되기도 했다. 사실 작은 땅 치고, 코소보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 납, 아연, 카드뮴, 은, 금, 망간, 구리,
몰리브덴, 보크사이트 등, 다양하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고, 유럽 굴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탄광도 있다. 그러나
기껏해야 백억 불 정도인 이 자원들을 쟁취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열강이 총동원되어 소국인 유고를 상대로 일대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수백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황금의 호수’가 근래에
확인되었다. 바로 카스피아해다. 카스피아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일대에 중동 지역에
버금가는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의 추정에 따르면, 석유 매장량이 1630억
배럴로 그 가치가 수조 달러에 이르고, 천연가스도 무려 337조
입방피트에 달한다고 한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에서는 매장량
1만 톤의 금광도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두 번 째 가는
매장량이란다.
서방의 석유자본들은 눈이 뒤집혔다. 다투어 카스피해로 날아가,
현지 정부와 서둘러 계약을 맺고 개발에 착수했다. 제 코가 석
자인 러시아는 두 눈 멀뚱히 뜨고 추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송유관과 수송로였다. 어느 쪽으로 송유관이 건설되느냐,
누가 수송로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이해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국가의 위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카스피해
연안에서 나는 석유는 러시아를 거쳐서만 유럽으로 흘러가게 돼
있고, 다른 통로는 아직 없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다른 통로를
모색했다. 카스피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에는 이란이
버티고 있는데, 이란은 현재 대표적인 반 서방 국가이다. 결국
러시아 남쪽, 이란 북쪽으로 동서 통로를 뚫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먼저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를 끌어들여
카스피 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송유관의 건설에 착수했다. 다음은
발칸 반도를 거쳐 유럽 중앙부로 직접 연결되는 송유관의
건설이다. 이번에 NATO가 유고 장악에 성공한다면, 서방열강이
통제하는 발칸 경유 송유관이 곧 착공될 것이다. 또, 흑해는
아직 러시아 함대의 영향권하에 있어 불안하므로, 그루지야에서
터키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지중해로 곧장 연결되는 또 다른
송유관의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러시아의 송유관과 수송로 독점을 깨기 위한
것이다. 이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한때는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었던 그 무진장한 자원을 가만히 앉아서
그대로 빼앗기고 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함께 행동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열강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자본주의 3극
중 하나인 일본도 독자적인 개발과 수송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중국도 카자흐스탄의 석유회사와 공급 계약을 맺고 송유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게다가 카프카스 일대 나라들의 정정도
불안하기만 하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귀속을
둘러싸고 인접한 아르메니아와 오랜 전쟁을 벌이고 있고,
그루지야는 분리주의자들과 내전을 치르고 있다. 한때는
분리주의자들의 방해로 송유관 건설이 중단되기도 했다. 터키는
쿠르드 족과 내전중이다.
NATO의 유고 공습은 앞으로 일어날 더 큰 규모의 전쟁의
전초전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민족
분쟁을 빌미로 한 개입의 여지는 지천에 널려 있고, 그것은
얼마든지 강대국간의 열전으로 비화할 소지를 안고 있다. 미국과
서방열강, 그리고 일본에서는 군국주의화 움직임이 심심치 않게
감지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태세도 그리 부드럽지 않다.
핵강국들간의 전쟁, 그리고 인류의 멸망이 만화 속의 일만이
아닐 가능성은 충분하다.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자원은 그
‘훌륭한’ 뇌관이 될 수 있다.
전쟁상인들과 독점자본, 그리고 그 나팔수들은
쌍수를 들어 유고 공습을 환영하고 있다
얼마 전 백악관은 미국 의회에 59억불의 발칸 전비를 요청했다.
의회는 한술 더 떠서, 그 밖의 방위비를 포함하여 국방예산을
151억불 증액해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거기에 덧붙여서
연차적으로 무기구매액을 늘리기로 결의하고 내년도
군사예산안을 2760억불로 늘려 잡았다.
걸프 전쟁과 소련 붕괴 이후 해마다 격감하던 매출로 사활의
기로를 헤매던 군수산업에 돌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묵혀 있던 무기 재고가 바닥나고 기계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월가에서는 군수에 관계된 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정부는 차세대 무기의 구입을 계속 늘려가겠다고
발표했다. 클린턴 정부하에서 미군은 크고 작은 50회의 해외
군사작전에 참여했다. 이는 ‘신냉전’의 기수였던 레이건 정부
시대를 능가하는 수치다. 새로운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쟁을 환호하는 것은 단지 군수산업계만이 아니다. 미국의
월가와 세계 굴지의 초국적자본, 그리고 그 나팔수들이 쌍수를
들어 유고 공습을 환영했고, 나아가 지상전까지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지배집단은 카스피해의 석유를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지는 가운데에서, 중앙 아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유고 공습과 그 확전으로 하나도
손해볼 일이 없는 것이다. 전쟁 상인들 및 그와 직간접으로
유착된 독점자본, 정치가들은 유고 공습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사실, 오늘과 같은 사회에서는 군수산업과 민수산업 자체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전혀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민항기를
만드는 회사가 전투기 제조 회사이기도 하고, 첨단 제어장치가
각종 스마트무기와 원자로 등 첨단 장비에 함께 쓰이고 있으며,
어느 한편에서라도 생산이 확대되면 그와 연관된 기초산업들은
활황을 맞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윤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민수자본과
군수자본의 이해가 일치되는 지점이 크게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호황이 오래 지속되는 평화기에는 민수자본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터져 이윤을 확대할 기회를 차단당하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러나 침체기에는 무력을 써서라도 장벽을 파괴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는 것이 민수산업으로서도 유리하다. 지금처럼
자본이 남아돌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서방열강의 군국주의화와 노골적인 침략의 감행은 이런
추세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미국과 NATO는 유고 민중은 물론,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운명,
공습의 피해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반면에, 유고 공습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민중과 유고의 애꿎은 민중들이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공습이 두 달이나 계속되어 유고 전 국토가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개입은 정당했으며, 유고가
완전히 두 손을 들 때까지 공격을 계속하겠노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 명분은 아직까지도 ‘착한 알바니아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위해서이며, 그들의 무사귀환과 안전보장을
위해서이다.
그 위선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 가운데 하나가 난민들의
실태이다. 알바니아계 난민들 중 서방세계에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 극히 일부만이 비교적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있을 뿐,
대다수의 난민들은 세르비아인의 잔인함을 과장하여 폭로하는
‘움직이는 선전탑’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공습 전비의 단
1/1000만 써도 난민들의 생계는 어렵지 않게 해결해줄 수 있을
텐데, 이들의 구호는 이 전쟁의 관객에 불과한 UN과
민간단체들에게 맡겨둔 채 외면하고 있다. 공습 전비의 단
1/10만 써도 세르비아와 유고 전체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여
사람들이 평화와 우애 속에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무차별 공습을 강행하여 유고
전체를 50년 전, 100년 전으로 되돌려놓고, 발칸 반도 전역에 그
폐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인도주의적’ 목적하에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에서 ‘차도’로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폭’은 선한 일을 하다가 간혹 저지르게 마련인 실수라는데,
실수로 핵폭탄을 떨어뜨려놓고 죽어가면서도 그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이제 NATO를 앞세운 미국과 유럽열강의 숨겨진 의도를 분명하게
벗겨낼 때다. 저들은 애초부터 코소보 알바니아계의 운명 따위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저들의 시야는 유고나 발칸 반도에
국한되어 있지도 않다. 저들의 의도는 세계를 저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것이다. 저들의 입에 맞지 않는 것들은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가져가는 것이다. 저들은 세계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유고 공습은 미국과 초국적 자본들이 구상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마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세계질서의 전면적인 재편에 나섰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에 걸맞은 세계의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 핵은 어디까지나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며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이므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정리해보기로 하자.
미국은 소련 붕괴 후에 도래한 ‘단극 체제’하에서 그에 걸맞은
세계지배 전략을 수립했다. 그것은 소련이 남기고 간 잔해를
추스려 자신의 지배하에 둠으로써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자신의 본토인
아메리카를 떠나 유라시아 대륙으로 본격 진출해야 했다.
유라시아는 전세계 인구의 75%, GNP의 60%, 에너지원의 75%를
차지하는 세계의 중심이다. 목표지는 일차적으로는 동유럽,
다음에는 러시아를 제외한 옛 소련 구성 공화국들이고,
마지막에는 러시아까지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정황상 이 웅대한 과업을 혼자서 추진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열강들과 함께 할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의 명분은
필요하고 또 효율면에서도 그쪽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의 하위 파트너로 유럽열강을 택했다. 냉전기에 창설된
NATO가 아직 건재하고 있고, 그 NATO의 그늘 밑에 숨어서 작업을
추진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좋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유럽은
자신의 보호우산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유럽열강 역시 자신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이 많아 죽이 잘 맞았다. 미국은 NATO를
앞세워 유럽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입이 원천봉쇄된
유럽연합이 아니라 NATO를 통해서 유럽을 확장하는 것은 곧
자신의 영향력 확대였다.
동유럽이 곧 NATO의 세력권 안에 들어왔다. 예전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위에서 서방자본의 영향하에 자본주의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동유럽 국가의 지배집단들에게는,
힘있는 NATO의 우산이 맥빠진 러시아의 우산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유고슬라비아에 대해서는 분할 점령책을
취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군대도 동원했다. 유고 점령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심하고 있던 터에 코소보 내전이 시작되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내전을 ‘인종청소’로 밀어붙여 유고 공습을
단행했다. 유고와 발칸 지방은 옛 소련 지역 장악의 중요한
발판이고, 카스피아해 연안의 자원을 서방으로 실어내오는 데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다. 또, 경제파탄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는 발칸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군사적 개입은 어차피 필요한 판이었다. 만일 여기서 좌절할
경우에는 이후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염려가 있으므로,
어떤 무리수를 써서라도 꼭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다음은 카프카스와 중앙 아시아, 그 다음은 옛소련 전역…
미국의 주도하에 NATO가 일선에 나서서 구현해가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유고
공습은 그 과정의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이 새로운 세계질서가 철저하게 소수 패권국가의 소수
지배집단, 그리고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한 거라는 것이다.
비패권국가나 피지배지역 민중들의 삶이 고단함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패권국가 내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빚어내는 20 :
80의 양극 분화는 더욱 심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이제 최소한의
가면도 걷어버리고 노골적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군국주의적
양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군국주의는 자유와 민주와 인권을
제약하고 전쟁을 불러온다. 미국의 주도하에 NATO가 구현해가는
새로운 세계질서는 이런 것이다.
유고 공습은 세계를 제국주의적 패권세력과 비패권세력으로
양분하고 있다
이런 패권주의에 입각하여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에
반발이 없을 리 없다. 첫째로, 러시아가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는 사실상 자신의 목줄을 죄어오는 서방열강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그 견제세력의 결집에 나서고 있다. 국내 정치가
워낙 복잡하고 경제도 엉망이어서 다소 진통을 겪긴 하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러시아는 아니다. 다음은 중국이다.
우선은 경제발전에 최우선의 과제를 두고 있어 조금은
조심스럽게 행동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5월초 NATO의 중국
대사관 폭격이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말았다. 러시아와 중국은
제3세계의 또 다른 강자인 인도와 함께 러-중-인 3각동맹의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3자는 세계를 향해 미국의 패권주의에
맞서 정의롭고 합리적인 새 국제질서의 창출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을 축으로 미국과 유럽열강의 패권 세력에
반대하는 다른 나라들이 결집된다면, 새로운 세계질서는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한편, 미국과 유럽열강의 이해관계도 항상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유럽은 미국의 보호우산을 필요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거기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유럽열강간의 이해도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NATO의 유고 공습
과정에서 공습으로 유고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대 원칙은
공유하면서도 공습의 일시 중단이나 절차에서 약간의 견해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핵심 산업이나 자본,
시장의 차이 같은 요인들도 아마 작지 않게 작용할 것이다.
전리품의 분배를 놓고 싸울 때에는 이런 차이가 동지를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러시아와 비교적 근접해 있으며 동유럽에
막대한 투자를 한 독일의 경우, 러시아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 가끔씩 미국 또는 영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차이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유럽열강은 미국의 하위 동반자로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유고 공습은 세계를 제국주의적 신자유주의 분파와 그에
저항하는 분파로 양분하고 있다
전쟁 같은 극한 상황은 사람이나 집단이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이번 유고 공습에서도 서방
각국의 정파들이 어떤 계급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진보세력이 빈약한 미국의 경우에는 제도권 밖의
진보적인 정파 몇몇이 공습 중단과 반전의 목소리를 높일 뿐,
온통 공습 지지 일색이었다. 유럽의 경우에는 공산당과 옛
공산당을 계승한 정당 등, 좌파의 일부가 공습 중단을 외친
반면에, 사회민주당과 모든 중도좌파 정당들이 우파 정당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공습을 지지했다. 사회민주계 정당이야 원래
말로만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라고 떠들 뿐, 정책면에서는 우파
정당과 별 차이가 없는 독점자본의 별동부대이므로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독일 녹색당의 경우에는 이번에 비로소 자신의
계급적 기반을 드러냈다. 물론 소수파가 거세게 반발하긴
했지만, 독일 녹색당은 유고 공습을 지지함으로써 평화와 환경을
중심 모토로 하는 자신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려 버렸다.
전체적으로는 이번 유고 공습을 계기로 제도권 내의 거의 모든
정당들이 ‘파산’을 선언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노동자 운운하던 정당들까지도 자국의 부르주아지가 추진하는
타국의 민중 말살 정책을 지지함으로써,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게 분명한 미래의 더 큰 전쟁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속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편, 서방세계의 노동조합들도 지금까지는 대부분 침묵으로
공습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다시 한번 자국의
부르주아지가 전쟁의 부산물로 가져올 작은 떡고물에 안주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론을 주도하는 서방의
지식인층에서도 공습을 반대하는 건강한 목소리가 작은 반면에,
오히려 공습을 부추기는 호전적인 목소리가 훨씬 거셌다. 이
역시 서방의 지식인들이 부르주아지의 손에 장악돼 있거나
스스로를 부르주아지에 일치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지배적인 현상이 이렇게 드러났다고 해서, 가능성마저
차단 당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신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강화될수록, 그 폐해는 온 나라의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그대로 내리꽂힐 것이고, 그에 따라 그에 대한
저항도 갈수록 강화돼갈 것이기 때문이다.
종합
유고 공습은 추악하고 노골적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유고 공습은 있지도 않은 ‘인종청소’를 빌미삼아 무력으로 한
주권국을 유린한 침략전쟁이다. 노골적으로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거절하자 불문곡직 침략을 감행한 명백한 제국주의
전쟁이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세력을 불리기 위한 영토확장
전쟁이다. 국제법도 관례도 무시하고 UN의 동의도 받지 않은
무력 도발이다. 수많은 열강이 합세하여 약소국 하나를 짓밟은
추악하고 비열한 전쟁이다. 소풍을 가듯, 전자오락을 즐기듯,
수많은 생명과 자산, 소중한 환경을 가지고 노는 사악한
전쟁이다.
유고 공습에서는 서방열강의 군국주의화 경향, 노골적인 고전적
제국주의로의 회귀 경향이 엿보인다. 러시아와 중국을
국제사회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태도가 보인다. 유럽열강을 하위 동반자로 삼아
세계를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해 먹으려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상이 보인다.
유고 공습의 강행은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위기가 증폭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과 유럽열강은 새빨간 거짓말로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의도를
감추며 무리하게 유고 공습을 강행하고 있다. 이는 저들의
위기감과 필요가 그만큼 절박함을 뜻한다. 임박한 공황을 앞두고
새로운 시장, 즉 더 풍부한 새로운 자원시장, 더 넓은 새로운
상품시장, 더 값싸고 질 좋은 새로운 노동시장, 더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자본수출 시장이 시급히 확보돼야 함을
뜻한다. 그 초조감은 자본주의 열강의 군국주의화 경향,
자본주의 경제의 재군사화 경향, 노골적인 제국주의화 경향을
낳고, 그것은 곧 전쟁으로 직결된다.
강력한 견제세력의 부재가 미국과 그 유럽동맹국들, 특히 미국의
패권주의적 태도를 부추기고, 미국은 모든 것을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지금보다 더 노골적인 적자생존의 야만 세계의 출현을
예고하고, 그에 따라 자본간, 국가간, 집단간의 대립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위기가 갈수록 고양돼갈 것이다.
유고 공습은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전쟁의 전초전이다
유고 공습은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에 걸맞은 미국과
초국적자본들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NATO의 그늘 아래에서 유럽열강을 하위 파트너로 삼아
자신의 구상을 구현해간다. 그 일차 목표는 발칸 반도를 포함한
동유럽의 완전한 장악이고, 옛 소련 지역이던 카프카스와 중앙
아시아가 다음 목표가 될 것이다. 특히, 카스피해 연안의 풍부한
석유자원은 미국과 초국적자본들이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는
훌륭한 사냥감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이런 패권 추구를 그냥 두고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고, 미국과 유럽열강의 동맹에 맞선 비패권세력의 동맹도
곧 출현할 것이다. 이들간의 갈등과 대립 심화가 미증유의
대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싼
서방열강간의 대립도 예상된다.
그전에 카프카스와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소규모 전쟁이 빈발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국지 분쟁에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서 분쟁의 강도와 규모가 훨씬
증폭될 것이고, 또 새로운 전쟁들이 연이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의 유고 전쟁은 일련의 이 모든 전쟁의 전초전이다.
누가 제동을 걸 것인가?
NATO의 유고 공습 강행과 함께 ‘3차대전’의 음산한 그림자는
이제 우리 머리 위에까지 도달했다. 미국과 유럽열강의 발칸
점령이 저들의 의도대로 성공을 거두고, 저들이 미국과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온
세계에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3차대전’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이 어두운 그림자를 누가 어떻게
걷어내느냐는 것이다. 그 동력은 크게 보아 세 방면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제국주의적 패권세력에 맞서는
비패권세력의 결집이다. 러-중-인의 3각동맹과 같은 시도들이
구체화되고 그 폭이 확대되고 그 속도에 힘이 붙는다면, 다시
한번 세력균형에 입각한 평화가 올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한 평화이다. 패권세력에 비해 힘의 열세가
뚜렷한데다, 패권과 비패권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고 언제든지
이합집산도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옆으로부터의 변화이다. 모든 나라에서, 특히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들에서 평화와 인권과 환경 운동 등이
강화되어 자국의 정책을 바꾸고 정부를 바꿔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이번의 위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위기의 폭발을 다소
지연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독일
녹색당의 ‘파산’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밑으로부터의 변화이다. 미국과 초국적자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안에서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게
분명한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굴욕적인 삶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 싸워, 자주와 평등과 우애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패권주의 국가들의 다수
민중도 포함된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자주와 평등과 평화,
그리고 인권과 환경의 진정한 만남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고 공습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다. 모든 것을 접어두고라도, 이 전쟁과 뒤이어 벌어질 게
분명한 일련의 전쟁을 막아내지 못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한/노/정/연
www.wsws.org, www.workers.org, www.nervat.com,
www.plp.org, www.mcs.net/~league/league/PT.current.html,
www.rednet.org 등 해외의 진보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여러 글과
국내 통신망에 올라 있는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의
‘신 세계대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를 두루 참조하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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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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