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구조적 성격과 변화전망
1. ‘보수적 지배’의 보수(補修)와 취약한 ‘중도자유주의’ 정권
박정희 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정치변동 즉 ‘보수적 지배’의 변화과정은 노동자, 민중, 시민의 저항에 대응하는 지배의 보수(補修)과정 혹은 지배의 재조직화과정으로 규정될 수 있다. 흔히 민주화, 민주주의이행, 정치적 개방화, 공고화 등 여러 개념들로 분석되고 있는 80년대 중반 이후의 변화는 국가론적 관점에서 보면 바로 이러한 지배의 보수과정이 된다. 이것은 ‘구 보수적 지배’에서 ‘신보수적 지배’로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는 각각의 고유한 성격이 있고 개혁성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나지마는, 거시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지배의 변화과정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87년 이후의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의 과정은 민중적 저항으로 위기에 처한 개발독재적 지배양식을 재조직화하는 과정이며, 그런 점에서 ‘수동혁명’적 경로를 따른 지배의 재편과정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1).
이러한 변화의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하기 위해 정당의 이념적 성격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필자의 관점에서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과거 통일민주당은 ‘온건 (보수)자유주의’ 정파로 파악되며 평화민주당 및 국민회의는‘중도 (보수)자유주의’ 정파로 파악된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는 온건보수주의 정파(자민련)와의 연합 속에서 ‘중도 (보수)자유주의’ 정파가 집권한 경우라고 할 수 있고, 우리가 정부의 성격을 지배정파의 성격에 의해 규정한다면 ‘중도 (보수)자유주의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중도 (보수)자유주의정부의 국가유형적 성격은--물론 현재 그 ‘합리화’가 진전되고 있지만--자본주의적 국가 혹은 ‘부르주아 국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2).
군부권위주의 시기에는 국가 및 국가관료의 경우 극우보수주의 지향 및 온건보수주의지향이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온건 (보수)자유주의 혹은 중도 (보수)자유주의적인 지향도 가질 수 있었으나 집단적으로는 존립이 불가능하였다. 민선군부정권, 제1기 보수적 민간정부, 제2기 보수적 민간정부 시기로 이행하면서 국가 및 국가관료, 정치사회 혹은 제도정치 정파의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중도자유주의정파에 이르는--개인적으로는 급진자유주의지향 까지--다양한 개인이나 세력이 국가기구 내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제도정치 내에 온건진보주의나 급진진보주의 정파는 아직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인적 구성 혹은 정파구성의 변화는 지배 및 국가의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 및 국가의 재조직화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어떤 점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적 압력의 결과 극우보수주의적인 지배 혹은 국가가 중도 (보수)자유주의적인 지배로 전환하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의 재편과정은 인적 혹은 정파적 대류 및 교체과정이기 때문에 격렬한 갈등을 수반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의 성립으로 인한 이러한 변화 역시 내부적 갈등을 거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중도 (보수)자유주의적인 정파의 지배분파로의 정립 및 중도 (보수)자유주의적인 정부의 성립(비록 온건 보수주의정파와 연합한 것이지만)은 지배의 합리화의 일부이지 그것이 지배 혹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합리화’ 과정 속에 있는) 자본주의적 국가 혹은 부르주아적 국가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지배정파화(化)는 극우보수주의적 성격의 구(舊)보수가 중도 (보수)자유주의적 성격의 신(新)보수로 전환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내부갈등과 균열, 합종연횡이 교차하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여기서 이른바 ‘50년만의 야당정권’의 구조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50년만의 정권교체의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극우보수가 중심이 되는) 보수적 지배로부터 (중도자유주의 혹은 보수자유주의가 중심이 되는) 자유주의적 지배로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지배는 극우보수적, 파쇼적, 반민주적 세력들의 패권화 속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반공규율사회 속에서 극우반공주의적 세력들이 국가주의적으로 통치하던 것이 바로 지난 50년간의 지배의 본질이었다. 이러한 국가권력 담당 주도집단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에도 불구하고 그 집단은 국가기구의 계급적 성격전환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한 지배 자체의 철폐가 아니라 극우보수적, 극우반공주의적, 파쇼적, 반민주적, 독재적 성격을 갖고 있던 지배의 합리화 혹은 재조직화를 통하여 구(舊)보수적 지배를 신보수적 지배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의 ‘반민주적’ 지배(국가)가 구보수적 지배라고 한다면, 자유주의적(부르주아민주주의적) 지배는 신보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정부의 성격은 바로 이러한 양측면을 통일적으로 파악할 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2. 김대중 정부 개혁과정의 복합성과 위기적 요소
그런데 이상의 분석은 국가변동의 구조적․계급적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변동이라고 할 수 있고, 중범위적 수준에서는--여기서는 미시적 수준에서의 많은 변수들은 별개로 한다--더욱 다양한 변수들이 개재됨으로써 복합적인 과정으로 전개된다. 예컨대 중도자유주의 정부 혹은 신보수적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의 질적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처럼 질적 성격의 편차가 나타나는 것은 국가변화 혹은 지배의 구조적 성격변화라는 것이 다양한 세력들의 투쟁속에서 전개되는 ‘정치사회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구보수적 지배가 신보수적 지배로 전환되는 80년대 말 이후 정치변동의 과정에서 구보수적 지배를 담지하는 세력이 거대한 사회적․정치적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은 계급적․사회적 투쟁의 과정이 된다.
진보적 정치분석에서 쉽게 이러한 측면이 간과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사회변동의 과정이란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의 투쟁 속에서 전개되는 과정이고, 계급적 투쟁․사회적 투쟁에 의한 개입에 의해 그 질적 성격이 달라지는 과정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80년대적인 표현을 하면 일반민주주의(GD)적 투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이행과정의 ‘투쟁’적 복합성이 적절히 고려되지 않을 때, 정치변동 혹은 민주주의 이행과정은 종착점이 정해진 ‘결정론’적 과정이 된다. 거시적 성격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정치변동의 역동성에 대한 ‘중범위’적 분석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론’적 인식은 흔히 지배블럭을 대단히 ‘동질적인’(homogeneous) 구성으로 보는 국가에 대한 신화화된 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정치변동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는 바로 지배블럭--특별히 민주주의이행기에 있어--의 복합성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3).
이런 전제 위에서 볼 때, 김대중 정부 개혁에는 일종의 ‘이중적 전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먼저 개혁의 경제적 성격을 둘러싼 전선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가 한편으로는 세계체제적인 수준에서의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압력을 받고 있으며(그것을 배경으로 하여 ‘시장주의’적 개혁을 강제하려는 대자본 등의 압력), 다른 한편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압력(반(反)신자유주의적 압력)을 받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경제정책 기조 상에 있어 신자유주의적인 흐름과 그에 반대하여 민중적 복지를 관철하려는 흐름 간의 대립이다.
이 점에서 김대중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규정에 대해서 논해보기로 하자. 이 규정은 거시적 규정성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중범위적 수준에서의 계급적․사회적 투쟁의 개입의 효과에 따라 김대중정부의 정책기조의 질적 편차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동시에 고려하여야 한다. 글로벌한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압력이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존재맥락과 서구 신자유주의정부의 존재맥락의 차이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즉 탈(脫)복지국가화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신자유주의와, 반(反)개발독재와의 맥락에서 제기되는 신자유주의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본질론적, 결과론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정권이라는 것은 맞다. 특별히 재벌-초국적 자본과 김대중정부의 관계 속에서 본다면, 분명 김대중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압력을 받고 있고, 그것을 넘어설 수 없는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와 민중의 관계 속에서 보면, 국민정부는 과거의 반독재투쟁의 성과 위에 있고, ‘슈퍼(super)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민중적 투쟁으로 반(反)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요구받고 있고, 자신이 그러한 ‘슈퍼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대한 투쟁의 성과 위에 서 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정부가 민중정부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동시에 국민정부가 재벌-초국적 자본과 ‘체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정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올바르다. 그러나 그것은 김대중정부 하에서 계급적․사회적 투쟁을 통해 쟁취하여야 할 ‘편차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의미로 사용될 때 그것은 일면적일 수 있다. 주체적 투쟁의 개입에 의하여 달라질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공간이 일정하게는 존재한다는 말이다. 거시적 규정성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관철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민중적․시민적 개입, 나아가 계급적․사회적 투쟁이라는 매개변수의 적극적인 역할을 인정하여야 한다. 현단계 신자유주의의 글로벌한 지배성, 그것의 거시적 규정성과 함께, 한국이라는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계급적․사회적 투쟁의 개입효과를 적절히 강조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4).
이처럼 신자유주의적인 흐름과 반신자유주의적인 투쟁의 길항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의 편차영역은 먼저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마하티르적인 노선’에서부터 탈(脫)민족주의적인 순응노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IMF 및 미국의 정책적 가이드라인, 즉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압박에 대하여, 이른바 ‘마하티르적 길’에서부터 대단히 탈(脫)민족주의적인 순응의 길 간에 다양한 편차가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김대중정부의 정책노선은 탈민족주의적인 순응노선에 경도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압력에 대한 민족주의적 동원화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왜곡된 구 시장질서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앞서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하에서 대자본과 국가의 유착관계는 재벌로 대표되는 일부 독점대자본의 패권적 지배로 왜곡된 시장구조를 낳았다. 김대중정부가 50년만의 야당정권이라고 할 때, 그것이 일정한 개혁의 시대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그것은 시장질서의 극복이 아니라(그것은 계급적 성격 때문에 불가능하다)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하에서 왜곡된 시장질서의 민주적 개혁이다. 바로 왜곡된 시장의 민주적 개혁이라는 점을 둘러싸고 편차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하에서 고착된 재벌 중심의 왜곡된 시장질서를 개혁하는 과제에서는 보다 급진적인 정책노선에서부터 타협적 길 간에 편차가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는 후자로 경도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2차대전 이후의 사회민주주의적 진보에 대항하는 신보수주의와 달리 ‘구(舊)자유주의’적 개혁을 둘러싼 전선 위에 위치하여 있다. 19세기에 존재하였던 구자유주의는 이전의 중상주의적인 전근대적인 경제질서에 대한 개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동시에 그것은 경제질서의 자본주의적 정착과 합리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대중정부의 개혁과제는 일종의 ‘신중상주의적인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하에서 왜곡된 시장질서에 대한 민주적 개혁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민주적 개혁에는 일정한 ’편차영역‘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김대중 정부의 문제점은 그 계급적 한계성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큰 문제점은 일정한 편차영역에도 불구하고, 즉 경제정책의 일정한 전략적 선택영역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경도된 제한적인 개혁노선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급진적인 개혁노선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적 합리화라는 점에서 시장질서의 ’자유주의‘적 합리화로 귀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측면은 김대중정부의 거시적 한계에 이은, ’중범위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김대중정부 개혁의 극대치는 ‘급진민주주의적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혹은 민주적 시장경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대중정부가 만일 자신의 정책의 전략적 선택영역에서 극대치를 선택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시장경제의 급진민주주의적 개혁이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시장경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이 하여야 했던 민주개혁의 과제를 방기하고 ‘신성장주의’ 노선으로 경도되게 된다. 예컨대 급진민주주의 개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재벌해체 같은 것을 의미한다. 재벌해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시장체제의 극복은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시장경제(재벌독점체제로 표상되는)와 한국형 천민적 자본주의의 ‘급진(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의 성격은 지니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의 재벌개혁은 재벌의 시장독점 및 소유독점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채로 재벌체제의 합리화로 귀결되어 자신의 전략적 가능영역의 근소치에 근접하고 있다.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 개혁의 또다른 차원의 전선은 정치사회적 세력 간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즉 김대중 정부는 한편으로는 개혁을 통해서 기득권을 상실하게 될 구 권력엘리트 및 기득권세력의 저항과 급진적 개혁을 강제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민중적․시민적 압력 간(間)에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개혁의 정치사회적 성격을 둘러싼 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사회적인 세력으로서의 구보수세력 혹은 구기득권세력의 민주적 개혁이라는 점에서 ‘편차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극우보수적인 세력이 중심이 되는 지배블럭에서 중도자유주의 혹은 보수자유주의적인 세력이 중심이 되는 지배블럭으로의 변화는 구세력의 기득권박탈이자 그것의 대체과정이기 때문에 격렬한 저항을 동반하는 과정이 된다.
민주주의 이행과정에는 일반적으로 3가지 딜레마가 존재한다. 첫째, 권력엘리트의 교체를 둘러싼 딜레마가 존재한다. 즉 구권력엘리트 교체의 당위성과 구 권력엘리트의 저항간의 긴장을 들 수 있다. 둘째, 개혁의 방법론을 둘러싼 딜레마이다. 즉 전면적인 급진개혁 대 선택적 점진개혁 간의 딜레마이다. 셋째, 개혁의 국민적 개방을 둘러싼 딜레마이다5). 즉 ‘민주적 개방’ 대 ‘통제된 동원’의 딜레마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전반적으로 후자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방향으로 경도됨으로써 구기득권세력과의 ‘타협적 유화’노선으로 경도되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성의 원인으로서는 물론 일종의 ‘포위된 개혁’이기 때문에, 즉 보수적인 구국가관료들로 구성된 거대한 국가기구가 온존되는 채로 전개되는 개혁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거대한 보수적 국가기구구조로 인하여 제한된 개혁 마저도 굴절되고 차단된다. 그러나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 시기와 달리 구권력엘리트 및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저항을 제압할 수 있는 ‘국민적 동원’의 공간이 일정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대중 정부 개혁의 제한성은 김대중 정부가 과도한 신중노선으로 경도되는 데서 더 크게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구기득권세력에 대해 점차 유화적이고 타협적인 경향성을 강하게 보여왔고, 그럼으로써 개혁의 입지를 스스로 좁혀왔다.
이런 분석 위에서 볼 때, 김대중 정부의 개혁과정에서 극우보수적․보수적 구세력들의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헤게모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적다고 생각된다. 이에는 지역주의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기존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기초한 보수적 지배는 한편에서는 지역주의에 기대어 지배를 연장할 수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투쟁의 격화 속에서 오히려 지배의 위기로 이어졌다. 반대로 ‘저항적 지역주의’에 기초한 ‘중도자유주의’적 세력은 지역주의와 패권적 지역주의의 위기에 기대어 집권당이 될 수 있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중도자유주의적 세력의 헤게모니화는 제약된다6). 여기에 현단계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의 중요한 요인이 존재한다. 또한 국가기구의 ‘해체’ 없이 전개되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는 중도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화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게 된다. 즉 한편으로는 거대한 보수적 관료집단에 의해 개혁 그 자체가 제약됨으로써 중도자유주의세력이 새로운 사회적 기반을 창출하는 것이 제약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50여년 동안 반(反)민주적으로 구조화된 국가기구에 대한 일반민주주의적 투쟁에 의해서 중도자유주의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약화되어 간다. 한국국가의 폭압성과 반민주성은 폭압성에 대한 민중적․시민적 투쟁으로 인해 그 폭압성에 ‘얹혀있는’ 새로운 집권당의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7).
이러한 속에서 김대중 정부의 위기적 요소는 강화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위기적 요소는 먼저 김대중정부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적인 경도로 인한 민중적․시민적 투쟁의 강화로 김대중정부의 위기적 요소가 강화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국가의 폭압성과 반민주성으로 인하여 ‘통치’의 방법론적 문제점에 대한 저항의 누적과 지지기반의 균열을 들 수 있다. 셋째, 둘째의 사항을 계기로 하는 보수적 기득권세력의 저항으로 인하여 지배블럭 내의 분열과 이반을 들 수 있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김대중 정부가 개혁을 통해 극우보수세력의 기반을 붕괴시키고, 급진개혁주의의 요구를 선택적으로나마 수용하면서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의 정치적․사회적 기반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계급적 한계성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적 프레임’은 이러한 이상적 구도를 결정적으로 제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국가(국가관료) 및 제도정치 내에서의 정치적 기반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의 철저화를 통해 개혁의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고 그를 통해 국가 및 제도정치를 재구조화하는 길이 제약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기반을 확장하고 그로써 국가 및 제도정치 내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는 길은 지난한 길이 된다. 여기서 김대중 정부는 국가 및 제도정치 내의 보수주의적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정치적 불안정성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보수적 타협은 역으로 사회적 기반을 더욱 약화시킴으로써 ‘구조적 불안정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확히 문민정부가 걸은 길이기도 하다.
3. 김대중 개혁 하에서의 진보적 사회운동의 과제
여기서 진보운동의 과제에 대하여 몇가지 언급하여 보기로 하자. 김대중 정부의 성립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배의 재구조화 혹은 전형(轉形)의 한 과정이다. 이러한 재구조화의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정치적 지배의 형식이 파시즘적 형식에서 민주주의적 형식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적 형식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두가지 변화는 제도정치영역의 확장과 (준)자율적인 시민사회 및 사회운동적 공간의 확장이다. 일반민주주의의 정치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정당정치영역의 확장은 한편으로는 제도정치에 의한 사회운동(혹은 그 이슈들)의 포섭(co-optation)의 효과를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의 제도정치 진입’을 위한 공간(예컨대 진보정치세력화를 실험할 수 있는 여지)을 부여하는 효과를 갖는다. 다음 시민사회의 확장은 한편으로는 온건한 사회운동이 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운동의 다원화(plurlization)를 추동하는 효과를 가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적 대중운동 자체의 조직적 발전 및 저항운동의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 결과 준자율적인 정당정치영역의 확장으로 인하여 정당정치영역 내부에서 ‘제도정치에 의한 사회운동의 포섭’의 경향과 ‘사회운동의 제도정치 진입’의 경향이 갈등하며 공존하게 된다.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과거의 반독재운동과 동일시되지 않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분화의 경향과 그 반대의 경향이 긴장하며 공존하게 된다.
군부권위주의정권 하에서 사회운동이 ‘구심력적 심화’를 경험하였다고 하면,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까지 사회운동 내부에서는 ‘원심력적 분화’(centrifugal differentiation)8)와 민중운동의 심화 및 확장의 경향이 공존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전자의 예는 다양한 시민운동, 특히 온건한 시민운동들이 출현하고 그것들이 민중운동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는 것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후자의 예는 노동조합의 조직적 발전으로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는 것이나 진보적 시민운동이 출현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배의 변화 속에서 민중운동 등 저항적 사회운동은 정당정치영역의 확장에 의한 ‘포섭화의 도전’과 시민사회의 확장으로 인한 ‘경쟁화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확장되는 정당정치영역 및 시민사회 속에서의 지위가 결정되게 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 까지는 바로 민주주의 이행의 이러한 이중적 효과에 대응하여 사회운동 차원에서는 민중운동적 실천과 시민운동적 실천의 발전이 각축하면서 공존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80년대 후반(정확하게는 88년부터)부터 90년대 중반(정확하게는 문민정부가 균열되기 시작하는 94-95년 무렵)까지의 시기는 시민운동의 반(反)민중운동 혹은 비(非)민중운동적인 독자적 발전이 주목받았고 보수언론에 의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부각되었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87년 이전 까지의 시기가 사회운동의 ‘구심력적 심화’가 두드러졌다면, 이 시기는 ‘원심력적 분화’가 두드러졌던 시기라고 생각된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의 경로가 바로 이러한 ‘원심력적 분화’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사회운동의 전개에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강하게 미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상황은 이 시기 시민운동의 성격에 강하게 나타났다. 80년대 후반에 보수언론은 ‘민중운동의 시대는 가고 시민운동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보수적 인식을 강력하게 증폭시켰는데, 이 시기의 시민운동은 바로 이러한 보수적 인식에 편승하고 동시에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에는 내적 분화와 다양화가 나타나게 된다. 이른바 ‘진보적 시민운동’의 출현, 이나 80년대 후반에 관철되고 있던 시민운동의 보수적 지향 및 보수적 시민운동의 헤게모니의 약화 등이 구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사회운동의 원심력적 분화 경향에 반대되는 현상들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원심력적 분화경향에 대한 반경향은 보수적 시민운동 내부에서의 진보적 목소리가 커지게 되는 것으로도 나타났고 또한 진보적 시민운동체의 출현으로도 나타났다. 90년대 초반 이후 한편으로는 온건한 시민운동체 내부에서 진보적 경향이 강화되고 다른 한편에서 새로운 진보적인 시민운동조직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년대 후반 시민운동이 반민중운동적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러한 성격은 상대적으로 완화되었고 동시에 친노동운동 혹은 친민중운동적인 시민운동도 출현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변화는 객관적으로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 까지의 시기에 노동운동을 비롯한 계급적 대중운동의 성장과 그것이 동반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급진화 효과, 다른 한편에서는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의 내적 균열과 위기, 구체적으로는 노태우정권 및 문민정부의 균열의 정치적 효과 때문이며, 주체적으로는 ‘진보적 시민운동’과 같은 대항적인 시민운동적 실천의 효과 및 보수적 시민운동의 전략적 실수 등의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일반민주주의의 사회적 공간의 확장을 진보운동의 강화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의 진보적 진지를 구축하고 강화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양한 일반민주주의적 이슈영역 혹은 이른바 ‘신좌파’적 이슈영역에서 진보적 운동을 확충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예컨대 반부패문제, 특검제 문제 등은 그 자체가 계급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민주주의 투쟁에 어떻게 개입하면서 진보운동을 다양한 사회영역으로 확장할 것인가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예컨대 반부패세력은 진보세력은 아니나 진보세력은 본질적으로 반부패세력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일반민주주의적 투쟁에서 진보세력은 선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다양한 새로운 이슈에 대한 ‘진보적 운동진지’로서의 ‘진보적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9).
다음으로 제도정치영역의 확장은 한편으로는 ‘제도정치에 의한 사회운동의 포섭’과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제도정치 진입’의 가능성을 동시에 가져오게 된다. 반독재 시기의 말기에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결합’이 나타났다고 하면,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는 ‘(재포섭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분리’를 동반하게 된다. 여기서 진보적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여기에서도 두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사회세력화의 연장으로서의 정치세력화와 둘째는 일부 사회세력의 제도정치세력으로의 ‘이전’의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계급적 대중운동 등 사회운동에 기반을 두지 않고, 그것을 ‘출신배경’으로 하여 ‘제도적인’ 정치세력으로 변화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진보적 사회세력의 정치세력화는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의 실패와 파탄의 경우 대중들의 반동주의적 지향을 저지하면서 진보적 정치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된다. 보수주의적 세력들은 개발독재의 주체이자 하수인이었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국민적 기반이 약화되어 있고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은 반독재투쟁에 대한 저항자였기 때문에, (잠재적인) 국민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크게 존재(반독재투쟁은 자유주의적 세력과 진보세력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졌음)하고 있다. 바로 그 기초 위에서 문민정부와 국민정부가 존재하였다. ‘온건자유주의’ 혹은 ‘중도자유주의’의 집권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중도자유주의 집권 이후이다. 국민의 눈에서 보면, 문민정부 및 국민정부 집권을 포함하여 반독재세력의 집권의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즉 국민들의 눈에나 혹은 보수파들의 눈으로 보면, 문민정부나 국민정부는 60~80년대를 주도하였던 산업화세력에 대응하는 ‘민주화세력’의 주도기로 보여진다. 국민정부 까지 파탄날 경우, 국민들이나 보수파들의 눈으로 보면, 민주화세력의 국가운용능력은 부재한 것으로 된다. 보수세력은 반독재세력(민주화세력)도 ‘별볼일 없고’ ‘개발독재세력(산업화세력)’도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공세를 펼 것이다. 현재의 사회운동세력의 과제는 국민정부를 이어가는 대안적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민정부의 파탄이 ‘정치적 허무주의’과 사회심리적 반동화 현상을 동반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이 보수파(한나라당 등)에게 넘어갈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사회진보화를 추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정부의 파탄 자체는 중요한 것은 아니나, 그것이 대안 없는 반동화로 나아갈 가능성 때문이다. 이것은 집권의 사회적 기반이 자유주의적 세력의 손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진보적 정치세력이 새로운 수권세력으로 존재하면, 자유주의적 세력의 파탄은 진보세력에게 정치적 기회로 나타날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 반동적인 결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정치사회적 반동화의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것은 국민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정부의 위기는 보수세력에게도 기회이고 진보세력에게도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국민정부의 위기를 진보세력의 기회로 만드는 포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민정부와 국민정부의 시기에는 그것과 싸워서 그것을 ’붕괴‘시키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갖는 가능성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대체정치세력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이용한다고 할 때는, 노동자계급 및 진보세력의 ‘정치적, 사회적 시민권’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을 포함한다.
여기서 진보적 정치세력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대체정치세력을 단순히 ‘정치적’으로만 성장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것의 충분한 계급적, 국민적 기반을 성장시키면서 동반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기반이 없는 진보‘지향’ 정치세력이 될 것이고 그래서 정치적 힘도 취약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적, 시민적, 국민적 기반을 어떻게 확장하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한 진보적 정치세력을 성장시킬 것인가하는 점이 중요하게 된다. 여기서 진보적 정치세력이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 향후의 정치의 전망을 필자는 “국민정부 붕괴→보수(혹은 보수반동)세력 집권→민중적 투쟁의 고양→자유주의적 세력과 기타연합세력의 재집권→보수반동세력 재집권→민중적 투쟁의 고양→진보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연합 집권”과 같은 경로로 전망해 보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라고 하는 새로운 지배의 조건은 저항진영의 보다 다층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어떤 점에서 80년대의 진보운동은 경직된 개발독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투쟁이었다고 하면, 87년 이후의 진보운동은 보수(補修)하고 있는 지배의 문제점에 대응하면서 저항의 심화와 확산을 도모하여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고 하겠다.
문/제/제/기
1) 역사적으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이 결합해서 상당히 큰 힘을 발휘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87년, 혹은 96~97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결합하기도 하고 분열하기도 했지만 결합했을 때 상당히 큰 힘을 발휘했었다. 그런 면에서 시민운동이 친노동적인 성향, 즉 진보성을 가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매우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2) ‘예외국가에서 정상국가로의 이행’이라는 부분에서 근대화, 민주화 개념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물론 개발독재라고 하는 파시즘적 정치형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민주화라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지향하는 중요한 범주로 제기된 것은 이해가 가지만, 경제적 근대화, 정치적 민주화가 최종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정상적 민주주의라고 하는 사회적 성격을 가진 체제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느냐 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화, 근대화가 가진 한계를 미리 준비, 예상하면서 지금의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3)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갖는 한계, 즉 김영삼과 김대중이 87년까지는 반파쇼 운동을 같이 했지만 87년 파시즘을 극복하는 역사적 과정이 파쇼군부독재를 실질적으로 궤멸시키지 못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김영삼이 3공, 5공 세력과, 김대중이 3공 세력과 연합해서 정권을 장악했다는 것을 본다면 발제문에서 말하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을 역사적으로 극복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성을 갖추면서 사회적 내용까지 확보하는 과정은 좌절된 것 아닌가?
4) 김대중 정부 하에서 민중적, 시민적 개입의 여지가 확대된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과 함께 그러한 참여, 개입 공간의 확대가 갖는 과거 역사 속에서의 한계가 동시에 포착되어야 한다. 개입의 공간이 커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어떤 식으로 개입해야 하는가가 동시에 분석되지 않으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고 그것을 지배계급이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라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것, 즉 그것은 노동운동의 개입공간일 수도 있지만 지배계급의 지배구조 재생산의 공간일 수도 있다.
5) 수동혁명이라는 것은 지배계급의 전략변화를 설명하는 것인데, 수동혁명을 말할 때는 전반적인 계급문제를 말하면서 그 의미 자체는 국가권력의 재조직화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 수동혁명이 함의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재조직화를 통한 사회 전체의 재구조화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수동혁명의 계기들의 정치하게 설정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87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수동혁명이 성공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6) 김대중 정부가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내부의 부르주아 세력과 모순관계에 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수동혁명을 좌절시키는 노동자, 민중과의 관계에서 보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와 연관해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 보수적 부르주아지를 대당으로 놓는 것에 반대한다. 현 시기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개혁, 즉 정상적 시장개혁이라는 것이 노동자, 민중에게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7)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영역은 무엇이며 두 운동의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연구소의 경우 인권, 환경, 여성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여러 문제들을 자본관계의 응축이라고 보고 있고 그것을 과제로 상정하고 있는데, 그럴 때 다양한 접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만나는 과정에서 한계가 있는데, 시민운동의 파업에 대한 태도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것은 곧 시민운동의 탈정치화라고 할 수 있으며, 돌파구는 시민운동의 민중운동화 아닌가 생각된다.
8) 풀란차스에서 가져온 예외국가/정상국가 개념은 유럽중심적인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생산적 복지국가를 관철하려는 흐름을 구분하는데 네오코포라티즘적으로 보면 생산적 복지국가 역시 신자유주의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9) 분석이 지나치게 지배역학 중심으로 되어있다. 신자유주의를 정책의 문제가 아닌 단계의 문제라고 본다면 자본운동에 대한 부분을 분석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종속에 대한 문제설정이 빠져 있다.
10) 시민사회, 혹은 시민운동에 대한 노동운동의 개입, 혹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라고 말하는데, 시민사회라는 것을 계급정치의 장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제는 시민운동에 보다 급진적인 인자들이 들어가거나 개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 이에 대해서는 조희연, 1998,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당대, 3장 5절 참조.
2)이것을 국가, 정치사회 및 시민사회 내에서의 세력관계로 설명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2)이것을 국가, 정치사회 및 시민사회 내에서의 세력관계로 설명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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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보수 지향 혹은 정파 |
자유주의적 지향 혹은 세력 |
진보주의적 지향 혹은 세력 |
국가 및 국가관료 |
극우보수주의지향, 온건보수주의지향 |
온건자유주의 지향, 중도자유주의지향, 급진 자유주의 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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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혹은
제도정치영역 |
극우보수주의 정파, 온건보수주의 정파 |
온건자유주의정파, 중도자유주의정파, 급진자유주의정파 |
(온건진보주의 정파), (급진진보주의정파) |
시민사회 혹은
사회운동 영역 |
극우보수주의지향, 온건보수주의 지향 |
온건자유주의지향, 중도자유주의지향, 급진자유주의지향 |
온건진보주의 지향, 급진진보주의 지향 |
3) 국가에 대한 민중진영의 투쟁은 국가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내재하는’ 것이라는 풀란차스의 지적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Poulantzas, N., 1978, State, Power and Socialism, Verso.
4) 80년대 이후 전세계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지배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신자유주의의 압도성에 비하여 사회민주당 정권의 복귀를 통한 정치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신자유주의적의 국내적 관철과정에서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의 경향 속에서 과거의 조합주의적 성격을 유지하는 ‘신조합주의’적 경향도 존재한다(J. Pack, 1996, The Regulation of Labor Market. Polity).
5) 조희연, 1998, “제2의 건국운동과 시민사회, 그리고 사회운동”, 학단협․민교협․민주노총 외 주최 토론회(김대중 정부의 정치개혁), 1998. 10.21., 대한성공회대성당 국제회의실.
6)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로서는 조희연,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당대, 5장 참조.
7) 물론 여기에는 ‘개혁의 관료화’, 즉 국가기구를 개혁하려 하기 보다는 국가기구의 통제능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개입된다.
8)Cho, Hee-Yeon, 1996, "The Democratic Transition and the Change of Social Movements in South Korea", Prepared for the Panel, "The Aftermath of Democratization in South Korea", at the Annual Meeting of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Honolulu, Hawaii, April 11-14, 1996.
9) 여기서 진보적 운동진지를 “진보적 ‘시민’운동”이라고 부르느냐 않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80년대 처럼 개량과 혁명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개량의 영역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개량’적 이슈에 대한 ‘혁명’적 접근과 개입을 행하는 것이다. 조희연, 1998,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당대, 5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