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
현장에서 미래를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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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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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외국인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공청회를
다녀와서-
박 정 미
국제기획실원/ 서울대석사과정, 사회학
참관기
그들이 ‘인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편집기획실로부터 참관기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난
며칠 후, 난생 처음으로 국회의 넓고 반듯한 뜰을 거닐면서
약간의 후회와 난망함이 밀려옴을 느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 그리고 ‘법적 지위’에 대해서는 더더욱 아는 것이
없었던 나에게, 참관기에 대한 부담이 지그시 가슴을 눌렀던
것이다.
마침 그 때, 휴학을 하고 집에 내려가 있는 아주 친한 동기 한
녀석이 떠올랐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잡지를 만드는 공장을 다닌
적이 있는 그 친구는, 일이 끝난 후 야한 잡지를 한 권
슬쩍하려다가 감독관에게 걸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이것이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구나’를 느끼게
되었다고 해서 함께 웃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친구와 함께 일했던 동남아 이주노동자에
대한 얘기였다. 그들은 모두 두 명이었는데, 한국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주로 절단 등의 위험한 일들이 맡겨졌다고
한다. 반장의 욕설과 가벼운 구타에, 한국말이 서툰 그들은 그저
웃기만 했다고 한다. 그 웃음, 그 선량함과 치욕의 웃음이,
까맣게 잊고 있던 4년만에 갑작스레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 4년 동안 참 달라진 것은
없구나’라고… 몇 차례의 언론 보도와 외국인 노동자인권을
위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또 IMF 체제로 한국 경제의 신화가
일순간에 파탄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세계의 노동자들은,
‘그래 봤자 3세계’일 뿐인 한국에서 최소한의 시민권, 아니
생존권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목돈을 들여, 이미 쓰러져 버린
Korean Dream을 안고 끊임없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추방당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10월 2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1999년 외국인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공청회’는,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가 1996년 ‘외국인노동자보호법안의 입법 청원
3주년’을 맞아 주최하였다. 또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후원하였다. 이 공청회는 IMF 체제의 대량실업과
중․소기업 도산 등의 문제로 묻혀 버렸던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시금 적극적으로 공론화 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법의 정의를 상징하는 위선적인 여신의 동상과 고요함을
깨뜨리는 몇 대의 자동차만 없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웠을 가을 국회의 뜰을 지나, 국회도서관으로 들어섰다.
한산하던 복도와 달리 강당 앞에서는 한 사람이 크게 떠들고
있었다. 도서관 직원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포스터에 씌어
있었던 근조라는 글씨를 보고 ‘시위를 하러 왔느냐’며 떼라고
소란을 피웠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공청회 도중에도 그
사람은 참석한 사람의 숫자를 세어 갔다고 한다. 모든 국민의
목소리가 열려 있어야 할 국회 도서관 강당은 참 훌륭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바늘방석 같았다.
공청회는 40여명이 참석해 예상했던 것보다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외노협 회장인 이금연 씨가 사회를 보고
1)노동자로서의 권리-노동법, 사회보장법을 중심으로(최홍엽,
조선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2)거주자로서의 권리-출입국관리법,
국적법을 중심으로(정귀순, 부산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대표) 3)국제 인권법으로 조명하는 권리-ILO, UN조약 등을
중심으로(김선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4)선진
유입국의 사례-독일의 이주노동자의 권리(이종현, ‘99 독일
아리랑 대회장, 前 파독광부/유정숙, 재독 코레아협회
연구위원), 이렇게 4가지의 발제가 있었다(그러나 김선수 씨는
해외출장 중이어서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제토론에는
강수돌 교수(고려대학교 경상대학), 김해성 소장(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 동포의 집), 박석운 소장(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윤우현 국장(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
1국), 이정호 소장(대한성공회 남양주 샬롬의 집, 외노협
부회장)이 참여하였다.
산업연수생제와 연수취업제 그리고 거주권
먼저 최홍엽 교수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산업연수생제’와
‘연수취업제’의 문제, 불법체류 노동자 그리고 사회보장법상
지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산업연수생제’는
‘연수’라는 명목으로 3세계로부터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유입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연수’는
저임금의 초과착취를 정당화하는 기만일 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평등한 대우를 규정하는 국제법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또한 그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하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에 달하는 과다한
취업비용은 그들에게 무서운 족쇄가 되어, 불법체류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 대신, 정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1997년 ‘연수취업제’를 도입하였다.
이는 산업연수생에게 인정되는 3년의 체류기간 중 최종 1년을
산업연수에서 연수취업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주로
이주노동자들이 기술축적이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산업연수생제도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임금채권보장법이 불법체류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최소한의 인권과 경제적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국민연금법, 의료보험법과
고용보험법, 공공부조, 응급의료 등의 권리가 확장되어야
한다.
발제를 들으면서 몇 해 전 한겨레 21에 실렸던, 손발이 잘리워
지고 고용주로부터 갖은 성폭력과 구타를 당한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한국 정부를 원망하는 시위 사진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산업
재해를 당하고 자살을 선택한 이상관 동지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희생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외에도 하루에 7명의
이름 모를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에서 사망한다, 아니 살해되고
있다.
다음으로 정귀순 대표의 발제는 이주노동자의 거주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97년 말 25만 명에 달하던 이주노동자 중 10여만
명이 IMF 이후 한국을 떠났지만,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외국인노동자의 증가 요인을 한국의
경제회복에서만 찾는 것은 일면적 판단인 것 같다. 같은 시기에
경제위기를 경험한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자국에서 생존의
대안을 찾지 못하고 그나마 상황이 나은 국가로 유입되는 것은
한국의 경제 회복(이에 대해서도 논란은 많지만)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닐까.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외눈정책’이라고
개념화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 흥미로웠다. 곧 한눈은 부릅떠
계속 단속한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다른 한눈은 감아 묵인해 주는
식의 정부의 이중적인 외국인력통제정책이 불법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국민에게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도 가장 천민적인 형태로 착취하는 것을
방관, 조장해 온 정부의 태도를 가장 여실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는 이주 노동자의 필요성을 투명하게 인정하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독일 등의 국가와
극적으로 대조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이주노동자 중 60%
이상이 미등록 노동자이다.
이들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박탈된다.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들에게는 심지어 연수업체의 부도 상황에서도
업체와 거주지를 선택하고 이동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남는 것은 무조건 ‘견디는 것’이다. 또한
강제출국의 위협은 미등록 노동자의 인신 구금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대두된다. 놀라운 것은 외국인의 배우자가 한국인 남성일
때와 여성일 때 법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한국인
여성과 사실혼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등록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혼인신고가 되지 않고, 따라서 그들의
자녀는 미혼모의 아동이 된다. 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에게는 2년간의 체류비자가 허용되는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3개월, 6개월간의 단기체류 비자(F1)가 주어진다. 그리고 외국인
남성의 안정적 체류의 유일한 방법은 귀화를 통한 것인데,
외국인 여성의 경우 무시험 국적취득이 가능한 반면, 남성에게는
까다로운 귀화절차와 시험이 요구된다. 그리고 배우자
비자(F1)를 취득한 외국인 남성의 경우, 이 비지는 말 그대로
‘방문, 동거’를 목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악법들은 이주노동자의 노예적 지위를 영속화하고 그들이
보다 가혹한 착취에 노출되도록 한다. 그리고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에 대한 여남 차별의 문제는 호주제 폐지를 주창하는
여성운동이 외국인노동자 운동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사례, 조직화의 전망 그리고 제도개선
마지막으로 독일의 상황에 대한 이종현, 유정숙씨의 발제는
선진유입국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법적,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의 정책이
독일처럼 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반주변 국가로서
한국의 구조적 위치는, 저임금 착취가 가능한 식민지를 끊임없이
내부에 만들어내어야 하고, 그것의 대표적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노동력 유연화와 파트타임화, 하청과 외주이다.
이주노동자의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외눈 정책’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법적 보완을 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특별히
반인권적이거나 무능해서가 아니라, 매우 의도적인 것이며 또한
구조적인 것이다.
또한 외노협이 독일의 제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었다. 물론 우리보다 법적․사회적 제도가 훨씬
우월한 독일이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도 나은 제도를 가졌음에
대해서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근
독일에서 외국인, 특히 아프리카의 난민들이 대규모로
추방당했음을,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살해당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독일이 정책적으로 우리나라로부터
노동력을 유입하던 1960~70년대(이 때는 주로 사민당이
집권했다)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1990년대 후반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하여 외국인노동자 운동을 법적․제도적 개선 투쟁의
차원에서만 제기한다면, 애초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울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곧 그것은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의 맥락에서 위치 지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천적인 수준에서 어떻게 가능한지는 여전히 남는 숙제이다.
따라서 주제토론에서 비록 원칙적인 수준에서이지만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스페인 대우 비토리아 공장 파업과 미국
대학생들이 3세계 착취 공장에서 생산되는 구내 상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운동 등과 연관지어, 자본의 세계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강수돌 교수의 문제제기는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주노동자의 자기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윤우현 국장은 민주노총이 단체협약과 규약에 외국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지시하였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취업하는 중소 사업장의 경우는 민주노총에
소속되지 않는 경우가 다수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문제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얘기하였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산별노조로 전환했다고 해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 노동운동은
산별노조체제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어떻게 적극적으로 연대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김해성 소장은 현재 국회에 4개의 법률안이 계류 중이지만
사장의 위험이 있다는 점과 연수제도와 벌금제를 폐지하고
송출제도를 확립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또 박석운
소장은 항상적 캠페인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유형별
사례를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외국인노동자의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 방안을 강구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노동법을 해설하고, 중․소기업협동 조합을 압박하고,
지역운동과 연대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정호
소장은 일본의 향락 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의 1위가
한국의 여성이라는 측면과 아울러 외국인 노동자 문제 뿐 아니라
한국에서 여성향락 산업 종사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필요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주노동자 운동 활동가로 보이는 한 분이 윤우현
국장에게 독일에서 노사정 3자가 이주노동자를 합법화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언급하면서,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들의 동일노동,
동일임금권에 대한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요구하였다.
남겨진 과제들
이렇게 해서 공청회는 예상했던 것보다 1시간 여의 시간이 더
경과하여 끝을 맺었다. 공청회는 나처럼 ‘법’에 무지하다 못해
공포심마저 가지고 있는 문외한에게도 외국인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그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먼저, 외노협의 21개의 회원단체 중 반수 정도가 주로
카톨릭이나 개신교 등 종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것이
그 자체로서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의 성격이 경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이에 대한 투쟁의 맥락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난 뒤 사후적 수습이나(그것 역시 너무나
중요하지만), 법적․제도적 개선의 차원에만 머무를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웠다. 공청회의 성격이 ‘법적 지위’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싸움은
아주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공청회가
열린 국회는 싸움의 최초의 장소일 수도 있지만 최후의 장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이는 반대로 말하면, 노동운동의 실천과 담론의 영역이
여전히 협소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앞서
얘기되었던 민주노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이,
이주노동자의 착취가 발생하는 현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그들과 시혜의식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이는 산별노조가 만들어졌을 때,
단지 외국인노동자 분과를 만드는 것 이상의, 더 큰 실천을
요구한다.
셋째, 여성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의 착취와 가혹행위, 폭력 중
상당비율은 성폭력일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부재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공청회가 ‘노동자’의 법적
지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노동이 아니라 성산업에
종사하기 위해 유입된 여성들, 혹은 노동자로 왔다가 어쩔 수
없이 성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게 된 여성들의 법적 지위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점은, 1996년 입법청원 운동
이후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법적 투쟁의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이다. 국민을 위한 장기적 정치의 전망을 전혀 갖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생명에만 매달리는 국회의원들에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주 노동자,
그들이 ‘인간’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얻는 데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얼마나 거대한 것일까? 짧은 10월 해가 이미
져버린 국회의 앞뜰을 걸어 나오면서 착잡함을 금하기가
어려웠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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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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