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미국경제 감상법

현장에서 미래를  제46호
99년 7월 21일 한겨레 신문

99년 7월 21일 한겨레신문 <아침햇발>


미국경제 감상법




미국 경제가 8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는 평화시 최장기 호황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민간경제 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 경제의 장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져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경제를 이끄는 주식시장의 활황이 곧 심각한 금융위기와 경기후퇴를 불러올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 미국 경제의 `번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축은 주식시장의 활황이며, 그에 따른 소비자 지출의 증가라고 분석한다. 주식시장 활황의 가장 큰 원동력은 미국 정부의 채권을 구입하기 위해 들어온 막대한 외국 자본이다. 이 막대한 외국자본이 미국의 채권값을 인상시키고 금리를 낮게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낮은 금리 덕분에 미국의 주식시장은 활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거칠게 말하면 오늘날 미국 경제번영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주조해낸 인물이 바로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었다. 93년 국가경제협의회 의장으로서 클린턴 대통령의 수석경제고문이 된 루빈은 클린턴에게 재정적자 감축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어 95년 재무장관에 취임한 루빈은 세금 인상과 세출 삭감을 통해 예산적자를 대폭 줄였다. 자연히 재무부의 채권발행에 의한 과중한 차입이 필요없게 돼, 채권시장의 압박은 완화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낮은 금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주식시장이 활력을 되찾아 루빈이 취임한 지 1년 사이에 주식값은 50년 만에 최고치인 31%나 치솟았다. 그 뒤 루빈이 사임할 무렵 미국의 주식값은 거의 세 배나 뛰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기업이윤을 높이기 위한 가혹한 다운사이징, 즉 노동자들의 대량 감원 선풍이 있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주식시장 활황에 바탕을 둔 성장 메커니즘이 몇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미국의 만성적 무역적자와 대외부채의 지속적 증가다. 미국의 국제수지는 83년의 균형상태를 고비로 이후 무역적자와 대외차입 증가로 세계 최대 채무국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순금융 부채는 97년 말 1조 5700억 달러였으나 99년에는 2조 달러, 2000년엔 2조 3400억 달러, 2005년엔 4조 3600억 달러로 팽창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그 시점 미국 국내총생산의 36.4%에 해당한다. 따라서 미국이 무역적자를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국내총생산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이지 않는 한, 급증하는 대외부채는 달러의 신뢰위기를 불러 미국에 투자된 해외자본의 대거 유출과 금융공황을 일으킬 시한폭탄이 되리라는 것이다.

둘째, 만약 미국이 달러 평가절하의 위기상황을 금리인상으로 대처하려 할 경우 파국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의 팽창을 떠받치는 소비자 붐은 가구당 수입에 비해 기록적인 소비자 채무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금리 인상은 이들 가정의 채무상환 부담을 늘리고,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가정들을 파산하게 할 수 있다. 투자나 인수․합병 등을 위해 빚을 많이 진 기업들도 금리가 오르고 판매가 위축되면 유동성 위기를 겪게 돼 파산 위험성이 높아진다. 개인과 기업의 파산이 늘면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심각한 곤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뿐 아니라 가령 일본의 장기금리가 인상돼도 미국 경제의 번영을 이끈 메커니즘이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금리 인상은 미국 채권시장에 대량으로 유입된 일본자본의 회수를 촉발해 채권값이 급락하며, 이는 월가의 주가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엄청나게 부풀려진 주식값과 실물경제 사이의 격차다. 90년대 전반에 연평균 7%였던 주가 상승률이 95년 이후 연평균 25%에 달해 다우지수는 현재 95년 초에 비해 2.5배 올랐다. 그러나 이처럼 활발한 주식거래로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공자본’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실현시켜줘야 할 실물경제 성장률은 전후 어느 시기보다도 낮은 추세를 보이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의 한 관리는 미국 주식의 시장가격이 약 20% 정도 높이 평가돼 있으며, 이 격차가 현재 조정중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정도의 조정은 수조달러의 가공자본을 허공에 날리면서 예측 불허의 금융적․사회적 파장을 불러오리라는 것이다. 뮤추얼펀드 등을 통해 주식에 투자한 미국 가정은 84년엔 1천만 가구였으나 지금은 4천만 가구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8-08-02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