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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 정책에 대해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48호
채만수





김대중 정권과
노동운동의 재벌개혁












【특집】

김대중 정권의 재벌개혁 정책에 대해서
채 만 수 (부소장)


노동운동 진영의 재벌개혁(해체) 정책에 대해서
곽 탁 성(편집기획실장)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과 함께 많이 회자되었던 용어는 재벌개혁일 것이다. 한국사회에 반재벌의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재벌문제가 요즈음과 같이 전면적으로 거론되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자본가계급에서부터 소브르조아와 노동자계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노동운동내에서도 다양하게 이 사안에 대한 입장이 제출되어 왔다. 대우그룹에 워크아웃조치가 최근에 내려지면서 이 논의는 더욱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이번호 특집 『김대중정권과 노동운동의 재벌개혁』에서는 재벌개혁에 대해서 자본가계급과 그 대변인인 정권, 소브르조아 그리고 노동운동진영이 제기하고 있는 재벌개혁의 내용과 그 대립지점 등을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애초에는 자본가계급과 소브르조아를 나누어서 다루려고 했으나 필자사정으로 하나의 글로 묶게 되었고 큰 틀에서 조망하는 방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앞으로 더욱 본격적인 이론적 접근과 검토가 노동운동진영에서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특
집

채 만 수
부소장


특/집
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 정책에 대해서







‘개혁’의 종파적 진실

국민총생산에서 소수의 재벌기업군이 점하는 비중의 통계를 구차하게 들 것도 없이 재벌, 다소 정확하게 표현하면 거대화한 토착 독점자본들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의 하나로 되어 있다. 군부도 있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집권 정치세력도 있고, 경찰도 있고, 국세청이니 국가정보원이니 검찰이니 하는 등등의 기타 막강한 관료기구․관료집단도 있지만, 그리하여 표면상으로만 보면 그들이 재벌들 위에 군림하면서 패권을 행사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 역시 사실은 저들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그 의지를 대변하고, 그 지배를 보장하는 기구라는 점에서는, 물론 그것이 전체는 아니지만, 결국 그 독점자본에 근거하고 그에 예속된 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정권이 중앙일보 사장을 구속하니까 그 신문사 측에서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영원하다”고 앙탈했다는 기사를 우리가 읽는 것처럼, 70년대 말엽 박정희 유신정권의 서슬퍼런 위압 하에서도, 아직도 생존하여 가히 초법적인 행동과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모 재벌 총수가 신입사원들을 모아 놓고 “정권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영원하다”고 일갈했대서 온 장안이 수군댄 적도 있었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는 점에서 재벌에 필적하거나 혹은 그 우위에 있는 힘은 일반적으로 ‘외세’라고 불리는 제국주의밖에는 없지 않나 싶다.ꠏꠏ 물론, 그들에 대한 대항력으로서의 노동자계급․민중의 힘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 근본적인 힘이다.
아무튼 재벌의 힘과 영향력이 이토록 세고 또한 갈수록 세지다 보니 그들의 범죄 및 범죄적 횡포 역시 갈수록 우심해서, 정치적․사회적 격변의 고비고비마다 그들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고, 또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받아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의 한 가운데에서, 아마도 그러한 위기의 폭발에 힘입어 집권하게 된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극복과 더불어 재벌개혁을 이 정권의 주요 과제인 것처럼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많은 경제․사회학자나 민주노총 제1기 지도부 등등, ‘진보적’임을 자임하는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원망(願望)에 답이라도 하듯이 집권 후 김대중 정권은 꾸준히 여러 ‘재벌개혁’ 정책들을 추진해 왔는데, 최근 대우그룹 계열기업들에 대한 이른바 ‘워크아웃’(기업경영개선?) 결정, 삼성 그룹 총수 이건희의 처남이자 중앙일보 사장이기도 한 보광그룹의 사주 홍석현의 구속, 5대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수천억 원의 과징금 부과, 한진그룹의 총수 조중훈 일가 등에 대한 수천억 원에 달하는 탈세 추징 및 고발 등등에서 그 재벌개혁 정책은 그 실천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그 동안 ‘재벌개혁’을 주요 깃발로 내세워온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응원하고 나섰다. 예컨대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구속을 둘러싸고 중앙일보와 한나라당 등이 ‘언론 탄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자 시민단체들이, 탈세 등 범죄에 대한 응징이라는 정부와 국민회의의 주장에 따라서, “철저히 응징하고, 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며 일제히 촉구하고 나선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충돌과 그에 따른 소란은 정말 탈세 등 범죄에 때한 응징과 그에 대한 부당한 앙앙불락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그것은 순진한 사람들이 속내도 모르고 주장하는 무언가 투명하고 공정한 것으로서의 ‘재벌개혁’을 지향한 것이며,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열음들인가?
정부와 그를 지지하고 나선 시민운동단체 등의 이데올로그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똑같은 이 대답은 그것이 정부나 국민회의 등 권력 담당자들의 그것이냐, 시민운동 단체의 그것이냐에 따라서 사실은 그 의미하는 바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시민운동단체들이나 그 이데올로그들은 ‘개혁’이라는 말로써, 비록 주관적이지만, 무언가 보다 합리적인 것, 보다 효율적인 것, 보다 공평한 것으로의 개변(改變)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비록 정부가 그렇다고 주장하고 선전하지만, 사실은 그 지향도 그 예견되는 효과도 전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권력의 교체에 따라 이권의 분배방식을 재편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이고 파열음일 뿐이다. 말하자면, 깡패들의 나와바리 싸움에 따르는 칼부림이나 소동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그것을 ‘개혁’이랍시고 초들고 나서는 시민운동단체들이나 그 신사 분들은 참으로 애처로울 만큼 순진하고 어리석다.
그에 비해서 권력의 핵심에 포진해서 이권의 재분배에 직접 참가하고 있는 관료들이나 정치모리배들은 참으로 위선적이지만 소름이 끼칠 만큼 자신들의 이해에 충실하다. 그들은 개혁이란 말로 역시 합리․효율․공평을 선전하지만 실제로 하는 작업은 과거의 권력으로 통해 있던 이권의 파이프를 자신들에게 돌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구 권력과의 인연의 끈이 너무 질겨서이든, 새로운 정권의 ‘민주주의’라는 수사(修辭)에 다소 방심해서든, 현 권력집단 과거에 쌓은 악연의 여운 때문이든, 기타 어떤 이유에서이든, 이권의 새로운 흐름이 원활치 못하거나 풍부하지 못할 때, 그대 그 상대에게 가해지는 폭력․응징이 바로 법이요, 사정이요, 개혁이다. 요컨대, 이렇게 자신들을 향해서 이권을 재조직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개혁의 실제 내용이고,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의 개혁의 객관적 내용인 것이다.
좀 지나친 규정이라고? 그렇다면, 그러한 이권을, 따라서 생사를 건 싸움에서는 칼부림과 더불어 공갈․협박, 악다구니도 주고 받게 마련이니, 이 악다구니들 속에 기묘하게 표출되는 진실을 살짝만 들여다 보자.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을 탈세, 배임 등으로 수사․구속하니, 이를 언론탄압이라고 규탄하고 나서는 중앙일보나 한나라당조차 그 ‘탈세․배임’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 않다. 구속된 홍 사장 자신도 그 점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탈세․배임 등의 범죄는 진실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구속을 ‘규탄’하고 있다니?
정부와 언론은 중앙일보의 규탄과 앙탈을 재벌언론의 추한 행태로 돌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그것에 대해서는 ‘탈세옹호당’이라는 독설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것에 충분히 동의․동감한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충분한 것인가? 아니다.
뻔뻔스러움 속에서 진실을 보여 주는 저들의 ‘규탄’의 논거를 보자. 그것은 범죄 사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하면서 “그런데 왜 하필 그에게만 ‘표적 사정’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저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진실은 탈세․배임․횡령 등의 범죄가 우리 사회 지배계급에 보편적이란 사실이다 ꠏꠏ (어디 그들의 범죄가 탈세․배임․횡령 등에만 그치겠는가만 말이다). 그것을 홍석현 사장 본인은 검찰에 출두하기 전에 ‘관행’․‘관례’라고 표현했던가?! 실제로, 한진그룹 사건이 발표되자 한진그룹 일부에서 ‘이건 중앙일보 사건에 대한 표적 수사 시비를 희석시키려는 불똥’이라는 반응이었다는 보도도 있고, “재계에는 ‘다음 세무조사는 어디냐’는 등의 ‘재벌괴담’이 무성하다”는 국회 발언도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범죄는 보편적인데 사정되고 응징되는 것은 미운털이 박혀 표적으로 지목된 자들뿐이라는 것, 개혁이란 결국 이권의 재조직이란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사실, 만일 ‘개혁’이 그렇지 않고 뭔가 긍정적․민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면, 지금쯤이면 그렇게 어마어마하고 살기등등하게 ‘개혁할’ 꺼리도 별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살기등등한 ‘개혁’ 작업은 “구악을 일소하겠다”며 총을 들고 나선 저 5.16 쿠데타까지는 최소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그후 10월유신, 전두환 정권, 김영삼 정권 등을 거치면서 결코 그에 못지 않은 강도로 거듭돼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명확한 것은 “어제는 어제의 논리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김종필)는 점이고, 마찬가지로 오늘의 개혁은 당연히 오늘의 논리에 따라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러면 개혁을 위한 오늘의 가장 절실한 논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년 봄에 있을 총선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은 자신의 ‘현’ 임기 중간 시기에 걸쳐 있는 내년 총선에서 기필코 지배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오늘 ‘재벌개혁’을 위시한 나와바리 재구획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만일 내년 총선에서 지배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현 정권은 정권 후기의 이른바 ‘레임덕’, 즉 지배력의 불안정에 심각히 시달려야 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차기 정권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당연히 현 정권의 담당자들에게는 악몽의 시나리오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정치개혁’이니 ‘신당창당’이니 하는 대중 기만적인 정치광대극에뿐만 아니라, ‘재벌개혁’ 운운하면서 이권구조의 재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이권의 재분배구조를 명확히 정비해 놓지 않으면 총선에서의 승리 전망도 불투명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되면 그것을 재정비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종파적 이익을 넘어서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이른바 재벌개혁 정책이 그 종파적 이익에만 봉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일 그러한 성격의 것이라면, 그것은 지배계급 즉 독점자본가계급 일반의 대대적인 저항으로 결코 지금과 같은 추동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에서 말한 것이 개혁의 종파적 성격이요 진실이라면, 김대중 정권의 재벌개혁은 또 다른 성격, 즉 계급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내외 독점자본 일반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 대립을 조정한다는 성격이다. 이 점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은 역대 어느 정권의 그것과 기본적으로 다름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정권의 그것과 비교한,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의 특징적 성격은 외환금융위기와 그에 개입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방침에 의해서, 구체적으로는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재벌들이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과 97년 12월 초의 IMF와의 협약에 의해서 규정되었다. 우선 IMF와의 협약에서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공표된 공식적 내용은 대개 기업의 이른바 ‘투명성’ 제고 혹은 확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이 이러한 경우에는 공표된 것보다는 공표되지 않은 것이 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보다 더 힘을 쓰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 혹은 재벌개혁 정책은, 많은 순진한 이들이 ‘개혁’으로 간주하고 또 대중을 그렇게 순진하게 길들여야 하는 자본의 언론이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히 그렇게 선전하는 여러 돌출적 조치들, 예컨대 특정 재벌들에 대해서 그 탈세나 기타 범죄를 응징한다거나 그 총수를 구속하는 등의 억압적 규제적 조치 속에 그 실질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지배계급 내에서 권력을 다투는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이란 점에서 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대로, 종파적인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지배세력 일반의 이해를 대변하고 수호해야 하는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이란 점에서 본다면 극히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에 불과하다.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위기에 처한 재벌을 위기로부터 구제하는 것이고, 그것은 정권의 출범 이전에 대통령 당선자로서 위기 관리를 시작한 이래의 여러 정책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구체화되었다.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원인과 본질은 과잉생산이기 때문에 그 정책의 핵심은 당연히 이 과잉생산을 해소 내지 축소시키는 데에 모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과잉생산의 해소 혹은 축소는 부르주아적 생산과 시각에서는, 대중의 생활 수준의 전반적 개선을 통한 시장의 절대적 확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편에서는 절대적으로 취약한 자본과 생산의 폐기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제경쟁력의 제고를 통한 시장 점유율의 확대를 통해서 이루려고 시도된다. 그를 위한 여러 정책들을 그들은 ‘구조조정’이란 말로 총괄하고 있다.
이 구조조정을 위한 구체적 정책이 위기 초기에는 IMF의 권고 혹은 압력에 따라서 주로 고금리를 통한 취약한 자본의 도태에 모아졌다. 그런데 이 시기의 고금리는 한편에서는 정책적으로 조장된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과정 그 자체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이 시기의 고금리는 경제위기 초기의 지불준비금의 폭증에 의한 화폐핍박을 반영한 것이다. 이전 같으면 국가가 불환은행권의 증발, 즉 통화증발을 통해서 고금리 압력을 다소는 누그러뜨렸던 것을 IMF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권고에 따라 방치하고, 부분적으로는 공적 금리의 인상을 통해서 조장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적합할 것이다.
금리의 상승 혹은 변동은 전반적이면서도 한편에서는 기업의 신용도나 기타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개별 자본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에는 차이가 있는데, 이 점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비재벌 계열의 기업과 자본,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영세․중소자본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 경제위기 초기에 도태된 것은 주로 이들 자본이었다. 물론 재벌기업들에도 타격이 없을 수 없어서 그들 중에서도 부채 비율이 특히 높은 그룹과 하위 그룹들이 상대적으로 특히 타격을 받으면서 하위 재벌의 슬림(slim)화, 상위 5대 재벌의 비대화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제 98년 2/4분기 말쯤에 오면, 영세․중소기업 등의 대대적인 도태에 따라 금융시장에도 자금 수요에 변화가 발생하게 되고, 또한 장기적인 고금리 행진은 재벌기업을 포함한 자본 전반에 과도한 부담을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해졌고, 그것을 반영한 것이 이 시기의 ‘긴축으로부터 부양으로의 전환’이었다.
이후 정책은 부양기조 속에서 경영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되는데, 그 한 반영이 이른바 ‘빅딜’의 추진이다. 이 ‘빅딜’은 위기 초기부터 구상되었다가 이 시기에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그 내용과 목표는 재벌 그룹 간에 특정 업종 기업들의 소유․경영권의 맞교환을 통해서 그들 업종들에서의 독점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대상 기업의 자산 평가나 수익 전망 등에서 이해 당사자 간에 견해를 달리할 수 있고, 많은 면에서 각 재벌 그룹의 구체적 이익과 충돌하기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커다란 성과를 올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던 중 금년 6월 말 - 7월에 ‘대우사태’가 표면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시 정책의 재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책표면에 급부상한 것이 이른바 ‘워크아웃’인데, 이는 위기 발생 후 금년 2/4분기까지는 주로 위기에 봉착한 하위 재벌그룹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워크아웃의 내용은 위기 기업들에 대한 국가 및 국영 금융기관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서 그 기업들을 파산․도태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그 기업들의 파산․도태가 불가피하게 불러올 연쇄적인 파산과 타격을 방지하고 축소하기 위한 조처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위기 이후 약 2년에 걸쳐서 대기업의 파산과 그에 따른 전반적인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적으로, 즉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지출한 자금 규모만도 무려 60조원을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고, 이는 당연히 모두 직․간접적으로 재벌 구제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재벌․독점자본의 구제정책을 도외시하고, 이른바 워크아웃에 따른 몇몇 개별기업의 경영․소유권의 변화나 기타의 경영 합리화 정책 등을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의 근간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초국적 자본 진출․지배의 본격화, 그리고 노동력 배제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재벌․독점자본 구제정책 중에서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특히 강화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초국적 자본의 진출과 지배가 본격화되고 있고, 김대중 정권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이들 초국적 자본의 진출과 지배는 금융․자본시장은 물론 기업의 소유․경영을 위한 직접투자에서도 대폭적으로 강화되고 있고ꠏꠏ그 대강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4주년 심포지움 ꡔ구조조정의 새로운(?) 국면과 노동운동의 과제ꡕ 중 제1주제, 「구조조정의 새로운(?) 국면과 국가-자본의 전략」(자료집, pp. 22-29)에 정리되어 있다ꠏꠏ, 또한 토지․건물 등 부동산 소유 쪽으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특히, 대우 그룹의 좌초를 전후하여 본격화되고 있는 대우 자동차 등 초대형 기업의 매각 협상은, 그 귀추 여하에 따라, 초국적 독점자본이 국민경제에 대한 지배를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초국적 독점자본의 이러한 진출은 그들 자본의 입장에서는 물론 자본 및 상품 시장의 확대를 의미하고, 특히 주요 부문에서의 세계적인 독점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진출과 지배를 강화하고 있는데, 자신들이 후원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의 지지․지원으로 보다 유리한 조건 속에서 임은 물론이다. 재벌 등 토착자본의 입장에서 초국적 독점자본의 진출 강화는 한편에서는 국내시장에서의 새로운 경쟁강자의 출현으로서 가능한 한 기피․저지하고 싶은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첫째는 그 자신 또한 세계시장에 상품을 내다 팔고 투자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서 상호주의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부의 곁가지를 잘라 팔아서라도 부채․자금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그 진출과 지배는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초국적 자본의 진출에 따른 ‘국민경제의 지배 강화’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이를 다 열거하고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은데, 다만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점은 그것이 결코 ‘경제적인 지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중남미의 사회경제적 혼란과 빈곤, 그리고 정치적 파시즘은 널리 알려진 대로인데, 우리도 지난 70년대 초에 수출자유지역 등의 설정에 따른 해외투자 유치를 본격화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파시즘이 강화되는 것을 이미 경험하였다. 물론 착취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현지정권이 예방하고 억압해줄 것을 바라는 해외자본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결국, 초국적 독점자본의 진출과 지배가 확대된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억압의 강화 가능성이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사실은 그것을 넘어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권익향상을 위해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에 나설 때 그들의 투쟁이 외국군에 의해서 짓밟힐 가능성이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 현 김대중 정권의 ‘기업 해외매각’ 등의 행각에 대해서 각별히 주목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저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대로 지금 ‘기업의 해외 매각’은 위기에 처한 독점자본의 위기 탈출책의 하나라는 경제적 기초가 있고, 이 점이 김대중 정권의 그러한 책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리화해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농민은 굶어 죽어도 종자 자루는 베고 죽는다’고 했던가? 팔아먹는 대신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은 결국 국유화 혹은 공유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정부도 지금 이른바 ‘워크아웃’의 한 단계로 구제기업을 공유화하고 있긴 한데, 문제는 이 공유화를 (해외)매각을 위한 잠정적 단계로 조정(措定)하고 있는 데에 있다. 즉, (해외)매각을 위한 공유화인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유화 내지 공유화는 그러한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획득된 생산력을 사회적으로 보존하고, 그것의 도태에 따른 실업 문제 등의 심각화를 예방하는 차원과 목적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김대중 정권의 재벌정책을 말할 때 놓쳐서는 안되는 것은 그 재벌정책의 이면으로서의 노동자 정책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점이야말로 김대중 정권의 정책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것이다.
그 정책은, 그것이 어떠한 외양을 띠던지 간에, 가능한 한 많은 노동자들을 생산과정으로부터 배제하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을 철저히 무력화시켜서 임금을 저하시키고, 착취강화에 대한 저항을 예방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김대중 정권은 그 출범 이전부터 이른바 노사정위원회 등을 조직하여 그러한 정책을 강력히 추진․실행에 옮겨왔고,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여러 시민단체들은 물론 이른바 ‘사회적 조합주의’ 등을 주장하는, 노동운동권의 일부 세력조차 이를 사실상 지지․지원해 왔다. 이들이 이렇게 김대중 정권과 독점자본의 노동자 배제 내지 노동자계급 무력화 정책을 사실상 지지․지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이 그들의 세계관의 제약 때문에 착취․지배․예속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양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갖지 못하고 경쟁력이라고 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컨대 문어발식 선단경영이나 총수 족벌경영의 해체니, 전문경영체제의 확립이니 등등을 주장하는 시민운동 단체 등의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 주장은 모두 이러한 경쟁력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독점자본의 경영합리화를 추진하는 것으로서, 그것에 부수되는 것은 당연히 노동력 배제의 강화 및 착취의 강화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벌 문제를 바라보는 데에서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부르주아적 생산 발전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그 착취를 지양해야 한다는 관점을 확립하는 것 또한 노동운동의 주요한 과제의 하나로 되어 있다.
(시민운동 단체 등의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 주장에 대한 비판에 관해서는 이전에 내가 쓴, 「‘재벌해체’, 감미로우나 빗나간 외침」[ꡔ당대비평ꡕ 제4호, 1998년 여름호] 등을 참조할 것.) 한/노/정/연

1999-10-11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