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번․역
신자유주의와 개발도상국의 경제
-금융위기와 세계적 연쇄-
다카가케 유지 (高懸雄治)
札幌學院大學 敎授
.
이 글은 일본의 월간 경제 전문 평론지 ꡔ經濟ꡕ
1999년 5월호(新日本出版社)의 특집 “新自由主義批判”의 여섯
번째 논문 “新自由主義と途上國經濟-金融危機の世界的連鎖-"를
번역한 것이다.
현시기의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적 금융 및 자본의 자유화의
귀결로서 고찰하는데, 특히 현재의 위기가 80년대 중남미의
외채위기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를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다만,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우선, 금융위기를 그 자체로서만 논하고, 그것이 어떻게
전반적인 과잉생산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가를 밝히고 있지
못한 점,
따라서 (금융)위기를 중남미, 아시아, 러시아 등
‘개발도상국가들’에만 한정해서 보면서 위기의, 미국 및
서유럽 국가 등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확산을 전망하고 있지 못한
점.
특히, “오늘날 ‘시장인가, 국가인가’하고 묻는다면,
‘시장도, 국가도’이다. ‘사회적 자본주의’로서의
‘혼합경제’의 복권(재검토와 재평가)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개발’로부터 ‘인간개발(발전)’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극히 관념적인 결론으로
글을 끝맺고 있는 점 등등.
글머리에
오늘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세계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되어 있다. 실로 “하나의 요괴가 전 세계에
출몰하고 있다 ꠏꠏ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요괴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 이데올로기적 지주는
신고전파 경제학이지만, 최근 그 ‘신화’적인 교리는 무서운
기세로 시류화(時流化)되었다. 이 “평범한 … 비논리적인” G.
Soros, The Crisis of Global Capitalism, Public Affairs,
1998, pp. 127-128. G. ソロス, 大原進譯
ꡔグロ-バル資本主義の危機ꡕ 日本經濟新聞社,
1999年, p. 199.
원리가 지금 왜 아주 쉽게 전 세계를 지배하고 정책상의 주류로
되었는가?
“신고전파의 복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의 원리는
단적으로 말하면 시장경제와 개방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일반적으로
자유화․민영화․규제완화화(規制緩和化)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귀결은, 경제의 시장화
ꠏꠏꋼ 세계화 ꠏꠏꋼ
카지노(casino)화였다. 상징적이고도 전형적인 예는 광란화한
금융위기이고, 그 세계적인 연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연쇄적인 위기’의 근원을 개발도상국의
경제, 특히 금융과의 관련에서 찾음으로써 이 신자유주의라는
‘신화’에 의한 “시장원리의 독재” V. フォレステル,
堀內ゆかり․岩澤雅利譯 ꡔ經濟の恐怖ꡕ
丸山學藝圖書, 1998年, p. 201.
의 정체를 명백히 하고자 한다.
1.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연쇄
(1) 세계 금융위기 -1990년대-
1990년대는 세계 금융위기의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는
과거 50년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기”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발언 (98년 10월 2일), ꡔ朝日新聞ꡕ
(夕刊) 1998年 10月 3日.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이 20세기 말 세계 금융위기의 양상을 간단히
돌아보기로 하자. 우선 금년 초에 발생한 브라질 위기의 사정을
말하고, 다음에 90년대 초로 돌아가기로 하자.
<브라질 위기> 99년 초,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국가인 브라질에서
마침내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작년 여름 러시아 위기이래
브라질로의 파급이 가장 두려워하던 바였다. 99년 1월 13일
브라질 중앙은행은 레알(Real)화의 실질 8% 절하를 결정했다.
그후 15일에 사실상의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18일에는 달러
연동으로부터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대량의 레알 투매, 달러 유출은 ‘레알 플랜’(경제재생계획)의
붕괴를 의미했다.
브라질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인플레이션에 시달려 왔는데,
94년에 ‘1달러 = 1레알’로 레알의 가치를 고정함으로써
물가안정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때의 고금리 정책에 의한
외자도입은 그후 레알 고(高), 쌍둥이(무역․재정) 적자를
확대해 갔다. 여기에서 문제는 대외채무의 중압이다. 이 나라의
대외채무 잔고는 98년 현재 2,225억 달러로, 99년에는 약 100억
달러가 변제기한이 된다고 한다. “대외채무와 관련한 이자지불
압력에서 오는 외화자금 현금흐름의 중압을 경시해서는 안되는”
田口奉童 「ブラジル危機の正しい處方箋」
ꡔ國際金融ꡕ 1999年 2月 15日号, p. 20.
것이다.
또한 브라질 중앙은행의 신임 총재로 G. 소로스의 헷지펀드
고문이었던 A. 프라거가 기용되었다.
<유럽 위기> 1992년 9월에 통화위기가 발생하여 영국의 파운드,
이탈리아의 리라가 ERM(유럽환율기구)에서 이탈하였다. 당시
EC(유럽공동체) 가맹국은 ERM에 의한 고정환율제*(역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EC 각국의 통화는 모두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다만 역내(域內) 통화 가치의 수렴을 위해서 ERM
속에서 가맹국 통화간의 환율변동폭을 상하 1.15%로 제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역내 통화간에는 상호 고정환율을 유지하면서
달러나 엔화 등등 기타의 대외 통화에 대해서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가맹국 통화의 이중성(강약)을 안고
있었다. 이 두 통화(파운드 및 리라)는 독일 통일 후의 고금리
정책 등 때문에 투기적인 매도 압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
스페인의 페세타, 포르투갈의 에스쿠도, 아일랜드의 파운드 등
약세 통화 및 EC 주변국이었던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통화가 투기의 대상으로 되어, 평가절하, 고금리, 자본관리 등의
정책적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다음 해인 93년 7월에 다시 유럽통화가 혼란에 빠졌다. 덴마크의
크로네, 프랑스의 프랑이 투기의 대상으로 되어 급락하고, 그후
ERM은 사실상의 변동환율제로 이행한다.*(역주 보다
정확하게는, 역내 통화간의 환율변동폭에 대한 제한을 사실상
없애고, ERM은 사실상 붕괴된다.
또한, 이 당시 이미 헷지펀드에 의한 투기가 화제로 되었다.
<멕시코 위기> 94년 12월에 멕시코 정부는 대(對) 달러 환율을
15.3% 절하한다고 발표했는데, ‘페소 매도, 달러 매입’의
압력이 수습되지 않아, 이틀 후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페소는
폭락 상태로 되었다.
90년대 초 멕시코는 신자유주의의 우등생이었다. 살리나스
대통령 시대의 정책은 ‘사회자유주의’라고 일컬어지고, 그
경제개혁은 ‘살리나스 혁명’이라고 칭송되었다.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노선에 의한 성장 지향에, 연간 300억
달러의 외자가 쇄도했던 것이다. 그러한 절정기에 페소가
폭락하였다. 그 요인으로서는 ①페소의 과대평가, ②경상수지의
대폭적자, ③미국의 고금리화, ④증권투자의 급격한 유출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위기는 나아가 은행 등 금융기관의
불량채권화와 경영파탄, 정부에 의한 구제를 초래한다.
그후, 이 ‘데킬라 쇼크’는 남미, 아시아, 유럽의 각국으로
파급되었는데(일본은 95년 4월에 ‘1달러 = 79.75엔’이라는
초엔고<超円高>로), 멕시코 위기 자체는 1년 전후에 일단
회복되었다. 그러나 의연히 팽대한 대외채무 혹은 불량채권처리
등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 소강상태에 있는 데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高懸雄治
「メキシコ金融危機について」
ꡔ札幌學院商經論集ꡕ 第13卷 第3号, 1997年,
참조. 또한 ‘사회자유주의’에 관해서는, 高懸雄治
ꡔドル體制とNAFTAꡕ 靑木書店, 第7章, 1995年,
참조.
<아시아 위기> 97년 7월에 태국의 바트가 달러 연동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8월에는 인도네시아의 루피아도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였다. 이 태국 바트의 매도 압력과 그
감가는 다시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금융위기로 몰아넣어
갔다.
그때까지 10년 동안 아시아의 경제는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의
투자확대로 수출 주도의 급성장을 계속해 왔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제 팽창은 눈부셔서 “세계적인 성장 센터”라고 불리고,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상찬되고도 있었다.
태국의 경우 90년대 초부터 금융(금리, 외국환 거래 등)의
자유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동시에 외자(단기)의
유입과 경상수지의 악화를 수반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국의
공통점은 경상수지의 적자, 대외채무(증권투자와 은행융자)의
누적, 단기자금의 도입, 국내의 고금리, 달러와의 환율의
고정(dollar peg) 등이었다.
<러시아 위기> 98년 8월에 러시아 정부는 루블의 실질적 대폭
절하(약 50%)와 민간대외채무의 지불연기(90일 간)를
발표하였다.
옛 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는 경제의 급격한 시장화와
글로벌화(세계화)를 추진하였다. 97년 러시아에 대량의 외국
단기자본이 유입되었다. 그리하여 재정적자의 54%가 외자에
의해서 보충되었다고 한다. 이 재정적자의 보충을 국채 발행과
대외차입으로 전환했던 것이 95년. 그후 외자의 규제완화화도
있고 해서 미국의 헷지펀드 등이 고금리의 국채투자에 쇄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97년 10월말의 홍콩 주 폭락 후 러시아로부터 외자유출이
시작되었다. 98년 5월에는 루블 방어의 비상조치로서
공정이자율을 150%로 인상하고, IMF의 긴급융자 자금을
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외자유출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국채 발행과 대외차입이라는 “단기국채피라미드의
붕괴” ロイ․メドプェ-ジェフ,
海野幸男․渡辺寬美譯
ꡔロシア危機․一九九八夏ꡕ 現代思潮社,
1999年, pp. 12, 36, 40 등.
를 의미했다.
(2) 은행위기의 심각화와 대응
이미 말한 것처럼 90년대는 금융위기의 10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럽 ꠏꠏꋼ 멕시코
ꠏꠏꋼ 아시아 ꠏꠏꋼ
러시아 ꠏꠏꋼ 브라질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를 망라한 금융위기의 세계적인 전개이고,
더욱이 단기간에 걸친 연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80년대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예컨대 IMF는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즉, 1980년이래 15년
동안(1996년 봄까지)에 181개 IMF 가맹국 가운데 133개국이
중대한 은행문제를 경험하고 있어, 그 비율은 가맹국 전체의
73.5%에나 이른다. 나아가, 그 가운데 36개국(41개 경우)에서는
은행위기(표 1)를, 108개 경우에는 중대한 은행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또한 IMF가 말하는 ‘은행위기’란,
①예금인출소동 또는 기타의 중대한 자산이동, ②금융기관의
파탄, ③대대적인 정부개입을 가리키는데, 이 36개국의 거의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이다. C. J. Lindgren, G. Garcia, M. I.
Saal, Bank Soundness and Macroeconomic Policy, IMF, 1996, p.
20.
이러한 심각한 은행위기는 그것에 대응하는 조치를
필연화하는데, 그것은 또한 국민경제의 중압으로도 된다. 예를
들면, (자료 입수가 가능했던 23개국에 대한) 세계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은행의 지불불능화로 정부가 부담한 직접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에 달했다고 한다. 나아가 또, 그
비용의 절대액에서는 선진국 쪽이 커서, 예컨대 80년대 미국의
S&L(저축대부조합) 위기 시에는 비용이 1,800억 달러나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액의 크기에서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우위를 점해 버린다. 80년대 초기 아르헨티나,
칠레에서는 각각 GDP의 50%와 40%를 넘는 크기였다 世界銀行,
OECF開發問題硏究所譯 ꡔ世界開發報告․1997ꡕ
東洋經濟新報社, 1997年, p. 107.
그런데 금융위기에 대한 개발도상국 측의 대응으로서는 멕시코의
예가 참고가 될 것이다. 94년 말에 발생한 멕시코의 페소
위기는, 한편에서는 민간은행의 경영불안․파탄과
연동되었는데, (그 원인은: 역자) 국내의 낮은 저축률과 높은
금리 때문에 민간은행의 자금조달이 대외차입에 의존하고 있어
그 변제가 중압으로 되어 있었던 점,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에서의 과대한 융자와 고금리 때문에 은행대부의 다수가
불량채권화(95년 16.4%, 97년 29.8%)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당시 민간부문에 대한 은행신용은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금융의 자유화, 국영기업의 민영화, 그리고
소비 붐의 상승효과가 신용팽창에 박차를 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경제동향의 반전이 불러일으킨 반동 역시 극도로
컸다.
그리하여 95년이래 아래와 같은 금융지원조치가 실시되어 왔다.
그것을 항목별로 보면, ①규제틀의 개선, ②잠정적 자본화
계획(PROCAPTE), ③달러 유동성 융자, ④영속적 자본화 조치,
⑤은행예금 보호기금(FOBAPROA), ⑥투자단위(UDIs)에 의한 신용
재구축, ⑦은행채무자 즉시지원 합의이다. 이상의 조치들은
은행구제(①~⑤)와 채무자 구제(⑥~⑦)로서의 대응인데,
은행구제에는 막대한 재정비용이 요구되고, 그 부정적인 유용이
야당에 의해서 추궁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때까지 정부의 개입을 받은 은행은 13개로, 그후 캐나다,
스페인 등의 외국자본에 매각되었다. 그리하여 “90년대 초에
민영화된 멕시코 상업은행은 약 6년만에 실질적으로 국가와
외국자본의 통제하에 들어가 버렸다.” 田口奉童
「メキシコ金融システム救濟に學ぶ」
ꡔ國際金融ꡕ 1998年 11月 1日号, p. 36.
그런데, 지금까지 언급해온 세계적인 금융위기에는 몇몇
특징적인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예컨대
①금융․자본(시장)의 급속한 자유화, ②거액의, 그리고
급격한 외자(단자)의 유출입, ③헷지펀드의 암약,
④경상(무역)․재정수지의 악화․적자, ⑤대외채무의
증대, ⑥고정환율제로부터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⑦통화위기로부터 금융위기 그리고 경제위기,
⑧정치정세․사회 불안 등일 것이다.
90년대 금융위기의 경우, 각국의 특수성보다도 이러한
공통․유사성이야말로 중시해야 할 것이 아닐까? 바로 그
점 때문에 금융위기의 세계적 연쇄가 필연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왜 연쇄인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정책, 그리고
바로 그 세계적 전개에 이 문제해결의 근원이 있을 것이다.
2. ‘월스트리트-재무성 복합체’와 ‘워싱턴 컨센서스’
전략
(1) J. 바그와티의 ‘자본의 신화’ 비판
작년 봄에 발표된 이래 학회 등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논문이
있다. 재그디쉬 바그와티(Jagdish Bhagwati,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의 「자본의 신화」가 그것이다.
그 논문의 ‘월스트리트-재무성 복합체(Wall Street-Treasury
Complex)’라는 규정에 의한 ‘자본이동의 신화’ 비판이 커다란
관심과 찬동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서 그 대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Jagdish Bhagwati, The Capital Myth, Foreign
Affairs, May/June 1998, pp. 7-12. J. バグワテイ, 浜崎冬日譯
「資本の神話」 ꡔ週刊ダイヤモンドꡕ
1998年 5月 23日号, pp. 104-109. 여기에서의 인용은 이
일본어 번역에 의한다. 또한, 伊東光晴은 이 바그와티의 주자에
주목하면서 ‘워싱턴 컨센서스’에도 언급하고 있다. 伊東光晴
ꡔ「經濟政策」はこれでよいかꡕ
岩波書店, 第2章, 1999年.
① 아시아의 금융위기 후인 오늘날도 역시 세계는 하나의 유력한
신화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 그것은 “자본이동이 완전히
자유화된 사회는 앞으로도 필요하고 한없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동의 자유화에 의한
이점(利點)이라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
② 근래의 멕시코 및 아시아의 위기는 대외적인 단기자금의
과잉유입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본이동에 의한 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③ IMF는 위기 발생국에 금리인상 등의 내정간섭적 정책을
강요하고 있고, “이들 나라들은 자기 나라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경제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독립성까지 상실하고
있다.”
④ “자본이동의 자유화에 의한 경제효율이라는 이점은
리스크프리(위기 가능성 없다)는 가공의 세계의 산물”이고,
자유화론자 자신들조차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이점의 규모도
추측하지 못하고, 게다가 결과로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의한
손실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
⑤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주장하는 무리들은 사실은 자유무역과
그 이점에 관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단지 편승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국제시장에서 하루에 십 수 조 달러나 자금이
움직이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이 생기고, 덕(德)을 보상하고
낭비를 벌하는 새로운 세계를 환영하자며, 교묘한 언사로 우리를
속여온 것이다.”
⑥ 그러면, 세계는 왜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그
이데올로기란 명백히 시장의 논리이다. …시장의 자유에
맡긴다고 하는 움직임은 바야흐로 모든 부문․국가에
미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본이동의 자유화에 의해서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커다란 이익을 보는 것은 확실하다.”
⑦ 미국 금융계에는 강대한 커넥션이 있다. 그것은
“월스트리트, 재무성, 국무성, IMF, 그리고 세계은행과 같은
강력한 기관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네트워크이다.
⑧ “루빈 재무장관은 월스트리트 출신이고, 아트먼은
월스트리트에서 재무성을 거쳐 다시 금융계로 돌아갔다. 부시
정권 때의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스 브레디도 그후 금융계로
복귀하였다. 어니스트 스턴 세계은행 전 총재는 현재 JP모건의
이사이고, 세계은행의 현 총재인 제임스 울펜손도 투자은행
출신이다. 이 외에도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⑨ 이 강대한 네트워크, 결국 ‘월스트리트-재무성
복합체’로부터는 “미국 금융기관의 이해 이상의 것은 전망할
수 없다. 아무튼 그들은 미국 금융계의 이익이 곧 세계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⑩ 바야흐로 자본이동의 자유에 의한 위험성은 명백하다.
‘이기적인 전제(前提)’에 기초한 자유화론에 대해서, “사실을
존중하고 논리의 힘에 의거한다면, 취해야 할 방향은 정반대,
결국 자본의 흐름에 규제를 가하는 방향이다.”
이상이 바그와티 논문의 대강이다.
지금 이 ‘자본의 신화’ 비판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신자유주의 = 신고전파
경제학의 교리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둘째로, 따라서 오늘날
유일한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셋째로, 그것은 동시에 IMF․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에
대한 비판이다.
‘월스트리트-재무성 복합체’란, 이러한 미국 금융자본에 의한
국제적 수탈의 현대적 구조를 총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복합체’는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월스트리트-재무성-IMF
복합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IMF․세계은행, 그리고 이 미국 금융자본, 미국 정부, 국제
금융기관의 일체화야말로 오늘날 세계(global) 자본주의 혹은
세계(global) 금융시스템의 추진적 중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바그와티의 비판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명해 주었는데,
동시에 오늘날의 금융위기의 세계적 연쇄에 의해서 그 비판의
타당성이 현실적으로도 실증되었다.
(2) J. 윌리엄슨의 ‘워싱턴 컨센서스’
그런데 바그와티가 그 논문 「자본의 신화」를 통해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월스트리트와 재무성(및 IMF)의 일체화란 이미
‘워싱턴 컨센서스’로서 알려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개발도상국, 특히 라틴아메리카 전략으로서의 이 ‘컨센서스’에
관해서 언급해두자.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워싱턴’이란 백악관(미국 정부)과 각
관청, IMF, 세계은행, IDB(미주개발은행), IIE(국제경제연구소)
등의 씽크탱크, 투자은행가, 세계 각국의 재무상 등, 이 지역에
모이는 각종의 기관과 요인, 그리고 그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본을 이룬 것은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 당시 IIE)의 제안으로서, 그것은
아래의 10개 항목에 걸친 경제전략이었다.
◆ ‘워싱턴 컨센서스’ (1989년)
① <재정 규율> 재정적자는 조세 증대에 의존하지 않는 범위의
액수에 머물러야 한다. 이 크기는 통상 국내총생산(GDP)의 수
퍼센트의 기초수지의 흑자를 의미한다.
② <공공지출의 우선사항> 지출은 정치적으로 영향받기 쉬운
영역보다도 경제적 고수익과 고소득 배분의 가능성을 가지면서도
지금까지 경시되어온 분야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③ <세제개혁> 세제개혁은 과세대상의 확대와 누진세율의 경감을
포함한다. 그 목적은 인센티브를 활발하게 하고 공평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④ <금융의 자유화> 금융자유화의 최종 목적은 시장으로 하여금
금리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신용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적절한 목적은 특권적인
차입자에 대한 우대금리를 폐지하는 것과 적절하게 통제적인
실질금리를 달성하는 것이다.
⑤ <환율> 각국은 비전통적 수출품을 급속히 증대시키는 데
필요한 조건을 정비하고, 이 경쟁이 장래에도 유지될 것임을
수출자에게 보증하기 위해서 단일 환율이 필요하다.
⑥ <무역의 자유화> 무역의 양적 제한은 가능한 한 빨리 관세로
대체되어야 하고, 그것은 10~20%의 낮은 통일관세를 달성할
때까지 점차 인하해야 할 것이다.
⑦ <외국 집적투자> 외국 기업의 진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폐지해야 할 것이고, 외국 및 국내 기업은 동일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⑧ <민영화> 국영기업은 민영화해야 한다.
⑨ <규제완화화> 정부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방해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⑩ <재산권> 법제도는 과중한 부담을 강요하는 일 없이 재산권의
안전을 규정해야 할 것이고, 이러한 권리를 비공식 부문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컨센서스’는 윌리엄슨 자신에 의해서 다음과 같은
최신판(The New Agenda)으로 다시 제출되었다.
◆ ‘신워싱턴 컨센서스’ (1996년)
① 재정규율의 유지에 의한 저축의 증대.
② 공공지출을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사회적 지출로 전환.
③ 환경을 배려한 토지세의 도입에 의한 세제개혁.
④ 은행감독의 강화.
⑤ 환율을 변동 및 명목 고리(anchor)로서도 이용할 수 있는
경쟁적 환율의 유지.
⑥ 지역내 무역자유화의 추진.
⑦ 민영화와 규제완화화에 의한 경쟁적 시장경제의 확립
(노동시장을 포함한다).
⑧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명확한 재산권의 제정.
⑨ 독립적인 중앙은행, 강력한 예산편성 부문, 청렴하고
독립적인 사법제도, 생산성 활동을 후원하는 정부기관 등,
중요한 기관의 설립.
⑩ 교육적 지출의 증대와 초등․중등교육의 재중시.
이상이 그 구판과 최신판의 대강인데, John Williamson, The
Washington Consensus Revisited, L. Emmerij (ed.),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 into the XXI Century, IDB, 1997, pp.
60-61.
후자에서는 기관설립, 교육개선, 은행감독 등 다소의
추가․개정이 있지만, 양자 모두 기본적으로는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화에 역점을 둔 시장․경쟁원리로
통일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야말로 실로 워싱턴에 의한
‘신자유주의전략선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워싱턴 컨센서스'
전략에 대해서는 이미 폴 크루그만(MIT 교수)의 비판이 있다.
그는 이 컨센서스가 ‘허구’이며 ‘실패’했다고 단정하고
있다. 이하의 인용은 P. クルーグマン、北村行伸編譯
ꡔ資本主義經濟の幻想ꡕ ダイヤモンド社, 第6章,
1998年에 의한다. 이 논문의 발표시기는 1995년이다.
우선, “자유무역이나 시장경제로 이행하면 발전도상국의 성장이
극적으로 가속화된다는, 널리 믿고 있는 이념은 확고한 증거에
의해서 뒷받침된 결론이라기보다 오히려 신념의 비약에서 생긴
것”이고, “단순한 소망에 불과하다.” 또한 ‘컨센서스’가
말하는, ‘건전한 통화’를 중시하는 것은 한층 더 그 근거가
박약하다. 예를 들면, 개발도상국에서 인플레이션을 종식하는
방책으로서의 고정환율제가 채택되는 경우 커다란 비용을
수반한다. 결국, 환율의 과대평가라고 하는
반대급부(trade-off)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컨센서스’의 성장신화에 의해서 선도된 발전도상국에의 투자는
90년대 전반(前半)의 ‘열광적 투기 거품’을 형성했다.
그런데 94년의 멕시코 위기에 의해서 이 ‘컨센서스’에 의한
정책은 파탄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고 있다.
“1990년부터 95년까지 발전도상국에 관한 장밋빛 꿈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던 만큼, 멕시코의 위기를 계기로 하여, 역전의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1990년대의 남은 5년간은 비대화된
기대가 졸아들어 가는 시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유시장과
건전한 통화의 유지를 중시하는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들은
반드시 강력한 성공을 달성한다는 인식 하에서 시장은 거액의
자금을 투입해 왔지만, 그것이 재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후의 사태는 크루그만의 이 예언자적인 지적대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과 포트폴리오(portfolio)
투자
(1) 이머징마켓화 대외채무문제의 재연
이머징마켓이란 90년대에 들어와 일반화된 용어이다. 그것은
신흥시장 혹은 신흥성장시장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지역적으로는 주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중동 등을
상정하고 있고, 이전의 NICs(신흥공업국) 혹은
NIEs(신흥공업경제지역)와 중첩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는 이 시장이 생산․소비시장임과 동시에
금융․자본시장으로서 기대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이머징마켓의 등장과 형성에는 80년대
개발도상국에서의 대외채무위기의 발생과 그 귀결이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82년 8월의 멕시코 대외채무위기의 발생, 결국 채무의 지불
불능화는 그후 ‘잃어버린 10년’이라고도 불린, 개발도상국
경제의 고난과 혼란의 출발점이었다. 이 당시, 70년대의
대(對)개발도상국 금융은 선진국의 민간은행 융자가 그 대종을
이루고, 그 주요형태는 신디케이트론(syndicate loan,
연합융자)이었다.
70년대의 세계경제는 남북간에 상반된 것이었다. 선진국은
IMF체제의 붕괴*(역주 ‘금 1온스 = US$35.-’라고 하는 달러
가치를 기준으로 각국이 그 통화 가치를 평가하여 그것을
고정적으로 유지하기로 하고, 이때 위 비율로 미국이 각국의
통화당국의 ‘달러-금 교환’ 요구에 응함으로서 달러 가치를
보증하기로 했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Agreement) 체제가,
1971년 8월 15일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금과
달러의 교환 정지’를 선언한 특별성명에 의해서 붕괴된 사건 및
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
와 오일 쇼크에 의한 타격을 받고,
개발도상국(NICs)․산유국 등은 성장의 확대와 개발의
추진과정에 있었다. 그리하여 선진국의 윤택하고 넘치는
화폐자본이 유리한 투자처로서의 개발도상국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개발도상국 측의 급격한 성장․개발노선이 벽에
부딪치고 미국의 금리상승이 겹치자 지불불능에 의한 채무위기가
속발(續發)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90년대에 미국의 ‘브레디 구상’의 적용에 의해서
하나의 활로를 찾는다. 그것은 채무의 채권화(債券化), 결국
브레디 채권의 대량 발행을 전제로 하는 증권화에 의해서 당면의
타개가 시도되었던 것이다. 그후 이 금융적 거래가 일반화되어
간다. “90년대에 외국자본이 신흥시장경제로 대량으로 유입된
배경에는 광범위한 경제개혁이 있었다. 미시경제적 조치는 잘
알려져 있다. 즉, 무역의 자유화, 국내시장에서의 규제완화와
민영화, 금융시장의 자유화 및 대외투자 관리의 철폐이다.
재정적자의 삭감과 금융긴축정책은 거시경제조정의
주축이었다.” BIS, 東京銀行調査部譯
ꡔ世界金融レポ-ト․一九九五ꡕ
日本經濟新聞社, 1995年, p. 176.
또한, 크루그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멕시코는
1982년 이래 국제금융시장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지만,
채무삭감 결정을 기다리기 무섭게 자본의 유입이 부활하고, 그
흐름은 증가일로를 걸었다. 그리고 오래 정체되어 있던 경제가
재차 성장하기 시작했다” (앞의 책, p. 169).
이렇게 해서 80년대의 개발도상국 채무위기가 그 귀결로서
오늘날의 이머징마켓화(化)를 유도했던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선진국 특히 미국에 의한 유도이자 일체화였다. 결국,
개발도상국 금융(자본) 시장의 개방과 정비는 선진국 = 미국
자본에 대한 새로운 투지시장의 형성이기도 하였다. 때마침
미국에서의 투자형태는 투자신탁, 연금기금, 보험회사, 헷지펀드
등으로 바뀌고 있었고, 그 유리한 투자처로서의 대외적인
성장시장의 개척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투자형태도
은행융자에서 증권투자로 그 주체는 크게 전환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 부상하는 것은 다시 채무의 누적과 그
지불불능의 위기이다. 근래 동아시아 국가들의 채무의 크기는
82년 채무위기 당시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표 2>). 개발도상국은 경제의 주변성 때문에 그 자립성은
장기적으로도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금융적 자립의 곤란성을
안고 외자도입은 불가피하게 된다. 선진국에 의한 금융적 종속의
중압이라고 하는, 중추와 주변의 축도(縮圖)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주요 대외민간투자로는 직접투자, 은행융자, 증권투자의
세 형태를 생각할 수 있는데, 직접투자 이외에는 어느 것이나
채무가, 즉 장래에 원금과 이자를 지불할 의무가 발생한다.
80년대에는 은행융자와 관련된 것이었지만, 90년대인 지금은
증권투자에 의한 것이다.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80년대의
채무위기는 잠재적으로 온존되고, 지금 재차 새로운 채무노예의
위험성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표 3>).
(2) 포트폴리오 투자와 달러 의존
90년대 금융의 특징은 금융의 세계화와 카지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실태는 포트폴리오 투자였다. 이 투자형태는
주식․채권 등과 같은 증권투자, 자산운용투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고리(高利)를 추구하여
고위험과 고수익이 따른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투자에 알맞은
대상이 이미 말한 이머징마켓이었다. 그 때문에 90년대에는
개발도상국 금융이 격
증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것은 공적 금융의
정체․감소경향과는 반대로 민간투자의 눈부신 증대로
나타났다.
예컨대, 장기민간투자는 90년의 419억 달러에서 97년의 2,560억
달러로, 또 그 비율도 43%에서 85%로 급상승했다. 그 내용은
금액이나 비율상으로는 직접투자가 가장 많지만, 그 동안의
신장률을 보면 은행융자 11배, 채권투자 538배, 포트폴리오
주식투자 10배, 직접투자 5배 등으로 되어 채권투자의 폭발적
급증이 확연하다 (<표 4>). 또한 단기자금도 증대하고 있어,
개발도상국 전체의 단기채무잔고는 94년 말 2,862억 달러에서
97년 6월 3,609억 달러로 증가경향에 있고, 지역적으로는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World Bank, Global
Development Finance, 1998, p. 9.
90년대 초 대개발도상국 채권․주식투자액은 극히 적은
것이었다. 그것이 바야흐로 선진국의 거대한 기관투자가에 의한
포트폴리오 투자의 대상으로 되어,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급격해
유입해 들어 왔다. 그 중추는, 말할 필요도 없이, 거대한
금융제국이기도 한 미국의 투자가들이었다.
UNCTAD의 자료에 의하면, 이머징마켓에 대한 미국의 포트폴리오
증권투자(FPEI)는 90년부터 격증하기 시작하여 93년에는 정점에
달한다 (<표 5>). 이를 지역적으로 보면,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고, 전자는 90년, 후자는 92년부터 그
거액의 투입이 시작되고 있다. 그 정점은 전자가 93년,
후자에서는 94년이었다. 나라별로는 전자에서는 멕시코가
압도적이고, 후자에서는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4개국에 집중되어 있다 (최근에는 중국, 인도, 태국도
증대).
또한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최대의 대
부자(은행융자)이고, 이 지역에서 점하는 비율은 미국 22.4%,
독일 12.9%, 프랑스 8.8%, 영국 7.6%이다. 또 멕시코에 대해서는
미국 26.9%, 독일 9.4%, 프랑스 9.3%, 영국 8.9%, 일본 7.6%,
브라질에 대해서는 미국 20.7%, 독일 14.0%, 프랑스 11.3%, 일본
6.5%, 영국 6.0%이다. BIS보고, 1997년 12월 말,
ꡔ週刊東洋經濟ꡕ 1998年 10月 24日号, p.
57.
또 이머징마켓에서 주요 거래통화는 달러여서 전체 거래량의
80%를 점한다. 그 가운데 달러와 아시아 통화와의 환거래가 가장
많아서 전체의 45%, 동유럽통화와 거래가 35%,
라틴아메리카통화와의 거래가 10%이다. 잉글랜드은행에 의한
1998년 4월 시점에서의 조사보고. 「日經金融新聞」
1998年 10月 1日.
이 시장과 헷지펀드와의 관계를 보면, 92년에 펀드 수는
5개(자산 6억 8,200만 달러)였었는데, 97년에는 57개(자산 71억
달러)로 증대했다. 세계 전체의 헷지펀드의 자산규모(3,000억
달러)에 비하면 그 규모는 작지만, 착실히 확대경향에 있다. 이
가운데 25개(자산합계 23억 달러)는 시장경제이행국*(역주 옛
쏘련 및 동유럽 국가들.
과 관련되어 있다. World Bank, ibid., p. 17.
또한 개발도상국에서도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대대적으로
진행중인데, 이들 국가들의 민영화 수입 가운데 약 44%는
외국투자가들에 의해서 공급되고 있다 (96년). 민영화에 의한
외자조달액은 113억 달러였는데, 그 내용은 대외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이고, 양자의 비율은 같다. 지역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가 주요한 대외직접투자 수취국으로 40억 달러
이상, 동아시아는 포트폴리오 투자로 약 20억 달러,
라틴아메리카도 약 19억 달러였다. World Bank, ibid., pp.
109-110.
이렇게 해서 포트폴리오 투자는, 투기적 자본이기 때문에,
시장의 동향과 이자율에 대한 가치판단에 의해서 거액의 자본이
급격하게 들고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90년대의 금융위기와 그
연쇄는 실로 이러한 투기적 자본의 세계적인 암약에 (그 원인이:
역자)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생산적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장(場)으로서 기능하던 금융 시스템이 이제는
약탈적이고 리스크가 큰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시스템으로 변용되어 있다.” 그리고 이 “현대의 세계적 금융
시스템은 온통 기생충처럼 생산경제에 기생하고, 그 피와 살을
모조리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 D. コ-テン, 西川潤監譯,
ꡔグロ-バル經濟という怪物ꡕ シュプリンガ-東京,
1997年, pp. 260, 243.
맺음말 ꠏꠏꠏ 신자유주의의 파괴화 작용
ꠏꠏꠏ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와 개발도상국의 관련을, 주로 선진국의
자본이동의 자유화와 중진국의 대외금융이라고 하는 세계적 금융
시스템의 관점에서 논해 왔다. 하지만, 문제삼아야 할 논점은
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약간의 점에 관해서
지적해 두고 싶다.
첫째로,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정책에 관해서이다.
지금까지 IMF와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의 금융위기에 즈음하여
주도적으로 거액의 금융지원을 조성해 왔다. 예컨대, 이번의
금융위기에서는 태국 170억 달러, 인도네시아 430억 달러, 한국
570억 달러, 러시아 228억 달러, 브라질 415억 달러, 그리고
멕시코 498억 달러(95년)이다.
그런데 IMF의 융자조건(conditionality)은 아주 엄해서, 융자
수취국에는 경제개혁으로서 ‘구조조정’의 강요와 감시라는
중압이 가해진다. 구체적으로는 긴축재정, 증세, 보조금 폐지,
고금리, 물가․임금의 억제, 환 절하,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무역․금융․자본거래의 자유화 등등으로서
알려져 있는 것들이고, “IMF에 융자를 신청하는 것은 경제적
주권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R. Lacayo, IMF to the
Rescue, TIME, Dec. 8, 1997, p. 19.
단기간에 높은 효과를 목표로 하는 이러한 IMF의 ‘충격요법’은
‘월스트리트-재무성 복합체’라고 하는 강제집행인의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특히 이번 아시아 위기이래 이러한 획일적
원리의 기계적 도입이 ‘IMF의 실패’라고 비판받고, ‘개혁’
논의가 분출한 것도 당연했다.
둘째로, 신자유주의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강자의 논리’를
관철하는 것이고, 따라서 소득과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시장경제화에 의한 경쟁의 격화는 각 기업에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민영화나 행정개혁에 의한 효율화도 실업률을 높이고
있다. “세계적 자유시장에서의 경제성장은 빈곤해결의 수단으로
될 수 없다. 성장은 세계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문화적 사회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D. コ-テン, 앞의 책,
p. 326.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94년 1월 1일의 NAFTA 발효에 맞춘,
멕시코 원주민(EZLN)의 무장봉기가 그것이다. 그들은 농민이자
원주민으로 고난한 생활로부터, NAFTA의 희생자가 옥수수
생산자임을 미리 알고 이날을 기하여 신자유주의와의 투쟁을
전세계에 선언했던 것이다. サパテイスタ民族解放軍,
太田昌國․小林致廣編譯 ꡔもう,
たくさんだ!ꠏꠏメキシコ先住民の記錄ꠏƮ
23;ꡕ 現代企劃室, 1995年 참조.
이렇게 해서,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선진국 일반의 중추적 문명의 ‘침략’과 개발도상국
독자의 주변적 문명의 ‘쇠퇴’라고 하는, 말하자면 미국 류의
‘투기적 육식동물적 자본주의’ ヘルム-ト․シュミット,
村瀨哲司譯 「グロ-バリズムの幻想」
ꡔ世界ꡕ 1998年 12月号, pp. 47, 49.
의 세계적인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의
문명화-파괴화 작용’의 현대판일 것이다. 아시아의 ‘기적’과
라틴아메리카의 ‘르네상스’가 이 문명화 작용의 긍정적
효과라면, 이들 지역의 금융위기는 그 부정적 효과, 즉 파괴화
작용으로서의 귀결이기도 하다.
오늘날 ‘시장인가, 국가인가’하고 묻는다면, ‘시장도,
국가도’이다. ‘사회적 자본주의’ 都留重人
ꡔ體制變革の政治經濟學ꡕ 新評論, 第7章, 1983年,
참조.
(都留重人)로서의 ‘혼합경제’의 복권(재검토와 재평가)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경제개발’로부터 ‘인간개발(발전 M.
ハク, 植村和子ほか譯 ꡔ人間開發戰略ꡕ
日本評論社, 1997年. UNDP ꡔ人間開發報告書ꡕ
각년판, 國際協力出版會, 참조.
)’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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