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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 이렇게 만들어 나가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44호
산별노조연구팀


          산별노조 이렇게 만들어 나가자(2)

산별노조운동 연구팀





차례


1. 들어가며

2. '민주노조운동이란 무엇인가?

3.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4. 전노협 초기의 논쟁                (이상 지난호)

5.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6. 맺음말                           (이상 이번호)





5.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과 조직적 수렴


1) 전노협초기까지의 논점의 맥락들


전노협 건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민주노조의 조직발전 전망을 둘러싼 논쟁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노총을 붕괴․민주화시킬 것인가’가 초기의 논점들에서 근간이었다가 ‘새로운 조직 건설’ 쪽으로 가닥을 잡고부터는 ‘협의체냐 연맹체냐’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전되었고, 그것은 ‘협의체’로서의 전노협이 건설되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협의체냐 연맹체냐’에서 협의체론은 새로운 전국중앙조직을 어떻게 건설하여야 ‘어용 한국노총’에 소속하지 않고 있는 광범위한 신규노조들과 앞으로 건설될 노조들이 전부 모일 수 있겠느냐에 초점을 두었다면, 연맹체론은 전투성과 자주성을 견고하게 담보할 연맹체를 건설하여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초점을 두었는데, 양자는 모두 당시의 권력과 자본에 의하여 가해지고 있었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극심한 탄압 상황에 어떤 조직을 갖고 대응할 것인가를 핵심논점으로 삼고 있었다. 그 점에서 협의체론은 연맹체 건설을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었고, 연맹체론은 협의체로서는 허약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당시 논쟁의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첫째로, 협의체건 연맹체건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중앙조직으로서 건설되는 조직은 권력과 자본의 극심한 탄압을 돌파하고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조직으로서 자신을 양적으로 확대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었고, 협의체 형태로 전노협이 건설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직의 집중성과 강고함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피한 과제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그것은 한편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전노협에게 위임하고 부과한 조직적 과제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연맹체로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조직적 내용이 채워지지 못했을 경우 협의체보다도 못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논쟁점은 그 내용상으로는 조직형식적 차원을 뛰어넘고 있었으나 논쟁전개 자체가 그러했느냐는 점이다. 최근의 산별노조건설운동을 볼 때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자계급의 현실은 항상 어떤 조직형식이냐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요컨대 당시의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하고 있었던 투쟁과제들 - 노동악법철폐와 노동3권 보장, 장시간저임금노동의 철폐와 노동조건 개선, 노동운동탄압분쇄 등 산적해있던 문제들 -과 그것을 담보해낼 수 있는 힘있는 조직건설이라는 조직적 과제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역시나 불가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로, 조직형식이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노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기업별이건 여하에 무관하게, 당시의 전두환 정권에 의한 폭압적 탄압상황을 뚫고 80년대 중반 새로이 노조들이 건설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다는 점, 거기에 더하여 사업장 단위에서의 노조 건설과 그것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들 그리고 일상적인 노동조건 개선 요구투쟁들 자체가 하나하나 새로운 과정이었고 그로 인해 처음부터 연대투쟁이 활성화되었다는 점, 특히 공장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지역적 연대투쟁이 일반화되었던 점이다. 요컨대 6.25전쟁 이후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노동조합운동의 일반화’는 그 내용으로서의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공장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적 연대투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살아 있는 역사를 사장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만일 사상된 채, 산별노조라면 반드시 조직의 골간이 업종별 혹은 산업별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사고하면서 거기에 현실을 꿰어 맞추려고 한다면 앞뒤가 뒤집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노동운동사의 맥락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의 80년대도 역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사를 새로이 열어가는 시대였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의 일반화’와 ‘노동조합운동의 활성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서 주로 지역적 연대투쟁이 그 내용을 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당시의 논쟁과정은 핵심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빠뜨리고 있었다. 즉 당시의 논쟁 축은 80년대 중반부터의 새로운 노조건설의 흐름과 투쟁들, 주로 공장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거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87년 상반기에 조성되고 있었던 정치정세(전두환 정권의 집권연장술책인 4.13 호헌선언과 그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와 6월까지의 민주화투쟁 과정을 통하여 자신들을 노동자로서 선언하고 급속히 노조결성투쟁에 합류한 사무전문직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연대투쟁과 조직발전전망이 위 논쟁들 속에서 상대적으로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논쟁의 맥락에서는 이러한 화이트칼라 노조들 및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광범한 조직화를 염두에 두었을지언정 내용상으로는 그 군단을 포괄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전노협이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으로서 자신을 선언하고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에만 머물렀을 뿐 실제 조직화에 이르지 못했던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결정적인 맹점을 그대로 과제로 안은 채 전노협 건설 이후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정치적․투쟁적 구심’으로서 선도적인 조직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던 전노협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혹은 그 전노협이 담보하고 있었던 민주노조운동의 내용성들을 어떻게 확대시켜나갈 것인가로 논점의 근간이 이동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노협 건설 이후에도 여전히, 87년의 과정을 통하여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한 축이 된 화이트칼라 노조운동은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적인 맥락에서 해석되거나 검토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이점은 전노협 건설 이후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노협과 사무전문직 업종노련(협) 조직들이 민주노조운동 내부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총단결’ 조직이 형성되는 95년 민주노총 건설의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성을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러한 상황은 조직원수만을 기준으로 삼아 전노협의 ‘투쟁성과 전투성과 민주성과 자주성’이 강조되는 것을 폄하하고 공허하게 바라보는 경향을 파생시키기도 하는가 하면 그 극단적인 반대경향을 만들어내기도 하였고, ‘사무직과 생산직의 차이’ 등이 과도하게 강조되거나 과도하게 무시되거나 하는 경향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87년 ‘노태우․전두환의 6․29 항복선언’과 7, 8, 9월 노동자투쟁을 절대시하는 가운데 70년대의 노동운동과 광주항쟁, 그리고 80년대 중반을 축으로 하여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을 선도했던 신규노조결성투쟁과 공장노동자들의 투쟁이 87년 7, 8, 9월 노동자투쟁의 밑거름이었다는 역사적 맥락을 잊거나 백안시하는 편향들과 결합한다거나, 임금인상투쟁 혹은 단체협약 쟁취투쟁 등 기본적인 노동자투쟁을 ‘경제투쟁’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임단협보다는 사회개혁투쟁’이라는 식의 이분적 사고 편향을 낳기도 하는 등 민주노조운동에 수많은 교란요인들을 파생시켰던 것이다.


2)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형성


87년의 정치정세를 매개로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것은 공장노동자들의 투쟁과 시기 및 정세 상으로 어우러져 민주노조운동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새로운 조직으로서의 전노협에 사무전문직 업종노련(협)이 지역적으로는 일부 연대를 형성하면서도 중앙 차원에서는 대거 참가하지 못했던 것은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에 거대한 과제1)를 안겨준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전노협 건설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에서 조직상으로 하나가 아닌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되었다. 물론 민주노조 ‘운동진영’이라고 할 때는 노동단체를 포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90년 1월 전노협이 건설된 이후 병원노련, 전문노련, 건설노련, 전교조, 사무금융노련 등 13개 업종노조연맹(혹은 협의회)들은 전노협에 들어가는 대신에 90년 5월에 전노협과는 다른 ‘중앙조직’으로서 전국업종노련(협)대표자회의를 구성함으로써 노조조직도 ‘진영’으로 포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후 전노협과 ‘나란히’(즉 병렬적으로) 민주노조운동 ‘진영’으로서 공동투쟁을 조직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대표자회의’는 ‘전국업종노조회의’(이하 업종회의)로 전환함으로써 그 자체의 구심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동하였다.

더욱이 90년 12월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 회의’(이하 연대회의)가 전노협 바깥에 공식화되었는데, 이는 당초 전노협이 제1차 중앙위원회(1990.2.12)의 결정으로 중앙위원회 산하에 ‘대기업노동조합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직강화와 확대를 목표하고 대기업노조 민주화를 지원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전노협과 병립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2)

이처럼, 전노협 초기 과정에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중앙조직은 전노협과 업종회의로 양립하였고, 연대회의 역시 이들과 병존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각 조직들은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하여 공동연대사업을 조직하고 있었으므로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중심으로 볼 때 투쟁과제는 통일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과 조직과제는 별개의 문제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부단히 ‘공동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유지되었으나, 투쟁과제와 조직과제가 분리되어 있는 가운데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조직적 구심력의 증대는 제자리걸음 혹은 오히려 원심력의 증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3)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민주노조의 전국중앙조직 건설운동은 1차로 지노협을 골간조직으로 한 전노협으로 수렴되었는데, 그 이후 업종회의, 연대회의 등이 정립되면서 전노협과 이들 조직은 ‘수평적 연대’를 통한 공동투쟁과 공동사업을 추진하면서 ‘민주노조 총단결’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한 조직적 상황은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을 기존노조운동과 구별하게 하였던 자주성․민주성․투쟁성, 그리고 그 내용으로서 전노협 건설 주체들에 의하여 투쟁으로 획득되고 사수되었던 ‘노동해방’과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지향점이 이를테면 3분의 1로 왜소화되고 희석화되어 가는 과정과 같은 맥락에 있었다. 따라서 전노협, 업종회의, 연대회의를 대등하게 병립시키는 경향이 형성된 것은 전노협운동의 또 다른 평가지점이라 할 것이다.


3)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결성의 의미와 논점


전노협, 업종회의, 연대회의가 병존하게 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진영'에는 91년부터 ‘공동사업․공동투쟁을 통한 조직통합’이라는 대의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90년 전국노동자대회, 91년 ‘노동자대책위’, ‘ILO공대위’, 전국노동자대회, 92년 전국노동자대회 등이 치러지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93년 6월1일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로 수렴된다.

전노대 결성 당시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전노협, 업종회의,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 4개 조직이 ‘나란히’ 병존하고 있었다. 이들 4개 조직은 93년 4월22일 공동 ‘합의문’을 내고 ‘기존에 조직된 단위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참가조직의 상급조직이 아니라 공동사업 추진체’라는 것을 명시하고 전노대를 구성하였다.4)

이렇게 결성된 전노대는 그동안의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조직이었다. 우선,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전체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포괄되었다는 의미에서 전노대는 하나의 성과였다. 전노대에는 1,046개 노조 39만7,666명이 참가하였고, 참관 교류 노조까지 포함하여 1,141개 노조 47만4,636명의 조합원이 참가함으로써 전국의 ‘민주노조’를 최대로 포괄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4개 조직 ‘합의문’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협의체’로서 전노협을 건설하였음에도 전체 민주노조가 전노협에 포괄되지 않고 병립하였던 조직적 한계를 ‘공동사업체’를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의 반영이다.5) 요컨대 전노대는, 민주노조운동‘진영’이 한편으로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 등으로 병존하면서 조직적 원심력이 계속 증대하고 있던 상황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사업을 설치해서 ‘민주노조운동 총단결’을 도모함으로써 조직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한 것의 소산이다.

이점은 전노협에 포괄되지 못하고 있었던 전노협 이외의 ‘민주노조’ 조직들이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중심성’과 ‘대표성’을 전노협과 공식적으로 공유한 것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으로서 자신을 정립해내고 ‘노동해방과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이라는 내용성을 담보하고 있었던 전노협의 투쟁성, 조직력, 정치적 구심으로서의 위상 등등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로, 70년대에 이어 여성사업장(전자, 섬유)이 중심이었다. 둘째, 제조업 사업장이 중심이었다. 셋째, 중소․영세사업장(대부분 2천인 미만 사업장)이 중심이었다. 넷째, 전노협과 그 골간조직인 지노협은 모두 ‘제도 바깥’에 존재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이 노조운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을 때 한국노동조합운동은 가장 건강하고 힘이 있었다. 이들이 전노협을 건설하고 전노협을 사수하고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적․조직적․정치적 힘을 담보해왔던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놀랄만한 투쟁력은 ‘연대’를 통하여 형성되고 단련되고 다져진 것이다. 기업별 사업장 단위로 조직되었지만 이들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들은 계급적 단결만이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대로 실천했던 세력이었다. 이들의 계급적 단결을 자본은 가장 두려워하였고 그래서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들은 철저하게 탄압을 받았으며, 초기의 20만 조합원에서 95년 해소대의원대회 시점에는 5만여 조합원으로 왜소화시켜버렸다. 이들이 철저히 탄압을 받으면서 왜소화될 때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권력과 자본은 이들을 공장이전, 위장폐업, 노동부의 노조업무조사, 노조탄압 등등으로 고립화시키고 괴롭히는 한편으로 업종회의 산하 연맹들을 차례로 합법화시키고 있었다. 또한 대공장노조들은 주요한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전노협에는 가입하지 않고 그룹별노조협의회 형태로 존재하면서 ‘전노협 바깥의 전노협’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전노협은 철저히 ‘상징’으로서 존재하였다.

부질없는 상상일지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는 것은 오늘날의 민주노조운동의 동요와 혼동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하다. 첫째, 만일 업종회의 소속 연맹들을 포괄하여 전노협이 결성됨으로써 통합된 민주노조 조직이 건설되었다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노협 결성 이후에라도 그런 일이 성사될 수 있었다면 민주노조운동은 크게 달라졌을 법하다. 둘째, 만일 그룹별노조협의회로 전노협 바깥에 위치하고 있었던 대공장노조들이 전노협에 가입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하튼 전노협은 다음과 같이 전노대 결성을 평가하고 있다. “공동사업추진체라는 느슨한 형태이긴 하지만, 1990년 이후 꾸준히 민주노조운동의 확대재생산 기지 역할을 자임해왔던 전노협의 적극적인 민주노조 총단결 사업의 성과였다. 전노협의 지역별 조직 및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 대우그룹노동조합협의회 등 그룹별 조직, 업종회의의 업종별 조직이라는 각자 상이한 조직틀과 경험에 의해 조직발전 전망의 차이점, 지역내 연대사업의 한계, 그룹조직의 제한적 참여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민주노조 총단결의 조직적 지평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산업별 노조건설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전노대는 93년 임금인상투쟁에서 낮은 수위이긴 하지만 전체 민주노조 차원에서 현총련 투쟁을지지, 엄호하는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했으며, 노동운동 탄압 저지투쟁, 노동법 개정투쟁, 금융실명제, 쌀수입 반대투쟁 등 전체 민주노조진영의 투쟁을 조절, 집중시키는 등 자기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그간 전국 유일의 민주노조 중앙조직이었던 전노협으로서는 전노협 강화와 전노대 강화라는 관계 설정을 놓고 의견 대립이 발생하는 등 민주노조진영의 단일조직을 건설하기까지 매우 심각한 논란이 이어졌다.”6)

전노대가 ‘전노협의 적극적인 민주노조 총단결 사업의 성과’라는 것은 전노협이 대표하고 있었던 내용성이 확대강화되었을 경우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전노협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전노대가 결성된 93년도는 전노협 창립 4년째의 해로서 이미 일부 지노협은 심각한 조직와해 상황을 경험하고 있었고 대공장특위 사업, 업종회의 산하조직 설명회 혹은 간담회 등을 통하여 조직확대사업을 꾸준히 전개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7) 이런 상태였기에 전노협은 전노대 결성을 통하여 확대된 ‘민주노조운동’을 전노협운동의 연장선에서 발전시켜나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러한 전노협의 조직적 훼손은 전노협의 정치적 훼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이후 노조운동의 과제, 크게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건설의 과제를 전노협 건설 주체들이 제기하고 투쟁으로 획득해온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추동해 낼 역량들의 파편화와 훼손으로 결과되었다. 그것은 동시에 전노협 바깥에 존재하고 있던 업종별 연맹들과 대공장노조들을 포괄하여 결성된 전노대의 틀 속에서 전노협에 의하여 담보되고 있었던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투쟁성, 민주성’의 내용인 ‘노동해방’과 ‘평등세상 건설’이라는 내용이 힘을 받지 못하고 희석화될 개연성이 높아짐을 의미하였다. 또한 “전노대가 건설되면서 연대의 폭은 확대되었지만, 연대활동을 조직할 책임은 결국 지노협에게 떠맡겨져 지노협은 자신의 고유한 사업뿐만 아니라 지역공대위, 지노대 사업까지 수행해야 했다. 이에 따라 연대조직은 확대되었지만 연대활동의 수준은 낮아”졌다.8)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연대의 폭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연대의 폭이 넓어진 만큼 희석화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92년을 거치면서 업종회의 및 대공장 노조들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상승과정을 걷고 있었던 반면, 전노협의 조직력은 급격히 훼손되었던 상황은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전개를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이는 전노대 결성과 함께 전노협에서 전노대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구심의 변동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전노협 내부에서부터 ‘전노대 강화냐, 전노협 강화냐’를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되고 이것은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쟁의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은 전노대의 연대활동을 바탕으로 민주노총 건설로 나아가게 되는데, 위와 같은 과정을 보았을 때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점들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전노협의 조직적․정치적 훼손은 92년부터 이미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노협운동이 민주노조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정치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조직적․정치적 훼손을 극복하고 민주노조운동 전체 조직의 엄호를 받기 어려운 것이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물론 전노협은 조직강화사업을 끊임없이 설정하고 있었고, 그것을 여러 측면에서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과를 내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로, 전노협 건설 당시와 전노대 이전까지의 과정과는 달리 전노대를 구성할 때 노동운동 단체가 중앙 차원에서는 배제된 반면, 지방에서는 여전히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셋째로, 전노협과 달리 전노대는 대규모사업장 중심, 사무전문직업종회의노조들 중심, 조직의 골간은 합법적인 산별․업종별 연맹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자신을 ‘공동사업추진체’로 위치지우면서도 ‘참가조직의 상급단체가 아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은 무엇인가?

넷째로, 전노협 건설은 전노협 이전의 조발논쟁 과정상 ‘협의체론’으로의 수렴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문이 분명할 테지만, 왜 업종회의 산하 연맹조직들은 전노협 건설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또 ‘민주화된 대규모 사업장 노조들’이 끝까지 전노협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점들은 그 이후 현재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의 전개와 무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어떤 한계에 부닥쳐왔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왔는지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런 점들을 대중적이고 조직적으로 해명해나갈 때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발전이 열릴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기업별노조체계의 한계 때문이라거나 탄압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쉬울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짧게는 80년대 중반 이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와 길게는 해방 이후 전개되어온 한국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지난하게 투쟁해온 노동자계급에게 살아있는 교훈으로서 의미를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 수 있을 것이다. 직종별 혹은 규모별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전노협 운동에 대한,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대한 보다 총체적이고 면밀한 해석은 산별노조건설을 목표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더 없이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4)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논쟁의 배경과 쟁점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싼 조발논의는 전노협 건설을 둘러싼 논쟁 당시보다 오늘날 민주노조운동과 더욱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만큼 현실감이 더하는 측면이 있지만, 두 시기의 핵심적인 논점은 결국 민주노조운동의 ‘총단결체’를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내느냐에 있었고, 거기에서 최종 지향으로서의 산별노조건설을 내오기 위한 민주노조운동의 투쟁과제와 조직과제에 초점이 두어지는 면에서는 동일한 맥락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민주노총 건설을 둘러싸고 우선 전노협 내부에서 논쟁이 촉발되었다.


(1) 논쟁의 배경과 내용

전노대의 지역별조직으로서의 지노대는 지역조직을 골간으로 한 전노협의 책임영역이 되었는데, 전노대는 지역별 조직이 정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총련과 대노협의 참여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9) 있었고 업종회의 쪽에서는 병원노련과 전교조 등을 제외하고는 지역조직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거나 아예 지역조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지노대 사업은 대개 지노협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지역에 따라서는 지노협에 상당한 부하가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앞서 소개한 전노협의 전노대 결성 평가에 지적되어 있는 것처럼, 전노대는 ‘각자 상이한 조직틀과 경험에 의해 조직발전 전망의 차이점, 지역내 연대사업의 한계, 그룹조직의 제한적 참여라는 한계’를 가진 ‘공동사업추진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전노협이라고 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유일한 전국중앙조직’이 훼손될대로 훼손된 상태에서 전노협을 대체하는 힘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전노대는 공동사업추진체라는 자신의 조직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 총단결의 현실적 형태로 존재하면서 민주노조진영이 당면하였던 제반사업과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10) 전노대는 ‘참가조직의 상급단체는 아니다’라고 자신을 한정하였지만 사안별공투체가 아니라 ‘공동사업추진체’로서 실질적으로는 노동조합이 당면했던 각종 사안에 대해 대응을 하였으며 사업내용도 각 조직단위의 조직사업과 교육사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노대의 이름 하에 투쟁사업 등 민주노조진영의 전국적인 사업들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노협 내부에서는 ‘전노협 강화와 전노대 강화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촉발되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11) 첫째, 업종회의나 그룹별노조협의회들과는 달리 전노협은 전노대와 조직위상이나 조직목표가 대동소이하였고, 조직대상도 동일하였다. 이리하여 전노협은 한편으로는 전노협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노대를 강화한다고 정리하였으나 그 관계문제는 계속 논란거리가 되었다. 둘째, 전노대는 ‘공동사업추진체’이지만 ‘각 조직의 상급단체는 아닌’ 제한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전노협소속의 지역별 대표자, 그룹별 소속의 대표자, 업종회의 소속의 업종별 대표자 등 45인으로 구성된 대표자회의를 한달에 두 번 꼴로 소집하여 내려진 결정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는 수평적인 연대체로서 운영구조가 집중성을 갖기 어려웠다. 셋째, 전노대의 제반 사업과 투쟁에 비해 집행력이 매우 취약하였다. 전노대의 상근역량은 집행위원장과 간사 1인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노대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족한 상근역량을 전노협에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전노협과 전노대의 관계문제가 정리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하였기 때문에 전노협 강화와 전노대 강화의 관계문제가 정리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94년 1월에 있은 전노협 위원장 선거를 거치면서 논쟁점으로 떠올랐고,12) 곧 전노협1안13)과 전노협2안14)으로 성안되어 업종회의안15)과 함께 민주노총건설을 둘러싼 당시 논쟁의 내용을 구성하게 된다. 아래 <표>는 각 안들의 요약이다.

 

전노협 1안

전노협 2안

업종회의 안

건설 필요성

-대중적 요구 확대, 3조5호 등 노동법 개정가능성

-공동사업추진체의 조직적 한계극복 필요

-민주노조운동 조직강화와 사업영역확대 위한 조발필요

-시급한 당면과제, 대증적 요구

-복수노조금지조항 등 노동법 개정가능성, 지연되면 중간노조세력 대두로 분열 가능성

-정책적 과제, 자?민?통의 사회정치적 과제증가, 95년 이후 정치일정에 통일방침과 대응필요

-노?경총 합의,노총탈퇴운동 등 건설의 대중적 인식확산

-상급단체복수노조 허용 등 노동법 개정가능성

-95년이후 정치일정 공동대응

-민주노총 건설 늦으면 제3세력 결집가능성

건설 원칙

-전노대와 민노역량 총결집,기존조직 발전적 해소재편

-자주?민주적 노동운동의 역사 계승, 민노운동 실천 속에서의 요구와 과제 집약, 이념과 노선 구체화. 기업별노조체제 타파, 산별노조에 기초 전국중앙조직 건설 지향

-전노대로 결집한 민주노조진영 모태로 하되, 자주적 민주노조 지향의 모든 노조 주체적 참여 최대 보장

-기업별체제 타파 및 산별노조 이행과 전체 노조운동 재편 통한 통일 지향

-전노대와 중간노조, 노총소속까지 포함

-민주노총의 이념은 참여하려는 노조들이 대부분 합의 가능한 최소강령 수준


조직체계

- 산업(업종)별연맹 주축, 지역별,그룹별조직 보조축.     

- 업종(산업)별 연맹 주축, 지역협의회,그룹협의회를 횡축으로 건설

- 기본구성은 업종,산업별 조직이 되어야 하고 지역별, 그룹별 조직은 보조축

시기

임투통해 95년 상반기 건설

임투 전 95년 2월 건설

늦어도 4월 건설

자료:전노대정책반,「민주노총건설을 위한 제1차 조사연구 보고서」, 1994.6.14.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노총 건설의 필요성에 대하여 세 안 모두 대중적 요구의 확대와 함께 노동관계법상의 복수노조금지 조항이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점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들에서는 전노협 2안(이하 2안)과 업종회의안(이하 업종안)이 많은 면에서 동일한 견해보이면서 전노협 1안(이하 1안)과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그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민주노총 건설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2안과 업종안은 95년 이후의 정치일정에 대한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민주노총 건설이 더 이상 늦어지면 ‘민주노조운동’ 세력이 분열되는 한편으로 제3의 세력이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들어 시급함을 강조하였다. 반면 1안은 민주노조운동의 조직강화와 사업영역 확대를 위하여 조직발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이는 ‘전노대 강화냐, 전노협 강화냐’의 견해차이가 반영된 것으로서, 전자는 전노대 강화를 통한 민주노총 건설을, 후자는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 건설을 대변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은 1안이 전노대라고 하는 ‘공동사업추진체’가 정치적 위상강화에 따라 조직내외적으로 많은 사업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러한 요구를 수행하기에 지도집행력이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고 민주노조총단결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본 데서 알 수 있다.

둘째로, 2안과 업종안은 선거 등 정치일정에의 공동대응의 필요성, 제3세력 등장과 비노총계의 분열 등을 우려하면서 민주노총건설이 시급하다고 주장하였다. 2안은 사회보장, 토지-주택, 교육-의료, 환경-교통, 재벌-중소기업 등 ‘제도정책적 과제’와 반외세자주화, 반독점민주화, 조국통일투쟁 등 ‘사회정책적 과제’가 증가하고 있고 95년부터는 매년 선거가 있으므로 “제도정책적․사회정치적 과제에 제대로 부응하고 정치일정에 통일적인 방침을 가지고 대응하기 위해 늦어도 95년 초까지 민주노총 건설을 완료”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업종안에서는 전노대가 결성되어 1년여 동안의 활동 결과 한국노총에 대비되는 민주노조진영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면서 민주노조운동이 현재와 같은 느슨한 조직구조에 머물러 있을 경우 95년 이후의 정치일정들 속에서 민주노조 각 진영간 차이를 더욱 증폭시킬 우려가 있고 비노총 진영이 여러개의 세력으로 분립될 수 있으므로 민주노총을 추진하는 전노대의 행보가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셋째로, 2안과 업종안은 비록 어용노조였다고 하더라도 자주적 민주적 노조운동을 지향한다면 참여시켜야 한다고 본 반면, 1안은 전노대에 직간접적으로 포괄된 노조까지로 제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과 노선 및 이념들에 대한 다소간의 견해차를 반영하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그다지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자가 양적인 확대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면 후자는 민주노조운동과정에서의 실천을 강조한 데 차이가 있었다.

넷째로, 민주노총의 이념과 관련하여 업종안은 참가의사가 있는 노조들 대부분이 합의 가능한 최소강령 수준이어야 한다고 본 반면, 1안은 그간의 민주노조운동에서 정립된 요구와 과제를 중심으로 집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점도 그 이후 노조운동과 관련하여 갈등구조를 예고하는 지점이다.

다섯째로, 조직체계와 관련하여서는 1안과 업종안이 산업(업종)별 조직을 주축으로, 지역/그룹별 조직을 보조축으로 하여야 한다고 보았고, 2안은 지역/그룹 조직을 보조축이 아니라 횡축으로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다소 차이를 보였다. 1안에서는 제조업의 경우 산업별로 분류하여 금속, 섬유, 화학 등을 중심으로 산별조직화를 추동하고 산별연맹으로 묶기 어려운 경우 일반노조연맹으로 포괄하여 조직하면서 이후 산별연맹으로 조직한다고 하여 대산별연맹으로의 조직화를 목표하였고 따라서 산업별 연맹들 내부에 업종별협의회 및 지역조직을 구성하는 안을 냈고, 지역별협의회에 대해서는, 산별연맹 건설과 하머께 전국적으로 구성하되 산업이나 업종을 불문하고 해당 지역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들을 포괄할 것을 제안하였다. 반면 업종안에서는 업종,산업 조직이 의무금과 대의원 배정 등의 기초단위이기 때문에 기본축이라고 하고, 그때의 지역조직의 위상과 역할은 “지역내 노조간 연대활동 및 환경문제, 지자제 선거 등 공통의 생활근거지에서의 일상적 연대활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또 87년 이후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역조직의 다양한 범위는 15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안은 업종안과 비슷하지만, 지역협의회와 관련하여 “전체 노조들이 업종 및 산업별 연맹으로 분화되기 전에는 과도적으로 대의원, 중앙위원을 배정하고 거기에 준하는 의무금 납부 의무를 지도록 하는 한편 각 지역협의회 의장은 중앙집횅위원회에 결합한다는 안을 제출하였다.

마지막으로, 각 안에서는 민주노총 건설시점을 늦어도 95년 상반기까지 건설해야 한다고 잡고 있었다.


(2) 논쟁점과 수렴

위와 같은 각 안들에는 다음과 같은 논점들이 들어 있다.

첫째로, 새로이 건설되는 ‘민주노총’의 이념과 노선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1안은 전노협의 투쟁과 사업에 준하여 그 상을 그리고 있었던 반면, 2안은 ‘제도정책적’ ‘사회정치적’ 과제들을 중시하고 있었고, 업종안은 ‘참여하려는 노조들이 대부분 합의가능한 최소강령 수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와 지향을 실현하고 사회 속에서 노동자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운동의 방향, 노선이 뚜렷해야 한다’면서 ‘노선은 민주적 자주적 노동운동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고 하였다. 1안에서조차도 이미 전노협이 표방하고 있었던 ‘노동해방, 평등세상’이라는 구호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참여하려는 노조들이 대부분 합의가능한 최소강령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업종회의 안은, 조직대상을 전노대 소속노조보다도 더 확대하여 설정함으로써 거의 한국노총과 차별성을 찾기 어려울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다.

둘째로, 첫 번째와 관련되어 있고 또 앞에서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87년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이 자랑으로 여겨왔던 ‘자주성, 민주성’의 내용, 그 실체로서의 전노협이 담보하고 있었던 내용은 전노대 결성 시점에서 ‘참가조직의 상급단체가 아니다’라고 하는 민주노조운동내의 갈등구조의 표출 속에서 이미 크게 훼손되어 있었고, 94년 시점에서는 전노협의 조직규모가 창립당시에 비해 1/4로 축소된 가운데 양적 측면에 의해 대체되어버렸다. 이와 관련하여 그 훼손의 정도는 전노협 선거 과정에서 한 후보가 “온갖 탄압에도 천만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며 지켜왔던 평등사회를 앞당긴다고 하는 그 정신과 이념이 국내외 정세의 변화와 우리 내부의 문제로 인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겨우 5만에 불과한 전노협으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상황이 어려울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원칙과 투쟁정신 바로 그것입니다. 전술의 유연함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속에서 더해야 하는 것입니다”16)라고 말할 만큼 전노협 내외를 막론하고 심한 측면이 있었다.

셋째로, 그렇다면 민주노총 건설 시점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실체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조직양적으로 다수를 점하게 된 업종회의 및 대공장노조들의 운동이 전노협의 운동에 대신하고 그 흐름이 전노협 운동을 압도하고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주류로 등장한 것은 적어도 전노대 이후부터 하나의 현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업종안에서는 ‘업종회의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노조의 사회민주화투쟁을 발전시켰다(언론민주화, 참교육, 의료민주화 등). (나)사무전문직 노조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해왔다. (다)전노협과 ILO공대위 결성, 전노대 참가 등으로 민주노조 총단결에 열심히 참여해왔다. (라)산별연맹이나 협의회의 조직구조를 가짐으로써 지역이나 그룹별 협의회로 구성된 조직보다는 진일보한 조직형태를 취하고 있다. (마)최근 중앙위를 개최하여 대중적 의결구조를 두고 조직강화를 결의하였다.

넷째로, 전노협이 당초 설정하였던, 그리고 투쟁으로 사수하면서 지켜내오고 있던 ‘천만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여 평등사회를 앞당긴다고 하는 그 정신과 이념’을 바탕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투쟁적․정치적 구심’으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실질적 지도력으로 강화될 조건은 무엇이었는가?

다섯째로, 2안과 업종안에서 민주노총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 ‘더 이상 민주노총 건설이 늦어져서는 안된다’고 했을 때, ‘중간노조 등’ 제3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 혹은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분열’ 가능성 등을 우려하였는데, 그 맥락이 정작 1안에서는 등장하고 있지 않았던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섯째로, 전노협운동의 정치적․조직적 훼손과 업종회의 및 대규모 사업장의 위상이 높아지는 과정이 반비례관계를 유지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이 겪은 가장 큰 상처이자 한국노동운동이 풀어야 할 정치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는 점이 반드시 짚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민주노총 건설 과정에서 전노협, 업종회의, 그룹노조협의회 등의 상호관계 속에서의 견해차이와 그 틈을 비집고 ‘노조운동 위기’ 등등을 주제로 하여 온갖 ‘새로운’ 개량주의적 처방이 난무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작용하여 노동운동의 혼동과 동요를 심화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또한 전노협 내부의 견해 차이를 다각화시켰고, 그 중 하나가 ‘전노협 강화냐, 전노대 강화냐’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이른바 ‘사회개혁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며, 전노협의 투쟁성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임단투를 ‘협소한 경제투쟁’ 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세력을 얻어가게 되었고, ‘연대투쟁’이 힘을 잃어가면서 중소영세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중심에서 점차 배제되어갔다. ‘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공장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차이와 이유들에 의해서 분할되고 쪼개지고 개별화되어갔다. 이런 현실을 가장 반가워할 자들은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그렇지만 위와 같이 진행된 현실 때문이야말로 전노협과 그 정신은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 짚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딛고, 95년 11월 ‘드디어’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 ‘민주노조 총단결’이라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말 자체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96년이 있었고, 97년이 있었고, 98년이 있었다.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은 이념과 노선의 불투명함과 부재함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대중적 투쟁이 이념과 노선의 빈곤을 가까스로 채워내고 있다. 96년에 노개위의 사기와 기만을 완연히 폭로해내면서 그 겨울 연말연초에 노동자계급이 총파업투쟁을 벌였던 것은 노동자 가슴속에 ‘전노협의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던가?

오늘날 노동운동의 대 과제로 제시되어 있는 것은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건설’로 집약되어 제기되어 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과제들은 또 어떤 과정에 직면하게 될 것인가?



6.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80년대 중반부터의 ‘민주노조운동’을 오늘날의 ‘민주노조운동’에게 제기되어 있는 ‘산별노조건설운동’이라고 하는 조직과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총체적인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노동자계급의 피어린 투쟁의 과정이 정당하게 살아나기를 소망하였지만 너무나 부족하고 부분적이라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앞으로 노동자계급의 삶과 투쟁에서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채워나가야 할 과제들로 삼아 매진하고자 한다.(1999.5.29) 

한/노/정/연


1) 그것은 앞절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은 교란요인들, 수많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데올로기와 논의들을 어떻게 해소하고 가닥을 잡아나갈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 점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참으로 자세하고도 꼼꼼하게 연구되어야만 할 부분이지만, 여기에서는 조직발전과 관련된 점에 국한하여 다룬다.


2) “…… 대공장노조들도 ‘연대회의’의 결성을 전노협 가입의 징검다리로 상정한 면이 강했다. 그러나 실제로 연대회의의 구성과정은 전노협의 가입보다는 독자적인 행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 전노협과 대공장노조를 대등한 독립주체로 바라보는 시각은 연대회의 해체 이후에도 계속되어 이후 전노협과 대그룹노조간의 문제로 전환된다. ……”(「전노협 6년의 활동평가와 역사적 의의」, 한국산업노동학회․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공동토론회, 1995.12.16., p.13.)


3) 그 원심력 증대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이 점을 해명하는 것은 80년대 이래의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정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나가는 데서 필수적인 과제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룰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이를테면 ‘기업별노조주의 때문’이라거나, 혹은 창립 원년부터 전노협에 퍼부어진 권력과 자본의 탄압이 실질적으로 민주노조운동‘진영’ 전체를 전노협에 포괄될 수 없도록 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4) ‘합의문’에서는 그 명칭을 ‘전노대’로 하고, 그 성격을 (가) 전노대는 공동사업추진체이다 (나) 전노대는 각 조직의 상급 연합조직이 아니다 (다) 전노대 재정은 의무금 형태가 아닌 사업별 분담금으로 충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전노협백서 05, p.132.)


5) 전노대는 그 결성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본 대표자회의는 그동안 민주노조 총단결투쟁의 성과를 계승하여 노동자들의 생존권 수호와 노동법 개정, 고용안정 등 노동조합운동의 당면 제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해 나가기 위하여 모든 민주노조진영이 결집한 공동사업추진체이며, 이러한 사업의 성과를 축적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지평을 확대하고 민주노조 총단결의 조직발전 전망을 열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전노협백서 05, p.129.)


6) 전노협백서 05, p.20.


7) 전노협 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93년도 조직사업의 목표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 상세하게 작성되었지만 실제 사업은 부분적으로 진행되었다. 전노협의 조직사업이 부분적으로밖에 진행되지 못한 것은 조직사업 담당자들의 수가 부족한 것이 일차적인 이유였다. 안정된 조직지도 역량 없이 때로는 2명, 때로는 3명 정도가 수도권, 중부․호남권, 영남권, 미가입 사업장, 업종분과 사업 등 사업목표 일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전노협 백서 05, p.19.)


8) 「전노협 6년의 활동평가와 역사적 의의」, 상동, p.14.


9) 전노협백서 05, p.143.


10) 전노협백서 05, p.143.


11) 이에 대해서는 전노협백서 05, p.144 참조.


12) 전노협 위원장 선거에서 기호1번으로 출마했던 김영대 후보는 ‘제조업․비제조업 업종연맹 건설, 지노협 중심으로 지역연대틀 확대조직, 전노대 강화를 통한 민주노총 건설’을, 기호2번 이흥석 후보는 ‘업종별 공동사업 경험 축적, 산업별노조 건설운동’을, 기호3번 양규헌 후보는 ‘전노대의 정치적 대응력 강화 - 전노대 사업 뒷받침, 집행력 보강, 지노협 강화, 업종분화사업 촉진’을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전노협백서 05, p.233-241.)


13) 문성현 전노협 사무총장 제출. 1994.5.19.


14) 김영대 전노협 수석부위원장 제출. 1994.5.13.


15) 업종회의 중앙위원회에서 채택된 공식토론자료. 1994.7.


16) “기호3번 양규헌 후보 유세”, 전노협백서 05, p.238.


1999-06-0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6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