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똘마니들 |
현장에서 미래를 제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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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상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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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럼
똘마니들
김 상 태
문학평론가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와 그 한계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조금만
옛날로 돌아가 본다면 이는 끝도 없는 이야깃거리이기도 했었다.
원래 멀리 있는 것은 헷갈린다. 그가 인동초의 신화를 누적하고
있던 시기, 아직은 야당의 당수에 머물고 있던 그 시기에 공상
속에 있던 김대중 정권은 확실히 아리송하고 몽롱한 그
무엇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 어쩌면 우리는 해방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환상이란 것이 이젠 속고쟁이 하나 남김없이 껍데기를 벗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계 따위가 운운될 처지가 아니다. 그 정권이
이전의 정권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바 예컨대 YS 정부나
전두환 정권에 대고 한계라는 표현을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한계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계를 말하는 것인데 YS나
군부정권에 ‘그럼에도’에 해당하는 뭔가가 있을 리 없거니와
우리가 거기에 대고 한계란 말을 운위했던 적은 또한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해서 우리는 해방의 8월에 난데없이 해방감을
덧붙여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DJ정권! 정말이지 이젠 됐다.
참으로 그만하면 이제 된 것이다.
그리하여 파국에 이른 영화장면에서 시선을 돌리듯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가던 길을 계속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시선에 스치는 것이 하나 있다. 명패마저 위풍당당한 그것,
쥐 떼처럼 기어다녀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그들. 바로
한나라당이다. 내친 김에 잠시 잊었던 요 쥐 떼들을 한번 정리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얘기는 그 얘기다. 별로 시간이
걸릴 일도 아닌 것이 분명하므로 잠깐만 짚어두고 가면 될 것
같다.
얼마 전 광복절에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있었다. 그 중엔 재벌 개혁 방침이라 부를만한 내용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뭔지도 잘 모르겠고 실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게 보일 리도 들릴 리도 없다. 반면에 깨소금
씹히듯 보이고 들린 것은 이것이었다.
‘정부 재벌 정책은 사회주의적 변혁이다.’
건빵 먹다가 별사탕 깨물었을 때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면 정부 재벌 정책이 사회주의적
변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이게 바로 우리의 귀여운
생쥐들 한나라당의 재롱이다. 정말 끝내 주는 친구들이다.
아무튼 우리하고 별 상관없으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만감이
기묘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이 생쥐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돌아보면 군부정권은 그 색깔이 꼭 깡패조직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대통령으로 표상되는 두목은 영화에서 협객 흉내를 내는
깡패두목과 너무도 닮았다. 90도로 허리를 꺾는 부하들 또한
같은 영화의 졸개들과 너무도 닮았다. 그렇게 유추하면 과거
군부 두목들은 제법 근사한 데가 있다. 뭐니뭐니 해도 깡패
조직은 두목의 그늘이 커야 한다. 때문에 그렇게 근사하게
해먹기도 했다. 밤거리 번화가에 검은 양복의 건장한 허우대들이
거리를 쓸고 갈 때면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은 겁이 나서 쳐다도
못 본다. 그리고 과거 군부대통령이 지나갈 때도 상황은 똑
같았다. 이 위세 만점의 침팬지들은 그렇게 행복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주지육림에 바나나나 까먹으며 늘 만고 땡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찌그러지고 사라질 때도 역시 같은 영화를
패러디했다. 사시미 칼에 숨이 끊어지는 깡패두목, 또는 자유당
때 이정재라는 깡패처럼 법정에서 애결복걸 아니면 땡강으로
난장을 떨던 깡패두목, 권불십년이란 말이 수천년 지나도록 세
살박이 애들의 금언인데도 이들은 오로지 짧고 굵게 살 뿐이다.
참으로 지독한 건달들이었다.
오늘의 한나라당은 어떤가. 두목이 사라지고 세력권에서 밀려난
어중이 떠중이와 또한 닮지 않았는가? 우선 두목이란 작자의
풍모가 영 어설프다. 용모나 표정부터 그릇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두목자리를 지키려고 용을 쓰는 게 차라리 안쓰럽다.
밑의 졸개들은 아는 게 그것뿐이니 욕설에 깽판 밖에 없다.
속으로는 의리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도척이들이면서 흉내
하나는 진짜 깡패를 뺨칠 만큼 리얼하다. 그러니 어쩔 거냐
이거다. 시대와 조건은 아예 묻지 않는다. 정말 굉장한
사람들이다. 사회주의라니? 아직도 그런 소리를 떠드는 걸
보노라면 그들의 정신연령이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물불 안
가리고 욕설을 지껄여대는 깡패들과 꼭 닮았다. 내용은
상관없다. 무조건 크게 난리치는 것만이 능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자. 우리가 앞으로 그들을 똘마니들이라
부르는 것이 어떠한가. 걸맞는 이름을 부쳐 주는 것도 보시라면
보시이고 자비라면 또한 자비인 것인즉, 되묻건데
‘똘마니들아 너희들의 새 이름이 과연 어떠한고?’
단순한 냉소나 비양거림에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한
시대, 한 국가를 지배했던 권력의 속성과 양태인 것이며 그
속에서 삶을 지내온 우리들 자신의 습관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다급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가장 표피적이고 자극적인 감각이나
감정에 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그들의
폼생폼사가 먹힐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대중과 더불어 참으로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유령의 웃음소리가 새삼 섬짓한
느낌을 준다. 짚어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한 번
더 신들메를 조이게 된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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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9-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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