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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노동조합 선거투쟁의 의미와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49호
구장회


지금 현장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선거투쟁의
의미와 과제
구 장 회
현대중공업 전진하는 노동자회 선전부장






1. 최근 현대중공업 민주노조운동의 현황

1) 대중동력이 붕괴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운동

1993년의 투쟁에 이어 1994년에도 64일간이라는 기나긴 파업투쟁이 있었다.
승리(?)로 이끌지 못한 그 투쟁의 결과 숱한 활동가들이 구속, 해고되었다. 2개월간의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는 무노동․무임금이 철저하게 적용되었으며, 나아가 연말 성과급까지 못 받게 되었다. 조합원들은 철저하게 패배의식을 느껴야 했으며, 그 패배의식은 노동조합과 투쟁에 대하여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상실감으로 이어졌다. 바로 그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치밀하고도 정교한 노무관리 정책은 한순간에 조합원들을 회사측의 손아귀에 넘겨주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대중동력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어느 곳엔들 대중동력이 중요하지 않을까만은 특히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하 현중)에서의 대중동력은 바로 현중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다. 언제나 준비되지 않고, 부족하며, 흔들리는 지도부(활동가)였지만 조합원 대중들은 거침없이 밀어 부치며 투쟁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1987년부터 시작된 현중의 투쟁의 역사와 신화의 주인공들은 바로 조합원 그 자신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중동력이 무너지게 되자 현중의 활동가들은 당연하게도 일시에 무기력해지고 감추어져 있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합원들 못지 않은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제 한몸 추스르기에 여념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조합원들의 전투적인 투쟁동력을 먹고 자랐던 활동가들이었기에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차츰 활동을 포기하는 사람은 늘어만 갔고, 전투적 투쟁의 기풍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그런 가운데 기회주의, 어용 세력이 완전히 득세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어쩌면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비참한(과거의 명성에 비해) 현실은 최근까지 거의 5년여 동안 계속되어 왔다.

2) 어둠의 터널에서 방황하는 현중노동조합 운동

이미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현상이지만 대중 동력이 무너진 현중에서도 민주노조(엄밀히 본다면 집행부만의)의 전통(?)은 1995년의 9대 집행부와 1996년~1997년의 10대 집행부 체계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대중동력이 무너진, 그러니까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집행부와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극도로 축소되어 있었다. 임투때의 최대 목표는 쟁의행위 총회를 ‘성사’시킬 것인가 였다. 그러나 그 소박한 목표조차도 여지없이 무너지곤 했다. 총회 소집공고를 해도 매번 회사측이 조합원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고, 조합원들은 그러한 회사측의 압박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지 노동조합 상근자들 만이 특공대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 어쩌다 조합원 전체 집회에 겨우 300여명이 모이면 그저 감격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3) 무기력한 노동조합과 고통에 신음하는 조합원

한 조합원이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 빼앗겼다”고....
「전노회 선거홍보물 제2호 내용 중에서」

어느 조합원이 내 뱉은 말 한마디이다. 하지만 이 한마디의 말은 단지 한 조합원의 푸념이 아니다. 그야말로 현대중공업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모든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 준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가 날로 높아만 가고, 온갖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이 판을 친다는 것은 어쩌면 상투적인 표현일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되돌아보자. 예전엔 07시40분 경에 출근하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절정을 이루었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출근시간이 점점 빨라지더니 07시40분에는 간덩이 부은(?) 활동가들 몇몇과 늦잠을 잔 이들 이 간혹 지나가는 한산하기 그지없는 시간이 되었다.
08시부터 작업시간인데 07시부터 용접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10시와 15시의 10분간의 휴식시간도 이미 작업시간이 되어 버렸다. 작업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눈치가 보여 망설여진다. 사무 관리직의 경우 년․월차는 부지런히 내는데 쉬는 것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휴가 내 놓고 태연하게 출근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두가 산재사고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이 다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회사에 찍히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회사는 산재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자랑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부러져도 기부스하고 태연하게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 덕분이다. 이와 같은 현실들은 어쩌면 ‘몸만 고달픈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빼앗겨 가는 현중노동자들’ 모습의 한 부분들에 불과할 것이다.

4) 희망의 싹을 틔워온 전노회 활동가들
1995년 현중의 대중동력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외기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현중 전진하는 노동자회’가 조직되었다.
1991년 선진활동가들의 대중조직인 ‘노민추’로 조직된 이래 수년간의 투쟁과 선거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부침을 거듭해 온 활동가들이 전노회로 재조직된 것이다. 여기서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각오의 새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의 10대집행부 선거에서 전노회 후보를 당선 시켰다.
노동법 날치기 개악 저지투쟁이 전국적으로 벌어진 1996년 12월에는 무려 5,0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하는 감격을 누렸다.
그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비록 다음날에 500명, 그 다음날에 300명으로 줄어들면서 막을 내렸지만 현중의 활동가들에게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한 사건이었다.
언젠가는 현중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과 희망을 보여준 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 11월의 10대 임원선거에서 패배했다.
그 동안 함께 활동해 왔던 윤재건 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독자 출마를 하고, 전노회는 해고동지를 후보로 내세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 선거의 패배가 전노회 활동가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선거의 패배와 향후 2년간은 전노회 자신들을 되돌아보며 단련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던 것이다.

5) 고통에 신음하는 조합원과 현중의 왕따 전노회 활동가들

1995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합원들의 처지와 상태에 대하여는 앞에서 서술한 것 그대로 이다. 그렇다면 조합원들과 전노회 활동가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상식적인 판단을 해 본다면 그야말로 서로가 의지할 수밖에 없는 끈끈한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998년의 대의원 선거를 되돌아 보자.
그 대의원 선거에서 전노회 활동가들은 단 한 명도 출마하지 못하는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 졌기에 대의원 출마를 못했던 것일까? 바로 대의원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20명의 추천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선거규정 때문이었다.
대의원 선거 공고가 붙자 전노회 활동가들은 서명용지를 들고 조합원들에게 찾아갔지만 참담한 현실의 벽을 느껴야 했다. 전노회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회사측의 엄청난 압박을 받은 조합원들은 제발 나에게 오지 말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고, 전노회 회원들은 차마 서명해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쩌다가 조합원의 집 앞에서 밤늦도록 한겨울의 추위에 떨며 기다린 끝에 겨우 서명을 받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바로 들통이 나버려 서명해준 조합원은 가족까지 수모를 당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전노회 활동가에게 찾아와 제발 서명에서 빼 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하는 상황이 줄줄이 이어졌다. 결국 전노회는 두 손을 들었다. 조합원에게 고통을 주는 대의원 선거에 전노회 회원 모두가 출마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전노회 회원들은 이렇게 왕따를 당했다. 그러나 그 왕따는 분명 조합원들에게 당한 것이 아니다. 회사측의 철저한 전노회 고립전략이며, 그 전략에 전노회와 조합원 모두가 함께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대의원 선거를 되돌아보며 ‘투쟁하는 전노회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어쩌면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관계, 그러나 그 관계는 단지 절대로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만 의지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닐까?


2. 12대 임원선거와 현중 노동조합운동

1) 12대 임원 선거의 의미

10대 집행부에 이어 11대 집행부까지 모처럼 2년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친 후 실시되는 선거였다. 매 선거가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특히 이번 선거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다음과 같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첫째, 지난 2년간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에 줄곧 반대하는 투쟁이 있어 왔다는 점에서 조합원들이 어떠한 노동조합의 위상을 원하는 것인지 이번 선거를 통하여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둘째, 회사측의 갖은 탄압과 통제로 이제는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빼앗겼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돌파구를 무엇으로 찾으려 할 것인가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셋째, 전노회의 측면에서 보면 실천투쟁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전노회 활동가들과 조합원 대중들과의 결합정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2) 준비된 전노회의 독자 후보

전노회는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시점부터 선거 전술에 대한 토론에 들어가 조직간 연합이나 인물의 영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명확한 전노회 독자 후보라는 전술을 채택했다. 이러한 독자후보 전술을 채택한 것은 그 동안 간간이 있어 온 대중성 있는 인물영입 등의 선거전술 결과 설령 당선되더라도 내부 정체성의 상실과 조직력의 혼란을 겪어 왔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번 선거의 핵심 전략이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 반대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리고 함께(영입) 할 수 있는 인물과 조직도 없는 상황은 더욱 독자후보 전술이라는 결론을 쉽게 하게 하였다.
전노회는 이러한 기본 전술을 바탕으로 선거 한 달 여전에 후보 선출을 위한 내부 경선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선 결과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즉, 선거라는 점에서 독자후보라는 전술속에서도 어느 정도 대중성이 있는 활동가가 후보로 선출되어야 하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이로 본다면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들이 선출된 것이다. 물론 전노회 5명의 후보가 젊다고 해서 활동경력이 부족하거나 뒤처 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후보진을 회원들이 경선으로 선출하게된 배경에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강한 의욕이 반영된 결과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에 나섰던 상대후보 진영의 준비는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고 있었다. 비슷한 색깔이지만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조직간의 연합과 인물영입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노회 외의 두 후보진영은 등록마감 이틀 전에야 겨우 5명의 런닝 메이트를 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쟁점없는 12대 임원선거(?)

어느 선거를 막론하고 후보자들간의 차이가 있는 법이며, 그렇기에 쟁점이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현중의 선거에서는 후보간의 쟁점이 없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쟁점이 없었다. 세 후보진영 모두 ‘투쟁하는 현중노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느 노동조합 선거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 흔한 ‘실리주의’ 따위를 하겠다는 후보는 감히 없었다.
지난 2년간 실리주의, 노사협조주의를 걸어왔던 11대 집행부 중심의 후보진영은 자신들은 그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라고 주장한다. 또한, 11대 집행부와 인맥은 다르지만 내용상 전혀 차별이 없었던 또 다른 후보진영도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를 맹렬히 비판한다. 전노회는 본래에 그런 정책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 무엇이 다른 두 후보들마저도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를 반대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 즉 조합원들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은 지난 5년간 무기력한 노동조합, 그중 최근 2년간은 실리주의와 노사협조주의라는 노동조합을 경험해 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조합원들에게 돌아간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야말로 그 어떠한 실리나 정신과 육체의 편안함도 없었다. 오직 가혹한 노동강도, 온갖 부당노동행위, 정신마저도 망가트리는 통제 체계만이 돌아왔던 것이다. 이제 마침내, 몸뚱이는 물론 정신마저 통제 당한다고 한탄하던 조합원 대중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투쟁하는 힘있는 현중노조’에서 찾으려는 광범위한 여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4)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승부

전노회는 이번 선거에서 ‘실리주의 반대, 노사협조주의 반대, 투쟁하는 현중노조의 위상을 세우는 것’을 집중적으로 선전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한 것쯤은 이미 조합원들 스스로가 명확하게 세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힘있는 현중노조는 ‘전노회만이 할 수 있다’라고 이미 조합원들이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면, 선거의 결과가 나와 있는 지금에 와서 보면 지나치게 자만하는 평가는 아닐까?
그러나 당시 선거운동의 상황을 보면 결코 자만의 평가는 아니었다.
선거운동에 들어가자마자 조합원들의 반응이 예전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이번에는 너그들이 무조건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 ‘결선투표에 가면 회사가 방해해서 어려우니 까네 한방(1차투표)에 끝내야 않되겠나’라는 말들이 조합원들의 입속에서 거침없이 쏟아졌다.
이렇게 고무적인 선거운동을 치뤄 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전노회에 대해 이미 정리되어 있는 조합원들의 여론과 현장에서 실천투쟁 중심으로 활동해 왔던 후보들의 좋은 이미지, 거기에다 자체 제작한 멀티비젼과 선전물을 비롯하여 각종 운동방식에서 몇발짝 앞서 있던 전노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감 넘치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선거 관정에서 전노회의 전적인 관심사는 오직 1차 투표에서 끝낼수 있는가, 아니면 결선까지 가야 하는가 였다. 결과는 50.9%로 1차 투표로 끝낼 수 있었다. ‘한방에 끝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바램이 이루어진 것이다.


3. 이후 현중노동조합의 전망과 과제

ꡔ동지여러분의 그러한 지지는 단지 저희 전노회와 후보자들에게만 보내는 지지는 아니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힘있는 현중노조 건설이라는 대 명제’에 대한 지지였으며, 전노회와 후보들이 해 내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조합원 동지들의 바램, 단 한 순간도 잊지않고 마음속에 새겨 둘 것임을 약속드립니다.ꡕ
- 전노회 선전물 11월4일자 내용중에서 -

그러나 현중노조의 앞날은 지극히 험난해 보인다.
11월23일 실시되는 대의원 선거에 회사측의 깊숙한 개입이 시작되었고, 1998년과 같은 악몽이 재현될 조짐이 크다. 12대 집행부의 상근자들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조합원들은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회사측의 깊숙한 통제의 그물망에 갖혀 버런 것처럼 보인다.
조합원들은 단지 강성 집행부만 덜렁 뽑아놓기만 한 것인지, 활동가들은 또 다시 특공대를 자임하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극히 불투명한 앞날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중노조, 아니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의 미래는 바로 자신들만이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활동가들 자신들부터 혁신하며, 마침내는 현중노조의 전체를 혁신해야만 한다. 그것이 없이는 활동가들과 현중노조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고통에 신음하는 대중들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대중들의 동력은 언제까지나 잠재된 동력일 뿐이다.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기풍을 바로 세우고 정치세력화를 위해 매진하자. 그것이 없이는 현중노조는 단지 과거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현중노조의 전망과 관제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한/노/정/연

1999-11-10 00:00:00

☞ 원문 : [ http://kilsp.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2&item=&no=769 ]