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구조조정과 노동자투쟁 |
현장에서 미래를 제45호
|
|
남구현
|
정세초점
이른바 구조조정과 노동자투쟁
고급옷 로비사건,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등을 통해 우리는
우리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노동자들의 저항을 어떤 식으로 억압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우리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두 여자,
O양과 연부인에 대해 돌아다니는 우스개 소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다.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둘 다 옷때문에 망신당했지만,
O양은 벗다가 연부인은 입다가, O양은 누구나 다 하는 짓을
하다가 연부인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짓을 하다가 창피를
당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짓은 상류층만이 할 수 있는
것이어서, 둘 다 자신들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었지만,
한쪽은 권력이 나서서 치부를 가려주었다.
또 하나의 우스개 소리, 공안 검사와 조폭의 공통점과 차이점:
둘 다 조직된 폭력으로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폭력행사, 사기,
기만 등 갖은 술수를 다 쓰지만, 하나는 공적이고 하나는
사적이어서 공안 검사는 법을 집행하고, 조폭은 법망을
피해다닌다.
이와 같은 우스개에는 도지사와 도적의 비교도 등장한다. 두
경우 다 몰래 빼내 쌓아 놓는 것은 똑 같지만, 하나는
‘합법적’인 정치자금이고 하나는 장물이다. 포르노, 벌거벗은
성, 억누를 수 없는 사치를 향한 갈망, 사취, 기만, 갈취,
도둑질, 폭력 등은 우리 시대의 표상이다. 물론 여기에서
등장하는 우리의 장관 부인, 공안 검사, 도지사 나으리의 경우,
무엇보다 사태의 발단이 자본을 살리기 위한 로비, 신자유주의로
일컬어지는 자본의 천국을 만들기 위한 정치,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공권력 행사 등 지금의 지배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포르노, 조폭,
도적들과는 구분될 것이다.
‘개혁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재의 모순
권력의 핵심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들에 언론은 연일
흥분하였고, 악화되는 여론에 내년 총선 패배와 나아가서는 정권
자체의 기반이 무너질 위기를 느낀 김대중 정권은 문제인사들을
경질하는 한편 이미 빛 바랜 ꡐ개혁ꡑ의 깃발을
흔들어 대고 있다. 재벌을 압박하는 한편, 서민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가 집권 정치 세력의
계급적 성격이 달라져서라기보다는, 여론의 압박과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노동자 민중 투쟁에 의해 강제되어 오히려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책으로 제시되고 있다면, 집권
세력의(이제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ꡐ개혁성ꡑ에
노동자 민중의 운명을 내맡기는 대응책은(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결과를 빚어낼 것이다.
지난 수년간의 역사적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지금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주는 작태들은 사실 충분히 예견되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배세력은 지난 수십 년간 쌓여온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다. 지금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모순은 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또는 지도자는 잘못하지 않는데 밑에서 그의 의도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라 바로 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일관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개혁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개혁의
결과’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의 경제 위기의 원인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반, 지금의 위기를
야기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얼마나 척결되었는지. 한 때 사회적
지탄을 받던 재벌은 다시 살아나 더욱 더 비대해졌으며, 상위
20%의 소득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더욱 더 늘어났다. 비리
정치인들은 다시 활개치고 있으며, 지난 시절의 모든 구악을
대변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큰소리치고 있다. 반면에 노동자들은
무차별적인 정리해고와 구속․수배를 당했으며, 악화된
노동조건을 감수하고 있다. 200만에서 400만에 달하는
실업자들은 전시효과 위주의 실업대책에 내맡겨진 채 불안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국민의 정부 등장이래
민영화, 자본/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기조로 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의 결과로 심화되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이름 아래
위기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무차별적인 정리해고와 재벌간
빅딜이 진행된 결과이다. 개혁의 이름 아래 모순의 ‘결과’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할 뿐이어서,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구조적으로 혁파되어야 할 부분이
최대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노동자 계급만이 모순해결의 주체
그러나 언제 우리나라의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힘으로 앞장서서
개혁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가. 서구에서처럼 혁명적으로 봉건적
질서라도 타파해 본 적이 있었는가. 서구에서조차
‘시민’혁명의 선두에서는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피를 흘리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정변의 형태로 시도된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이 삼일천하로 끝난 후, 동학농민의
피값으로 대가를 치르며 갑오경장의 형태로 마지못해 시작되지
않았는가. 3․1운동, 4․19혁명에서 광주항쟁,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항쟁의 선두에 선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지배자들은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의해 강제되어 조금씩
마지못해 - 마치 자신이 개혁의 주체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
진보적인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것도 항시 틈을 보아
되돌리려고 시도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최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95년도에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반복되는
총파업은 우리나라의 현실모순이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도록 악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96년도 노동법 날치기 개악이 불러 일으킨 총파업이
그러했으며, IMF 개입 이래 구조조정의 구호 아래 끝없이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가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다시금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지금이 그러하다.
올 상반기에도 민주노총은 생존권을 박탈하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보장, 사회안전망 구축,
임금․단체협약 안정과 산업별 교섭체제 보장 등의
4대요구를 내걸고 지하철 파업을 시작으로 4월 총력투쟁을
선포하였다.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언론과 관변 시민단체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민의 불편을 볼모로 한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였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자신들의 계급적인 이해를 보았던 농민과
빈민, 그리고 일부의 학생, 지식인을 제외한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시민’의 이름으로 ‘경제위기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심해야하며 노동자투쟁을 자제해야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나라 전체가 무너진다’며 이구동성으로 외쳐
대었고, 언론은 이들의 이야기로 도배질을 하였다. 노동자
편이라고 행세하던 진보적 인사들조차 ‘구조조정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약간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수정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투쟁대열로부터 발을 뺀 채, 또는 살짝 발을 걸친 채
가능한 한 멀찌감치 서서 자기 견해를 표명하였다. 급기야
통치권자가 나서서 ꡐ구조조정은 파업의 대상이
아니다ꡑ는 유권해석까지 하였다. 도대체 왜 구조조정까지
하게 되었고,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이고, 기실 조정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누가 주체로 나서서 조정해야 하는가. 실로
구조조정되어야 할 부분은 노동자가 아니라 지금의 모순을
야기한 재벌과 보수 정치권이지 않은가.
노동자 계급의 투쟁력이 우리의 미래를 규정
노동자․민중을 제외한 모두가 합세해 노동자 투쟁을
비난했던 올 상반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중간계급의 이중적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그렇지
않아도 힘든 개혁을 위해서는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교섭을 위해서는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운동
내부에까지 광범위하게 번져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운동이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중간계급은 항시 격화하는 노자간의 대립 속에 힘의
우위를 견주면서 자신의 위상을 정해왔다는 점에서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1848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무장봉기가 실패로
돌아가던 당시 프랑스의 중간계급은 부르주아지의 편에 서서
노동자 학살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독일의 11월혁명 당시
봉기하는 노동자를 진압하였던 것은 사민주의 정권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87년 6월 항쟁이 노동자 대투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6월 항쟁의 ‘주역’들은 투쟁하는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거리를 취한 채 다가오는 12월 대선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지 않았는가. 96~97년 총파업시 시민단체들은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가자 대오를 이탈하지 않았는가. 거꾸로의 경우도
있다. 1848년에는 부르주아지의 편에 섰던 프랑스의 중간계급이
1871년에는 힘관계의 변화에 따라 파리의 노동자 정부의 편에서
베르사이유궁으로 도주한 브르주아지 정부에 반대해 콤뮨을
선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96~97 총파업이 점차
상승세를 타고 당시 김영삼 정권을 위기로 몰아 넣자
시민단체들은 부분적으로 다시 투쟁 대오에 결합한 바가 있었다.
향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배계급 내부의 여러 분파들 사이에는
‘사이 나쁜 형제들’ 마냥 분란이 계속될 것이며, 그간 개혁의
결과 더욱 악화되어진 축적된 모순들은 여기저기 고름이 터지듯
터져나올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포섭과 배제, 동의와 억압의
전략은 동시에 구사될 것이지만, 정략적인 고려아래 포섭과
동의를 구하는 전략이 강화될 것이며, 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중심으로한 양적인 구조조정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만큼
‘질적’인 형태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중간계급은 힘관계의
우의를 저울질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취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역사적인 진전은 오직 투쟁에 나서는
조직된 노동자의 힘만큼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96~97년의
투쟁을 통해 돌파하지 못하고 개악된 노동법과 98년도에 양보한
정리해고 유보조항이 이후의 노동자투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듯이 앞으로의 투쟁은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것이다.
(1999/6/29) 한/노/정/연
|
|
1999-07-05 00:00: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