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노정연 > 현장에서 미래를 > 글읽기 ]

518과 노동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4호
남구현

정 ․ 세 ․ 초 ․ 점

5.18과 노동자


남 구 현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구위원)


5.18 광주민중항쟁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 5.18 문제를 가지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현재의 사태는 일차적으로 집권 세력이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따라 더 이상 5.18문제의 법적인 처리를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데서 촉발되었다. ‘공소권 없음 결정’과 ‘처벌불가’라는 입장 표명은 일단 법과 기본적인 역사적 양심의 문제이다. 따라서 주로 학계, 학생, 종교계가 앞장서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민족정기를 올바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준에서 5.18 내란 주동자 처벌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5.18과 관련한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5.18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가?

일단 이번 사태를 불러 일으킨 법적인 처리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헌법에 규정된 공소 시효에 관한 규정을 동원해 법적인 면죄부를 주려는 검찰의 시도는 공소 시효일의 기산점이 과연 언제 부터인가하는 문제부터 시작해 헌법 자체를 파괴하였던 자들을 헌법의 내부 조항을 통해 보호할 수 있는가하는 기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법학적 논쟁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법리적인 해석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헌법파괴적인 범죄를 저지른 후 양민 학살, 정적 숙청, 공포 정치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유지해 15년만 버티면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이미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못한다”는 강변은 또 어떠한가? 이미 현 정권에서는 5.18을 군사적 쿠데타 또는 군사 정변으로 규정한 바 있다. 쿠데타가 성공했다는 것은 다른 단서가 붙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권을 장악, 유지하는데 성공했다는 의미이다. 현 정부가 소위 민주화 운동의 전통에 서 있다면, 현 정부의 등장과 함께 이미 5.18 쿠데타 세력은 정권 유지에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처벌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해석에 따르면 5.18 쿠데타는 성공했으며, 아직도 성공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5.18 쿠데타 세력을 처벌 못하는 문민 정부가 아직 5, 6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장악, 유지만 하면 죄가 않된다는 해석은 힘이 정의라는 깡패 수준의 법 철학이다. 이 논리에 충실하자면, 5.18 학살 주범을 처벌하려면 쿠데타를 해서 성공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전국적인 항의 시위에 대해 어느 여권 인사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 방법을 통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방법을 통한 문제의 해결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왜 그 인사는 같은 논리를 우리 역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시켰던 5.18 세력에게는 적용하지 않을까? 그 인사에게는 양민학살과 쿠데타를 하는 힘은 정당하고, 이에 항의하는 힘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문민 정부는 5.18 군부 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는가?

군사 정권이 종식되고 문민 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반이 지났음에도 상식 이하의 법 논리, 앞뒤가 안 맞는 궤변을 일삼으면서 자칭 문민 정부가 군사 정권의 담당자들을 비호하는 이유는 아무리 간단하게 생각해도 단순한 법리적 해석의 문제를 넘어 선다. 이는 현 문민 정부가 기본적 성격에서 과거의 군사 정권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소위 문민 정부에 들어와 이전과 달라진 점이 무엇일까? 우리나라 역사 최대의 개혁이라 떠벌이던 금융실명제 이후 소액 예금주들만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은행에 가야 하는 불편이 생겼을 뿐, 가명․차명으로 검은 돈이 왔다 갔다하는 관행은 그대로 남아 있고, 처벌 규정이 없어 어쩌지 도 못한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과 같이 재수 나쁘게 정치적인 쟁점이 될 경우에만 문제가 될 뿐이다. 정치권에 대한 개혁은 몇몇 밉게 보인 잔챙이들에 대한 사정에 그치고 5, 6공 통치권자들의 처벌은 아직 요원하다. 그나마 이제까지 처벌되었던 자들조차 모두 사면, 복권된 상태이다. 교육개혁은 또 어떠한가? 세계화, 경쟁력 강화를 빌미로 편제 개편을 한답시고 온 대학을 들쑤시며, 국적없는 교육, 의식을 마비시키는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 교육개혁의 주체로 나섰던 전교조는 오히려 탄압대상이 되었고, 아직 불법인 상태로 남아 있다. 거꾸로 재단기금 남용, 임용시 금품수수 등 사학비리의 주범들은 다시 원위치하여 활개치고 있다.

노동자에게 문민 정부란?

소위 문민정부를 노동자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그나마 명목상의 개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현 대통령 스스로 개정할 것을 공약했던 노동악법은 아직도 노동운동 탄압의 도구로 되어 있으며 집권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개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문민 정부 들어서서 노동법을 적용하여 구속, 수배되는 노동자 수는 줄어 들지 않고 있으며, 불법 해고 노동자들은 아직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노동 조건이 악화되어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 수는 년 2천 명이 넘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연이은 장애인 노점상,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분신은 문민 정부에 들어와 민생 파탄과 노조 활동에 대한 음성적인 탄압이 얼마나 심각해졌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사회 기층 민중의 잇달은 분신은 5, 6공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민주노총의 출범을 앞두고 다시 대중적인 노조 지도자들에 대한 일대 검거령이 내려지는가 하면 노동악법 조항을 개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변 법안인 조폐공사법을 개정하여 조폐공사를 공익 사업장으로 지정함으로써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든지, 중소기업 육성 특별법에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하여 정규적인 노동시장을 교란함으로써 고용불안을 증대시키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편법적인 방식으로 노동관계법의 실질적인 개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문민 정부는 선거를 통해 민간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차이를 제외하면 반 노동자적이고 친 자본가적인 정권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정권과 다를 바가 없다. 소위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는 세력의 일부가 3공에서 6공까지의 과거에 뿌리를 둔 세력들과 함께 결집하여 민자당을 결성했을 때, 이는 마치 사이 나쁜 형제들이 자기들끼리의 싸움을 중단하고 공동의 적 앞에서 결집하듯이, 부르주아지 각 분파가 87년 이래 조직화 되어가는 노동자들에 대해 공동 전선을 구축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노협을 결성하는 바로 같은 날 민자당이 창당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민 정부의 개혁은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노동자들에 대해 초지일관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유지한다든지 개혁의 실종과 함께 보수로 회귀하는 현상은 출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5.18은 노동자가 중심에 선 민중 항쟁

이러한 시점에서 5.18은 우리 노동자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 부마항쟁의 촉발제는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었으며, 신군부의 반동체제가 들어서는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는 사북탄광 노동자를 위시한 전국적인 노동자 투쟁이었고, 광주 민중항쟁 당시에는 광주의 민중이 투쟁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5공이 성립되는 과정을 민중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광주 민중항쟁 당시 광주의 부유층은 일찌기 도주해 버렸으며, 사망자와 구속된 시민군의 대다수는 노동자, 농민, 영세 상인, 학생이었다. 3김을 위시한 정치권은 당시 군부와 민중 간의 대회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겠다는 환상속에서 민중투쟁을 자제하라고 권유하다가 신군부에 의해 간단히 무력화되었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항쟁을 지도한 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5.18은 광주의 시민들이 선거 민주주의를 확립하려고 나섰던 민주화 운동으로 볼 수 없으며, 민중 수탈에 기초하여 독재적 억압 속에서 진행된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억압하려는 군부에 대항한 민중 항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5.18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5.18을 민중 항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아직도 수탈과 억압의 대상인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5.18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다. 또한 5.18의 처리는 단순히 학살 주범 몇몇에게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해결될 것이 아니고, 항쟁 당시 해결하지 못한 민중해방의 역사적 과제를 완수하는 데에 놓여져 있다. 현재까지는 주로 학살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리문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출범을 앞둔 노동자 투쟁과 5.18은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민중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광주 문제의 해결은 오직 앞으로의 노동자 투쟁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야말로 법적, 정치적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적인 수준에서 5.18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5.18문제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역사에 맡기자는 것이다. 역사에 맡기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실제 역사에서 보여 주는 것은 이제 우리 노동자에게 맡겨진 과제이다. 한/노/정/연

1995-10-2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