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회,노동자계급,정치운동 |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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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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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를 위하여
한국사회,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오 세 철 (연세대 상경대 학장, 이사)
자본가계급의 정치 분파들이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경쟁을
벌이는 각축장에 소부르주아분파가 자본의 깃발이 아닌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변혁세력은 묵묵히
장기전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사상노선과 조직노선을 확고하게
세우지 못하고 대동단결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으로서 정치 운동의 현주소이다.
패배주의는 전망의 부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대한 불철저한 사상과 실천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다시 한번
노동자계급의 정치 운동의 역사적 필연성과 우리의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
총자본과 국가에 대한 반체제 운동의 역사적 과정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세계 자본주의에의 종속에 대한
역사적 분석으로는 노동에 대해 자본의 억압과 착취가 가능했던
조건, 즉 분단국가, 개발독재, 봉건적 이데올로기 등이 언급되어
있고 외형적인 모습을 보면서 경제성장의 성공 사례로도
한국자본주의를 손꼽는다. 특히 소련․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친자본주의적 학자들조차 소위 NICS의 국가를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와 비교하는 논법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로빈
블랙번은 ꡔ몰락 이후ꡕ라는 책에 실린 그의 글에서
스탈린주의 국가와 부르주아 스탈린주의(한국, 대만 등)를
비교하면서 두 체제 사이의 공통점, 즉 토지개혁, 국가 계획,
정부 개입,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 민중 저항을 억압하는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적 실패와 달리
경제적 성공을 거둔 국가로 한국을 예시하고 있다.
생산력주의로의 편향이 계급 모순을 은폐하는 오류를 접어둔 채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를 비교하는 이러한 관점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으며 오히려 높은 생산력 아래에서
생산관계의 모순이 심화되는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을 희석시키는
부르주아의 논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총량적 수준에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노동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수반하는
자본의 계급투쟁 관리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반자본운동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자본주의의 경우 분단
구조와 군부파시즘, 그리고 지역주의 등과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적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복합적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반제국주의, 반파시즘 운동과 함께
진행되었다. 따라서 변혁세력의 형성 과정은 한국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맞물려 있으며 총자본과 국가에 대한 반체제 운동의
역사적 형성 과정이었다.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현실
그러면 자본 운동과 법칙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계급의 양태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체제내의 노동조합 운동은
체제내적 개량투쟁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임금투쟁을 비롯한
제도개선투쟁이 변혁의 전망속에서 계획되지 않는 한,
부르주아의 영속적 지배에 포섭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경제투쟁 조직인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을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부터 90~100년 전에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조합의 총 조직노선인 산업별
노동조합을 건설한 바 있고 또한 변혁적 노동운동을 전개해
왔으나, 변혁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이 개량화됨으로써 체제내적
노동운동으로 전락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혁적
노동운동의 역사도 짧지만 기업별 노조체제에 얽매어 계급으로서
단결투쟁도 전개시키지 못하는 조건이며, 더구나 계급 타협의
입장에서 국가․자본․노동의 관계를 해석하려는
신조합주의적 시도가 이데올로기적 형태로 등장함으로써 변혁적
노동운동의 전선을 왜곡․축소시키고 있다. 설사 변혁적
지향을 간직한다고 하더라도 조합주의에 매몰되어 정치운동을
방기하고 경제투쟁의 성과 획득이라는 수준으로 노동운동을
묶어두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노동운동과 정치체제, 그 다섯가지 유형
노동운동과 정치체제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의
성격을 노조조직의 연대 정도, 노동운동의 통일과 분화 정도,
노동조합과 당 사이의 연관의 성격, 그리고 정치체제의 특성
등을 기준으로 구분하여 발렌쥬엘라는 다섯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번째는 사회민주형으로서 단일한 전국 노조 조직과
강력한 단일정당이 있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벨지움, 네델란드 등의 경우, 두번째는
경쟁형으로서 공산당과 같은 이념의 차별성이 존재하는 칠레,
프랑스, 이탈리아(1950~60), 우르과이, 핀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세번째는 압력 집단형으로 기존
정당과 노조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경우로서 미국,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콜럼비아 등을 예로 들며, 네번째는
비교적 노동자의 지지기반이 넓은 경우로서
아르헨티나(1943~55), 브라질(1970년 중반까지), 멕시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섯번째는 대립형으로 노동운동 지도부가
반정부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며 국가가 노동조합의
정치운동(투쟁)을 탄압하는 경우로서 이탈리아(뭇솔리니 정권),
한국(군부독재), 칠레(피노체트 정권)등을 드는데, 김영삼
정권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가로막는 원인
가장 낙후된 유형에 속하는 한국의 경우, 노동자계급 정치운동의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자본은 세계화와 선진국 자본주의의
흉내라도 내는데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의 수준은 100년이
뒤떨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자본의 노동에 대한 적대적 관계 구조를 들 수 있다. 이는 서구
노동운동의 역사가 노동의 포섭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을
체제내화시키고 개량화시킨데 반하여, 한국의 자본과 권력은
탄압과 배제를 통하여 노동통제를 강화해 온 자본축적 전략에
익숙해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총체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한
양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를 지탱해 주는
법체계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노동관계법 등은
이른바 문민정부에서도 변하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세번째로는
인물과 지역이 착종된 보수 정치의 끈질긴 저항 구조를 들 수
있다. 자본운동에 대립하는 노동운동은 이념적으로 진보적이며
발본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살펴
보아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진보 이념이 변혁적인가 개량적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역사, 문화, 정치 등의 주체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치운동이 이념을 기반으로 조직되고 재편되어 있지
않고 반봉건적인 지역 기반과 인물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반민주라는 군부 독재 시대의 정치 지형이
변화되고 있는 현재에도 이른바 민주 또는 진보세력이 양 김씨로
표현되는 양대 보수 정치세력속에 이념적 기반을 두고 그 속으로
포섭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70년대, 1980년대
민주운동 세력과 반자본운동 세력은 양김 구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민주전선 운동으로 대표되던 세력은 친 김대중
정치노선으로 편입되었으며(김근태를 포함한 국민회의 등),
진보정당 운동으로 대표되던 구민중당 지도부는 거의 친
김영삼의 정치노선으로 폭넓게 편재되고 있다. 노동자계급 역시
계급의식으로 뭉쳐지는 세력으로서 보다 재벌화된 노동자로서
지역과 인물의 영향력 아래에서 선거 후보를 선택하는 정도의
투표행위 밖에 못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계급,
정치운동의 가능성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은 불가능한 것인가?
역사적으로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은 투쟁의 성과였지 시혜의
산물은 아니었다. 노동운동은 오히려 자본의 포섭과 개량화에
너무 무력했지만 탄압과 배제에는 강한 투쟁력을 발휘해 왔다.
따라서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이 스스로의 힘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자본과 권력이 법으로 막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은 더욱 왕성해지고 강력해질 가능성이 많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노력들을 해야 한다.
첫째,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에 속박되어 있는 노동조합 체제를
극복하고 전국적 산업별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조직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문제로서 민주노조의 이념적 전통을 계승하는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주체로 확립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95년도
임금 투쟁과 사회개혁투쟁이 현실적 패배로 귀결되면서 조직
형식적으로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건설되는 조건속에서
민주노총의 강령이 노총과 크게 차별성을 띠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체제내적 이익집단 운동으로
고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노동관계법의 개폐를 위한 투쟁을 지속하는 일이다. 악법은
어겨서 깨뜨려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지키고 실천하는 길만이
변혁적 정치운동의 기틀을 마련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번째, 지역과 인물의 영향력이 주도하는 보수 정치세력에 맞서
노동자계급이 중심에 서는 변혁적 진보 정치세력을 조직화해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정치 참여(정책 참여, 선거 참여,
노동자당 결성)라는 평면적 수준을 넘어서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조합의 정치참여는 의회주의가 유일한 합법적 정치
전략이라는 기조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즉 의회제도는
상대적으로 다수의 결정과 규칙에 따르는 정치 과정속에서의
정치적 선택이라는 제약 조건이 존재하고, 따라서 의회주의
전략이란 기존 경제, 정치권력이 만든 규칙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본질적 한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사
진보정당을 만든다고 할지라도 노동자계급의 이해와는 무관하게
지배세력의 게임 규칙을 따라가는 개혁정당의 수준에서 안주하게
된다. 이미 보수정치세력은 그 속에 진보적, 개혁적 성향까지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
진보정당은 바로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대중적인 힘이 뒷받침되는
변혁적인 진보정당일 수 밖에 없다.
본격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시작해야
요즈음 3김 청산, 지역주의 극복을 내건 개혁 신당의 결성이
변혁운동 진영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변혁운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세력이 독자적 정치세력화함으로써 계급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우려로부터 오히려 정파운동이 정리된
지형속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이르기까지 그
반응이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개혁 신당 참여 세력가운데 진보정당 운동을 했던 옛날의
동지들이 끼어 있다는 점이다.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일부 정파운동이
좋아하는 우회로, 또는 활용론이 아직도 고개를 들고 있어서
씁쓸하다. 또한 한때는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던 몇몇 정파의
최종적 선택이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나 노동자들에게
정치운동에 대한 또 한번의 환멸과 좌절을 맛보게 했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정리되고 마감되는 과거의 정파운동을 딛고 일어서서
본격적인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 운동의
중심세력은 노동자계급 그 자체이다. 노동해방의 이념적 기치
아래 단결하여 투쟁해 왔고 앞으로도 투쟁할 변혁 역량이 스스로
정치운동 조직으로 나서야 한다. 이는 민주노총이나
금속산별이라는 노조 조직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중투쟁을
통하여 훈련되고 의식화된 선진노동자 블럭의 조직화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배출된
노동운동의 지도자를 개별화, 주변화시키지 말고 정치운동으로
결집하여 나서게 하는 적극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두번째
중심세력은 정파로 존재하고 있는 선진활동가 조직을 단일한
정치운동으로 묶어 세움으로써 형성되는 변혁 역량이다.
분화되어 존재할 이유가 있다면 모두 해산하여 산개하고 10년
후의 앞날을 기약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파 운동의 과거를
청산하고 대동단결하는 단일대오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계급성과 변혁성에서 기조를 같이 한다면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세번째의 중심세력은 민중운동의 각 부문에서 민중적
대의를 원칙으로 실천하고 투쟁하는 민민운동 역량이다. 이
세력은 지금까지 부문 운동의 울타리안에서 머무는 투쟁에
매몰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양김의 사정거리내에서 정치운동의
후비대에 섞임으로써 변혁성을 훼손시켜 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함께 투쟁할 수 있는 대오로
새롭게 건설되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세가지 세력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속에서 결합하고 단결해야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은 강고한 대중투쟁에 기반을 둔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정치운동, 의회주의적 편향 극복해야
우리는 이러한 공동투쟁의 준비기간을 2~3년으로 바라본다. 이는
자본과 권력의 탄압과 배제를 넘어서기 위해 필연적인 투쟁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떤 형태로든 포섭하고 개량화시키며
투쟁을 희석시키려는 자본과 권력의 대응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중투쟁과 의회 정치를 분리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으로서 계급타협적 입장을 가진 노동운동 세력과 진보 노동
세력의 정치 참여(개량적 노동자당 건설)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적 전술과 선거공간
활용을 과도하게 설정하는 의회주의적 편향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96년 예정된 총선거에 연연해 하지 말고 지속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운동 조직의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자본가계급과 보수 세력의 정치판을 갈아엎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데 모든 변혁운동세력은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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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0-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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